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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증시, 천수답 시장을 끝내야 한다
[경제일보] 비가 오면 살고, 비가 오지 않으면 말라 죽는다. 천수답의 운명이다. 지금 한국 증시가 그렇다.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대가 커져도, 외국인 수급과 미국 기술주 흐름, 환율과 금리, 지정학 리스크가 흔들리면 시장은 하루아침에 출렁인다. 오를 때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처럼 달리지만 빠질 때는 안전벨트 없는 롤러코스터처럼 추락한다. 최근 코스피 장세는 그 단면을 숫자로 보여줬다. 지난 23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910.71포인트, 9.99% 급락한 8203.84에 거래를 마쳤다. 전일 종가 대비 낙폭으로는 역대 최대 수준의 충격이었다. 그런데 하루 뒤인 24일 시장은 다시 급반등했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152.95포인트, 1.86% 오른 8356.79로 출발했다. 며칠 전에는 9000선을 넘보던 지수가 하루 만에 8200선으로 밀리고 다시 하루 만에 반등을 시도하는 장세가 반복된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승장인지, 조정장인지, 거품 붕괴의 전조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더 불안한 것은 지수의 반등에도 공포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는 24일 94.81까지 치솟았다. 장중에는 97선을 넘어서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주가는 올랐는데 공포지수도 함께 오른 셈이다. 이는 시장이 단순히 ‘싸졌으니 사자’는 반등 국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단순한 변동성이 아니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외부 변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를 안고 있었다. 외국인이 사면 오르고 팔면 빠지는 수급 구조, 반도체와 일부 대형주에 집중된 산업 쏠림, 상승장마다 반복되는 레버리지 투자 확대가 시장의 흔들림을 키웠다. 증시가 경제 전체의 체온계가 아니라 특정 산업과 외국인 매매의 체온계처럼 움직인다면 충격 흡수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시장은 홀로 움직이지 않는다. 금리와 환율, 기업 실적과 정책 신뢰, 투자 심리와 국제 정세가 얽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미국 반도체주가 흔들리면 한국 지수도 흔들리고 달러가 강해지면 외국인 이탈을 걱정한다.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유가와 환율이 먼저 반응하고, 미국 금리 전망이 바뀌면 국내 성장주와 기술주가 흔들린다. 외부 충격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충격을 흡수할 둑과 저수지가 없다면 매번 위기는 반복된다. 천수답 시장에서 벗어나려면 국내 장기자금의 힘을 키워야 한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이 단기 매매의 보조자가 아니라 시장의 하방을 받치는 축이 돼야 한다. 한국 가계 자산은 여전히 부동산에 치우쳐 있다. 노후자금이 자본시장으로 안정적으로 흘러 들어가고 배당과 성장의 과실을 장기적으로 나누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한국 증시는 외국인 매수세라는 빗물만 기다리지 않는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 증시가 선진시장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는 지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다. 투자자가 기업 이익의 주인으로 대우받는다는 확신이 약했기 때문이다. 배당은 들쑥날쑥했고 자사주 매입은 소각보다 주가 방어용 이벤트로 소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시장이 믿는 것은 말이 아니라 반복된 행동이다. 벌면 나누고, 투자하면 설명하고, 실패하면 책임지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산업 저변도 넓혀야 한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심장이지만 심장만으로 몸 전체가 건강해질 수는 없다. 바이오, 방산, 조선, 전력기기, 로봇, 콘텐츠, 금융, 친환경 인프라 등 다양한 산업이 자본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코스닥도 단기 테마장이 아니라 혁신기업의 성장판이 돼야 한다. 지수 상승의 과실이 소수 대형주에 머물면 시장은 넓어지지 않고 넓지 않은 시장은 충격에도 약하다. 레버리지 투자 관리도 필요하다. 빚을 낸 투자와 고위험 ETF가 과도하게 늘어나면 하락장에서 매도 압력은 증폭된다. 상승장에서는 수익률을 키우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급락장에서는 시장 전체를 흔드는 화약고가 된다. 금융당국은 투자자의 자유를 존중하되 위험 설명, 증거금 관리, 고위험 상품 판매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증권사도 거래대금 확대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고객이 오래 살아남아야 시장도 오래 간다. 제도 인프라도 선진시장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 실패는 한국 시장이 아직 글로벌 투자자에게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접근하기 쉬운 시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외환시장 접근성, 영문 공시, 배당 절차, 공매도와 결제 인프라를 국제 기준에 맞춰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제도는 도입보다 작동이 중요하다. 변동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시장은 본래 흔들린다. 그러나 좋은 시장은 흔들리지 않는 시장이 아니라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 시장이다. 비가 오지 않아도 물길이 있고, 가뭄이 와도 저수지가 있으며, 홍수가 나도 배수로가 있는 논이 좋은 논이다. 한국 증시도 이제 비를 기다리는 시장에서 물길을 만드는 시장으로 가야 한다. 외국인 자금이라는 하늘만 바라보지 말고 국내 장기자금이라는 저수지를 만들고 기업 신뢰라는 수로를 놓고 제도 안정성이라는 둑을 쌓아야 한다. 그것이 롤러코스터 장세를 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꾸는 길이다.
2026-06-25 15: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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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8000시대…이제 다음을 준비하자
[경제일보] 코스피 8000시대가 열렸다. 숫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시장의 공기는 달라졌다. 5000선 돌파 때는 기대가 앞섰고, 6000선에서는 의심과 환호가 엇갈렸다. 7000선을 지나 8000선을 넘자 이제 다른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 오를 것인가’가 아니라 ‘이 상승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가 2026년 5월 26일 종가 기준 사상 처음 8000선을 돌파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55% 오른 8047.51에 마감했고, 삼성전자는 2.22%, SK하이닉스는 5.72% 상승했다. 다음 날에도 반도체 대형주는 신고가 행진을 이어갔다. 5월 27일 SK하이닉스가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섰고, 한국 코스피가 올해 들어 세계 주요 지수 가운데 가장 강한 흐름을 보였다. 이번 랠리의 주역은 단연 반도체다. 인공지능 서버, 고대역폭메모리,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다시 한국 증시의 심장부로 밀어 올렸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수출 엔진이고, 기술 주권의 방파제이며, 자본시장의 가장 강력한 실적 근거다. 주가가 오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 유동성 장세와 달리 이번 상승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익 전망 상향과 산업 슈퍼사이클이라는 실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언제나 축포 소리 속에서 다음 위험을 키운다. 로이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고, 기술주가 향후 이익 전망의 대부분을 떠받치는 구조가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 달간 코스피 상장사의 17%만 주가가 올랐고, 반도체 ‘투톱’ 쏠림이 뚜렷하다. 지수는 8000인데, 체감 수익률은 투자자마다 크게 다르다. 이것이 8000시대의 첫 번째 역설이다. 코스피 8000은 끝이 아니라 시험대다. 시장이 한 단계 더 성숙하려면 주가 상승을 제도 상승으로 연결해야 한다. 주주친화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자본시장 신뢰의 기본 조건이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이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에만 쓰이고 일반주주는 의사결정의 주변부에 머문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이름만 바꿔 다시 돌아온다. 주가가 올랐다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주가 상승은 개혁을 미룰 이유가 아니라 개혁을 완성할 기회다. 그런 점에서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 개혁은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이미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집중투표제 확대, 감사위원 분리선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은 시장의 기대를 키운 핵심 재료였다. 한국의 개정 상법이 새로 취득한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 소각하도록 해 자사주가 지배력 방어 수단으로 활용돼 온 관행을 겨냥했다. 다만 제도는 법전에 적힌 문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실질적 주주환원으로 이어지는지, 물적분할과 중복상장 과정에서 기존 주주의 이익이 보호되는지,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가 수탁자 책임을 제대로 행사하는지, 불공정거래에 대한 처벌이 시장의 공포가 될 만큼 강한지까지 봐야 한다. 자본시장 개혁은 지수를 올리는 이벤트가 아니라 시장의 습관을 바꾸는 일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수익의 다각화다. 반도체가 한국 증시의 앞문을 열었다면, 다음 방은 전력기기, 원전, 조선, 방산, 자동차, 로봇, 바이오, 금융, 콘텐츠, 인프라 기업들이 채워야 한다. AI 시대의 반도체 수요는 전력망과 냉각장치, 데이터센터, 소재·부품·장비, 보안,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어진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반도체 주가만의 축제로 끝낼 것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의 투자 기회로 넓혀야 한다. 금융권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은행 예금과 부동산에 갇혀 있던 가계 자산을 생산적 자본으로 이동시키려면 장기투자 상품, 배당형 상품, 연금계좌, ISA, 퇴직연금의 질을 높여야 한다. 개인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 급등주를 따라붙는 통로가 아니라 산업 성장의 열매를 장기적으로 나눠 갖는 구조다. 레버리지 ETF와 신용융자가 시장의 불쏘시개가 될 수는 있어도, 국민 자산 형성의 기둥이 될 수는 없다. 특히 빚투의 확산은 경계해야 한다. 최근 한국 증시 랠리가 개인투자자의 신용거래와 레버리지 상품으로 더 가팔라지고 있으며, 증거금 부채가 크게 늘었다. 거래대금이 늘고 계좌가 불어나는 것은 시장의 활력이다. 그러나 빚으로 산 주식은 작은 조정에도 큰 손실을 만든다. 상승장에서는 모두가 용감해 보이지만, 하락장에서는 레버리지가 먼저 무너진다. 정부도 시장의 환호에 취해선 안 된다. 세제 혜택, 배당소득 과세 정비, 장기투자 유인, 불공정거래 근절, 공시 투명성 강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특정 지수 목표를 앞세워 시장을 관리하려 해서는 안 된다. 시장은 방향을 제시받을 수는 있어도 끌려가서는 안 된다. 자본시장 선진화의 핵심은 정부의 손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 선명해지고, 기업과 투자자가 그 규칙을 신뢰하는 데 있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주주환원은 주가가 오를 때만 내놓는 시혜가 아니라 자본 조달의 대가다. 배당을 늘리고, 불필요한 자사주는 소각하며, 자본비용보다 낮은 수익률의 투자는 과감히 접어야 한다. 총수 일가의 지배권 방어보다 기업가치 제고가 우선이라는 원칙이 자리 잡아야 한다. 8000시대의 기업은 더 이상 ‘한국 시장이라서 이 정도면 된다’고 말할 수 없다. 글로벌 자금은 한국 기업을 삼성전자·SK하이닉스만으로 보지 않는다. 이사회, 공시, 배당, 승계, 소수주주 보호까지 함께 본다. 고전은 늘 흥분한 시대에 차가운 생명수 역할을 한다. <맹자>에는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번영의 순간에 위험을 생각하는 나라와 기업은 오래 간다. 반대로 좋은 시절이 계속될 것이라 믿는 순간, 시장은 가장 비싼 수업료를 요구한다. 코스피 8000시대에 필요한 태도는 도취가 아니라 절제다. 비관이 아니라 준비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저평가의 늪에 갇혀 있었다. 기업은 돈을 벌어도 주주는 소외됐고, 지배구조는 복잡했으며, 불공정거래 처벌은 약하다는 불신이 컸다. 이제 그 늪에서 빠져나올 기회가 왔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문을 열었고, 자본시장 개혁은 그 문을 닫히지 않게 만드는 경첩이다. 문이 열렸다고 집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코스피 8000은 한국 경제에 주어진 상장이 아니다. 숙제장이다. 첫 줄에는 반도체 경쟁력을 더 키우라고 적혀 있다. 둘째 줄에는 주주친화 정책을 되돌리지 말라고 적혀 있다. 셋째 줄에는 특정 업종 쏠림을 넘어 산업과 수익의 지평을 넓히라고 적혀 있다. 넷째 줄에는 개인투자자의 열기를 장기 자산 형성의 문화로 바꾸라고 적혀 있다. 지금 필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코스피 8000을 자축하되 8000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음 단계의 한국 자본시장은 더 높은 지수가 아니라 더 깊은 신뢰로 증명돼야 한다. 반도체가 끌어올린 시장을 제도가 떠받치고, 주주가 믿는 기업이 자금을 끌어오며, 국민의 자산이 생산적 투자로 흐를 때 비로소 코스피 8000은 일시적 기록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새 출발선이 될 것이다.
2026-05-28 12: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