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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이 멈춘 만찬장…미국 민주주의는 법의 시험대에 섰다
[경제일보] 워싱턴의 밤을 뒤흔든 총성은 한 건의 형사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범인은 체포됐고 대통령은 보호됐다. 대형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건 보고서만 놓고 보면 위기는 통제된 셈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는 여기서 판단을 멈출 수 없다. 정치 지도자를 겨눈 폭력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개인의 범행을 넘어 헌정 질서에 대한 경고로 읽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장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장소의 상징성은 각별하다. 이 행사는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과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이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자리다. 서로 충돌하더라도 제도 안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관용과 자신감을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그 공간에서 총성이 울렸다는 사실은 단순한 경호 실패 여부를 넘어 공적 질서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문제다.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가는 최소한 세 가지 의무를 진다. 첫째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의무다. 둘째 정치적 경쟁이 폭력이 아니라 절차에 따라 이뤄지도록 질서를 유지할 의무다. 셋째 선거 결과와 권력 행사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제도를 보전할 의무다. 이번 사건은 이 세 가지 의무가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경호 인력의 대응이 신속했다는 평가와 별개로 민주주의의 안전성에 대한 질문은 남는다. 민주주의의 강점은 결과가 아니라 절차에 있다. 내가 지지하지 않은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정해진 규칙에 따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체제다.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다음 경쟁을 준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상대를 강하게 비판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제거할 대상은 아니라는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하다. 이 토대가 흔들릴 때 선거는 남아 있어도 민주주의의 실질은 약해진다. 미국은 최근 수년간 그 경고 신호를 반복해서 받아왔다. 의회 난입 사태는 평화로운 권력 이양이라는 민주주의 핵심 원칙을 정면으로 흔들었다. 선거 결과를 둘러싼 불복 논란은 제도적 신뢰를 갉아먹었다. 공직자와 판사, 선거 관리자에 대한 협박은 법치의 집행자를 위축시켰다. 이번 총격 사건은 서로 다른 장면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같다. 패배를 견디지 못하는 정치와 상대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문화다. 트럼프라는 인물은 이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기존 정치 질서에 대한 불만을 흡수하며 거대한 지지층을 만들었다. 동시에 반대 진영의 강한 공포와 저항도 불러왔다. 그를 둘러싼 대립은 정책 경쟁을 넘어 정체성 충돌의 성격을 띠게 됐다. 특정 인물에 대한 찬반이 곧 제도 전체에 대한 신뢰와 불신으로 번지는 현상은 민주주의에 큰 부담이 된다. 여기에 미국 특유의 총기 환경이 더해진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와 무기 소지를 둘러싼 수정헌법 제2조 논쟁은 미국 헌정사의 일부다. 문제는 극단적 적대와 손쉬운 무기 접근성이 동시에 존재할 때 위험이 급격히 커진다는 점이다. 분노가 위협으로 바뀌는 시간은 짧아지고 위협이 현실이 되는 문턱은 낮아진다. 자유의 보장은 중요하지만 자유가 제도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때 국가는 균형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 사건 이후 미국 당국은 당연히 경호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무장한 용의자가 어떻게 대통령 참석 행사장 인근까지 접근했는지, 사전 정보는 없었는지, 외곽 통제와 현장 대응은 적절했는지 따져야 한다. 그러나 보안 강화만으로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차단선을 넓히고 인력을 늘려도 정치적 증오가 계속 동원된다면 위협은 다른 장소와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 언론의 책임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헌정 질서의 한 축이다. 동시에 사실에 기초한 공론장을 유지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진영 대결이 시장 논리와 결합하면 언론 역시 갈등의 증폭 장치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사실을 둘러싼 최소한의 합의와 책임 있는 공적 대화가 함께 필요하다. 국제사회는 미국을 오랫동안 법치와 민주주의의 기준으로 바라봐 왔다. 그래서 미국 내부의 혼란은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폭력이 반복되고 선거 결과의 정당성이 흔들린다면 그 충격은 동맹국과 시장, 국제 질서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미국의 제도 안정성이 곧 국제 공공재로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관만 할 이유는 없다. 헌정 체제는 위기 속에서 보완되기도 한다. 다만 회복의 조건은 분명하다. 정치는 지지층의 적개심을 동원하는 유혹을 거절해야 한다. 시민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민주적 습관을 회복해야 한다. 사법기관은 위협 앞에서도 독립성과 권위를 지켜야 한다. 언론은 사실과 책임의 언어를 되찾아야 한다. 국가는 개인 경호를 넘어 제도 신뢰까지 보호해야 한다.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울린 총성은 한밤의 돌발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 민주주의가 지금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묻는 시험 문제다. 법은 범인을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가 절차의 권위를 회복하는 일은 판결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결국 답은 미국이 내놓아야 한다. 갈등을 선거와 법의 틀 안에서 풀어갈지, 아니면 증오와 적대가 정치를 흔들도록 내버려둘지 선택의 시간이 왔다.
2026-04-26 15:17:12
규제 혁파의 '용두사미', 이번에는 끊어내야 한다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규제합리화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며 첨단산업 분야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 시스템을 전면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내놓은 ‘메가특구’ 구상은 로봇, 재생에너지, 바이오, AI 자율주행차 등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재정·금융·세제·인재를 아우르는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분산된 규제 샌드박스를 통합 관리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균형성장과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규제의 틀을 바꾸겠다는 방향성은 타당하며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기대보다 더 큰 것은 불신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규제 개혁을 외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정권 초마다 ‘전봇대 뽑기’, ‘손톱 밑 가시 제거’ 같은 구호가 등장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용두사미였다. 초기의 의지는 부처 간 칸막이 행정과 기득권 저항, 관료 조직의 보신주의에 가로막혀 흐지부지됐다. 그 결과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규제는 오히려 더 촘촘해졌고 기업의 활동 공간은 좁아졌다. 이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면 한국 경제에 남은 기회는 많지 않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아태 지역본부 선호도에서 한국은 11.8%에 그쳐 싱가포르 58.8%와 큰 격차를 보였다. 응답 기업의 상당수가 한국 규제를 ‘제약적’으로 평가한 점은 우리 규제 환경이 글로벌 기준과 괴리돼 있음을 보여준다. 자본과 기업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동한다. 규제 부담이 높은 시장에서 성장과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정책과 입법 간의 괴리다. 정부는 규제 완화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기업 경영 환경을 제약하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 자사주 의무 소각, 근로자추정제 등은 산업계의 부담을 키울 수 있는 사안들이다. 반면 주52시간제 탄력 운용이나 중대재해처벌법 보완과 같은 현장의 요구에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방식의 규제를 더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다. 규제 개혁의 성패는 구호와 선언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에 달려 있다. 기업이 실제로 “환경이 달라졌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어떤 정책도 의미를 갖기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부처 간 칸막이를 해소하고 이해관계의 저항을 돌파할 실행력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직접 컨트롤타워를 맡아 추진력을 확보하고 정치권 역시 정략적 입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에도 개혁이 흐지부지된다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경제에 돌아올 것이다. 규제 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규제의 족쇄를 끊어내고 기업의 혁신 동력을 되살려야 한다.
2026-04-16 08: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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