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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한컴 회장, 한글학회 특별 공로 표창…상금 전액 기부
[경제일보]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이 한글 기술 발전과 해외 한국어 교육 지원 등의 공로로 한글학회 특별 공로 표창을 받았다. 김 회장은 수상 상금 전액에 별도 기부금 1000만원을 더해 한글학회에 전달했다. 한컴그룹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한글학회 강당에서 열린 ‘580돌 한글날 경축 잔치’에서 표창을 받았다. 한글학회는 한컴을 통한 한글 기술 발전과 문화·예술 지원, 한글의 가치 확산에 기여한 활동을 평가했다. 기부금은 우리말과 한글의 연구·발전을 지원하는 취지로 전달됐다.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80돌이자 한글날 제정 100돌이다. 한글학회에 따르면 한글날은 1926년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제정됐다. 학회는 해마다 경축 행사를 열어 우리말과 한글의 교육·연구·보급에 힘쓴 이들의 공로를 기리고 있다. 김 회장의 지원 활동은 한글을 디지털 환경에서 쓰는 도구와 해외 교육 기반을 함께 마련하는 데 이어져 왔다. 한컴그룹은 2017년 세종학당재단과 협약을 맺은 뒤 전 세계 세종학당에 한컴오피스를 무상 지원해왔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 후원과 학습자 장학금 지원 등도 추진해왔다. 세종학당 전용서체 개발도 대표적인 사례다. 한컴그룹은 2021년 받은 제40회 세종문화상 상금을 서체 개발에 기부했고, 2022년 세종학당재단·윤디자인그룹과 개발·보급 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개발된 ‘세종학당체’는 현재 재단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제목체와 본문체 2종으로 구성됐으며, 한글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도 글자의 구조를 익힐 수 있도록 바탕체 형태로 설계됐다. 해외 학습자가 한글을 읽고 쓰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교육용 글꼴을 제공한 것이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는 활동도 이어왔다. 한컴은 사단법인 우리문화지킴이와 함께 ‘훈민정음 국보 1호 지정 서명운동’을 지원했다. 2014년 1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진행된 운동에는 11만8405명이 참여했으며, 서명과 변경 요청서는 당시 문화재청에 제출됐다. 김 회장은 훈민정음 해례본 쓰기 대회와 한글문화 행사 등도 지원해왔다. 한글학회는 이날 특별 공로 표창과 함께 최인영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여자중학교 교사, 서민정 부산대학교 언어정보학과 부교수, 주갑동 작가, 김현정 매일경제신문 어문기자에게 국어운동 공로 표창을 수여했다. 김 회장은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는 뜻깊은 해에 한글학회로부터 특별 공로 표창을 받게 돼 감사하다”며 “한글은 우리가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인 만큼, 이번 기부가 우리말과 한글의 연구와 발전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26-10-11 10:04:55
직지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 왜곡된 심사에 발 묶인 '보물'
[경제일보] 2017년 문화재위원회의 증도가자 보물 지정 부결 과정에서 판단에 영향을 미칠 핵심 조사자료가 빠지거나 다르게 보고된 사실이 감사원 조사에서 확인됐다. 당시 심사에 관여했던 전문가가 현재 국가유산위원회 동산문화유산분과에도 참여하고 있어 재검증의 공정성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 7일 본지가 입수한 감사원 조사자료와 국가유산청 자체감사 결과에 따르면 증도가자는 고려시대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는 데 사용됐다고 알려진 금속활자다. 실제 증도가 인쇄에 사용된 활자로 확인되면 제작 시기는 1239년 이전으로 올라간다.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1377년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선다. 다보성갤러리(회장 김종춘)는 2011년 10월 소장 금속활자 101점의 보물 지정을 신청했다. 문화재청은 약 6년에 걸쳐 조사한 뒤 2017년 4월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에서 지정안을 부결했다. 서체와 주조·조판 검증 결과를 비롯해 출처와 소장 경위가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 0.45㎝ 부족하다며 부결했는데 원보고서에는 최대 0.8㎝ 차이 감사 과정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된 부분은 조판 검증이다. 2017년 지정조사보고서에는 활자본과 이를 본떠 목판에 다시 새긴 번각본 사이에 크기 차이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비교 자료인 ‘속명의록’은 0.3~0.5㎝, ‘석보상절’은 0.8㎝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문화재위원회에 보고되는 과정에서는 내용이 달라졌다. 속명의록은 크기 차이가 없다는 취지로 설명됐고 석보상절의 0.8㎝ 차이는 보고에서 빠진 것으로 감사원 조사에서 파악됐다.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증도가자 활자를 해당 판면에 배열하면 약 0.45㎝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증도가를 찍은 활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원 조사보고서에는 번각 과정에서 이보다 큰 최대 0.8㎝의 크기 차이가 발생한 사례가 이미 기록돼 있었다. 부결 판단의 핵심 근거였던 0.45㎝보다 큰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자료가 심의위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셈이다. 통계청 자문을 적용한 재분석에서도 2017년과 다른 결론이 나왔다. 활자 뒷면 형태에 따라 나눈 홈형은 일반적인 통계분석에서 식자가 가능한 것으로 판단됐다. 홈날개형 역시 석보상절의 0.8㎝ 차이를 적용하면 식자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감사원 조사자료에는 기존의 ‘신청 활자로 증도가를 인출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증도가 인출이 가능했다’는 취지로 수정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 ‘사료됨’이 ‘확인됨’으로…조사 결과 전달 과정도 달라져 조판 수치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지정조사 자료의 주조 부분에는 상하로 나눈 목형으로는 주조가 불가능한 것으로 ‘사료됨’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 문화재청의 대외 자료에서는 같은 내용이 ‘주조가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됨’으로 바뀐 것으로 조사됐다. ‘사료됨’은 조사자의 판단이 포함된 표현이다. 반면 ‘확인됨’은 사실관계가 검증됐다는 의미가 강하다. 국가유산청이 올해 실시한 자체감사에서도 2017년 문화재위원회 보고 과정과 관련해 ‘왜곡 설명(치수 차이 등)’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 조사보고서와 실제 심의 과정에서 전달된 내용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는 문제가 국가유산청 내부 감사에서도 다시 지적된 것이다. 심사 과정에서 신청 대상이 아닌 유물이 부결 판단에 이용된 정황도 확인됐다. 보물 지정 신청 대상은 금속활자 101점이었지만 당시 문화재청은 다보성갤러리 소유가 아니었던 청동 초두와 수반 제출까지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이 유물들을 조사하지 못했다는 점은 신청 활자를 고려 금속활자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 근거 가운데 하나로 사용됐다. 신청 대상이 아닌 유물의 미제출이 신청 유물의 지정 부결 사유로 활용된 셈이다. ◆ 당시 심사 관여 전문위원 현재도 활동 과거 심의 과정의 문제점이 감사에서 드러났지만 당시 심사에 참여했던 인사가 현재도 국가유산위원회 동산문화유산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다. 재검증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국가유산위원회 동산문화유산분과 전문위원 가운데 정제규 전문위원은 2017년 증도가자 심사 과정에도 관여했던 인사다. 정 전문위원은 여러 차례 연속 전문위원으로 위촉돼 장기간 동산문화유산 분야의 심의와 조사에 참여해왔다. 현행 「국가유산위원회 규정」 제11조는 위원 또는 전문위원이 해당 안건에 관해 용역을 수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직접 관여한 경우 조사 또는 심의·의결에서 제척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정한 심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경우 당사자는 기피 신청을 할 수 있고 제척 사유에 해당하는 위원이나 전문위원은 스스로 회피해야 한다. 2017년 당시 심의자료의 핵심 수치와 보고 과정 자체가 다시 검증 대상에 오른 상황이다. 당시 판단 과정에 참여했던 인사가 이번 조사나 심의에도 관여할 경우 재검증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할 수 있다. 당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장으로 문화재위원회 심의 간사를 맡았던 황권순 현 국가유산청 자연유산국장도 과거 심의 과정과 연결돼 있다. 현재 증도가자 업무는 자연유산국 소관이 아니다. 다만 원 조사보고서와 문화재위원회 보고 내용이 달라진 경위를 밝히기 위해서는 당시 작성·검토·보고 과정에 관여한 인사들의 역할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 “장사하는 사람이 갖고 있으면 값 뛰어”…심사 기준 논란 증도가자 심사를 둘러싼 논란은 유물 자체에 대한 과학적 검증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 2013년 7월 당시 한 문화재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증도가자 소장자가 고미술상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장사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게 아무리 좋다 해도 문화재 지정으로 값이 뛰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문화유산 지정은 유물의 역사적·학술적 가치와 진위 등을 토대로 판단하는 절차다. 소장자의 직업이나 지정 이후 가격 상승 가능성이 당시 심사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재검증 과정에서 살펴볼 대목이다. 김종춘 다보성갤러리 회장은 “당시 일부 인사들은 유물 자체보다 소장자가 고미술상이라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며 “그런 인식과 인적 관계가 이후 증도가자 심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 회장 “과거 인적 관계와 외부 개입 의혹도 조사해야” 김 회장은 당시 증도가자 심사에 관여했던 박문열 전 동산문화재분과위원장과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의 관계를 둘러싼 의혹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두 사람의 관계가 실제 증도가자 조사와 심사에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증도가자를 가짜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김 회장은 “과거 관련자가 ‘60억원을 줄 테니 증도가자를 가짜로 만들라’는 취지의 제안을 받았다는 양심선언을 했다”며 “이후 모방 활자까지 제작됐다는 내용도 공개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일부 언론도 이 문제를 여러 차례 취재했다”며 “증도가자를 처음부터 가짜로 몰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는지 국가 차원에서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오랫동안 같은 인사들이 문화재 조사와 심의에 반복적으로 참여해 온 점도 문제로 들었다. 김 회장은 “이른바 ‘문화재 마피아’라고 불릴 만큼 폐쇄적인 인맥이 장기간 이어져 왔다”며 “2017년 판단의 핵심 근거가 감사원 조사에서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당시 판단에 관여했던 인사들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제대로 된 재검증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 감사에서 문제 드러났는데 재검증은 다시 지연 국가유산청은 올해 자체감사를 거쳐 전국에 흩어진 증도가자 계열 금속활자를 한꺼번에 조사하는 일괄공모 방침을 마련했다. 기초조사와 과학·인문조사, 지정조사, 종합평가를 거쳐 국가유산 지정 문제를 다시 판단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지난 8월 13일 국가유산위원회 동산문화유산분과 회의를 거쳐 9월 중 일괄공모를 실시하기로 했지만 10월 초까지 구체적인 공모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조사 기간과 참여 전문가 등 재검증의 핵심 절차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그 사이 중국 일부 학자들은 증도가자를 고려 금속활자가 아니라 송·원대 유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 제작 시기와 성격을 확정하지 못하는 동안 증도가자의 역사적 귀속을 중국 왕조와 연결하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증도가자가 13세기 고려 금속활자로 확인되면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보다 앞선 시기의 금속활자 실물이 된다. 한국 인쇄문화사는 물론 세계 인쇄사에서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2017년 부결 판단에 사용된 핵심 자료에서 누락과 왜곡 문제가 감사원 조사와 국가유산청 자체감사를 통해 드러난 만큼 향후 재검증에서는 당시 심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전문가의 참여 범위와 조사자료 공개 수준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이 일괄공모 방침을 마련한 가운데 16년째 이어진 증도가자 논란이 이번 재검증을 통해 어떤 결론에 이를지 주목된다. [아주경제 2026년 10월 08일자 14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10-08 06:00:00
증도가자 앞에서 누구의 이권을 따지고 있나
[경제일보] 국가유산청이 13일 고려시대 금속활자로 알려진 ‘증도가자’의 문화유산 지정 재심의 여부를 결정한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증도가자의 진위와 2017년 심사 과정을 다시 살펴보겠다고 밝힌 지 10개월 만이다. 증도가자가 진품으로 인정되면 우리나라 금속활자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1377년 인쇄된 직지보다 최소 138년 앞선 시기에 금속활자가 사용됐다는 사실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지가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라면 증도가자는 활자 자체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결론은 증거가 말하게 하면 된다. 진품이라는 근거가 충분하면 인정하고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기존 학설이나 전문가의 이해관계, 과거 심사의 체면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그런데 증도가자가 지난 16년 동안 겪어온 과정을 보면 그런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문이 남는다. 2010년 존재가 알려진 뒤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연대와 성분 분석이 진행됐고 문화재청이 발주한 연구도 이어졌다. 2014년 연구에서는 다보성갤러리 소장 활자 가운데 상당수가 ‘증도가’ 인출에 사용된 활자라는 결론이 나왔다. 처음 보물 지정 신청을 권유한 곳도 당시 문화재청이었다. 문화재청 관계자가 직접 소장자를 찾아가 지정 신청을 권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청이 들어온 뒤 심의에는 6년이 넘게 걸렸고 2017년에야 열린 문화재위원회에서 지정이 부결됐다. 따져야 할 것은 부결이라는 결론보다 그 과정이다. 당시 부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출처와 소장 경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장자는 일본에서 국내로 들어온 뒤 여러 사람을 거쳐 현재 소유자에게 넘어오기까지의 경위를 제시했다고 한다. 문화재 지정 신청 이후 만들어진 규정을 출처 판단에 적용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전래 유물 가운데 처음 발견된 장소와 소유 경위가 완벽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증도가자에만 유독 출처를 엄격하게 따졌다면 국가유산청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은 따로 있다. 당시 심사에 관여한 한 전문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개인이 소유한 물건을 보물로 지정해 값이 뛰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판단해야 할 사람이 소유자의 재산상 이익부터 걱정했다면 심사의 출발부터 잘못됐다. 보물 지정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소유자가 누구인지도, 지정 뒤 가격이 얼마가 되는지도 아니다. 그 유물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를 보는 것이 국가의 일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더 무거운 문제가 제기됐다. 2017년 심의를 담당했던 공무원이 활자 조판시험 결과를 보고하면서 중요한 내용을 누락하고 통계 분석을 잘못 적용해 결론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이 관련 제보를 조사한 뒤 국가유산청에 재검토를 권유했다는 내용도 국정감사 과정에서 공개됐다. 이 정도 문제가 제기됐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한다. 과학적 분석과 서지학적 근거를 다시 확인하고 기존 연구에 오류가 있었는지도 따져야 한다. 새로운 자료가 있다면 공개하고 최종 판단의 근거도 국민과 학계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내놓아야 한다. 그보다 먼저 정리할 일이 있다. 심사하는 사람이다. 2017년 심사에 관여했던 인사 가운데 일부가 지금도 국가유산위원회 관련 분과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당시 심의 실무를 맡았던 공무원도 국가유산청에 남아 있다. 과거 심사에 중대한 문제가 제기돼 다시 판단하는 자리라면 당시 판단에 관여했던 사람은 빠지는 것이 맞다. 공정성을 의심받을 사람이 다시 판단자로 들어오는 순간 재심의 의미부터 흔들린다. 법원에 제척과 기피, 회피 제도가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판단의 공정성을 믿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아예 재판에서 빠지도록 한다. 국가기관의 결정은 결과뿐 아니라 누가 어떤 절차로 결정했는지까지 신뢰를 얻어야 한다. 문화유산 심사라고 다를 까닭이 없다. 감사원 조사와 국정감사에서 과거 심사 과정의 문제까지 제기된 사안이다. 당시 관계자들이 다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이번에 어떤 결론을 내놓더라도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증도가자를 둘러싸고는 학계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오래 따라다녔다. 직지 연구로 명성을 쌓은 일부 전문가들이 증도가자가 인정될 경우 자신들의 연구 성과나 학계에서의 권위가 흔들리는 것을 우려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어떤 학자가 평생 직지를 연구했든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것이 학문이다. 기존 연구를 지키려고 새로운 자료를 밀어낸다면 학문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이 된다. 역사 앞에서 학자의 권위가 기득권이 돼서는 안 된다. 수십 년 동안 통설로 받아들여진 학설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바뀔 수 있다. 학문의 권위는 과거의 결론을 끝까지 지키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을 고칠 수 있을 때 생긴다. 공무원 조직의 체면도 역사보다 앞설 수 없다. 2017년 판단이 잘못됐다면 지금 고치면 된다. 잘못된 결론을 지키는 것이 조직의 체면을 세우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지키려고 역사적 판단까지 붙들고 있었느냐는 질문만 남긴다. 이 문제는 국익과도 맞닿아 있다. 증도가자가 실제 13세기 고려 금속활자라면 그 가치는 소장자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세계 인쇄문화사에서 얼마나 앞선 기술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우리 문화유산의 국제적 위상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 가능성이 있는 유물을 두고 개인의 이해관계와 학계의 체면부터 계산한다면 손해를 보는 쪽은 대한민국이다. 역사 앞에서 사익을 먼저 따지는 순간 국익은 뒷전으로 밀린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제 그 말을 절차로 보여줘야 한다. 과거 심사에 문제가 있었다면 당시 관계자를 빼고 새로운 전문가들에게 판단을 맡기면 된다. 누구의 이권도, 학문적 자존심도, 관료 조직의 체면도 걷어내야 한다. 남겨야 할 것은 증거와 사실뿐이다. 역사는 어느 학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느 공무원이 지켜야 할 과거의 결재 서류도 아니다. 증도가자가 진짜라면 대한민국의 역사로 인정하면 되고 아니라면 누구나 납득할 근거를 대면 된다. 국가유산청이 이번에 지켜야 할 것은 2017년의 결론이 아니다. 역사 앞에서 국가기관이 가져야 할 신뢰다.
2026-08-12 07: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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