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2017년 문화재위원회의 증도가자 보물 지정 부결 과정에서 판단에 영향을 미칠 핵심 조사자료가 빠지거나 다르게 보고된 사실이 감사원 조사에서 확인됐다. 당시 심사에 관여했던 전문가가 현재 국가유산위원회 동산문화유산분과에도 참여하고 있어 재검증의 공정성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
7일 본지가 입수한 감사원 조사자료와 국가유산청 자체감사 결과에 따르면 증도가자는 고려시대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는 데 사용됐다고 알려진 금속활자다. 실제 증도가 인쇄에 사용된 활자로 확인되면 제작 시기는 1239년 이전으로 올라간다.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1377년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선다.
다보성갤러리(회장 김종춘)는 2011년 10월 소장 금속활자 101점의 보물 지정을 신청했다. 문화재청은 약 6년에 걸쳐 조사한 뒤 2017년 4월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에서 지정안을 부결했다. 서체와 주조·조판 검증 결과를 비롯해 출처와 소장 경위가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 0.45㎝ 부족하다며 부결했는데 원보고서에는 최대 0.8㎝ 차이
감사 과정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된 부분은 조판 검증이다. 2017년 지정조사보고서에는 활자본과 이를 본떠 목판에 다시 새긴 번각본 사이에 크기 차이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비교 자료인 ‘속명의록’은 0.3~0.5㎝, ‘석보상절’은 0.8㎝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문화재위원회에 보고되는 과정에서는 내용이 달라졌다. 속명의록은 크기 차이가 없다는 취지로 설명됐고 석보상절의 0.8㎝ 차이는 보고에서 빠진 것으로 감사원 조사에서 파악됐다.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증도가자 활자를 해당 판면에 배열하면 약 0.45㎝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증도가를 찍은 활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원 조사보고서에는 번각 과정에서 이보다 큰 최대 0.8㎝의 크기 차이가 발생한 사례가 이미 기록돼 있었다.
부결 판단의 핵심 근거였던 0.45㎝보다 큰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자료가 심의위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셈이다.
통계청 자문을 적용한 재분석에서도 2017년과 다른 결론이 나왔다. 활자 뒷면 형태에 따라 나눈 홈형은 일반적인 통계분석에서 식자가 가능한 것으로 판단됐다. 홈날개형 역시 석보상절의 0.8㎝ 차이를 적용하면 식자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감사원 조사자료에는 기존의 ‘신청 활자로 증도가를 인출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증도가 인출이 가능했다’는 취지로 수정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 ‘사료됨’이 ‘확인됨’으로…조사 결과 전달 과정도 달라져
조판 수치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다. 지정조사 자료의 주조 부분에는 상하로 나눈 목형으로는 주조가 불가능한 것으로 ‘사료됨’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 문화재청의 대외 자료에서는 같은 내용이 ‘주조가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됨’으로 바뀐 것으로 조사됐다.
‘사료됨’은 조사자의 판단이 포함된 표현이다. 반면 ‘확인됨’은 사실관계가 검증됐다는 의미가 강하다.
국가유산청이 올해 실시한 자체감사에서도 2017년 문화재위원회 보고 과정과 관련해 ‘왜곡 설명(치수 차이 등)’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 조사보고서와 실제 심의 과정에서 전달된 내용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는 문제가 국가유산청 내부 감사에서도 다시 지적된 것이다.
심사 과정에서 신청 대상이 아닌 유물이 부결 판단에 이용된 정황도 확인됐다.
보물 지정 신청 대상은 금속활자 101점이었지만 당시 문화재청은 다보성갤러리 소유가 아니었던 청동 초두와 수반 제출까지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이 유물들을 조사하지 못했다는 점은 신청 활자를 고려 금속활자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 근거 가운데 하나로 사용됐다.
신청 대상이 아닌 유물의 미제출이 신청 유물의 지정 부결 사유로 활용된 셈이다.
◆ 당시 심사 관여 전문위원 현재도 활동
과거 심의 과정의 문제점이 감사에서 드러났지만 당시 심사에 참여했던 인사가 현재도 국가유산위원회 동산문화유산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다. 재검증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국가유산위원회 동산문화유산분과 전문위원 가운데 정제규 전문위원은 2017년 증도가자 심사 과정에도 관여했던 인사다. 정 전문위원은 여러 차례 연속 전문위원으로 위촉돼 장기간 동산문화유산 분야의 심의와 조사에 참여해왔다.
현행 「국가유산위원회 규정」 제11조는 위원 또는 전문위원이 해당 안건에 관해 용역을 수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직접 관여한 경우 조사 또는 심의·의결에서 제척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정한 심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경우 당사자는 기피 신청을 할 수 있고 제척 사유에 해당하는 위원이나 전문위원은 스스로 회피해야 한다.
2017년 당시 심의자료의 핵심 수치와 보고 과정 자체가 다시 검증 대상에 오른 상황이다. 당시 판단 과정에 참여했던 인사가 이번 조사나 심의에도 관여할 경우 재검증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할 수 있다.
당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장으로 문화재위원회 심의 간사를 맡았던 황권순 현 국가유산청 자연유산국장도 과거 심의 과정과 연결돼 있다. 현재 증도가자 업무는 자연유산국 소관이 아니다. 다만 원 조사보고서와 문화재위원회 보고 내용이 달라진 경위를 밝히기 위해서는 당시 작성·검토·보고 과정에 관여한 인사들의 역할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 “장사하는 사람이 갖고 있으면 값 뛰어”…심사 기준 논란
증도가자 심사를 둘러싼 논란은 유물 자체에 대한 과학적 검증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 2013년 7월 당시 한 문화재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증도가자 소장자가 고미술상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장사하는 사람이 갖고 있는 게 아무리 좋다 해도 문화재 지정으로 값이 뛰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문화유산 지정은 유물의 역사적·학술적 가치와 진위 등을 토대로 판단하는 절차다. 소장자의 직업이나 지정 이후 가격 상승 가능성이 당시 심사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재검증 과정에서 살펴볼 대목이다.
김종춘 다보성갤러리 회장은 “당시 일부 인사들은 유물 자체보다 소장자가 고미술상이라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며 “그런 인식과 인적 관계가 이후 증도가자 심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 회장 “과거 인적 관계와 외부 개입 의혹도 조사해야”
김 회장은 당시 증도가자 심사에 관여했던 박문열 전 동산문화재분과위원장과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의 관계를 둘러싼 의혹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두 사람의 관계가 실제 증도가자 조사와 심사에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증도가자를 가짜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김 회장은 “과거 관련자가 ‘60억원을 줄 테니 증도가자를 가짜로 만들라’는 취지의 제안을 받았다는 양심선언을 했다”며 “이후 모방 활자까지 제작됐다는 내용도 공개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일부 언론도 이 문제를 여러 차례 취재했다”며 “증도가자를 처음부터 가짜로 몰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는지 국가 차원에서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오랫동안 같은 인사들이 문화재 조사와 심의에 반복적으로 참여해 온 점도 문제로 들었다. 김 회장은 “이른바 ‘문화재 마피아’라고 불릴 만큼 폐쇄적인 인맥이 장기간 이어져 왔다”며 “2017년 판단의 핵심 근거가 감사원 조사에서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당시 판단에 관여했던 인사들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제대로 된 재검증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 감사에서 문제 드러났는데 재검증은 다시 지연
국가유산청은 올해 자체감사를 거쳐 전국에 흩어진 증도가자 계열 금속활자를 한꺼번에 조사하는 일괄공모 방침을 마련했다. 기초조사와 과학·인문조사, 지정조사, 종합평가를 거쳐 국가유산 지정 문제를 다시 판단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지난 8월 13일 국가유산위원회 동산문화유산분과 회의를 거쳐 9월 중 일괄공모를 실시하기로 했지만 10월 초까지 구체적인 공모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조사 기간과 참여 전문가 등 재검증의 핵심 절차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그 사이 중국 일부 학자들은 증도가자를 고려 금속활자가 아니라 송·원대 유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 제작 시기와 성격을 확정하지 못하는 동안 증도가자의 역사적 귀속을 중국 왕조와 연결하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증도가자가 13세기 고려 금속활자로 확인되면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보다 앞선 시기의 금속활자 실물이 된다. 한국 인쇄문화사는 물론 세계 인쇄사에서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2017년 부결 판단에 사용된 핵심 자료에서 누락과 왜곡 문제가 감사원 조사와 국가유산청 자체감사를 통해 드러난 만큼 향후 재검증에서는 당시 심의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전문가의 참여 범위와 조사자료 공개 수준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산청이 일괄공모 방침을 마련한 가운데 16년째 이어진 증도가자 논란이 이번 재검증을 통해 어떤 결론에 이를지 주목된다.
[아주경제 2026년 10월 08일자 14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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