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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를 동남아 게임 허브로"…BIC, 현지 생태계와 협력 넓힌다
[경제일보]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2026’(BIC 2026) 현장에는 세계 각국의 인디게임을 체험하려는 관람객과 개발자들이 모였다. 출품작을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부스 사이로 대학과 교육기관이 참여한 공간도 눈에 띄었다. 인도네시아 통신디지털부(KOMDIGI) 관계자들은 이 현장에서 한국과 인도네시아 인디게임 산업의 협력 확대 가능성을 확인했다. 다니 하디 사푸트로 게임 경쟁력·역량 개발 책임자와 티타 아유디티야 수르야 게임 생태계 개발 팀장은 전시장을 돌아본 뒤 이정엽 BIC 심사위원장과 공동 인터뷰를 갖고 인도네시아 게임산업의 현황과 양국 교류 계획, 현지 진출 시 유의할 제도를 설명했다. 티타 팀장은 인도네시아 게임산업의 규모를 약 200개 현지 게임 스튜디오로 소개했다. 그는 “현지 스튜디오들이 자국 시장을 넘어 아시아와 글로벌 시장으로 입지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BIC 같은 국제 행사는 개발자들이 해외 시장과 글로벌 업계 관계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현지 개발사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게임 개발자 익스체인지(IGDX)’를 운영하고 있다. IGDX는 투자자와 퍼블리셔, 개발자가 만나는 인도네시아 최대 규모의 기업 간 거래(B2B) 게임 행사다. 현지 스튜디오의 투자 유치와 해외 진출을 돕는 교류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BIC와 인도네시아의 협력은 단순한 행사 참가를 넘어 인재 양성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정엽 위원장은 “BIC에는 이전부터 인도네시아 게임이 꾸준히 출품됐고, 비누스대학교는 약 4년간 루키 부문에 게임을 제출해 왔다”며 “지난해부터 양국 협력을 확대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BIC와 순천향대학교 관계자들은 인도네시아를 여러 차례 방문해 KOMDIGI와 현지 게임업계 관계자들을 만났다. 현재 순천향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추진하는 사업을 통해 인도네시아게임협회, 비누스대학교, KOMDIGI, 현지 게임사 아가테 등이 참여하는 인디게임 개발자 양성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향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IGDX와 BIC가 공동 세션을 운영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인도네시아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주변 국가와 게임산업 교류가 활발하다”며 “인도네시아를 거점으로 BIC의 동남아 교류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인디게임 행사를 묶는 ‘아시아 인디게임 협의체’ 구상은 아직 확정된 계획이 아니다. 이 위원장은 “장기적으로 협의체 형태의 연대를 구상하고 있지만 현재는 BIC 내부에서 여러 가능성을 논의하는 단계”라고 선을 그었다. 인도네시아 게임시장은 모바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다니 책임자는 한국 게임사가 현지에 진출할 때 모바일 이용 환경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용자 간 소통과 교류를 지원하는 소셜 기능도 주요 요소로 꼽았다. 반면 현지 인디게임 개발사들은 전체 시장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다니 책임자는 “인도네시아 게임시장 전체는 모바일 중심이지만 인디 개발사들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PC와 스팀 플랫폼을 중심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며 “패키지 게임도 현지 인디게임 생태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게임사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려면 제도 확인도 필요하다. 티타 팀장에 따르면 게임 서비스 사업자는 우선 전자시스템 제공자(Electronic Systems Provider·PSE) 등록을 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게임 등급분류 시스템인 IGRS도 주요 제도다. 현재 IGRS는 제도 평가와 개편을 위해 일시 중단된 상태지만, 재시행되면 게임의 연령 등급과 콘텐츠 성격에 따른 표기를 지켜야 한다. 캐릭터 외형과 게임 연출도 심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으며, 출시 후 대규모 콘텐츠가 변경되면 재심사가 필요할 가능성도 있다. 양국 협력의 거점으로는 인도네시아 반둥 지역이 거론된다. 반둥에는 아가테를 비롯한 게임 스타트업과 개발사가 모여 있고, 지역별 최저임금 차이로 개발사 운영 비용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향후 인력 양성 사업이 추진된다면 반둥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사업의 최종 지역과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첫 BIC 방문에 나선 KOMDIGI 관계자들은 행사 운영 방식에도 주목했다. 티타 팀장은 “전 세계 인디게임이 한자리에 모이고 개발자들이 투자자와 퍼블리셔를 직접 만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BIC가 게임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네트워킹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다니 책임자는 대학과 교육기관의 참여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IGDX와 BIC는 개발자의 성장을 지원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며 “미래 게임산업을 이끌 인재들이 행사 현장에서 경험을 쌓는 구조가 의미 있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번 협력은 아직 초기 단계다. 그러나 양국은 행사 참가와 부스 교환을 넘어 개발자 교육, 투자·퍼블리싱 연계, 공동 세션으로 협력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BIC가 인도네시아를 동남아 시장 진출의 거점으로 삼으려면 교류를 실제 출시와 투자, 공동 개발 성과로 연결하는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역시 풍부한 인재와 시장을 기반으로 현지 스튜디오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BIC 2026 현장에서 시작된 한·인니 게임산업 협력이 아시아 인디게임 생태계를 잇는 실질적인 통로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6-08-14 21: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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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700원, 이제는 인상률보다 제도 개혁을 논할 때다
[경제일보]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3.7% 오른 시간당 1만70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1만 원대 중반 시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는 상징성은 있지만, 정작 결정 과정과 결과는 또다시 우리 사회의 깊은 갈등만 확인시켰다. 법정 시한을 넘긴 밤샘 협상과 막판 표결, 노사 양측의 극한 대립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 됐다. 사용자 측은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호소하고, 노동계는 "실질임금 삭감"이라며 반발한다. 누구도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은 현행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을 웅변한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근로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제도라도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경우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지금 우리 경제는 고금리와 내수 부진, 소비 위축이라는 복합 불황 속에 놓여 있다. 특히 골목상권의 편의점과 음식점, 숙박업, 미용업 등 영세 서비스업은 인건비 부담과 임대료, 원자재 가격 상승을 동시에 떠안으며 생존 자체를 걱정하는 처지다. 현실적으로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은 것은 제도의 실효성과 시장의 수용 능력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취약 업종에서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3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난다. 법을 준수하고 싶어도 지급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영세 사업주를 잠재적 범법자로 만드는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저임금의 목적이 근로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면, 그 제도가 오히려 일자리 축소와 폐업 증가를 초래하는 상황 또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시장이 감당하지 못하는 임금은 결국 고용 감소와 근로시간 축소, 무인화 투자 확대라는 형태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피해는 결국 가장 보호받아야 할 취약계층 근로자에게 집중된다. 이제는 정치적 금기처럼 여겨졌던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다. 현행 법률 역시 사업의 종류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수도권 대기업과 지방 영세기업의 생산성은 물론 물가와 임금 수준, 지불 능력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동일한 기준을 전국 모든 업종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보다 불균형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주요 선진국들도 지역이나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임금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차등 적용이 곧 노동자 차별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세 서비스업과 농림어업, 지방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제도 설계가 오히려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지키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획일적 평등보다 지속 가능한 공정이 더 중요하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운영 방식 역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의 결정 구조는 노·사·공익위원이 이해관계를 앞세워 줄다리기를 벌이는 정치적 협상 테이블에 가깝다. 객관적인 경제지표보다 협상력과 여론전이 결과를 좌우하는 구조에서는 사회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제는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노동생산성, 고용 여건, 중소기업의 지급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객관적인 산식을 마련하고, 전문가 중심의 독립적인 심의체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정치적 흥정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결정 시스템만이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최저임금 논쟁의 본질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근로자의 삶을 보호하면서도 기업이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노동자 없는 기업도 없지만 기업 없는 일자리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의 희생만 강요하는 정책은 결국 모두를 어렵게 만든다.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지 어느덧 4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은 크게 달라졌지만 제도는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해마다 반복되는 인상률 논쟁을 넘어 시장 현실과 경제 여건을 반영한 제도 개혁에 나설 때다. 업종별·지역별 차등 적용, 객관적 산식에 기반한 결정 구조, 생산성과 지급 능력을 함께 고려하는 합리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노동자의 삶을 지키고 자영업자의 생존을 보호하며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길이다. 최저임금의 미래는 인상률이 아니라 제도의 신뢰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2026-07-19 10: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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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생계도 지키고 일자리도 지켜야 한다
[경제일보] 2027년 최저임금 논의가 막판으로 가고 있다. 노동계는 시급 1만2000원을 요구했다. 경영계는 동결을 제시했다. 한쪽은 생계를 말하고 다른 한쪽은 지불 능력을 말한다. 양쪽 모두 현실을 말한다. 그래서 더 어려운 문제다. 최저임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한 달 생계의 기준이고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는 매달 감당해야 할 고정비다. 노동자에게는 너무 낮고 사업주에게는 이미 높다. 이 모순을 외면한 채 어느 한쪽의 구호만 앞세우면 최저임금 논의는 매년 같은 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우리는 먼저 노동자의 현실을 봐야 한다. 물가는 올랐고 주거비와 식비, 교통비와 공공요금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에게 몇백 원의 인상은 숫자가 아니라 하루의 식비이고 월세의 일부이며 가족에게 보내는 돈이다. “최저”라는 말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생활을 의미한다. 최저임금이 생계의 최소선조차 지켜주지 못한다면 제도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그러나 또 다른 현실도 있다.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곳은 대기업만이 아니다. 편의점, 음식점, 동네 카페, 작은 제조업체, 지역 영세 사업장이 그 부담을 함께 진다. 매출은 제자리인데 인건비와 임대료, 전기요금, 원재료값이 동시에 오르면 버틸 수 있는 사업주는 많지 않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노동자의 소득은 늘 수 있지만 고용 시간이 줄고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 논의가 해마다 정치 구호처럼 반복된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대폭 인상을 외치고 경영계는 동결을 말한다. 공익위원이 중간선을 그으면 양측은 불만을 말하고 다음 해 다시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방식을 되풀이할 것인가. 최저임금은 숫자 싸움이 아니라 한국 노동시장과 자영업 구조의 민낯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식이다. 생계를 외면한 동결은 답이 아니다. 지불 능력을 무시한 급격한 인상도 답이 아니다. 최저임금은 올라야 한다. 다만 그 인상은 일자리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설계돼야 한다. 특히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보완책 없이 숫자만 올리는 것은 책임 있는 정책이 아니다. 정부의 역할도 분명하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으로 책임이 끝나지 않는다.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보완할 근로장려세제, 사회보험료 지원, 주거비 부담 완화, 직업훈련과 전직 지원이 함께 가야 한다. 영세 사업주에게는 임금 부담만 전가할 것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 디지털 전환, 임대료와 수수료 부담 완화 같은 구조 대책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장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회의장 안 숫자 하나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플랫폼 노동과 도급제 노동 문제도 더는 미룰 수 없다. 배달라이더, 택배기사, 프리랜서 노동자는 전통적 임금 노동자의 틀 안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일한 시간은 흐릿하고 보수는 건당으로 책정되며 비용은 개인에게 떠넘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을 최저임금 제도 밖에 방치하면서 노동시장 보호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영역 역시 성급한 일괄 적용보다 직종별 실태와 소득 구조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보호는 필요하지만 설계 없는 보호는 또 다른 혼란을 부른다. 기업도 할 말만 할 수는 없다. 최저임금 부담을 말하려면 노동자의 생활 현실도 함께 봐야 한다. 임금을 비용으로만 보면 노동시장은 메마른다. 노동자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이 지나치게 낮으면 내수도 약해진다. 최저임금은 기업의 부담인 동시에 경제 전체의 구매력을 지탱하는 장치다. 경영계가 동결만 외칠 것이 아니라 업종별 부담과 고용 여력을 근거로 정교한 대안을 내야 하는 이유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생계비를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모든 사업장이 같은 지불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이고 특히 청년과 고령자, 취약계층의 근로 기회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노동의 가치를 지키는 일과 일자리의 문을 지키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을 지키는 최소 안전망이어야 한다. 동시에 일자리를 무너뜨리는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최저임금 하나에 생계, 복지, 자영업 대책, 플랫폼 노동 보호, 중소기업 생산성 문제를 모두 떠넘기는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 최저임금은 매년 결정되지만 그 결과는 한 해의 장사와 한 가정의 생활을 바꾼다. 숫자는 작아 보여도 파장은 크다. 정부와 노사는 이제 답해야 한다. 노동자의 생계를 지킬 것인가. 사업주의 지불 능력을 볼 것인가. 둘 중 하나만 고르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 생계도 지키고 일자리도 지키는 균형, 그것이 최저임금 논의의 기본 원칙이어야 한다.
2026-06-28 11: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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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지의 '최저시급' 공고가 불편한 이유…MZ도 열정페이에는 웃지 않는다
[경제일보] 젠지 이스포츠의 숏폼 콘텐츠 편집자 모집 공고가 팬들의 감정을 건드렸다. 단순히 시급이 낮아서가 아니다. 공고가 요구한 업무의 무게와 회사가 제시한 보상의 언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공고에 적힌 업무는 가볍지 않다. 젠지 SNS 채널용 유튜브 쇼츠, 릴스, 틱톡 등 숏폼 콘텐츠를 편집해야 한다. 트렌드 기반 콘텐츠를 제안하고 제작해야 한다. 경기 하이라이트, 선수 콘텐츠, 브랜드 콘텐츠도 다룬다. 지원자는 캡컷, 프리미어 프로, 애프터이펙트 등 영상 편집 툴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포트폴리오도 제출해야 한다. e스포츠 리그 콘텐츠 제작 경험, 빠른 작업 속도, 트렌드 감각, 젠지와 LCK에 대한 높은 관심,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우대사항으로 붙었다. 그런데 급여는 최저시급이다. 이 한 줄이 공고 전체를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다. 회사가 원하는 것은 실무형 편집자, 트렌드 기획자, 브랜드 콘텐츠 제작자, 팬덤을 이해하는 커뮤니케이터에 가깝다. 회사가 먼저 제시한 가격표는 노동시장에서 허용되는 가장 낮은 선이다. 물론 최저임금 지급 자체가 곧바로 위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근로시간, 주휴수당, 계약 형태, 실제 업무 범위가 법 기준을 충족하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법의 바닥을 지켰다는 사실이 좋은 채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글로벌 e스포츠 브랜드를 표방하는 조직이 팬과 선수의 이미지를 다루는 콘텐츠 실무자에게 최저선을 제시했다면 법 이전에 브랜드 감각의 문제다. 영상편집 시장이 넉넉한 시장도 아니다. 유튜브 영상편집자 노동환경 조사에서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문제가 드러난 바 있다. 본업 영상편집자의 평균 시급은 1만3495원으로 조사됐다. 이 수치조차 풍족한 보상이라 보기 어렵다. 그런데 2026년 최저시급 1만320원은 이보다도 낮다. 국내 영상편집 평균 월급으로 잡아도 최저임금 월 환산액과는 차이가 난다. 이미 낮게 형성된 시장 평균보다도 낮은 법정 최저선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트렌드 감각과 브랜드 이해를 요구하는 구조가 납득을 어렵게 만든다. 숏폼 편집은 더 이상 단순 편집이 아니다. e스포츠 구단에서 숏폼은 팬 유입의 입구다. 선수 브랜딩의 유통망이고 스폰서 노출의 상품이다. 경기의 한 장면은 몇 초짜리 쇼츠로 재가공돼 플랫폼을 타고 퍼진다. 그 영상이 팬덤을 만들고, 조회수를 만들고, 구단의 브랜드 가치를 만든다. 그 일을 맡기는 공고에 “최저시급”을 적어놓는 것은 콘텐츠의 가치를 말로는 인정하면서 실제 보상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고백처럼 읽힌다. 젠지의 매출과 영업이익, 선수 개별 연봉은 공개자료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돈이 많으니 더 줘야 한다”고 단정하는 방식은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공개된 사실만으로도 젠지는 동네 동아리가 아니다. 포브스는 2022년 젠지의 기업가치를 2억5000만달러로 평가했다. 젠지는 LCK, 발로란트, PUBG 등 여러 종목을 운영하는 글로벌 e스포츠 조직이고 후원사와 콘텐츠 채널, 굿즈 사업을 갖춘 브랜드다. 이런 조직이 콘텐츠 인력을 모집하면서 보상을 최저선으로 못박았다면 팬들이 묻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직무의 기준은 무엇인가. 애정인가, 실력인가. 둘 다 요구하면서 왜 보상만 최저인가. 선수에게 큰 비용을 쓰는 것은 프로 스포츠에서 당연하다. 스타 선수가 경기력을 만들고 팬덤을 만든다. 그러나 그 선수를 팬에게 전달하는 것은 콘텐츠다. 경기장 밖에서 선수의 표정, 말투, 순간, 서사를 팬에게 연결하는 사람이 편집자다. 팬덤 산업에서 콘텐츠 제작자는 주변 인력이 아니라 브랜드의 최전선이다. 선수의 가치는 인정하면서 그 가치를 유통하는 노동은 최저시급으로 충분하다고 보는 순간 산업의 균형은 무너진다. 더 불편한 대목은 ‘열정페이’의 냄새다. 이스포츠와 콘텐츠 제작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지원을 바란다는 말은 채용 공고에서 흔히 쓸 수 있다. 문제는 그 관심이 낮은 보상을 견디는 근거처럼 보일 때다. 팬심은 자격요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팬심이 임금 할인 사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MZ세대는 좋아하는 일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좋아하는 게임, 좋아하는 팀, 좋아하는 선수를 위해 밤을 새우고 콘텐츠를 만든다. 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알아본다. 누가 자신의 열정을 존중하는지 누가 그것을 싸게 사려 하는지. 젠지가 정말 교육형 아르바이트를 원했다면 공고는 달랐어야 한다. 업무 범위를 좁히고 실무 교육과 피드백 체계를 명시하고 어떤 성장 경험을 제공할지 밝혔어야 한다. 반대로 포트폴리오와 편집 툴 숙련, 트렌드 기획, 브랜드 콘텐츠 제작을 요구한다면 보상도 그에 맞춰 설계했어야 한다. 교통비, 식대, 성과 보상, 콘텐츠 크레딧, 경력 증명, 정규직 전환 가능성 같은 보완 조건이라도 제시했어야 한다. 지금 공고는 숙련을 요구하면서 보상은 입문보다 낮게 잡은 모양새다. 이 논란의 핵심은 돈 몇 천원의 문제가 아니다. 메시지의 문제다. “우리는 글로벌 e스포츠 브랜드다. 당신에게는 빠른 손, 트렌드 감각, 팬덤 이해, 편집 툴 숙련, 포트폴리오를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보장하는 것은 최저시급이다.” 이 문장을 보고도 젊은 지원자들이 감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착각이다. e스포츠는 팬덤으로 성장했다. 팬들이 시간을 쓰고, 돈을 쓰고, 감정을 쌓아 산업을 키웠다. 그 팬들 가운데 누군가는 콘텐츠 제작자가 되고, 누군가는 구단 직원이 되고, 누군가는 산업의 다음 세대가 된다. 그들에게 “좋아하니까 싸게 일해도 된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브랜드 충성도는 자부심이 아니라 실망으로 바뀐다. 젠지가 이번 공고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복잡하지 않다. 좋은 콘텐츠를 원하면 좋은 노동을 인정해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열정은 여전히 통한다. 그러나 열정페이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산업이 커졌다면 임금의 언어도 커져야 한다. 최저시급이라는 한 줄은 법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젠지라는 브랜드가 말해온 글로벌 e스포츠의 품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2026-06-24 16: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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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34만 원, 신청하지 않으면 국가도 주지 않는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67세 이모씨는 지난해까지 기초연금을 받지 못했다. 국민연금을 받고 있으니 당연히 기초연금은 해당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 주민센터를 방문했다가 직원의 권유로 처음 신청서를 냈고, 이달부터 매달 30만 원 넘게 수령하게 됐다. 이씨는 "진작 알았더라면 몇 년치를 더 받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이씨의 사례는 드물지 않다. 2026년 기준으로 기초연금 수급 대상자는 779만 명으로 늘었지만, 자격이 되는데도 신청하지 않아 받지 못하는 어르신이 여전히 적지 않다. 기초연금은 '신청주의' 원칙에 따라 본인이 신청해야만 지급된다. 자격이 있어도 국가가 먼저 찾아주지 않는다. ■ 올해 얼마나 달라졌나 보건복지부는 올해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을 월 34만 9360원으로 확정했다. 지난해보다 6850원 오른 금액이다. 더 눈에 띄는 변화는 수급 문턱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단독가구 기준 선정기준액이 월 247만 원으로 대폭 상향됐고, 부부가구는 395만 2000원 이하면 대상이 된다. 일하는 어르신들에게도 유리해졌다. 근로소득 공제액이 지난해 112만 원에서 올해 116만 원으로 올라,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이 소폭 늘어난 어르신들이 수급 자격을 잃는 상황을 막았다. ■ '자동지급 추진' 발표 — 그러나 기초연금은 아직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위기가구 지원을 위한 복지안전매트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복지급여를 신청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지급하는 방향으로 신청주의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신청해야 지원하는 수동적 복지에서 선제적으로 제공하는 적극적 복지로 정책 기조를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초연금이 즉시 자동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아동수당·부모급여·첫만남이용권처럼 나이나 출생 여부로 자격 확인이 가능한 급여는 자동지급으로 전환되지만, 기초연금은 소득과 재산을 종합적으로 심사해야 수급 여부가 결정된다. 정부는 정부가 보유한 정보를 활용해 신청 공백을 줄이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위해서는 기초연금법을 포함한 6개 법안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법 개정과 시스템 구축이 완료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 '나는 해당 안 된다'는 오해가 가장 큰 적 전문가들은 기초연금을 놓치는 가장 큰 이유로 잘못된 선입견을 꼽는다. 국민연금을 받으면 기초연금을 못 받는다는 오해가 대표적이다. 사실이 아니다. 국민연금 수령액이 높으면 기초연금이 일부 줄어들 수 있지만,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 집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은 소득인정액 계산에 포함되지만, 지역별로 기본재산 공제가 적용된다. 지방 소도시나 농어촌의 경우 공제 범위가 더 넓어 자가 보유자도 수급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의 소득과 재산은 심사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자녀가 고소득자여도 부모의 수급 자격에는 영향이 없다. 단,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별정우체국연금 수급자는 원칙적으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 신청 방법 — 전화 한 통으로도 된다 신청 방법은 세 가지다. 주소지 읍·면·동 주민센터를 방문하거나, 국민연금공단 지사를 직접 찾아가거나, 복지로(bokjiro.go.kr) 홈페이지와 앱을 통해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국민연금공단 콜센터(1355)에 전화하면 된다. 공단 직원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 신청을 도와주는 '찾아뵙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방문 신청 시에는 신분증과 본인 명의 통장을 지참하면 기본적인 접수가 가능하다. 부부 가구라면 배우자의 금융정보 동의서가 추가로 필요하며, 해당 서식은 주민센터에 비치되어 있다. 자격 여부가 불확실하다면 신청 전 복지로 홈페이지 모의계산 메뉴나 국민연금공단 1355를 통해 먼저 확인해볼 수 있다. ■ 하루라도 빨리 신청해야 하는 이유 기초연금은 소급 지급이 되지 않는다. 신청한 달부터 지급이 시작되기 때문에, 자격이 생긴 시점에 바로 신청하지 않으면 그 기간만큼 받을 수 없게 된다. 올해 만 65세가 되는 1961년생 어르신은 생일이 속한 달의 한 달 전부터 미리 신청이 가능하다. 정부가 신청주의를 개선하겠다고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제도가 바뀌는 동안에도 기초연금은 신청한 사람만 받는다. '나중에 자동으로 들어오겠지'라고 기다리는 사이 받을 수 있는 연금은 쌓이지 않는다. 내가 받을 수 있는지 확신이 없더라도, 일단 1355에 전화해 문의해보는 것이 먼저다.
2026-05-17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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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보] 오늘날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문명 전환의 심장부에는 엔비디아와 젠슨 황이 서 있다. 세상은 그의 회사를 시가총액과 점유율로 기억하지만, 경영의 깊은 본질은 숫자보다 훨씬 오래가는 데 있다. 그것은 오래 묵은 시간의 힘이고, 덜어냄의 절제이며, 홀로 버티는 고독이고, 끝내 높이 서는 품격이다. 이를 동양적 어휘로 압축하면 바로 고고고고, 곧 오래되고(古), 메마르며(枯), 외롭고(孤), 높다(高)는 네 글자다. 엔비디아의 부상은 하루아침의 주가 급등이 아니라, 이 네 글자가 한 경영자의 몸과 조직의 문화 속에서 천천히 굳어져 온 과정의 결과다. 첫째는 고(古)다. 경영은 언제나 시간의 적층 위에서만 비로소 자기 얼굴을 갖는다. 젠슨 황은 오늘의 화려한 무대에 오르기 훨씬 전부터 아시아 시장을 발로 뛰었다. 특히 한국과의 인연은 단순한 고객 관계를 넘어선다. 국내 보도와 당시 업계 회고에 따르면, 그는 엔비디아 초창기인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서울 용산전자상가를 여러 차례 찾으며 직접 그래픽카드를 설명하고, 매장과 조립 업자들을 설득하며 시장을 일궜다. 황 자신도 한국과의 인연이 1996년부터 시작됐다고 말했고,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확산과 PC방 문화의 폭발,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엔비디아 성장의 중요한 기반이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때 세계 게임 문명의 용광로였던 용산과 PC방의 열기, 그리고 한국 소비자의 빠른 기술 수용성이 무명의 엔비디아를 길러낸 토양이었던 셈이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대기업의 역사가 언제나 거대한 회의실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의 젠슨 황을 만든 것은 실리콘밸리의 조명만이 아니었다. 좁은 매장, 수많은 부품 상자, 가격에 민감하고 성능에는 더 민감한 한국 시장의 눈높이, 그 치열한 현장이 그를 단련했다. 이름 없는 시절의 젠슨 황은 용산에서 브랜드를 판 것이 아니라 신뢰를 팔았다. 제품 설명 하나, 호환성 하나, 성능의 체감 하나를 놓고 거래처를 설득해야 했다. 경영이란 결국 시장과의 대화라는 사실을 그는 한국의 골목에서 배운 것이다. 주역의 말처럼 '잠룡물용'이라 할 만하다. 물속에 잠긴 용은 아직 하늘로 오르지 못했으되, 이미 힘을 기르고 방향을 정한다. 젠슨 황에게 한국은 그런 잠행의 시간이었다. 둘째는 고(枯)다. 메마름은 빈곤이 아니라 절제다. 엔비디아의 역사는 화려한 외연 확장보다 계산 자원의 본질에 대한 집요한 집중으로 요약된다. 남들이 화면의 겉모습과 사양 경쟁에 몰두할 때, 그는 연산 구조와 병렬처리, 그리고 훗날 AI 시대의 결정적 기반이 되는 가속 컴퓨팅에 집중했다. 이것은 겉을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속의 힘을 기르는 기업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고담의 미학이다. 금강경의 “범소유상 개시허망”이라는 말을 굳이 경영에 가져오자면, 눈에 보이는 형상은 늘 유혹적이지만 기업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핵심 역량이다. 엔비디아는 이를 일찍 알아챘다. 그래서 오늘의 엔비디아는 제품의 외관보다 생태계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개발자 기반이라는 더 마른 본질 위에 서 있다. 이 절제는 젠슨 황의 인간관에도 이어진다. 그는 스탠퍼드 학생들에게 성공의 핵심은 높은 기대가 아니라 회복탄력성이라고 말하며, “고통과 고난이 있기를 바란다”고까지 했다.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는 이 말의 핵심은 분명하다. 위대함은 총명함만으로 생기지 않으며, 성품과 기질은 편안함 속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 벼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 미국 기숙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고,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등 최저임금 노동을 경험했다고 공개적으로 회고했다. 그러니 그의 인고론은 수사가 아니라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 오늘날 많은 기업이 구성원에게 복지만 말하고 단련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젠슨 황은 불편한 진실을 피해가지 않았다. 성장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마찰과 견딤을 동반한다는 점을 그는 몸으로 안다. 셋째는 고(孤)다. 고독은 혼자가 된 상태가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기꺼이 선택하는 용기다. 엔비디아는 오랫동안 모두의 박수를 받는 회사가 아니었다. 그래픽칩 기업으로 알려졌으나, 그 안에서 그는 장차 컴퓨팅의 패러다임이 범용 CPU의 시대에서 가속 컴퓨팅의 시대로 옮겨갈 것이라는 외로운 확신을 품고 있었다. 시장은 늘 당장의 수요를 요구하지만, 경영자는 때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위해 오늘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이 고독을 견딘 자만이 선점의 과실을 얻는다. 논어의 “덕불고 필유린”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생기를 얻는다. 덕은 처음에는 외로워 보여도, 끝내 이웃과 동지를 불러 모은다. 실제로 젠슨 황과 한국의 관계는 이제 단순한 판매 차원을 넘어 전략적 동맹의 수준으로 깊어졌다. SK하이닉스는 불확실성이 높던 HBM 초기부터 엔비디아와 협력을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단순 공급을 넘어 공동 제품 기획 단계로 관계가 진화했다고 밝혔다. 또한 엔비디아는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그룹, 현대차그룹, 네이버 등과 대규모 AI 칩 공급과 인프라 협력을 추진해 왔다. 이는 과거 용산의 외로운 영업이 오늘날 국가와 산업 생태계를 잇는 연대로 전환됐음을 상징한다. 젠슨 황이 과거 한국 시장을 두드리며 얻은 감각은 이제 한국의 메모리, 제조, 자동차, 인터넷 플랫폼과 결합해 하나의 AI 문명 축으로 확장되고 있다. 홀로 버텼던 시간이 마침내 동맹의 언어로 돌아온 것이다. 넷째는 고(高)다. 높음은 단순한 지위가 아니라 품격이다. 높은 곳은 남보다 위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더 멀리 보고 더 오래 책임지는 자리라는 뜻이다. 중용이 말하는 지성무식, 곧 지극한 정성은 쉬지 않는다는 문장은 젠슨 황의 경영을 설명하는 데 의외로 잘 들어맞는다. 그는 한순간의 반짝 유행으로 회사를 키운 인물이 아니다. 수차례의 위기, 제품 실패 가능성, 시장의 냉소, 공급망 압박, 지정학 리스크를 넘어서며 지금의 고지에 올랐다. 그 고지는 하루아침에 오른 산이 아니라, 수십 년간 한 걸음씩 밟아 올린 산이다. 여기서 한국과의 인연은 다시 한 번 중요해진다. 오늘의 엔비디아가 AI 시대의 제왕으로 불린다 해도, 그 왕관의 안쪽에는 한국의 회로가 적지 않게 흐르고 있다. 한국은 초기에는 PC방과 게임 시장으로 엔비디아를 키워준 소비 현장이었고, 이제는 HBM과 첨단 메모리, AI 팩토리와 디지털 전환을 함께 짜는 전략 현장이 되었다. 초창기 젠슨 황이 용산전자상가에서 상인과 조립업자들을 설득하던 모습과, 오늘날 한국의 대기업 총수 및 정부와 함께 AI 인프라를 논하는 모습 사이에는 긴 강이 흐른다. 그러나 그 강의 물줄기는 끊어지지 않았다. 그가 처음 한국에서 본 것은 단지 매출 기회가 아니라 기술을 빨리 이해하고, 산업으로 묶어내며, 현장과 제조를 함께 움직이는 사회의 힘이었을 것이다. 그 통찰이 오늘의 협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기업인들이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분명하다. 혁신은 화려한 수사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래 버틴 시간,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절제, 외로움을 견디는 독립성, 그리고 끝내 품격으로 승화시키는 책임감에서 나온다. 젠슨 황의 경영은 ‘운 좋게 AI 바람을 탄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오래된 시간의 퇴적이 마침내 시대의 문과 맞아떨어진 경우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경영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용산의 바닥에서 시장과 씨름하던 초심이 있는가. 본질이 아닌 것을 덜어내는 메마른 용기가 있는가. 유행과 박수보다 외로운 정답을 선택할 배짱이 있는가. 경영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고, 현장을 존중하며, 시간과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데서 완성된다. 너무 빨리 크려는 나무는 속이 비고, 너무 쉽게 얻은 성공은 뿌리가 얕다. 젠슨 황의 엔비디아는 그 반대의 길을 걸었다. 늙은 고목처럼 묵묵히 서서 바람과 가뭄을 견디고, 홀로 높은 곳을 향해 자라났다. 그래서 그의 성공은 찰나의 불꽃이 아니라 오래 남는 불빛이다. 고고고고의 미학은 바로 그 점을 일깨운다. 오래 견딘 자만이 높이 오르고, 메마름을 통과한 자만이 깊어지며, 고독을 견딘 자만이 마침내 시대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젠슨 황의 한국 인연 또한 그 서사의 중요한 한 축이다. 오늘의 영광은 어제의 골목에서 잉태된다는 사실, 세계 최강 기업의 역사도 결국 인간의 땀방울과 신뢰의 축적 위에서만 완성된다는 사실을 그는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2026-04-22 11: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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