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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개교 55년만에 총장 선임 부결 초유 사태… 2주만에 돌아온 이광형 총장 속내는
[경제일보]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이 사의를 전격 철회하고 차기 총장 선임 전까지 직무를 계속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차기 총장 선임안이 이사회에서 부결된 직후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힌 지 불과 2주만이다. 리더십 공백 장기화가 국가 과학기술 정책 전반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 정부와 이사회의 적극적인 만류가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13일 학계와 과기정통부 등에 따르면 당초 16일자로 사임할 예정이었던 이 총장은 이날 사의 철회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17일부터 이균민 교학부총장 대행 체제로 전환하려던 학교 측의 계획도 전면 취소됐다. 이 총장은 새 총장이 선출될 때까지 기존과 동일하게 총장직을 유지하며 학사 행정과 주요 정책을 총괄하게 된다. 이 총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최근 총장 선임 절차 지연으로 학내 구성원과 국민의 우려가 커지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겪으신 혼선과 불편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앞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총장 선임 제도와 관련한 법률 개정 논의가 이어지는 등 거버넌스와 관련된 중요한 변화가 논의되면서 리더십 공백 우려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대학 운영의 안정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이사회의 사의 만류와 차기 총장 선임시까지 직무를 수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국가적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AI 3강 전략 등 주요 과학기술 정책에서 국내 최고 연구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을 깊이 고민했다는 의미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교육과 연구 현장의 막대한 부담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었다는 고뇌가 엿보인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달 26일 열린 이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명자 이사장이 주재한 당시 임시이사회는 18대 총장 선임을 위해 이 총장과 김정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그리고 이용훈 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 등 3명의 후보를 놓고 투표를 진행했다. 하지만 재적 이사 14명중 8표 이상을 얻은 과반 득표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으면서 선임안은 최종 부결됐다. 이는 1971년 개교 이래 55년만에 처음 발생한 초유의 사태다. 이 총장의 공식 임기가 이미 지난해 2월 종료됐고 총장후보선임위원회가 지난해 3월 3배수 후보를 추천했음에도 이사회는 무려 1년가량 표결을 미뤄왔다. 장고 끝에 열린 이사회마저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재공모를 결정하자 학내외에서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총장 선임안 부결 직후 이 총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임서를 제출했다. 자신이 포함된 3배수 후보군이 이사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상황에서 연임 불발에 따른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수장 공백이 현실화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총장 재공모 절차는 후보 발굴부터 검증과 투표까지 최소 5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고된 작업이다. 여기에 지난달 이사진 5명의 임기마저 만료되면서 새로운 총장을 뽑기 위한 이사회 구성조차 불투명해졌다. 이대로 이 총장이 학교를 떠날 경우 단순한 행정 공백을 넘어 내년도 예산 확보와 대형 국책 연구과제 수주 등 핵심 업무가 전면 마비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결국 사태 수습을 위해 정부와 이사회가 다급히 진화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이 직접 이 총장과 만나 사임 의사를 철회하고 총장직을 이어가 줄 것을 강하게 설득했다는 전언도 나온다. 김 이사장 역시 정치적인 격동기에 총장 선임이 맞물려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며 안정적인 학교 운영을 위해 이 총장의 희생을 거듭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이 총장이 복귀를 선언했지만 학내 분위기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1년 넘게 선임을 방치하다 명확한 이유 없이 부결을 선언한 이사회를 향한 구성원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미 교수 사회와 학생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진 상태다. 실제로 지난 5일 교수협의회 소속 전임교원 740명중 252명은 집단 성명을 내고 이사회의 부결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이들은 이사회가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린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학내 구성원에게 사과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장기화하는 리더십 공백이 기관의 중장기 발전 전략 추진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절박한 호소였다. 이어 6일에는 학부 및 대학원 총학생회까지 규탄 대열에 합류했다. 학생들은 단순한 교내 행정 책임자를 넘어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방향을 제시하는 총장 자리를 이사회가 무책임하게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총장 선임 제도 전반의 개선과 함께 구성원들의 실질적인 의견 반영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총장의 복귀로 최악의 경영 마비 사태는 면했지만 향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고 입을 모은다. 연임에 실패한 수장이 남은 기간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식물 총장 체제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상 유지와 위기 관리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과학기술계 최상위 교육기관인 이곳의 거버넌스 취약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점이 뼈아프다. 법과 제도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총장 선임 과정이 정치적 외풍이나 정부 고위층의 입김에 휘둘린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향후 진행될 재공모 과정에서는 이러한 오명을 씻기 위해 평가 기준의 투명한 공개와 철저한 독립성 보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이 총장이 짊어진 임시 지휘봉의 무게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그는 차기 총장이 안착할 때까지 흐트러진 학내 분위기를 다잡고 정부와의 매끄러운 소통을 통해 산적한 과학기술 현안을 돌파해야 한다. 흔들리는 기술패권 시대 속에서 한국 과학기술의 심장부가 하루빨리 본연의 박동을 되찾을 수 있을지 과학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26-03-13 15: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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