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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도입만으론 성과 없다"…삼성SDS, 오픈AI·엔트로픽과 AX 해법 제시
[경제일보] 삼성SDS가 인공지능(AI)을 단순히 업무 효율화에 활용하는 것을 넘어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바꾸는 'AX' 전환에 속도를 낸다. AI 데이터센터와 플랫폼을 기반으로 기업의 AI 도입부터 운영까지 지원하고, 제조 현장에서는 로봇과 설비를 통합하는 피지컬 AI로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 8일 삼성SDS는 서울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엔터프라이즈 AX 콘퍼런스 '리얼 서밋 2026'을 열고 삼성SDS의 '다차원 AI 풀스택' 전략을 기반으로 AI 도입과 실제 비즈니스 성과 창출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 전략과 로드맵을 공개했다. 이날 삼성SDS는 기업들의 AI 활용이 늘고 있지만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비율은 낮다고 진단했다. 삼성SDS가 인용한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88%가 최소 한 개 이상의 업무에 AI를 활용하고 있지만, AI가 영업이익에 영향을 줬다고 답한 기업은 39%, 영업이익의 5% 이상에 기여했다고 답한 기업은 6%에 불과했다. 이에 삼성SDS는 AI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 업무에 AI를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SDS는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7개 메가 프로세스에 AX를 적용하는 '클라이언트 제로'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약 200명의 AX 전문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AI 인프라 확대도 추진한다. 삼성SDS는 국내 최초 AI 전용 데이터센터인 동탄센터를 기반으로 기업들의 AX를 지원하고 있으며, 오는 2028년 국가 AI 컴퓨팅센터와 오는 2029년 구미센터 구축을 통해 AI 인프라 역량을 확대할 방침이다. 글로벌 AI 기업과의 협력도 강화한다. 오픈AI, 앤트로픽, 구글 등과 협력을 확대하고 AI 인프라부터 플랫폼, 컨설팅·개발·구축·운영까지 제공하는 '다차원 AI 풀스택'을 통해 기업별 AX 수요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삼성SDS는 AX를 디지털 영역에서 제조 현장으로 확대한다. 지난 25년간 반도체·2차전지·바이오·자동차·소재·부품·식음료 등 430여개 기업의 제조 자동화를 지원하며 축적한 데이터와 경험을 피지컬 AI 사업에 활용한다. 삼성SDS는 실제 제조 환경에서 로봇 기반 자동화 기술을 검증하고 있으며, 오는 2027년 생산설비와 로봇을 하나로 묶어 운영하는 '로봇 오케스트레이션 플랫폼'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준희 삼성SDS 대표이사는 "AX는 단순히 AI를 도입해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로, AI를 중심으로 업무 방식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연사로 참가한 김경훈 오픈AI 한국 총괄대표는 기업의 AI 전환이 단순한 도입을 넘어 실제 업무 방식과 사업 성과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기가 공장에 처음 도입됐을 당시 동력원만 바꾸는 데 그친 공장보다 기계 배치와 작업 순서를 새롭게 설계한 공장에서 생산성 향상이 본격화됐다는 사례를 예시로 들며 지금 AI의 발전 상황과 비교했다. 김 대표는 오픈AI의 '엔터프라이즈 시그널스' 보고서를 인용해 AI를 깊게 활용하는 상위 10% 기업과 중간 수준 기업 간 격차가 올해 1월 2.6배에서 6월 8.6배로 확대됐으며, 제조업에서도 이 격차가 5.3배에 달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기업 내부 데이터와 업무 시스템을 AI와 연결해 업무 맥락을 제공하고, 가장 중요한 업무를 선정해 처음부터 끝까지 AI를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AI가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자료 검색과 시스템 확인, 결과물 작성 등 여러 단계를 직접 수행하는 '에이전트'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픈AI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업 고객이 생성한 전체 출력 토큰 가운데 코딩 에이전트 '코덱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64%까지 증가하며 법무·영업·채용·마케팅 등 다양한 업무에서도 AI에게 실제 일을 맡기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AI 활용의 최종 목표는 토큰 사용량이나 도입률이 아니라 실제 사업 성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조기업이 AI를 활용해 견적 작성 시간을 최대 6시간에서 20분으로 줄이고 연간 3000만 달러(약 400억원)의 매출 총이익 증가를 기대하는 사례 등을 소개했다. 김경훈 대표는 "AI가 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연구, 개발, 제조, 관리, 영업, 마케팅 등 여러 분야에서 여러분의 발전을 크게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100년 전 공장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그 회사의 미래를 결정한 것처럼 지금 우리도 이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기영 엔트로픽 코리아 대표는 AI를 활용한 기업의 변화가 직원 생산성 향상을 넘어 업무 프로세스와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대표는 기업의 AI 전환을 직원 생산성 향상, 기존 업무 프로세스·워크플로우 개선, AI 네이티브 제품 및 비즈니스 모델 구축 등 3단계로 구분하며, 궁극적으로는 AI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는 단계까지 나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사례로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도장 공정 문제 해결 사례를 소개했다. 수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에 관련 데이터를 연결하고 AI의 추론 기능을 활용한 결과 10분 만에 해결책을 도출했다고 설명하며, 향후에는 AI 모델의 발전과 함께 기업의 문제 해결 방식 자체가 달라질 것으로 분석했다. 엔트로픽 내부의 개발 방식도 AI를 통한 업무 전환 사례로 제시했다. 한 명의 엔지니어가 주말 동안 AI를 활용해 초기 프로토타입을 만든 뒤 3명이 8주 동안 베타 제품을 개발했으며, 이후 사용자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반영해 48시간 만에 62개 기능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도 피드백을 받은 기능을 24시간 안에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최 대표는 이 같은 변화가 기업의 조직 규모와 제품 개발 방식까지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많은 인력과 긴 개발 기간이 필요했던 작업도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면 소수 인원으로 빠르게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AX를 위해서는 명확한 비즈니스 목표와 성과 지표를 먼저 정하고, 도메인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AI를 반복적으로 활용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기영 대표는 "과거에는 팀 사이즈에서 인원수가 소프트웨어 개발 경쟁력이 됐지만 이제는 소수의 인원이 AI를 통해 개발을 빠르게 해 나갈 수 있다"며 "적은 인원을 갖고도 규모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AI 내부의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할 수 있는 성공적인 AX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에서 삼성SDS와 오픈AI, 엔트로픽은 기업의 AI 전환이 단순한 기술 도입이나 개별 업무의 효율화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데 공통된 메시지를 내놨다. AI를 기존 업무에 추가하는 것을 넘어 데이터와 시스템을 연결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는 동시에 AI 에이전트에게 실제 업무를 맡기고 이를 매출과 생산성 등 구체적인 사업 성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의 AI 경쟁력도 어떤 모델을 도입했느냐를 넘어 AI를 실제 업무와 조직에 얼마나 깊게 내재화하느냐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이준희 삼성SDS 대표이사는 "진정한 AI 풀스택이라면 AX 실행을 돕기 위한 컨설팅은 물론 개발과 구축 그리고 운영에 대한 전문적 역량을 반드시 제공해야 하고, 이런 역량은 고객의 업종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삼성SDS는 AI 인프라 플랫폼 솔루션에 걸친 모든 영역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6-09-08 11: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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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녹십자, 2030년까지 'AI-GMP' 시스템 구축…백신 생산 품질 높인다 外
[경제일보] GC녹십자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백신 제조와 품질관리 시스템 고도화에 나선다. GC녹십자는 산업통상부와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이 주관하는 ‘AI 활용 백신 제조변동성 제어 및 지능형 품질관리 시스템 개발’ 과제의 주관연구기관으로 선정됐다고 8일 밝혔다. 이번 과제에는 GC녹십자를 비롯해 국립목포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전남바이오진흥원이 참여한다. 사업 기간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4년 6개월이다. 참여 기관들은 화순 바이오특화단지와 GC녹십자 화순공장의 mRNA-LNP GMP 생산 인프라를 기반으로 AI 기반 스마트 제조·품질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핵심은 mRNA-LNP 백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동성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원료의약품(DS)부터 완제의약품(DP)까지 전 제조공정에 AI를 적용해 품질을 예측하고 이상 징후를 찾아낸다는 구상이다. GC녹십자는 연속 공정 분석 기술과 AI 모델을 결합해 생산 배치별 품질 편차를 줄일 계획이다. 실시간 품질 예측과 이상 탐지 체계를 구축해 백신 생산의 안정성과 일관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특히 이번 사업은 향후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백신을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AI를 활용해 생산 과정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하면 제조 조건 변화에 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인규 GC녹십자 화순공장 본부장은 “AI-GMP 지능형 플랫폼을 성공적으로 개발해 향후 신종 팬데믹 발생 시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핵심 자산을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활명수 128주년 기념판 수익금, 네팔 물·위생 개선에 쓰인다 동화약품이 활명수 128주년 기념판 판매 수익금을 네팔 지역의 물·위생 환경 개선에 사용한다. 동화약품은 지난해 출시한 활명수 128주년 기념판 판매 수익금을 ‘생명을 살리는 물’ 캠페인 기금으로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에 전달했다고 8일 밝혔다. 기부금 전달식에는 유준하 동화약품 대표이사와 권영규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회장 등이 참석했다. 양측은 네팔 현지 사업 진행 상황도 공유했다. 기부금은 네팔 산쿠와사바아 지역의 수도·위생 시설 개선과 보급에 사용된다.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보건위생 교육과 캠페인에도 활용될 예정이다. 대한적십자사는 해당 지역에서 ‘통합적 물과 위생 및 재난위험경감(I-WASH&DRR)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3년부터 2026년까지 4년간 추진되는 사업이다. 총 1078가구, 4994명을 대상으로 물과 위생, 보건위생, 학교안전, 재난위험경감 등을 지원한다. 동화약품은 활명수의 브랜드 의미를 사회공헌 활동으로 이어가고 있다. 활명수는 ‘살릴 활(活)·생명 명(命)·물 수(水)’라는 이름처럼 1897년 출시 이후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의미를 이어왔다. 동화약품은 2013년 활명수 116주년 기념판을 시작으로 매년 기념판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고 있다. 올해로 13회째다. 2024년에는 코닥과 협업한 활명수 127주년 기념판을 출시했다. 지난해에는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와 협업해 128주년 기념판을 선보였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활명수가 이어온 ‘생명을 살리는 물’의 의미를 사회와 나누기 위해 캠페인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현지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속해서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한독, 2026년 신입·경력사원 모집…AI 역량검사 도입 한독은 오는 27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신입 및 경력 직원 지원을 받는다고 8일 밝혔다. 모집 분야는 전문의약품 영업(MR), 마케팅, 의료기기·장비 영업 등이다. 신입 공채는 2027년 2월 졸업 예정자를 포함해 4년제 대학 졸업자 이상이면 전공과 관계없이 지원할 수 있다. 채용은 AI 역량검사, 서류전형, 1차 면접, 2차 면접 및 직무테스트, 최종면접 순으로 진행된다. 전형은 10~11월 진행되며 최종 합격자는 11월 입사할 예정이다. 한독은 만성질환과 암, 희귀질환 분야 전문의약품을 비롯해 일반의약품, 의료기기, 진단시약,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자체 연구개발과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혁신 신약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인재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가족친화인증과 인적자원개발 관련 수상 등을 통해 조직문화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AI와 디지털 기술을 업무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 실습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2026-09-08 10: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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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검증의 출발선" 청와대 사전 검증은 무엇을 했나
[경제일보]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검증을 대신하는 절차가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마지막 문턱에 가깝다. 그 문턱에 누구를 세울 것인지를 먼저 가려내는 일은 인사권자의 몫이다. 이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청문회는 검증 장치가 아니라 잘못된 인사를 뒤늦게 수습하는 무대가 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청와대가 내놓은 설명은 그래서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청문 제도 자체가 후보자에 대한 국민적 검증 과정”이라며 두 후보자가 “인사위원장의 책임 아래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된 후보”인 만큼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국민 눈높이에 부족함이 없도록 인사 검증체계를 갖추고 강화하겠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사청문회는 국민을 대신한 국회의 공개 검증 절차다.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는 보장도 없고, 청문회를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다만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했다면서 왜 곧바로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인가. 김 후보자에게는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과 관련한 청탁 의혹과 과거 음주운전 문제가 제기됐다. 김 후보자는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고 반박하면서도 민원 전달 과정에는 신중했어야 했다고 밝혔고,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용 후보자에게는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의 겸직 문제, 당 운영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 등이 제기되고 있다. 각각의 의혹과 적격성은 청문회에서 사실관계를 더 따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명 전 어디까지 검토됐느냐는 것이다. 이미 알고도 장관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청와대가 그 판단에 책임을 지면 된다. 반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사전 검증에 구멍이 있었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경우든 “청문회에서 검증하자”는 말만으로 끝낼 문제는 아니다. 국회법은 국무위원 후보자 등에 대해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에게서 후보자를 고르는 책임을 넘겨받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 이후 국회가 공직 수행 능력과 도덕성 등을 공개적으로 다시 검증하는 견제 장치다. 사전 검증과 인사청문은 순서만 다른 같은 검증이 아니다. 책임의 주체부터 다르다. 청와대 검증은 대통령의 책임이고, 국회 청문회는 국회의 책임이다. 이 단순한 구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청와대가 후보자의 재산과 세금, 범죄·징계 이력, 이해충돌 가능성, 과거 행적과 정무적 리스크를 충분히 확인한 뒤 “이 정도 문제를 감안해도 국정을 맡길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지명이다. 청문회는 그 판단에 누락이나 왜곡이 없는지 국민 앞에서 다시 따지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전 단계에서 걸러졌어야 할 문제가 지명 직후 쏟아지고, 그때마다 “청문회에서 보자”는 답이 반복되면 인사의 책임 구조가 거꾸로 선다. 대통령이 고르고 청와대가 검증했는데, 최종적으로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발견하고 판단하는 책임은 국회와 언론, 국민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방식이 반복될 때 생기는 ‘지명의 관성’이다. 후보자를 발표한 뒤에는 철회 비용이 커진다. 인사 실패를 인정해야 하고 야당의 공세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이미 지명했다는 이유 자체가 후보자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되기 쉽다. 검증의 판단 기준이 ‘공직에 적합한가’에서 ‘청문회를 버틸 수 있는가’로 바뀌는 순간이다. 제대로 된 사전 검증은 흠결을 하나도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현실 정치에 거의 없다. 핵심은 어떤 흠결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기준을 미리 세우는 것이다. 음주운전이나 세금 체납, 부동산 투기, 연구윤리 위반, 갑질, 이해충돌, 수사·징계 이력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검증 항목부터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부족하다. 공직의 성격에 따라 어느 정도의 흠결을 결격으로 볼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기준과 산업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전문성의 기준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제는 탈락 사유였던 문제가 오늘은 해명 가능한 문제가 되는 것도 곤란하다. 법적 결격과 정치적·윤리적 부적격을 구분하는 기준도 필요하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장관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장관은 형사재판에서 유죄인지 무죄인지만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에게 정책의 준수를 요구하고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법률상 임명 가능성과 국민이 기대하는 공직 윤리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그때그때 여론을 보며 판단해서는 인사 원칙이 생기지 않는다. 책임선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청와대 인사는 인사위원회를 중심으로 후보 추천과 검증, 정무적 판단이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인사수석실까지 신설됐지만 후보자 논란이 반복되면서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누가 후보자를 추천했는지까지 모두 공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인사에는 보안이 필요하다. 후보군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하지만 지명 이후 중대한 문제가 드러났다면 최소한 내부적으로는 추천 단계에서 놓쳤는지, 검증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했는지, 알고도 정무적으로 수용했는지를 구분하고 책임을 남겨야 한다. 알고도 선택했다면 대통령과 인사위원회가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된다. 몰랐다면 검증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상서’ 고요모에는 ‘지인즉철 능관인(知人則哲 能官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지혜이며, 그래야 사람을 제대로 벼슬에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수천 년 전에도 국정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를 ‘사람을 알아보는 일’에서 찾았다. 인사가 어려운 것은 시대가 달라져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고 완벽한 후보자는 없다. 사생활과 공적 검증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도 쉽지 않다. 지나치게 가혹한 검증은 유능한 인재가 공직을 피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준이 필요하다. 정권에 가까운 사람에게는 느슨하고 반대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아니라, 어느 정부에서든 대체로 예측할 수 있는 기준 말이다. 청와대가 이번에 인사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한 것은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강화하겠다’는 말만 반복해서는 같은 문제가 다음 개각에서 다시 돌아온다. 검증 항목을 표준화하고, 중대한 결격 사유와 해명 가능한 사안을 구분하며, 추천·검증·정무 판단의 책임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명 뒤 예상하지 못한 중대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어떤 단계에서 놓쳤는지 복기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또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인사청문회는 청와대 검증의 실패를 대신 책임지는 곳이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명하기 전에 제대로 검증하는 것은 그보다 먼저 존재하는 권한이자 책임이다. 청문회에서 모든 것을 확인하겠다면 사전 검증은 형식이 된다. 반대로 청와대가 자신 있게 검증을 마쳤다면 논란이 불거졌을 때 “청문회에서 보자”에 앞서 왜 그 문제를 감수하고도 지명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사의 신뢰는 흠결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왜 골랐고, 무엇을 확인했으며,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 분명할 때 생긴다. 청문회는 검증의 시작이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국민 앞에서 확인하는 마지막 문턱이어야 한다.
2026-09-08 09: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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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없는 공장' 5년간 실증…KT·KAIST·다임, 피지컬 AI 동맹
[경제일보] KT(대표이사 박윤영)가 한국과학기술원(이하 KAIST), 피지컬 AI 전문기업 다임리서치와 손잡고 인공지능(AI)이 로봇과 설비를 제어하는 ‘다크팩토리(Dark Factory·무인공장)’ 개발에 나선다. 연구실 단계의 피지컬 AI를 실제 제조 현장에서 검증하고 상용 플랫폼으로 연결하는 5년짜리 프로젝트다. KT는 KAIST, 피지컬 AI 전문기업 다임리서치와 기술 개발과 실증, 사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8일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피지컬 AI 얼라이언스’ 2기 활동에서 논의한 협력 방안을 구체화한 것이다. 피지컬 AI는 AI가 카메라와 센서로 현실 공간을 인식하고 로봇·자율주행차·산업 장비를 스스로 판단·제어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다크팩토리는 조명이나 상주 인력 없이도 생산·물류 공정이 운영되는 고도화된 무인공장을 뜻한다. 협력의 중심은 과기정통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추진하는 ‘협업지능 피지컬 AI 기반 소프트웨어 플랫폼 연구개발 생태계 조성 사업’이다. NIPA의 2026년도 정부지원 예산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사업의 올해 예산은 766억6600만원이다. 다만 KT·KAIST·다임리서치 컨소시엄에 배정되는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세 기관은 앞으로 5년간 여러 종류의 로봇과 센서, 생산설비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연결하고 제조 공정이 작업 상황에 맞춰 스스로 대응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실제 공장과 유사한 테스트베드에서 성능을 검증한 뒤 반도체와 이차전지, 자동차 등 제조 현장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기술 개발은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KAIST와 다임리서치는 지난 3월 이기종 로봇과 센서, 설비, 디지털 트윈을 통합 관제하는 피지컬 AI 플랫폼 ‘카이로스(KAIROS)’를 공개했다. 다임리서치는 2020년 KAIST 장영재 교수와 연구진이 창업한 기업으로, 강화학습 기반 시뮬레이션 엔진과 로봇 통합 운영 플랫폼 ‘xMS’를 개발해 왔다. 수십대에서 수천대에 이르는 물류·제조 로봇의 작업 경로와 배치를 최적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KT는 여기에 데이터 운영 플랫폼과 엣지 AI(현장 인접형 인공지능), 초고속·초저지연 네트워크를 결합한다. 로봇이 생성한 데이터를 멀리 떨어진 클라우드로 모두 전송하지 않고 공장 가까이에서 처리해 제어 지연을 줄이는 역할이다. AI 에이전트와 시뮬레이션 기술을 활용해 공정 운영과 성능 검증도 자동화할 방침이다. KT로서는 통신망 공급을 넘어 제조 AI 운영 플랫폼 사업으로 기업간거래(B2B) 영역을 넓힐 기회다. KAIST의 연구성과, 다임리서치의 로봇 관제 기술, KT의 데이터·통신 인프라를 묶어 국산 다크팩토리 모델을 만들고 해외 시장까지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박상원 KT AX사업부문장 전무는 “AI 에이전트와 엣지 AI, 네트워크 역량을 결집해 제조 현장의 지능화를 지원하고 국내 피지컬 AI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2026-09-08 09: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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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부터 수주하고 조선소 만든 HD현대…54년 '선행투자 DNA'
[경제일보] HD현대의 출발은 일반적인 순서와 거리가 멀었다. 공장을 지은 뒤 제품을 만드는 것이 상식이지만 현대중공업은 조선소가 제대로 갖춰지기도 전에 배부터 수주했다. 1971년 10월 그리스 선주 리바노스로부터 26만톤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2척을 따냈고, 이듬해 3월 울산 미포만에서 조선소 건설에 들어갔다. 조선소 공사와 선박 건조가 동시에 진행됐다. 1974년 2월 첫 선박을 진수했고 같은 해 6월 조선소 1단계 준공과 VLCC 2척 명명식을 열었다. 시장과 공장이 갖춰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주부터 한 뒤 생산기반을 동시에 만드는 방식이었다. 1983년 현대중공업은 선박 수주와 건조량에서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이 경험은 이후 HD현대 경영에서 반복됐다. 필요하다고 판단한 생산능력과 기술을 시장이 충분히 커지기 전에 확보하고, 부족한 사업은 직접 만들거나 인수했다. 성공할 경우 시장 선점 효과가 컸지만 판단이 빗나가면 대규모 손실도 감수해야 했다. HD현대의 54년은 이른바 ‘선행투자 DNA’의 성공과 실패가 교차한 역사다. 배 만들다 엔진·전력·건설기계까지…필요한 것은 직접 확보 HD현대의 사업 확장은 조선소 안에서 시작됐다. 배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선박의 심장인 엔진이 필요했다. 현대중공업은 1976년 엔진사업부를 발족했고, 1978년 대형엔진공장을 완공했다. 1977년에는 중전기사업부를 세워 변압기와 전력기기 분야에도 뛰어들었다. 건설장비와 로봇도 같은 흐름이었다. 1982년 건설장비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로봇 분야에서는 1984년 용접기술연구소에 로봇 전담팀을 만들고, 1985년 산업용 로봇사업에 진출했다. 1987년 국내 최대 규모 로봇공장을 준공해 생산을 시작했고, 1988년에는 현대로보트산업을 별도 법인으로 출범시켰다. 조선에 필요한 기술을 밖에서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확보한 것이다. 축적된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소 밖 시장으로 뻗었다. 2000년에는 약 10년에 걸친 연구 끝에 자체 중형 디젤엔진인 ‘힘센엔진’을 개발했다. 선박용에서 시작한 중전기 사업은 현재 HD현대일렉트릭으로 성장해 글로벌 전력망과 AI 데이터센터에 변압기와 전력기기를 공급한다. 사업 확장은 인수합병으로도 이어졌다. 현대중공업은 2010년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IPIC)가 갖고 있던 현대오일뱅크 지분 70%를 넘겨받아 지분율을 91.13%까지 높였다. 11년 만의 경영권 재확보였다. 2021년에는 당시 현대중공업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했다. 조선과 에너지에 건설기계를 더하면서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넓혔다. 방식은 달라도 공통점은 분명했다. 기존 주력사업이 성숙한 뒤 새로운 산업을 찾은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쌓은 대형 제조·설비 운영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을 미리 확보했다. 해양플랜트 3조 적자 쇼크…선행투자의 수업료 먼저 뛰어드는 경영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실패가 2010년대 해양플랜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선시장이 침체하자 국내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를 새로운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봤다. 현대중공업 역시 대형 해양 프로젝트 수주를 확대했다. 하지만 선박과 해양플랜트는 사업구조가 달랐다. 해양플랜트는 발주처 요구에 따른 설계 변경이 잦았고 제작·설치 과정도 복잡했다.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저가 수주와 공정 지연이 겹쳤다. 여기에 국제유가 급락까지 이어졌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 연결 기준 3조249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창립 이후 최대 규모였다. 이 손실 전체가 해양플랜트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다. 세계 조선경기 부진과 조선·플랜트 등 여러 사업의 원가 상승이 함께 영향을 미쳤지만 해양플랜트의 대규모 부실이 실적 악화의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2015년에도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손실이 반영됐다. 현대중공업은 2014~2015년 2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뒤 2016년 전사 기준 흑자로 돌아섰다. 해양플랜트 실패는 HD현대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시장에 먼저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술과 설계 역량, 계약조건, 원가와 공정 위험을 함께 통제하지 못하면 선행투자가 오히려 대규모 부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HD현대의 선행투자는 과거의 ‘속도 우선’에서 수익성과 현금흐름, 데이터에 기반한 ‘관리형 선행투자’로 성격이 달라졌다. 사람보다 AI가 먼저 판단하는 조선소…54년 DNA의 2막 HD현대는 현재 다시 미래 시장보다 앞서 설비와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대상은 선박이 아니라 조선소 자체다. HD한국조선해양과 조선 계열사들은 2021년부터 ‘FOS(Future of Shipyard)’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빅데이터와 디지털트윈, 로봇, AI를 이용해 노동집약적인 조선소를 지능형 생산시설로 바꾸는 작업이다. 2023년에는 디지털트윈을 기반으로 작업과 장비 상황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1단계 ‘눈에 보이는 조선소’를 구축했다. 2026년까지 생산 데이터를 연결해 공정을 예측·최적화하는 2단계를 거쳐 2030년에는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한 ‘지능형 자율 운영 조선소’를 완성한다는 목표다. 회사가 제시한 목표는 생산성 30% 향상과 건조기간 30% 단축이다. 이는 실제 달성 실적이 아닌 2030년 목표치다. 로봇도 조선소에 투입한다. HD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로보틱스는 미국 페르소나AI 등과 조선 용접용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고 있다. 2026년까지 시제품 개발을 끝내고 2027년부터 현장 실증과 상용화를 진행하는 계획이다. 조선업의 고질적인 숙련인력 부족과 안전 문제를 AI와 로봇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다. 과거에는 새로운 도크를 만들어 생산량을 늘렸다면 앞으로는 같은 조선소에 AI와 로봇을 넣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선행투자가 바뀌고 있다. 조선 밖에서는 전력기기가 새로운 성장축으로 떠올랐다.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과 국내에서 변압기 생산능력을 확대해 왔다.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증가, 미국의 노후 전력망 교체가 맞물리면서 세계적으로 변압기 공급부족이 심해진 데 따른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HD현대일렉트릭의 올해 6월 말 수주잔고는 85억 달러로 6개월 전보다 23% 증가했다. 3년 이상의 물량을 확보했고 일부 고객과는 2030년 인도 물량까지 협의하고 있다. 과거 중전기사업부로 시작한 사업이 반세기 뒤 AI 인프라의 핵심 공급망으로 성장한 셈이다. HD현대는 지난해 세계 조선업계 최초로 누적 선박 5000척 인도 기록도 세웠다. 1974년 첫 VLCC를 시작으로 68개국 700여 선주사에 선박을 공급한 결과다. 54년 전 미포만에서는 배를 지을 조선소조차 없는 상태에서 먼저 선박을 수주했다. 지금은 AI가 스스로 공정을 판단하는 조선소와 아직 수요가 더 커질 전력 인프라에 미리 투자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투자 방식이다. 1970년대 선행투자가 창업자의 결단과 실행력에 의존했다면 현재는 수주잔고와 데이터, 자동화 기술, 글로벌 수요 전망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HD현대의 DNA는 무조건 남보다 빨리 뛰어드는 데 있지 않다. 앞으로 필요할 기술과 생산능력을 먼저 정하고,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전에 이를 실제 산업으로 만드는 능력에 가깝다. 조선소와 배를 동시에 만들었던 승부수는 HD현대를 세계 최대 조선사로 키웠다. 해양플랜트는 같은 DNA가 얼마나 큰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도 보여줬다. 업계 관계자는 “2030년 AI 자율조선소와 전력기기가 또 하나의 ‘미포만 신화’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면서 “다만 분명한 것은 HD현대가 54년 전과 마찬가지로 시장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생산기반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어 “선행투자는 여전히 HD현대의 가장 강력한 성장 DNA이자 가장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위험”이라고 강조했다. [아주경제 2026년 09월 08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9-08 09: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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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베트남 국회의장에 '반도체 인재·공급망 육성' 청사진 제시…정부 지원 요청
[경제일보]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현지 부품·소재 기업의 공급망 편입과 반도체 전문인력 육성을 양대 축으로 한 현지 산업 생태계 강화에 나선다. 단순 생산기지 투자를 넘어 현지 기업의 생산성 혁신과 스마트공장 구축을 지원하고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인재를 직접 육성하는 방식이다. 특히 올해부터 현지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삼성 이노베이션 캠퍼스(SIC)’에 반도체 교육과정을 처음 도입하고 관련 교육 거점을 베트남 주요 지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삼성은 이 같은 현지 산업·인재 육성 전략을 베트남 최고위급에 설명하고 국회와 중앙·지방정부에 지속적인 협력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경제일보가 베트남 당국 자료와 삼성전자 측이 지난 6일 쩐 타인 먼(Trần Thanh Mẫn) 베트남 국회의장의 방한 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을 분석한 결과, 삼성은 베트남 현지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첨단기술 인재 육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쩐 의장은 지난 6일 서울에서 한국 내 비정부기구(NGO)와 한·베 우호단체, 기업·학계 관계자 등 70여명과 만났다. 이 자리에는 나기홍 삼성베트남 법인장도 참석했다. 삼성은 이 자리에서 베트남 현지기업 육성과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중장기 전략을 설명했다. 베트남이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양적 확대에서 질적 고도화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는 상황에서 현지 공급망과 인적자본을 함께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 삼성 공급망에 베트남 기업 키운다…2015년부터 현지기업 발굴 삼성이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베트남 부품산업의 경쟁력 강화다. 삼성은 베트남 투자 이후 현지 기업 육성과 기술 이전, 고급 기술인력 양성에 지속적으로 자원과 예산을 투입해 왔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베트남 기업들이 단순한 현지 협력업체에 머무르지 않고 생산성과 기술 경쟁력을 높여 삼성의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2015년부터 베트남 산업통상부와 각 지방 산업통상 당국 등과 협력해 잠재력을 갖춘 현지 공급업체를 발굴해 왔다. 부품산업 관련 워크숍을 열어 현지 기업과 삼성의 접점을 만들고 한국의 제조 전문가들이 직접 기업 현장을 찾아 생산공정과 품질관리 등을 개선하는 컨설팅도 진행했다.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도 이 같은 현지기업 육성 전략의 하나다. 베트남 기업의 제조 현장에 한국의 생산관리 노하우와 스마트 제조기술을 접목해 생산성과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이다. 삼성은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베트남 기업들이 현지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삼성의 베트남 사업 전략이 완제품 생산 중심에서 현지 부품·소재기업과 기술인력을 함께 육성하는 산업 생태계 구축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베트남 국회 역시 6일 공식자료를 통해 나 법인장이 삼성의 베트남 기업 지원을 소개하면서 이들이 베트남뿐 아니라 삼성의 글로벌 공급망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 ‘삼성 이노베이션 캠퍼스’에 반도체 교육 첫 도입 인재 육성 전략에서는 반도체가 전면에 등장했다. 삼성은 전문대·대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SIC를 통해 AI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 분야의 실무교육을 제공해 왔다. 올해부터는 여기에 반도체를 추가했다. 특히 교육 수준에 따라 입문·기본·심화 등 3단계로 구성된 반도체 교육과정을 처음 도입했다. 베트남 정부가 2030년까지 반도체 전문인력 5만명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추진하는 데 맞춰 현지 반도체 인력 기반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교육 인프라도 확대한다. 삼성은 2026년부터 베트남 주요 지역을 대상으로 ‘SIC Lab’ 모델을 확산·고도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SIC Lab은 하노이와 다낭, 박닌, 타이응우옌 등에서 구축·운영되고 있다. 삼성의 올해 SIC 프로그램에 반도체 교육이 처음 포함됐다는 사실은 지난 4월 삼성베트남이 공개한 사업계획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삼성은 AI·IoT·빅데이터와 함께 반도체 교육을 도입하고 올해 약 2200명의 학생에게 첨단기술 교육을 제공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반도체 생산시설을 유치하는 것만으로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없는 만큼 현지 전문인력을 선제적으로 양성해 베트남의 반도체 산업 기반을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 대학·대학원까지 연결…산학협력에 1800억동 투자 삼성은 대학과 대학원으로 이어지는 산학협력도 강화한다. 삼성베트남은 2012년부터 베트남 주요 대학 및 기관과 협력해 첨단기술 연구개발(R&D)과 인재 양성을 지원하고 삼성 인재 장학금(STP)을 지급해 왔다. 삼성이 이날 밝힌 관련 누적 투자액은 약 1800억동이다. 초·중·고교생부터 대학생과 대학원생까지 단계별로 이어지는 인재 육성 체계를 구축해 장기적으로 베트남 첨단산업을 뒷받침할 기술인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개별 대학이나 기업 중심의 인재 육성을 넘어 베트남 정부와 대학,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산·학·연 협력 모델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삼성은 이를 베트남의 지속가능한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산업에 필요한 고급 기술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 청소년 단계에서는 ‘솔브 포 투모로우(Solve for Tomorrow)’가 가교 역할을 한다. 2019년 베트남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중·고등학생들이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지식을 활용해 사회문제 해결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방식이다. 올해는 베트남 국가혁신센터(NIC)와 처음 협력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은 이를 전국 수천개 학교로 확산시켜 STEM 교육과 과학기술·혁신·디지털 전환을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 저소득층부터 반도체 인재까지…‘인재 파이프라인’ 구축 삼성의 베트남 인재 육성 전략은 취약계층 청소년까지 포괄한다. 대표적인 사업이 ‘삼성 희망학교’다. 삼성 사업장과 협력회사 인근의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방과 후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2013년 박닌 지역에서 시작해 현재 박닌 2곳과 타이응우옌, 랑선 등 총 4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 5000명 이상의 학생이 방과 후 교육 기회를 제공받았다. 삼성의 베트남 사회공헌 전략을 연결하면 저소득층 아동의 교육 지원에서 중·고교 STEM 교육, 대학생 AI·반도체 교육, 대학·대학원 R&D 지원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사회공헌과 산업인재 육성을 분리하기보다 장기적인 ‘인재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 삼성, 베트남 국회·정부에 “지속적인 지원 필요” 삼성은 이번 방한을 계기로 베트남 국회와 중앙·지방정부에도 협력을 요청했다. 베트남이 새로운 성장 단계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미래 세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삼성의 사회공헌 및 인재 육성 사업이 안정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특히 각 교육·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수혜자를 발굴하고 지역 현장에서 사업을 확대하려면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삼성전자 측은 “베트남의 발전이 삼성의 발전이고 삼성의 성공이 베트남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가장 신뢰받는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쩐 의장도 한국 기업의 베트남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반도체와 전략적 공급망, 재생·청정에너지, 디지털 전환, AI 등을 양국이 협력을 확대해야 할 분야로 꼽았다. 베트남 국회는 외국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와 법률을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한국 기업들이 현지에서 장기적으로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이 제시한 공급망 현지화와 반도체 인재 육성 구상이 베트남의 산업 고도화 정책과 맞물리면서 삼성의 베트남 전략도 ‘생산기지’에서 ‘산업 생태계 공동 구축’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모습이다.
2026-09-08 08: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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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은행 자문에서 국내 최대 로펌까지…김앤장 53년
[경제일보] 김앤장은 법정이 아니라 기업의 계약서에서 출발했다. 1973년 김영무·장수길 변호사가 문을 연 김·장 법률사무소의 초기 고객은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이었다. 국내 은행과 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을 빌릴 때 계약서를 검토하고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자문했다. 변호사의 주된 무대가 법정이던 시절, 김앤장은 기업의 거래 현장으로 먼저 들어갔다. 53년이 지난 지금 김앤장은 국내 최대 로펌이다. 변호사만 1400명이 넘고 변호사를 포함한 법률전문가는 2000명을 웃돈다. 2025년 매출은 업계에서 1조6000억~1조70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한다. 2위권 대형 로펌과도 상당한 격차를 두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규모였던 것은 아니다. 김앤장보다 먼저 기업법무 시장에 자리 잡은 법률사무소도 있었다. 김앤장이 선두로 치고 올라온 과정에는 한국 기업이 다음에 필요로 할 법률서비스를 먼저 준비하는 방식이 있었다. ◆ 판·검사 대신 기업법무 택한 김영무 창업자 김영무 변호사의 이력부터 당시 법조계의 통상적인 경로와 달랐다. 1964년 제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판사나 검사가 되지 않았다. 서울대 사법대학원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 로스쿨에서 비교법을 공부했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J.D. 학위를 받았다. 1970년에는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1970년대 한국 기업들은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며 빠르게 성장했다. 차관을 들여오고 외국 회사와 합작법인을 세우면서 계약도 복잡해졌다. 국내법뿐 아니라 외국법과 국제거래에 익숙한 변호사가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김영무 변호사는 이 시장을 파고들었다. 법정에서 이미 벌어진 분쟁을 해결하는 것보다 기업이 거래를 하기 전 계약을 짜고 위험을 줄이는 업무에 무게를 뒀다. 지금은 흔한 기업법무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시장이었다. 장수길 변호사의 합류는 김앤장의 빈 곳을 채웠다. 장 변호사는 고등고시를 거쳐 서울민사지법과 서울형사지법원 판사를 지냈다. 김영무 변호사가 국제거래와 기업자문을 맡았다면 장 변호사는 송무와 중재, 지식재산권을 담당했다. 김앤장이라는 이름은 두 사람의 성에서 따왔다. ◆ 기업이 해외로 나가자 로펌도 따라갔다 김앤장의 성장은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과 궤를 같이했다. 1970~1980년대 해외 차관과 외국인 투자가 늘면서 국제금융과 외국인투자 업무가 커졌다. 기업들이 합작회사를 만들고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면서 김앤장이 일찍 쌓은 국제거래 경험을 찾는 기업도 늘었다. 1976년 합류한 정계성 변호사는 금융 분야를 맡았다. 공기업과 기업의 해외 차입, 국제자본시장 업무를 담당했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기업의 외자유치와 금융거래를 자문했다. 1980년 입사한 정경택 변호사는 외국인 투자와 M&A, 공정거래 분야를 키웠다. 1983년 GM과 대우자동차의 합작투자, 1991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쌍용정유 지분 인수, 1997년 미국 P&G의 쌍용제지 인수 등 국내 기업법무 시장의 굵직한 거래에 참여했다. 기업의 거래 방식이 바뀔 때마다 김앤장의 조직도 달라졌다. 기업들이 해외에서 돈을 빌리자 금융 전문가가 늘었고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이 많아지자 외국인투자 분야를 키웠다. M&A가 활발해지자 기업거래 변호사를 늘렸고 공정거래 규제가 강화되자 경쟁법 전문가를 붙였다. 김앤장이 몸집을 키운 과정은 변호사를 무작정 늘린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시장이 먼저 움직였고 그 시장에 맞춰 사람을 채웠다. ◆ 유명 변호사 한 명보다 팀으로 승부 김앤장의 또 다른 특징은 사건을 맡는 방식이다. 대형 사건을 이름난 변호사 한 명에게 맡기기보다 사건 성격에 따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한 팀으로 묶는다. M&A 사건이라면 기업법무 변호사뿐 아니라 공정거래와 금융, 조세, 노무 전문가가 함께 들어간다. 규제가 걸린 산업에서는 해당 부처나 감독기관을 경험한 전문가도 참여한다. 현재 김앤장 공정거래 분야에는 국내외 변호사와 경제학자, 산업 전문가, 전직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 등 150명 넘는 전문인력이 참여하고 있다. 자본시장 분야에도 80명 이상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기업 입장에서 대형 로펌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천억원, 수조원이 오가는 거래나 회사의 존립이 걸린 사건에서는 법률 하나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정거래와 세금, 노동, 인허가 문제가 동시에 터진다. 김앤장은 이를 한 조직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인력을 만들어왔다. 젊은 변호사를 키우는 방식에도 일찍부터 해외 경험을 넣었다. 파트너와 후배 변호사가 함께 사건을 맡게 하고 해외 로펌 연수도 활용했다. 정계성 대표도 1982~1983년 미국 뉴욕 셔먼앤드스털링에서 실무를 익혔다. 사건을 맡아 경험을 쌓고 해외에서 새로운 거래 방식을 익힌 변호사들이 돌아와 다시 큰 사건을 맡았다. 이 과정이 수십 년 반복되면서 분야별 전문인력이 쌓였다. ◆ 외환위기, 김앤장이 한 단계 커진 시기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기업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기업들이 자산을 팔고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기업 매각, 외자유치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해외 자본과 국내 기업 사이에서 거래 조건을 만들고 정부 규제를 검토할 법률전문가의 역할도 커졌다. 김앤장은 외환위기 이전부터 국제금융과 외국인투자 업무를 다뤄왔다. 국내 기업들이 급하게 해외 자본을 찾기 시작했을 때 이미 관련 업무를 해본 변호사들이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M&A 시장이 커지면서 김앤장의 업무도 금융과 외국인투자에서 M&A, 공정거래, 조세, 구조조정으로 빠르게 넓어졌다. 김앤장 연혁에는 이 무렵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변호사 수가 100명을 넘어섰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형 거래를 맡으면서 경험이 쌓였고 그 경험을 보고 또 다른 기업이 찾아왔다. 새로운 사건이 들어오면 다시 전문인력을 늘렸다. 김앤장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기업법무 시장의 선두로 올라선 배경이다. ◆ 계약서에서 시작해 기업 형사사건까지 반세기가 흐른 지금 김앤장이 맡는 사건의 규모는 달라졌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는 14개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필요했다. 김앤장은 4년여에 걸친 기업결합 심사와 항공 관련 인허가 자문에 참여했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 인수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적분할, 한앤컴퍼니의 SK스페셜티 인수 등 조 단위 거래에도 이름을 올렸다. 2026년 상반기 국내 M&A 법률자문 시장에서는 자문금액 26조3406억원, 68건으로 1위를 기록했다. 금액 기준 시장점유율은 33.27%였다. 기업자문에서 출발했지만 송무와 기업형사 분야에서도 대형 사건을 맡는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형사재판에 참여해 1·2·3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SK실트론 사건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처분을 취소하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다. 승소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글과 메타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상대로 낸 과징금 취소소송에서는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73년 외국계 은행의 계약서를 검토하던 법률사무소의 업무는 이제 M&A와 공정거래, 국제중재, 개인정보, 기업형사로 넓어졌다. 기업이 겪는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로펌이 다루는 영역도 함께 넓어진 것이다. ◆ 커진 영향력, 커진 감시 국내 최대 로펌이라는 자리는 사건만 많이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나 기업인이 정부 조사와 형사사건에 직면하면 김앤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 법원과 검찰, 정부 부처와 규제기관 출신 전문가도 적지 않다. 김앤장의 사건 대응력이 높아지는 만큼 전관과 이해충돌을 둘러싼 논란도 따라붙는다. 2025년 공정거래위원회 직원의 외부인 접촉 보고 가운데 김앤장 관련 보고는 로펌 중 가장 많은 363건이었다. 접촉 보고는 사건 관계인과의 만남 자체를 기록하는 제도여서 이 숫자가 곧 부적절한 접촉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규제기관 출신 인력을 대거 보유한 로펌이 해당 기관의 규제를 받는 기업을 대리하는 문제는 늘 감시 대상이 된다. 김앤장이 커질수록 사건 수임 못지않게 이해충돌 관리와 전관 논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해졌다. 고객 평가 역시 전문성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조사에서 김앤장은 종합평가와 전문성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서비스 평가는 3위였고 소송비용의 합리성은 6위였다. 복잡한 사건에 여러 분야의 전문인력을 투입하는 방식은 강점이지만 비용이 높다는 평가도 피하기 어렵다. 압도적인 규모가 항상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 시장이 열리기 전에 사람을 준비했다 김앤장의 53년을 보면 몇 번의 중요한 갈림길이 있었다. 기업이 해외에서 돈을 빌리기 시작할 때 국제금융을 키웠고 외국 자본이 국내로 들어올 때 외국인투자 업무를 늘렸다. 기업 인수·합병이 본격화되기 전에 M&A 전문가를 확보했고 공정거래 규제가 강해지자 경쟁법 인력을 늘렸다. 지금은 AI와 데이터, 공급망, 경제안보, 글로벌 통상, 기업지배구조가 기업법무의 새로운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앤장도 이 분야에 전문조직과 인력을 늘리고 있다. 김앤장이 53년 동안 한 선택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복잡하지 않다. 기업이 법률 문제에 부딪힌 뒤 변호사를 찾았다면 김앤장은 그보다 먼저 그 문제를 다룰 사람을 준비했다. 1973년 외국계 은행의 계약서에서 시작한 김앤장이 국내 최대 로펌으로 성장한 데에는 그 시간차가 있었다.
2026-09-08 08: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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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D 수리비 논란, 중국차 전체로 번질까…'구매 이후 비용' 시험대
[경제일보] BYD의 사고 수리비 논란이 중국차의 가격 경쟁력을 가늠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국내 시장에서 판매량을 늘리고 있는 중국 브랜드가 차량 가격을 앞세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사고 수리비와 부품 수급, 수리기간 등 구매 이후 비용까지 경쟁력으로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BYD에서 시작된 논란이 지커 등 후발 중국 브랜드의 AS 역량으로 확산될 경우 중국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지난 7월 BYD 돌핀의 사고 수리 견적과 관련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견적서상 총 수리비는 368만9620원으로 차량 판매가격 2450만원의 약 15%에 달했다. 공임은 292만8750원이었으며 운전석 뒤 도어 교환 15시간, 뒷펜더 판금·도장 9시간, 리어 범퍼 보수·도장 11시간 등이 작업 항목으로 기재됐다. 견적서에 적용된 시간당 공임은 7만5000원이었다. 시간당 단가보다 도어·펜더·범퍼 등에 책정된 작업시간이 길어 전체 공임이 커졌다. 작업시간을 다른 수입차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뚜렷하다. 한성자동차가 공개한 메르세데스-벤츠 소형차 표준 작업시간은 도어 교환 3시간, 펜더 도장 2.5시간, 범퍼 도장 3.5시간이다. 시간당 공임은 탈·부착 21만6700원, 차체·도장 9만5920원으로 돌핀보다 높았다. 돌핀 견적에 기재된 작업시간과 한성자동차의 표준 작업시간을 단순 적용하면 세 작업의 공임은 돌핀이 262만5000원, 메르세데스-벤츠가 약 122만6000원으로 계산된다. 시간당 공임은 벤츠가 높지만 작업시간 차이로 전체 공임은 돌핀 쪽이 더 크게 나온다. BYD코리아는 사고 차량의 실제 손상 상태와 수리 공정을 반영해 견적을 산정한다고 밝혔다. 제조사 부품 정보와 표준 작업시간을 기반으로 한 아우다텍스(Audatex) 시스템을 활용해 사고 수리 견적을 산출한다는 설명이다. BYD코리아가 공개한 국내 공식 서비스센터 일반 수리 공임은 시간당 평균 11만5000원(부가세 별도)이다. 사고 수리는 보험사와 정비사업자 간 계약에 따라 별도의 공임 기준이 적용될 수 있어 일반 수리 공임과 사고 견적의 시간당 단가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돌핀보다 수리 범위가 큰 씨라이언7의 사고 견적도 공개됐다. 같은 커뮤니티에 차주가 사고 수리 견적을 묻는 글과 함께 견적서를 게시했다. 총 수리비는 1093만4330원으로 차량 판매가격 4490만원의 약 24% 수준이었다. 공임은 569만7890원으로 기재됐다. 견적에는 리어 범퍼와 트렁크 리드 교환·도장, 후방 패널 교환 외에 고전압 배터리 탈·부착, 후방 파워트레인 탈·부착, 전·후륜 얼라인먼트 측정 등의 작업이 포함됐다. 전기차는 사고 정도에 따라 배터리와 구동계까지 수리 범위에 포함될 수 있어 차체 부품뿐 아니라 전동화 부품의 공급과 수리 대응 체계도 중요하다. BYD코리아는 부품 공급망과 서비스망 확대에도 나서고 있다. 주요 정비·사고 수리 부품을 국내에 사전 비축하고 있으며 전국 20개 서비스센터와 92개 작업대를 운영하고 있다. 연말까지 서비스센터를 26개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국내 진입도 이어지고 있다. 지리자동차그룹의 전기차 브랜드 지커는 첫 국내 판매 모델인 7X를 오는 10월부터 고객에게 인도할 예정이다. 국내 판매가격은 프로 5299만원, 맥스 5999만원, 울트라 6999만원이며 국내 사전계약 물량은 1500대를 넘어섰다. 향후 지커에서도 사고 수리 과정에서 공임이나 수리 견적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할 경우 중국 전기차가 차량 가격을 앞세워 확보한 가격 경쟁력이 구매 이후 비용까지 포함한 경쟁에서 약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전기차가 국내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차량 판매가격과 사고 수리비를 따로 볼 수 없다”며 “판매 초기부터 차종별 부품 가격과 표준 작업시간, 사고 수리 데이터를 투명하게 축적하고 이를 보험사·정비업계와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2026-09-08 06: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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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된다고 다 해도 되나…공직자의 '공정 감수성'이 무너지고 있다
[경제일보] 공직은 권리가 아니라 책임이다. 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모두 해도 되는 자리도 아니다. 공직자와 공직후보자에게는 법률의 최소 기준을 넘어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이라는 더 높은 잣대가 따라붙는다. 최근 잇따른 논란은 이 당연한 원칙을 다시 묻게 한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재정 비상상황’을 선언했다. 경기도는 재정난을 이유로 5465억원 규모의 세출 구조조정에 나섰고, 직원들에게도 고통 분담을 주문했다. 그런데 추 지사가 도청 인근 156㎡ 아파트를 12억2000만원에 전세 계약한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경기도는 업무 효율을 위해 관련 규정에 따라 계약했고, 계약 당시에는 재정 상황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규정을 어겼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상징이다. 직원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서 최고 책임자가 상대적으로 넓고 비싼 관사를 사용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재정 비상이 정말 심각하다면 먼저 줄여야 할 비용이 무엇인지 지도자가 보여주는 것이 순리다. 조직은 말보다 행동을 먼저 본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비례대표 의원직 겸직 논란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법적으로 겸직이 가능한지 여부와 국민이 이를 공정하다고 받아들이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공직은 가능한 권리를 최대한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제한할 줄 아는 자리여야 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과 관련해 식약처장에게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취지의 문자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김 후보자는 민원 전달일 뿐 부정한 로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현 단계에서 위법을 단정해선 곤란하다. 그렇지만 국회의원의 문자 한 통이 평범한 민원인의 전화 한 통과 같은 무게일 리는 없다. 의원은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사하며 정부기관을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 지위에서 “빨리 처리해달라”는 말은 의도와 무관하게 행정기관을 압박하는 신호로 읽힌다. 이 세 사례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하나는 관사, 하나는 겸직, 하나는 민원 전달 문제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모두 법 위반 여부를 따지기 전에 공직자의 자기 절제가 충분했는지를 묻게 한다. 정치권은 이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규정에 따른 것이다” “관행이었다”고 설명한다.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논어>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공직 윤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직원들에게 긴축과 희생을 요구한다면 자신부터 절제해야 하고, 국민에게 공정한 절차를 요구한다면 자신도 권력의 지름길을 경계해야 한다. 최근 여론 흐름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국갤럽의 지난 1~3일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40%, 부정 평가는 51%였다. 20대 긍정 평가는 25%로 전주보다 6%포인트 떨어졌다. 부정평가 이유에서는 ‘인사’가 9%로 올라섰다. 한 번의 조사 결과만으로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근 인사 논란이 특히 청년층의 공정 감수성을 건드렸다는 정치권의 해석에는 귀 기울일 대목이 있다. 2030 세대가 특권 문제에 민감한 이유는 단순하다. 취업과 주거, 자산 형성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는 세대에게 ‘누군가는 자리도 갖고, 혜택도 갖고, 인맥도 활용한다’는 인상은 강한 박탈감으로 돌아온다. 공직자가 이를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말로 넘기면 민심과 더 멀어진다. 정치는 법률가의 시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합법인지뿐 아니라 무엇이 적절한지를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다. 규정상 가능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해친다면 스스로 한 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장관과 도지사, 국회의원처럼 권한이 큰 자리일수록 기준은 엄격해져야 한다. 권력이 크면 책임도 커진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공직 후보자 검증도 달라져야 한다. 재산과 세금, 전과 여부만 확인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이해충돌 가능성, 특혜의식, 권한 행사 방식, 공적 자원을 대하는 태도까지 함께 봐야 한다. 결국 국민이 묻는 것은 ‘법을 어겼느냐’만이 아니라 ‘이 사람이 공직을 맡을 자세가 돼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인사는 능력만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도덕성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사람인가에 대한 신뢰가 함께 있어야 한다. 지금 공직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해명이 아니다. 법과 규정을 내세우기 전에 스스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선택을 하는 문화다. 특권처럼 보이는 관사는 줄이고 이해충돌의 여지가 있는 자리는 내려놓고 권한 있는 사람의 전화 한 통도 조심하는 것이다. 이런 작은 절제가 쌓여 공직의 신뢰가 만들어진다. 공직은 가능한 것을 모두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절제, 누릴 수 있어도 내려놓는 태도에서 공직의 품격이 드러난다.
2026-09-07 14: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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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억 달러 美제철소 첫삽 뜬 날…현대제철·포스코, 워싱턴선 '관세 재심'
[경제일보]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58억 달러를 투자하는 미국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 기공식을 연 날, 워싱턴에서는 두 기업이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부식방지강판(Corrosion-Resistant Steel Products·CORE)을 다시 관세 심사대에 올리는 절차가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에서 직접 철강을 생산해 관세와 공급망 위험을 줄이려는 양사의 현지화 전략이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들어간 가운데 기존 한국산 제품은 반덤핑(AD)과 상계관세(CVD)라는 미국의 무역구제 장벽을 계속 넘어야 하는 셈이다. 7일 본지가 미국 상무부 국제무역청(ITA)의 연방관보를 확인한 결과, 미 상무부는 지난 4일 한국산 부식방지강판에 대한 새로운 AD·CVD 행정재심 개시를 공식화했다. 사건번호는 각각 A-580-878(반덤핑)과 C-580-879(상계관세)다. 미 상무부는 이번 행정재심의 최종 결과를 늦어도 2027년 7월 31일까지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덤핑 재심 대상 기간은 2025년 7월 1일부터 2026년 6월 30일까지다. 조사대상 명단에는 현대제철(Hyundai Steel Company)과 POSCO뿐 아니라 POSCO International Corporation, POSCO STEELEON 등 포스코 계열사가 포함됐다. KG스틸과 동국씨엠, 세아 계열사 등 국내 다른 철강업체들도 이름을 올렸다. 상계관세 재심의 조사대상 기간은 2025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다. 여기에도 현대제철과 POSCO, POSCO International, POSCO Steeleon 등이 나란히 포함됐다.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동일 품목을 놓고 AD와 CVD 두 종류의 재심 절차에 동시에 들어간 것이다. AD 직전 확정치는 ‘0%’…새 조사기간 다시 계산한다 다만 이번 행정재심 개시를 현대제철과 포스코에 대한 새로운 ‘덤핑 적발’이나 ‘보조금 위반 판정’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행정재심은 이미 내려져 있는 AD·CVD 명령을 토대로 일정 기간 실제 미국 수입물량에 어느 정도의 관세를 부과해야 하는지를 다시 계산하는 연례 절차다. 미 상무부는 행정재심 결과를 통해 과거 수입분에 실제로 부과할 관세와 앞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적용할 새로운 현금예치율(cash deposit rate)을 산정한다고 설명한다. 새 관세율은 예비 결과가 아니라 최종 결과가 연방관보에 발표된 이후 적용된다. 때문에 이번 재심에서 주목할 대목은 직전 확정 결과와 얼마나 달라지느냐다. 미 상무부가 지난 5월 14일 확정한 2023년 7월~2024년 6월 한국산 CORE 반덤핑 행정재심에서는 현대제철의 가중평균 덤핑마진이 0.00%였다. 당시 의무조사 대상은 현대제철과 동국씨엠이었으며 양사 모두 0%가 나오면서 개별 심사를 받지 않은 POSCO, POSCO International, POSCO Steeleon 등에도 0.00%가 적용됐다. 상무부는 해당 조사기간 한국산 CORE가 미국에서 정상가격보다 낮게 판매되지 않았다고 결론냈다. 이는 포스코의 0%가 현대제철과 동일한 방식으로 개별 조사돼 산출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대제철은 의무응답기업으로 직접 조사받아 0%를 받았고, POSCO는 비선정기업으로 의무응답기업의 결과를 토대로 0%가 적용됐다. 이 구분은 이번 행정재심에서 상무부가 어떤 회사를 의무응답기업으로 선정하느냐에 따라 결과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CVD 쪽에서는 다른 숫자가 나온다. 가장 최근 확정된 2023년분 한국산 CORE 상계관세 행정재심에서 미 상무부는 현대제철에 1.28%의 순상계가능 보조금률을 확정했다. POSCO와 POSCO International, POSCO Steeleon 등 개별 심사를 받지 않은 업체에는 2.88%가 적용됐다. 당시 상무부는 현대제철과 KG동부제철을 의무응답기업으로 조사하고 두 기업의 결과를 토대로 비선정업체의 적용률을 계산했다. 이번에는 조사기간 자체가 달라진다. AD는 2025년 7월~2026년 6월, CVD는 2025년 한 해 전체의 거래가격과 지원 프로그램 등이 심사 대상이다. 따라서 직전 CORE AD 재심에서 나왔던 현대제철·포스코 0%가 유지될지, 최근 확정된 CVD의 현대제철 1.28%·POSCO 2.88%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이번 재심 절차를 거쳐야 알 수 있다. 재심 개시만으로 추가 관세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결과에 따라 향후 미국 수출물량의 비용 구조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양사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다. 워싱턴선 관세 재심, 루이지애나선 58억 달러 현지화 공교로운 것은 미 상무부가 재심 개시를 연방관보에 게재한 4일 루이지애나주 어센션 패리시에서는 현대제철과 포스코 등이 공동 투자하는 HPLS(Hyundai-POSCO Louisiana Steel) 전기로 제철소 기공식이 열렸다는 점이다. HPLS에는 총 58억 달러가 투입된다. 지분구조는 현대제철 50%, 포스코 20%,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15%다. 생산능력은 연간 270만t으로 자동차용 180만t, 일반용 90만t을 생산한다. 제품군에는 열연강판과 냉연강판뿐 아니라 이번 미 상무부 행정재심의 대상 품목과 맞닿아 있는 도금강판도 포함된다. 2029년 상업생산이 목표다. 다만 4일 행사는 기공식으로 현대제철의 공식 계획상 실제 공사는 올해 4분기 착수할 예정이다. HPLS는 철광석과 천연가스로 직접환원철(DRI)을 생산한 뒤 전기로와 연속주조, 열연·냉연 공정까지 하나의 생산기지에서 연결하는 일관 생산체제를 구축한다. 현대제철은 이를 미국 최초의 전기로 기반 자동차강판 전문 일관제철소로 육성할 계획이다. 현지화의 목적도 분명하다. 미국은 지난해 6월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를 50%로 인상했다. POSCO 역시 2025년도 연결재무제표에서 미국의 50%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회사의 재무 추정에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명시했다. HPLS 기공식을 전후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루이지애나 주정부에 미국에서 조달하기 어려운 제철설비의 관세 완화를 요청한 것 역시 이런 통상환경을 반영한다. 한국 철강업체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조차 수입설비에 붙는 관세가 사업비 변수가 되고 있다는 의미다. 현대제철과 포스코 입장에서는 HPLS가 완공되면 미국 자동차강판 시장의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한국에서 생산한 철강을 배에 실어 미국으로 보내는 구조에서 벗어나 미국에서 쇳물부터 완성 강판까지 생산해 현대차·기아는 물론 미국 완성차업체에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류비와 환율 위험을 줄이는 효과에 더해 수입 제품을 겨냥한 관세와 무역구제 조치에 대한 노출도 상당 부분 낮출 수 있다. 현대제철은 HPLS를 통해 2029년부터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미국 완성차업체의 자동차강판 공급망에도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차원에서는 철강에서 완성차까지 이어지는 미국 내 공급망을 구축하는 효과가 있다. ‘수출해서 파는 미국’에서 ‘미국에서 만드는 미국’으로 4일 미국에서 동시에 벌어진 두 장면은 한국 철강업계가 맞닥뜨린 통상환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행정재심이 곧 관세 인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 직전 확정된 CORE 반덤핑 재심에서는 현대제철과 POSCO 모두 결과적으로 0%를 적용받았다. 그렇다고 행정재심 자체가 기업에 의미 없는 절차인 것도 아니다. 자료 제출과 검증, 법률 대응이 반복되고 최종 결과에 따라 관세율과 현금예치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HPLS가 실제 제품을 생산하는 시점은 2029년이다. 그때까지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미국 현지공장을 건설하는 동시에 한국에서 생산한 철강재를 수출해야 한다. 미국 현지화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미국에서 생산할 물량’과 ‘한국에서 수출할 물량’이 서로 다른 통상환경에 놓이는 과도기를 통과해야 하는 셈이다.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국내에서 경쟁 관계임에도 미국 제철소에 함께 투자한 것도 이런 산업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포스코는 미국 제철소 투자를 북미 철강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친환경 자동차강판 생산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라고 설명해 왔다. 결국 미국 시장의 문법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한국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진 지금은 생산설비와 공급망 자체를 미국 안에 두는 능력이 시장 접근성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58억 달러짜리 HPLS는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그 변화에 내놓은 답”이라면서도 “공장이 가동되는 2029년까지 한국산 철강은 여전히 워싱턴의 관세 심사대를 지나야 한다”고 했다. 이어 “루이지애나에서 미국산 철강 공급망을 새로 세우는 동안 워싱턴에서는 기존 한국산 물량의 통상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두 개의 싸움’이 동시에 시작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6-09-07 11: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