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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집 안으로…동서식품이 설계한 한국의 커피생활
[경제일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방식은 시대마다 달라졌다. 다방에서 주문하던 커피는 가정과 사무실에서 직접 타 마시는 인스턴트커피가 됐고, 커피와 설탕·크리머를 각각 덜어 넣던 과정은 한 봉의 커피믹스로 단순해졌다. 카페에서 마시던 아메리카노는 스틱형 인스턴트 원두커피로 옮겨왔고, 이제는 캡슐과 머신을 이용해 집에서도 추출 커피를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동서식품이 있었다. 동서식품은 1968년 설립 이후 맥심과 맥심 모카골드, 카누를 차례로 내놓으며 소비자가 커피를 마시는 장소와 방식을 바꿔왔다. 새로운 음료 종류를 계속 추가하기보다 시대마다 달라진 커피 취향과 음용 방식을 더 간편한 제품으로 구현하는 전략이었다. 동서식품의 성장 DNA는 '일상화'와 '재설계'로 요약된다. 다방 중심이던 커피를 가정과 사무실로 가져왔고, 카페의 아메리카노를 스틱 한 봉에 담았다. 최근에는 카누 바리스타를 앞세워 캡슐과 머신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소비자가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까지 직접 설계하려 하고 있다. 다만 커피믹스로 구축한 시장 지배력이 다음 성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국제 원두 가격과 환율 변동에 따른 원가 부담도 커졌다. 머신을 보급한 뒤 캡슐의 반복 구매로 이어지는 홈카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느냐가 동서식품의 새로운 시험대가 됐다. 카페를 나온 커피, 한 봉에 담기다 동서식품이 한국 커피시장에 미친 가장 큰 변화는 커피를 특별한 기호품에서 일상적인 음료로 바꾼 것이다. 인스턴트커피가 보급되기 전 커피는 주로 다방이나 음식점에서 누군가 타주는 음료였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직접 마시더라도 커피와 설탕, 크리머의 양을 각각 조절해야 했다. 동서식품은 이를 한 봉에 담아 물만 부으면 마실 수 있는 커피믹스 형태로 단순화했다. 커피믹스의 경쟁력은 세 가지 재료를 합친 데만 있지 않았다. 누가 어디서 타더라도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도록 커피 한 잔의 제조법을 표준화했다. 소비자는 별도의 계량이나 기구 없이 컵과 뜨거운 물만으로 일정한 맛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1980년 출시된 맥심은 동서식품을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후 맥심 모카골드는 달고 부드러운 맛을 앞세워 가정과 사무실, 식당과 사업장 등 생활 곳곳에 자리 잡았다. 커피믹스는 접객용 음료이자 식사 후의 습관, 잠깐의 휴식을 상징하는 제품으로 정착했다. 동서식품은 성공한 제품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소비자 입맛과 음용 습관 변화에 맞춰 원두 배합과 향, 당도, 패키지를 조정하고 제품 용량과 구성을 세분화했다. 신제품을 빠르게 교체하기보다 장수 브랜드의 기본적인 맛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개선하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전략은 동서식품에 국내 커피믹스 시장의 절대적인 입지를 안겼다. 맥심 모카골드를 앞세운 동서식품은 현재도 국내 커피믹스 시장에서 8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1위 사업자로 평가된다. 오랜 기간 축적한 브랜드 인지도와 전국 유통망, ‘커피믹스=맥심’이라는 소비자 인식은 경쟁사가 쉽게 넘보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됐다. 하지만 시장을 장악한 성공은 새로운 과제도 남겼다. 2010년대 이후 커피전문점이 일상화되고 소비자 취향이 믹스커피에서 아메리카노와 스페셜티 커피, 디카페인, 캡슐커피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국내 커피시장의 성장축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편의점 RTD 커피와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까지 빠르게 성장하며 소비자의 선택지도 넓어졌다. 동서식품에는 견고한 커피믹스 시장을 유지하는 동시에 성장성이 높은 블랙커피와 홈카페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압도적인 1위라는 지위가 강점인 동시에 변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페 한 잔을 스틱에 담다 2000년대 들어 커피전문점이 빠르게 늘면서 국내 커피 소비의 기준도 바뀌었다. 소비자들은 달고 부드러운 커피믹스뿐 아니라 원두의 향과 산미, 로스팅을 따지기 시작했다. 설탕과 크리머가 없는 블랙커피와 아메리카노가 대중화되면서 인스턴트커피는 저렴하지만 품질이 낮은 제품이라는 인식과도 맞서야 했다. 동서식품은 커피전문점 문화와 아메리카노 소비가 확산하던 2011년 인스턴트 원두커피 브랜드 ‘카누’를 출시했다. 기존 커피믹스가 커피와 설탕, 크리머를 한 봉에 담아 달고 부드러운 맛을 구현했다면 카누는 설탕과 크리머를 빼고 원두커피의 맛과 향을 간편하게 즐기려는 수요를 겨냥했다. 에스프레소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 파우더에 미세하게 분쇄한 원두를 배합해 뜨거운 물만 부어도 아메리카노에 가까운 맛을 내도록 설계했다. 카누는 커피전문점까지 이동해 주문하고 기다려야 했던 아메리카노를 사무실과 가정에서 스틱 한 봉으로 마실 수 있게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과 짧은 제조 시간, 휴대성을 앞세우면서도 기존 인스턴트커피와는 다른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라는 브랜드 메시지는 카페에서 경험하던 커피와 휴식의 순간을 개인의 책상과 집 안으로 옮기겠다는 전략을 압축해 보여줬다. 카누의 의미는 새로운 브랜드 하나를 추가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커피믹스 중심이던 스틱커피 시장을 설탕과 크리머가 없는 블랙커피 영역으로 넓히고, 커피전문점으로 이동하던 일부 수요를 다시 가정용 인스턴트커피 시장으로 끌어들였다는 데 있다. 맥심 모카골드가 달고 부드러운 믹스커피 수요를 지키는 동안 카누는 아메리카노와 원두커피를 선호하는 소비자를 맡았다. 동서식품은 두 브랜드를 통해 서로 다른 취향과 음용 장면을 포괄하며 고객 기반을 넓혔다. 이후 카누는 디카페인과 라떼, 아이스, 프리미엄 제품에 이어 캡슐과 머신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다만 카누가 블랙커피와 라떼, 원두, 캡슐, 머신까지 아우르면서 브랜드의 역할도 복잡해졌다. 맥심과 카누의 소비층과 음용 장면을 구분하고, 카누 안에서도 스틱과 캡슐 제품의 차별성을 분명히 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제품군 확대가 브랜드 외연 확장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신규 수요와 재구매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해졌다. 커피가 아닌 경험을 팔다…홈카페의 시작 동서식품의 최근 변화는 캡슐커피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회사는 2023년 2월 카누 바리스타 전용 머신과 캡슐을 출시하며 캡슐커피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같은 해 원두커피와 에티오피아·콜롬비아·인도네시아 싱글오리진 캡슐을 추가했고, 2024년에는 소형 머신 ‘카누 바리스타 페블’을 출시했다. 타사 머신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호환 캡슐도 내놓으며 전용 머신 구매자뿐 아니라 기존 캡슐커피 이용자까지 고객층을 넓혔다. 2025년에는 카누 공식 온라인 스토어를 열어 머신과 캡슐 판매 채널을 강화했다. 2026년 6월에는 아이스 커피 수요를 겨냥한 전용 캡슐 ‘카누 라이블리 브리즈’와 ‘카누 인피니트 피크’를 출시했다. 로스팅 강도와 디카페인, 싱글오리진, 라떼·아이스 전용 등 취향과 음용 상황에 맞춘 캡슐 제품군을 늘리며 홈카페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카누 바리스타는 기존 스틱커피와 사업 구조가 다르다. 커피믹스와 카누 스틱은 컵과 뜨거운 물만 있으면 바로 마실 수 있어 개별 제품 판매가 곧 소비로 이어진다. 반면 캡슐커피는 소비자가 먼저 전용 머신이나 호환 기기를 갖춰야 한다. 초기 기기 구매라는 진입 장벽을 넘어야 캡슐의 반복 구매가 가능하다. 사업의 성패도 머신 판매량 자체보다 설치된 머신이 실제 캡슐 소비로 이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소비자가 머신을 구매한 뒤 다양한 캡슐을 지속적으로 선택하도록 제품군과 유통 채널, 가격 경쟁력을 함께 갖춰야 한다. 전용 캡슐뿐 아니라 호환 캡슐까지 확대한 것도 머신 보급 속도의 한계를 보완하고 잠재 고객층을 넓히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는 한 봉의 커피를 반복 판매하던 사업에서 기기와 소모품, 브랜드 경험을 연결하는 사업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동서식품이 커피믹스에서 쌓은 높은 브랜드 충성도를 캡슐 재구매로 옮길 수 있느냐가 카누 바리스타의 성장성을 가를 핵심 변수다. 매출 1조8000억원에도 커진 원가 압박 동서식품은 커피믹스와 카누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2025년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소폭 증가한 반면 순이익은 감소했다. 그러나 외형 성장의 이면에서는 원가 부담이 크게 확대됐다. 2025년 매출원가는 전년보다 9.3% 증가했고 매출원가율도 66%에서 71.4%로 높아졌다. 반면 판매관리비는 전년보다 21.4% 감소했다. 특히 광고선전비와 판매촉진비가 큰 폭으로 줄면서 원가 상승에도 영업이익을 방어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원가 부담의 중심에는 커피 원두와 환율이 있다. 커피 원두 대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만큼 국제 원두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동시에 상승하면 매입 부담이 커진다. 제품 가격 인상으로 비용 일부를 반영할 수 있지만 잦은 가격 인상은 소비 위축이나 저가 제품으로의 이동을 불러올 수 있다. 국제 원두 가격은 2025년 높은 수준을 기록한 뒤 2026년 상반기에는 다소 진정됐다. 국제커피기구 종합 커피가격 지표는 2026년 1월 파운드당 296.89센트에서 6월 248.90센트로 낮아졌다. 다만 원두 매입과 재고 투입 사이에는 시차가 있어 국제 시세 하락이 곧바로 제조원가 개선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용 절감만으로 수익성을 방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광고와 판촉을 지나치게 줄이면 장기적으로 브랜드 노출과 신제품 확산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머신 보급과 캡슐 재구매를 동시에 늘려야 하는 카누 바리스타 사업은 초기 시장 확대를 위한 마케팅과 판매 채널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다. '한 봉의 성공' 다음 시대에도 이어질까 동서식품의 역사는 복잡한 커피 경험을 더 간편한 방식으로 바꿔온 과정이었다. 커피와 설탕, 크리머를 한 봉에 담았고 카페의 아메리카노를 스틱커피로 옮겼다. 이제는 머신과 캡슐을 통해 소비자가 집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까지 사업 영역에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한 봉을 잘 만드는 능력과 기기·소모품 생태계를 운영하는 능력은 다르다. 커피믹스에서는 제품 자체의 맛과 유통망, 브랜드 인지도가 시장 지위를 결정했다면 캡슐커피에서는 머신 보급, 캡슐 호환성, 제품 다양성, 반복 구매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글로벌 브랜드와 기존 캡슐커피 사업자들이 자리 잡은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경쟁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기존 사업의 기반도 지켜야 한다. 커피믹스는 여전히 동서식품의 핵심 시장이지만 젊은 소비자의 선택지는 원두커피와 캡슐, 저가 카페, RTD 음료 등으로 넓어졌다. 국제 원두 가격과 환율 변동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가격 인상과 비용 절감만으로 수익성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관건은 맥심의 고객을 지키면서 카누가 새로운 소비자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다. 카누 바리스타 머신 구매자를 캡슐의 충성 고객으로 전환하고, 전용 머신이 없는 소비자에게도 호환 캡슐을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스틱커피와 캡슐커피 사이의 가격과 브랜드 역할을 분명히 해 서로의 시장을 잠식하지 않는 구조도 필요하다. 동서식품은 지난 반세기 동안 커피를 마시는 번거로움을 줄이며 성장했다. 하지만 다음 성장은 단순히 더 간편한 제품을 내놓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어떤 기기를 선택하고 어떤 캡슐을 반복 구매할지까지 설계해야 한다. 커피 한 봉으로 한국인의 일상을 바꿨던 동서식품이 머신과 캡슐의 시대에도 다시 소비 습관을 바꿀 수 있을지, 카누 바리스타는 그 가능성을 가늠할 첫 시험대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커피믹스와 카누, 카누 바리스타는 모두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오랜 기간 연구개발을 거쳐 선보인 제품"이라며 "앞으로도 맛있는 커피를 누구나 편리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제품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2026-07-30 16: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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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별로 시작해 세계로…롯데칠성의 76년 확장사
[경제일보] 1950년 5월 9일 서울 용산의 작은 공장에서 '칠성사이다'가 세상에 나왔다. 롯데칠성음료의 전신인 동방청량음료가 내놓은 첫 제품이었다. 탄산음료 한 병으로 출발한 회사는 76년이 지난 현재 사이다와 콜라, 커피, 생수, 주스는 물론 소주·맥주·청주·와인·RTD(즉석음용주류)까지 아우르는 국내 대표 종합음료기업으로 성장했다. 음료 넘어 주류까지…76년간 넓힌 사업영역 롯데칠성의 역사는 단순히 제품 수를 늘린 과정이 아니다. 소비자의 음용 습관 변화에 맞춰 사업영역을 넓히고, 시장이 성숙하면 새로운 카테고리와 해외 시장으로 무대를 옮겨온 역사다. 하나의 브랜드를 오래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이 롯데칠성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다. '칠성'이라는 이름에도 이런 철학이 담겨 있다. 창립 당시 주주 7명의 성씨가 모두 달랐지만 단순히 '칠성(七姓)'이 아닌 북두칠성처럼 오래 빛나는 기업이 되자는 의미를 담아 '칠성(七星)'을 선택했다. 이후 회사는 하나의 제품이나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소비자가 무언가를 마시는 거의 모든 순간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국내 음료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인구 감소와 내수 둔화로 성장 여력이 제한된 가운데 주요 식음료기업들은 제품 다변화와 해외시장 확대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삼고 있다. 롯데칠성은 이러한 흐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행한 기업 가운데 하나다. 칠성사이다는 지금도 롯데칠성을 상징하는 대표 브랜드다. 롯데칠성음료에 따르면 칠성사이다는 2024년 10월 기준 250㎖ 캔 환산 누적 판매량 375억캔을 돌파했다. 레몬·라임 향과 청량감이라는 제품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용기와 용량을 다양화하고 제로슈거 제품을 출시하며 소비층을 꾸준히 넓혔다. 하지만 롯데칠성의 경쟁력은 장수 브랜드 하나에 머물지 않았다. 회사는 소비자가 무엇을 마시는지에 맞춰 사업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넓혀왔다. 1976년 미국 펩시콜라와 생산·판매 계약을 체결했고, 1982년에는 미국 델몬트와 기술 제휴를 맺어 주스 사업에 진출했다. 자체 브랜드만 고집하기보다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하며 탄산과 과즙음료 시장을 빠르게 확대했다. 이후 레쓰비와 칸타타로 커피 시장을, 아이시스로 생수를, 핫식스와 게토레이로 기능성 음료 시장을 공략했다. 특정 품목의 성장세가 둔화되더라도 다른 제품군이 이를 보완하는 구조를 만들면서 사업 안정성을 높였다. 이와 같은 전략은 경쟁사와도 차별화된다. 코카콜라음료가 탄산 중심, 동아오츠카가 기능성 음료 중심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면 롯데칠성은 탄산·커피·생수·주스·기능성 음료를 모두 아우르는 국내 최대 수준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사이다 회사'에서 소비자의 갈증과 휴식, 건강관리까지 아우르는 종합음료기업으로 변모한 것이다. 제품보다 강한 유통망…음료 넘어 주류로 사업 확장의 또 다른 축은 유통망이었다. 롯데칠성은 1974년 롯데그룹 편입 이후 생산시설과 물류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다만 성장의 배경을 그룹 유통망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세븐일레븐뿐 아니라 음식점, 슈퍼마켓, 자판기, 온라인몰 등 판매 채널을 촘촘하게 구축하고 채널별 소비 특성에 맞춘 제품과 용량을 공급한 것이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소비자는 아침에는 커피를, 점심에는 탄산음료를, 운동 후에는 스포츠음료를, 저녁에는 주류를 찾는다. 롯데칠성은 이러한 서로 다른 소비 순간을 하나의 사업영역으로 연결하며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결국 롯데칠성의 경쟁력은 히트상품 하나보다 다양한 제품군과 이를 소비자에게 연결하는 유통망에 있다. '마시는 모든 순간'을 사업영역으로 만든 전략이 76년 동안 이어진 성장의 기반이었다. 롯데칠성의 두 번째 변곡점은 주류사업 진출이었다. 회사는 2009년 두산주류 사업부문을 인수하며 처음처럼과 청하, 백화수복 등을 확보했고, 2011년 롯데주류를 합병하면서 음료와 주류를 하나의 사업 포트폴리오로 통합했다. 칠성사이다에서 출발한 기업이 소주와 맥주, 청주, 와인, 위스키, RTD까지 아우르는 종합 주류·음료기업으로 체질을 바꾼 순간이었다. 주류사업에서도 전략은 같았다. 특정 브랜드 하나에 의존하기보다 시장을 세분화해 다양한 소비층을 공략했다. 처음처럼과 새로로 소주 시장을, 클라우드로 맥주를, 청하와 백화수복으로 청주를, 마주앙으로 와인을 공략하며 카테고리별 브랜드를 구축했다. 국내 음료기업 가운데 음료와 주류를 모두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는 곳은 사실상 롯데칠성이 유일하다. 경기 변동이나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라 특정 사업이 부진하더라도 다른 사업군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소비 트렌드를 가장 먼저 상품으로 최근 롯데칠성의 성장 전략은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보다 '소비자가 어떻게 마시는가'에 맞춰져 있다. 대표 사례가 '새로'다. 2022년 출시한 새로는 설탕을 넣지 않은 제로슈거 소주와 투명병, 구미호 캐릭터를 앞세워 기존 소주 브랜드와 차별화했다. 회사와 경향신문에 따르면 새로는 출시 약 3년 만인 2025년 말 누적 판매량 8억병을 돌파했다. 올해에는 알코올 도수를 15.7도로 낮추고 국산 쌀 증류주를 적용하는 리뉴얼도 단행했다. 음료에서는 제로슈거가 새로운 성장축이 됐다. 칠성사이다 제로를 시작으로 펩시 제로슈거, 밀키스 제로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며 건강과 저당 소비 트렌드에 대응했다. 최근에는 RTD 시장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롯데칠성에 따르면 과실탄산주 '순하리 진'은 올해 상반기 매출 170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매출(162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레몬과 자몽, 유자, 상그리아 등 맛을 다양화하고 알코올 도수도 4.5도부터 9도까지 세분화하면서 소비자의 취향을 공략했다. 과거 회식 중심이던 음주문화가 홈술과 혼술, 가벼운 모임 중심으로 바뀌면서 술을 고르는 기준도 다양해지고 있다. 롯데칠성은 소비량 증가보다 소비 방식 변화에 맞춰 제품을 세분화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다만 사업영역 확대가 항상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품군이 늘어날수록 생산과 재고, 물류 운영은 복잡해지고 브랜드 간 판매 잠식 가능성도 커진다. 신제품을 빠르게 출시하는 것보다 어떤 브랜드를 오래 키울 것인지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실제로 제로슈거 제품군 확대 이후 브랜드 간 역할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새로와 처음처럼의 시장 포지셔닝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도 향후 과제로 꼽힌다. 맥주사업 역시 브랜드 경쟁력 회복과 수익성 개선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음료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앞으로는 신제품 출시 자체보다 브랜드 운영 효율과 수익성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칠성 역시 '많이 만드는 기업'보다 '잘 운영하는 기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76년간 다양한 제품군을 구축했다면 앞으로는 그 포트폴리오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글로벌 46% 시대…필리핀에서 증명할 다음 성장 롯데칠성의 세 번째 성장축은 해외사업이다. 과거 해외사업이 국내에서 생산한 밀키스와 레쓰비, 소주 등을 수출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현지 기업을 인수해 직접 생산하고 판매하는 구조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단순 수출기업에서 현지 생산과 유통망을 갖춘 글로벌 음료기업으로 사업 모델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대표 사례가 필리핀펩시다. 롯데칠성은 2010년 필리핀펩시 지분을 처음 취득한 뒤 추가 매수와 공개매수를 거쳐 2023년 지분율을 73.6%까지 높이며 경영권을 확보했다. 필리핀 전역의 생산시설과 영업망을 갖춘 현지 보틀링 기업을 연결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해외사업의 외형도 크게 확대됐다. 미얀마와 파키스탄에서도 현지 생산·판매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 완제품을 수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지 공장과 원료, 인력, 유통망을 기반으로 시장에 대응하는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국내 음료업계가 수출 확대에 집중해온 것과 달리 롯데칠성은 현지 기업 인수와 생산기지 확보를 통해 시장에 직접 진입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해외사업의 무게중심이 '수출'에서 '현지화'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롯데칠성의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952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478억원으로 91% 늘었다. 해외 자회사와 수출을 포함한 글로벌 매출은 3783억원으로 11.1% 증가하며 전체 매출의 약 46%를 차지했다. 필리핀 법인은 매출 2589억원, 영업이익 54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고 미얀마 법인 역시 흑자로 돌아섰다. 국내 음료와 주류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해외 자회사의 실적 개선이 전체 수익성 회복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해외사업의 성패는 외형보다 수익성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해외 법인은 환율과 원재료 가격, 현지 경쟁, 정치·경제 환경 변화에 직접 노출된다. 특히 필리핀은 수천 개의 섬으로 이뤄진 지리적 특성상 물류와 재고 관리가 쉽지 않은 시장이다. 롯데칠성은 디지털 영업관리와 자동화 설비, 물류 효율화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 분기 실적만으로 구조적인 경쟁력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사업 역시 과제를 안고 있다. 제로슈거 음료와 RTD 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내수 소비 둔화와 고환율, 원부자재 가격 부담은 여전히 변수다. 새로의 성장세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처음처럼과의 브랜드 역할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도 풀어야 할 숙제다. 맥주사업 역시 브랜드 경쟁력과 수익성 회복이 요구된다. 해외사업 비중이 커질수록 본사와 현지 법인의 품질관리와 재무관리, 공급망 운영 역시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수록 관리해야 할 영역도 함께 넓어지는 셈이다. 확장의 시대를 넘어 '운영의 시대' 롯데칠성의 76년은 하나의 제품에 머물지 않고 소비 변화에 맞춰 사업영역을 넓혀온 역사였다. 칠성사이다에서 시작해 탄산과 커피, 생수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했고, 이후 주류를 더했다. 국내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자 다시 해외시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지금까지의 성장을 이끈 키워드가 '확장'이었다면 앞으로의 경쟁력은 '운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제품을 추가하고 회사를 인수하면 외형은 커질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은 넓어진 사업영역을 얼마나 안정적인 이익과 현금흐름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롯데칠성은 이미 국내 소비자의 '마시는 대부분의 순간'에 자리 잡았다. 앞으로의 과제는 더 많은 제품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구축한 포트폴리오와 해외사업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다. 일곱 개 별에서 시작한 76년의 역사는 이제 '얼마나 더 넓힐 것인가'보다 '넓어진 영토를 얼마나 수익성 있게 관리할 것인가'를 증명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필리핀과 미얀마 법인의 수익성 개선 흐름을 이어가는 동시에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해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라며 "'밀키스', '레쓰비', '새로', '순하리' 등 글로벌 브랜드 육성에도 속도를 낼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내에서는 제로 음료와 에너지·스포츠음료, 리뉴얼한 '새로'와 RTD 브랜드 '순하리진' 등을 중심으로 소비자 트렌드에 대응하는 제품 혁신을 지속하는 한편 수익성 중심 경영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2026-07-29 15: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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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후 17년 만에 환율 1500원 돌파…식품업계, 수입 원자재가 '직격탄'
[경제일보]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전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는 가운데, 국내 식품업계가 유가 상승과 고환율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며 수익성에 비상이 걸렸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선을 넘나들면서 해외에서 원재료를 들여와 가공하는 식품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0원을 돌파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환율이 장중 1500원을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쳤던 2009년 이후 약 17년 만의 일이다. 이란-이스라엘 전쟁 여파로 안전 자산인 달러 선호 현상이 짙어지면서 원화 가치가 곤두박질친 결과다. 식품업계는 즉각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국내 식품 산업 구조상 밀가루(소맥), 설탕(원당), 대두유 등 핵심 원재료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르면 같은 양의 원재료를 들여오더라도 지불해야 하는 원화 금액이 늘어나게 되고 이는 곧바로 제조원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단순히 원재료 값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이란발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식품 생산과 유통 전 과정에 비용 부하가 걸렸다. 유가가 오르면 제품을 포장하는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 포장재의 원료가 되는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상승한다. 여기에 공장 가동을 위한 에너지 비용과 제품을 전국 점포로 나르는 물류비용까지 일제히 치솟고 있다. 가공식품의 경우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과자의 주성분인 유지류와 견과류, 향료 등 수입 품목이 워낙 다양해 고환율과 고유가의 타격 범위가 광범위하다. 원가 압박은 극심해졌지만 기업들이 이를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내수 침체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데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전방위적인 가격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버거킹, 한국맥도날드, KFC 등 프랜차이즈 업계는 인건비와 임대료 상승을 이유로 일부 가격 인상을 단행했으나 라면과 제과 등 일반 가공식품 업계는 오히려 가격을 내리거나 동결하고 있다. 해태제과는 정부 기조에 맞춰 계란과자, 베베핀, 롤리폴리 등 주요 비스킷 제품의 가격을 낮추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K-푸드 열풍으로 수출 비중이 커진 라면이나 스낵 기업의 경우 고환율이 오히려 이득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해외에서 달러로 벌어들인 매출을 원화로 환산할 때 이익이 커지는 ‘환차익’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냉정하다. 수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지 않은 이상 원자재 수입 비용 상승분이 환차익으로 얻는 이득보다 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환율 변동성이 지나치게 크면 해외 거래처와의 장기 계약이나 가격 정책 수립에 차질이 생겨 경영 불확실성만 증폭된다는 지적이다. 유통업계는 고환율·고유가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식품업계의 체력이 급격히 저하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자본력이 약한 중소 식품사들부터 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6-03-16 15: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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