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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 없이 시작한 송무 로펌…바른 28년, 이제 동인과 합병
[경제일보] 1998년 3월 서울 서초동. 판사 출신 강훈·홍지욱·김재호 변호사가 바른법률사무소의 문을 열었다. 당시 형사·민사 사건 수임에는 이른바 ‘사무장’이나 브로커가 개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세 사람은 사건을 소개해주는 브로커를 쓰지 않고 변호사가 직접 의뢰인을 만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바른’이라는 이름에도 그런 생각을 담았다. 1997년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으로 법원과 변호사 업계에 대한 불신이 커지던 시기였다. 평판사 출신들이 만든 작은 사무실은 전관의 이름을 앞세우기보다 직접 사건을 맡아 승부하겠다고 나섰다. 검사와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낸 김찬진 변호사도 초기부터 힘을 보탰다. 28년이 지난 지금 바른에는 외국변호사를 포함해 300명 안팎의 변호사가 일한다. 2025년 매출은 1076억원으로 2023년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선 뒤 3년 연속 1000억원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같은 해 YK가 1694억원, 지평이 1327억원을 기록하면서 중대형 로펌 사이의 외형 경쟁에서는 다시 뒤를 쫓는 처지가 됐다. 바른은 결국 다시 큰 선택을 했다. 지난 9월 14일 법무법인 동인과 합병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합병이 성사되면 지난해 기준 합산 매출 1877억원, 변호사 553명 규모로 커진다. 평판사들이 만든 송무 사무실에서 출발한 바른이 28년 만에 국내 로펌 사상 최대 규모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 법조비리 뒤 문 연 평판사들의 사무실 바른이 문을 열던 1990년대 말 법률시장은 지금과 달랐다. 개인 변호사 사무실의 비중이 컸고 법원이나 검찰을 갓 나온 전관들이 사건을 소개받아 처리하는 방식도 널리 퍼져 있었다. 브로커와 사무장을 통한 사건 수임이 법조비리로 번지면서 변호사 업계 전체가 비판을 받던 때였다. 강훈·홍지욱·김재호 변호사는 모두 법원에서 10년 안팎 근무한 평판사 출신이었다. 고위 법관 출신도 아니었고 대형 기업자문 조직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잡은 시장은 송무였다. 법정에서 재판을 해본 경험을 토대로 민·형사 사건을 직접 맡았다. 사무장이 사건을 가져오면 변호사가 이름을 빌려주는 관행도 피했다. 파트너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한 뒤 저연차 변호사에게 전부 넘기는 방식도 지양했다. ‘변호사가 직접 의뢰인을 만나고 직접 책임진다’는 방식은 신생 사무실이 고객을 확보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송무 중심의 출발은 이후 바른의 성격을 오랫동안 규정했다. 기업과 금융회사에 계약을 자문하는 대신 이미 벌어진 분쟁을 법정에서 해결하는 사건이 먼저 쌓였다. 지금도 바른을 설명할 때 송무와 기업형사가 먼저 거론되는 배경이다. ◆ 대법관·고법부장들이 신생 로펌으로 설립 이듬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1999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원을 떠난 조중한 변호사가 2대 대표로 합류했다. 같은 해 정귀호 전 대법관도 바른으로 왔다. 2000년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박인호 변호사가 가세했다. 평판사 세 명이 시작한 사무실에 고위 법관 출신들이 들어오면서 송무 인력의 폭이 넓어졌다. 이후 검사장급 인사와 고법부장, 법원장 출신 변호사들도 잇달아 합류했다. 명로승 전 법무부 차관과 정동기·문성우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정인진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김동건 전 서울고법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성과도 따라왔다.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 탱크공사 관련 5500억원대 가처분 사건과 두산중공업 희망퇴직자들의 600억원대 퇴직금 소송 등을 맡았다. 동서식품의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사건에서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냈다. 2010년에는 대법원 수임 사건 수가 국내 로펌 가운데 가장 많다는 보도도 나왔다. 바른 홈페이지 연혁에도 이 기록이 남아 있다. 송무에서 확보한 사건과 인력이 바른을 100명대 로펌으로 끌어올렸다. ◆ 송무만으로는 종합로펌이 될 수 없었다 바른이 계속 법정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기업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소송이 터지기 전 계약과 금융, 공정거래 문제부터 자문해달라는 요구가 따라왔다. 송무에서 기업을 만났지만 기업의 일은 법정 밖에서 더 많이 벌어졌다. 2005년 바른은 김·신·유에서 기업자문을 이끌던 박기태 변호사와 자문팀을 영입했다. 같은 해 법인 이름도 지금의 ‘법무법인 바른’으로 바꿨다. 김장리와의 합병을 추진했고 2007년에는 세종과의 합병도 검토했지만 두 건 모두 성사되지는 않았다. 2010년대 들어서는 조세와 부동산금융, 공정거래를 잇달아 보강했다. 2015년 조현관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영입했고 이듬해 법무법인 양헌에서 부동산금융팀을 받아들였다. 2017년에는 법무법인 KCL의 공정거래팀이 합류했다. 바른의 확장은 다른 대형 로펌과 달리 한 번의 대형 합병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송무라는 기존 기반을 두고 필요한 자문팀을 하나씩 붙였다. 법원과 검찰 출신 인력 중심의 조직에 세무와 금융, 공정거래 전문가가 들어오면서 업무 범위도 넓어졌다. ◆ 론스타에서 통상임금까지 법정에서 이름 알려 기업형사 사건에서도 바른의 송무 경험이 이어졌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과정에서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을 대리해 1심부터 대법원까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신한은행이 45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신상훈 전 사장 사건에서도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노동과 공정거래 사건에서도 굵직한 판결이 나왔다. 2014년 쌍용자동차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2016년 액화천연가스 저장탱크 건설공사 입찰담합 사건에서는 SK건설을 대리해 과징금 불복 소송에서 승소했다. 최근 매출을 끌어올린 사건에도 송무가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퀄컴 사이의 1조원대 과징금 분쟁에서 공정위를 대리했고 HD현대중공업의 6300억원대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근로자 측을 대리했다. 2023년 바른의 매출이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서는 데 이런 대형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설립 당시의 주력이었던 송무가 20년 넘게 바른의 매출과 브랜드를 떠받쳐온 것이다. 다만 대형 로펌 시장이 기업자문과 M&A, 금융, 국제중재 중심으로 커지면서 송무에 강하다는 것만으로는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어려워졌다. ◆ 남들이 덜 보던 상속·도산도 파고들었다 바른은 대형 로펌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던 분야에도 사람을 붙였다. 대표적인 분야가 상속과 자산승계다. 2013년 상속신탁연구회를 만들었고 2022년에는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자산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EP센터를 출범시켰다. 기업 오너와 고액 자산가의 상속은 유언장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세금과 기업 지분, 경영권, 신탁, 가족 간 분쟁이 한꺼번에 얽힌다. 바른은 조세와 가사, 기업법무 변호사를 묶어 이 시장을 따로 키웠다. 도산에서도 새로운 사건을 맡았다. 2018년 레이크힐스순천 회생에서 서울회생법원의 첫 ‘한국형 프리패키지 제도’ 적용을 이끌고 이후 골프존으로의 매각까지 관여했다. 회생 절차와 인수·합병을 한 조직에서 이어간 사건이었다. 최근에는 국제중재와 지식재산권도 확대하고 있다. 기업의 해외 진출과 기술 분쟁이 늘면서 외국변호사를 영입하고 특허 분야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 AI와 디지털자산, 재생에너지 같은 신산업 규제 분야에도 별도 인력을 붙이고 있다. ◆ 1000억원 넘었지만 경쟁자는 더 빨리 컸다 바른은 2023년 매출 1058억원을 기록하며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섰다. 2024년 1064억원, 2025년 1076억원으로 3년 연속 10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적어도 외형에서는 중대형 로펌의 문턱을 넘었다. 문제는 경쟁사들이 더 빨리 컸다는 데 있다. 2025년 YK는 1694억원, 지평은 1327억원을 기록했다. 대륙아주도 1027억원으로 바른을 바짝 따라붙었다. 1000억원대 로펌 사이에서도 변호사 영입과 합병 경쟁이 시작됐다. 기업 고객 평가에서도 아직 상위권과 거리가 있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평가에서 바른은 종합·전문성·서비스 모두 9위를 기록했다. 송무에서 오랫동안 이름을 쌓았지만 기업 고객을 상대로 한 종합 서비스에서는 빅6와 차이가 남아 있다. 2025년 이동훈 대표 체제가 출범한 뒤 바른은 기업자문과 국제중재, 지식재산권을 다음 성장 분야로 잡았다. 같은 해 기업전략연구소도 세웠다. 법률문제가 생긴 뒤 대응하는 송무에서 기업의 사업과 규제를 미리 들여다보는 쪽으로 업무를 넓히려는 움직임이다. ◆ 28년 만에 다시 꺼낸 합병 카드 바른은 지난 9월 14일 법무법인 동인과 합병 추진 MOU를 체결했다. 양측은 합병추진위원회를 만들고 12개월 안에 본계약을 체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통합 법인의 가칭은 ‘바른동인’이다. 아직 합병이 완료된 것은 아니다. 두 로펌의 2025년 매출을 합하면 1877억원이다. 외국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사는 바른 303명, 동인 250명으로 모두 553명이다. 계획대로 합병이 끝나면 매출 기준 국내 7위권으로 올라설 수 있는 규모다. 바른과 동인은 모두 송무와 형사 분야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로펌이다. 양측은 여기에 기업과 금융, 공정거래 등 자문 역량을 합치겠다는 구상이다. 2005년 김장리, 2007년 세종과의 합병을 추진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던 바른이 약 20년 만에 다시 대형 합병 카드를 꺼냈다. 합병의 규모가 큰 만큼 풀어야 할 일도 많다. 500명이 넘는 변호사의 보수와 사건 배분, 고객 충돌, 파트너 지분과 경영구조를 하나로 맞춰야 한다. 송무 중심 조직 두 곳이 단순히 사람을 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자문까지 함께 키울 수 있는지가 합병 이후의 문제다. ◆ ‘바르게 하자’에서 500명 로펌으로 바른의 출발에는 거창한 기업법무 전략이 없었다.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뒤 법원을 나온 젊은 판사들이 사무장과 브로커 없이 사건을 맡아보겠다고 만든 사무실이었다. 그 조직에 대법관과 고법부장, 검사장 출신들이 들어오면서 송무가 커졌고 뒤이어 조세와 금융, 공정거래, 기업자문을 붙였다. 2011년에는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자체 사옥인 바른빌딩도 마련했다. 2023년에는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다. 변호사 6명 규모로 출발했던 조직은 이제 300명 안팎의 변호사가 일하는 중대형 로펌이 됐다. 그동안 바른은 송무의 힘으로 몸집을 키웠다. 그러나 지금 법률시장에서 더 큰 로펌이 되려면 기업자문과 금융, 국제분쟁까지 함께 가져가야 한다. 바른이 동인과 합병을 추진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1998년에는 사무장 없이 사건을 맡는 일이 도전이었다. 2026년에는 500명이 넘는 변호사를 한 조직으로 묶는 일이 새로운 도전이 됐다. 바른의 다음 10년은 이번 합병이 실제로 어떤 조직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2026-09-28 09: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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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 한미·송무 광장, 합병으로 만든 종합로펌
[경제일보] 2001년 6월 7일 서울 신라호텔. 기업자문과 금융에 강했던 법무법인 한미와 송무로 이름을 알린 법무법인 광장이 합병을 선언했다. 새 로펌의 이름을 정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결국 국문 이름은 옛 광장의 ‘법무법인 광장’을 쓰고 영문 이름은 한미가 사용하던 ‘Lee & Ko’를 남겼다. 당시 한미와 광장을 합친 국내외 변호사는 120명을 넘어섰다. 김앤장에 이어 국내 두 번째 규모의 대형 로펌이 등장했다. 기업자문과 금융은 한미가 쌓아온 경험을 가져왔고 송무에는 옛 광장의 강점이 더해졌다. 서로 부족했던 분야를 한 조직 안에 넣으면서 지금의 종합로펌 광장이 출발했다. 광장의 역사를 따라가려면 2001년보다 24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기업자문과 송무가 처음부터 한 조직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자 다른 시장에서 성장한 두 로펌이 자신에게 없던 역량을 상대에게서 찾으면서 2001년 합병으로 이어졌다. ◆ 판사 그만두고 기업들이 있는 도심으로 1977년 이태희 변호사가 서울 중구 소공동에 개인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지금 광장의 출발점이다. 이 변호사는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서울민사지법과 서울형사지법 판사를 지냈다. 이후 미국 유학을 위해 판사직을 그만두고 하버드대 로스쿨을 거쳐 로스앤젤레스의 로펌에서 4년간 일했다. 국내로 돌아온 이 변호사는 법원 주변이 아니라 기업들이 몰려 있던 서울 도심에 사무실을 냈다. 당시 변호사의 업무는 개인 송사와 재판이 중심이었지만 이 변호사는 기업의 계약과 투자, 해외 거래를 자문하는 서구식 로펌을 염두에 뒀다. 한진그룹과 한국전력, 포항제철, 한국은행, 외환은행 등이 초기 고객으로 이름을 올렸다.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과 국내 기업의 해외 거래도 맡았다. 1981년 고광하 변호사가 합류하면서 한미합동법률사무소로 확대됐다. 이태희의 ‘Lee’와 고광하의 ‘Ko’를 따 영문 이름을 ‘Lee & Ko’로 정했다. 1985년에는 법무법인 한미로 조직을 바꿨다. 훗날 고 변호사가 독립한 뒤에도 Lee & Ko라는 이름은 남았다. ◆ 기업자문만으로는 채우지 못한 송무 한미는 기업자문에서 출발했지만 일찍부터 송무를 보강했다. 부장판사를 지낸 유경희 변호사가 합류해 송무를 맡았고 기업자문과 금융, 송무, 지식재산권, 보험 등으로 업무를 나눴다. 1990년대에는 변호사가 사건을 받아 혼자 처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업무 분야별 전문팀도 두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이 커지면서 로펌에 들어오는 일도 달라졌다. 외국인 투자와 해외 증권 발행, 금융거래, M&A가 늘었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기업 구조조정 업무가 쏟아졌다. 한미가 강점을 보이던 기업자문과 금융 업무에는 좋은 시장이었다. 그러나 고객의 분쟁까지 계속 맡으려면 송무 역량을 더 키워야 했다. 기업에 계약과 거래를 자문하다 분쟁이 생기면 대형 송무를 다른 로펌에 맡겨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업자문에서 고객을 확보해도 법정 분쟁까지 이어서 맡는 데 한계가 있었다. 종합로펌으로 커지려면 기업자문과 금융만으로는 부족했다. 한미가 찾던 것은 강한 송무였다. 그 무렵 옛 광장에는 정반대의 고민이 있었다. ◆ 자문 85% 한미, 송무 70% 광장 옛 광장은 박우동 전 대법관과 권광중 전 사법연수원장 등 법원 출신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송무에서 이름을 쌓았다. 재판 경험과 법원 인력에서는 강했지만 국제거래와 기업자문을 단기간에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 기업법무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상황에서 송무만으로 성장하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2001년 당시 한미의 업무 가운데 자문 비중은 약 85%였다. 반면 광장은 송무 비중이 약 70%였다. 한미에는 대형 송무가 필요했고 광장에는 기업자문과 국제거래 경험이 필요했다. 두 로펌의 강점과 약점이 정확히 반대쪽에 놓여 있었다. 그해 초 양측 대표들의 만남에서 합병 이야기가 나왔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해외 대형 로펌과 경쟁하려면 자문과 송무를 모두 갖춘 규모도 필요했다. 필요한 분야를 처음부터 키우는 데 시간을 들이기보다 이미 경험을 축적한 조직과 합치는 길을 택했다. 논의가 시작된 지 몇 달 만에 두 로펌은 합병을 결정했다. 한미는 광장의 송무를 얻었고 광장은 한미의 기업자문과 금융, 국제업무를 얻었다. 2001년 신라호텔에서 출범한 통합 광장은 서로 부족했던 부분을 합쳐 만든 로펌이었다. ◆ 합치는 것보다 어려웠던 한 조직 만들기 합병은 변호사 숫자와 고객 명단을 더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건을 가져온 변호사가 계속 사건을 쥐는 대신 업무 성격에 따라 전문부서가 맡도록 했다. 한미와 광장 출신 변호사 사이의 보수와 사건 배분도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출신 로펌에 따라 이해가 갈리지 않도록 공통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 필요했다. 로펌 합병은 일반 기업의 합병과도 차이가 있다. 공장이나 설비보다 사람이 자산인 조직이다. 이름난 변호사가 빠져나가면 사건과 고객도 함께 이동할 수 있다. 합병 뒤 인사와 보수, 사건 배분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통합의 성패가 갈린다. 광장은 1999년 한미에서 도입했던 운영위원회 제도를 통합 법인의 경영체제로 이어갔다. 설립자나 대표변호사 한 사람에게 인사와 사건 배분이 몰리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기업자문 중심의 한미와 송무 중심의 광장이 갖고 있던 조직문화도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맞춰갔다. 2001년 합병은 부족한 업무 분야를 보완했지만 두 조직을 실제로 하나로 만드는 일은 그 뒤에 시작됐다. 광장이 종합로펌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는 합병 자체보다 합병 이후의 조직 통합이 더 긴 시간을 차지했다. ◆ 창업자가 지분을 후배에게 넘겼다 세대교체에서도 광장만의 선택이 있었다. 이태희 변호사를 비롯한 1세대 변호사들은 퇴임하면서 로펌 지분을 남겨두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2009년 물러나면서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후배들에게 넘기고 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설립자가 지분과 경영권을 계속 쥐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이런 선택은 후배 변호사들의 경영 참여로 이어졌다. 어쏘시에이트로 입사한 변호사가 파트너를 거쳐 경영대표까지 올라갈 수 있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현재 경영을 총괄하는 김상곤 대표변호사 역시 광장에서 경력을 쌓아온 내부 인사다. 개인 사무소에서 출발한 조직이 세대를 거치면서 구성원 중심의 로펌으로 바뀌었다. 2001년 합병이 20년 넘게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런 세대교체가 자리하고 있다. 합병계약은 한 번으로 끝났지만 한미와 광장 출신이 따로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창업자의 지분 정리와 운영위원회 중심 경영은 통합을 굳히는 장치가 됐다. 결국 광장은 업무만 합친 것이 아니었다. 기업자문과 송무를 합친 뒤 사람과 지분, 경영방식까지 하나의 조직 안에 다시 배치했다. ◆ M&A와 송무, 지금도 광장의 두 축 합병 당시 두 로펌이 들고 온 강점은 지금도 광장의 주요 업무로 남아 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2026년 광장의 기업·M&A와 금융, 자본시장, 공정거래 분야 등을 국내 상위권으로 평가했다. 기업·M&A와 공정거래는 국내 ‘Band 1’에 올랐다. 송무 분야에도 약 150명의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으며 전직 대법관과 법관 출신 인력도 다수 포함돼 있다. 최근 실적에서도 M&A의 비중은 크다. 광장은 2025년 SK스페셜티 매각과 아워홈 인수, SK그룹 리밸런싱 거래 등에 참여했다. 프랑스 에어리퀴드의 4조6000억원 규모 DIG에어가스 인수도 자문했다. 2025년 광장의 M&A 분야 매출은 전년보다 30% 이상 늘었다. 2026년 상반기 블룸버그 집계에서도 광장은 국내 M&A 법률자문에서 47건, 42억1600만달러를 기록했다. 거래금액과 건수 모두 김앤장에 이어 2위였다. 1970년대 한미가 시작한 기업자문과 금융 업무가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광장의 주요 수익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송무와 형사 분야에서도 인력을 늘리고 있다. 최근에는 법원장과 형사재판장, 영장전담판사 출신 변호사를 잇달아 영입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 사건 1심에서도 변호인단으로 참여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옛 광장이 들고 온 송무 역시 통합 법인의 한 축을 맡고 있다. ◆ 익숙했던 2위 자리에도 경쟁 붙었다 광장의 앞길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25년 매출은 4309억원으로 전년 4111억원보다 4.82% 늘었다. 외형은 커졌지만 경쟁 로펌의 성장 속도가 더 빨랐다. 태평양이 4402억원, 세종이 4363억원을 기록하면서 광장은 두 로펌에 뒤졌다. 오랫동안 김앤장 다음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광장에도 새로운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다. 매출 규모뿐 아니라 M&A와 금융, 송무 등 주력 분야에서 대형 로펌 간 인재 영입 경쟁도 거세지고 있다. 기업 고객이 로펌을 고르는 기준도 전문성과 서비스, 비용까지 세분화되고 있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조사에서 광장은 종합과 전문성, 서비스 평가에서 각각 5위를 기록했다. M&A·IPO는 4위, 민사·송무와 형사·수사기관 대응도 5위였다. 오랜 업력과 규모만으로 경쟁 로펌을 앞서기 어려워진 시장이다. 반면 2026년 상반기 M&A 실적은 다시 2위로 올라섰다. 공정거래와 자본시장, 국제통상에서도 국제 평가기관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미에서 이어진 기업자문과 옛 광장의 송무를 지금의 시장에 맞게 얼마나 다시 키우느냐가 광장이 풀어야 할 문제다. ◆ 부족한 곳을 합쳐 만든 광장 광장에는 지금도 두 로펌의 흔적이 이름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는 ‘광장’이고 해외에서는 ‘Lee & Ko’다. 하나는 송무로 성장한 로펌에서 가져왔고 다른 하나는 1977년 기업자문으로 출발한 한미에서 이어졌다. 2001년 합병 때 어느 한쪽의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이름만 나눠 가진 것도 아니다. 한미는 기업자문과 금융, 국제업무를 가져왔고 광장은 송무 경험을 보탰다. 합병 뒤에는 사건 배분과 보수 체계를 맞췄고 창업자들이 물러나면서 지분과 경영권도 후배들에게 넘겼다. 광장은 처음부터 모든 분야를 잘했던 로펌이 아니었다. 기업자문에 강했던 조직은 송무가 부족했고 송무에 강했던 조직은 기업자문이 부족했다. 두 로펌은 상대의 강점을 자기 조직 안으로 가져오는 방법을 택했다. 2001년 신라호텔에서 시작한 합병은 25년이 지나 광장의 기업자문과 송무라는 두 축으로 남았다. 부족한 분야를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대신 이미 잘하는 조직과 합쳤다. 광장이 종합로펌으로 커진 출발점이었다.
2026-09-0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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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주 '생산적 금융' 통했다… 하나금융, 상반기 실적 2.4조 '사상최대'
함영주 회장이 이끄는 하나금융그룹이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하나금융은 올 상반기 누적 연결 당기순이익 2조4029억원을 거뒀다. 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보험손익 감소와 기업회생 관련 충당금,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화환산손실 등 대규모 일회성 비용이 반영됐음에도 이자이익과 수수료이익이 함께 성장하면서 그룹의 이익 체력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함 회장은 올해 들어 부동산·담보 중심 금융에서 벗어나 전략산업과 혁신기업, 지역균형발전을 지원하는 생산적 금융을 강조해왔다. 은행의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유지하면서 수수료이익과 비은행 부문을 키우고, 주주환원을 확대해 시장 신뢰를 높이는 전략이 상반기 최대 실적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에서는 하나금융이 단순한 순이익 경쟁을 넘어 수익의 질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생산적 금융으로 성장 방향 전환 함 회장 리더십의 핵심 키워드는 생산적 금융이다. 가계부채 관리 기조가 강화되고 실물경제 지원 요구가 커지면서 금융지주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함 회장은 이런 흐름에 맞춰 기업 생애주기별 자금 지원, 전략산업 투자, 혁신기업 금융 공급을 하나금융의 주요 성장축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2차전지, 바이오, 인프라 등 미래 산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우량 기업 고객과 장기 거래 기반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실물경제 지원과 그룹 성장이라는 두 목표를 함께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함영주 회장의 생산적 금융 전략은 정책 기조에 맞춘 대응이면서 동시에 하나금융의 기업금융 경쟁력을 강화하는 선택”이라며 “가계대출 중심 성장의 한계를 넘어 실물경제와 함께 성장하는 금융모델을 만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수료이익 성장, 수익 체질 바꿨다 상반기 실적에서 눈길을 끄는 건 비이자이익 성장이다. 하나금융의 수수료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7.7% 증가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증권과 자산관리, 외환, 카드, 투자금융 등 다양한 부문에서 수익이 늘면서 은행 이자이익에만 기대지 않는 구조가 강화됐다. 금리 하락기에는 은행 순이자마진이 축소될 수 있고,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이자이익 성장에도 한계가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수수료이익과 비이자이익이 늘어나는 것은 그룹 전체 실적의 안정성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하나금융은 전통적으로 외환과 기업금융에서 강점을 가진 금융그룹으로 평가받아왔다. 여기에 자산관리와 자본시장, 비은행 부문을 결합하면서 이익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주주환원 확대, 시장 신뢰 높였다 주주환원 정책도 함 회장의 경영 성과를 보여주는 중요한 축이다. 하나금융은 안정적인 이익 체력과 자본비율을 바탕으로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최근 금융지주 평가는 단순히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를 넘어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주주에게 어떻게 돌려주는지까지 함께 본다. 하나금융이 최대 실적과 주주환원 확대를 동시에 제시한 것은 함 회장 체제의 자본정책이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안정적인 이익을 바탕으로 자본비율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배당과 자사주 소각으로 성과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금융권에서는 하나금융이 밸류업 흐름 속에서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환·글로벌 강점 살린 실행형 리더십 하나금융의 또 다른 경쟁력은 외환과 글로벌 네트워크다. 하나은행은 옛 외환은행 통합 이후 외국환, 무역금융, 글로벌 기업거래에서 강점을 유지해왔다. 함 회장은 이 강점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무역금융, 자산관리 수요를 연결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의 성장성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사업은 중장기 성장 동력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함 회장의 리더십은 현장형·실행형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1980년 서울은행에 입행해 2015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 초대 은행장을 맡기까지 영업 현장을 두루 거쳤고, 국내 8개 은행계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영업 현장 경험이 가장 풍부한 최고경영자로 꼽힌다. 회장 취임 이후에도 글로벌 금융포럼과 디지털·AI 콘퍼런스, 산업 협력 행사, 스타트업 네트워킹 프로그램에 직접 참석해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이를 성과로 연결시키는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최대실적으로 리딩금융 경쟁력 입증 하나금융의 상반기 최대 실적은 함 회장 체제의 방향성이 숫자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은행은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유지했다. 또 수수료이익은 큰 폭으로 늘었고 주주환원 확대를 통해 시장 신뢰도 높였다. 금융권에서는 하나금융이 KB금융, 신한금융과의 리딩금융 경쟁에서 수익 규모뿐 아니라 수익의 질과 자본 효율성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 함 회장 연임 첫해인 2025년 하나금융은 그룹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연간 순이익 4조원을 돌파했고, 올해 1분기에는 지주사 출범 이후 최대인 분기순이익 1조2100억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역대 최고 규모인 1조8719억원, 주주환원율 46.8%의 환원을 함께 제시하며 실적과 주주가치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함 회장이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은 금융회사의 사회적 역할과 성장 전략을 동시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리더십으로 평가된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하나금융의 상반기 실적은 수수료이익 확대와 주주환원 강화, 생산적 금융 전략이 맞물린 결과”라며 “함 회장이 하나금융의 전통적 강점인 외환·기업금융에 자본시장과 글로벌 전략을 더해 그룹 체질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2026년 08월 25일자 15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8-25 09: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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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금융서 878조 그룹으로…'하나'로 판 키운 하나금융 55년
하나금융그룹의 역사는 한국 금융산업의 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다. 출발은 1971년 6월 설립된 한국투자금융이었다. “한국 최초의 순수 민간 금융중개기관”이라는 게 하나금융의 설명이다. 관 주도 금융의 색채가 강했던 시절, 민간 금융의 가능성을 시험한 이 출발이 훗날 하나은행과 하나금융그룹의 뿌리가 됐다. 한국투자금융은 단순한 단기금융회사가 아니었다. 1980년 영업업무 온라인화를 추진했고 1984년에는 기업손님 전담제도와 어음관리계좌(CMA)를 선보였다. 1988년 수신잔고 1조원을 돌파하며 기업금융, 고객관리, 상품 혁신을 결합한 ‘하나식 금융 DNA’를 형성했다. ◆한국투자금융서 메가뱅크로…후발은행의 판을 바꾸다 하나금융의 1차 변곡점은 1991년이었다. 한국투자금융은 하나은행으로 전환하며 은행업에 진입했다. 초기 성장 방식은 차별화였다. 1993년 국내 최초 클럽상품을 출시했고, 금융권 최초로 ‘하나 비밀보장 서비스 제도’를 시행했다. 1995년에는 국내 최초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를 도입했다. 성장 속도도 빨랐다. 하나은행은 1995년 4월 국내 은행 역사상 최단기간인 3년 9개월 만에 총수신 10조원을 돌파했다. 1996년 런던 주식시장에 글로벌 주식 예탁증서(GDR)를 상장했고, 1997년에는 파이낸스아시아로부터 ‘한국의 최우수 은행’으로 선정됐다. 외환위기 이후 성장은 인수·합병으로 속도를 냈다. 1998년 충청은행을 인수해 충청하나은행을 출범시켰고 1999년 보람은행과 합병했다. 2002년에는 서울은행과 합병해 통합 하나은행을 출범시켰다. 하나금융의 2차 도약은 금융그룹화였다. 하나금융은 2005년 12월 출범했다. 은행, 증권, 캐피탈, 보험, 연구소 등 관계사들이 시너지를 내는 종합금융서비스 네트워크를 지향했다. 2005년 대한투자증권을 인수했고 이후 하나대투증권, 하나UBS자산운용 등으로 증권·자산운용 기반을 넓혔다. 결정적 변곡점은 외환은행 인수였다. 하나금융은 2012년 한국외환은행을 자회사로 편입했고, 2015년 KEB하나은행을 출범시켰다. 2016년 전산통합, 2019년 인사·급여·복지제도 통합을 거쳐 2020년 하나은행 브랜드로 재정비했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을 품으며 △기업금융 △외환 △글로벌 네트워크 △수출입 금융 경쟁력을 넓혔다. 하나카드 출범도 포트폴리오 강화의 한 축이었다. 하나금융은 2010년 하나SK카드를 출범시켰고 2014년 하나카드를 출범시켰다. 이후 하나캐피탈, 하나생명, 하나자산신탁, 하나손해보험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은행 의존도를 낮췄다. ◆채용비리 그늘 속 사상 첫 순익 4조…878조 금융그룹으로 성장 그러나 하나금융의 역사에 성장의 장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은행 채용비리 의혹은 2010년대 은행권 채용비리 수사 국면에서 불거졌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하나은행장 재직 시절 채용 과정에 부당하게 관여했다는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아왔다.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에서는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이후 대법원은 올해 1월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다만 남녀를 차별해 고용한 혐의는 유죄로 확정됐다. 이 대목은 금융회사가 채용, 인사, 내부통제 전반에서 더 정교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현재 하나금융은 과거의 후발 은행이 아니다. 2005년 12월 하나금융지주 출범은 대도약의 변곡점이었다. 하나금융은 출범 당시 하나은행, 대한투자증권, 하나금융경영연구소, 하나아이앤에스 등 4개 자회사와 하나증권, 하나생명, 하나캐피탈, 대한투자신탁운용 등 손자회사를 거느린 금융지주회사로 출발했다. 은행 중심 구조를 넘어 비은행 부문을 강화해 균형 잡힌 금융그룹으로 성장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숫자로 보면 변화는 더 선명하다. 하나은행의 2005년 순이익은 9068억원이었지만 2025년 하나금융그룹은 연간 당기순이익 4조29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순이익 4조원을 넘어섰다. 약 20년 만에 순이익 규모가 4배 이상 커진 셈이다. 그룹 핵심이익은 11조3898억원, 비이자이익은 2조2133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말 총자산은 신탁자산 203조4101억원을 포함해 878조8억원에 달했다. 올해 출발도 좋다. 하나금융은 올 1분기 연결 당기순이익 1조21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한 수치로, 외환은행 통합 이후 최대 분기 실적이다. 1분기 이자이익은 2조5053억원, 수수료이익은 6678억원으로 집계됐다. 하나은행의 1분기 순이익은 1조1042억원, 하나증권도 WM과 투자금융(IB) 성장에 힘입어 순이익 1033억원을 냈다. ◆생산적 금융·AI·글로벌…규모의 금융에서 가치의 금융으로 하나금융의 미래 성장 전략은 △생산적 금융 △WM △글로벌 △디지털·인공지능(AI)로 압축된다. 하나금융은 올해 생산적 금융 공급 규모를 17조8000억원으로 확정했다. 첨단 인프라와 AI, 모험자본, 지역균형발전, 핵심 첨단산업, K-밸류체인·수출공급망 지원에 자금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자산관리와 비이자이익 확대도 핵심이다. 하나금융은 1995년 국내 최초 PB 서비스를 도입한 경험을 갖고 있다. 고령화, 상속·증여 수요, 퇴직연금 시장 확대, 글로벌 자산배분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WM은 은행과 증권의 핵심 전장이다. 글로벌 금융도 중요하다. 외환은행 통합 이후 확보한 외국환, 수출입 금융, 해외 네트워크 경쟁력을 동남아와 미국, 유럽 등으로 확장해 나갈 방침이다. 디지털과 AI 전환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고객 데이터를 얼마나 안전하고 정교하게 분석하는지, AI를 심사·상담·리스크관리·자산관리에 얼마나 책임 있게 적용하는지가 승부처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하나금융의 역사는 이름 그대로 ‘하나로 합치는’ 역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자본 효율, 비이자이익, 글로벌 수익성, 디지털 경쟁력, 내부통제, 소비자보호가 동시에 요구된다”며 “대출 성장만으로 이익을 키우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만큼 생산적 금융과 자산관리, 글로벌, AI를 연결해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나금융은 규모의 금융을 넘어 미래 산업과 고객 자산, 글로벌 시장을 연결하는 가치의 금융으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2026년 05월 26일자 15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5-26 08: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