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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이상 버틴 생존본능…하이트진로, 글로벌 술자리 넘본다
[경제일보] 모양과 알코올 도수는 달라졌고 광 고모델도 수없이 바뀌었지만, 진로라는 이름과 두꺼비는 한 세기를 넘어 살아 남았다. 하이트진로가 올해로 창립 102년을 맞았다. 국내 기업의 평균수명이 좀처럼 수십 년을 넘기기 어려운 현실에서 하이트진로는 일제강점기와 전쟁, 산업화, 외환위기와 기업 인수합병을 모두 통과했다. 하이트진로의 생존법은 오래됐다는 이유로 브랜드를 버리지 않는 데 있다. 이름과 기억은 남기되 맛과 도수, 디자인과 마케팅은 시대에 맞춰 고쳤다. 하이트진로의 100년은 새로운 술을 끊임없이 발명한 역사라기보다 오래된 술을 새로운 세대에게 다시 파는 방법을 찾아온 역사에 가깝다. 진천양조상회·조선맥주, 두 술 집안의 결합 하이트진로의 뿌리는 하나가 아니다. 소주의 진로와 맥주의 하이트가 서로 다른 길을 걷다 한 회사 안에서 만났다. 진로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설립된 진천양조상회에서 출발했다. 전쟁 이후 서울에 자리를 잡았고, 1970년 소주시장 정상에 올랐다. 이후 진로와 참이슬로 이어지는 국내 대표 소주 계보를 만들었다. 맥주의 뿌리는 1933년 설립된 조선맥주다. 크라운맥주를 생산하던 조선맥주는 1990년대 ‘하이트’를 앞세워 시장 판도를 바꿨다. 제품 브랜드의 성공에 힘입어 1998년 회사 이름도 하이트맥주로 바꿨다. 두 회사의 결합은 위기에서 시작됐다. 진로는 무리한 사업 확장과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법정관리를 거쳤다. 하이트맥주는 2005년 진로를 인수했고, 두 회사는 2011년 통합법인 하이트진로로 출범했다. 하이트진로는 인수한 회사의 이름과 상징을 지우지 않았다. 기업명에 ‘진로’를 남겼고 참이슬과 두꺼비를 핵심 자산으로 활용했다. 공장과 설비뿐 아니라 소비자의 기억까지 인수한 셈이다. 주류시장에서 브랜드는 단순한 상표가 아니라 ‘어느 식당에서 누구와 잔을 기울였는지’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 쌓인 자산이다. 하이트진로는 이 기억을 폐기하지 않고 새 포장에 담아 다시 시장에 내놨다. 맛은 바꾸고 기억은 남겼다 하이트진로의 브랜드 경영은 무조건적인 보존보다 ‘미세 조정’에 가깝다. 이름과 상징은 유지하되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제품을 계속 손본다. 1998년 출시된 참이슬은 대나무 숯 정제와 깨끗한 이미지를 앞세워 소주 시장의 기준을 바꿨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지 않았다. 하이트진로는 올해 참이슬 후레쉬의 알코올 도수를 16도에서 15.7도로 낮췄다. 저도주와 부드러운 음용감을 선호하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참이슬은 출시 이후 올해 5월까지 360㎖ 기준 약 413억병이 판매됐다. 거대한 브랜드도 시장 변화 앞에서는 0.3도의 변화를 택했다. 강한 브랜드는 변하지 않는 브랜드가 아니라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계속 변하는 브랜드라는 판단이다. 2019년 부활한 ‘진로’도 같은 방식으로 생명력을 되찾았다. 과거의 두꺼비와 하늘색 병을 복고 감성으로 되살리면서 제품은 저도수·제로슈거 흐름에 맞췄다. 두꺼비는 캐릭터 상품과 팝업스토어, 협업 마케팅을 통해 젊은 소비자와 다시 만났다. 과거를 보존하되 과거의 방식으로 팔지는 않은 것이다. 다만 소주와 맥주의 처지는 다르다. 하이트진로는 소주시장에서 참이슬과 진로라는 강력한 방어선을 갖고 있지만, 맥주에서는 오비맥주와 장기간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이트의 뒤를 이어 테라와 켈리를 내놓았지만 신제품의 화제성을 안정적인 점유율과 이익으로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과제다. 실적에도 내수 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이트진로의 2025년 연결 매출은 2조4996억원, 영업이익은 1723억원으로 전년보다 감소했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 5908억원, 영업이익 559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각각 3.6%, 10.8% 줄었다. 소주보다 맥주의 매출 감소 폭이 컸다. 회식문화 축소, 외식경기 부진, 절주와 건강관리 문화가 동시에 확산되면서 과거와 같은 대량 음용 중심의 성장 공식은 흔들리고 있다. 하이트진로가 저도수와 무알코올, 프리미엄 제품을 늘리는 이유다. 하이트진로가 찾은 해법, ‘진로의 대중화’ 글로벌 비전 제시 내수시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하이트진로가 꺼내든 해법은 해외다. 회사는 창립 100주년을 맞아 ‘진로의 대중화’를 글로벌 비전으로 제시했다. 소주를 한식당이나 한국 문화 체험 때 마시는 술에서 벗어나 세계인이 일상적으로 선택하는 주류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출발점은 나쁘지 않다. 영국 주류전문매체 드링크 인터내셔널 집계에서 진로는 25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증류주 브랜드에 올랐다. 2025년 판매량은 9리터 상자 기준 9450만 상자로 집계됐고, 하이트진로는 약 91개국에 소주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판매 1위’와 ‘글로벌 기업’은 같은 뜻이 아니다. 판매량에는 거대한 국내시장 물량이 포함된다. 올해 1분기 국내 매출은 전체 매출의 약 90%를 차지했다. 세계적인 판매 기록을 갖고도 회사의 실적은 여전히 국내 소비와 경기, 음식점 영업에 크게 좌우된다. 이 간극을 좁힐 시험대가 베트남 공장이다. 하이트진로는 베트남 타이빈성에 첫 해외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있으며 올해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생산능력은 연간 최대 약 500만 상자다. 공장이 가동되면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동남아 현지 생산·공급 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 물류비를 낮추고 국가별로 용량과 맛, 용기를 달리한 제품을 생산할 여지도 커진다. 물론 공장을 짓는 것과 현지 소비자가 소주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류는 제품을 한 번 맛보게 할 수 있지만 반복 구매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현지 음식과의 궁합, 가격, 유통망, 음주문화에 맞는 접근이 뒤따라야 한다. 공장 가동률과 해외사업의 실제 수익성도 입증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트진로는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인의 술자리가 바뀔 때마다 살아남았다. 독한 소주는 순해졌고, 회식은 가벼운 모임과 혼술로 흩어졌다. 낡은 상징으로 보였던 두꺼비는 다시 젊은 캐릭터가 됐다”며 “하이트진로의 경쟁력은 오래됐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오래된 것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아는 감각에 있다”고 했다. 이어 “국내 술자리에서 증명한 브랜드 생존 본능이 해외 소비자의 일상에서도 통할 때 하이트진로는 비로소 100년 기업을 넘어 글로벌 영속기업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2026년 07월 30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7-30 0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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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공장은 선거 현수막 위에 지어지지 않는다
[경제일보] 선거철만 되면 기이한 신기루가 피어오른다. 삽을 뜰 부지도, 흘려보낼 물도, 끌어올 전기도 없는데 현수막 위엔 어느 날 갑자기 ‘삼성 반도체 유치’라는 거창한 활자가 박힌다. 기업의 의사조차 묻지 않은 일방적인 구애이자 선언이다. 말은 깃털처럼 가볍고 공장은 태산처럼 무겁다. 표는 오늘 당장 필요하겠지만, 반도체 팹(Fab)은 1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보고 짓는 국가적 명운이 걸린 유기체다.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들이 다투어 내놓는 반도체 공약은 위험천만하다. 대구와 광주, 전남 등지에서 들려오는 ‘10조원 규모 시설 유치’ 소식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정작 현장은 비명에 가깝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용인과 평택을 축으로 수백조원대 투자를 확정하고 초격차를 위한 속도전에 돌입한 상태다. 기업의 경영 논리와 정치의 선거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가 산업을 말하는 것은 마땅한 책무다. 수도권 쏠림과 지역 소멸의 절벽 앞에서 반도체라는 전략 자산을 지역의 미래와 연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권장돼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의 천박함에 있다. 정치가 기업을 부르는 것과, 기업의 이름을 빌려 표를 구걸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행위다. 반도체 공장은 축구장 몇 개 넓이의 땅에 콘크리트 건물을 세운다고 돌아가는 단순 시설이 아니다. 전력과 용수, 도로와 폐수 처리, 송전망과 협력사 생태계, 그리고 고도로 훈련된 인재와 교육·의료·주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인공 도시’다. 팹 하나를 짓는다는 것은 도시의 거대한 혈관계를 새로 이식하는 일과 같다. 하지만 선거판에서는 이 복잡한 산업 생태계가 한 줄의 시원한 구호로 증발해 버린다. “우리 지역에 삼성을 가져오겠다”는 호언장담 뒤에 실질적인 책임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 자료가 증명하는 숫자의 무게를 보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완공되는 2053년까지 필요한 전력은 10GW(기가와트) 이상이다. 하루에 쓰이는 물만 133만 톤에 달한다. 인구 300만 인천시민이 쓰는 물의 양을 반도체 공장 하나가 삼키는 꼴이다. 송전선로 하나를 까는 데만 수조 원의 예산과 주민 설득이라는 고차방정식이 필요하다. 이 엄중한 숫자 앞에서 정치인의 ‘공장 유치’라는 말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10GW의 전력은 말로 끌어올 수 없고, 100만 톤의 물은 현수막 사이로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산업정책에는 정교한 지도가 있고, 냉정한 숫자가 있으며, 명확한 비용 분담과 책임 주체가 존재해야 한다. 반면, 선거용 공약에는 오직 ‘이름’만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단어인 ‘삼성’,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합해 환상을 팔 뿐이다. 하지만 자본은 애향심이나 표심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고객과 납기, 수율과 원가, 전력의 안정성이라는 차가운 계산기 위에서만 투자의 발길을 옮긴다. 그 계산기에서 숫자 하나만 어긋나도 수십조의 투자는 멈춰 선다. 지방의 절박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수도권의 비대화가 지역의 골목을 비워내고 있는 현실은 뼈아프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기업의 투자 결정을 선거용 땔감으로 쓰는 행태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진정으로 지역 발전을 원한다면 기업의 이름보다 ‘조건’을 먼저 내밀어야 한다. 송전망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용수는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대학은 어떤 인재를 키워낼 것인가. 이 치열한 고민이 빠진 유치는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염불에 불과하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정명(正名)’을 말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일이 성취될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 정치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정명이다. 기업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마치 지자체가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이름부터 틀렸다. ‘유치’라고 부르기 전에 ‘조성’이라 해야 하고, ‘공장’을 약속하기 전에 ‘인프라’를 약속해야 한다. ‘삼성’을 외치기 전에 ‘전기’를 말하는 것이 순리다. 정치권의 무책임한 한마디는 기업에겐 치명적인 ‘리스크’가 된다. 외국 투자자들은 투자처가 바뀌느냐고 묻고, 협력사는 짐을 싸야 하느냐며 동요한다. 기업이 사실무근이라 밝히면 정치권과 각을 세우는 꼴이 되고, 침묵하면 거짓 공약을 묵인하는 셈이 된다. 기업 관계자들이 쏟아지는 문의 전화에 본업을 망칠 지경이라는 토로는 결코 엄살이 아니다. 이제 원칙을 세울 때가 됐다. 첫째, 특정 기업명을 적시한 공약은 반드시 사전 협의 여부를 공개해야 한다. 둘째, 대규모 산업 공약에는 전력·용수·재원 계획 등 구체적인 데이터가 첨부돼야 한다. 셋째, 선거관리 기구가 이러한 경제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가전략산업의 위상을 빌린 공약이라면, 그에 걸맞은 무게와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와 정치는 인프라를 닦고 규제를 걷어내는 조력자여야 하며, 기업은 그 토대 위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주체여야 한다. 이 경계가 허물어질 때 산업정책은 계획경제의 아류가 되고, 선거 공약은 경영에 대한 오만한 월권이 된다. 반도체는 대한민국이 세계와 ‘맞짱’ 뜰 수 있는 마지막 성벽이다. 이 성벽은 정치 구호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니다. 엔지니어의 밤샘과 장비의 정밀도,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고독한 결단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결정체다. 그 숭고한 성벽을 선거판의 배경 그림으로 소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무례한 일이다. 정치가 할 일은 삼성을 현수막에 올리는 것이 아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이 땅에 더 깊고 안전하게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전력과 물, 그리고 사람의 길을 여는 것이다. 반도체 공장은 표밭이 아니라 국가의 심장이다. 선거가 끝나고 후보가 떠나도 송전탑은 서 있어야 하며, 구호가 사라져도 엔지니어는 출근해야 한다. 정치권에 묻는다. 진정 반도체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기업의 이름부터 내려놓고 전력망 도면부터 펼쳐라. 그것이 산업을 대하는 정당한 ‘상식’이다.
2026-05-08 13:2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