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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형량은 어디에서 갈리나
[경제일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재판은 항소심에서 형량 판단을 다시 다투게 됐다. 1심 법원은 윤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에게도 유죄 판단과 중형이 선고됐다. 항소심은 유무죄 판단뿐 아니라 각 피고인의 지위와 관여 정도에 따른 형량의 무게를 다시 따지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특검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무기징역 선고 등에 항소했다. 항소심 첫 국면에서는 재판부 기피신청과 재항고 절차까지 이어지면서 본격 심리가 지연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다만 형량 판단의 큰 틀은 이미 1심에서 상당 부분 제시됐다. 계엄을 누가 구상했는지, 누가 군 지휘 체계로 옮겼는지, 누가 실제 병력 이동과 기관 장악 시도에 관여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내란죄의 법정형은 무겁다. 형법은 내란의 우두머리에 대해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를 규정한다.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사람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한다. 단순 가담자와 달리 우두머리와 중요임무 종사자는 국가권력 배제 또는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에서 핵심 역할을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형량 판단에서도 지위와 역할, 실행 관여 정도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윤 전 대통령 사건에서 가장 먼저 따져질 부분은 우두머리 지위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고 계엄 선포권자였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그 결정 이후 군과 경찰, 행정부가 움직였다면 법원은 그 권한이 어떤 목적과 절차에 따라 행사됐는지를 살피게 된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형량 판단에서 단순한 감경 요소로만 작용하기 어렵다. 국가 최고 권한을 가진 사람이 헌정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렸다면 그 지위는 책임의 무게를 키우는 사정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반면 김 전 장관 등은 대통령과 다른 층위에서 판단된다. 김 전 장관은 국방부 장관으로서 대통령의 판단을 군 지휘 체계로 연결하는 위치에 있었다. 1심 법원이 김 전 장관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것은 그가 계엄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수행한 역할을 중대하게 본 결과로 읽힌다. 항소심에서는 김 전 장관이 단순 전달자였는지, 아니면 군사적 실행을 구체화한 인물이었는지가 다시 다뤄질 전망이다. 법정형보다 중요한 것은 역할의 차이 내란 사건의 형량은 법정형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사건 안에서도 피고인의 지위와 관여 정도, 지시의 구체성, 실행 결과, 범행 후 태도에 따라 형량은 달라진다. 우두머리인지, 중요임무 종사자인지, 단순 가담자인지에 따라 법률상 출발점부터 다르다. 같은 중요임무 종사 혐의라도 실제로 계획을 세운 사람과 명령을 전달한 사람, 현장에서 제한적으로 움직인 사람의 책임은 같을 수 없다. 이 사건에서 대다수 군인은 형량 분석의 중심에 놓여서는 안 된다. 계엄에 동원된 장병과 실무 간부 상당수는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였다. 이들이 위법한 명령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현장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필요하면 개별적으로 따질 문제다. 그러나 계엄을 기획하고 명령을 내리거나 실행 방향을 정한 사람들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형량 분석의 출발점은 현장 병력이 아니라 그 병력을 움직인 의사결정권자들이다. 김 전 장관의 형량 판단에서도 이 구분은 중요하다.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는 자리이지만 동시에 군이 정치적 판단의 실행 수단이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자리다. 장관이 대통령의 결심을 군 지휘 체계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떤 법적 검토를 했는지, 반대 의견을 냈는지, 오히려 실행 방향을 구체화했는지는 양형에서 주요 요소가 된다. 권한이 컸던 만큼 그 권한이 어떻게 행사됐는지가 형량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 군 정보·방첩 라인의 역할도 별도로 검토될 부분이다. 이들은 계엄 국면에서 특정 기관 장악이나 정치인 체포 의혹, 선거관리위원회 관련 조치와 맞물려 거론돼 왔다. 항소심에서는 이들이 어떤 지시를 받았고 무엇을 실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내란의 고의와 국헌문란 목적을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가 다뤄질 수 있다. 군 정보기관의 특성상 상부 지시와 독자적 판단의 경계도 쟁점이 된다. 공모관계와 지시 경로가 형량을 가른다 항소심에서 형량을 좌우할 첫 번째 요소는 공모관계다. 내란 사건에서 공모가 인정되려면 단순한 동석이나 의견 교환을 넘어 범행의 기본적 내용에 대한 의사 결합이 있었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군·경 수뇌부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사전에 어떤 준비가 진행됐는지, 각자가 계엄의 목적과 실행 방식을 어떻게 인식했는지가 중요하다. 두 번째 요소는 지시 경로다. 계엄 선포 이후 군과 경찰이 실제로 움직였다면 그 명령이 어느 경로로 전달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이 장관을 거쳐 군 지휘부에 전달됐는지, 장관이나 군 지휘관이 이를 어떻게 구체화했는지, 현장 부대에는 어떤 내용으로 하달됐는지가 형량 판단의 기초가 된다. 같은 명령 체계 안에서도 상층부에서 명령을 설계한 사람과 하층부에서 이를 받은 사람의 책임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요소는 실행 관여 정도다. 계엄이 선포됐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피고인의 책임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국회와 선관위 등 헌법기관을 대상으로 한 병력 이동, 주요 인사 체포·구금 의혹, 계엄 문건 작성이나 사후 보완 과정에 누가 얼마나 관여했는지가 각각 따져져야 한다. 실행 단계에서 역할이 구체적일수록 형량은 무거워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지시를 받았으나 실제 실행에 제한적으로 관여했거나 위법성을 인식하기 어려웠던 사정이 인정되면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네 번째 요소는 범행 후 태도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혐의를 다투는 것 자체는 불리한 사정으로 볼 수 없다. 방어권은 보장돼야 한다. 다만 책임 있는 지위에 있던 사람이 하급자나 기관 실무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을 외면하거나 재판 절차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비칠 경우 공적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전직 대통령과 전직 국방부 장관의 법정 태도가 일반 피고인보다 더 엄격하게 주목받는 이유다. 전직 대통령 지위는 어떻게 평가될까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형량 판단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핵심 변수다. 대통령은 헌법기관의 수반이고 군 통수권자다. 계엄 선포권은 국가비상권한 가운데서도 가장 강한 권한에 속한다. 그 권한을 행사한 결과 국회와 선관위, 군과 경찰, 행정부가 동시에 흔들렸다면 법원은 권한의 크기와 책임의 크기를 함께 볼 수밖에 없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정은 두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국가 최고 책임자였다는 점에서 더 높은 법적·정치적 책임이 요구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피고인이 재판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도 함께 평가될 수 있다. 법원이 중하게 볼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대통령의 권한이 개인의 정치적 판단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는지,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제한하려는 목적이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군과 경찰 조직이 어떤 부담을 떠안았는지다. 이 대목에서 군 전체의 피해는 형량 판단의 배경 사정이 될 수 있다. 계엄에 동원된 군인들이 모두 피해자라는 식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다수 장병과 실무 간부가 정치적 결정을 만든 주체가 아니라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인 사람이라는 점은 고려돼야 한다. 국가 최고 권한자의 판단이 군 조직 전체를 수사와 재판, 사회적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면 그 결과는 양형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체통 문제도 이와 맞닿아 있다. 형사재판에서 체통이라는 말은 법률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책임 있는 태도는 양형과 공적 평가에서 완전히 분리되기 어렵다. 혐의를 다투더라도 자신의 결정이 불러온 결과를 어떻게 대하는지, 군과 경찰의 하급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법정 밖 평가에 남는다.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던 사람에게는 방어권 행사와 별개로 그 권한의 결과를 감당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군 피해와 양형의 연결점 12·3 비상계엄 재판에서 군 피해 문제는 감정적 호소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형량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계엄이 군 조직에 남긴 구체적 결과다. 지휘관들은 피고인 또는 증인으로 법정에 섰고 일선 장병들은 자신이 수행한 명령의 의미를 뒤늦게 평가받는 위치에 놓였다.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국민 신뢰도 흔들렸다. 이 결과가 누구의 판단에서 비롯됐는지를 따지는 일은 형량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 군인은 계엄을 설계하지 않았다. 국회와 선관위로 이동한 병력 상당수는 상급자의 명령을 받은 위치에 있었다. 이들이 위법성을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는 개별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계엄의 목적과 실행 방향을 결정한 사람들과 같은 수준에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양형은 책임의 크기를 구분하는 절차다. 군 전체를 묶어 비난하는 방식은 그 구분을 어렵게 만든다. 김 전 장관과 군 지휘부의 형량은 바로 이 구분 위에서 다뤄져야 한다. 장관과 고위 지휘관은 하급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고 더 큰 권한을 행사했다. 그만큼 위법성을 판단하고 제동을 걸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계엄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이들이 어떤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이 하급자에게 어떤 부담을 남겼는지는 항소심에서도 중요한 사정이 될 수 있다. 형량 분석은 결국 책임의 방향을 정하는 작업이다. 현장에서 움직인 병력에게 모든 부담을 돌릴 것인지, 아니면 병력을 움직이도록 만든 권한 행사와 지시 경로를 추적할 것인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진다. 이번 재판에서 법원이 살필 부분은 후자에 가깝다. 계엄이라는 비상권한을 누가 어떤 목적과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그 권한 행사가 군과 헌법기관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를 따지는 절차다. 항소심 형량 판단의 기준 항소심에서 형량은 여러 요소가 함께 검토될 전망이다. 윤 전 대통령의 경우 우두머리 지위 인정 여부와 국헌문란 목적, 계엄 선포 전후 지시 내용, 군·경 수뇌부와의 공모관계, 재판 과정에서의 태도가 핵심이다. 김 전 장관의 경우 대통령의 결심을 군 지휘 체계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역할, 각 부대와 지휘관에게 전달한 지시 내용, 실행 관여 정도가 주요 판단 대상이다. 노상원 전 사령관과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 다른 피고인들의 형량은 각자의 위치와 실행 정도에 따라 다시 검토될 수 있다. 특히 군·경 수뇌부는 상급자의 지시를 받는 위치였다는 사정과 동시에 자신이 지휘권을 행사하는 위치였다는 사정이 함께 있다. 어느 쪽이 더 크게 평가되는지는 각 피고인의 구체적 행위와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항소심에서도 중심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권자이자 군 통수권자였다. 그 권한의 행사로 군 조직이 움직였고 헌법기관이 영향을 받았다면 책임의 출발점은 위에서부터 살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형량이 자동으로 낮아질 수는 없다. 오히려 권한의 크기와 헌정질서에 미친 영향은 법원이 무겁게 볼 수 있는 요소다. 계엄 재판의 형량 분석은 숫자를 예측하는 문제가 아니다. 법원이 어떤 책임을 더 무겁게 보고 어떤 역할을 구분할 것인지를 살피는 일이다. 항소심은 계엄을 기획·지휘한 인물과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인 사람을 나누고, 각자의 권한과 행위에 맞게 책임을 정리하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그 과정에서 군 전체를 향한 비난보다 의사결정권자의 권한 행사와 지시 경로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2026-05-3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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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김용현의 계엄, 국방부는 어디까지 움직였나
[경제일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재판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핵심 피고인 가운데 한 명이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의 판단이 군 지휘 계통으로 전달되는 위치에 있었다. 국방부 장관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 지휘부 사이에서 결정적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자리다. 계엄처럼 국가비상권한이 군을 통해 실행되는 사건에서는 그 지위 자체가 책임 판단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사건은 1심에서 징역 30년이 선고된 뒤 항소심 절차로 넘어갔다. 김 전 장관 측은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는 계엄 준비 과정과 실행 지시 여부, 각 군 지휘관에게 전달된 명령의 성격,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사이의 의사 교환 내용이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과 함께 비상계엄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장관이 군의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출동을 사전에 계획했고 부정선거 수사와 관련한 별도 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도 제시했다. 김 전 장관 측은 항소심에서 이 같은 판단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다시 살필 부분은 김 전 장관이 단순히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한 것인지, 아니면 계엄 실행 과정에서 독자적 역할을 수행했는지다. 김 전 장관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군 조직 전체와 대통령 권력 사이에 놓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권자이고 국방부 장관은 그 판단을 군사적 실행 가능성의 영역으로 옮기는 위치에 있다. 대통령의 뜻이 곧바로 일선 장병에게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와 합참, 각급 사령부, 현장 지휘관을 거쳐 명령은 구체화된다. 김 전 장관의 책임을 따지는 일은 계엄이라는 정치적 판단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군의 작전 명령처럼 전달됐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군 전체를 향한 비난과 김 전 장관 책임론은 구분돼야 한다. 일선 장병과 실무 간부는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였지만 김 전 장관은 그 명령 체계가 작동하는 상층부에 있었다. 하급자가 명령을 받는 자리였다면 장관은 명령이 내려가기 전에 그것이 헌법과 법률의 경계 안에 있는지 따져야 하는 자리였다. 그 판단을 하지 않았거나 위법한 실행을 가능하게 했다면 책임의 무게는 달라진다. 대통령과 군 사이의 연결 고리 김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서 계엄 국면을 맞았다. 그 가까움 자체가 곧바로 형사책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의 판단을 군사적 실행 계획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장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재판의 핵심 쟁점이다. 계엄은 대통령이 선포하지만 군은 장관과 지휘 계통을 통해 움직인다. 이 사이에서 김 전 장관이 제동 장치였는지, 실행 통로였는지가 항소심에서도 다뤄질 수밖에 없다. 국방부 장관에게는 두 가지 책임이 동시에 있다. 하나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을 관리하고 지휘 체계를 운용하는 책임이다. 다른 하나는 그 명령이 헌법과 법률의 한계를 벗어날 때 군이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책임이다. 계엄은 헌정질서의 예외 상황을 전제로 한 제도다. 그래서 더 엄격한 요건과 절차가 요구된다. 장관이 그 문턱을 낮추거나 비상권한의 남용 가능성을 외면했다면 단순한 참모 역할로 설명되기 어렵다. 김 전 장관 측은 재판 과정에서 계엄의 성격과 목적을 다투고 있다. 윤 전 대통령 측도 계엄이 실제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이 아니라 경고성 조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법원이 살필 부분은 표현보다 실행이다. 실제로 병력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어떤 기관을 대상으로 했는지, 어떤 명령이 내려갔는지, 그 명령을 받은 지휘관들이 무엇을 인식했는지가 판단의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 계엄을 경고라고 설명하더라도 군이 헌법기관을 향해 움직였다면 그 실행의 의미는 법정에서 따로 평가된다. 김 전 장관의 책임론은 이 지점에서 커진다.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있었다고 해도 국방부 장관은 이를 군사 명령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독자적 판단을 해야 했다. 장관은 단순 전달자가 아니다. 군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공적 권한을 가진 국무위원이다. 대통령의 결심을 이유로 장관의 책임이 사라질 수 없고 장관의 실행 관여를 이유로 대통령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의 책임은 각자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따로 평가돼야 한다. 계엄의 명령은 어디서 구체화됐나 12·3 비상계엄 사건에서 재판부와 수사기관이 주목한 부분은 계엄 선포 자체만이 아니다. 계엄이 선포된 뒤 군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였는지, 그 이전에 어떤 준비와 논의가 있었는지도 중요하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을 향한 병력 투입, 주요 인사 체포·구금 의혹, 방첩사와 정보사 등 특정 부대의 역할은 모두 계엄이 추상적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다뤄졌다. 김 전 장관은 이 과정에서 군 지휘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장관의 말은 지휘관에게 단순한 의견으로 들리지 않는다. 특히 계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장관의 지시와 전달 사항이 작전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다. 장관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었는지, 누구에게 어떤 지시를 했는지, 지시 내용이 법률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었는지는 김 전 장관의 유무죄와 형량 판단에서 핵심 변수가 된다. 하급 지휘관들이 처한 위치도 이와 맞물려 있다. 지휘관들은 장관과 상급 부대의 지시를 받는 동시에 현장에서 부하를 움직여야 한다. 이들이 어떤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책임의 출발점이 현장 지휘관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명령을 설계하고 전달한 윗선의 책임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으면 계엄의 부담은 군 조직 내부로만 흘러 들어간다. 그 경우 군은 정치적 결정을 수행한 조직이라는 부담을 떠안고 정작 정치적 결정을 만든 이들의 책임은 뒤로 밀릴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항소심에서 다툴 수 있는 쟁점은 적지 않다. 내란의 고의가 있었는지, 국헌문란 목적을 인식했는지, 각 지시가 실제 실행 가능성을 가진 명령이었는지, 윤 전 대통령의 판단과 자신의 행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관이라는 지위는 그 자체로 양형에서 중요하게 고려될 가능성이 크다. 계엄 관련 결정이 군 조직을 통과해 현실의 병력 이동으로 이어졌다면 그 연결 지점에 있던 사람의 책임은 가볍게 보기 어렵다. 재판 절차와 책임 있는 태도 항소심 첫 공판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은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피고인에게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법관 기피신청 역시 형사소송 절차 안에 있는 제도다. 법원은 이후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의 기피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항소심 심리가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피고인의 방어권은 보장돼야 한다. 다만 전직 대통령과 전직 국방부 장관의 법정 태도는 개인 방어권을 넘어 공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두 사람은 계엄 당시 국가권력과 군 지휘 체계의 정점 또는 그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그런 이들이 법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는 계엄에 동원됐던 군인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절차적 다툼만 앞세우는 모습으로 비칠 경우, 명령을 받아 움직였던 군인들이 느끼는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였다. 국방부 장관이 계엄 실행의 통로였다면 대통령은 그 권한의 출발점에 있었다. 전직 대통령이라면 법정에서 혐의를 다툴 수는 있어도 자신의 결정이 군 조직에 남긴 부담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부하와 실무자들이 법정과 수사 과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압박을 생각한다면 책임의 방향을 아래로 돌리는 듯한 인상은 피해야 한다. 김 전 장관 사건은 윤 전 대통령 재판과 분리해 볼 수 없지만 윤 전 대통령 책임을 덮는 방식으로 다뤄져서도 안 된다. 김 전 장관에게 책임이 무겁다는 말은 대통령의 책임이 줄어든다는 뜻이 아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계엄 책임의 경로를 보여준다. 대통령의 결심이 있었고 장관이 이를 군 지휘 체계로 옮겼으며 그 아래에서 지휘관과 장병들이 움직였다면 책임은 각자의 지위와 권한에 따라 위에서부터 규명돼야 한다. 김용현 재판이 남길 기준 김 전 장관에 대한 형량 분석에서 법원이 살필 요소는 계엄 준비 관여 정도, 병력 투입과 기관 장악 시도에서의 역할, 대통령과의 공모관계, 하급 지휘관에게 전달된 지시 내용, 재판 과정에서의 태도 등이다. 국방부 장관이라는 지위도 중요한 요소다. 권한이 컸던 만큼 그 권한이 어떻게 행사됐는지에 따라 책임의 무게도 달라질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항소심에서 1심 판단을 뒤집으려면 단순히 대통령의 뜻을 따랐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장관은 대통령의 참모이지만 동시에 국가기관의 책임자다. 군이 헌법기관을 향해 움직이는 상황에서 장관이 어떤 판단을 했는지는 그의 독자적 책임과 직결된다. 계엄이 실제로 무엇을 목표로 했고 어느 수준까지 실행됐는지는 항소심 재판부가 다시 살필 부분이다. 그러나 장관이 군 조직을 정치적 위기 대응의 수단으로 연결한 통로였는지 여부는 남은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군 전체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계엄에 동원된 대다수 군인은 정치적 결정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지시를 받았고 조직 안에서 움직였으며 이후 수사와 재판의 부담 속에 놓였다. 반면 김 전 장관은 그 지시가 군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었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책임은 넓게 퍼지고 핵심은 흐려진다. 김용현 재판은 한 전직 장관의 유무죄와 형량만을 따지는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의 비상권한이 군 지휘 체계로 이동할 때 국방부 장관이 어디까지 막아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함께 책임져야 하는지를 살피는 재판이다. 대다수 군인에게 남은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서도 책임의 경계는 정확히 그어져야 한다. 남은 항소심은 군을 움직인 의사결정 과정과 그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의 책임 범위를 다시 가려내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2026-05-29 09: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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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기념이 됐지만, 진실과 배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제일보] 5·18민주화운동이 46주년을 맞았지만 오월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가기념일로 자리 잡고 기념식은 매년 열리고 있지만 발포명령자 규명, 행방불명자 확인,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온전한 배상, 왜곡·폄훼 대응,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가장 큰 미완의 과제는 진상규명이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24년 종합보고서를 내고 4년여 활동을 마무리했다. 조사위는 민간인 학살과 희생자 사망 경위, 일부 왜곡 주장의 허구성을 확인하는 성과를 냈지만, 핵심 쟁점인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문제는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활동 종료로 추가 조사는 중단됐고, 조사위는 국가 차원의 후속 조치를 권고하는 데 그쳤다. 발포명령자 규명은 5·18 진실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와 판결을 통해 확인됐지만, 누가 최종적으로 발포를 명령했는지에 대한 법적·역사적 결론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행방불명자와 암매장 의혹 역시 유족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5월’로 남아 있다. 배상 문제도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올해 1월 5·18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1990년대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국가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별도 위자료 청구 길을 연 판단이다. 이번 판결은 기존 보상 체계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동안 5·18 피해 보상은 사망·부상·구금 등 물리적 피해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계엄군 폭력과 고문, 가족의 사망과 실종, 오랜 낙인과 침묵이 남긴 정신적 피해는 충분히 평가되지 못했다. 유족과 생존자들은 단순 보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의 성격을 다시 규정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왜곡과 폄훼 대응도 여전히 난제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으로 허위사실에 근거해 5·18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훼하면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도입됐지만, 실제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규정하지만, 예술·학문·연구·보도 목적 등에 대한 면책 조항이 넓어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북한군 개입설과 희생자 모욕, 유공자 특혜 주장 같은 허위 정보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5·18기념재단 등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삭제 요청에 나서고 있지만, 플랫폼 확산 속도와 익명성을 따라잡기 어렵다. 왜곡은 단순한 표현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2차 가해이자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 요구가 커지고 있다. 헌법 전문 수록 문제도 올해 다시 쟁점이 됐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추진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최근 개헌안 국회 의결이 무산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5·18 46주년을 앞두고 국립5·18민주묘지 앞에서는 헌법 전문 수록 표결 불참과 무산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사회는 5·18정신의 헌법 수록이 특정 지역의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헌정사적 정당성을 확인하는 절차라고 주장했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단순한 상징 논쟁이 아니다. 1980년 광주의 저항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의 핵심 가치로 명문화하느냐의 문제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과 함께 5·18을 헌법 질서 안에 분명히 새겨야 한다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정치권의 합의 부족과 개헌 절차의 난맥 속에 매번 문턱을 넘지 못했다. 46주년을 맞은 광주의 과제는 세 갈래로 압축된다. 첫째, 진상규명은 조사위 보고서로 끝낼 수 없다.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암매장 의혹 등 남은 쟁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후속 조사와 자료 공개가 필요하다. 둘째, 배상은 금전 지급을 넘어 국가폭력 피해의 실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보완돼야 한다. 셋째, 왜곡·폄훼 대응과 헌법 전문 수록은 5·18을 현재의 민주주의 가치로 지켜내는 제도적 장치가 돼야 한다. 5·18은 이미 국가기념일이 됐고 광주는 매년 추모의 광장이 된다. 그러나 기념이 제도화됐다고 해서 진실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누가 명령했고, 누가 사라졌으며, 누가 아직도 고통 속에 있는지에 대한 답은 충분하지 않다. 오월이 광장으로 돌아왔다면 이제 국가는 그 광장 앞에서 남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2026-05-18 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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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코노믹데일리] 중동이 다시 불안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란 전역에서 확산된 대규모 항의 시위와 이에 대한 강경 진압은 단순한 내정 문제가 아니다. 국가 권력과 시민의 관계가 어디까지 붕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이자 중동 질서 전반의 불안정을 자극하는 위험 신호다. 이란은 1979년 혁명 이후 ‘성직자 통치’라는 체제 아래 국가 운영의 핵심을 신정 권력에 고정해 왔다. 통치 이념이 신앙의 절대성을 앞세우는 순간, 정치는 타협을 잃고 제도는 책임을 잃는다. 그 결과는 언제나 시민의 삶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 최근 이란에서 시작된 시위가 물가 급등과 생활고에서 출발해 정권 전반에 대한 분노로 확산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생은 정치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지표다. 빵값과 연료비, 생필품 가격이 오를 때 체제에 대한 불만은 추상적 비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전환된다. 오늘의 이란은 경제적 고통이 어떻게 정치적 저항으로 번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제사회가 이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첫째, 국가 폭력이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어떻게 압도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기반 인권단체(IHR) 등 국제 인권기구들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추정치를 내놓으며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확한 숫자를 떠나, 국가가 시민을 향해 조직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그 정당성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다. 둘째, 이 위기가 중동 전체의 지정학적 긴장을 증폭시킬 가능성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살해가 중단됐다고 들었다”, “처형 계획은 없다”는 식의 완화된 메시지를 내놓았지만, 동시에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군사 옵션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인권 침해가 외부 개입의 명분으로 전환되는 순간, 중동은 다시 힘의 계산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이는 결코 새로운 장면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체제는 과연 지속 가능한가. 이란 정치 체제의 핵심으로 알려진 ‘성직자 통치(벨라야트-에 파키흐)’는 성직자가 국가를 지도할 정당성을 가진다는 논리에 기반한다. 이 논리가 절대화될 경우 시민의 권리는 권력에 의해 허용되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법치는 정치 권력의 하위로 밀려난다.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신앙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신앙을 권력 유지의 도구로 사용하는 통치 구조다. 신앙은 개인과 공동체의 정신적 토대가 될 수 있지만, 국가 권력이 이를 독점하는 순간 정치적 다양성은 배제되고 반대 의견은 처벌의 대상이 된다. 생명과 자유, 적법절차를 훼손하는 폭력은 어떤 이념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사태를 둘러싼 국제 역학 또한 냉정하다. 중동은 오랜 기간 시아파와 수니파라는 종파 구도가 정치·안보 동맹과 결합해 굳어져 왔다. 이란의 영향력 약화를 반기는 세력이 있는 한편, 체제 붕괴가 내전과 난민, 국경 불안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는 국가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이란이 심각한 혼란이나 내전으로 치달을 경우 난민 증가와 국경지대 불안, 역내 세력 균형의 붕괴는 피하기 어렵다. 이 틈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압박이 군사 충돌로 비화한다면 그 피해는 다시 시민의 몫이 된다. 정권의 생존 논리와 외부의 군사적 계산이 맞물릴수록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서민의 일상이다. 역사는 이를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그렇다면 이란은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첫째, 시민의 생명을 즉각 보호해야 한다. 진압 중단과 구금자·수감자의 적법절차 보장, 표현과 집회의 자유 회복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다. 둘째, 통치의 정당성을 신정의 절대성에서 책임 정치와 권력 분립, 법치로 옮겨야 한다. 셋째, 경제를 민생의 언어로 재건해야 한다. 외부 제재를 탓하기에 앞서 부패와 특권, 폐쇄적 구조를 끊고 통화·물가 안정, 일자리 창출, 생필품 공급망 복원에 나서야 한다. 넷째,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전쟁의 경계가 아니라 신뢰의 경로로 전환해야 한다. 긴장을 낮추는 투명성과 안전장치 없이는 제재 완화와 투자, 교역도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사회 역시 원칙을 지켜야 한다. 시민 보호라는 명분이 군사 개입의 자동 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력 충돌은 단기적 정권 타격은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 사회 재건과 평화에는 더 큰 비용을 남겨 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실의 검증, 인권 보호, 외교의 공간, 그리고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국제적 협력이다. 이란은 우리에게 거울이다. 이념이 제도를 압도하고, 권력이 책임을 거부하며, 폭력이 일상을 잠식하는 순간 국가의 미래는 급속히 소진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이는 어느 문명권에서도 타협될 수 없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는 정치는 총과 교수대가 아니라 밥과 일자리, 교육과 법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란이 변해야 하는 이유는 체제의 승패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지키는 길이야말로 중동의 평화를 향한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2026-01-15 10: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