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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낡은 '엄포', 기름값 잡는 도깨비방망이 아니다
2026년 3월, 남녘에는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서민들의 경제 기상도는 여전히 혹한기다. 장바구니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 정점에는 언제나 그렇듯 ‘기름값’이 자리하고 있다. 주유소 미터기에서 맹렬한 속도로 올라가는 숫자를 바라보는 운전자들의 심정은 한숨을 넘어 분노에 가깝다. 국제 유가가 들썩인다는 뉴스가 나오기가 무섭게 동네 주유소의 가격표는 즉각 반응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전광판의 숫자가 바뀐다. 반면 국제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소식에는 묵묵부답이다. 내릴 때는 깃털처럼 천천히, 올릴 때는 로켓처럼 솟구친다는 이른바 ‘비대칭 전가’ 현상이다. 수십 년째 반복되어 온 한국 석유 시장의 고질적인 불신 구조가 2026년 봄에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국민적 비난 여론이 비등점을 향해 치닫자 정부는 익숙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합동 점검반을 가동하고 “위기를 틈탄 편승 인상과 매점매석을 엄단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주유소와 정유사를 향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장면을 너무나 자주 목격해 왔다. 유가 급등기마다 정부는 ‘엄정 대응’을 외쳤고 업계는 납작 엎드리는 시늉을 했으며 결국 가격은 시장의 논리대로 움직였다. 정부의 엄포가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기보다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행정적 의식(儀式)’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이 오래된 촌극 속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제각각이다. 최일선에 있는 주유소 업주들은 “우리는 동네북이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정유사가 공급 가격을 올리는데 소매상이 무슨 재주로 가격을 억제하느냐는 것이다. 임대료와 인건비 상승, 전기차 확산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속에서 마진을 줄이라는 것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처사라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내 주유소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며 알뜰주유소와의 경쟁으로 박리다매 구조가 고착화된 지 오래다. 공은 자연스럽게 정유사로 넘어간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논리는 견고하다. 한국은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국가이며 국내 공급가는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과 환율에 연동되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폭리는 오해”라며 영업이익률이 높지 않음을 강조한다. 오히려 유류세 등 세금 비중이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재고 관리의 마법’에 있다. 유가 상승기에는 비싸게 들여올 원유를 대비해 미리 가격을 올린다는 ‘선반영’ 논리를 펴고 하락기에는 과거에 비싸게 사 둔 재고 소진을 이유로 인하를 늦춘다. 기업 입장에서야 리스크 관리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불공정 게임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과점 체제인 정유 업계가 가격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한, 이러한 불신은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의 대응 방식에 있다. 가격은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 그리고 원가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의 변수다. 정부가 관치(官治)의 칼을 빼 든다고 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파고를 막을 수는 없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의 ‘기름값 묘한 발언’이나 박근혜 정부의 알뜰주유소 정책, 문재인 정부의 유류세 인하 등 역대 정권마다 갖가지 처방을 내놨지만 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던 시도는 대부분 단기 미봉책에 그쳤다. 더욱이 정부의 경고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가격 구조의 가장 큰 지분을 정부 자신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휘발유 가격의 상당 부분은 유류세(교통세·주행세·교육세)와 부가가치세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의 매출도 늘지만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수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다. 서민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분담하고자 한다면 민간 기업의 팔을 비틀어 가격을 누르라고 호통칠 것이 아니라 세금 구조의 탄력성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정교한 정책 대안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낡은 방식의 단속이나 엄포가 아니다. 시장의 투명성과 경쟁을 촉진하는 ‘시스템’이다. 소비자는 스마트폰 앱으로 10원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아 헤매는데 정유사의 공급 가격 산정 방식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영업비밀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가격 결정의 블랙박스를 유지하는 한, 시장의 신뢰는 요원하다. 정부는 윽박지르는 심판자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룰을 만드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로 가고 있다지만 여전히 석유는 서민 경제의 혈관을 흐르는 피와 같다. 유가 급등은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이는 곧 실질 소득 감소로 이어져 민생을 옥죄게 된다. 이 엄중한 시기에 정부가 보여줘야 할 것은 보여주기식 현장 점검 사진이 아니다. 유류세 탄력 세율의 적기 운용, 알뜰주유소의 실질적 경쟁력 강화, 그리고 정유사 유통 마진 구조에 대한 투명한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이다. 시장은 권력의 목소리보다 명확한 원칙에 반응한다. 요란한 경고장은 잠시 소나기를 피할 우산은 될지언정 비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2026년의 대한민국 정부가 1970년대식 물가 단속반의 추억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엄포가 아니라 주유기 앞에서 느끼는 박탈감을 해소해 줄 합리적이고 정교한 시장 질서다. 그것이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다.
2026-03-08 09: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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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은 끝났다, 이제 'AI 질서'를 설계하라
대한민국은 ‘기적’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반세기 만에 제조·수출 강국을 일궈냈고 세계 공급망의 심장부로 진입했다. 그러나 역사는 냉정하다. 한 번의 성공 방정식이 두 번 통하는 법은 없다. 지금 인류는 증기기관과 인터넷을 넘어 지능을 설계하고 확장하는 ‘AI(인공지능) 문명’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 앞에서 우리는 다시 벼랑 끝 질문과 마주했다. 과거의 영광인 제조 강국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문명의 규칙을 만드는 선도국으로 도약할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미국과 중국에 이은 ‘세계 3대 AI 강국(G3)’.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실천 목표여야 한다. 이를 위해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이제 ‘경쟁자’가 아닌 ‘국가 AI 원팀’이 되어야 한다. 산업화 시대의 성공 모델이 개별 기업의 각자도생이었다면 AI 시대의 생존 모델은 국가 단위의 총력전이다. 미국이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엔비디아를 국가 안보 자산으로 다루고 중국이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를 국가 전략의 축으로 묶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술은 기업이 만들지만 그 기술이 통용되는 패권의 질서는 국가가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제시하는 제언들은 필자 개인의 단상을 넘어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문명의 파고를 넘어 비상하기를 갈망하는 온 국민의 염원을 담은 진심 어린 충언(忠言)이다. 이것은 우리가 골라 잡을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국가의 명운을 걸고 반드시 완수해야만 하는 시대적 필수 과목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리더의 ‘AI 문해력’이다. 다섯 명의 리더는 AI의 가장 깊은 이해자가 되어야 한다. AI는 참모가 올리는 요약 보고서로 판단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모델의 아키텍처부터 데이터 학습의 원리, 컴퓨팅 파워의 비용 구조, 윤리적 딜레마까지 리더가 직접 체화해야 조직이 움직인다. 젠슨 황과 마크 저커버그가 엔지니어링의 디테일을 놓지 않는 이유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인식 수준이 곧 그 나라와 기업의 혁신 속도를 결정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출’이 아닌 ‘문명 건설’ 차원의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10년 단위의 초대형 청사진이 필요하다. 미국은 칩스법을 넘어 AI 인프라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고 있고 중국은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을 통해 굴기를 멈추지 않는다. 우리도 국가 차원의 100조원 단위 장기 계획과 4대 그룹의 과감한 전략 투자가 맞물려야 한다. 이것은 비용이 아니다. 다가올 미래를 위한 고속도로를 까는 일이다. 그 고속도로 위를 달릴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국경 없는 ‘인재 동맹’이 절실하다. 우리가 이스라엘이나 UAE의 AI 전략에서 배워야 할 점은 개방성이다. UAE는 세계 최초로 AI 장관을 임명하고 전 세계 석학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우리도 인재를 단순히 고용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이라는 AI 테스트베드를 함께 설계할 동반자로 예우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 인재들이 글로벌 리더들과 섞이며 성장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기술의 방향성도 재설정해야 한다. 범용 모델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우리는 우리가 잘하는 것에 AI를 입혀야 한다. 삼성의 AI 반도체, 현대차의 AI 모빌리티, LG의 AI 로봇·가전, SK의 AI 에너지·통신 인프라처럼 각 산업의 도메인 지식에 AI를 결합해 세계 표준을 선점해야 한다. ‘K-AI’라는 브랜드는 곧 기술 신뢰의 다른 이름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특허와 표준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전장이다. AI 패권은 코드가 아니라 지식재산권(IP)과 국제 규범에서 갈린다.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싸우게 둬선 안 된다. 국가적 차원의 공동 특허 전략과 글로벌 AI 거버넌스를 주도할 표준 연합이 절실하다. 그 기반에는 데이터 주권이 있어야 한다. 양질의 데이터는 AI의 식량이다. 과학, 의료, 법률, 역사 등 공공과 민간에 흩어진 데이터를 통합하고 정제해 ‘국가 AI 데이터 허브’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어와 한국의 맥락을 이해하는 AI, 소버린 AI의 경쟁력은 여기서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돌릴 에너지가 필수다. AI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라 불린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현실적이고 정교한 믹스 없이 AI 강국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대한민국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하나 더 있다. 바로 ‘AI 외교’다. 본지는 단순한 관찰자를 넘어 아세안, 중동, 중앙아시아 등과 한국을 잇는 ‘AI 협력 코디네이터’가 될 수 있다. 한국형 스마트시티, AI 교육 시스템, 데이터 인프라 모델을 패키지로 묶어 신흥국에 수출하고 그들의 자본과 인재를 한국으로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이다. 이는 비즈니스를 넘어선 AI 생태계 외교다. 내수 시장만으로는 3대 강국이 될 수 없다. 아시아 전체와 함께 커야 한다. 선택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실행의 시간이다. 5인의 리더가 원팀이 되어 대한민국을 AI 문명의 설계자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기술 변곡점에서 추격자로 남을 것인가. ‘한강의 기적’은 과거의 훈장일 뿐 미래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2026년 대한민국은 기적을 바라는 나라가 아니라 질서를 설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2026-01-28 14: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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