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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기다리는 시간도 규제다
[경제일보] 정부가 규제와 인허가에 발이 묶인 7조9000억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앞당기기로 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전기차 생산라인 전환을 비롯해 청정수소, 이차전지, 첨단센서 등 현장에서 대기 중인 투자 프로젝트의 행정절차를 줄이는 것이 골자다.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따로 발주하던 전기·통신공사의 통합발주도 허용하기로 했다. 방향은 옳다. 정부가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산업정책은 이미 투자할 의사가 있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을 걷어내는 일이다. 이번 대책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현대차 울산공장이다. 현대차는 약 4조원을 들여 기존 내연기관차 생산라인을 자율주행 전기차 중심 공장으로 재건축할 계획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사업계획 심의와 환경·교통·재해 영향평가, 건축·안전 관련 인허가 등을 거치면 행정절차에 3년 이상 걸릴 우려가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와 울산시는 전담 프로젝트매니저(PM)를 두고 각종 영향평가와 인허가를 동시에 진행해 이를 1년 이내로 줄이겠다고 했다. 여기서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필요한 심사를 생략하지 않고도 1년 안에 처리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이유는 무엇인가. 환경과 안전을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공장을 빨리 짓겠다고 환경영향평가를 없애거나 산업안전 기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 주민의 재산권과 생활환경도 보호해야 한다. 이번 대책 역시 관련 심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고 사전 컨설팅을 통해 시간을 줄이는 방식이다. 없애야 할 것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행정의 군더더기다. 부처와 기관마다 비슷한 자료를 요구하고 앞 단계의 절차가 끝나야 다음 심사를 시작하는 관행이 있다면 이를 그대로 둘 이유가 없다. 행정기관끼리 협의할 일을 기업이 서류를 들고 돌아다니며 해결하도록 하는 것도 정상적인 행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규제의 비용은 행정수수료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기업에는 시간이 곧 비용이다. 특히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배터리, 바이오처럼 기술 변화가 빠른 산업에서는 그렇다. 경쟁국 기업이 공장을 짓고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동안 국내 기업이 인허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1~2년의 차이가 시장점유율을 바꿀 수 있다.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경쟁력의 문제가 된다. 세계 각국이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은 반도체와 AI, 배터리 등 전략산업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보조금과 세제지원, 산업 인프라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한국은 애국심 때문에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 시장이 아니다. 인건비와 세금, 인재, 시장 접근성, 규제 그리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따져 투자처를 정한다. 한국이 경쟁해야 할 것도 결국 이런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규제개혁의 성적표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는 출범할 때마다 규제혁신을 내걸었다. 폐지하거나 개선한 규제의 숫자를 성과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에는 규제 몇 건을 없앴느냐보다 투자 결정에서 공장 가동까지 몇 달이 걸리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규제개혁의 성적표를 ‘폐지 건수’보다 ‘줄어든 투자 대기시간’으로 매겨보자는 것이다. 오래된 규제를 정기적으로 다시 살펴보는 장치도 필요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환경, 공정한 시장질서를 지키는 규제는 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 반면 기술과 산업구조가 바뀌었는데 과거의 이해관계나 행정편의 때문에 남아 있는 규제라면 존치 이유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기업에 규제 철폐의 필요성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부도 그 규제를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첨단산업의 기반시설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반도체 공장은 기업이 지을 수 있지만 송전망과 용수망까지 기업 혼자 해결하기는 어렵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없다면 들어설 수 없다. 산업용지와 전력·용수·통신망, 연구개발 기반과 인재 공급은 개별 기업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정부의 역할은 이런 곳에서 더 커져야 한다. 노동시장도 달라진 산업환경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제조업과 연구개발, 정보기술 기업의 일하는 방식이 모두 다른 만큼 노사 합의를 전제로 업종과 업무 특성에 맞는 근로시간 선택권을 넓히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생산성과 직무의 가치를 보다 잘 반영하는 임금체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 다만 노동 유연화가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오래가기 어렵다. 기업의 인력 운용에 선택지를 넓혀준다면 실직과 전직 과정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고용안전망과 재교육 체계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유연성과 보호를 서로 반대편에 세워놓고 어느 하나만 선택해서는 개혁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세제에서는 무엇보다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과 연구개발에 대한 세액공제는 기업의 장기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지원 규모 못지않게 제도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도 중요하다.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이라면 몇 년 뒤 투자환경이 어떻게 달라질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어떤 기업과 기술이 성공할지를 대신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시장과 기업가의 몫이다. 정부는 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운동장을 만들고 민간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기반시설과 기초 연구개발을 책임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기업을 지원하는 정부’보다 ‘기업이 뛰기 좋은 정부’가 필요한 이유다. 규제완화의 목적도 기업의 비용을 줄이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기업 투자가 늘고 생산성이 높아져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기업이 거둔 성과가 임금과 가계소득, 소비로 이어질 때 규제개혁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 기업 활력과 민생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한비자>에는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규제개혁에도 적용할 만한 원칙이다. 힘 있는 대기업이 민원을 제기할 때마다 예외를 만들어주는 것이 규제개혁이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같은 기준 아래 필요한 행정서비스를 예측 가능한 시간 안에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7조9000억원 투자지원 대책은 그런 의미에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기업 현장의 애로를 찾아 규제와 행정절차를 손보기 시작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다음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여러 행정절차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면 다른 공장에서는 왜 안 되는가. 반도체 팹에서 불필요한 공정 지연을 줄일 수 있다면 다른 첨단산업에도 비슷한 규제가 남아 있지는 않은가. 기업이 정부에 어려움을 호소할 때마다 하나씩 해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행정 시스템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규제는 필요한 곳에서는 단단해야 하고 필요 없는 곳에서는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안전과 환경, 시장의 공정성을 지키는 기준은 낮춰서는 안 된다. 대신 투자와 혁신을 가로막으면서도 정책 목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절차는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남겨둘 필요가 없다. 기업에 투자하라고 주문하기 전에 기업이 투자하기 어렵게 만든 정부 자신의 절차부터 살펴야 한다. 한국 경제에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거창한 성장 구호가 아니다. 투자할 기업이 제때 공장을 짓고 기술을 개발하며 사람을 고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규제개혁의 성패는 없앤 규제의 숫자가 아니라 앞당겨진 투자와 높아진 생산성, 새로 생긴 일자리로 평가받아야 한다. 7조9000억원의 현장대기 투자를 움직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행정으로 바꿔야 한다. 경제의 속도를 정부의 절차가 늦추는 일부터 없애야 한다.
2026-10-02 11: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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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은 늘고 고용효과는 줄었다…성장의 성적표를 바꿀 때
[경제일보] 반도체가 날아오르자 수출이 늘고 기업의 이익도 커졌다. 수출이 한국 경제의 생산과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몫 역시 확대됐다. 하지만 일자리의 움직임은 달랐다. 수출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성과는 커졌지만, 같은 금액의 수출이 유발하는 고용은 오히려 줄었다.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2024년 산업연관표가 보여준 한국 경제의 단면이다. 수출 호황이 곧바로 고용과 가계소득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익숙한 성장 공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숫자는 선명하다. 2024년 국내 생산 가운데 수출이 유발한 비중은 전년 32.7%에서 35.1%로, 부가가치 비중은 25.4%에서 28.2%로 높아졌다. 전 산업의 부가가치율도 41.2%에서 42.0%로 상승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과 수출 공산품의 영업잉여 증가, 수입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이 영향을 미쳤다. 반면 수출 10억원당 취업유발계수는 5.4명에서 5.0명으로 떨어졌다. 전 산업 평균도 8.2명에서 7.8명으로 낮아졌다. 수출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졌는데, 단위 수요가 만들어내는 일자리의 수는 감소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기의 좋고 나쁨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산업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자본집약 산업이다. 최첨단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십조원이 들어간다. 생산량과 수익성을 좌우하는 것은 대규모 설비와 미세공정, 자동화 기술과 수율이다. 숙련된 엔지니어와 연구개발 인력의 중요성은 크지만, 생산이 늘어난다고 고용이 같은 비율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의 본질이다. 이를 거슬러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자동화를 늦추거나 불필요한 인력을 유지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이 성장을 주도할수록 기업의 실적과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에 간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수출이 급증해도 신규 채용은 그만큼 늘지 않을 수 있다. 늘어난 이익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임금과 배당으로 배분되더라도 그 혜택이 모든 산업과 지역에 고르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공장의 생산성 향상이 주변 협력업체의 매출과 고용, 가계의 구매력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얼마나 튼튼한지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여기서 통계를 정확히 읽을 필요가 있다. 2024년 전체 취업자 수는 2857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15만9000명 증가했다. 그러나 주 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환산한 전업환산 취업자는 2596만명으로 2만8000명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건설업과 농림수산업의 고용 감소, 근로시간이 짧은 노인 일자리 증가 등을 배경으로 설명했다. 이를 반도체 호황 때문에 전체 일자리가 줄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짧은 근로시간이 반드시 나쁜 일자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상용직 비중은 61.0%에서 61.3%로 높아졌다. 그럼에도 취업자 수와 실제 노동 투입량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고용 인원만으로 노동시장의 변화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수출의 고용 기여도 역시 마찬가지다. 2024년 전체 취업자 가운데 수출이 유발한 비중은 20.7%에서 22.2%로 상승했다. 수출이 일자리를 만드는 역할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수출 규모가 커지면서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몫은 확대됐지만, 수출 10억원당 취업유발 인원은 감소했다. 수출의 양적 성장과 고용 창출의 효율을 구분해야 산업구조의 변화가 제대로 보인다. 이제 산업의 성과를 설명하는 숫자도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수출액과 설비투자 규모, 세계시장 점유율을 중심으로 평가돼 왔다. 반도체 수출이 얼마나 늘었는지, 어느 기업이 수십조원을 투자하는지, 글로벌 시장에서 몇 위를 차지했는지가 산업정책의 성적표를 채웠다. 모두 중요한 지표다. 수출과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고용과 소득을 늘릴 기반도 약해진다. 다만 그것만으로 한 산업의 성과가 국민경제에 얼마나 넓고 깊게 전달됐는지는 알기 어렵다. 가령 수출액이 크게 늘었더라도 핵심 소재와 장비를 대부분 해외에서 들여왔다면 국내에 남는 부가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국내 설계와 소재·부품·장비, 소프트웨어 기업이 함께 성장했다면 생산과 고용의 파급효과는 더 넓게 나타날 여지가 있다. 반도체 공장 하나의 경제적 의미도 공장 안에서만 계산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 공장이 국내 협력업체의 기술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 연구개발과 전문서비스 분야에 어떤 수요를 만들었는지, 생산성이 높아진 성과가 임금으로 얼마나 연결됐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AI와 자동화의 확산은 이러한 질문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AI는 일부 업무를 대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직무와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떤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지는 산업의 특성과 기술 도입 방식, 노동자의 직무전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자동화 투자가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고용이 감소한다고 단정할 수도, 첨단산업이 성장하니 양질의 일자리도 저절로 늘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고용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생산성 향상의 성과가 어디로 흘러가느냐다. 노동자 한 사람이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 성과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신규 채용이 크게 늘지 않더라도 가계소득은 개선될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의 부가가치는 커지는데 노동소득이 정체된다면 수출 호황이 소비로 이어지는 힘은 약해질 수 있다. 물론 이번 산업연관표만으로 임금 분배나 가계의 체감경기가 악화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산업별 임금과 노동소득분배율, 신규 채용과 고용 유지, 가계 소비를 함께 살펴야 확인할 수 있는 문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출액 하나로 성장의 성과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논어’ 학이편에서 유자(有子)는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 근본이 서야 길이 열린다)’고 했다. 경제성장의 근본은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성에 있다. 다만 그 성과가 기업의 장부에서 끝나지 않고 국민의 소득과 생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까지 살펴야 성장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반도체의 성공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첨단산업은 한국 경제가 가진 소중한 자산이다. 그 산업의 생산성을 낮춰 일자리를 억지로 늘리는 방식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수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소식과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국민의 체감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은 놓쳐서는 안 된다. 기업의 실적이 좋아졌다는 사실과 국민의 삶이 나아졌다는 판단 사이에는 확인해야 할 과정이 남아 있다.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는 그 과정을 들여다볼 출발점이다. 수출이 얼마나 늘었는지뿐 아니라 국내에 얼마의 부가가치를 남겼고, 어떤 일자리를 만들었으며, 생산성 향상이 임금과 소득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함께 살펴볼 때 성장의 성과를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반도체가 높이 날아오른 것은 분명하다. 이제 살펴야 할 것은 그 성장의 힘이 한국 경제의 다른 산업과 노동자, 가계에 얼마나 넓게 닿고 있는가다. 수출은 성장의 출발점이다. 그 성과가 국민의 소득과 일자리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보여줄 때 비로소 성장의 성적표가 완성된다.
2026-09-22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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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시간'이라는 낡은 틀에 미래를 가둘 것인가
세계 산업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봇, 바이오, 양자기술 등 첨단산업의 경쟁은 이제 기술 하나의 우열을 넘어 누가 더 빨리 연구하고, 제품화하고, 시장을 선점하느냐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기술 패권 경쟁에서 1년은 길고 하루는 짧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노동시장 제도는 과연 이런 속도전에 맞춰져 있는가. 최근 일본의 노동시간 제도와 연구개발 분야의 규제 완화 움직임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일본 역시 전체 노동자에게 월 100시간의 초과근무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월 45시간·연 360시간의 상한을 두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월 100시간 미만, 연 720시간 등의 제한을 둔다. 다만 신기술·신상품·신서비스의 연구개발 업무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시간외근로 상한 규정의 적용을 제외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핵심은 숫자가 아니다. 모든 노동을 똑같은 잣대로 재단하지 않는다는 발상의 차이다. 연구개발 현장은 일반적인 생산라인과 다르다. 반도체 설계자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실험 결과가 나오는 순간이 따로 있고, 새로운 알고리즘을 완성하기 위해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간이 따로 있다. 경쟁사의 신제품이 발표되거나 기술적 돌파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연구개발팀이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를 장시간 노동의 미화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과로는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창의성을 훼손한다. 건강을 잃은 근로자에게 혁신을 요구할 수도 없다. 노동시간 규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근로자의 건강과 휴식권을 보호하고 기업이 무분별한 장시간 노동에 의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보호와 경직성은 같은 말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 노동시장 제도가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산업별·직무별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AI와 반도체처럼 연구개발의 속도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분야에서 획일적인 시간 규제는 기업과 연구자 모두에게 제약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주 52시간제는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제도로 진화시키는 일이다. 정부도 AI 연구개발 현장의 특성을 고려해 특별연장근로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장의 현실과 제도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점을 정부 역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제 논의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과 일반 생산업무를 구분하고 업무의 성격과 위험, 전문성, 자율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제도를 차등화해야 한다. 모든 근로자를 동일한 시간표로 묶어 놓는 것이 반드시 공정한 것은 아니다.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와 반복 업무 종사자에게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노동 보호라기보다 규제의 획일화가 될 수 있다. 노사 자율성도 확대해야 한다. 정부가 일률적으로 근무 형태를 정하기보다 기업과 근로자가 업종과 업무 특성에 맞춰 근로시간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자율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근로자의 명시적 동의와 적절한 보상, 건강 보호, 휴식권 보장, 근로시간 기록과 사후 점검 등을 전제로 해야 한다. 노동정책의 기준도 ‘얼마나 오래 일했느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AI 시대의 연구개발은 장소와 시간의 경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출근해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고 생산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정시에 퇴근한다고 혁신적인 것도 아니다. 노동의 질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 기업의 책임 역시 분명해야 한다. 규제 완화가 무제한 노동을 허용하는 면허증이 돼서는 안 된다. 전문 연구인력에게 예외를 인정한다면 그만큼 높은 수준의 임금 보상과 건강관리, 충분한 휴식, 근로시간 기록과 사후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 규제 완화와 노동자 보호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설계하면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선이고 더 유연하게 일하는 것은 곧 노동권 후퇴라는 이분법으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반대로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낡은 사고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세계는 이미 ‘더 오래 일하는 나라’와 ‘덜 일하는 나라’의 경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더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필요한 순간에는 신속하게 집중할 수 있는 나라가 경쟁에서 앞서간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고 있고 AI와 첨단 제조업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 기업을 갖고 있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노동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과 산업의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법과 제도 역시 그 속도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 일본의 사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월 100시간’이라는 숫자가 아니다. 연구개발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획일적인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예외와 자율성을 제도 안에 설계한 유연성의 철학이다. 우리도 이제 주 52시간제의 성역을 허물자는 논쟁을 넘어야 한다. 지켜야 할 것은 ‘52시간’이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근로자의 건강과 휴식이라는 본질이다. 그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연구개발, 스타트업, 첨단 제조업 등 미래산업의 특성에 맞는 유연한 노동시간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AI 시대에는 기술이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경쟁국의 기업도 우리 기업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세계 시장의 투자자 역시 한국의 복잡한 규제체계를 이해해 줄 의무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권의 후퇴가 아니라 노동제도의 선진화다. 보호할 것은 확실히 보호하되 기업과 연구자가 필요한 순간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연구개발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연구개발의 속도를 높이려면 사람의 창의성을 가두는 낡은 규제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 이제 질문을 바꿀 때다. ‘몇 시간 일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일해야 대한민국의 생산성과 혁신을 가장 높일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에 맞는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다.
2026-08-30 13: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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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700원, 이제는 인상률보다 제도 개혁을 논할 때다
[경제일보]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3.7% 오른 시간당 1만70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1만 원대 중반 시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는 상징성은 있지만, 정작 결정 과정과 결과는 또다시 우리 사회의 깊은 갈등만 확인시켰다. 법정 시한을 넘긴 밤샘 협상과 막판 표결, 노사 양측의 극한 대립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 됐다. 사용자 측은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호소하고, 노동계는 "실질임금 삭감"이라며 반발한다. 누구도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은 현행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을 웅변한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근로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제도라도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경우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지금 우리 경제는 고금리와 내수 부진, 소비 위축이라는 복합 불황 속에 놓여 있다. 특히 골목상권의 편의점과 음식점, 숙박업, 미용업 등 영세 서비스업은 인건비 부담과 임대료, 원자재 가격 상승을 동시에 떠안으며 생존 자체를 걱정하는 처지다. 현실적으로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은 것은 제도의 실효성과 시장의 수용 능력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취약 업종에서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3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난다. 법을 준수하고 싶어도 지급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영세 사업주를 잠재적 범법자로 만드는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저임금의 목적이 근로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면, 그 제도가 오히려 일자리 축소와 폐업 증가를 초래하는 상황 또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시장이 감당하지 못하는 임금은 결국 고용 감소와 근로시간 축소, 무인화 투자 확대라는 형태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피해는 결국 가장 보호받아야 할 취약계층 근로자에게 집중된다. 이제는 정치적 금기처럼 여겨졌던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다. 현행 법률 역시 사업의 종류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수도권 대기업과 지방 영세기업의 생산성은 물론 물가와 임금 수준, 지불 능력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동일한 기준을 전국 모든 업종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보다 불균형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주요 선진국들도 지역이나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임금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차등 적용이 곧 노동자 차별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세 서비스업과 농림어업, 지방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제도 설계가 오히려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지키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획일적 평등보다 지속 가능한 공정이 더 중요하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운영 방식 역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의 결정 구조는 노·사·공익위원이 이해관계를 앞세워 줄다리기를 벌이는 정치적 협상 테이블에 가깝다. 객관적인 경제지표보다 협상력과 여론전이 결과를 좌우하는 구조에서는 사회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제는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노동생산성, 고용 여건, 중소기업의 지급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객관적인 산식을 마련하고, 전문가 중심의 독립적인 심의체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정치적 흥정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결정 시스템만이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최저임금 논쟁의 본질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근로자의 삶을 보호하면서도 기업이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노동자 없는 기업도 없지만 기업 없는 일자리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의 희생만 강요하는 정책은 결국 모두를 어렵게 만든다.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지 어느덧 4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은 크게 달라졌지만 제도는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해마다 반복되는 인상률 논쟁을 넘어 시장 현실과 경제 여건을 반영한 제도 개혁에 나설 때다. 업종별·지역별 차등 적용, 객관적 산식에 기반한 결정 구조, 생산성과 지급 능력을 함께 고려하는 합리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노동자의 삶을 지키고 자영업자의 생존을 보호하며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길이다. 최저임금의 미래는 인상률이 아니라 제도의 신뢰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2026-07-19 10: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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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을 겨눈 하청 파업…플랜트 현장서 시작된 노란봉투법의 첫 충돌
[경제일보] 정유공장과 석유화학단지, 제철소, 발전소, 반도체 플랜트 현장에서 배관·용접·전기 공정을 맡는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파업을 예고했다. 임금을 지급하는 하청업체가 아니라 발주와 공정, 안전관리의 큰 틀을 쥔 원청기업을 교섭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플랜트건설노조는 1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8월 총파업 방침을 밝혔다. 노조는 지난달 19일부터 26일까지 전국 8개 지역에서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79.2% 찬성으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이달 15일 민주노총 총파업에 맞춘 상경투쟁을 거쳐 8월 총파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대상은 포스코·에쓰오일·고려아연·SK에너지 등 발주사와 SK에코플랜트, 현대건설, DL이앤씨, 롯데건설, 포스코이앤씨, 삼성물산 등 종합건설사다. 노조는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과 근로조건은 하청업체만의 판단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며,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원청이 직접 교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사안이 주목받는 까닭은 3월 10일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 이른바 노란봉투법 때문이다. 개정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맺지 않았더라도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그 범위에서 사용자로 본다고 규정했다. 노동쟁의 대상도 임금과 근로시간뿐 아니라 근로조건에 영향을 주는 사업경영상 결정까지 넓어졌다. 그동안 플랜트 현장에서는 원청이 안전 기준과 공정, 출입 절차, 작업 일정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임금과 고용은 하청업체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직접 교섭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노란봉투법은 이 분리를 다시 따져 보겠다는 법이다. 원청이 실제로 통제하는 분야가 있다면 그 문제에 관해서는 교섭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노동위원회의 초기 판단도 노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달 현대엔지니어링이 하청 노조의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해야 한다는 판단을 유지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영역이 있다는 취지다. 다만 SK에코플랜트 사건에서는 교섭단위 분리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되더라도 어느 노동조합과 어떤 단위로 교섭할지는 별도 쟁점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부터 현장의 갈등은 더 복잡해진다. 사용자성 인정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법도 원청이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사용자성을 인정한다. 현장 안전수칙, 작업 허가, 공정 변경, 인력 투입 기준처럼 원청의 권한이 뚜렷한 사안과 개별 하청업체의 임금 체계, 인사권, 고용계약을 어디까지 나눌지가 첫 교섭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파업의 적법성도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조합원 찬반투표는 쟁의행위 절차의 한 단계일 뿐이다. 노조는 노동위원회 조정을 신청하고, 교섭을 거부하는 원청을 상대로 소송도 제기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 파업이 이뤄질 경우 원청별 사용자성, 교섭 요구의 범위, 조정 절차 준수, 쟁의행위 대상이 된 요구사항을 놓고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플랜트노조가 안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조는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뒤 플랜트산업 10대 원청사 현장에서 최소 7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원청에 법이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 수치는 노조 집계이지만, 플랜트 현장에서 안전 책임이 하청업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는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플랜트 공사는 여러 공종이 맞물려 돌아간다. 배관 작업이 늦어지면 용접과 검사, 시운전 일정도 함께 밀릴 수 있다. 정유·석유화학 설비의 정기 보수나 증설 공사, 반도체 생산시설 건설처럼 공정 간 연결이 촘촘한 현장일수록 타격이 클 수 있다. 다만 총파업 예고만으로 공장 가동 중단을 단정하기는 이르다. 파업 참여 규모, 대상 공종, 해당 현장이 신설 공사인지 정기 보수인지에 따라 실제 영향은 크게 달라진다. 건설업계는 원청의 법정 안전관리 의무를 곧바로 사용자성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대한건설협회는 원청이 노조와 교섭해 추가 비용이나 작업 방식 변경을 수용할 경우 그 부담이 전문건설업체에 전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원청과 노조가 합의한 내용이 실제 고용주인 하청업체의 계약·인사 운영과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주장은 원청이 교섭에서 빠져야 한다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원청의 지시와 공정 압박, 계약 단가가 하청 노동자의 작업 여건에 영향을 준다면 그 책임을 하청업체에만 남겨두기도 어렵다. 반대로 원청이 모든 하청 노동자의 임금·인사 문제까지 떠안는 방식으로 흘러간다면 현장 운영은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안전과 공정, 임금과 고용, 비용 부담을 각 사안별로 가르는 교섭 틀이 필요하다. 노란봉투법의 성패는 파업 규모보다 첫 교섭의 내용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원청이 책임져야 할 안전·공정 의제와 하청업체가 맡아야 할 고용·임금 의제를 구분하지 못하면, 교섭은 시작부터 책임 떠넘기기 싸움으로 변질될 수 있다. 반대로 현장에서 실제 권한을 가진 주체가 안전과 작업 여건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다단계 하도급 아래 가려져 있던 책임의 빈틈을 줄일 계기가 될 수 있다. 플랜트노조의 8월 파업 예고는 노란봉투법이 조문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현장으로 들어온 첫 장면이다. 원청과 하청, 발주사와 시공사, 노동조합과 전문건설업체가 어느 선까지 책임을 나눌지에 따라 정유·석유화학·제철·반도체 건설 현장의 노사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교섭 자체를 미루는 일도, 원청 책임을 무한정 넓히는 일도 아니다. 각 현장에서 누가 실제로 무엇을 결정하는지부터 따져, 책임과 비용이 맞물린 협상 틀을 만드는 일이다.
2026-07-01 16: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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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지의 '최저시급' 공고가 불편한 이유…MZ도 열정페이에는 웃지 않는다
[경제일보] 젠지 이스포츠의 숏폼 콘텐츠 편집자 모집 공고가 팬들의 감정을 건드렸다. 단순히 시급이 낮아서가 아니다. 공고가 요구한 업무의 무게와 회사가 제시한 보상의 언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공고에 적힌 업무는 가볍지 않다. 젠지 SNS 채널용 유튜브 쇼츠, 릴스, 틱톡 등 숏폼 콘텐츠를 편집해야 한다. 트렌드 기반 콘텐츠를 제안하고 제작해야 한다. 경기 하이라이트, 선수 콘텐츠, 브랜드 콘텐츠도 다룬다. 지원자는 캡컷, 프리미어 프로, 애프터이펙트 등 영상 편집 툴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포트폴리오도 제출해야 한다. e스포츠 리그 콘텐츠 제작 경험, 빠른 작업 속도, 트렌드 감각, 젠지와 LCK에 대한 높은 관심,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우대사항으로 붙었다. 그런데 급여는 최저시급이다. 이 한 줄이 공고 전체를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다. 회사가 원하는 것은 실무형 편집자, 트렌드 기획자, 브랜드 콘텐츠 제작자, 팬덤을 이해하는 커뮤니케이터에 가깝다. 회사가 먼저 제시한 가격표는 노동시장에서 허용되는 가장 낮은 선이다. 물론 최저임금 지급 자체가 곧바로 위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근로시간, 주휴수당, 계약 형태, 실제 업무 범위가 법 기준을 충족하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법의 바닥을 지켰다는 사실이 좋은 채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글로벌 e스포츠 브랜드를 표방하는 조직이 팬과 선수의 이미지를 다루는 콘텐츠 실무자에게 최저선을 제시했다면 법 이전에 브랜드 감각의 문제다. 영상편집 시장이 넉넉한 시장도 아니다. 유튜브 영상편집자 노동환경 조사에서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문제가 드러난 바 있다. 본업 영상편집자의 평균 시급은 1만3495원으로 조사됐다. 이 수치조차 풍족한 보상이라 보기 어렵다. 그런데 2026년 최저시급 1만320원은 이보다도 낮다. 국내 영상편집 평균 월급으로 잡아도 최저임금 월 환산액과는 차이가 난다. 이미 낮게 형성된 시장 평균보다도 낮은 법정 최저선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트렌드 감각과 브랜드 이해를 요구하는 구조가 납득을 어렵게 만든다. 숏폼 편집은 더 이상 단순 편집이 아니다. e스포츠 구단에서 숏폼은 팬 유입의 입구다. 선수 브랜딩의 유통망이고 스폰서 노출의 상품이다. 경기의 한 장면은 몇 초짜리 쇼츠로 재가공돼 플랫폼을 타고 퍼진다. 그 영상이 팬덤을 만들고, 조회수를 만들고, 구단의 브랜드 가치를 만든다. 그 일을 맡기는 공고에 “최저시급”을 적어놓는 것은 콘텐츠의 가치를 말로는 인정하면서 실제 보상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고백처럼 읽힌다. 젠지의 매출과 영업이익, 선수 개별 연봉은 공개자료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돈이 많으니 더 줘야 한다”고 단정하는 방식은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공개된 사실만으로도 젠지는 동네 동아리가 아니다. 포브스는 2022년 젠지의 기업가치를 2억5000만달러로 평가했다. 젠지는 LCK, 발로란트, PUBG 등 여러 종목을 운영하는 글로벌 e스포츠 조직이고 후원사와 콘텐츠 채널, 굿즈 사업을 갖춘 브랜드다. 이런 조직이 콘텐츠 인력을 모집하면서 보상을 최저선으로 못박았다면 팬들이 묻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직무의 기준은 무엇인가. 애정인가, 실력인가. 둘 다 요구하면서 왜 보상만 최저인가. 선수에게 큰 비용을 쓰는 것은 프로 스포츠에서 당연하다. 스타 선수가 경기력을 만들고 팬덤을 만든다. 그러나 그 선수를 팬에게 전달하는 것은 콘텐츠다. 경기장 밖에서 선수의 표정, 말투, 순간, 서사를 팬에게 연결하는 사람이 편집자다. 팬덤 산업에서 콘텐츠 제작자는 주변 인력이 아니라 브랜드의 최전선이다. 선수의 가치는 인정하면서 그 가치를 유통하는 노동은 최저시급으로 충분하다고 보는 순간 산업의 균형은 무너진다. 더 불편한 대목은 ‘열정페이’의 냄새다. 이스포츠와 콘텐츠 제작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지원을 바란다는 말은 채용 공고에서 흔히 쓸 수 있다. 문제는 그 관심이 낮은 보상을 견디는 근거처럼 보일 때다. 팬심은 자격요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팬심이 임금 할인 사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MZ세대는 좋아하는 일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좋아하는 게임, 좋아하는 팀, 좋아하는 선수를 위해 밤을 새우고 콘텐츠를 만든다. 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알아본다. 누가 자신의 열정을 존중하는지 누가 그것을 싸게 사려 하는지. 젠지가 정말 교육형 아르바이트를 원했다면 공고는 달랐어야 한다. 업무 범위를 좁히고 실무 교육과 피드백 체계를 명시하고 어떤 성장 경험을 제공할지 밝혔어야 한다. 반대로 포트폴리오와 편집 툴 숙련, 트렌드 기획, 브랜드 콘텐츠 제작을 요구한다면 보상도 그에 맞춰 설계했어야 한다. 교통비, 식대, 성과 보상, 콘텐츠 크레딧, 경력 증명, 정규직 전환 가능성 같은 보완 조건이라도 제시했어야 한다. 지금 공고는 숙련을 요구하면서 보상은 입문보다 낮게 잡은 모양새다. 이 논란의 핵심은 돈 몇 천원의 문제가 아니다. 메시지의 문제다. “우리는 글로벌 e스포츠 브랜드다. 당신에게는 빠른 손, 트렌드 감각, 팬덤 이해, 편집 툴 숙련, 포트폴리오를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보장하는 것은 최저시급이다.” 이 문장을 보고도 젊은 지원자들이 감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착각이다. e스포츠는 팬덤으로 성장했다. 팬들이 시간을 쓰고, 돈을 쓰고, 감정을 쌓아 산업을 키웠다. 그 팬들 가운데 누군가는 콘텐츠 제작자가 되고, 누군가는 구단 직원이 되고, 누군가는 산업의 다음 세대가 된다. 그들에게 “좋아하니까 싸게 일해도 된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브랜드 충성도는 자부심이 아니라 실망으로 바뀐다. 젠지가 이번 공고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복잡하지 않다. 좋은 콘텐츠를 원하면 좋은 노동을 인정해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열정은 여전히 통한다. 그러나 열정페이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산업이 커졌다면 임금의 언어도 커져야 한다. 최저시급이라는 한 줄은 법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젠지라는 브랜드가 말해온 글로벌 e스포츠의 품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2026-06-24 16: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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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의 정년 연장 청구서, 청년 일자리의 답도 담겼나
[경제일보] 정년 연장 논의가 다시 국회 문턱에 섰다. 노동계는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까지 밀려나는 상황에서 60세 정년은 은퇴자에게 최대 5년의 소득 공백을 남긴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노후 소득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문제 제기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그러나 정년 연장 요구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그 청구서에는 빠진 항목이 없어야 한다. 고령층의 생계 불안만 적고 청년 일자리의 대책을 비워둔 채 국회에 법부터 만들라고 압박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합의라기보다 한쪽의 요구를 입법 문장으로 옮기는 일에 가까워진다. 정년 연장은 고령 근로자에게는 소득 공백을 줄이는 안전판일 수 있지만, 청년들에게는 닫힌 취업문 앞에 또 하나의 자물쇠가 걸리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소득 공백의 현실, 그러나 비어 있는 청년 대책 고령층의 현실은 엄연하다. 60세에 회사를 떠난 뒤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은퇴 후에도 생활비는 줄지 않고, 주거비와 의료비 부담은 남아 있다. 60대 초반을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물러날 나이로 보기도 어렵다. 건강수명은 길어졌고, 숙련 인력을 더 오래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 정년 연장을 세대 이기주의로만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법정 정년 숫자만 60에서 65로 바꾼다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정년 연장은 누군가의 퇴직 시점을 늦추는 제도다. 기업의 인건비 총량과 정원이 그대로인 상황에서는 그 부담이 신규 채용 축소로 옮겨갈 수 있다. 특히 청년들이 선호하는 대기업, 공기업, 금융권, 공공기관일수록 정년 연장의 혜택은 기존 정규직에게 집중되고, 채용 감소의 부담은 취업 준비생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청년들이 답답해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이미 청년들은 입시 경쟁, 취업 경쟁, 주거 경쟁을 거쳐왔다. 좋은 일자리는 줄고, 채용 문은 좁아졌고, 서울 집값은 월급만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부모 세대가 올라탔던 성장의 사다리는 희미해졌는데, 이제는 그 사다리 위쪽에 있는 이들의 체류 기간까지 더 늘리겠다는 말로 들린다. “너희도 나중에 나이 들면 혜택을 본다”는 설명은 지금 취업 문 앞에 서 있는 청년들에게 위로가 되기 어렵다. 그들에게 문제는 30년 뒤의 정년이 아니라 올해의 채용 공고다. 노동계는 이 불편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65세 정년 연장을 요구하면서 청년 채용 축소 가능성에는 어떤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 연공형 임금체계를 그대로 두고 정년만 늘리자는 것인가. 임금피크제, 직무 재설계, 근로시간 조정, 신규 채용 유지, 세대 간 고용 배분 문제를 함께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을 피한 채 정년 연장만 입법하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개혁안이 아니라 기득권의 연장 신청서로 읽힐 수밖에 없다. 정년의 혜택은 모두에게 같지 않다 한국 노동시장의 모순은 모두에게 같은 정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법정 정년의 보호를 실제로 누리는 사람은 안정된 직장에 오래 남아 있는 근로자들이다. 중소기업 근로자,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에게 60세 정년이라는 말은 종종 남의 회사 이야기다. 이들에게는 65세 정년보다 다음 계약 연장, 다음 달 매출, 내년 고용 유지가 더 절박하다. 정년 연장 입법의 직접 수혜자가 노동시장 내부에서도 비교적 강한 위치에 있는 집단으로 쏠릴 수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논쟁은 단순한 노년 대 청년의 감정싸움이 아니다. 이미 안정된 자리를 가진 사람과 그 자리에 들어가려는 사람 사이의 충돌이다. 정년 연장 논의에서 가장 약한 사람은 반드시 60대 정규직만은 아니다. 아직 회사 문턱에도 들어서지 못한 청년, 계약 갱신을 기다리는 비정규직, 중소기업에서 정년이라는 말을 체감하지 못하는 근로자도 노동시장 안팎의 약자다. 조직된 노동의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이들의 불안이 지워져서는 안 된다. 위쪽이 오래 머물면 아래쪽은 늦어진다 법정 정년의 숫자를 바꾸는 순간 인사·임금·승진·채용 질서가 함께 흔들린다. 부장과 차장의 체류 기간이 늘어나면 대리와 사원의 승진은 늦어진다. 정원이 묶인 조직에서는 신규 채용이 줄어든다. 공공기관에서는 청년 채용 확대를 말하면서 내부 인력의 퇴직은 늦추는 모순이 생길 수 있다. 민간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경력직 중심 채용이나 자동화 투자로 대응할 수 있다. 그 결과가 다시 청년에게 돌아간다면 정년 연장은 세대 통합이 아니라 갈등을 법으로 굳히는 일이 된다. 이미 60세 정년 의무화 이후에도 비슷한 경고가 나왔다. 고령층 고용은 늘었지만 청년층 고용이 줄었다는 분석이 있었다. 물론 고령자와 청년이 늘 같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 정원이 제한된 일자리, 승진 사다리가 있는 일자리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위쪽의 체류 기간이 늘어나면 아래쪽의 진입과 이동은 늦어진다. 노동계가 이 대목을 불편해한다고 해서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청년 일자리 없는 정년 연장은 미봉이다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면 그 방식은 훨씬 정교해야 한다. 연금 수급 연령과 정년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일률적 65세 정년 의무화가 유일한 답일 수는 없다. 퇴직 후 재고용, 계속고용, 시간제 전환, 직무 전환, 임금 조정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 고령층에게 일할 기회를 주되 기업의 부담을 조정하고, 청년에게는 채용 통로를 남겨야 한다. 어느 한쪽의 고통을 다른 한쪽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버틸 수 없다. 임금체계 개편도 피할 수 없다. 연공급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정년만 늘리면 기업 부담은 커지고 청년 채용 여력은 줄어든다. 고령 근로자의 숙련을 인정하되 직무와 성과, 근로시간에 맞는 임금 조정이 병행돼야 한다. 노동계가 임금체계 개편을 무조건 공격으로만 받아들이면 정년 연장 논의는 국민적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정년은 늘리고 임금체계는 그대로 두자는 주장은 결국 비용 부담을 기업과 청년에게 넘기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 청년 채용을 지키는 장치도 필요하다. 정년 연장 혜택을 받는 기업에는 신규 채용 유지 의무나 청년 채용 확대 유인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공공기관이 청년 채용 확대를 말하면서 정작 내부 정년 연장으로 신규 채용 여력을 줄인다면 청년들은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청년 일자리를 줄이지 않는 정년 연장이어야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 정년 연장 논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한쪽의 고통만 말하는 것이다. 고령층의 소득 공백만 말하면 청년의 고용 공백이 지워진다. 청년의 분노만 말하면 은퇴자의 생계 불안이 가려진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이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입법 논의는 표 계산과 조직의 압력에 흔들리기 쉽다. 고령층 유권자는 많고, 조직 노동은 목소리가 크다. 반면 청년 구직자는 흩어져 있고, 아직 직장 안의 교섭권도 없다. 국회가 누구의 목소리를 더 크게 들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정년 연장 논의는 더 엄격해야 한다. 강한 조직을 가진 노동계의 요구가 곧 사회적 약자의 요구로 등치돼서는 안 된다. 노동시장의 약자는 안정된 대기업 정규직만이 아니다. 취업준비생, 계약직 청년, 중소기업 근로자, 경력 단절자, 플랫폼 노동자도 노동시장 안팎의 약자다. 정년 연장 입법이 이들의 몫을 줄이는 방식으로 설계된다면 그 법은 보호가 아니라 배제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노동계가 진정으로 일할 권리를 말하려면 청년의 일할 권리도 함께 말해야 한다. 60대의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대의 채용 공백을 키우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면 그 부담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나눌 것인지까지 답해야 한다. 그 답 없이 국회에 법부터 만들라고 압박하는 것은 책임 있는 사회적 대화가 아니다. 청년들은 이미 많은 것을 양보해왔다. 더 오래 공부했고, 더 늦게 취업했고, 더 늦게 결혼하고, 더 늦게 집을 마련하거나 아예 포기했다. 그런데도 사회는 청년들에게 또 기다리라고 말한다. 앞선 세대가 더 오래 일해야 하니 너희의 차례는 조금 더 뒤로 밀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정책이라고 부르려면 최소한의 공정성이 있어야 한다. 청년 일자리 대책 없는 정년 연장 입법으로는 그 공정성을 설명할 수 없다.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숙제일 수 있다. 그러나 숙제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제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의 청구서에는 고령층의 생계 불안은 적혀 있지만 청년의 답답함은 충분히 적혀 있지 않다. 국회가 그 청구서를 그대로 받아 적는다면 청년들은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사회가 청년에게 요구하는 것은 참여가 아니라 대기이고, 공정이 아니라 순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정년 65세 논의가 세대 전쟁으로 가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질문을 바꿔야 한다. 몇 살까지 일하게 할 것인가만 물을 일이 아니다.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청년 채용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노동시장 밖의 고령층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임금체계는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정년 연장 입법은 개혁이 아니라 미봉이다. 고령층의 노후를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청년의 출발선을 더 뒤로 밀어서는 안 된다.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면 청년 일자리의 답까지 함께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빠진 입법은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힘 있는 쪽의 요구를 법률 문장으로 옮기는 일에 그칠 수 있다.
2026-06-17 07: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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