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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의 무능한 조율, 국익을 위태롭게 하는 정부의 책임을 묻는다
[경제일보]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떠받치는 두 축은 굳건한 안보와 개방형 통상체제다. 안보가 흔들리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고, 통상 경쟁력을 잃으면 경제의 활력과 국방의 기반마저 약화된다. 그런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위한 검증 과정에서 한미 간 이견이 드러나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도 연내 추진하지 않기로 하면서 정부의 대외 전략에 경고등이 켜졌다. 우연한 정책 차질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사전에 예상할 수 있는 쟁점을 조율하고 이해관계를 설득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안보에서는 동맹과의 조율이, 통상에서는 국내 갈등을 풀어낼 정치적 결단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익을 지켜야 할 정부가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면 그 책임부터 분명히 물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정권의 치적을 장식하는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다. 우리 군이 연합방위체제를 주도할 역량을 확보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한미동맹의 억제력이 전환 이후에도 유지되는지를 엄격하게 검증해야 하는 국가 안보의 핵심 과제다. 전환 시기를 앞당기는 것 자체가 자주국방의 성과는 아니다. 필요한 능력이 부족한데도 일정에 맞춰 서두른다면 자주라는 명분으로 안보 위험을 키우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은 분명하다. 전작권 전환 조건의 충족 여부를 놓고 한미 간 시각차가 있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사전 협의와 검증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우리 군의 핵심 작전 능력은 어느 수준까지 확보됐는지 설명해야 한다. 동맹 간 이견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핵심 조건을 둘러싼 견해차가 남았다면 협의 과정과 판단 근거를 점검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과를 앞세워 검증을 형식화하거나 정치적 일정을 군사적 판단에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 정부는 막연한 자주 구호나 낙관론 뒤에 숨지 말고 객관적인 평가 기준과 단계별 보완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안보 정책의 실패는 사후 책임 추궁만으로 되돌릴 수 없다. CPTPP 가입 신청의 연내 보류는 통상 정책의 전략과 조정 능력을 시험하는 또 다른 고비다. 세계 경제가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의 격랑에 휩싸인 가운데 주요국들은 시장 접근성을 넓히고 자국 기업에 유리한 통상 규범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가입 논의를 미루기만 한다면 역내 경제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언권을 잃고 기업의 경쟁 기회도 제약받을 수 있다. 수출로 성장한 나라가 통상 네트워크 확장에 소극적이라면 경쟁국이 차지한 자리를 나중에 되찾는 데 더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물론 CPTPP 가입에는 농수산업 등 민감 산업의 피해와 시장 개방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따른다. 정부가 공개한 경제적 영향 분석에서도 가입 이후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와 함께 농림수산업의 생산 감소 가능성이 제시됐다. 피해 우려를 무시한 채 가입을 서두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반발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부는 피해 규모를 객관적으로 산출하고 보상과 경쟁력 강화, 산업 전환을 아우르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충돌할수록 정부가 나서 국민을 설득하고 국익과 피해 대책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가입의 편익과 비용을 충분히 설명하지도, 피해 대책을 구체화하지도 못했다면 정책 지연의 책임을 국내 반발에 떠넘길 수 없다. 결정을 미룬다고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택의 비용만 커질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안보와 통상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하는 정부의 조정 능력이다. 군사적 억제력과 경제적 회복력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다. 에너지와 핵심 소재의 공급망, 첨단산업의 해외 시장, 동맹국과의 기술 협력은 모두 경제 안보의 일부다.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 주요 교역국과의 경제 관계를 정교하게 관리하려면 외교·국방·산업·통상 부처가 같은 전략 목표 아래 움직여야 한다. 부처별 이해와 단기 현안에 끌려다니는 방식으로는 복합적인 국제 질서에 대응할 수 없다. 대통령실과 관계 부처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며 결정의 결과에 책임지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제 정부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답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의 군사적 조건과 한미 간 협의 상황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CPTPP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실질적인 통상 전략과 산업 피해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연내 가입 신청을 보류했다면 그 기간에 무엇을 검토하고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정책이 지연되거나 판단이 잘못됐다면 원인을 밝히고 시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책무다. 국회 역시 정쟁에 매몰되지 말고 객관적 검증과 초당적 협력으로 정부를 감시해야 한다. 외교·안보와 통상에는 정권의 임기가 있지만 국익에는 임기가 없다. 자주국방은 동맹을 흔드는 구호가 아니라 스스로 지킬 능력으로 증명해야 하며, 통상 주권은 가입 선언이 아니라 시장을 확보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지키는 성과로 입증해야 한다. 정부가 원칙과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그 대가는 국민의 안전과 기업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국가 전략의 혼선을 불가피한 국제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상황을 예측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국익을 관철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정책을 바로잡고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2026-10-15 11: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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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른 AI·희토류…한국은 어디에 설 것인가
[경제일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오는 24일 워싱턴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국은 아직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이번 주말 만나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과 희토류, 무역·에너지 등 경제안보 현안이 폭넓게 다뤄질 전망이다. 한국에는 남의 나라 정상회담이 아니다. 미중이 협상 테이블에서 다루는 현안 하나하나가 한국의 주력 산업과 연결돼 있어서다. AI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고 희토류와 핵심광물은 배터리·자동차·항공우주·방위산업에 들어간다. 미국과 중국의 합의와 충돌에 따라 한국 기업의 투자와 생산, 공급망 전략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AI는 특히 그렇다. 베선트 장관은 미국이 중국과 AI가 초래할 공동의 위험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미중 AI 경쟁이 첨단 반도체와 기술 수출통제를 넘어 안전과 국제규칙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 AI 산업에서도 안전 규칙을 누가 만들고 집행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이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끌고 있고 AI 가속기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도 한국 기업의 비중이 크다. 미중 기술 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과 생산시설은 단순한 기업 자산을 넘어 경제안보의 자산이 된다.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로이터는 SK하이닉스가 인텔과 미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지난 16일 보도했다. 인텔의 오하이오 공장 일부를 활용하거나 인텔·클라우드 기업 등이 참여하는 합작법인을 만드는 방안이 거론된다. 아직 초기 협의 단계이고 결정된 것은 없다. 하지만 한국 메모리 기업이 처음으로 미국에서 생산할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도체 공급망이 얼마나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에는 한국이 고민해야 할 지점도 있다. 미국의 공급망 현지화와 한국의 이해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시설을 미국에 두는 것이 시장 접근과 공급망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핵심 제조기술의 해외 이전과 국내 산업 생태계 약화 가능성도 함께 살펴야 한다. 기업의 투자 판단을 존중하되 국가 차원에서는 어떤 기술과 생산기반을 국내에 반드시 남겨야 하는지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희토류 문제는 더 절박하다. 중국은 미국이 자국 중심의 핵심광물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주요 핵심광물의 정제 과정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분석한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희토류 정제 비중은 2023년 90% 이상에서 2025년 약 85%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세계 공급망을 좌우할 수준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희토류 원소인 이트륨은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트륨은 반도체와 항공우주, 제트엔진 코팅 등에 쓰이는 전략 물질이다. 중국은 세계 이트륨 공급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고 수출통제를 통해 공급량을 조절해 왔다. 미국 제조업에서도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이트륨 문제 역시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현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한국의 취약점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를 세계에 수출하지만 이를 만드는 핵심광물과 소재 상당 부분은 해외에서 들여온다. 미국이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속도를 높이면 한국 기업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세계 제조업의 거대한 생산기지이자 시장인 중국과의 공급망을 단기간에 끊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을 단순히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문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안보와 직결된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되 핵심 원료와 소재는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열린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도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은 핵심광물과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주요 의제로 다뤘고 70건이 넘는 협정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정부는 단순한 원료 수입을 넘어 탐사와 정제, 소재 가공, 완제품 생산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공급망 다변화는 양해각서 숫자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광물 탐사와 개발이 실제 정제·가공과 국내 기업의 장기 구매로 이어져야 한다. 핵심광물 개발은 투자 회수 기간이 길고 가격 변동성도 큰 만큼 정부가 정책금융과 비축제도 등을 활용해 민간의 위험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은 평상시에는 비용의 문제지만 위기가 닥치면 국가안보의 문제가 된다. AI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 미래 경쟁력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 소프트웨어와 AI 모델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함께 키워야 한다. 미중이 AI의 기술표준과 안전 문제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면 한국도 이미 만들어진 규칙을 받아들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제 AI 거버넌스와 기술표준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미중 경쟁은 이제 관세 몇 퍼센트(%)를 주고받는 무역전쟁을 넘어섰다. 누가 AI의 규칙을 만들고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며 핵심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를 둘러싼 경제안보 경쟁이다. 중국은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AI 생태계를 중심으로 자국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운명을 워싱턴과 베이징의 협상 결과에 맡길 수는 없다. 어느 한쪽을 무조건 선택하는 것도, 양쪽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미루는 것도 해법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을 강요받았을 때 버틸 수 있는 힘을 먼저 만드는 것이다.
2026-09-17 10: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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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파병, 동맹 중요하지만 국익도 계산하라
[경제일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둘러싼 정부의 태도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그동안 신중론을 펴던 정부가 미국의 공개적인 압박 속에 파병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등 군사적 자산의 파견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국가의 군사적 판단이 국제정세와 동맹의 요구에 따라 크게 흔들린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외교·안보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잘못된 선택 못지않게 원칙 없는 정책 변화다. 파병 여부를 결정한다면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국익이라는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부정할 국민은 많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인 상황에서 미국과의 안보협력은 대한민국의 핵심적인 전략자산이다. 그렇다고 동맹국의 요구라면 우리의 군대를 어디든 보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동맹에도 각자의 국익이 있고 각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과 위험에도 차이가 있다. 미국이 자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판단하듯 대한민국 역시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냉정하게 따져야 할 것은 경제적 손익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경제의 핵심 에너지 수송로다. 이곳의 안정과 항행의 자유가 흔들리면 국제유가와 해상운임, 보험료 등이 뛰어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호르무즈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분명 대한민국의 중요한 국익이다. 그러나 해협의 안전을 지키는 것과 군사적 충돌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 군의 파병이 실제로 항행의 안전을 높이는지, 아니면 중동의 군사적 긴장을 키워 유가와 해상보험료를 오히려 끌어올리는지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최악의 경우 한국이 군사적 대립의 한쪽으로 인식되면서 이란의 보복 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원유 수급을 안정시키려던 파병이 오히려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도 간단하지 않다. 한국 기업들은 중동 곳곳에서 건설·플랜트·에너지·물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수십 년간 쌓아온 경제적 관계가 군사적 선택 하나로 흔들릴 가능성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현지 교민과 기업의 안전 역시 정부가 우선적으로 따져야 할 변수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얻는 외교적 이익이 파병에 따른 경제적 위험과 장병의 안전 문제를 상쇄할 만큼 큰지 국민 앞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정말 파병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미국이 무엇을 요구했는지, 우리에게 어떤 외교·안보상의 실익이 있는지, 원유 수송과 에너지 안보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파병에 따른 경제적 비용과 위험은 어느 정도인지 공개해야 한다. 우리 장병의 임무와 교전 상황 발생 시 대응 범위, 교민과 기업 보호 대책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호르무즈 문제를 한미동맹의 충성도 시험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동맹은 일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관계가 아니다. 동맹을 지키는 것과 동맹국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다르다. 오히려 어려운 사안에서 우리의 국익과 국민적 우려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협상하는 것이 성숙한 동맹의 모습이다. 지금 세계는 자국의 경제와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국익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자국의 이익을 철저하게 계산한다. 대한민국만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손익계산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군사적 파병은 명분만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끝까지 따져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에 기여하는 방법이 반드시 우리 군의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외교적 협력과 국제적 해상안전 활동은 물론 원유 수입선 다변화, 비축유 확대, 대체 수송로 확보 등 다양한 수단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군함 한 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전체를 지키는 종합 전략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파병 여부는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할 사안인 만큼 충분한 설명과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정부가 파병 검토의 배경과 실익을 국회에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제 미국의 표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손익계산서를 펼쳐놓고 결정해야 한다. 파병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국민을 설득하고 당당하게 추진하면 된다. 반대로 위험과 비용이 편익보다 크다면 동맹국에도 그 이유를 설명하고 다른 방식의 기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주권국가의 외교다. 호르무즈 파병 논란은 정부 외교의 시험대다. 동맹을 중시하되 동맹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에너지 안보를 지키되 군사적 위험을 무분별하게 떠안아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우리 장병의 생명과 국민의 안전, 국가 경제의 이익보다 우선하는 외교적 명분은 없다. 정부는 더 이상 정치적 유불리에 흔들리지 말고 분명한 원칙과 냉정한 손익계산으로 국민 앞에 서야 한다.
2026-09-07 10: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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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2차 제재 압박, 한국 기업이 또 희생양 돼선 안 된다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을 겨냥한 2차 제재 가능성을 다시 꺼내 들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24일 이란과 거래를 계속하는 해외 기업과 금융기관이 미국 중심의 금융시스템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날 이란의 석유·해운·항공·금·가상자산·기술 분야와 관련된 개인·기업·선박 60곳을 새로 제재했지만, 당장 가장 강력한 2차 제재까지 전면 시행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앞으로다. 미국이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까지 본격적으로 제재하기 시작하면 그 파장은 중동에 그치지 않는다. 달러 결제망과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을 무기로 삼는 2차 제재는 사실상 전 세계 기업에 “이란과 미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한국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안보의 핵심축이다. 북한 핵 문제와 첨단기술, 공급망,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 체제에도 책임 있게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동맹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 기업이 예상하지 못한 손실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재의 목적과 동맹국 기업 보호는 별개의 문제다. 미국의 대이란 압박은 이미 국제 에너지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교역 상대에 대한 제재를 경고한 뒤 국제유가는 크게 출렁였다. 지난 21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94달러를 넘어섰고, 이란산 원유 공급 차질과 호르무즈해협 불안이 계속되면서 시장의 변동성도 커졌다. 한국처럼 원유 대부분을 수입하는 국가는 제재 자체보다 그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이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와 석유화학뿐 아니라 항공·해운·물류·제조업 전반의 비용이 올라간다. 전기·가스요금과 소비자물가에도 시차를 두고 영향을 준다. 대이란 제재가 강화될수록 한국경제가 감당해야 할 간접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해운업도 위험하다. 이란은 최근 호르무즈해협 통항 문제를 둘러싸고 외국 선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24일에는 통항 규칙 위반을 이유로 45척의 선박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벌금과 억류, 화물 압류 가능성을 경고했다. 명단에는 한국 해운사와 관련된 선박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2차 제재와 이란의 맞대응이 동시에 강화되면 기업은 양쪽 위험을 모두 떠안는다. 미국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이란과 거래를 끊더라도 이미 체결한 계약과 운송 일정에서 손실이 생길 수 있다. 반대로 기존 계약을 이행하다 미국 금융·결제망에서 제재를 받는다면 피해는 훨씬 커진다. 정부가 지금부터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첫째, 미국과의 사전 협상을 통해 한국 기업에 필요한 예외와 유예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과거 대이란 제재에서도 미국은 동맹국이나 특정 거래에 한시적 예외를 인정한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이미 체결된 계약이나 인도적 물품, 국제 에너지시장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거래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유예기간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에게 어느 날 갑자기 거래를 끊으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계약 정리와 결제 회수, 화물 운송을 마칠 시간을 줘야 한다. 정부가 미국과 협상해야 할 핵심도 바로 이런 현실적인 피해 방지 장치다. 둘째, 기업에 명확한 제재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2차 제재의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어떤 거래가 제재 대상인지, 어느 시점부터 적용되는지, 이란과 직접 거래하지 않고 제3국을 통해 거래하는 경우 어디까지 문제가 되는지 기업이 정확히 알기 어렵다. 특히 중소기업은 미국 제재 규정을 자체적으로 분석하기 어렵다. 정부와 금융당국, 무역기관이 공동으로 기업별 노출도를 점검하고 제재 대상 거래와 허용 거래를 신속하게 안내해야 한다. 제재를 몰라서 위반하는 기업이 나오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셋째, 금융권의 과도한 위축도 피해야 할 상황이다. 제재가 시작되면 금융기관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실제 제재 대상이 아닌 거래까지 결제를 거부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른바 ‘과잉 준수’다. 기업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거래임에도 돈을 받지 못하거나 송금이 막힐 수 있다. 정부는 미국과 협의해 제재 대상과 예외 거래를 명확히 하고 국내 은행에도 일관된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이 제재보다 금융기관의 지나친 위험 회피 때문에 먼저 피해를 보는 일은 방지하는 게 정부의 책무다. 넷째, 에너지와 물류 공급망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장기화하면 유가와 해상운임 상승은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 미국의 봉쇄와 제재 강화로 이란산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했고 중국 정유사들도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역시 원유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전략비축유 운용 계획을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불안해지는 상황에 대비해 대체 운송 경로와 선박 보험, 해운기업 지원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한미 간 협상의 원칙이 중요하다. 미국은 자국의 안보와 외교 목표를 위해 제재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도 자국 기업과 국민의 경제적 이익을 지킬 책임이 있다. 동맹국의 정책에 협력하는 것과 우리의 경제적 손실을 아무 조건 없이 감수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미국 역시 동맹의 부담을 일방적으로 전가해서는 안 된다.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동맹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동맹국 기업에 충분한 설명과 준비기간 없이 제재를 확대하면 미국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만 떨어질 수 있다. 더구나 이번 제재에서 미국이 이란산 원유 거래에 큰 역할을 하는 중국의 주요 금융기관에는 아직 가장 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의 충돌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도 미국에 분명히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제재가 필요하다면 기준은 일관돼야 한다. 경제 규모나 협상력에 따라 어떤 국가는 유예하고 동맹국 기업에는 더 엄격한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라면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미국이 구체적인 제재안을 발표한 뒤에야 대책회의를 여는 사후 대응이다. 제재 대상과 시점이 확정되기 전에 산업별 노출도를 파악하고 미국 재무부와 협의해야 한다. 에너지·해운·금융·건설·수출기업의 기존 계약을 전수 점검하고 피해 가능성을 미리 계산해야 한다. 기업에도 대비가 필요하다. 제재 위험이 높은 거래는 계약 단계부터 미국 제재 발동 시 책임과 손실을 어떻게 나눌지 명확히 해야 한다. 결제통화와 거래은행, 선박과 보험사까지 제재 위험을 사전에 점검하는 시스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될수록 한국에는 외교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는다. 안보동맹을 지키면서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고, 미국의 제재를 준수하면서 한국 기업의 피해도 줄여야 한다. 어느 한쪽만 강조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외경제 환경이 불안할수록 외교의 실력은 선언이 아니라 손실을 얼마나 줄였는지에서 드러난다. 미국의 2차 제재가 현실화한다면 한국도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떠안게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미국의 최종 결정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예외와 유예, 결제 안전망과 에너지 공급망 대책을 지금부터 협상해야 한다. 동맹은 국익을 포기하는 관계가 아니다. 공동의 안보 목표를 지키면서 서로의 정당한 경제적 이해를 조정하는 관계다. 대이란 제재에서도 그 원칙은 달라질 수 없다. 제재에는 협력하되 한국 기업의 피해는 최소화하는 선제적 외교전이 지금 필요하다.
2026-08-25 10: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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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훈련 축소 압박…동맹을 거래 대상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실드(UFS)를 대폭 축소하라고 미 국방부에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과 한국이 미국의 대이란 군사행동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올해 UFS는 지난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며 한국군 약 1만8000명이 참가한다. 한미 군 당국은 북한의 드론과 사이버 공격,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등 변화한 위협까지 훈련에 반영하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의 규모와 방식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와 북한의 군사적 위협, 한반도 정세에 따라 훈련을 확대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외교적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일정 부분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다만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군사적 필요성과 한반도 안보여야 한다. 훈련 비용이 많이 든다거나 한국이 제3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군사행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합훈련을 줄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동맹의 핵심 수단인 군사훈련이 거래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면 동맹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특히 한국이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참여했는지를 한미 연합훈련 문제와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미동맹의 근간은 한반도 방위다. 한국이 중동에서 어떤 군사적 역할을 할지는 우리의 국익과 법적 절차, 군사적 능력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동맹국이라고 해서 미국이 벌이는 모든 군사행동에 자동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역시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특정 지역의 군사행동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반도 방위태세와 관련된 훈련을 축소한다면 동맹을 공동 안보체제가 아니라 비용과 보상의 관계로 보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더구나 지금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줄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핵·미사일 능력은 계속 고도화되고 있고 전쟁 양상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무인기와 사이버 공격, GPS 교란, 정밀타격 같은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려면 한미 양국군이 실제 상황을 가정한 지휘·통제와 연합작전 능력을 반복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올해 UFS가 이런 현대적 위협을 훈련에 포함한 이유이기도 하다. 연합훈련은 단순히 병력을 모아 움직이는 행사가 아니다. 전쟁이 발생했을 때 한국군과 미군이 같은 작전계획과 지휘체계 아래 얼마나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훈련이 줄어들면 그만큼 실전 대비 능력을 검증할 기회도 줄어든다. 물론 훈련의 규모가 크다고 억지력이 자동으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 모의훈련과 지휘소훈련, 야외기동훈련을 적절히 조합하고 훈련의 질을 높이는 쪽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AI와 무인체계, 사이버전처럼 달라진 전쟁 방식을 얼마나 정교하게 반영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때문에 훈련을 줄일지 확대할지도 군 당국의 전문적인 판단이 우선돼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첫 정상회담을 한 뒤에도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거나 축소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외교적 메시지가 일정 부분 담겨 있을 가능성은 있다. 북미 대화 재개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한반도 긴장을 낮추고 북한의 비핵화와 군사적 위협 감소를 이끌 수 있다면 외교적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군사적 억지력의 목적도 결국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있다. 다만 대화를 위해 훈련을 조정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북한의 조치도 있어야 한다.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계속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한미가 먼저 연합훈련을 축소하는 방식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긴장 완화를 만들기 어렵다. 외교적 유연성이 실질적인 안보 성과로 이어지려면 북한의 상응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이 북미 간 협상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이다. 한반도 안보의 직접 당사자는 대한민국이다. 미국과 북한이 관계 개선을 논의하면서 한미 연합훈련이나 주한미군, 대북 제재 문제를 협상 카드로 다룬다면 한국의 국익과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해 훈련 조정의 범위와 조건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간 개인적 관계나 미국의 일방적 판단에 따라 한미 안보정책이 좌우되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동맹은 정상 간 친분이 아니라 제도와 합의, 공동의 이해관계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의 국방 역량을 더 강화할 필요도 있다. 한미동맹은 우리 안보의 핵심축이지만 미국의 정책이 언제나 한국의 이해와 일치한다고 전제해서는 안 된다. 미국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방위비나 주한미군, 연합훈련 문제가 반복적으로 흔들린다면 한국 스스로 대응 능력을 높이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국군의 미사일방어와 정밀타격, 지휘·정보·사이버 역량을 높이는 자강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동맹이 강할수록 자강도 강해야 한다.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는 국가가 동맹에만 의존하면 협상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미 양국은 오랜 기간 공동의 희생과 신뢰를 통해 동맹을 발전시켜 왔다. 그런 동맹을 단기적인 비용 문제나 제3국 군사행동 참여 여부와 연계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미국 역시 한국이 아시아 안보와 공급망, 경제안보에서 가진 전략적 가치를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도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는 것도, 반미 정서로 맞서는 것도 답이 아니다. 어떤 훈련이 필요한지, 어떤 수준의 연합태세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군사적 근거와 국익을 중심으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한미훈련의 규모와 방식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판단 기준은 북한의 위협과 한반도 안보환경, 양국 군의 대비태세여야 한다. 방위비나 제3국 군사행동 참여 여부가 그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지시는 한미동맹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동맹을 단기적인 비용과 보상의 거래로 볼 것인가, 장기적인 공동 안보의 약속으로 지킬 것인가의 문제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되 우리의 안보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동맹은 조정할 수 있어도 신뢰까지 거래해서는 안 된다.
2026-08-18 11: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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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짜리 혁명'의 진실…중국 DUV, ASML 성벽에 첫 균열
[경제일보] 중국이 올해 생산한다는 액침형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는 5대다. 네덜란드 ASML이 올해 출하할 것으로 예상되는 액침형 DUV 장비 약 130대와 비교하면 4%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첨단 반도체 공장 한 곳에 필요한 장비 수를 감안하면 생산라인을 바꾸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그런데 세계 증시는 이 5대에 크게 흔들렸다. 중국이 자체 개발한 액침형 DUV 장비 생산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오자 ASML 주가는 장중 8% 넘게 떨어졌다가 5.8% 하락 마감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각각 13%, 14% 넘게 급락했다.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CXMT)의 증시 상장과 AI 산업의 투자 수익성 논란, 외국인 매도와 레버리지 청산이 겹쳤지만 중국산 DUV 소식이 불안을 증폭한 것은 분명하다. 시장의 반응만 보면 중국이 당장 ASML을 대체하고 한국 메모리 산업을 추월할 것처럼 보인다. 이는 과장이다. 반대로 장비 5대를 만들어낸 일을 선전용 행사로만 치부하는 것도 위험하다. 중국산 DUV의 현재 사업 가치는 작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산업의 방향은 가볍지 않다. ◆ 노광장비 한 대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문제 노광은 반도체 회로가 그려진 마스크에 빛을 쏘아 웨이퍼 위 감광액에 회로를 새기는 공정이다. 반도체 제조에서 사진 인화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요구되는 정밀도는 전혀 다르다.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분의 1에 해당하는 회로를 웨이퍼 위 수십 개 층에 반복해 정확히 포개야 한다. DUV는 193나노미터 파장의 불화아르곤 레이저를 사용한다. 액침형 DUV는 렌즈와 웨이퍼 사이에 초순수를 채워 빛의 굴절률과 렌즈의 개구수를 높인다. 같은 파장의 빛으로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있도록 만든 기술이다. ASML의 최신 액침형 DUV 장비는 시간당 300장 이상의 웨이퍼를 처리하면서 1나노미터 이하 수준의 오버레이 정밀도를 목표로 한다. 오버레이는 여러 차례 노광한 회로가 얼마나 정확하게 겹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해상도가 좋아도 위아래 회로가 어긋나면 칩은 작동하지 않는다. 노광장비의 경쟁력은 ‘몇 나노를 찍었느냐’만으로 판정할 수 없다. 시간당 웨이퍼 처리량, 장비 가동률, 오버레이 오차, 초점 제어, 결함 밀도, 장비 간 편차, 유지보수 시간과 소모품 수명까지 모두 맞아야 한다. 연구실에서 회로 하나를 그리는 것과 매일 수천 장의 웨이퍼를 같은 품질로 생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ASML의 진입장벽도 장비 설계도 한 장에 있지 않다. 독일 자이스가 공급하는 초정밀 광학계, 레이저 광원과 웨이퍼 스테이지, 계측 장비, 보정 소프트웨어, 수십 년간 축적한 공정 데이터와 글로벌 유지보수망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있다. 장비가 고장 났을 때 몇 시간 안에 복구할 수 있는 현장 인력과 부품 공급망도 경쟁력이다. ASML의 시장 지위는 기계 한 대가 아니라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만든 결과다. ◆ 863계획에서 아이성나까지 이어진 20년 중국의 노광장비 개발은 최근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니다. 중국 정부는 2000년대 초 국가 첨단기술 개발계획인 ‘863계획’을 통해 노광장비 국산화에 착수했다. 2002년 설립된 상하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MEE)는 건식 DUV 장비를 개발한 뒤 액침형 장비로 영역을 넓혀왔다. 초기 중국 장비는 90나노급 공정에 머물렀다. 해상도를 높이더라도 처리량과 오버레이, 장시간 안정성이 부족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주력 생산라인에 투입하기 어려웠다. 중국은 이후 광학, 정밀 스테이지, 광원, 계측과 제어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기업과 연구기관을 나눠 육성했다. 이번에 주목받은 아이성나는 2023년 상하이에 설립된 국유자본 지원 기업으로 알려졌다. 설립된 지 2∼3년에 불과한 회사가 갑자기 액침형 DUV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SMEE와 별도 장비업체, 연구기관에 축적된 인력과 기술을 결집한 프로젝트에 가깝다. 기업의 나이는 짧아도 기술 계보는 20년 이상 이어진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아이성나는 올해 5대, 2027년 20대의 액침형 DUV 장비를 생산할 계획이다. 초기 공급 대상으로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와 화훙반도체, D램 업체 CXMT가 거론된다. 다만 장비의 공식 성능표와 고객사 양산 인증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생산을 시작했다’는 표현과 ‘상업적 대량생산에 사용할 수 있다’는 평가는 구분해야 한다. ◆ 28나노 장비를 7나노 장비로 부를 수 없는 이유 중국 장비의 목표는 단일 노광 기준 28나노급으로 알려졌다. 28나노는 액침형 DUV가 한 번의 노광으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정 구간이다. DUV로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리는 방법도 있다. 한 장의 복잡한 회로를 두 개나 네 개의 단순한 패턴으로 나눈 뒤 노광과 식각을 반복하는 다중 패터닝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14나노와 10나노 이하 회로도 구현할 수 있다. 중국이 수입산 DUV를 활용해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한 것도 이러한 공정 기술과 관련돼 있다. 그러나 28나노 장비로 7나노급 회로를 구현할 수 있다는 설명과 7나노 전용 장비를 확보했다는 말은 같지 않다. 노광 횟수가 늘면 마스크와 식각·증착 공정도 증가한다. 생산시간이 길어지고 장비 사용량과 전력, 소재 비용이 커진다. 매번 회로를 정밀하게 포개야 하므로 오버레이 오차가 누적되고 수율도 떨어질 수 있다. 반도체 생산비는 노광장비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 장의 웨이퍼가 생산라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양품 칩의 비율이 더 중요하다. 동일한 7나노급 칩을 만들더라도 EUV를 활용한 공정과 DUV 다중 패터닝 공정의 원가와 생산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중국산 DUV가 28나노 회로를 한 번 찍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 최첨단 반도체 양산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장비 출하 뒤에 기다리는 ‘죽음의 계곡’ 새 장비가 반도체 공장에 들어가면 설치 직후 생산에 투입되지 않는다. 우선 장비가 제시된 해상도와 오버레이 성능을 반복해 구현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다른 장비에서 생산한 웨이퍼와 결과가 일치하는지도 검증한다. 특정 장비만 다른 결과를 내면 전체 공정을 따로 설계해야 해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결함 검증은 더 까다롭다. 미세한 입자나 온도 변화, 진동, 렌즈 왜곡과 광원 불안정이 웨이퍼 수율에 영향을 미친다. 하루나 일주일 동안 정상 작동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개월 이상 연속 가동하면서 성능과 부품 수명, 고장 빈도와 복구 시간을 입증해야 한다. 고객사의 공정 레시피와 연결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노광장비는 식각·증착·세정·검사 장비와 맞물려 작동한다. 노광 결과가 달라지면 전후 공정의 조건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장비 인증에는 제조사뿐 아니라 팹의 공정 엔지니어, 소재 업체, 마스크와 계측 기업이 함께 참여한다. 중국산 장비가 넘어야 할 벽은 최초의 5대를 조립하는 일이 아니라 이 장비를 고객 생산라인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가동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5대는 연구·시험 장비에 머문다. 반대로 초기 장비에서 발생한 오류와 수율 데이터를 축적해 20대, 50대로 개선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 왜 하필 5대인가 중국이 올해 5대만 생산하는 이유는 수요가 없어서라기보다 공급망과 조립 역량이 아직 제한됐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노광장비에는 수만 개의 정밀 부품이 들어간다. 렌즈와 광원, 스테이지, 모터, 센서, 진동 제어장치와 정밀 계측 부품 가운데 하나만 공급이 늦어져도 완제품을 만들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산 장비에는 아직 일본 등 해외에서 들여오는 일부 핵심 부품이 사용되고 있으며 중국 내 부품업체의 납기와 품질 문제도 생산 확대를 제약하고 있다. ‘국산 장비’라는 표현이 모든 부품의 100% 중국산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장비는 부품만 있다고 대량 조립할 수도 없다. 완성된 장비마다 광학계와 스테이지를 정밀하게 보정해야 한다. 생산량을 늘릴수록 장비 간 편차를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이 단계에서 제조 노하우와 숙련 인력의 차이가 드러난다. ASML이 장기간에 걸쳐 공급망과 생산설비를 확충하고도 연간 액침형 DUV 출하량을 100여 대 수준으로 관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의 목표가 2026년 5대에서 2027년 20대로 늘어난다는 것은 생산능력이 네 배로 커진다는 의미이지만 ASML과의 규모 차이는 여전히 크다. ◆ ‘낡은 28나노’가 중국에는 중요한 까닭 28나노를 최첨단 기술과 비교해 낡은 공정으로 보는 시각도 바로잡아야 한다.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와 AI 가속기는 3나노·5나노 공정에서 생산되지만 자동차와 산업기기, 통신장비, 가전에는 28나노 이상 성숙 공정 반도체가 대량으로 사용된다. 전력관리반도체, 디스플레이 구동칩, 마이크로컨트롤러, 네트워크칩과 각종 센서는 최신 공정을 사용할 필요가 없거나 최신 공정을 적용했을 때 오히려 비용이 증가한다. 세계 반도체 수요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성숙 공정에서 발생한다. 중국이 28나노급 장비를 안정적으로 양산하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곳도 이 시장이다. 중국 팹은 수입 장비의 추가 공급과 유지보수가 제한되더라도 국내 장비로 생산설비를 늘릴 수 있다. 중국 정부와 국유기업은 성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국산 장비를 의무적으로 구매해 초기 시장을 만들어줄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을 장비가 중국 내수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다. 장비업체는 확보한 매출과 생산 데이터를 다시 연구개발에 투입할 수 있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이 기술 격차를 줄이는 시험장이 되는 구조다. ◆ 한국을 먼저 압박할 곳은 HBM이 아닌 범용 D램 중국산 DUV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사업을 단기간에 위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HBM은 미세공정에서 D램 셀을 만드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개의 D램 다이를 얇게 가공해 수직으로 쌓고 TSV로 연결해야 한다. 적층·접합, 발열 제어와 신호 무결성, 패키징 수율, 고객사의 GPU·가속기 인증이 모두 필요하다. HBM4 이후에는 로직 베이스 다이와 파운드리 공정, 첨단 패키징 기술의 결합이 더욱 중요해진다. DUV 한 종류를 확보했다고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미국의 대중국 HBM 수출통제까지 고려하면 중국이 한국 기업을 곧바로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한국이 주의 깊게 볼 곳은 일반 D램이다. CXMT는 이미 세계 D램 출하량의 약 8%를 차지하는 4위 업체로 성장했다. 아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기술 및 수익성 격차가 있지만 DDR4와 DDR5, 모바일용 LPDDR 시장에서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중국산 DUV가 양산 인증을 통과하면 CXMT는 수입 장비에 대한 불확실성을 낮추고 증설을 지속할 수 있다. 중국 스마트폰과 PC, 서버업체가 자국산 메모리 채택을 늘리면 CXMT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중국 내수만으로도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 기업에 나타날 첫 충격은 시장점유율 상실보다 가격 하락일 가능성이 높다. CXMT가 범용 D램 공급을 늘리면 국제 가격의 하단이 낮아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에서 높은 수익을 거두더라도 일반 D램의 수익성이 악화하면 전체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중국산 DUV는 HBM 왕좌를 빼앗는 무기라기보다 범용 메모리 시장의 가격 질서를 바꾸는 기반시설로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미국은 2022년 이후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을 제한하기 위해 노광과 식각·증착·계측 장비, 설계 소프트웨어와 첨단 AI 반도체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네덜란드와 일본도 일부 장비 수출 제한에 동참했다. 2024년에는 HBM과 장비 생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까지 통제 범위가 확대됐다. 수출통제는 효과가 있었다. 중국은 최첨단 장비를 제때 확보하기 어려워졌고 기존 수입 장비의 유지보수와 부품 공급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중국이 EUV를 활용한 대규모 첨단공정을 구축하는 시점도 늦어졌다. 하지만 통제에는 반대 방향의 힘도 작용한다. 해외 장비를 살 수 없게 되면 중국 팹은 성능이 부족해도 국산 장비를 시험해야 한다. 정부는 투자 실패를 감수하면서 자금을 공급하고, 고객사는 초기 제품의 결함을 함께 고친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선택받기 어려운 장비가 보호된 시장 안에서 성장할 수 있다. 수출통제가 중국의 개발 비용과 시간을 늘릴 수는 있어도 기술 개발 의지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 오히려 노광장비 국산화를 경제성의 문제가 아닌 국가안보 과제로 바꿨다. 중국 기업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도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 미국과 동맹국도 통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우위를 지킬 수 없다. 중국의 기술 진전을 늦추는 동안 차세대 기술과 공급망, 고객 생태계의 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 통제가 시간을 벌어주는 정책이라면 혁신은 그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정책이다. ◆ 한국 반도체주 급락, 공포와 현실을 구분해야 중국산 DUV 5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를 하루아침에 10% 이상 떨어뜨릴 만큼 직접적인 실적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올해와 내년 생산량만 놓고 보면 한국 반도체 공장의 생산능력이나 HBM 수주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지난 28일 주가 급락은 여러 불안이 한꺼번에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비해 빅테크 기업의 수익 창출이 더디다는 우려, CXMT의 자금 조달과 증설 가능성, 중국 장비 국산화, 외국인 대규모 매도와 레버리지 포지션 청산이 겹쳤다. 그럼에도 시장의 과민 반응에는 읽어야 할 메시지가 있다. 투자자들은 장비 5대의 매출 효과가 아니라 ASML 독점과 한국 메모리 지배력이 영구적이지 않을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했다. 지금까지 거의 0으로 보던 중국 장비의 성공 가능성을 아주 낮은 확률이나마 계산에 넣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급락을 전적으로 비이성적 공포라고 단정하는 것도, 중국이 곧 한국을 추월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단기 주가는 과도하게 움직였을 수 있지만 중국 공급망 자립이라는 장기 변수가 현실로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2026-07-29 16: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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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WAIC, 오픈소스·국산칩·로봇 총출동…중국식 AI 질서 선언
[경제일보]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2026이 20일 막을 내렸다. 올해 행사는 인공지능(AI) 신제품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넘어 미국의 기술 통제에 맞서 중국이 구축하려는 독자 AI 생태계와 국제질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됐다. 지난 17일부터 나흘간 열린 이번 대회에는 1100여개 기업과 국내외 인사 1400여명이 참여했다. 전시 면적은 처음으로 10만㎡를 넘어섰고 3000여개 제품 가운데 300개 이상이 세계 최초 공개 제품으로 소개됐다. 140여개 포럼도 상하이 엑스포센터와 장장, 쉬후이 서안 등에서 열렸다. 핵심 키워드는 △오픈소스 AI △국산 AI 반도체 △휴머노이드 로봇 △글로벌 AI 거버넌스였다. AI 모델과 반도체, 클라우드, 로봇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해 미국 주도의 AI 생태계와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행사 전반에 깔렸다. ◆ 시진핑 첫 참석…29개국 묶은 AI 국제기구 출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처음으로 WAIC 개막식에 직접 참석했다. 시 주석은 “AI 발전은 어느 한 국가의 독주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함께 연주하는 교향곡이어야 한다”며 특정 국가가 기술과 규칙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안보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해 다른 나라의 기술 접근을 제한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첨단 AI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제한해 온 미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행사 개막 전날 29개 창립 회원국이 참여한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 설립 협정도 체결했다. 러시아와 브라질, 파키스탄,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이 참여했으며 본부는 상하이에 들어선다. WAICO는 AI 개발과 안전, 국제협력을 다루는 정부 간 국제기구를 표방한다. 미국이 동맹국을 중심으로 AI 반도체와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는 데 맞서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의 참여와 기술 접근권을 앞세워 별도의 협력망을 구축한 셈이다. 시 주석은 향후 5년간 개발도상국에 5000명의 AI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중국이 개발한 AI 기상 조기경보 시스템을 30개국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아프리카연합(AU), 브릭스 등과도 AI 협력센터를 확대한다. 로이터통신은 이를 중국이 오픈소스 기술과 개발도상국 지원을 앞세워 미국의 AI 규칙 제정 영향력에 도전한 것으로 평가했다. ◆ 화웨이·문샷AI가 보여준 ‘기술 자립’ 산업 전시의 중심에는 화웨이가 있었다. 화웨이는 자체 어센드 AI 프로세서 1024개를 고속으로 연결한 ‘Atlas 950 SuperPoD’를 처음으로 오프라인 전시했다. 회사 측은 이 시스템이 FP8 연산 기준 1엑사플롭스(EFLOPS)의 성능과 256TB의 통합 메모리 주소 공간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단일 칩 성능에서 엔비디아를 따라잡기 어렵다면 다수의 국산 칩을 고속 연결해 전체 시스템 성능을 높이겠다는 접근이다. 미국의 수출 규제로 최신 엔비디아 제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중국이 자체 AI 연산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다만 화웨이가 제시한 수치는 회사 측 기준이다. 실제 AI 모델 학습·추론 성능과 전력 소비, 소프트웨어 호환성은 동일한 조건에서 엔비디아 시스템과 비교 검증할 필요가 있다. 칩뿐 아니라 개발자 생태계와 소프트웨어를 갖춘 엔비디아의 쿠다(CUDA) 장벽을 넘는 것도 과제다. 중국 AI 스타트업 문샷AI는 오픈소스 모델 ‘Kimi K3’를 공개했다. 회사는 Kimi K3가 2조8000억개의 매개변수를 갖춘 세계 최대 규모의 오픈소스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다만 매개변수 규모가 실제 추론 능력이나 비용 효율을 직접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오픈소스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개발자와 이용자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딥시크에 이어 문샷AI와 즈푸AI 등이 모델을 공개하면서 가격에 민감하고 자체 구축 수요가 큰 개발도상국·기업 시장을 중국 생태계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 로봇은 전시품에서 생산품으로 휴머노이드 로봇도 행사장을 채웠다. 제조와 물류, 안내, 의료 서비스를 겨냥한 로봇과 이를 제어하는 피지컬 AI 모델이 대거 전시됐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올해 자국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량이 1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AI 모델의 두뇌뿐 아니라 모터와 감속기, 센서, 배터리 등 로봇 부품 공급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제조업 현장에서 로봇을 투입하고 데이터를 다시 학습에 활용하는 순환 구조도 구축하려 한다. 그러나 생산 능력과 실제 수요는 구분해야 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은 1만3000여대 수준이었다. 올해 중국의 10만대 생산 전망이 현실화하려면 기술 시연을 넘어 반복 작업의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 유지보수 체계를 입증해야 한다. ◆ 중국의 ‘개방’ 전략, 기술 영향력 확대 카드 올해 WAIC가 보여준 중국의 전략은 기술 자립과 국제 확산이라는 두 갈래로 요약된다. 내부적으로는 국산 반도체와 AI 모델, 로봇 공급망을 연결하고 외부적으로는 오픈소스와 교육 지원을 앞세워 중국 기술을 글로벌 사우스의 표준으로 확산하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의 AI 굴기가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와 고성능 메모리, 대규모 모델 학습에 필요한 전력·연산 인프라에서는 미국과 동맹국 기술에 대한 의존이 남아 있다. 중국 AI 모델의 학습 데이터와 지식재산권, 검열·보안 문제도 글로벌 확산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한국에도 시사점은 분명하다. 중국은 AI 모델과 반도체, 클라우드, 로봇, 국제협력을 하나의 정책으로 묶고 있다. 한국도 반도체와 제조 역량을 개별 기업의 강점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국산 모델과 클라우드, AI 서비스로 연결해야 한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큼 실제 시장에서 반복 사용되고 해외로 확산할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 중요해졌다. 상하이 WAIC 2026은 AI 경쟁이 모델 성능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반도체를 누가 공급하고 인프라를 누가 운영하며, 개발자를 어느 생태계로 끌어들이고 국제 규칙을 누가 설계하느냐의 경쟁이다. 중국은 이번 대회를 통해 더 이상 추격자에 머물지 않고 미국과 다른 AI 질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2026-07-20 1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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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상하이 WAIC서 'AI 기술자립·글로벌 질서' 동시 선언
[경제일보] 중국이 상하이 세계인공지능대회(WAIC)를 무대로 인공지능(AI) 기술 자립 성과와 글로벌 AI 질서 주도 의지를 동시에 드러냈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에 맞서 자체 칩과 오픈소스 모델, 휴머노이드 로봇을 전면에 배치하는 한편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을 끌어안는 별도의 국제협력 체계 구축에도 나섰다. 19일 중국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능 파트너, 함께 만드는 미래’를 주제로 한 ‘2026 WAIC 및 AI 글로벌 거버넌스 고위급 회의’가 지난 17일 상하이에서 개막해 20일까지 이어진다. 행사는 상하이 엑스포와 장장, 시안(웨스트번드) 등 3개 권역에서 진행된다. 전시 면적은 처음으로 10만㎡를 넘어섰으며 1100여개 기업이 3000여개 기술과 제품을 출품했다. 이 가운데 300여개 제품이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포럼은 140여개, 해외 참석 인사는 1400여명 규모다. ◆시진핑 “AI는 공공재”…기술 봉쇄에 정면 대응 이번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WAIC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개막식에 직접 참석했다는 점이다. 시 주석은 기조연설에서 AI가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면서도 국가안보를 이유로 AI와 첨단기술의 교류를 제한하거나 특정 국가가 기술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대중 반도체·AI 수출통제와 기술 동맹 확대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오픈소스 AI를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공공재로 규정하고 기술 격차로 인해 새로운 불평등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향후 5년간 개발도상국 관계자 5000명에게 AI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아세안과 아프리카연합, 아랍연맹, 브릭스 등과 국제 AI 응용 협력센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AI 기술과 인프라가 부족한 글로벌 사우스를 지원해 미국 중심의 기술 질서와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제도적 기반도 마련됐다. 개막 전날인 16일 중국 주도로 추진된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 설립 협정에 러시아와 브라질,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29개국이 서명했다. WAICO는 상하이에 본부를 두고 AI 기술 협력과 역량 강화, 국제 규범 논의를 추진하는 독립적인 정부 간 기구를 지향한다. 중국이 AI 규칙과 표준을 논의하는 상설 다자기구를 출범시킴으로써 미국 주도의 기술·공급망 연대에 대응하는 별도의 축을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웨이 ‘슈퍼노드’ 첫 공개…칩 한계, 시스템으로 돌파 산업 전시장에서는 중국의 ‘AI 자립’ 전략이 구체적인 제품으로 나타났다.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어센드 AI 가속기를 기반으로 만든 대규모 AI 컴퓨팅 시스템 ‘아틀라스 950 슈퍼포드’를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했다. 수천개의 어센드 프로세서를 고속 네트워크로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컴퓨팅 자원처럼 작동하도록 설계한 장비다. 미국의 수출통제로 엔비디아의 최첨단 칩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일 칩의 성능 격차를 대규모 클러스터와 네트워크 기술로 보완하려는 중국식 해법이다. 화웨이는 이를 통해 대규모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연산 능력을 자체 생태계 안에서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중국 서버 기업 수곤도 중국산 가속기 10만개를 연결한 AI 슈퍼클러스터 ‘수곤 8000’을 전시했다. 화웨이뿐 아니라 서버와 네트워크, 냉각장치, 데이터센터 운영 기술까지 중국산 공급망으로 묶으려는 시도가 두드러졌다. 거대언어모델 경쟁도 한층 격화됐다. 중국 AI 스타트업 문샷AI는 총 2조8000억개의 매개변수를 갖춘 오픈웨이트 모델 ‘키미 K3’를 공개했다. 회사 측은 세계 최대 규모의 공개형 AI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키미 K3는 미국 빅테크의 폐쇄형 모델과 달리 개발자가 모델 구조와 가중치를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미국의 연산장비 규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중국 기업들이 대규모 모델 개발과 오픈소스 생태계 확장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휴머노이드와 자율주행, AI 에이전트도 행사장의 주요 축을 이뤘다. 유니트리를 비롯한 중국 로봇 기업들은 보행과 물체 운반, 작업 협업이 가능한 휴머노이드를 선보였다. 중국 당국은 올해 휴머노이드 로봇 연간 생산량이 1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 중소기업 8곳 참가…“직접 보고 경쟁력 점검해야” 한국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창업 지원기관인 글로벌혁신센터(KIC 중국)가 전시 부스를 마련했으며 국내 중소기업 8곳이 참가했다. 김종문 KIC 중국 센터장은 18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들이 WAIC를 비롯한 중국의 주요 기술 전시회에 직접 와서 상황을 봐야 한다”며 “세계와 중국 시장에서 자사의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중국의 빠른 제품 개발과 공급망 경쟁력에도 주목했다. 그는 “시제품을 빠르고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 테스트하려면 중국 공급망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의 현재 개발 속도로는 중국 기업들의 속도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 전시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연구개발 초기 단계의 기술부터 실제 상용 제품까지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기업 간 협업 사례도 대거 제시했다는 평가다. 과거 중국 기업들이 핵심 기술과 제품 사양 공개에 소극적이었다면 최근에는 기술력을 외부에 알리고 생태계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 시장은 기회인 동시에 강력한 경쟁 공간이다. 제조 공급망과 방대한 내수시장, 빠른 실증 환경을 활용할 수 있지만 가격 경쟁과 제품 출시 속도, 현지 기업 간 협업 능력에서 밀릴 경우 한국 기업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중국의 핵심 AI 산업 규모는 지난해 1조2000억위안을 넘어섰으며 관련 기업은 6200개 이상으로 집계됐다. 중국 대형 제조기업의 30% 이상이 AI를 도입했고 주요 스마트공장은 공정의 70% 이상에 AI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중국 측은 추산하고 있다. ◆‘기술 전시회’ 넘어 미·중 AI 질서 경쟁 무대로 이번 WAIC는 단순한 산업 전시회를 넘어 미·중 AI 패권 경쟁의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안전한 공급망을 중심으로 동맹국을 묶는 전략을 추진한다면 중국은 오픈소스 모델과 저비용 AI 서비스, 개발도상국 역량 지원을 앞세워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중국은 최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여전히 미국에 뒤처져 있지만 대규모 칩 연결 기술과 데이터센터, 응용서비스, 로봇 등 ‘풀스택’ 생태계를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개별 제품의 최고 성능보다 자체 공급망 안에서 칩과 모델, 소프트웨어, 로봇을 연결하는 데 힘을 싣는 모습이다. 다만 WAICO가 실제 국제규범을 만드는 영향력 있는 기구로 자리 잡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참여국이 중국·러시아와 신흥국 중심으로 구성된 데다 AI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 저작권, 국가 통제 등 핵심 의제에 대한 국가별 입장 차이도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WAIC를 통해 기술과 산업, 외교를 하나의 전략으로 묶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도 중국 AI를 단순한 추격자나 저가 경쟁자로 평가하기보다 기술 수준과 공급망, 사업화 속도를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에 필요한 것은 중국 기술을 무조건 경계하거나 의존하는 선택이 아니다. 활용할 공급망과 협력 분야는 찾되 반도체와 AI 모델, 데이터, 로봇 등 핵심 분야에서 독자 경쟁력을 확보하는 ‘선별적 협력’ 전략이 요구된다”며 “올해 상하이 WAIC는 중국 AI의 약점보다 중국이 그 약점을 어떤 속도와 방식으로 메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2026-07-19 14: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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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보다 그 다음이 문제"…트럼프, 이란에 지상군 카드 꺼내 압박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개월째 이어지는 이란 전쟁의 돌파구로 지상군 투입까지 포함한 대규모 군사작전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의 원유 수출망과 호르무즈 해협 통제 능력을 동시에 압박해 협상 복귀를 끌어내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다만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군이 대통령에게 제시한 선택지다. 지상군 투입이나 대규모 추가 공격에 대한 최종 명령이 내려진 것은 아니다. 이란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선택지인 동시에 미군 사상자와 국제유가 급등, 장기 주둔이라는 더 큰 부담을 불러올 수 있어 실제 실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14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국가안보 참모들과 회의를 열고 현재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 집중된 작전을 이란의 전략시설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군이 제시한 선택지를 △이란 내 군사·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습 확대 △깊은 지하에 건설 중인 핵시설 타격 △지상군을 투입한 하르그섬 또는 호르무즈 해협 주변 전략섬 점령 등으로 분류했다. ◆ 하르그섬은 원유 급소…호르무즈 전략섬과는 구분 가장 주목받는 표적은 페르시아만 북부의 하르그섬이다. 이란 해안에서 약 25㎞ 떨어진 이 섬에는 이란 최대 원유 수출 터미널이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란산 원유 대부분이 하르그섬을 통해 수출된다. 미국외교협회(CFR)는 그 비중을 약 90%로 추산했다. 하르그섬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약 480㎞ 떨어져 있어 ‘호르무즈 인근 섬’은 아니다. 아부무사·대툰브·소툰브 등 해협 주변 전략섬과도 군사적 목적이 다르다. 하르그섬을 장악하면 이란의 원유 수출과 전쟁 자금원을 압박할 수 있다. 반면 호르무즈 주변 섬을 점령하면 상선을 위협하는 미사일과 드론, 고속정 운용 능력을 약화하고 해협 통제력을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미군은 전쟁 기간 하르그섬의 군사시설을 여러 차례 공격했지만 원유 터미널과 저장시설은 파괴하지 않았다. 원유 공급 중단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할 수 있고 전쟁 이후 이란 경제를 복구하는 데도 막대한 비용이 들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하르그섬 점령 여부에 대해 “말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라며 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이란군을 충분히 약화할 경우 실행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폭스뉴스는 군사 전문가들을 인용해 미군이 하르그섬을 단시간에 점령할 가능성은 있지만 이란 본토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막으며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훨씬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상륙보다 어려운 점령 유지…미군이 고정표적 될 수도 하르그섬 점령의 가장 큰 위험은 상륙 이후다. 섬은 이란 본토의 대함미사일과 탄도미사일, 공격용 드론 사정권에 들어간다. 이란은 기뢰와 고속정, 순항미사일 등 미군의 접근과 보급을 방해할 비대칭 전력도 보유하고 있다. 미군이 섬을 점령하더라도 병력과 방공체계, 보급망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이란이 원유시설을 직접 파괴하거나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지역 미국 동맹국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AP통신은 하르그섬을 점령하더라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능력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지상군을 투입하는 대신 하르그섬에서 원유를 선적한 선박을 해상에서 차단하는 방식이 미군의 인명 피해를 줄일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전했다. 결국 섬을 빼앗는 것보다 점령 상태를 얼마나 유지할지, 어떤 조건으로 철수할지가 더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 제한적인 상륙작전으로 시작하더라도 방어와 보급을 위해 추가 병력이 투입되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지상군 투입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도 키운다. 그는 전쟁 초기부터 대규모 지상전에 거리를 둬왔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에 악재가 될 수 있다. AP통신은 전쟁 장기화와 생활비 부담, 트럼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둘러싸고 공화당 내부에서도 중간선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 ‘곡괭이산’ 핵시설도 표적…공격 성공은 불확실 지상군 대신 지하 핵시설을 타격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이른바 ‘곡괭이산(Pickaxe Mountain)’으로 불리는 이란의 지하 핵시설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악시오스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이 이곳을 공습에 견딜 수 있는 핵시설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WSJ는 시설이 화강암 지하 약 90∼145m 깊이에 건설되는 것으로 추정돼 대형 관통폭탄을 사용하더라도 파괴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미국이 공격한 포르도·나탄즈 핵시설보다 깊은 곳에 있고 표적을 특정하는 데 활용할 환기구 등 지상 구조물도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격에 실패하면 이란의 핵개발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한 채 확전 명분만 제공할 수 있다. 발전소와 교량 등 기반시설을 공격하는 방안은 이란군의 작전 지속 능력을 빠르게 떨어뜨릴 수 있지만 민간 피해 위험이 크다. 해당 시설이 군사목표에 해당하는지, 예상되는 군사적 이익과 민간 피해가 비례하는지를 둘러싸고 국제인도법 논란도 불가피하다. ◆ 치명타 예고하면서 합의 시한 압박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옵션을 공개적으로 흘리는 배경에는 협상 압박 의도도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이란과의 합의가 막판에 무산됐다고 주장하면서도 “합의는 가능하다”며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대규모 공세와 지상군 투입 가능성을 부각해 이란 지도부에 전쟁 지속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다. 실제 작전 준비와 협상용 위협이 동시에 진행되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펜실베이니아주 연설에서 이란이 곧 패배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전쟁이 진정되면 유가가 배럴당 55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AP통신에 따르면 국제유가 기준인 브렌트유는 이날 배럴당 85달러를 웃돌아 전쟁 전보다 15% 이상 높은 수준에서 거래됐다. 하르그섬이나 걸프 지역 에너지 시설이 실제 공격받을 경우 공급 차질과 보험료 상승으로 유가가 다시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한 번의 치명타’로 전쟁을 끝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공격이 이란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면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지만 이란이 원유시설과 미군기지, 상선을 상대로 보복하면 제한전은 지상군이 개입하는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 진짜 문제는 하르그섬을 점령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점령 이후 이란의 보복과 유가 충격, 미군의 장기 주둔을 통제하면서 전쟁을 끝낼 수 있느냐에 있다.
2026-07-16 08:1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