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3건
-
중앙아 광물외교, 악수는 끝났다…이제 광물이 와야 한다
[경제일보] 서울에서 손을 맞잡았다고 광물이 한국 공장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광산에서 원료를 캐내고, 정제시설에서 산업용 소재로 가공한 뒤 국경과 바다를 건너 수요 기업에 공급하기까지는 긴 시간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자원외교가 공동선언보다 어려운 이유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이 16일 서울에서 첫 다자 정상회의를 열었다.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정상은 이재명 대통령과 ‘서울선언’을 채택하고 핵심광물·에너지 공급망 협력에 뜻을 모았다. 정상회의를 2년마다 개최하고 산업장관 협의체도 신설하기로 했다. 한국의 기술과 중앙아시아의 자원을 연결할 정상급 협의의 틀을 마련한 것이다. 외교적 의미는 분명하다. 자원 확보는 기업의 구매계약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광업권과 투자 인허가, 수출규제와 통관, 도로와 철도 건설에는 자원 보유국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정상 간 합의는 민간기업이 넘기 어려운 제도적 장벽을 낮추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번 회의와 연계한 비즈니스 서밋에서도 19건의 협력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카자흐스탄 국립야금광석연구소는 희소금속 분야의 단계별 공급망 협력모델을 발굴하기로 했다. 별도의 기업 상담회에서는 1400만 달러 규모의 수출계약도 성사됐다. 다만 이 계약은 소비재 등 여러 분야를 포함한다. 핵심광물의 구매량과 인도 시점을 확정한 실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다. 협력 문서에 서명하는 것과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광물외교의 실질적인 경제적 성과를 판단하려면 외교적 합의가 어느 단계까지 사업으로 이어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탐사 결과가 투자 결정으로 이어졌는지, 채굴한 원료를 어디에서 정제할 것인지, 한국 기업이 어느 가격에 얼마를 구매하기로 했는지, 실제 납품은 언제 시작되는지가 그 기준이다.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지하자원만으로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광산에 자원이 묻혀 있다는 사실과 경제성 있는 광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부터 다르다. 품위와 매장량을 확인하고 사업성을 검증해야 한다. 채굴권을 확보한 다음에는 전력과 용수, 도로와 철도를 갖춰야 한다. 광석을 캤더라도 산업용으로 가공하지 못하면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생산에 곧바로 사용할 수 없다. 중국의 공급망 지배력이 보여주는 교훈도 이 대목에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글로벌 핵심광물 전망 2026’에 따르면 중국의 2025년 희토류 정제시장 점유율은 약 85%였다. 희토류를 제외한 주요 에너지 광물에서도 세계 최대 정제국의 평균 점유율은 2023년 70%에서 2025년 72%로 높아졌다. 지난해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로 일부 해외 자동차업체가 생산시설 가동률을 낮추거나 일시적으로 공장을 멈춘 사례도 나타났다. 광산을 확보해도 정제를 중국에 의존한다면 공급망의 취약성은 온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원료의 생산국을 다변화하는 것과 최종 산업소재의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광물을 한국에서 정제하는 것이 유일한 답인 것도 아니다. 광물의 종류와 생산 규모, 현지 전력비와 환경규제, 한국 기업의 기술력을 따져 가공시설의 입지를 정해야 한다. 중앙아시아 현지에서 경제성 있게 정제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식도 가능하다. 자원 보유국의 이해관계도 중요하다. 중앙아시아 국가들 역시 원료만 수출하는 경제에서 벗어나 가공산업과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수요가 있다. 한국이 광물을 확보하고 현지에는 일자리와 기술, 설비가 남는 협력 구조라면 장기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할 여지가 커진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양측이 원료 교역을 넘어 탐사부터 최종 제품 제조까지 이어지는 협력을 강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중앙아시아 특유의 물류 문제가 더해진다. 내륙의 광산에서 생산한 광물을 한국으로 들여오려면 여러 나라의 철도와 도로, 통관·환적 체계를 거쳐야 할 수 있다. 광산 개발비뿐 아니라 운송비와 운송 기간, 경유국의 정책 변화까지 공급계약의 경제성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광산 지분을 확보한 기업이 반드시 안정적인 공급처까지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운송로가 막히거나 정제시설이 지연되면 장부상의 자원은 생산현장의 원료가 되지 못한다. 이런 사업을 추진할 때 정부와 기업의 역할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정상외교는 자원 보유국과의 협의 통로를 마련하고 투자·통관·물류와 같은 제도적 문제를 다룰 수 있다. 그러나 매장량과 품위, 정제수율, 생산원가와 판매가격을 검증하는 일은 개별 사업의 경제성 판단에 속한다. 특히 자원사업은 초기 투자비가 크고 회수 기간이 길다. 외교적 합의가 사업의 위험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수요기업의 장기구매 계약이 없는 광산은 생산을 시작하고도 판로를 걱정할 수 있다. 반대로 구매처가 확실해도 정제 기술과 운송 조건이 맞지 않으면 약속한 가격에 납품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협력의 진척은 MOU 체결 건수와 함께 탐사, 사업성 검증, 투자 확정, 정제시설 건설, 장기구매 계약, 실제 인도 물량을 구분해 살펴볼 때 확인할 수 있다. ‘순자’ 권학편에는 ‘불적규보 무이치천리(不積蹞步 無以致千里)’라는 구절이 있다. 작은 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 리에 이를 수 없다는 뜻이다. 자원외교에도 들어맞는 말이다. 정상회의가 첫걸음이라면 광산 개발과 정제시설, 물류망과 구매계약은 그다음 걸음이다. 어느 하나를 건너뛰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없다. 다음 한·중앙아 정상회의는 2028년 카자흐스탄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에 마련한 정상급 협력체계의 진척을 살펴볼 자연스러운 시점이기도 하다. 그때는 협력 문서가 몇 건 더 늘었는지만으로는 사업의 진행 상황을 알기 어렵다. 어느 광산에서 탐사가 끝났고, 어떤 기업이 투자를 확정했으며, 정제시설과 물류망은 어디까지 구축됐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구매계약이 체결됐다면 광종과 물량, 공급기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 선적이 이뤄졌다면 성과는 더욱 구체적이다. 이번 정상회의를 두고 공급망 다변화가 이미 완성됐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반대로 아직 광물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외교적 합의의 의미를 부정할 수도 없다. 장기 자원사업에는 그에 걸맞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 동안 무엇이 달라지는가다. 자원외교의 최종 목적은 광산에 한국 기업의 이름을 새기거나 협약서에 서명을 남기는 데 있지 않다. 한국 산업이 필요할 때 필요한 광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데 있다. 서울에서 맺은 약속은 이제 광산과 정제시설, 철도와 항만에서 구체적인 사업으로 이어질 차례다. 중앙아 광물외교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회담장이 아니라 공급망의 마지막 현장, 한국의 공장이다.
2026-09-17 13:00:00
-
고려아연, 아연 넘어 핵심광물로…52년 키운 '끝까지 뽑아내는 기술'
[경제일보] 고려아연의 52년은 아연을 많이 만든 역사가 아니다. 같은 원료에서 얼마나 다양한 금속을 효율적으로 뽑아내느냐를 끊임없이 고민해온 역사에 가깝다. 아연과 연, 동에서 출발해 금·은 같은 귀금속과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 등 희소금속까지 회수했고, 최근에는 게르마늄과 갈륨처럼 첨단산업과 경제안보에서 중요성이 커진 핵심광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1974년 설립된 고려아연은 1978년 온산제련소를 준공하며 본격적으로 제련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아연·연·동 통합공정을 고도화하고 한 공정에서 나온 부산물과 잔재를 다른 공정의 원료로 활용하는 기술을 쌓아왔다. 지난달 31일 창립 52주년을 맞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꺼낸 화두도 ‘도가니(Crucible)’였다. 뜨거운 열을 견디며 불순물을 걷어내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도구처럼 위기와 도전을 기술과 조직을 단련하는 과정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많이 만드는 회사’보다 ‘끝까지 뽑아내는 회사’ 고려아연의 경쟁력은 단순 생산 규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아연·연·동 통합공정을 통해 한 공정의 부산물과 잔재를 다른 공정에 다시 투입하고, 그 과정에서 금·은 등 가치 있는 금속과 핵심광물을 추가로 회수한다. 제련 잔재에서 금속을 회수하는 TSL 공법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DSR 연 제련 공법, 저온·저압 헤마타이트 공정 등 기술과 운전 노하우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구조의 핵심은 한정된 원료에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특정 금속 가격이 흔들리더라도 금·은과 희소금속 등 다양한 제품을 함께 생산하면서 수익원을 넓힐 수 있다. 안티모니와 인듐, 비스무트도 대표적인 사례다. 고려아연은 안티모니와 인듐을 국내에서 사실상 독보적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비스무트 역시 주요 생산품목으로 키웠다. 최근에는 게르마늄과 갈륨 등으로 회수 영역을 확대 중이다. 중국이 주요 전략광물의 생산·정제에서 높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만큼 이런 역량의 전략적 가치도 커지고 있다. 광물을 보유하는 것만큼 복잡한 원료에서 필요한 금속을 분리·정제할 수 있는 기술이 중요해진 것이다. 제련을 중심으로 넓히는 ‘트로이카 드라이브’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트로이카 드라이브’ 역시 본업인 제련과 동떨어진 사업 확장이 아니다. 트로이카 드라이브는 자원순환, 신재생에너지·그린수소, 이차전지 소재를 세 축으로 한다. 회사는 이를 제련을 중심으로 원료와 에너지, 최종 제품의 영역을 확장하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자원순환은 제련소로 들어오는 원료를 넓히는 사업이다. 미국 페달포인트를 통해 전자폐기물과 IT 폐기자산, 금속 스크랩 등을 확보하고 이를 다시 고순도 금속으로 재생산한다. 천연 광석뿐 아니라 폐자원까지 제련 원료로 활용하는 구조다. 신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는 제련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바꾼다. 호주 SMC가 자체 태양광발전으로 필요한 전력 일부를 조달하고 있으며, 아크에너지를 중심으로 풍력·태양광·BESS·그린수소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에너지사업 자체의 수익과 함께 장기적으로 제련 과정의 탄소 부담을 낮춰 ‘그린메탈’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이차전지 소재는 제련으로 확보한 금속의 가치를 한 단계 더 높인다. 황산니켈과 전구체, 전해동박은 기존 비철금속 제련·정제 기술과 맞닿아 있다. 고려아연은 켐코와 KPC, 케이잼 등을 통해 이를 사업화하고 있다. 결국 트로이카 드라이브는 ‘폐자원으로 원료 확보를 하고 친환경 에너지로 제련한 뒤 금속 회수해 고부가 소재 생산’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이다. ‘도가니 DNA’로 핵심광물 플랫폼 도전 고려아연 관계자는 “도가니는 뜨거운 열을 견디며 불순물을 걷어내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도구”라며 “크고 작은 위기와 도전을 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기술과 조직, 사람을 끊임없이 단련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이어 “세계 최대 단일 제련소라는 점도 경쟁력이지만, 한정적인 원료에서 얼마나 다양한 금속을 효율적으로 회수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드느냐가 고려아연의 경쟁력”이며 “특정 광물 하나보다 공급망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핵심광물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통해 제련을 중심으로 원료와 에너지, 최종 제품의 영역을 넓혀갈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전략의 다음 무대는 미국이다. 고려아연은 미국에서 아연·연·동뿐 아니라 안티모니와 게르마늄, 갈륨 등 전략광물을 생산하는 통합제련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의미는 단순한 해외 생산능력 확대에 있지 않다. 온산제련소에서 축적한 다금속 회수와 통합공정 기술을 미국의 비중국 핵심광물 공급망에 적용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현지에서 발생하는 전자폐기물과 금속 스크랩까지 원료로 활용한다면 자원순환 사업과도 직접 연결된다. 고려아연이 목표로 하는 ‘글로벌 핵심광물 플랫폼’의 형태가 미국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고려아연의 52년을 관통하는 성장 공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원료에서 하나의 금속만 뽑아내지 않는다. 남은 것을 다시 원료로 쓰고, 부산물에서 또 다른 금속을 찾아내며, 폐기물까지 자원으로 되돌린다. 사업은 넓어졌지만 중심은 여전히 제련이다. 과거에는 아연과 연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생산하느냐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안티모니와 인듐, 게르마늄과 갈륨까지 공급망이 필요로 하는 금속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회수하느냐가 경쟁력을 가른다. 결국 고려아연의 DNA는 아연 그 자체가 아니다. 한정된 원료에서 끝까지 가치를 찾아내고, 그 가치를 다시 새로운 원료와 소재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52년 전 온산의 도가니에서 시작된 제련은 이제 폐전자제품과 이차전지 소재, 친환경 에너지, 글로벌 핵심광물 공급망으로 무대를 넓히고 있다. 고려아연은 제련업을 떠나는 회사가 아니다. 제련의 범위를 계속 넓히는 회사다.
2026-08-11 15:3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