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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명 위한 특수분유부터 셀렉스까지…매일유업이 57년간 찾은 '영양의 빈칸'
[경제일보] 매일유업은 지난 57년간 소비자에게 부족한 영양을 찾아 새로운 시장으로 연결해왔다. 1969년 우유가 부족하던 시기 낙농사업으로 출발해 1974년 영유아용 조제분유 생산에 나섰고 이후에는 일반 분유를 먹기 어려운 환아를 위한 특수분유까지 개발하며 영양 수요를 세분화했다. 이러한 방식은 유아식에만 머물지 않았다. 우유 속 유당을 소화하지 못하는 소비자에게는 '락토프리 우유'를 내놓고 중장년층의 단백질 섭취 수요에는 '셀렉스'를 선보였으며 우유 대신 식물성 음료를 찾는 소비자를 겨냥해 두유와 오트음료로 제품군을 넓혀왔다. 질환·연령·소화 능력·식습관에 따라 달라지는 미충족 수요를 찾아 영양 설계와 유가공 기술로 제품화해온 것이다. 우유와 분유에서 시작한 기술이 50여년 뒤 중장년·고령자·환자의 영양관리까지 이어진 배경도 여기에 있다. '낙농보국'에서 시작한 57년…우유·분유로 식품사업 기반 구축 출발점은 우유였다. 매일유업의 전신 한국낙농가공은 1969년 2월 '낙농보국'을 창업정신으로 출범했다. 같은 해 5월 정부와 김복용 창업주가 각각 절반씩 출자해 자본금 3억원으로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우유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원유를 공급할 낙농 기반 확보가 먼저였다. 매일유업은 1972년 미국산 처녀우 850마리와 호주산 임신우 850마리를 들여왔고 이듬해에는 국내 최초로 젖소를 비행기로 수송하며 원유 공급 기반을 넓혔다. 이렇게 확보한 낙농 기반을 바탕으로 1973년 호남공장을 준공해 테트라팩 우유 생산에 들어갔으며 1974년에는 중부공장을 가동해 조제분유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생산 기반을 갖춘 뒤에는 해외로 눈을 돌려 1981년 매일분유를 중동에 수출하며 국내에서 축적한 유가공 역량을 해외시장으로 연결했다. 우유와 분유에서 쌓은 식품 제조·유통 역량은 냉장주스, 발효유, 컵커피와 같은 인접 식품군으로 이어졌다. 1992년 국내 최초 냉장주스 '썬업'을 출시한 데 이어 컵커피·발효유·두유까지 제품군을 넓히며 소비자의 다양한 식음 수요를 공략했다. 이 과정에서 매일유업이 반복해온 방식은 단순히 제품 종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영양과 식생활에서 아직 충족되지 않은 수요를 찾아 새로운 제품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2017년에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회사 구조를 재편했다. 기존 매일유업은 그룹의 지주회사인 매일홀딩스로 바뀌고 우유와 분유 등 유가공 사업은 새로 출범한 매일유업이 맡는 방식으로 분리됐다. 회사의 법인 구조는 달라졌지만 생산시설과 브랜드, 유가공 사업의 역사는 1969년 창립 때부터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350명 위한 특수분유부터 락토프리까지…작은 영양 수요도 제품으로 매일유업의 사업 방식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매출 규모가 큰 우유나 커피보다 1999년부터 생산하고 있는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자용 특수분유에서 찾을 수 있다.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자는 특정 아미노산 등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거나 생성되지 않아 모유와 일반 분유는 물론 고기와 쌀밥 같은 일상적인 식품도 자유롭게 섭취하기 어렵다. 매일유업은 이런 환아가 필요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문제가 되는 아미노산은 제거하고 비타민과 미네랄 등 필수 영양성분은 보충한 특수 유아식을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이렇게 시작한 특수분유 생산은 올해로 27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 8종 12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특수분유는 효율성이 높은 사업과는 거리가 있다. 2024년 기준 국내 선천성 대사이상 환자는 약 350명 수준에 불과한 데다 일반 제품과 성분이 섞이지 않도록 생산 때마다 일반 분유 공정을 멈추고 설비를 별도로 세척한 뒤 소량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일유업은 20년 넘게 특수분유 생산을 이어오고 있다. 수익성보다 반드시 필요한 수요에 대응하는 이 같은 방식은 매일유업이 강조해온 ‘한 명의 아이도 건강한 삶에서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철학을 실제 제품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특정 소비자가 기존 제품을 섭취하기 어려운 문제를 제품으로 해결하는 방식은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도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 출시한 '소화가 잘되는 우유'다. 우유 속 유당을 소화하기 어려운 소비자를 위해 미세한 필터로 유당을 제거하는 UF(Ultra Filtration) 공법을 적용했다. 출시 당시 국내에서는 락토프리라는 개념이 생소했지만 유당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 소비자 수요가 확인되면서 시장도 빠르게 성장했다. 닐슨 집계 기준 국내 락토프리 우유 시장은 2019년 300억원대에서 2023년 약 870억원으로 두 배 이상 확대됐고 '소화가 잘되는 우유'는 같은 시기 시장점유율 44%로 1위를 기록했다. 2024년에는 출시 19년 만에 누적 판매량 8억개를 넘어서는 등 우유 섭취에 불편을 느끼던 소비자를 새로운 유제품 수요층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2008년 선보인 상하목장은 소비자 선택 기준이 가격에서 원료와 생산 방식, 품질까지 넓어지는 흐름을 겨냥했다. 일반 백색우유와 가격 경쟁을 벌이기보다 유기농 원유와 생산 과정에 가치를 두는 소비자층을 공략하면서 차별화된 시장을 구축했다. 락토프리 우유가 소화 여부에 따른 수요를 겨냥했다면 상하목장은 원료와 생산 방식에 대한 선호를 제품에 반영해 동일한 우유 시장 안에서도 소비 기준을 한층 세분화한 사례다. 분유 기술을 중장년·환자까지…셀렉스·메디웰로 '평생 영양' 공략 인구구조 변화는 매일유업이 공략해야 할 영양 수요의 방향도 바꿨다. 영유아 인구 감소로 우유와 분유 시장의 성장 여력이 줄어드는 사이 고령화와 건강관리 수요는 커졌고 매일유업은 이에 맞춰 분유에서 축적한 영양 설계 역량을 중장년층으로 확장했다. 2018년 선보인 성인영양식 브랜드 '셀렉스'가 대표적이다. 같은 해 식품업계 최초로 근감소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매일사코페니아연구소를 설립해 중장년층의 근육과 단백질 섭취를 연구했다. 이후 △분말형 단백질 △RTD 음료 △프로틴바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제품군을 넓혔고 셀렉스 누적 매출은 지난해 5월 5000억원을 넘어섰다. 분유가 성장기 영유아에게 필요한 영양을 설계한 제품이었다면 셀렉스는 연령이 높아지면서 부족해지기 쉬운 단백질과 영양 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생애주기별 영양 설계는 고령자와 환자로도 이어져 매일유업은 전문 균형영양식 '메디웰'을 통해 건강 상태에 따라 필요한 영양을 보충하는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올해는 이 사업을 한 단계 더 세분화하며 한림대학교의료원, 푸드테크 기업 슈팹과 환자·고령자 맞춤형 영양식 개발을 위한 협력을 시작했다. 의료기관의 임상 역량과 식품 기술을 결합해 건강 상태에 따라 필요한 영양을 설계하는 것이 목표다. 아이의 연령과 상태에 맞춰 분유를 설계했던 방식이 중장년, 고령자, 환자의 상태별 영양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새로운 영양 수요를 공략하는 과정에서는 기존 유가공 기술도 활용되고 있다. 매일유업은 지난 7월 국산 우유를 UF 공법으로 3배 농축한 단백질 RTD 음료 '퓨어틴'을 출시했다. 330㎖ 한 팩에 단백질 23g을 담으면서 유당은 제거했다. 2005년 락토프리 우유에 활용했던 여과 기술을 최근 커지는 단백질 음료 시장에 적용한 것이다. 영양의 빈칸은 식습관에서도 나타났다. 건강과 환경, 소화 문제 등을 이유로 우유 대신 식물성 음료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매일유업도 콩, 아몬드, 귀리를 기반으로 한 제품군을 구축했다. 기존 매일두유에 아몬드브리즈를 더한 데 이어 2021년 귀리를 활용한 '어메이징오트'를 선보였다. 유제품을 주력으로 해온 매일유업이 우유를 마시지 않는 소비자까지 겨냥해 제품군을 확대한 것이다. 올해 8월에는 상하목장 브랜드의 첫 두유 제품인 '콩물두유' 3종도 출시했다. 국산 서리태를 활용한 제품으로 기존 유기농 유제품 중심이던 상하목장 브랜드를 식물성 음료까지 확장했다. 올해 하반기에도 매일유업이 식물성 음료를 주요 성장 품목으로 꼽고 있다는 점에서 일회성 신제품보다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에 가깝다. 이 흐름을 놓고 보면 매일유업의 고객은 점차 연령과 원료의 경계를 넘어섰다. 매일유업은 영유아용 분유부터 유당불내증 소비자를 위한 락토프리 우유, 중장년층 대상 단백질 제품, 환자·고령자용 균형영양식, 식물성 음료까지 고객별 생애주기와 식습관에 따라 제품군을 세분화하고 있다. 뉴트리션 영업익 338%·수출 26% 증가…백색우유·해외 수익성은 과제 이러한 전략은 올해 실적으로도 나타났다. 매일유업의 2026년 상반기 연결 매출은 949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392억원으로 54.3% 늘었다. 2분기만 보면 매출 4800억원, 영업이익 204억원으로 각각 4.8%, 64.4% 증가했다. 특히 조제분유와 성인영양식 등이 포함된 뉴트리션 사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올해 상반기 뉴트리션 매출은 120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3.2%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1.6%에서 12.7%로 높아졌다. 수익성 개선 폭은 더 컸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8억원으로 338.3% 늘었고 2분기만 보면 매출 632억원으로 16.4% 증가한 가운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2억원에서 27억원으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유가공 부문 매출 증가율이 1%대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뉴트리션 사업이 매일유업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분유 사업에는 최근 출생아 반등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출생아 수는 14만5804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4% 늘었다. 지난 6월 출생아 수도 2만3111명으로 15.6% 증가해 24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증가세를 이어갔다. 매일유업도 출생아 증가에 따른 조제분유 판매 호조를 상반기 실적 개선 요인으로 꼽았다. 뉴트리션 사업의 성장세에 맞춰 조직 구조도 재정비했다. 매일유업은 2021년 헬스앤뉴트리션 사업을 분리해 설립한 100% 자회사 매일헬스뉴트리션을 올해 5월 다시 흡수합병했다. 이를 통해 뉴트리션 사업의 글로벌 성장전략을 본사 차원에서 추진하는 동시에 온·오프라인 영업과 상품개발, 마케팅 역량을 한데 묶어 경영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별도 법인에서 키워온 셀렉스 사업을 본체로 편입해 기존 유가공·영양 연구 역량과 판매조직 간 시너지를 확대하려는 것이다. 국내에서 축적한 영양 제품 경쟁력은 해외시장에서도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매일유업의 수출액은 53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6.4% 늘어 같은 기간 2.5% 증가에 그친 내수 매출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수출 증가에 힘입어 전체 매출에서 해외가 차지하는 비중도 4.6%에서 5.6%로 높아지면서 해외사업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해외 소비자와의 접점도 넓히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매일두유와 셀렉스 등 8개 제품을 미국 올리브영 패서디나점과 온라인몰에 입점시키며 현지 판매 채널을 확대했다. 저당·고단백 두유와 콜라겐 제품 등을 앞세워 국내에서 세분화해온 식물성·건강관리 수요를 미국의 'K-웰니스' 소비로 연결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특수분유 역시 해외시장으로 공급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매일유업은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헬스케어 계열사 알리건강을 통해 선천성 대사질환자용 특수분유를 현지에 공급해왔으며 이를 통해 국내 수백명의 환자를 위해 유지해온 제품을 해외 희귀질환 환자까지 연결하고 있다. 이처럼 제품별 해외 판매 접점은 넓어지고 있지만 이를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수익성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올해 상반기 수출이 빠르게 증가했음에도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에 그쳤고 지난해 해외 종속기업인 북경매일유업유한공사와 매일호주유한회사는 각각 7억원과 6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해외 판매 규모를 확대하는 것과 현지 사업 기반을 안정적인 이익으로 연결하는 것은 별개의 과제인 만큼 향후 해외사업의 이익 창출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뉴트리션과 식물성 음료가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매일유업의 출발점이자 핵심 사업인 백색우유의 부담은 여전히 크다. 회사는 올해 상반기 원유 공급과잉으로 백색우유 부문에서 손실이 발생한 데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포장재와 수입 원부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치며 원가 부담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상반기 말 매일유업의 원유 매입가격은 ℓ당 1359.97원으로 지난해 말 1357.71원, 2024년 말 1343.9원보다 높아졌다. 백색우유 소비가 구조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원유 매입 부담은 쉽게 낮추기 어려워 수익성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매일유업은 하반기 백색우유의 손익 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조제분유와 셀렉스 등 뉴트리션, 식물성 음료의 국내외 판매를 확대해 사업 포트폴리오 전반의 수익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매일유업이 이제 증명해야 할 것은 '영양의 빈칸'을 발견하는 감각보다 그 빈칸을 충분한 규모의 시장으로 키워내는 힘이다. 국내 유업시장의 구조적 한계 속에서 뉴트리션과 식물성 음료의 외형과 수익성을 함께 높이고 해외에서도 국내에서 검증한 제품 경쟁력을 안착시켜야 한다. 지난 57년간 세분화된 소비자 수요를 제품으로 구현해온 역량이 향후 시장 확대와 수익성 제고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매일유업의 다음 성장 곡선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본질적인 영양 수요를 발굴해 보다 건강한 식음료로 제품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50년 이상 축적한 영양 설계 기술과 지속적인 연구개발(R&D), 소비자 건강 증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온 진정성이 고객 신뢰와 브랜드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프리미엄 유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식물성 음료와 성인·장노년층 영양식 등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것"이라며 "중국에서 조제분유와 식물성 음료, 셀렉스 등을 판매하고 미국에서도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등 수출 활로를 확보해 해외시장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6-08-31 17: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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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연, 美 보스턴서 글로벌 사업화 승부…KIST 'G-KIC-NST 미주' 출범
[경제일보]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연구실에서 개발한 원천기술을 미국 시장에서 직접 검증하고 사업화하는 전진기지가 문을 열었다. 연구성과의 기술이전에서 멈추지 않고 제품화와 임상, 투자유치까지 연결해 출연연 기술의 글로벌 사업화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G-KIC-NST 미주’ 개소식을 열고 운영을 시작했다고 31일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정한 미주 권역 전략 거점으로, 정부 차원의 첫 보스턴 과학기술 거점이다. 거점이 자리 잡은 곳은 케임브리지 혁신센터(CIC)다. 지난 7월 8일 매사추세츠주 비영리법인 등록을 마쳤으며 센터장을 포함해 국내 파견과 현지 채용 등 6명 안팎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현지 규제·시장·투자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도 꾸린다. 출연연 기술사업화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히는 것은 기술이전 이후 단계다. 특허나 원천기술이 기업에 넘어가더라도 실제 제품화 과정에서는 현지 규제와 임상, 추가 연구, 자금 조달 등 새로운 장벽을 넘어야 한다. G-KIC-NST 미주는 이 공백을 직접 메우는 역할을 맡는다. 현지 수요가 확인된 출연연 기술을 병원·기업·벤처캐피털(VC)과 연결해 기술검증(PoC)과 후속 연구를 지원하고, 1대1 기술 파트너링과 국제 컨퍼런스 등을 통해 기술이전·현지 창업·투자유치까지 이어지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보스턴을 거점으로 정한 것은 바이오 사업화에 필요한 생태계가 한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와 MIT를 비롯한 대학, 대형병원, 글로벌 제약사, 바이오 벤처와 투자기관이 밀집해 있어 출연연 기술의 현지 검증과 사업 파트너 발굴에 유리하다. 실제 개소식과 함께 열린 협력성과 발표 세미나에서는 KIST와 휴온스바이오파마, 휴온스USA가 첨단바이오 분야 협력을 위한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해외 거점을 개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기술 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이번 거점의 또 다른 특징은 특정 연구기관의 해외사무소가 아니라 출연연 공동 활용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과기정통부가 정책과 제도적 지원을 맡고 NST가 출연연 기술과 해외거점을 연결한다. KIST는 주관기관으로 운영과 성과관리를 담당하며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한국화학연구원 등이 전문성과 인력을 지원한다. 이는 독일 자를란트에 위치한 KIST 유럽연구소와도 역할이 구분된다. KIST 유럽연구소가 한·EU 공동연구와 유럽 기술협력의 가교 역할을 강화해왔다면, G-KIC-NST 미주는 미국 특히 보스턴의 바이오 산업 생태계와 출연연 기술을 연결해 사업화와 시장 진출에 무게를 둔 거점이다. KIST 유럽연구소 역시 최근 기술사업화와 기업의 유럽 진출 지원까지 역할을 넓히고 있다. 오상록 KIST 원장은 이번 거점을 “바이오 연구의 성과를 논문과 특허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시장 개척으로 확장하는 임무중심연구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성패는 사무실을 열었느냐가 아니다. 출연연 기술 몇 건을 미국 기업과 실제 공동개발로 연결하고, 그중 몇 건을 임상·투자·제품화까지 끌고 가느냐가 성과의 기준이 될 전망이다. 정부가 출연연 연구성과의 글로벌 사업화를 강조하는 만큼 향후에는 논문과 특허뿐 아니라 해외 기술이전과 투자유치, 글로벌 매출 등 사업화 성과가 새로운 평가 지표로 부상할 가능성도 크다.
2026-08-31 10: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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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 향 따라 걷고 하동차 맛보고…'한 잔의 경쟁력' 찾는 사람들
[경제일보] 28일 서울 강남구 SETEC에서 열린 '2026 서울 카페&베이커리페어 시즌2' 행사장에 들어서자 갓 내린 커피의 향긋한 원두 향과 달콤한 디저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부스 곳곳에서는 커피와 차, 각종 음료를 따라주는 손길이 분주했다. 관람객들은 작은 시음컵을 들고 부스를 옮겨 다니며 맛을 비교했고 진열된 베이커리와 디저트를 하나씩 맛보기도 했다.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의 목적은 제각각이었다. 카페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가부터 실제 매장을 운영하는 카페 사장, 평소 커피와 음료를 좋아해 전시회를 찾은 일반 관람객까지 한 공간에 모였다. 이 가운데 카페 운영자들의 질문은 한층 구체적이었다. 관심 있는 제품 앞에 멈춰 맛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공급 단가와 매장 적용 레시피, 함께 구성하기 좋은 메뉴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 '한 잔'을 판매하기 위해 맛, 가격, 활용도를 동시에 따져보는 모습이었다. 올해 서울 카페&베이커리페어 시즌2는 지난 27일부터 오는 30일까지 SETEC에서 열린다. 주최 측이 밝힌 행사 규모는 약 230개 업체, 350개 부스다. 커피와 원두부터 차, 베이커리, 음료, 카페 장비와 시스템 등 카페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제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5가지 원두 한자리서 비교…홍철책빵이 고른 커피는 원두 전문 납품업체 '카페딕셔너리' 부스에서는 풍미와 산미, 블렌딩 구성이 다른 원두 5종을 직접 비교해볼 수 있었다. 2011년 문을 연 카페딕셔너리는 로스팅 원두 납품을 비롯해 △드립백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커피 교육 △매장 운영 관련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커피 전문업체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원두와 드립백 등을 선보이는 동시에 카페 사업자와 예비 창업자를 대상으로 납품 상담도 진행했다. 부스에 진열된 5종의 원두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은 제품을 묻자 관계자는 망설임 없이 'G'와 'T'를 꼽았다. G는 브라질·콜롬비아·에티오피아·인도네시아 원두를 블렌딩한 제품이다. 고소함과 단맛을 중심으로 은은한 산미와 꽃향을 더해 전체적인 균형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방송인 노홍철이 서울 후암동에서 운영하는 '홍철책빵'에 공급되는 원두도 G 블렌딩이라고 설명했다. 납품 과정도 흥미로웠다. 카페딕셔너리 관계자는 "홍철책빵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이후 직접 카페로 원두 샘플을 가져가 시연과 테스트를 진행했다"며 "테스트를 거친 뒤 실제 납품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T 블렌딩은 초콜릿 풍미와 은은한 꽃향을 앞세웠다. 코스타리카 따라주, 에티오피아 시다모, 브라질 원두를 섞어 다크초콜릿을 연상시키는 고소한 맛에 은은한 화사함을 더했다. 강한 산미가 없어 특히 디저트와 함께 판매하기 좋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현장에서 5종의 커피를 차례로 맛보니 동일 블렌딩 원두라도 차이는 제법 선명했다. 어떤 커피에서는 고소한 맛이 먼저 올라왔고 다른 잔에서는 산미와 향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한 종류씩 따로 마실 때보다 연달아 맛보니 각 블렌딩이 겨냥한 맛의 차이를 구분하는 재미도 컸다. 가격 역시 카페 운영자에게는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현장 안내 자료에 따르면 △G와 T 블렌딩은 1㎏당 2만5000원 △데일리 커피를 표방한 'The' 블렌딩은 2만원 △콜롬비아 100% 디카페인 원두는 3만1000원으로 책정됐다. 하동 찻잎에 유자·돌배·쑥까지…마운티가 빚은 '하이엔드 티' 원두 향이 진하게 퍼지던 전시장 안에서 마운티(MOUNTEA) 부스는 다른 결의 향을 내고 있었다. 하동 찻잎, 유자, 돌배, 쑥 등 국내 농산물로 우린 차가 찻잔에 담겨 관람객을 맞았다. 농업회사법인 마운티는 경남 하동을 거점으로 차와 농산물 가공품을 만드는 업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하동 덖음 녹차 '아록(芽綠)'을 비롯해 발효 홍차 '홍잭살', 순수유자차, 돌배차, 어린쑥차 등 5종을 선보였다. 관람객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제품은 돌배차였다. 마운티 관계자는 "돌배차가 제일 인기가 많다"며 "향이 좋고 카페인이 들어 있지 않아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직접 시음한 제품 가운데 유독 눈에 띈 것은 '순수유자차'였다. 평소 카페나 마트에서 접하는 유자차의 진하고 달콤한 맛을 예상하고 한 모금 마셨지만 예상과 달랐다. 설탕을 넣지 않아 강한 단맛이 거의 없었고 대신 유자 자체의 향이 은은하게 입안을 맴돌았다. 달콤한 유자청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처음에는 다소 생소했지만 마신 뒤에는 깔끔한 향이 남았다. 녹차, 홍잭살, 돌배차, 어린쑥차 역시 원료별 개성이 뚜렷했다. 커피 원두를 산미·고소함·향으로 비교했다면 이곳에서는 같은 지역에서 난 농산물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풍미가 두드러졌다. 마운티가 '하이엔드 티'를 내세우는 배경에는 원료 수확 방식도 한몫한다. 마운티 관계자는 "전용 밭에서 사람이 직접 찻잎을 한 잎씩 골라 수확한다"며 "기계로 수확하면 잎뿐 아니라 줄기 등 다른 부분이 함께 섞일 수 있는데 필요한 잎만 선별해 따는 방식으로 맛과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행사장을 채운 수많은 시음컵은 결국 카페 한 잔의 경쟁력을 찾기 위한 테스트장이었다. 원두와 차, 디저트부터 각종 장비까지 선택지는 다양했지만 관람객들의 관심은 분명했다. 소비자의 입맛을 붙잡을 새로운 맛과 매장에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을 찾는 것이었다. 카페&베이커리페어는 치열해진 카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업계의 고민을 압축해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2026-08-28 17: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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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포스·앤트로픽, '클로드포스' 공개…기업 데이터 읽고 업무까지 실행
[경제일보] 세일즈포스와 앤트로픽이 기업용 인공지능(AI)의 역할을 단순 정보 검색과 문서 작성에서 실제 업무 실행 단계로 확대한다.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가 세일즈포스의 고객 데이터와 영업 파이프라인, 업무 규칙 등에 접근해 분석하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양사의 플랫폼을 결합한다는 구상이다. 28일 세일즈포스는 앤트로픽의 클로드에 세일즈포스의 기업용 AI 인프라인 '엔터프라이즈 하네스'를 결합한 '클로드포스'를 선보인다고 밝혔다. 양사는 이번 협력을 통해 기업의 데이터와 워크플로, 비즈니스 로직, 실행 환경, 거버넌스 등에 클로드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업무 전반에서 AI 에이전트 활용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양사의 첫 결과물은 '세일즈포스 인 클로드'다. 영업 담당자가 별도의 세일즈포스 화면으로 이동하지 않고 클로드 안에서 세일즈포스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플러그인으로, 미팅 준비와 딜 상태 검토, 파이프라인 분석 등 37개의 사전 구축된 영업 스킬을 구현했다. 클로드는 세일즈포스와 슬랙에 저장된 기업 정보를 바탕으로 영업 상황을 분석하고 필요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실시간 매출 맥락을 기반으로 파이프라인을 검토하거나 업데이트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생성형 AI가 사용자의 질문에 답하거나 문서를 작성하는 데 그쳤다면, 기업 내부 시스템과 연결해 실제 업무 과정에 개입하는 형태로 확장된 것으로 평가된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공동창업자 겸 CEO는 "우리는 프론티어 지능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높은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믿는다"며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기업들은 수십 년간 세일즈포스에 구축해 온 고객 정보와 비즈니스 맥락에 클로드를 연결하고, 이를 사용해 실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통합 모델은 AI가 기업 데이터를 가져와 사용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권한과 업무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관리자가 한 차례 연결하면 인증과 권한이 중앙에서 관리되며 별도의 사용자별 추가 설정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최근 기업들은 AI의 활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내부 데이터에 대한 접근 통제를 중요 과제로 꼽고 있다. 고객 정보나 영업 자료 등 민감한 기업 데이터를 AI가 직접 처리할 경우 누가 어떤 데이터에 접근하고 어떤 업무를 실행할 수 있는지를 통제하지 못하면 생산성 향상만큼 보안 위험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일즈포스는 기존 기업의 데이터와 업무 규칙을 AI의 실행 과정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해당 문제를 해결한다는 전략이다. 클로드가 임의로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세일즈포스에 구축된 권한 체계와 비즈니스 규칙을 기반으로 작업하도록 해 기업이 기존 통제 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규제 산업을 겨냥한 보안 체계도 강조했다. 세일즈포스는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아마존 베드록을 통해 클로드를 세일즈포스의 '신뢰 경계' 내에서 제공할 수 있도록 설정했다. 세일즈포스는 이를 통해 금융 등 규제 수준이 높은 산업에서도 기업의 데이터와 AI 작업을 보호하면서 도메인 특화 AI를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클로드가 세일즈포스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는 통합도 진행된다. 클로드는 세일즈포스의 '에이전트포스'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아틀라스 추론 엔진의 추론 모델로 활용된다. 에이전트포스 바이브와 에이전트포스 코워커를 구동하고 에이전트 빌더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슬랙 역시 양사 통합의 주요 축이다. 세일즈포스는 업무용 협업 플랫폼 슬랙에 클로드를 내장해 사람과 AI 에이전트가 같은 업무 공간에서 협업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클로드는 슬랙봇의 기본 AI 모델로 활용되며 팀의 의사결정 지원과 코딩 등 업무 영역으로 활용 범위를 넓힌다. 이처럼 양사가 서로의 플랫폼에 AI와 업무 시스템을 깊게 연결하는 것은 기업용 AI 시장의 경쟁 구도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과거에는 어떤 AI 모델이 더 높은 벤치마크 점수와 추론 성능을 갖췄는지가 중요했다면, 최근에는 해당 모델이 기업의 실제 데이터와 업무 시스템에 접근해 얼마나 많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세일즈포스 인 클로드'는 현재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파일럿 형태로 제공되고 있으며 내달 오픈 베타 출시가 예정됐다. 추가 사전 구축 스킬도 올해 하반기부터 순차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회장 겸 CEO는 "이번 파트너십은 글로벌 선도 AI와 선도 CRM의 강점을 하나로 결합한다"며 "클로드의 뛰어난 추론 능력과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업무 흐름, 관리 체계를 결합해 사고하고 추론하며 실행하는 동적인 업무 환경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2026-08-28 1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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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버리고 원전 품었다…130년 두산의 '변신 본능'
[경제일보] 두산의 130년 역사를 관통하는 것은 ‘무엇을 지켰느냐’보다 ‘무엇을 버렸는가’에 더 가깝다. 1896년 서울 종로4가 배오개의 박승직상점에서 출발해 화장품·주류·식음료를 거쳤고, 지금은 발전설비와 건설기계에서 원전·가스터빈·로봇·반도체 소재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창업의 계보는 이어졌지만 그 안을 채운 사업은 수차례 바뀌었다. 올해 창립 130주년을 맞은 두산은 1915년 화장품 ‘박가분’을 제조했고 1950년대 동양맥주를 세우면서 소비재 기업의 색채가 짙어졌다. 1978년에는 OB그룹에서 두산그룹으로 명칭을 바꿨다. 지금의 원전·가스터빈 사업과는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 역사다. 팔아서 다시 샀다…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몸집을 키워오던 두산은 창업 100주년을 전후해 오히려 사업을 덜어내기 시작했다. 1995년부터 구조조정에 착수해 한국네슬레·한국3M·한국코닥 등 합작기업 지분을 정리했다. 1997년에는 OB맥주 음료사업을 코카콜라에 4322억원에 넘겼다. 부동산 매각 등을 더하면 6100억원 이상의 현금 유입 효과가 예상되는 규모였다. 외환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이었다. 모태사업인 OB맥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8년 지분 50%를 벨기에 인터브루에 넘겼다. 박용곤 당시 회장은 “두산은 지속돼야 한다. 하지만 가업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알짜기업도 필요하면 팔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사업을 지키는 것보다 기업을 지속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이었다. 같은 해 9개 계열사를 ㈜두산으로 통합했다. 당시 438%였던 ㈜두산 부채비율은 이듬해 말 164%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될 만큼 재무구조 개선이 빠르게 진행됐다. 외환위기 속에서 두산은 다음 사업으로 이동할 여력을 확보했다. 구조조정은 몸집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확보한 자금을 다시 M&A에 투입했다. 2001년 한국중공업, 2005년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했고 2007년에는 49억달러를 들여 미국 밥캣 등을 품었다. 오늘날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으로 이어지는 핵심 축이 이때 만들어졌다. 그룹의 정체성도 바뀌었다. 대우종합기계의 2003년 실적을 포함하면 중공업 비중은 1999년 50.2%에서 84.3%까지 높아지는 반면 식품·주류 등 소비재는 40.4%에서 11.5%로 떨어졌다. 단순한 사업 다각화를 넘어 그룹의 중심축 자체를 바꾼 것이다. 다만 빠른 변화에는 값이 따랐다. 밥캣 인수 직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북미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두산은 2008년 밥캣에 10억달러를 추가 투입했다. 공격적 M&A는 성장의 동력이었지만 차입과 재무 부담도 키웠다. 두산의 ‘변신 DNA’가 강점인 동시에 위험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2020년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위기가 닥치자 두 번째 구조조정이 현실화했다. 글로벌 석탄화력 발주 감소와 국내 신규 원전 일감 축소, 두산건설 지원 등으로 누적된 재무 부담이 겹쳤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총 3조6000억원을 지원했고 두산은 3조원 이상의 자구안을 추진했다. 이번에도 선택은 과감했다. 클럽모우CC와 두산솔루스,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를 매각했고 핵심 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도 현대중공업그룹에 넘겼다. 1990년대 ‘필요하면 핵심사업도 판다’는 방식이 20여 년 만에 반복된 셈이다. 원전·가스터빈·로봇, 세 번째 변신 현재 두산은 클린에너지·스마트머신·첨단소재를 3대 핵심사업으로 두고 다시 사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중심에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있다. 대형 원전 기자재와 가스터빈에서 소형모듈원전(SMR)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 수요가 커지는 흐름도 기회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 세계 다섯 번째로 대형 가스터빈 독자 기술을 확보한 뒤 지난해 미국 빅테크 기업과 380MW급 가스터빈 5기 공급계약을 맺었다. SMR에서는 미국 X-energy와 Xe-100 16기에 필요한 핵심 소재 생산능력 예약계약을 맺었고, 이달 테라파워의 미국 와이오밍주 나트륨 원자로 핵심 기자재 제작 계약도 확보했다. 과거 한국중공업 인수로 확보한 원전 제조 기반이 20여 년 뒤 글로벌 SMR 공급망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두산 관계자는 “시장과 산업 환경이 바뀌면 기존 사업에 머무르기보다 필요한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아왔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는 원전·가스터빈·SMR의 핵심 기술과 제작 역량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확대하면서 장기 서비스와 유지보수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가는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실적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올해 2분기 매출 4조7248억원, 영업이익 314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3.4%, 15.9% 증가했다. ㈜두산 자체사업도 AI 서버와 고성능 반도체용 전자소재 수요를 타고 매출 7652억원, 영업이익 2120억원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냈다. 다만 세 번째 변화의 성공을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두산로보틱스는 2분기 매출이 294% 증가한 176억원이었지만 영업손실 144억원을 냈다. 두산밥캣 역시 미국 관세 환급이라는 일회성 효과를 제외하면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2024년에는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아래로 옮기려던 사업재편이 주주가치 훼손 논란과 금융당국의 제동 끝에 철회되기도 했다. 두산의 130년은 한 업종을 끈질기게 지킨 역사가 아니다. 1990년대에는 소비재를 덜어내고 중공업을 샀고, 2020년에는 다시 핵심 자산을 팔아 그룹을 재정비했다. 이제 그 중공업 기술을 원전·가스터빈·SMR로 확장하고 로봇과 첨단소재를 새로운 축으로 세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문제는 변신의 속도가 아니라 비용”이라며 “과거 공격적 M&A가 재무 부담을 남겼다면 이제는 신사업 수익성과 재무 안정성, 주주와 시장의 신뢰까지 함께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산이 130년간 보여준 것은 ‘바꿀 수 있는 능력’”이라며 “세 번째 변신의 승부는 과거와 같은 비용을 반복하지 않고 다시 한번 바꿀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아주경제 2026년 08월 27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8-27 18: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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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튼, '서비스로 버는 AI' 증명했다…1조 유니콘 등극
[경제일보] 인공지능(AI) 서비스 플랫폼 기업 뤼튼테크놀로지스가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평가를 받으며 유니콘 기업에 올라섰다. 거대언어모델(LLM)이나 AI 반도체가 아닌 실제 소비자가 사용하는 AI 서비스와 수익화 성과를 기반으로 1조원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AI 경쟁의 무게중심이 모델 성능뿐 아니라 이용자 확보와 서비스 수익화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풀이된다. 뤼튼은 26일 10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누적 투자액은 약 2300억원으로 늘었다. 신규 투자자로 미국 벤처캐피털 코어라인벤처스와 유진자산운용이 참여했으며 기존 투자자인 굿워터캐피탈, 앤틀러 글로벌, 산업은행, 우리벤처파트너스, 캡스톤파트너스 등도 후속 투자에 나섰다. 뤼튼의 기업가치는 지난해 시리즈B 당시 3000억원대 중반으로 평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1년5개월여 만에 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으로 뛰면서 성장 속도를 입증했다. 핵심 동력은 해외 사업이다. 지난 5월 북미에서 출시한 AI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플랫폼 ‘OOC’는 출시 3개월 만에 월매출 100억원을 넘어섰고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추월했다. 뤼튼은 이를 바탕으로 올해 매출이 지난해 471억원의 4배를 웃도는 2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뤼튼은 범용 AI 서비스 ‘뤼튼’과 AI 캐릭터 챗 플랫폼 ‘크랙’을 운영하며 일본과 북미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특히 AI와 대화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AI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집중 공략하면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다. ◆ 글로벌 확장과 ‘안전한 AI’가 다음 과제 1조원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만큼 앞으로는 성장세를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해야 하는 컨슈머 AI 시장에서 이용자 규모뿐 아니라 유료 전환과 재방문, 해외 매출의 지속성이 중요해졌다. 이용자 보호도 강화한다. 뤼튼은 지난 7월 AI 윤리·철학, 인지·심리, 법학 전문가로 구성된 사용자위원회를 출범시켰고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의 AI 캐릭터 챗봇 자율규제 가이드라인 마련에도 참여하고 있다. 청소년 이용자가 약 10%인 크랙에는 이용시간 제한과 부모 동의 절차 강화, 결제한도 하향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세영 뤼튼 대표는 “창업 후 지난 5년간 대한민국 대표 AI 서비스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글로벌 경쟁력까지 증명한 결과 이번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며 “글로벌 확장과 서비스 고도화에 주력해 시장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AI 서비스 기업으로서 더 빠르게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뤼튼의 유니콘 등극은 국내에서도 소비자가 실제 비용을 지불하는 AI 서비스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향후 관건은 OOC와 크랙 등 해외 서비스의 성장을 일회성 매출이 아닌 지속 가능한 글로벌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2026-08-26 10: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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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충식 KAIST 총장 "승부수는 피지컬 AI"…전 교과목 AI 체계로 바꾼다
[경제일보] 배충식 KAIST 총장이 인공지능(AI) 시대의 승부처로 ‘피지컬 AI’를 지목하고 교육·연구·산학협력 전반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범용 AI 모델 자체에서 미국·중국과 규모 경쟁을 벌이기보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제조·로봇·자동차 산업에 AI를 결합해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기술로 경쟁력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배 총장은 지난 24일 서울에서 출입기자 간담회를 열고 “승부수는 피지컬 AI”라며 “제조업의 역량을 고도화하면서 AI를 적용해 피지컬 AI로 국부를 창출하고 우리나라를 강국으로 만드는 게 KAIST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KAIST는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로보틱스, 디지털트윈 등 현실 세계와 연결되는 AI 연구를 집중 확대할 계획이다. ◆ 중국과 ‘규모’ 대신 연구 밀도로 승부 배 총장이 피지컬 AI를 선택한 배경에는 한국 산업의 구조적 강점이 있다. 한국은 반도체·자동차·조선·전자·제조업 등 AI가 실제 적용될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어 소프트웨어와 물리적 시스템을 결합하면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배 총장은 “규모 면에서는 중국이 더 크기 때문에 우리는 밀도 있고 고급화된 연구를 해야 한다”며 대덕연구단지의 정부출연연구기관과 KAIST의 연구역량을 전략기술별로 연결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대학 단독 연구에 머물지 않고 출연연과 공동연구를 확대해 제한된 자원을 집중시키겠다는 것이다. 산업계와의 접점도 강화한다. 기업 수요를 연구 초기부터 반영하는 ‘AI 자율랩’을 구축해 AI가 실험 설계와 수행, 데이터 분석 등을 지원하고 연구 결과를 산업 현장에 보다 빠르게 적용하는 체계를 만든다. KAIST는 산업체 위성연구실과 공동연구센터 유치도 확대할 계획이다. ◆ AI를 잘 쓰는 학생 아닌 ‘AI를 통제하는 인재’ 교육 개편은 더 파격적이다. KAIST는 내년 3월부터 학부 전 학년과 대학원 전 과정의 모든 교과목에 AI 활용 수준을 적용한다. 수업은 AI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기초 역량을 키우는 단계, AI를 활용해 학습 범위를 확장하는 단계, AI를 직접 설계하고 주도하는 단계로 구분한다. 인문·사회와 기초과학에서는 ‘AI 프리’ 교육을 강화한다. 읽기와 쓰기, 발표,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는 능력을 먼저 키우고 이후 AI를 활용해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반면 전공·융합 영역에서는 AI를 적극 활용하고, AI 관련 핵심 과목에서는 학생이 직접 AI를 설계하고 검증하도록 한다. 배 총장은 “교수들이 아는 것만 교육하면 학생들이 교육을 버리게 된다”며 “AI를 활용해 실습하고 터득하게 하는 등 AI 시대에 맞게 교육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AI를 특정 전공의 도구가 아니라 모든 학문의 공통 역량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다. 다만 모든 수업에서 AI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영역과 적극 활용해야 하는 영역을 구분한다는 점이 이번 개편의 핵심이다. ◆ 교육 넘어 연구·창업·행정까지 ‘AI 네이티브’ 이번 구상은 배 총장이 취임 당시 제시한 ‘Beyond Series’의 구체화다. KAIST는 ‘Beyond AI’를 비롯해 혁신적 연구·창업, 효율적이고 열린 대학, 탄소중립, 글로벌화를 5대 발전 전략으로 제시했다. AI를 교육뿐 아니라 연구·창업·행정까지 대학 운영 전반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창업교육도 신입생부터 강화한다. 연구성과가 기술사업화와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학부·대학원 과정에서 창업을 하나의 진로로 인식하도록 하고, 창업 동문과 현장 전문가를 활용한 교육도 추진한다. 행정 분야에서는 AI 기반 디지털 원스톱 시스템 구축과 인사 절차 간소화도 추진한다. 한편 배충식호 KAIST의 핵심은 AI 전공자를 더 많이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모든 전공자가 AI를 이해하고 활용하되, AI에 의존하지 않고 문제를 정의할 수 있는 인재를 만드는 것에 가깝다. 동시에 연구에서는 피지컬 AI에 자원을 집중하고 출연연·기업과 공동 연구를 확대해 기술사업화까지 연결한다는 그림이다. 배 총장은 “KAIST가 세계 최고 대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학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KAIST를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만드는 국가혁신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2026-08-25 15: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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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B, 지역 청년의 '정착'을 담다…'위대한 삼촌' 시즌2 론칭
[경제일보] SK브로드밴드가 지역에 정착해 새로운 사업을 일군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위대한 삼촌: 로컬히어로의 탄생’ 시즌2를 선보인다. 지방소멸과 청년 취업난을 단순한 사회문제로 다루는 대신 지역을 직접 선택한 청년들의 창업과 정착 과정을 통해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기회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SK브로드밴드는 베리미디어, 연합뉴스TV JOB과 공동 제작한 ‘위대한 삼촌: 로컬히어로의 탄생’ 시즌2를 24일 첫 방송한다고 밝혔다. 농촌·어촌·산촌을 뜻하는 ‘삼촌(三村)’을 제목에 담은 프로그램으로, 이번 시즌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사업을 일군 청년 CEO 6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경남 고성에서는 타조를 활용한 체험형 관광을 추진하는 김현희 타조랜드 대표가, 경북 문경에서는 20년간 방치된 고택을 관광·문화공간으로 되살린 도원우·김이린 부부가 등장한다. 경북 상주에서는 K-펫푸드 수출에 도전하는 안은진 애니콩 대표의 사업 여정을 담는다. 제주 애월의 손인준 그린비즈 대표는 200만원으로 시작한 양봉 사업을 체험형 사업으로 키웠고, 경북 구미 김범석 휘록 대표는 엘크 사육을 기반으로 녹용 제품 개발에 나섰다. 제주 구좌에서는 파지 채소를 활용해 그래놀라를 만드는 안주희 열일체인지 대표의 이야기도 소개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역의 자원이나 문제를 사업 기회로 바꿨다는 점이다. 단순한 성공담보다 창업 과정에서 겪은 고민과 시행착오, 지역에 정착하면서 마주한 현실을 담아 로컬 창업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 시즌1보다 방송 시간 앞당기고 소재 넓혀 시즌2는 시즌1보다 방송 시간을 앞당겼다. 지난해 시즌1이 오후 3시30분에 방송됐다면 이번 시즌은 평일 오후 5시30분으로 편성했다. 내레이션은 시즌1의 남희석에 이어 아나운서 오영실이 새롭게 합류했다. 소재도 농축산업, 식품, 관광, 공간재생 등으로 넓혔다. 지역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집중 조명해 지역채널의 콘텐츠 차별화를 꾀했다. SK브로드밴드는 지역채널을 활용한 여행·농촌체험 등 로컬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 역시 지역의 사람과 사업을 콘텐츠로 보여주며 지역채널의 역할을 ‘지역 정보 전달’에서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플랫폼으로 넓히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위대한 삼촌: 로컬히어로의 탄생’ 시즌2는 10월 2일까지 평일 오후 5시30분 B tv 케이블 채널 1번 ‘ch B tv’와 리빙TV, 연합뉴스TV JOB 등에서 방송된다. 박인서 SK브로드밴드 케이블방송사업담당은 “지역 소멸과 청년 이탈, 취업난이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한줄기 희망을 찾고자 했다”며 “이들의 선택과 여정이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울림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2026-08-24 14: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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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살리고 사람 잃는 전환은 안 된다
[경제일보] 철강의 위기가 공장 담장을 넘어 일자리로 번지고 있다. 충남 당진이 지난 21일부터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이 됐다. 현대제철을 비롯한 철강기업들이 밀집한 이 도시에서 철강업과 금속제품 제조업을 중심으로 고용 감소가 나타나자 정부가 고용 충격이 더 커지기 전에 안전망을 가동한 것이다. 23일 충남도는 정부 지원과 자체 일자리 정책을 연계해 고용 유지부터 직업훈련, 전직·재취업, 생계 지원까지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지정은 단순한 지역 고용대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구조적 위기가 기업 손익계산서를 넘어 지역사회에 청구서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당진은 포항·광양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철강도시다. 공장 하나가 철강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협력업체와 운송업체, 정비업체가 붙고 식당과 상점이 생긴다. 공장이 벌어들인 돈으로 지방세가 걷히고, 그 돈이 다시 지역의 학교와 도로, 복지에 쓰인다. 주력기업의 생산이 줄면 협력업체 매출이 먼저 꺾이고 채용이 줄며, 그 여파는 골목상권과 지방재정까지 이어진다. 당진은 이미 그 징후를 겪고 있다. 지역 주요 철강기업 5개사의 영업이익은 2023년 2623억원 흑자에서 지난해 44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당진의 국세 납부액 역시 2022년 5063억원에서 2024년 1228억원으로 급감했고 법인 지방소득세는 같은 기간 317억원에서 2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철강기업의 실적 악화가 지역경제의 체력을 얼마나 빠르게 떨어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철강시장이 건설수요 감소와 글로벌 공급과잉, 수출 부진이 겹치며 20년 만의 최저 수준의 수요를 경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설비의 폐쇄와 가동 중단, 인력 조정 압력에 더해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과 탄소중립 비용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철강산업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값싼 범용재를 대량 생산해 중국산 철강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자동차·조선·방산·에너지용 고부가 강재로 올라가고,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확대 등 탄소배출을 줄이는 생산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제조공정에는 인공지능과 자동화를 더 깊이 넣어야 한다. 유럽의 탄소규제와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을 생각하면 선택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운 문제다. 정부가 경쟁력이 떨어진 모든 설비와 일자리를 세금으로 영원히 붙들어둘 수도 없다. 시장에서 수요를 잃은 생산시설까지 고용을 이유로 계속 유지하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더 큰 구조조정을 부를 수 있다. 문제는 산업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기업은 오래된 설비를 닫으면 재무구조가 좋아질 수 있다. 국가는 산업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친환경 설비를 도입하면 탄소배출도 줄어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와 공장 주변의 협력업체, 지역 상인에게는 ‘산업 고도화’라는 말이 당장의 생계 문제로 돌아온다. 국가와 기업이 전환의 편익을 얻으면서 비용은 노동자와 지역에만 남기는 구조라면 공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이번 당진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원 대상 노동자의 국민내일배움카드 한도는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늘어나고 생활안정자금 융자 한도도 2000만원에서 2500만원으로 확대된다. 기업의 고용유지지원금 지원 비율은 66.7%에서 80%로 높아진다. 충남도는 내년 최대 60억원 규모의 ‘당진 철강산업 버팀이음프로젝트’ 국비 확보도 추진한다. 필요한 조치다. 다만 생계자금과 훈련비를 늘리는 것만으로 산업 전환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숙련을 버리지 않는 전환이다. 철강공장에서 20년을 일한 노동자에게 새로운 직업을 찾으라며 몇 달짜리 일반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제철소의 설비와 공정, 품질관리, 안전관리 경험은 산업의 자산이다. 이를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친환경 설비, 산업용 로봇과 스마트팩토리 운영 역량으로 전환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재교육의 출발점도 실업 이후가 아니라 재직 중이어야 한다. 구조조정 대상자가 확정된 뒤 교육기관을 찾는 것은 너무 늦다. 기업의 설비 전환 계획과 함께 향후 줄어드는 직무와 새로 필요한 직무를 예측하고, 노동자가 기존 일자리에서 일하는 동안 새로운 기술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도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국가가 탄소중립 설비에 세액공제와 정책금융을 제공한다면 해당 기업은 고용 전환 계획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어떤 일자리가 줄어들고 어떤 직무가 새로 생기는지, 기존 노동자를 얼마나 재배치하고 협력업체 고용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사전에 제시해야 한다. 친환경 설비 투자계획은 수십 년 뒤까지 세우면서 사람에 대한 계획은 구조조정 직전에 만드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지역 정책은 더 크게 봐야 한다. 당진의 철강 노동자를 모두 다른 철강회사로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과 함께 지역의 산업구조 자체를 넓혀야 한다. 당진을 저탄소 철강의 거점으로 만들면서 수소·에너지, 철강 자원순환, 친환경 소재, 산업자동화와 같은 연관 산업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산업연구원도 철강 집적지역의 대응 방안으로 수소환원제철과 탈탄소 설비·부품 산업, 제조 AX, 자원순환 분야로의 다각화를 제시했다. 그래야 전환 과정에서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같은 지역 안에서 연결될 수 있다. 과거 제조업 구조조정의 실패에서 배울 것도 있다. 주력기업이 떠난 뒤에야 도시재생과 창업지원 사업을 시작하면 이미 숙련인력과 젊은 가족은 지역을 떠난 뒤다. 사람과 기업이 빠져나간 도시를 다시 일으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일자리를 지키고 새로운 산업으로 연결하는 비용보다 훨씬 크다. 정부가 고용 충격이 통계에 완전히 나타나기 전에 당진을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그래서 평가할 대목이다. 이 제도 자체도 기존 고용위기지역이 실업과 고용 감소가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야 작동한다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도입됐다. 이제 ‘선제’라는 말을 정책의 시간표 전체에 적용해야 한다. 실직하기 전에 훈련하고, 협력업체가 폐업하기 전에 사업 전환을 돕고, 지역의 청년이 떠나기 전에 새로운 기업을 불러들여야 한다. 정부도 최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신속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패스트트랙을 도입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위기가 현실이 된 뒤 지원하던 방식에서 위험이 보일 때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중용’에는 ‘범사예즉립 불예즉폐(凡事豫則立 不豫則廢)’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면 서고, 준비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의미다. 산업 전환도 그렇다. 철강의 구조조정을 막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기술도 바뀌고 시장도 바뀐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생산방식은 결국 새로운 방식으로 대체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누구의 희생 위에서 이뤄질 것인지를 미리 결정하는 일이다. 기업에는 친환경 설비와 고부가 제품 전환을 지원하고, 노동자에게는 숙련을 이어갈 직업과 교육을 제공하며, 지역에는 다음 산업을 심어야 한다. 세 정책이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산업정책의 성공을 공장의 생산성만으로 평가하던 시대도 지나야 한다. 수소환원제철 공장을 지었는데 숙련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기업은 살아났는데 지역 상권과 인구가 무너졌다면 그것을 온전한 산업 전환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철강은 한국 산업화를 떠받친 산업이다. 당진과 포항, 광양의 노동자와 지역사회 역시 그 성장의 비용과 과실을 함께 감당했다. 새로운 철강으로 넘어가는 비용 역시 함께 나눠야 한다. 산업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버리는 전환은 오래갈 수 없다. 공장을 바꾸는 것과 사람의 삶을 이어주는 것, 그 둘을 함께 해내야 진짜 산업 전환이다.
2026-08-24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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