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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메디칼, 프리미엄 현장진단 초음파 '소노사이트' 2종 판매 外
[경제일보] JW메디칼은 ‘소노사이트(Sonosite) PX’와 ‘소노사이트 ST’의 국내 판매를 본격화한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제품은 JW메디칼이 지난 5월 글로벌 현장진단 초음파 기업 후지필름 소노사이트와 국내 총판 계약을 체결한 이후 선보이는 프리미엄 라인업이다. 두 제품은 중환자실과 응급실, 마취통증의학과 등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의료현장에 최적화됐다. 고해상도 영상을 통해 조직과 경계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감염 관리 설계를 적용해 의료진의 사용 편의성과 안전성을 높였다. 미국 군사 표준 규격(MIL-STD) 시험도 통과해 극한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내구성을 갖췄다. 소노사이트 PX에는 바늘과 혈관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Auto SNP’ 기술이 적용됐다. 바늘과 조직에 서로 다른 주파수의 초음파 펄스를 동시에 송신해 천자 과정에서 바늘의 위치와 궤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JW메디칼은 신제품 출시를 계기로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전국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프리미엄 POCUS 장비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JW메디칼 관계자는 “최신 시각화 기술을 적용한 프리미엄 초음파 장비로 의료현장의 진단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최신 의료장비의 국내 도입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JW메디칼은 JW중외제약 계열사로 초음파와 디지털 엑스레이, CT, MRI 등 영상진단 장비를 국내에 공급하고 있다. ◆씨어스, UAE 국가건강검진 사업 본격화…중동 시장 공략 속도 씨어스가 아랍에미리트(UAE)를 중심으로 중동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UAE 국가건강검진 사업의 상용화를 구체화하는 동시에 인접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로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씨어스는 ‘IFM 2026’에 김성종 CBO 부사장을 비롯한 해외사업 핵심 인력을 투입해 UAE 국가건강검진 스크리닝 사업의 상용화를 추진했다고 27일 밝혔다. IFM은 UAE와 GCC 지역의 가정의학·1차의료 및 예방의료 관계자가 참여하는 의료 컨퍼런스다. 올해 13회째를 맞아 AI와 디지털헬스, 예방의료, 심혈관·대사질환 등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씨어스는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골드 스폰서로 참가해 공식 컨퍼런스와 전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성종 부사장은 ‘웨어러블 센서와 의료 AI의 융합’을 주제로 발표하고 웨어러블·원격 모니터링을 통한 진료 연속성 강화에 대한 패널 토론에도 참여했다. 현지 의료진과 사업 파트너를 대상으로 부정맥 진단 솔루션 ‘모비케어(mobiCARE™)’와 AI 입원환자 모니터링 플랫폼 ‘씽크(thynC™)’도 소개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지난 5월 퓨어헬스 그룹과 체결한 모비케어 패치 공급계약의 후속 사업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계약 규모는 총 10만5000대, 약 220억원이다. 씨어스는 초도 물량 생산과 현지 공급을 준비하면서 UAE 국가건강검진과 외래 시장을 대상으로 AI 기반 부정맥 진단 서비스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씨어스는 UAE 사업을 기반으로 GCC 국가 의료진 및 파트너와의 네트워크도 확대할 계획이다. 김성종 씨어스 CBO 부사장은 “이번 IFM을 통해 중동 의료시장에서 씨어스의 기술과 사업모델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며 “UAE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GCC 전역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중동을 주요 글로벌 성장축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일동제약그룹, 임직원 물품 1700점 기부…자원순환·장애인 일자리 지원 일동제약그룹이 임직원 참여형 물품 기부 캠페인을 통해 자원 순환과 장애인 일자리 지원에 나섰다. 일동제약그룹은 밀알복지재단과 함께 ‘임직원 물품 기부 캠페인’을 진행하고 1700여 점의 물품을 전달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캠페인은 의류와 잡화, 생활용품, 도서 등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기부해 재판매하는 밀알복지재단의 ‘굿윌스토어’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재사용을 통해 폐기물을 줄이고 자원 절약과 탄소 배출 감축에 기여한다는 취지다. 특히 굿윌스토어의 판매 업무에는 발달장애인 근로자가 참여하며 판매 수익은 이들의 급여와 안정적인 일자리 지원에 활용된다. 일동제약그룹은 지난 10일부터 24일까지 사내 캠페인을 진행해 임직원들로부터 1700여 점의 물품을 모았다. 여기에 회사가 300만원 상당의 자사 건강기능식품을 추가로 기부했다. 기부 물품은 분류와 상품화 과정을 거쳐 굿윌스토어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일동제약그룹 관계자는 “사용하지 않던 물건이 다시 가치 있는 물건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구성원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2026-08-27 11: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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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의 잔인한 48시간, '책임'에 분노하고 '헌신'에 눈물짓다
[경제일보]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은 한국 스포츠의 영욕(榮辱)이 가장 날것의 형태로 교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거대한 환호와 꽃다발이 쏟아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날 선 비판과 엿사탕이 바닥을 뒹구는 잔인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순차적으로 입국한 지난 이틀이 그랬다. 월요일 새벽의 공항은 날 선 분노로 가득 찬 ‘아수라장’이었고, 이튿날인 화요일 새벽은 눈물 어린 위로가 감싼 ‘치유의 장’이었다. 단 24시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이 극명한 반전은, 지금 한국 축구 팬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보여주는 엄중한 메시지다. 월요일의 아수라장은‘과정의 불통’과 ‘실패의 책임’에 던진 야유 지난 월요일(6월 30일) 새벽 3시 40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 게이트의 공기는 얼어붙어 있었다. 현지에서 전격 사퇴를 발표한 홍명보 감독과 박항서 국가대표 지원단장, 그리고 일부 선수단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고성과 야유가 입국장을 사정없이 때렸다. 새벽 시간임에도 현장을 찾은 수백 명의 팬들은 "홍명보 나가라!", "축협 해체"를 연호했다. 일부 팬들은 비난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흔들며 분통을 터뜨렸고, 공항 경비 인력들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몸으로 방어벽을 쳐야 할 만큼 현장은 난장판 그 자체였다. 별도의 귀국 행사도 없이, 홍 감독은 쫓기듯 공항을 빠져나갔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영웅이자 한국 축구의 굵직한 궤적을 함께해 온 거장이 마주하기엔 너무나도 잔인한 귀국길이었다. 팬들이 홍명보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수뇌부를 향해 이토록 격렬한 분노를 쏟아낸 이유는 단지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선임 과정에서부터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 논란, 소통 없는 독단적 운영, 그리고 본선 무대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전술적 졸전까지, 그동안 누적되어 온 ‘불통의 리더십’에 대한 총체적 심판이었다. 팬들은 실패 그 자체보다, 그 실패를 초래한 과정과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축구 행정의 오만에 대해 가장 강력한 언어로 항의한 것이다. 화요일의 반전은 고개 숙인 ‘캡틴’을 품어 안은 팬들의 품격 그러나 불과 하루 뒤인 화요일(7월 1일) 새벽,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풍경은 180도 달랐다.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캡틴인 손흥민을 비롯한 후발대 선수 9명이 입국장에 들어섰을 때, 공항을 채운 것은 야유가 아닌 따뜻한 박수와 격려의 함성이었다. 게이트 주변을 지킨 팬들의 손에는 "평생 가자 손흥민", "고개 숙이지 말아요" 같은 문구가 들려 있었다. 태극마크의 무거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걸어 나오는 선수들을 향해 팬들은 목이 터져라 응원을 보냈다. "고생하셨어요!", "괜찮습니다, 파이팅!" 취재진의 질문에 손흥민은 "죄송하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지만, 그의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 묵묵히 팬들에게 사인을 건넨 배준호 등 막내급 선수들의 눈에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하루 전 홍명보 감독이 마주했던 서슬 퍼런 공기가, 하루 만에 선수들을 위로하는 온기로 바뀐 순간이었다. 팬들은 '실패'가 아닌 '태도'를 본다 상반된 두 장면은 한국 축구 팬들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동시에 무서운 경고장으로 읽힌다. 과거의 팬들은 성적이 나쁘면 감독과 선수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팬들은 ‘책임져야 할 자’와 ‘그라운드에서 피땀을 흘린 자’를 명확히 구분할 줄 안다. 전술 부재와 행정적 과오로 비판받아야 마땅한 수뇌부에게는 가차 없는 회초리를 들지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마지막 순간까지 쥐가 나도록 달린 선수들의 ‘헌신’에는 아낌없는 위로를 보낼 줄 아는 품격을 갖춘 것이다. 손흥민은 이번 대회 직후 SNS를 통해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팬들이 나를 필요로 하실 때까지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며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였다. 팬들이 바란 것은 바로 이러한 ‘진정성’과 ‘태도’였다. 인천공항이 보여준 잔인하고도 따뜻했던 48시간의 온도 차는 우리 축구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축구가 이 무서운 민심(民心)을 엄중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적·구조적 인적 쇄신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다음 귀국길에 마주할 분노의 크기는 이번보다 훨씬 더 파괴적일 것이다. 팬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지만, 그들의 인내심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축구협회와 지도자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2026-07-02 10: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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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료의약품에서 백신까지…SK케미칼, 한국 헬스케어 산업의 변곡점을 지나오다
[경제일보] 국내 제약업계에서 SK케미칼은 조금 독특한 위치에 있다. 전통 제약사처럼 일반의약품 중심 이미지가 강한 것도 아니고 바이오 기업처럼 특정 신약 하나로 설명되기도 어렵다. 대신 오랜 시간 화학과 제약, 소재와 백신 산업 흐름이 한 회사 안에서 함께 움직여 왔다. 한국 산업화 과정과 궤적을 같이해 온 기업에 가깝다. 출발은 선경 계열 화학 사업 흐름과 연결돼 있다. 당시 국내 산업은 섬유와 화학, 원료 산업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SK케미칼 역시 화학과 원료 기반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갔다. 초기에는 원료의약품과 합성의약품 비중이 컸다. 국내 제약 산업이 아직 해외 기술 의존도가 높던 시기 생산 기반과 기술 경험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후 완제의약품과 헬스케어 사업까지 흐름을 확대했다. SK케미칼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제품 가운데 하나는 ‘기넥신’이다. 은행잎 추출물을 기반으로 한 혈액순환 개선제 이미지로 오랫동안 시장에서 존재감을 유지했다. 중장년층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기넥신은 단순 일반의약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국내 천연물 의약품 시장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 가운데 하나로 자주 언급됐다. 화학 합성 의약품 중심 흐름 속에서 천연물 기반 치료제 시장을 키운 제품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최근 기넥신 성장 흐름은 다시 가팔라지고 있다. 올해 1분기 SK케미칼 제약사업부 매출은 126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증가했다. 조인스와 리바스티그민 등 주요 품목 성장도 이어졌지만 시장에서는 기넥신 흐름에 특히 주목하는 분위기다. 기넥신은 지난해 은행잎 추출물 의약품 시장에서 37% 점유율을 기록하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단일 제품 매출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344억원 수준까지 올라왔다. 고령화와 경도인지장애 시장 확대 흐름 속에서 혈액순환 개선뿐 아니라 인지기능 관련 수요까지 함께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중장년층 혈액순환 개선제 이미지가 강했다면 최근에는 기억력 감퇴와 집중력 저하, 뇌혈류 개선 영역까지 시장 관심이 넓어지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도 관련 임상 근거 축적이 이어지면서 시장 확대 가능성을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 역시 SK케미칼을 대표하는 품목 가운데 하나다. 천연물 기반 관절염 치료제 시장을 키운 제품으로 꼽힌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관절과 순환기 질환 관련 시장이 함께 커지고 있다는 점도 SK케미칼 제약사업 성장 배경으로 거론된다. 회사의 흐름을 크게 바꾼 장면 가운데 하나는 백신 사업 진출이다. SK케미칼은 비교적 일찍 백신 분야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사업을 확대했다. 이후 독감백신과 세포배양 기술 개발 흐름으로 이어졌다. 특히 세포배양 방식 백신은 기존 유정란 방식과 다른 기술 접근으로 주목받았다. 생산 효율과 안정성 측면에서 차세대 백신 기술 가운데 하나로 평가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로 이어지는 백신 사업 흐름 역시 여기서 출발했다. 코로나19 시기 SK바이오사이언스와 안동 백신 공장은 국내 바이오·백신 산업 상징처럼 언급되기도 했다. SK케미칼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백신 기반 기술과 생산 경험이 다시 조명된 순간이었다. SK케미칼은 이후 사업 재편 과정도 거쳤다. 제약과 백신, 친환경 소재와 화학 사업 흐름이 각각 전문 영역으로 나뉘며 현재 모습으로 이어졌다. 단순 제약회사보다 헬스케어와 친환경 산업을 함께 가져가는 형태에 가깝다. 친환경 소재 사업 역시 최근 중요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플라스틱 재활용과 바이오 소재, 친환경 화학 기술은 글로벌 산업 흐름과 맞닿아 있다. SK케미칼은 헬스케어와 화학 기반을 동시에 가진 기업 특성을 이 영역과 연결하고 있다. 이 회사의 특징은 특정 분야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약과 백신, 화학과 친환경 소재 흐름이 함께 움직인다. 산업 변화 흐름에 따라 사업 방향을 조정하며 외연을 넓혀 온 회사에 가깝다. 반면 시장에서는 정체성이 다소 복잡하게 보인다는 시선도 있다. 일반 소비자에게는 기넥신 이미지가 강하고 산업계에서는 백신과 소재 사업 비중이 더 자주 언급된다. 사업 영역이 넓은 만큼 집중도가 약해 보일 수 있다는 평가도 함께 나온다. 최근 제약·바이오 산업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단순 복제약 경쟁보다 백신과 바이오, 예방의학과 친환경 기술 흐름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과 원료 경쟁력 문제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SK케미칼의 강점은 오랜 생산 경험과 기술 기반에 있다. 원료와 소재, 의약품과 백신까지 이어지는 경험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그룹 차원의 연구개발 인프라와 글로벌 네트워크도 경쟁력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최근 흐름을 보면 방향은 비교적 일정하다. 단순 전통 제약사보다 헬스케어와 친환경 기술 기업 쪽으로 무게가 이동하고 있다. 백신과 바이오, 친환경 소재 흐름이 함께 연결되는 모습이다. SK케미칼은 한국 산업화 시대 원료 산업과 함께 성장한 기업이다. 그리고 지금은 백신과 친환경 기술, 미래 헬스케어 산업 흐름 안에서 다시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다. 한 회사 안에서 화학과 제약, 백신과 친환경 기술이 함께 언급되는 사례는 흔치 않다. SK케미칼은 그 변화의 시간을 가장 오래 통과해 온 기업 가운데 하나다.
2026-05-15 07: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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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은 파업 후 무엇을 잃었나
[경제일보] 노동은 신성하고, 연대는 자유로운 인간의 권리다. 자신의 땀방울에 합당한 몫을 요구하는 것은 시장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보편적 ‘정의(Justice)’에 부합한다. 노조가 정당한 보상과 투명한 기준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자, 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치러야 할 민주적 과정이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단행되는 굵직한 파업은 결코 회사 내부의 좁은 울타리 안에 갇힌 고립된 섬으로 남지 않는다.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예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얄팍한 이분법에 갇혀 있다. 한쪽에서는 노조의 정당한 요구를 전적인 ‘탐욕’이나 ‘귀족 노조의 몽니’로 매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파업이 초래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그저 ‘사측의 뻔한 엄살’로 치부해 버린다. 이와 같은 두 가지 극단적 시각은 모두 ‘진리(Truth)’에서 빗겨나 있다. 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무겁고 복잡하다. 반도체라는 현대 문명의 쌀을 생산하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멈춰 설 때, 그 파장은 일개 기업의 노사 갈등을 넘어 생태계 전체에 잔혹한 청구서를 내민다. 자동차, 항공, 엔터테인먼트 등 최근 해외에서 벌어진 대형 파업의 궤적은 강한 노조일수록 자신들의 ‘자유(Freedom)’가 수반하는 막대한 비용에 대해 사회와 정직하게 대화해야 한다는 서늘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 UAW·할리우드 파업이 남긴 공급망 붕괴의 경고 기계음이 멎은 공장은 적막하지만, 그 적막이 파생시키는 파음은 국경을 넘어 요동친다. 지난 2023년 미국 전미자동차노조(UAW)가 포드, GM, 스텔란티스 등 이른바 자동차 ‘빅3’를 상대로 벌인 ‘스탠드업 파업(Stand-up Strike)’은 현대 산업 생태계가 얼마나 촘촘하고도 연약하게 얽혀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 바 있다. 미국 AP통신과 로이터(Reuters) 통신이 인용한 경제컨설팅업체 ‘앤더슨이코노믹그룹’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파업 6주 차를 기준으로 발생한 직접적인 경제 손실만 무려 104억 달러(한화 약 14조원)를 넘어섰다. 더욱 뼈아픈 진실은 타격의 영점이 완성차 업체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심층 보도에 따르면, 파업 4주 차에 이미 리어, 마그나 등 주요 부품업체와 영세한 2·3차 협력사가 입은 임금·수익 손실만 약 26억7000만 달러에 달했다. 노조가 사측의 항복을 받아내는 동안 방파제 없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생계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같은 해 발생한 미국 할리우드 작가 및 배우 노동조합(WGA·SAG-AFTRA)의 동반 파업 역시 궤를 같이한다. 인공지능(AI)의 무분별한 활용에 반대하고 정당한 보상 구조를 요구한 그들의 명분은 시대적 정의에 부합했다. 하지만 미국 CNN 방송과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이 전한 파업의 후폭풍은 참혹했다. 영화와 TV 제작이 전면 중단되면서 캘리포니아와 조지아 등 제작 중심 지역의 일일 촬영 스태프, 소규모 외주 제작사, 심지어 촬영장 인근의 식당과 세탁소 등 지역 상권이 떠안은 경제적 손실은 6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됐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밖의 평범한 이웃들이 파업의 가장 무거운 비용을 대신 치른 셈이다. 이들 사례들은 삼성전자에 매우 뚜렷한 시사점을 남긴다. 평택과 화성의 반도체 라인이 멈추면 단순히 삼성전자라는 거대 기업의 영업이익 감소로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장비·소재·부품 협력사는 물론이고, 삼성의 메모리에 의존하는 전 세계 AI 서버·데이터센터 공급망 전체가 짙은 불확실성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 보잉·루프트한자가 경험한 ‘신뢰 상실’의 청구서 파업의 가장 무서운 비용은 공장의 가동이 멈춘 물리적 시간이나 미지급 임금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2024년 약 3만3000명이 참여한 미국 보잉(Boeing) 노조의 파업은 737 MAX, 777 등 핵심 상업용 제트기 생산을 완전히 중단시켰다. 7주간의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38% 임금 인상이라는 노조 측의 승리로 타결됐지만, 회사가 치른 대가는 혹독했다. 보잉은 전체 직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1만7000명 감원이라는 뼈아픈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어야 했고, 3분기에만 50억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글로벌 항공사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납기 지연’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는 점이다. 보잉의 위기는 반도체 납기 신뢰가 핵심 경쟁력인 삼성전자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 글로벌 B2B 시장에서 공급자가 한 번 신뢰를 잃으면, 고객은 다음 계약에서 단가보다 ‘안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따지게 된다. 이는 독일의 국적 항공사 루프트한자(Lufthansa) 사례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와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2024년 연이은 노조 파업으로 루프트한자가 입은 누적 비용 2억5000만 유로 중 운항 취소 등으로 인한 직접 비용은 1억 유로에 불과했다. 나머지 1억5000만 유로는 파업의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고객들이 선제적으로 경쟁 항공사로 예약을 돌리면서 발생한 ‘장부 밖의 손실’이었다. 반도체 시장의 큰손 고객들 역시 공급망 리스크가 감지되는 순간, 언제든 대만 TSMC나 미국 마이크론 등 경쟁사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다. 한 번 떠난 고객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 ‘18일의 멈춤’보다 치명적인 ‘내일의 상실’ 삼성전자가 직면한 위험은 기우가 아니라 가시화된 현실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기본급 7% 인상과 연간 영업이익의 15% 성과급 배정 등을 요구하며 평택 반도체 단지 생산량의 절반에 타격을 줄 수 있는 ‘18일간의 총파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신제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사내 메시지를 통해 “고객 이탈과 경쟁력 하락, 나아가 자본 유출과 세수 감소 등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 것은 사측의 방어적 엄살로만 폄하할 수 없는 냉혹한 진리다. 노조가 경쟁사와의 보상 격차를 지적하고, 경영진의 불투명한 성과급 산정 기준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타당한 문제 제기다. 그들은 수만 명을 운집시킨 압도적 동원력을 통해 노동조합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증명했다. 다만, 수만명의 결속력이 곧바로 산업 생태계 전체를 뒤흔들 명분까지 무조건적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국가의 명운을 짊어진 핵심 전략 산업의 노조일수록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몫’과 함께 ‘우리가 라인을 멈췄을 때 이름 없는 협력사와 고객이 치러야 할 비용’을 조합원과 국민에게 정직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전장(戰場)에서 고객은 기다려주지 않고, 경쟁사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삼성전자 노조가 진정 조합원들의 장기적 이익과 일자리의 안녕을 원한다면, 단기적인 보상 획득과 장기적 경쟁력 훼손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잠시 멈추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파업은 언젠가 타결의 순간을 맞이하고 라인은 다시 돌아가겠지만, 한 번 훼손된 고객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며 “글로벌 초일류 기업과 구성원들이 함께 치러야 할 가장 비싸고 고통스러운 청구서는 매출 손실이 아니라 영영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고객의 신뢰”라고 했다. 이어 “사측과 노조 모두가 공멸의 청구서를 찢어버릴 상생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2026-05-08 16: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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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이 던지는 '신뢰'의 청구서… 멈추는 순간, 초일류도 멈춘다
[경제일보]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의 미세 공정이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반도체 팹(Fab)에서 ‘정지’는 단순한 일시정지가 아니다. 그것은 곧 ‘사멸’을 뜻한다. 1초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진공의 클린룸에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예고한 ‘18일간의 장기 파업’이라는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인 평택과 기흥 사업장에 전례 없는 정적이 예고된 것이다. 이 정적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반도체 생산 라인의 차질은 단순히 웨이퍼 몇 장을 덜 찍어내고 마는 산술적인 손실이 아니다. 이는 수만 개의 부품과 수백 개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거미줄처럼 얽힌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에 가하는 거대한 충격파다. 무엇보다 수십 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피땀 흘려 쌓아 올린 ‘삼성’이라는 이름의 ‘신뢰 자본’에 치명적인 균열을 내는 행위다. 글로벌 시장은 이미 차가운 의심의 눈초리로 묻고 있다. “세계 최고의 수율과 기술력을 자랑해 온 삼성이, 과연 약속한 납기일에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조직인가?”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칼럼을 통해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 반도체 산업의 내부적 노사 갈등은 경쟁국들에게 뜻밖의 호재(unexpected boon)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갈등의 도화선은 삼성전자가 스스로 증명해 낸 ‘역대급 실적’이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는 매출 133조9000억원,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이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시장에 내놨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폭발에 올라탄 DS(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 기여도는 전사의 94%에 육박한다. 노조의 요구는 바로 이 화려한 숫자에 근거하고 있다. 기본급 7% 인상, 성과급(OPI) 산정 기준의 투명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정하라는 주장은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보상받겠다’는 선명한 명분을 띠고 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끊임없이 비교되는 보상 체계는 이제 단순한 돈의 문제를 넘어 직원들의 자존심 문제로 번진 지 오래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익의 본질과 성격’을 차갑고 냉철하게 해부해 볼 필요가 있다. 57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은 결코 현재 팹을 지키는 인력들만의 오롯한 성과물이 아니다. 이는 과거 불확실성 속에서도 조 단위의 자금을 쏟아부은 경영진의 과감한 설비 투자, 밤을 지새운 연구원들의 피땀, 그리고 AI 사이클이라는 우호적인 거시 경제 환경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빚어낸 종합적 결과물이다. 이를 오로지 현재 인력의 몫으로만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은, 급변하는 반도체 사이클의 겨울을 버텨낼 ‘기초 체력’과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 재원을 갉아먹는 위험한 근시안적 도박이 될 수 있다. 전체 직원의 70%에 달하는 9만명의 조합원. 규모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 노조는 한국 노동 운동사에 유례가 없는 ‘매머드급’ 조직이다. 파업 찬성률 93%라는 압도적 수치는 사측의 일방통행식 소통과 보상 체계에 대한 직원들의 누적된 불만이 이미 임계점을 돌파했음을 방증한다. 다만, 이 거대 조직의 외양 뒤에는 ‘내부의 소외’라는 짙은 그림자가 존재한다. 가전과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DX 부문 노조가 최근 공동투쟁본부를 이탈한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철저하게 DS 부문의 성과에만 초점을 맞춘 투쟁 방식과 보상 요구안은 결과적으로 같은 ‘파란 피’를 나눈 동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나누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노조가 부르짖는 정의가 진정으로 보편적인 공감을 얻으려면, 그것은 특정 부문의 이익주의를 넘어 조직 전체의 상생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해야만 한다. 내부 구성원의 지지조차 온전히 결집하지 못하는 투쟁은 결국 ‘반쪽짜리 외침’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는 잔혹하리만치 냉정하다. 시장 전문가들은 2027년까지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삼성에게 천재일우의 기회인 동시에 치명적인 위기다. 애플, 엔비디아, 구글 등 삼성의 명운을 쥐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들에게 납품 단가보다 수백 배 중요한 것은 바로 ‘안정성(Stability)’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AI 칩 공급망에서 단 한 번의 납기 지연은 고객사의 1년 단위 제품 출시 로드맵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듯, 한 번 멈춘 라인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치르면 다시 돌릴 수 있지만, 신뢰를 잃고 한 번 떠난 고객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라인이 노사 갈등으로 휘청이는 그 짧은 찰나, 대만의 TSMC나 미국의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은 ‘안정적 공급망’이라는 무기를 들고 하이에나처럼 삼성의 고객을 가로챌 준비를 마친 상태다. 신제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최근 이례적으로 공개적인 우려를 표명한 것도 바로 이러한 ‘복합 위기’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경영진 역시 ‘파업은 합법적 권리’라는 원론적이고 방어적인 태도 뒤에 숨을 때가 아니다. 이 사태가 한국 반도체 생태계 전반, 나아가 국가 경제 펀더멘털에 미칠 파급력을 직시하고 전향적인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서 노동자의 파업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성한 기본권이다. 그러나 자유와 권리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의 무게가 뒤따른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는 단순한 일개 사기업이 아니다. 수천 개의 중소 협력업체와 연관 산업의 생존, 그리고 국가 수출의 막대한 비중을 짊어진 일종의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18일 전면 파업이라는 극단적 카드는 단기적인 협상의 지렛대로는 강력할지 모르지만, 자칫 삼성전자라는 거함을 구조적 침몰로 이끄는 자폭 버튼이 될 수 있다”며 “글로벌 패권 경쟁이라는 정글에서 노사가 다투는 사이, 경쟁국들은 그 빈틈을 파고들어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초일류 기업의 생존과 쇠락을 가르는 마지막 보루는 결국 ‘신뢰’다. 이는 고객과의 약속이며, 직원과의 약속이고, 국가 경제와의 약속이다. 지금 삼성전자 노사가 벌이는 벼랑 끝 전술 속에서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가치는 진리와 상식이다. ‘일한 만큼 정당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보상받아야 한다’는 명징한 진리, 그리고 ‘기업의 둑이 무너지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터전도 흔적 없이 휩쓸려 간다’는 냉혹한 상식 말이다. 파업이 남기고 갈 가혹한 청구서는 결코 삼성전자라는 담장 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경제 전체의 문 앞을 두드릴 것이다. 이제는 소모적인 파국을 멈추고 미래를 향한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야 할 때다. 숨죽인 클린룸이 아니라, 24시간 눈부시게 회전하는 웨이퍼의 궤적 위에서만 삼성의 초격차와 대한민국 경제의 생동하는 내일을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다. 멈추는 순간, 초일류의 자격도 함께 멈춘다.
2026-05-07 16: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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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현장의 삽에서 미래도시 설계까지…현대건설 79년 도전의 궤적
[경제일보] 대한민국 산업화의 장면마다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도로와 항만, 댐과 발전소, 아파트와 초고층 빌딩까지 국가 기반시설이 세워진 자리에는 늘 현대건설이 있었다. 전후 폐허 속에서 삽과 곡괭이로 출발한 회사가 이제 원전과 데이터센터, 미래 주거와 친환경 에너지 시장을 이끄는 종합 인프라 기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현대건설의 발자취는 한국 경제 성장사와 맞닿아 있다. 1947년 문을 연 현대건설의 출발은 소박했다. 자본도 장비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주영 창업주의 추진력은 남달랐다. 어려운 일일수록 먼저 맡았고 길이 없으면 직접 길을 냈다. 이후 현대건설을 설명하는 실행 중심 문화도 이 시기에 자리 잡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현대건설은 국가 기간시설 건설의 맨 앞줄에 섰다. 경부고속도로와 소양강댐, 울산 공업단지와 각종 항만 공사는 단순한 토목사업이 아니었다. 산업 국가로 넘어가기 위한 토대를 놓는 작업이었다. 당시 현대건설의 공사 현장은 곧 대한민국 성장의 현장이었다. 해외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웠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 속에서 현대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등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사를 새로 썼다. 낯선 사막에서 축적한 공정 관리 능력과 공기 준수 경험은 이후 글로벌 경쟁력의 밑바탕이 됐다. 국내 시공사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건설사로 체급을 키운 전환기였다. 주택 시장에서도 이름값은 이어졌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한 시대의 주거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힐스테이트 브랜드로 이어진 주택사업은 품질과 브랜드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주택시장의 기준을 높였다. 건설사가 단순 시공을 넘어 생활 방식을 제안하는 기업으로 변하는 흐름도 현대건설이 앞당겼다. 물론 순항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부동산 경기 침체, 원자재 가격 급등, 금리 상승기마다 건설업은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업종이었다. 현대건설 역시 해외 현장 손실과 주택 경기 둔화, 대외 변수의 파고를 여러 차례 겪었다. 다만 위기 때마다 사업 구성을 손보고 기술 경쟁력을 높이며 체질을 다져 왔다. 최근 현대건설의 변화는 더 크다. 과거의 중심축이 도로·주택·플랜트였다면 지금은 에너지 전환과 미래 인프라로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다. 회사는 2025년 연간 수주 25조5151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건설사 가운데 처음으로 25조원대를 넘어섰다. 전년 대비 39% 증가한 규모다. 외형 확대에 그치지 않고 사업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핵심 축 가운데 하나는 원전 사업이다. 현대건설은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을 함께 넓히고 있다. 미국 홀텍과 추진 중인 팰리세이즈 SMR 프로젝트는 상용화 가능성이 거론되는 대표 사례다. SMR은 공사 기간이 짧고 초기 투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 AI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 전력원으로 주목받는다. 건설사가 전력 해법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는 셈이다. 데이터센터도 새 성장축으로 꼽힌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이제는 건물만 짓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안정적 전력 공급과 냉각 시스템, 보안, 운영 효율까지 함께 갖춰야 한다. 현대건설은 초대형 복합시설 시공 경험에 에너지 인프라 역량을 더해 이 시장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현장 혁신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대건설은 AI 기반 안전 예측, 로봇 순찰, 공정 데이터 분석, 자동화 장비 도입 등을 통해 생산성과 안전 수준을 함께 끌어올리고 있다. 전통 산업으로 여겨졌던 건설업이 기술 산업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강점은 브랜드 신뢰도와 종합 수행 능력이다. 토목·건축·플랜트·원전을 아우르는 사업 경험, 현대차그룹과의 연계 가능성, 글로벌 대형 프로젝트 수행 이력은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자산이다. 로봇·모빌리티·수소·스마트시티와의 접점도 넓다. 과제도 있다. 해외 사업은 환율과 지정학 변수에 민감하다. 원전 사업은 기술 장벽이 높은 대신 정치와 규제 변수도 함께 따라온다. 국내 주택 시장은 금리와 정책 변화에 크게 흔들린다. 공사비 상승과 인력 부족 역시 업계 전반의 부담이다. 미래 사업 확대 과정에서 커지는 투자 비용을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할지도 중요한 숙제다. 결국 현대건설이 향하는 방향은 비교적 또렷하다. 단순 시공회사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와 에너지 체계를 함께 설계하는 기업으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주택을 넘어 생활 플랫폼으로, 플랜트를 넘어 전력 인프라로, 공사 현장을 넘어 데이터 기반 산업으로 사업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정주영 창업주의 시대가 없던 길을 내던 시기였다면 지금 현대건설의 과제는 다가올 시대의 기반을 먼저 준비하는 일이다. 한국 산업화의 기초를 놓았던 기업이 이제 AI 시대의 도시와 전력망을 설계하려 한다. 과거 성장의 주역이 미래 산업의 중심에서도 같은 존재감을 이어갈지 시장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2026-04-21 09: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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