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54건
-
-
경산 살인사건을 혐중의 불쏘시개로 삼아선 안 된다
[경제일보] 경북 경산에서 벌어진 중국인 여성 유학생 살인 사건은 잔혹하다. 경찰에 따르면 중국인 대학 강사 정모씨는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25세 중국인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경북과 경기 등 여러 곳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허위 실종신고를 하고 여장을 한 채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들고 이동하며 수사에 혼선을 주려 했다는 혐의도 있다. 경찰 수사에서 혐의가 입증된다면 죄질에 맞는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사건 보도에 붙은 댓글을 보면 정씨보다 중국을 먼저 문제 삼는 글이 적지 않다. ‘중국인은 원래 저렇다’는 말부터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 뒤 강력범죄가 늘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씨는 단체관광객으로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 국내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강사다. 이번 사건을 무비자 입국과 연결하는 것부터 사실과 맞지 않는다. 사건의 실체를 따지기도 전에 국적부터 앞세우는 반응이 적지 않다는 점은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경제 보복과 한한령, 서해 불법조업, 김치와 한복을 둘러싼 논란, 일부 중국인의 기초질서 위반까지 불만이 쌓여왔다. 중국 정부의 정책이 우리 국익과 충돌한다면 비판해야 하고 불법행위에는 법대로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 대한 불만과 중국인 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를 섞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살인 혐의를 받는 사람이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중국인 전체의 성향을 말하는 것은 사실에도 맞지 않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국가에 대한 반감이 개인의 범죄를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23년 체류인구 대비 피의자 비율은 내국인이 2.36%, 중국인이 1.65%였다. 8대 강력범죄에서도 내국인은 인구 대비 약 0.047%, 중국인은 0.031%였다. 중국인 피의자의 절대 숫자가 외국인 가운데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체류 외국인 가운데 중국인이 가장 많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한국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흉악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정유정은 과외 앱을 통해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했고, 고유정 사건과 연쇄살인 사건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 사건을 근거로 한국인 전체가 잔혹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범죄자의 국적이 한국이라는 사실이 한국인의 성향을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피의자와 피해자의 국적을 함께 놓고 보면 혐중으로 번지는 반응이 얼마나 거친 일반화인지 드러난다. 피의자 정씨만 중국인이 아니다. 살해당한 25세 여성도 중국인이다. ‘중국인은 원래 저렇다’는 댓글 속에서는 정씨의 중국 국적은 크게 남고 피해자의 중국 국적은 사라진다. 같은 나라에서 온 한 사람은 살인과 시체손괴 혐의를 받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타국에서 목숨을 잃었다. 두 사람을 중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같은 범주에 넣으면 피해자에게까지 범죄자의 그림자를 씌우게 된다. 국적 하나로 피의자와 피해자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보는 것은 어느 나라 여권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했느냐다. 정씨가 피해자를 왜 살해했는지, 범행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과정과 범행 뒤 행적이 수사와 재판의 대상이다. 그 사실을 밝혀 정씨에게 책임을 물으면 된다. 형사책임은 행위자에게 묻는다. 가족이라고 대신 처벌하지 않고 같은 지역 출신이라고 책임을 나누지도 않는다. 같은 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함께 물을 수도 없다. 현실의 중국인은 범죄 기사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 대학에서 공부하고 기업과 공장에서 일하며 한국 사람들과 매일 부딪쳐 살아간다. 중국은 우리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고 양국의 기업과 사람도 경제와 생활 곳곳에서 이미 깊게 얽혀 있다.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중국인의 대부분은 경찰서나 법정이 아니라 학교와 직장, 시장과 거리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중국 정부가 잘못하면 중국 정부를 비판하면 되고 중국인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한국 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국가에 대한 비판과 개인의 범죄는 그렇게 나눠서 볼 일이다. 5000만명이 사는 한국에서도 흉악범은 나온다. 인구가 훨씬 많은 중국에서 흉악범이 나왔다고 중국인 전체의 성향으로 돌릴 일은 아니다. 해외에서 한국인 한 명이 흉악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한국인 전체를 같은 눈으로 본다면 우리도 불쾌할 수밖에 없다. 정씨의 혐의는 정씨에게 물으면 된다. 살인 혐의도,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했다는 혐의도, 수사를 속이려 했다는 혐의도 정씨의 몫이다. 그 범죄 혐의를 중국인 전체의 죄로 돌려 혐중의 불쏘시개로 삼을 일은 아니다.
2026-09-01 08:34:40
-
-
-
-
-
-
-
미래대응기금, 200조보다 중요한 것은 재정의 원칙이다
[경제일보] 국가 재정은 돈을 많이 쓰는 기술이 아니라 꼭 필요한 곳에 제때 쓰는 지혜다. 정부가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초과 세수를 활용해 약 200조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조성하고 인공지능(AI) 대전환과 성장동력 육성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것은 시대적 문제의식만큼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세계 경제가 AI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지금, 대한민국 역시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를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설명하는 미래대응기금의 핵심은 분명하다. 호황기에 더 걷힌 세금을 흥청망청 소비하지 않고 적립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세수가 풍부한 해에는 저축하고 경기 침체나 국가적 전환기에 활용하는 ‘재정 저수지’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재정의 경기 순응성을 줄이고 중장기 성장 기반을 확충하겠다는 취지는 타당하다. 그러나 좋은 취지와 좋은 제도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우리 경제가 수없이 경험했듯 재정은 한번 원칙을 잃으면 가장 손쉬운 정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2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투명하게 그 돈을 운용하느냐이다. 국민의 세금은 정부의 재량 자금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적 자산이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초과 세수라는 재원의 성격부터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슈퍼사이클은 영원하지 않다. 국제 경기와 수출 환경에 따라 세수는 언제든 급증하거나 급감할 수 있다. 일시적인 호황에서 얻은 재원을 영구적인 지출 구조로 연결한다면 미래에는 오히려 재정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래대응기금은 상시적인 복지 확대나 선심성 사업의 재원이 아니라 국가의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에 한정돼야 한다. AI라고 해서 모두 미래 투자인 것도 아니다. 이름만 첨단일 뿐 경제적 효과가 불투명한 사업도 얼마든지 있다. 정부가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 한다면 투자 대상은 정치적 인기나 지역 안배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이라는 냉엄한 기준으로 선정돼야 한다. AI 인프라와 차세대 반도체, 전력망과 데이터센터, 핵심 원천기술, 과학기술 인재 양성처럼 민간의 투자만으로는 부족하지만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미래대응기금은 ‘지원금’이 아니라 ‘투자금’이어야 한다. 기금 운용에 대한 국회 통제와 국민 공개도 철저해야 한다. 기금은 예산보다 탄력적인 집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통제 장치는 더욱 엄격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은 국회의 사전 심의를 거치고 투자 목적과 집행 내역, 성과 평가를 정기적으로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독립적인 재정평가기구가 경제적 효과와 정책 효율성을 검증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성과가 없는 사업은 과감히 중단하고 재원을 다른 분야로 재배분하는 원칙도 분명히 해야 한다. 재정 운용의 원칙은 어렵지 않다. 오늘의 호황이 내일의 의무 지출이 돼서는 안 되며, 소비보다 미래의 부가가치를 만드는 곳에 우선 배분해야 한다. 특정 지역이나 산업, 세력을 위한 정치적 배분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성장 기회를 넓혀야 한다. 모든 재정 지출에는 분명한 목표와 측정 가능한 성과가 뒤따라야 한다. 대한민국의 잠재성장률은 저출산과 고령화, 노동생산성 정체, 산업 전환이라는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돈의 절대 규모가 아니라 돈의 질에 있다. 200조 원을 쓰고도 성장률이 제자리라면 그것은 역사상 가장 비싼 실패가 될 것이다. 반대로 200조 원 가운데 단 한 푼이라도 국가의 기술 경쟁력과 인재 역량, 혁신 생태계를 실질적으로 높인다면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값진 자산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을 ‘재정 저수지’라고 부른다. 저수지는 물을 가두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뭄과 홍수에 대비해 생명을 살리는 데 존재한다. 미래대응기금 역시 정권의 정치적 필요를 채우는 저수지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지키는 저수지가 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200조 원이라는 숫자가 아니다. 그 돈을 어떤 원칙으로 모으고, 어디에 투자하며,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실패했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다. 재정의 기본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투명하고 절제된 운용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신뢰 위에서만 AI 대전환과 잠재성장률 반등이라는 거대한 국가 목표도 현실이 될 수 있다.
2026-08-27 09:55:56
-
-
롯데바이오로직스, 송도 1공장 녹색건축 '우수등급' 획득 外
[경제일보]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송도 바이오 캠퍼스 제1공장이 국가 공인 녹색건축인증(G-SEED) 우수등급을 획득했다고 25일 밝혔다. 녹색건축인증은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운영하는 국가 인증제도다. 건축물의 설계와 시공부터 유지관리까지 전 과정에서 에너지·자원 절약과 오염물질 저감, 실내환경 등을 평가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토지이용·교통, 에너지·환경오염, 재료·자원, 물 순환 관리, 유지관리, 생태환경 등 7개 분야에서 평가를 받았다. 회사는 송도 1공장 설계 단계부터 친환경 건축 요소를 반영하고 우수등급 획득을 목표로 관리해왔다. 건설 과정에서도 친환경 자재와 에너지 효율 설비를 적용했다. 이번 인증으로 글로벌 제약사들이 요구하는 지속가능성 기준에 대응할 기반도 확보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향후 조성할 생산시설에도 친환경 건축 원칙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송도 1공장은 생산 역량과 품질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산 환경을 고려해 구축했다”며 “친환경 생산 인프라를 확대해 글로벌 고객사의 요구에 대응하고 CDMO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동국제약, 약국 전용 수분크림 ‘페이셜리페어크림 라이트’ 출시 동국제약이 약국 전용 더마 리페어 브랜드 ‘마데카파마시아’의 제품군을 확대한다. 동국제약은 수분감과 흡수력을 높인 고기능성 수분크림 ‘테카플러스포뮬러 페이셜리페어크림 라이트’를 출시했다고 25일 밝혔다. 신제품은 기존 ‘페이셜리페어크림’의 핵심 성분인 고농도 센텔라정량추출물(TECA), 덱스판테놀, 아데노신을 유지하면서 PDRN을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 제품보다 수분감과 흡수력을 높여 산뜻한 사용감을 구현했다. 인체적용시험에서는 1회 사용 후 피부 속 수분량이 15% 이상 증가했으며 보습 효과가 48시간 후에도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끈적임이 적고 흡수가 빠른 제형으로 수분 부족형 지성 피부와 여름철 사용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마데카파마시아는 동국제약의 피부과학 연구 노하우를 기반으로 한 더마 리페어 브랜드다. 현재 전국 약 6000개 약국에 입점해 있으며 페이셜리페어크림과 멜라터치 크림, 핸드 우레아 크림, 컴포트 선크림, PDRN 농축 앰플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동국제약 관계자는 “고농도·고순도의 성분 조합을 유지하면서 산뜻한 사용감과 보습을 원하는 소비자 수요를 반영했다”며 “약국에서 다양한 피부 고민에 맞는 제품을 접할 수 있도록 제품과 유통 접점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HLB제넥스, 비타푸드 아시아 참가…SOD 효소 ‘소디자임’ 알린다 특수 효소·바이오 소재 전문기업 HLB제넥스가 독자 효소 브랜드 ‘소디자임(SODyZYM)’을 앞세워 동남아 기능성 소재 시장 공략에 나선다. HLB제넥스는 9월 2일부터 4일까지 태국 방콕 퀸 시리킷 국립 컨벤션 센터(QSNCC)에서 열리는 ‘비타푸드 아시아 2026’에 참가한다고 25일 밝혔다. 비타푸드 아시아는 건강기능식품과 기능성 식음료, 건강 소재 기업들이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B2B 전시회다. 올해는 건강수명과 영양을 주제로 기능성 원료와 건강한 노화 관련 기술이 소개된다. HLB제넥스는 이번 전시에서 대표 효소 원료 브랜드 소디자임을 집중적으로 알릴 예정이다. 소디자임은 항산화 효소인 SOD(Superoxide Dismutase)를 기반으로 한 기능성 원료로 국내 최초 자연 미생물 유래 SOD 효소를 활용한다. 회사는 독자적인 원료 제조 역량과 특허 기술을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 태국 등 동남아 시장에 소디자임을 공급하고 있으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전시 기간에는 기존 고객사와 협력을 강화하고 신규 거래선을 발굴한다. 글로벌 파트너사와의 협력 확대를 통해 소디자임의 해외 공급처를 늘리는 데도 집중할 예정이다. 아울러 주요 컨퍼런스에 참석해 기능성 소재와 이너뷰티, AI 기반 제품 개발 등 시장 동향과 아시아 주요국의 건강기능식품 규제 변화를 파악하고 향후 연구개발에 활용할 방침이다. HLB제넥스 관계자는 “소디자임의 기술 경쟁력을 글로벌 시장에 알리고 기능성 효소 원료의 해외 사업 확대를 구체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자체 개발·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제품군을 확대하고 글로벌 사업 성과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2026-08-25 10:44:28
-
카레 한 봉지에서 식탁 전체로…3분으로 바꾼 한 끼, 오뚜기의 57년 '간편화'
[경제일보] 1969년 5월 5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작은 공장에서 오뚜기 분말카레가 첫선을 보였다. 고(故)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이 설립한 풍림상사의 첫 제품이었다. 당시 국내 소비자에게 카레는 낯선 음식에 가까웠다. 오뚜기는 강황·고추·후추 등 원료를 배합하고 한국인이 즐기는 매콤한 맛을 더해 밥과 어울리는 가정식으로 만들었다. 5인분짜리 분말카레로 시작한 회사는 57년이 지난 지금 라면과 즉석밥, 케첩·마요네스·소스, 냉동식품과 가정간편식(HMR)까지 아우르는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오뚜기의 57년을 관통하는 DNA는 '간편화와 대중화'다. 낯설거나 손이 많이 가던 음식을 누구나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으로 바꾸고, 이미 익숙해진 음식은 조리 시간과 과정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낯선 카레를 집밥으로…'3분'에 담긴 간편화 DNA 오뚜기의 출발점인 카레는 회사의 간편화 전략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카레는 국내 소비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었다. 오뚜기는 1969년 분말 즉석카레를 선보이며 이국적인 메뉴를 한국식 집밥으로 끌어들였다. 쌀과 함께 먹기 좋도록 맛을 조정하고 매운맛을 살린 데 이어 TV 광고를 통해 조리법과 먹는 방식을 알렸다. 일부가 즐기던 카레를 누구나 집에서 만들어 먹는 한 끼로 대중화한 것이다. 제품은 조리 편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1981년에는 국내 최초 레토르트 형태의 '3분카레'를 선보였다. 직접 재료를 볶고 카레가루를 풀어 끓이던 음식이 봉지째 데우기만 하면 완성되는 한 끼로 바뀌었다. 오뚜기는 3분요리를 국내 가정간편식 시장의 시작점으로 설명한다. '3분'이라는 이름은 오뚜기의 경쟁력을 압축한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품의 재료 구성보다 한 끼를 빠르게 완성하는 편의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식품과 함께 소비자의 시간을 상품화한 셈이다. 카레는 시대별 식생활 변화도 흡수했다. 2003년에는 강황 함량을 높인 백세카레를 내놨고 2009년에는 물에 잘 풀리는 과립형 카레를 도입했다. 이후 렌틸콩카레와 3일 숙성카레 등으로 제품을 세분화하며 건강과 맛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했다. 오뚜기의 간편화는 카레에 머물지 않았다. 1971년 국내 최초 토마토케첩을, 이듬해에는 자체 기술로 개발한 마요네스를 선보였다. 요리할 때 직접 맛을 내거나 소스를 만들어야 했던 과정을 완제품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카레가 메뉴를 간편하게 했다면 케첩과 마요네스는 맛내기의 수고를 덜어준 제품이었다. 식초와 참기름, 각종 양념과 소스로 제품군이 넓어지면서 오뚜기는 완성된 음식뿐 아니라 조리 과정 곳곳으로 들어갔다. 냉장고와 찬장을 열었을 때 서로 다른 용도의 오뚜기 제품 여러 개가 동시에 나올 수 있는 사업구조가 만들어졌다. 카레서 라면·밥·소스로…한 끼 식탁 곳곳에 자리 잡다 두 번째 변곡점은 라면이었다. 오뚜기는 1988년 진라면을 선보이며 라면 시장에 진출했다. 순한맛과 매운맛을 동시에 출시해 소비자의 매운맛 선호를 나눠 공략했다. 이후 참깨라면과 열라면, 진짬뽕, 컵누들 등으로 제품군을 넓혔다. 2026년에는 기존 순한맛과 매운맛 사이의 수요를 겨냥한 '진라면 약간매운맛'을 봉지면에 이어 컵·용기면으로 확대했다. 라면까지 더해지면서 오뚜기는 반찬과 조미료를 공급하는 기업에서 소비자의 한 끼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식품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후 즉석밥과 컵밥, 냉동식품, 국·탕·찌개류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등 한 끼 준비에 필요한 조리 과정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때문에 오뚜기의 제품 포트폴리오는 하나의 초대형 브랜드보다 식탁 곳곳에 제품을 배치하는 구조에 가깝다. 카레를 만들 때도, 라면을 끓일 때도, 볶음밥에 케첩을 넣을 때도, 샐러드에 마요네스를 곁들일 때도 소비자와 만난다. 특정 제품 하나의 흥행에 의존하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오뚜기는 카레·케첩·마요네스 등 여러 품목에서 장기간 시장 선두를 유지해왔다. 국내 분말카레 시장에서는 2024년 기준 80%대 중반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를 이어갔다. 간편화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직접 만들던 음식을 제품으로 대신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같은 간편식 안에서도 맛과 영양, 용량 등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세분화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와 간소화된 집밥 문화 속에서 한 끼를 완전히 대신하는 간편식뿐 아니라 요리의 일부를 쉽게 만들어주는 소스와 반조리 제품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소비자가 조리 전 과정을 직접 하기보다 원하는 단계만 맡고 나머지는 제품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오뚜기는 카레와 소스, 면, 밥, 냉동식품까지 폭넓은 제품군을 갖추고 있어 이런 식생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특정 유행을 한 제품에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식사 준비 과정 전반에 걸쳐 새로운 소비 흐름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다만 넓은 제품 포트폴리오는 관리 효율 측면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품목이 늘어날수록 원재료 조달부터 생산, 재고, 유통까지 운영 복잡성이 커지고 유사 제품 간 수요가 겹칠 가능성도 높아진다. 신제품 확대와 함께 경쟁력이 낮은 제품을 정리하고 브랜드별 역할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 생산·일본 판매·울산 물류…해외사업 기반 넓힌다 오뚜기의 가장 큰 숙제는 해외다. 국내에서는 카레·라면·조미식품·소스·즉석식품 등으로 촘촘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했지만 전체 사업에서 해외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낮다. 오뚜기의 2026년 상반기 연결 매출은 1조899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046억원으로 2.0% 늘었다. 해외 매출은 2205억원으로 12.3% 증가했으며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1.6%로 0.8%포인트 상승했다. 여전히 전체 매출의 약 88%를 국내에서 올리는 구조다. 최근 오뚜기가 해외 생산과 판매, 물류망을 동시에 손보는 이유다. 오뚜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미라다에 북미 첫 현지 생산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2023년 미국 생산법인 오뚜기푸드아메리카를 설립한 데 이어 현지 생산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공장을 2027년 하반기 완공하고 2028년 상반기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수출 중심의 해외사업에서 나아가 현지에서 직접 생산·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려는 전략이다. 일본에도 새로운 해외 거점을 마련했다. 오뚜기는 지난 5월 15일 도쿄에 현지 판매법인을 설립했으며 오는 9월 이후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라면류를 주력으로 K-소스와 참기름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종합식품 포트폴리오를 일본 시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수출을 뒷받침할 물류 인프라도 확충했다. 오뚜기는 지난 6월 울산 삼남에 최대 9980팔레트를 보관할 수 있는 '삼남 글로벌 로지스틱스 센터'를 완공했다. 입출고와 피킹 등 물류 전 과정에 최적화된 설계를 적용하고 창고관리시스템(WMS)과 창고제어시스템(WCS) 등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증가하는 수출 물량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OTOKI'로 세계 식탁 공략…다품목 경쟁력 글로벌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브랜드 정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오뚜기는 2024년부터 기존 영문 표기 'OTTOGI' 대신 'OTOKI'를 사용하기 시작한 데 이어 지난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영문 상호를 'OTOKI CORPORATION'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처리했다. 해외 소비자가 오뚜기라는 이름을 보다 쉽게 인지하고 발음할 수 있도록 표기를 직관적으로 바꾼 것이다. 제품과 패키지에도 'OTOKI'를 적용하며 진라면뿐 아니라 소스·참기름·간편식 등 다양한 제품을 하나의 브랜드 아래 알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뚜기는 2030년 글로벌 매출 1조1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해외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에서 구축한 다품목 경쟁력을 해외에서도 재현할 수 있을지는 중요한 변수다. 국내 소비자에게 오뚜기는 카레와 라면, 케첩, 마요네스, 참기름 등 여러 제품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종합식품 브랜드다. 반면 해외에서는 진라면을 비롯한 개별 제품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단계에 있다. 국내에서 수십 년에 걸쳐 쌓은 브랜드 경험을 해외 소비자에게도 확장하려면 국가별 식문화와 유통환경에 맞춘 현지화가 필요하다. 경쟁사와 비교하면 해외사업 확대의 필요성은 더욱 뚜렷하다. K라면 열풍을 타고 해외사업을 빠르게 키운 식품기업들과 달리 오뚜기의 올해 상반기 해외 매출 비중은 11.6%다. 해외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2.3% 늘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매출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내수 성장 둔화에 더해 고환율과 원부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성 부담이 이어지는 만큼 해외사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울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카레와 3분요리로 시작된 오뚜기의 '간편화'는 이제 국내 식탁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에서 여러 제품군을 통해 '쉽고 빠른 한 끼'의 공식을 만들어냈다면 앞으로는 이를 해외 소비자의 식문화와 취향에 맞게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OTOKI'라는 하나의 브랜드 경쟁력으로 연결해 국내 식탁에서 쌓아온 존재감을 세계 식탁으로 넓혀가는 것이 향후 성장의 방향이다. 오뚜기 관계자는 "57년간 소비자의 식생활 변화를 제품 개발에 반영하며 쉽고 편리한 한 끼를 만드는 데 집중해왔다"며 "앞으로는 국내에서 쌓아온 '쉽고 빠르게 맛있는 한 끼' 경쟁력을 각국의 식문화와 소비자 수요에 맞게 현지화해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했다.
2026-08-24 15:41:26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