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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6000의 허상…반도체 착시에 가려진 한국 경제의 민낯
[경제일보] 코스피가 장중 7000선을 돌파했다가 급락해 6000선을 겨우 지켰다. 주가지수가 한국 경제의 부활을 보증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반도체 대형주가 지수를 끌어올렸지만 산업 현장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일부 기업의 실적 개선이 마치 한국 경제 전체의 도약인 듯한 착시를 낳고 있다. 지수의 상승과 경제의 체력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일부 기업의 눈부신 실적을 국가 경제 전체의 경쟁력으로 포장하는 순간 구조개혁의 절박성은 사라지고 위기의 경고음은 묻힌다.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주가 하락만이 아니라 주가 상승이 만들어낸 위험한 자기만족이다. 반도체의 저력은 부정할 수 없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첨단 반도체 수요 확대는 우리 기업에 귀중한 기회다. 그러나 반도체의 호황이 산업 전반의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석유화학은 공급과잉과 중국발 저가 공세에 시달리고, 철강은 보호무역 장벽과 탄소 규제에 직면해 있다. 배터리와 전기차 산업도 수요와 가격 경쟁, 해외 생산 확대 등 복합적인 과제에 맞서고 있다. 고금리와 인건비, 원자재 부담에 시달리는 중소·중견기업의 투자 여력도 충분하지 않다. 산업마다 회복 속도와 여건이 다른데 증시의 상승만으로 경제 전반이 살아났다고 볼 수는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반도체 호황이 경제정책의 성적표마저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수출과 대형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면 정부는 경제가 회복 궤도에 올랐다고 자평하기 쉽다. 그러나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과 생산, 설비투자, 고용, 소비가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 따로 살피지 않는다면 정책 진단부터 빗나간다. 대형 반도체 기업의 호실적이 협력업체의 수익성 개선과 내수 회복, 양질의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성장의 온기는 경제 전반에 퍼지지 않은 것이다. 지수는 높아도 민생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번영을 선언하기 어렵다. 시장의 숫자와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의 간극부터 살펴야 한다. 반도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국가 경제의 위험을 키운다. 반도체는 기술 변화와 국제 수요, 공급 능력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교차하는 경기순환 산업이다. AI 투자가 둔화하거나 경쟁 기업의 공급 확대와 기술 추격으로 가격과 수익성이 꺾이면 지금의 상승 동력도 약해질 수 있다. 특정 산업이 수출과 기업 실적, 증시를 동시에 떠받치는 구조에서는 업황 변화가 경제 전체의 충격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호황일 때 위험을 분산하지 못한 경제는 불황이 닥친 뒤 더 큰 비용을 치른다. 반도체가 잘나갈 때야말로 다음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코스피 상승을 치적으로 내세우거나 반도체 투자 확대만으로 미래가 보장된 듯 행동한다면 무책임하다. 필요한 것은 특정 산업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복원하는 구조개혁이다. 석유화학은 범용제품 중심에서 고부가가치 소재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바꾸고, 철강은 저탄소 공정과 고급강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배터리와 전기차는 원가 절감과 기술 차별화, 공급망 다변화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AI·로봇·바이오·첨단소재 등 미래 산업도 연구개발과 인재 육성, 시장 창출을 통해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워야 한다. 보조금에 의존하는 산업정책이 아니라 기업이 혁신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여건을 바꾸는 정책이 필요하다. 규제 개혁은 그 출발점이다. 불합리한 인허가와 중복 규제,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은 기업의 투자 결정을 늦추고 자본과 인재의 해외 유출을 부추긴다. 정부는 규제의 존치 필요성을 원점에서 검토하고 노동·세제·입지·연구개발 제도를 산업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공정경쟁과 안전, 환경이라는 원칙은 지키되 혁신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는 걷어내야 한다. 기업 역시 정부 지원에 기대기보다 기술 투자와 생산성 향상, 투명한 지배구조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 경제의 건강성을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코스피와 반도체 수출액만 볼 것이 아니라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 증가율, 제조업 가동률, 설비투자, 중소기업 수익성, 고용과 실질소득을 함께 살펴야 한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협력업체와 지역경제, 근로자의 소득으로 확산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성장의 폭이 좁고 과실이 한쪽에 집중된다면 높은 지수는 번영의 증거가 아니라 경제의 취약성을 가리는 가림막일 수 있다. 코스피 6000은 자축할 숫자가 아니라 냉정한 자기 점검을 요구하는 시험대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것은 축복이지만, 반도체 없이는 경제의 활력을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는 위험하다. 반도체의 성공을 한국 경제 전체의 성공으로 착각하는 순간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은 사라진다. 정부는 장밋빛 지수에 기대 현실을 미화하지 말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과 민생 회복을 기준으로 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 증시의 높이가 아니라 경제의 저변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승에 취한 환호가 아니라 반도체 이후까지 내다보는 냉철한 결단이다.
2026-10-14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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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코스피, 4대 금융지주만큼 배당하자
[경제일보] 코스피가 7800선을 넘어서며 8000선을 눈앞에 뒀다. 한국 증시는 그동안 가보지 않은 새역사를 걷고 있다. 반도체 대형주의 질주, 외국인 자금 유입, 기업 밸류업 기대가 맞물리며 시장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주가지수가 높아졌다고 한국 자본시장이 곧바로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의 진격만이 아니다. 배당의 진격, 주주환원의 진격이다. 그 모범은 4대 금융지주에서 나오고 있다. KB금융은 보유 자사주 전량인 발행주식총수의 3.8%, 당시 주가 기준 약 2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6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사주 매입·소각도 추진한다. 신한금융은 주주환원율 상한을 없애고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성장률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하나금융은 총주주환원율 50% 달성 시점을 2027년에서 올해로 앞당기려 하고, 우리금융도 총주주환원율을 지난해 36.8%에서 올해 40%대로 끌어올릴 전망이다. 한때 ‘이자 장사’ 비판을 받던 금융지주들이 오히려 한국 상장사의 주주환원 기준을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이 흐름은 금융권만의 과제가 아니다. 한국 자본시장 전체가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원칙이다. 상장기업은 자본시장에서 국민의 돈을 모아 성장한다. 개인투자자, 연기금, 기관투자자, 외국인 투자자가 기업의 미래에 자본을 맡긴다. 그렇다면 기업이 벌어들인 성과 역시 합리적인 방식으로 주주에게 돌아가야 한다. 주주는 단순한 자금 제공자가 아니라 기업 성장의 위험을 함께 부담한 동업자다. 물론 기업이 번 돈을 모두 배당하라는 뜻은 아니다. 미래 투자는 필요하다. 설비투자, 연구개발, 인재 확보, 신사업 진출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투자는 배당을 미루는 만능의 명분이 될 수 없다. 성장은 환원의 반대말이 아니다. 좋은 기업은 성장과 환원을 함께 설계한다. 많이 벌면 더 많이 나누고, 미래 투자가 필요하면 그에 맞춰 자본을 배분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한국 증시의 고질병이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결국 여기에서 비롯됐다. 낮은 배당, 불투명한 지배구조, 대주주 중심 의사결정, 자사주 미소각, 물적분할에 따른 기존 주주 가치 훼손이 한국 기업의 평가를 눌러왔다. 주가는 기대를 먹고 오르지만, 배당은 신뢰를 먹고 쌓인다. 기대만 있는 시장은 뜨겁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신뢰가 있는 시장만이 깊어진다. 특히 자사주 소각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원칙이 돼야 한다. 자사주 매입은 주가 방어의 신호일 수 있지만, 소각 없는 자사주는 언제든 시장에 다시 나올 수 있는 잠재 물량이다. 한국에서는 자사주가 대주주의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심도 오래됐다. 금융지주들이 자사주 매입에 그치지 않고 소각을 병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이 원하는 언어는 ‘사겠다’가 아니라 ‘없애겠다’가 돼야 한다. 배당도 마찬가지다. 배당은 단순한 현금 지급이 아니다. 기업이 주주를 동업자로 인정한다는 신호다. 개인투자자는 더 이상 단기 시세만 좇는 주변부가 아니다. 개인종합관리계좌(ISA), 연금저축, 개인형퇴직연금(IRP),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노후를 준비하는 국민 투자자가 늘고 있다. 이들에게 배당은 한국 경제가 국민에게 돌려주는 성과 배분의 통로다. 국민이 장기 보유하려면 기업은 보유할 이유를 줘야 한다. 그 가장 확실한 이유가 배당이다. 정부와 국회도 역할을 해야 한다. 배당소득 과세체계를 합리화하고 장기보유 주주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자사주 소각과 물적분할 관련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배당을 늘리고 주주환원을 확대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도록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자본시장은 구호가 아니라 규칙으로 움직인다. 좋은 기업을 칭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기업이 유리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코스피 8000선은 한국 경제의 자랑스러운 성취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주주와 일부 기관투자자만의 잔치가 돼서는 안 된다. 국민이 투자했고, 국민연금이 보유했으며, 개인투자자가 위험을 함께 감당했다면 성과도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은 반기업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의 주인이 주주라는 자본주의의 기본을 회복하는 일이다. 진격의 코스피는 이제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 국민의 자본으로 성장한 기업이라면 국민에게 나눠 더 큰 기업이 돼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국민의 기업’이다. 그런 기업이 많아질 때 코스피 8000. 9000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새로운 비전이 될 것이다.
2026-05-12 10:2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