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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北엔 대화 손짓·中엔 견제…비핵화·공급망 공조 강화
[경제일보] 한국·미국·일본이 북한에는 비핵화를 전제로 대화 복귀를 촉구하고 대만해협과 공급망 문제에서는 중국을 겨냥한 공조 수위를 높였다. 안보 협력을 넘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에너지까지 3국 협력의 범위를 넓힌 것이 이번 회담의 특징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회담하고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제81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를 계기로 열린 회의다. 세 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핵·탄도미사일 개발을 위한 수익 창출 차단 의지를 재확인했다. 동시에 “대화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북한에 협상 복귀를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재개 의사를 거듭 밝힌 가운데 압박과 대화 가능성을 함께 담은 메시지다. 북한의 사이버 활동과 해외 정보기술(IT) 인력을 통한 자금 조달에도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유엔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MSMT)의 활동을 지지하고 납북자와 억류자, 국군포로, 이산가족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도 요구했다. 대만 문제에서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하고 대만이 적절한 국제기구에 의미 있게 참여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특정 국가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에 대한 견제 메시지를 함께 낸 것으로 해석된다. 경제안보 공조는 공급망 대응으로 구체화했다. 세 나라는 자의적인 수출 제한과 유해한 과잉생산, 경제적 강압과 비시장적 관행에 반대하고 제3국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을 강화하기로 했다. 새 3국 경제안보 협의체 출범을 환영하고 반도체와 AI, 양자기술, 디지털 인프라, 바이오기술 분야의 협력도 확대한다. 지난 7월 체결한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각서의 후속 조치도 추진한다. 한미일 기업의 기술과 금융 역량을 결합해 제3국 SMR 사업을 발굴하고 규제체계 구축과 자금 조달, 인력 교육을 함께 지원하는 구상이다. 석유 비축 확대와 생산국·소비국 간 협력을 통한 에너지 공급망 안정도 공동 과제로 제시했다. 동남아시아 사기센터 등 초국가적 조직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유엔마약범죄사무소와 협력하고 해양안보·법 집행, 국제 재난구호, 북극 문제에서도 공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방위 공약과 확장억제 공약도 재확인했다. 이번 회담은 7월 튀르키예와 필리핀에서 열린 회의에 이어 석 달 사이 세 번째다. 한미일 협력이 공동성명에 머물지 않으려면 대북 대화 재개의 구체적인 조건과 공급망 경보가 실제 공동 대응으로 이어지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대만과 경제안보 문제에서 높아진 대중 견제 수위가 한국의 대중 외교·통상 관계에 미칠 영향도 향후 과제로 남는다.
2026-09-22 07: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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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진핑에 B-2 띄우고 국빈만찬…환대 뒤엔 무역·AI 담판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방문에 B-2 전략폭격기와 F-22 전투기를 동원한 환영식을 마련한다. 최고 수준의 의전과 미국의 군사력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무역과 첨단기술, 대만 문제를 둘러싼 정상회담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시 주석은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미국을 국빈방문한다. 시 주석의 미국 국빈방문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이후 11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직접 나가 시 주석 부부를 맞을 예정이다. 미국 대통령이 외국 정상의 공항 도착을 직접 영접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24일 백악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시 주석 부부가 참석하는 공식 환영식이 열린다. 백악관에 따르면 미군 전 군종을 대표하는 장병 479명이 참가하고 군악대 연주와 의장대 사열이 이어진다. B-2 스피릿 전략폭격기 1대와 F-22 랩터 전투기 4대도 축하비행에 나선다. B-2는 장거리 침투와 핵무기 운용이 가능한 전략폭격기이며 F-22는 미국의 대표적인 스텔스 전투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맞을 때도 전투기와 전략폭격기를 의전에 활용했다. 이번 비행 역시 환영과 군사력 과시라는 두 가지 상징을 함께 담는다. 공식 환영식 뒤에는 양국 정상과 핵심 각료들이 참석하는 회담이 열린다. 관세 휴전 연장과 중국의 희토류 수출, 미국산 농산물·항공기 구매, 첨단 반도체와 AI 통제 문제가 주요 의제로 거론된다. 대만해협과 이란전쟁, 펜타닐 원료 차단 등 안보 현안도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멜라니아 여사와 펑 여사는 정상회담 중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을 방문한다. 저녁에는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국빈만찬이 열린다. 제프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 순다르 피차이, 젠슨 황, 팀 쿡, 샘 올트먼 등 미국 주요 기술기업 경영진도 초청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AI와 반도체가 이번 회담의 핵심 경제 의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5일에는 양 정상 부부가 백악관에서 차담한 뒤 국립문서보관청을 찾아 미·중 관계 관련 기록을 살펴본다. 중국 외교부는 6개월 사이 이뤄진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에 “역사적이고 이정표적인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화려한 의전과 정상 간 친분이 곧바로 현안 합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번 방문의 성과는 11월 만료를 앞둔 관세 휴전의 연장 여부와 희토류·농산물 교역, 첨단기술 통제에서 양국이 어느 수준의 교환 조건을 마련하는지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2026-09-22 0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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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뒤에도 중국 변수…대만·월드컵 판권·소비시장으로 이어진다
[경제일보] 미중 관계가 정상회담 이후에도 대만과 기술, 무역 문제를 둘러싸고 복잡한 긴장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은 외교 현안에서는 대만 문제를 양보할 수 없는 사안으로 내세우고, 시장에서는 월드컵 중계권과 소비재 수요를 앞세워 글로벌 기업의 전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양국은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는 데 뜻을 모았지만, 대만 문제를 비롯한 핵심 현안의 간극까지 좁힌 것은 아니다. 중국 외교부는 최근에도 대만 문제를 중국 핵심 이익의 핵심이라고 규정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독립과 양안 평화는 양립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중국은 대만 문제를 미중 관계의 정치적 기초로 보고 있고, 미국은 대만관계법에 따라 대만의 방위 역량을 지원하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이 열렸다고 해서 갈등 요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첨단 제조업 공급망, 대만해협 안보는 두 나라가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사안이다. 정상 간 대화가 충돌을 관리하는 장치가 될 수는 있어도, 경쟁의 성격까지 바꾸기는 쉽지 않다. ◆ 월드컵 중계권도 드러낸 중국의 협상력 중국 시장의 영향력은 스포츠 산업에서도 확인된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중국 중계권 계약을 마무리했다. 중국 국영 중국미디어그룹(CMG)이 중계권을 확보하면서 중국 팬들은 월드컵을 공식 방송으로 볼 수 있게 됐다. 협상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FIFA는 중국 시장의 규모와 월드컵 흥행 가능성을 고려해 높은 가격을 제시했지만, 중국 측은 그 수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협상이 길어지자 FIFA가 가격을 조정했고, 결국 대회 개막을 앞두고 계약이 체결됐다. 중계권료는 단순히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방송사는 광고시장과 시청률, 경기 시간대, 온라인 중계권의 수익성을 따져야 한다. 2026 월드컵은 북미에서 열려 중국에서는 심야와 오전 시간대 경기가 많다. 중국 시장이 크더라도 방송사 입장에서는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FIFA가 중국과 계약을 마무리한 것은 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시장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해도 축구 중계와 광고, 스포츠용품 판매,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수에서 중요한 시장이다. 국제 스포츠 단체가 중국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 소비시장은 회복과 경쟁이 교차 글로벌 소비기업들도 중국 시장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 다만 중국 소비시장을 한 방향으로만 보기 어렵다. 고가 화장품과 기능성 제품, 향수, 피부과학 기반 제품에는 수요가 남아 있지만, 경기 불확실성과 현지 브랜드 성장으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로레알은 올해 1분기 전체 매출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북아시아 지역 매출은 감소했다. 중국 시장이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글로벌 브랜드가 과거처럼 브랜드 인지도만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중국 소비자는 가격만 보는 시장도, 고가 브랜드만 선호하는 시장도 아니다. 기능과 성분, 사용 경험, 온라인 후기, 할인 조건을 함께 따진다. 중국 로컬 화장품 브랜드와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에서 매장을 늘리는 방식보다 온라인 판매와 현지 맞춤형 제품, 라이브커머스, 빠른 배송 체계를 강화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중국 시장은 여전히 크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는 방식은 달라지고 있다. ◆ 외교와 시장에서 계속되는 중국 변수 중국은 미중 관계에서는 대만 문제를 앞세워 미국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스포츠 산업에서는 거대한 시청자 기반을 바탕으로 중계권 협상력을 행사한다. 소비시장에서는 글로벌 브랜드에 기회와 부담을 동시에 준다. 세 분야는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준다. 외교에서는 미국과 전략 경쟁을 벌이고, 시장에서는 세계 기업과 국제기구가 쉽게 외면하기 어려운 규모를 갖고 있다. 미중 관계가 안정적으로 관리될수록 중국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대만과 기술, 통상 갈등이 다시 커지면 기업과 국제 스포츠 단체도 외교 변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외교와 산업, 소비시장 모두에서 세계 경제의 주요 변수로 남아 있다.
2026-07-07 17: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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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의 뜨거운 질주, 변동성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경제일보] 한국 증시가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때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상징하던 저평가 시장은 이제 글로벌 투자은행과 국제 금융 언론이 주목하는 가장 뜨거운 시장 가운데 하나가 됐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 증시의 상승 속도가 1990년대 말 닷컴버블 시기의 미국 나스닥 상승률마저 앞질렀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국 코스피는 지난해 초 2400선에서 올해 7200선을 돌파하며 18개월 만에 세 배 이상 급등했다. 이는 미국 나스닥이 닷컴버블 당시 같은 수준까지 상승하는 데 걸렸던 시간보다도 더 빠른 속도다. 이번 랠리의 중심에는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있다. 인공지능(AI) 혁명과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요 폭증이 두 기업의 실적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130% 안팎 상승했고, SK하이닉스는 170% 가까이 급등했다. 두 기업의 합산 시가총액은 이미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섰다. 이는 한국 경제 역사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러나 시장이 뜨거워질수록 냉정함은 더욱 중요하다. FT가 지적했듯이 이번 랠리는 과거 닷컴버블과는 분명 다른 측면이 있다. 당시 미국 나스닥은 실적보다 미래 기대감과 밸류에이션 확대에 의해 움직였다. 반면 현재 한국 반도체 랠리는 실제 이익 증가가 동반되고 있다. 글로벌 AI 인프라 확장이 메모리 산업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씨티그룹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코스피 목표치를 계속 상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과거 메모리 산업이 단순 경기순환 산업이었다면, 이제는 AI라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 속에서 장기 성장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시장의 균형이다. 현재 한국 증시의 상승은 지나치게 소수 종목에 집중돼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상당수 종목은 여전히 부진하다. 중소형 가치주들은 시장 유동성에서 소외되고 있고, 체감 경기 역시 증시의 뜨거운 열기와는 큰 괴리가 있다. 즉 지금의 코스피는 ‘한국 경제 전체의 동반 상승’이라기보다 ‘AI 반도체 중심의 초집중 랠리’에 가깝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시장은 언제나 낙관 속에서 과열되고, 과열 속에서 위험을 잊는다. 특히 한국 시장은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높은 구조다. 이번 상승장 역시 이른바 ‘개미군단’의 귀환이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한동안 미국 증시로 향했던 자금이 다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몰리고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빚투’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이번에는 다르다”고 말했다. 서울 집값이 끝없이 오를 것이라는 믿음 속에 무리한 대출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시장은 극단적 변동성을 경험했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주가는 기업의 미래 가치를 반영하지만, 시장은 언제나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AI 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분명 존재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조정과 변동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한국 시장은 구조적으로 외국인 자금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외국인은 상승장에서는 강력한 추진력이 되지만, 위험 회피 국면에서는 가장 먼저 빠져나가는 자금이기도 하다. 미국 금리 정책, 글로벌 경기 둔화, 미·중 갈등, 대만해협 리스크, 중동 정세 같은 외부 변수는 언제든 한국 시장 변동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지금처럼 특정 섹터와 특정 종목에 자금이 과도하게 집중된 시장에서는 작은 충격도 훨씬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시장이 점점 ‘투자’보다 ‘추격’의 심리로 움직일 가능성이다. 실적과 산업 변화에 대한 냉정한 분석보다는 “지금 안 사면 뒤처진다”는 조급함이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위험 신호가 나타난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이 대출까지 동원해 특정 종목에 몰릴 경우 시장의 건강성은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상승장을 단순 거품으로만 볼 수도 없다. 현재 한국 증시는 여전히 미국 시장 대비 밸류에이션이 낮다. FT가 인용한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코스피의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8배대 수준으로, 미국 S&P50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상장사의 절반 가까이가 여전히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이다. 이는 한국 시장이 아직도 구조적 저평가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한국 증시가 진정한 선진 자본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질주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중소형주와 가치주, 바이오와 로봇, 방산과 조선,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산업까지 시장 전반의 체질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지배구조 개혁과 저PBR 기업 가치 제고 정책 역시 그런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본시장의 신뢰를 높이고, 시장 전체의 체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냉정한 균형감각이다. AI 혁명은 분명 거대한 산업 전환의 시대를 열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그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시장의 열광은 언제나 그림자를 동반한다. 투자자는 낙관 속에서도 위험을 계산해야 하고, 정부는 상승장 속에서도 시스템 리스크를 점검해야 하며, 기업은 주가 상승에 취하기보다 미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한국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이 뜨거운 상승이 대한민국 산업 혁신의 서막이 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극단적 변동성으로 기록될지는 지금부터의 선택에 달려있다.
2026-05-23 18: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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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대만문제로 본 우리의 입장
미·중 정상회담이 끝난 뒤 나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은 국제정치의 냉혹한 본질을 다시 일깨운 사건이다. “대만 무기 판매를 시진핑 주석과 상세히 논의했다”, “판매 여부는 중국과의 협상에 달려 있다”는 취지의 언급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 질서가 가치와 명분보다 국익과 힘의 논리 위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우리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대한민국은 앞으로 어떤 전략으로 생존할 것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대만 문제를 남의 일처럼 보지 않았다. 중국의 위협 속에 있는 대만의 처지를 북한과 대치한 우리의 현실과 겹쳐 보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며 미국과 안보 협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도 양국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대만해협 위기가 거론될 때마다 한국 사회는 마치 우리의 미래를 들여다보듯 긴장해 왔다. 그러나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그 인식에 균열을 냈다. 미국은 더 이상 대만 문제를 절대적 가치의 문제로만 접근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을 “협상 칩”이라고 표현했고, “중국은 강대국이고 대만은 작은 섬”이라고까지 말했다. 세계 최강국 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국제정치의 본질을 압축한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오직 영원한 국익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 역사는 늘 그래왔다. 냉전 시절 미국은 중국을 공산주의의 본산으로 규정했지만, 소련 견제를 위해 돌연 중국과 손을 잡았다. 베트남전에서 피를 흘리던 미국은 불과 몇 년 뒤 베이징에서 웃으며 건배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협력자가 되고, 오늘의 동맹이 내일의 부담이 되는 것이 국제정치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때로 동맹을 영원불변의 운명공동체처럼 여기는 순진함에 빠져 있었다. 이번 회담이 우리에게 충격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만조차 전략적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한반도 역시 예외일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미·중 관계가 협력 국면으로 들어가든, 갈등 국면으로 치닫든 한국은 언제든 협상 테이블의 주변부로 밀려날 가능성을 안고 있다. 특히 북핵 문제조차 이번 정상회담에서 부차적 의제로 다뤄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강대국 계산 속에서 재배치될 수도 있다는 경고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세계 질서가 ‘가치 연대’보다 ‘거래 외교’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조차 비용과 이익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미국의 안보 우산도 더 이상 무조건적 희생이 아니라 철저한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이 자국 산업과 국익을 위해 대만 반도체 기업의 미국 이전을 압박하는 모습은 그 단면이다. 동맹도 결국 미국 국익 아래 놓여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분명하다. 첫째는 자강(自强)이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한다. 국방력 강화는 물론이고 첨단 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조선, 원전 같은 전략 산업은 이제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핵심 자산이다. 경제력이 곧 외교력이고 군사력인 시대다. 둘째는 외교의 정교함이다. 미국과의 동맹은 여전히 대한민국 안보의 중심축이다. 그러나 동맹에만 모든 운명을 맡기는 사고는 위험하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 일본과의 안보 협력, 유럽 및 동남아 국가들과의 전략적 연대까지 다층적 외교를 구축해야 한다. 어느 한 나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셋째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다. 국제정치는 감정이 아니라 힘과 이해관계로 움직인다. 우리는 때로 국제사회를 도덕 교과서처럼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이 살아남는다(柔弱勝剛强)”고 했다. 시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국가는 결국 도태된다. 또한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했다. 조화를 이루되 휩쓸리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 외교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균형 감각이다. 인류 역사의 경전들은 공통된 교훈을 전한다. 스스로 준비하지 않은 국가는 결코 타인의 선의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강대국은 늘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 냉혹한 현실을 직시할 때만 국가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 질서의 변화 속에서 한국이 더 이상 과거의 익숙한 틀에 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역사적 장면이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대한민국은 다가오는 격변의 시대를 스스로 헤쳐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2026-05-18 10: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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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이념적 구호가 아닌 국익 중심의 실용적인 국가 전략요구
[경제일보] 미·중 정상회담이 다시 세계 질서의 향방을 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 베이징 회담에서 협력과 공존을 강조했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패권 경쟁의 냉혹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웃으며 손을 맞잡았지만 대만 문제와 기술 패권, 공급망과 군사안보를 둘러싼 충돌의 불씨는 전혀 꺼지지 않았다. 이번 회담은 화해 선언이라기보다 ‘충돌을 관리하기 위한 휴전’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외교와 경제 전략의 방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냉정하게 봐야 할 것은 미·중 갈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계 최강 패권국인 미국과 급부상한 중국의 경쟁은 구조적 충돌이다. 시진핑 주석이 다시 꺼내 든 ‘투키디데스의 함정’ 역시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미국 중심 국제질서 속에서 중국은 더 이상 주변국이 아니라 대등한 강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기술·군사·경제적 팽창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다. 양국은 갈등하면서도 공존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긴밀히 연결된 대표적인 국가다. 어느 한쪽만 선택하는 단순한 이분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과거처럼 ‘전략적 모호성’만으로 버티기에도 국제 정세는 너무 급변하고 있다. 이제는 원칙 있는 실용외교가 필요하다. 우선 안보의 기본축은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한다. 북핵 위협과 동북아 안보 현실 속에서 한미동맹은 여전히 대한민국 생존의 핵심 기반이다.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약화시키는 선택은 국가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긴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 역시 경제와 해상 물류 측면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국제 규범이라는 가치 역시 분명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반도체, 배터리, 화학, 소비재 산업에서 거대한 시장이다. 최근 미·중 갈등 속에서 공급망 재편의 반사이익을 누린 측면도 있지만,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감정적 반중 기조나 정치적 접근만으로는 국익을 지킬 수 없다. 중국과는 경제협력은 확대하되 기술과 안보 분야에서는 철저히 국익 중심으로 대응하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공급망과 수출 시장 다변화다. 미·중 관계가 잠시 완화됐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 언제든 다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기업과 정부는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이고 동남아, 인도, 중동, 유럽 등으로 시장을 넓혀야 한다. 에너지·광물·반도체 소재 공급망 역시 국가 차원의 전략 산업으로 관리해야 한다. 경제안보가 곧 국가안보인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외교 역시 보다 능동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제 한국은 단순히 미·중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국가가 아니라 국제질서 변화 속에서 실리를 만들어내는 전략 국가가 돼야 한다.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협력하고, 위험 요소에는 단호히 대응하는 유연성과 원칙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은 세계가 협력과 대립이 공존하는 복합 질서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대국들은 자국 이익을 위해 손을 잡기도 하고 등을 돌리기도 한다. 결국 살아남는 국가는 감정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인식과 전략적 판단을 가진 나라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도 이념적 구호가 아니라 국익 중심의 치밀하고 실용적인 국가 전략이다.
2026-05-15 07: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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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패권보다 세계 안정과 평화의 지혜 모아야
[경제일보] 9년 만에 성사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의미를 남겼다. 135분 동안 이어진 이번 회담은 미·중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대신 일정 수준의 관리와 공존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미·이란 전쟁 이후 국제 유가 급등과 공급망 불안, 세계 경제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두 초강대국 정상이 직접 마주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 시장과 국제사회에는 하나의 안도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중국 시진핑 주석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직접 언급하며 미국과의 공존 필요성을 강조한 점이다.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이 충돌로 치닫는 역사의 악순환을 피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현재 국제 질서가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위기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은 경제·안보·기술 분야에서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 경제와 공급망, 에너지 질서의 중심축이라는 점에서 어느 한쪽의 붕괴나 충돌은 곧 세계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전과는 다소 다른 태도를 보였다. 과거처럼 중국을 정면으로 압박하기보다는 협력과 관계 안정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드러냈다. 시 주석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평가하고, 미국 기업인들을 대거 동행시켜 경제 협력 의지를 강조한 것은 미국 역시 중국과의 완전한 대결보다는 관리 가능한 경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미·이란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과 미국 내 물가 상승, 에너지 가격 불안은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무한정 감당하기 어려운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마냥 낙관적인 신호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강경한 입장이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확인됐다. 시 주석은 대만 문제를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규정하며, 잘못 처리할 경우 양국 충돌 가능성까지 직접 언급했다. 이는 중국이 대만 문제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만해협의 긴장은 여전히 동아시아와 세계 안보의 가장 위험한 화약고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아쉬운 점은 세계가 주목했던 미·이란 전쟁과 관련해 구체적인 합의나 공동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양국 정상이 중동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는 하지만, 휴전이나 종전을 위한 실질적 공조 방안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세계가 가장 절실히 바라는 것은 패권 경쟁의 승패가 아니라 전쟁의 종식과 국제 질서의 안정이다. 중동의 불안은 단순히 한 지역의 분쟁에 그치지 않는다. 에너지 가격 폭등과 물류 차질,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져 전 세계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이제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양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세계 최강을 다투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 평화와 경제 안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 큰 책무도 지니고 있다. 자국의 국익만을 앞세운 무한 경쟁은 결국 세계 경제를 더 깊은 불안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패권을 향한 과도한 집착은 갈등을 키우고 국제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절제와 책임의 리더십이다. 미국은 패권 유지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협력 질서를 존중해야 하며, 중국 역시 확대된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특히 두 나라는 중동 전쟁의 조기 종식과 에너지 시장 안정, 글로벌 공급망 회복을 위해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세계가 두 초강대국에 기대하는 역할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분명 갈등 관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화만으로 평화가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 진정한 시험대는 앞으로다. 두 나라가 경쟁 속에서도 국제 질서의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협력 원칙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리고 세계 시민들의 불안과 고통을 덜어줄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국제사회는 지켜보고 있다. 강대국의 진정한 위대함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힘에 있지 않다. 전쟁의 위험을 줄이고 세계 평화를 지켜내는 지혜에 있다. 미국과 중국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패권 경쟁을 넘어 인류 공동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책임 있는 길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2026-05-14 18: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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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가 만든 성장, 나라 경제의 착시가 되어선 안 된다
[경제일보] 한국 경제가 모처럼 의미 있는 성장 지표를 받아 들었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1.7%, 전년 동기 대비 3.6% 성장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수출 증가와 설비투자 확대가 성장을 이끌었다. 장기간 이어진 경기 둔화 속에서 반가운 소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는 숫자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성장률은 높아졌지만 시장의 체감 온도는 여전히 낮다. 대기업 실적은 개선됐지만 중소 제조업 현장은 여전히 어렵다. 수출은 늘었지만 청년 취업난은 계속되고 지방 산업단지는 일감 부족과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간극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번 성장률은 경제 회복이 아니라 ‘통계의 위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성장의 핵심 동력은 단연 반도체다.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와 함께 메모리 및 첨단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고 한국 기업들은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반도체가 없었다면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반도체의 호조가 곧 한국 제조업 전체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제조업 생산은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상당수 업종은 사실상 정체 상태에 가깝다. 거대한 엔진 하나가 경제 전체를 끌어올린 셈이다. 엔진이 강한 것은 다행이지만 차체 곳곳이 흔들리는데 속도계 숫자만 보고 안심할 수는 없다.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제조업 생태계의 힘으로 성장해 왔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기계, 전자, 소재·부품 산업이 서로 맞물려 국가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중소기업과 협력업체, 지역 산업단지, 숙련 기술자들이 존재했다. 대기업 혼자 만든 성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첨단 반도체와 AI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는 반면 전통 제조업과 중소기업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지만 협력업체들은 원가 상승과 인건비, 고금리 부담에 시달린다. 수도권 첨단 클러스터에는 자금과 인재가 몰리지만 지방 산업단지는 노후 설비와 인력 유출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경제 회복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도체는 분명 한국의 핵심 전략산업이다. 정부가 전력과 용수, 세제, 연구개발(R&D), 인력 양성 등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반도체 산업은 더 이상 기업만의 경쟁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대만, 유럽 모두 국가 차원의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지원이 산업정책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는 고부가가치 산업이지만 고용 창출 효과는 제한적이다. 자동화 수준이 높고 생산 효율 중심 구조이기 때문이다. 수출액은 커도 그 효과가 모든 지역과 가계로 곧장 확산되지는 않는다. 반도체 호황만으로 민생 회복을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더 위험한 것은 착시다. 성장률이 좋다는 이유로 경제 전반이 안정됐다고 판단하는 순간 정책은 느슨해질 수 있다. 반도체가 버텨주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산업의 침체를 과소평가하게 되고 수출 지표 개선에 가려 내수 부진과 자영업 위기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위기는 눈에 보이지만 착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경제 변동성도 커진다. AI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 성장세는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수요 둔화나 공급 과잉, 미·중 기술 갈등 심화, 대만해협과 중동 정세 불안 같은 변수들이 현실화되면 충격은 곧바로 한국 경제로 전이된다. 특정 산업 하나가 경제 전체의 방파제이자 동시에 급소가 되는 구조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지금 한국 경제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반도체의 성공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AI 시대의 수혜가 메모리 반도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데이터센터, 전력기기, 냉각장비, 로봇, 제조 자동화, 통신장비, 보안, 소프트웨어, 소재·부품 산업까지 연결돼야 한다. 반도체가 앞에서 끌고 다른 산업이 뒤따라야 진짜 산업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중소·중견 제조업의 생산성 강화도 시급하다. 한국 산업의 가장 약한 고리는 대기업이 아니라 산업의 ‘허리’다. 스마트공장과 공정 자동화, 에너지 효율 개선, 기술 인력 재교육, 수출 판로 확대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해야 한다. 단순한 보조금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금융과 기술, 인력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지역 산업 생태계도 살펴야 한다. 반도체 클러스터 하나가 전국 산업의 미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조선과 자동차 부품, 철강, 화학, 기계, 뿌리산업 등 지역마다 필요한 전략은 다르다. 지방 산업단지가 쇠퇴하는데 수도권 첨단산업만 성장한다면 국가 경제의 균형은 더욱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인력 문제 역시 심각하다. 반도체 인력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용접공과 정밀가공 기술자, 배터리 공정 엔지니어, AI 기반 제조 소프트웨어 인력까지 산업 전반에서 숙련 인력이 부족하다. 대학 정원 확대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마이스터고와 전문대, 지역대학, 기업 훈련체계가 산업 현장과 직접 연결돼야 한다. 내수 회복도 중요하다. 수출이 경제의 엔진이라면 내수는 국민 생활의 체감 온도다. 성장률이 높아도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면 국민은 경기 회복을 실감하지 못한다. 물가와 금리, 주거비, 가계부채, 자영업 침체가 여전히 소비를 짓누르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좋아도 동네 상권이 무너지면 경제 회복은 공허한 말이 된다. 정부의 메시지도 정직해야 한다. 좋은 지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한계 역시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반도체는 강하지만 제조업 전반은 아직 불안하다. 수출은 회복되고 있지만 내수는 충분히 살아나지 않았다. 대기업은 선전하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여전히 어렵다. 이 현실을 숨기지 않는 것이 정책 신뢰의 출발점이다. 정치권 역시 경제를 정쟁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여당은 성장률만 내세워 자화자찬하고 야당은 체감 경기만 부각해 경제 전체를 부정한다면 둘 다 무책임하다. 산업 현장은 정치 구호보다 전기료와 금리, 인력난, 해외 주문 상황을 더 절박하게 체감하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 반도체 호황은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다. 단기적인 성과 홍보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산업 구조를 재정비하고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데 활용할 것인가. 한 산업의 호황을 국가 경제 전체의 건강으로 착각하면 다음 위기는 더 깊어진다. 반대로 지금 제조업의 허리를 보강하고 산업 생태계를 넓히며 내수와 고용의 약한 고리를 보완한다면 반도체 호황은 진짜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경제의 기본 원리는 단순하다. 한 산업만 강한 경제보다 여러 산업이 함께 버티는 경제가 더 강하다. 대기업 몇 곳만 좋은 경제보다 중소기업과 지역 산업이 함께 살아나는 경제가 오래간다. 성장률 숫자보다 국민이 일자리와 소득으로 체감하는 경제가 진짜 건강한 경제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하나의 산업에 국가 경제의 미래를 모두 걸 수는 없다. 산업의 뿌리가 깊고 생태계가 넓어야 경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반도체 호황에 대한 환호가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 격차와 취약성을 함께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분명 의미 있는 성적표다. 그러나 한 과목 점수가 높다고 학생 전체가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도체가 만든 성장의 빛이 강할수록 그 그늘 또한 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지금 그것을 놓친다면 우리는 호황 속에서 다음 위기의 씨앗을 키우게 될 것이다.
2026-05-06 09: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