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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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9조 '슈퍼예산' 국회로…성장 투자냐, 재정 재량 확대냐
[경제일보] 정부가 820조9000억원 규모의 2027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국회 심사의 막이 오른다. 올해 본예산보다 93조원, 12.8%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총지출이 8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총수입이 200조원 넘게 늘어나는 특수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미래산업, 청년, 지방, 민생 분야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관전 포인트는 분명하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잠재성장률 반등과 양극화 완화를 위한 ‘성장 투자 예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국회 심사 과정에서는 162조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의 운용 방식, 100조원대 지출 구조조정의 타당성,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교부세 개편의 파장, 2030년 총지출 1000조원 시대의 재정 지속 가능성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부는 1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2027년 예산안’과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심의·의결했다. 내년도 총수입은 880조8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05조6000억원, 30.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세수입은 584조4000억원으로 49.8% 늘어날 것으로 봤다. 법인세와 소득세 증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입 개선이 수입 확대의 핵심 배경이다. 수입 증가 폭이 지출 증가 폭을 웃돌면서 재정지표는 일시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올해 본예산 기준 3.9%에서 내년 0.1%로 낮아지고, 국가채무비율도 51.6%에서 48.3%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확장 재정 기조가 이어지면서 2030년 총지출은 1005조2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첫 쟁점은 162조 미래대응기금 가장 큰 쟁점은 미래대응기금이다. 정부는 최근 10년 내국세 증가 추세선을 웃도는 추가세수를 기금에 적립해 경기 변동과 세수 급감에 대비하는 ‘재정 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내년 추가세수 162조3000억원을 기금에 적립하고, 이 가운데 45조4000억원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투입한다. 또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 활용하고,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비축한다. 정부는 세수가 급격히 줄거나 경기 대응이 필요할 때 추가경정예산 편성 없이 기금 변경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회 심사에서는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국회 통제 문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금은 일반 예산보다 행정부 재량이 크다.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의 주요 항목 지출 금액을 일정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하는 점도 논란거리다. 야당과 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수 호황기에 여윳돈이 생기면 우선 국가채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AI·반도체에 21조원…미래산업 투자 확대 정부는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 3대 메가프로젝트와 AI 분야에 21조3000억원을 배정했다. 올해 10조8000억원보다 97.2% 늘어난 규모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등 국가 전략 프로젝트를 집중 지원해 한국 경제의 차세대 성장축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2조6000억원 규모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회계’를 신설한다. 용인·평택 반도체 생산기지 조기 가동을 위한 기반시설 투자에 1000억원을 배정하고,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신속한 착공을 위해 1조5000억원을 지원한다. 반도체 산업단지 전력 공급을 위한 지중 송전망과 고압 변전소 등 전력 인프라에도 881억원을 투입한다. 서남권·충청권 산업단지 용수 공급과 수자원시설 확충에는 1277억원이 배정됐다. AI 분야에는 4조700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과 데이터, 인재를 집중 지원해 독자 AI 모델 고도화에 나선다. 이를 기반으로 ‘모두의 AI’를 개발해 대국민 서비스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미래 성장엔진 확충 예산은 올해 51조2000억원에서 내년 62조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우주항공, 바이오, 모빌리티, 원자력, 방산 등 10대 전략기술 분야에 15조원을 투입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등 미래선도기술 분야 연구 기반도 강화한다. 재생에너지 보급 예산은 9000억원에서 1조8000억원으로 두 배 늘어난다. ◆청년·지방 예산 급증…양극화 대응 전면에 청년 지원 예산은 올해 28조2000억원에서 내년 43조3000억원으로 53.5% 확대된다. 교육, 일자리, 자산, 주거, 혼인·출산·양육, 생활·문화 등 성장단계별 종합 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를 두 배로 늘리고, 대학생 6만 명에게 졸업 전 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인턴학기제를 추진한다. K-뉴딜아카데미 등 첨단 분야 직업훈련도 확대한다. 창업안심보험을 신설해 취업 초기 청년에게 보험료의 최대 80%를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자산 형성 지원도 강화된다. 출생부터 18세까지 연 최대 120만원을 지원하는 ‘우리아이자립펀드’를 신설하고, 청년미래적금은 소득요건을 없애 모든 청년이 가입할 수 있도록 개편한다. 주거 분야에서는 청년 공공임대주택 10만6000호를 공급하고, 비아파트 구매 시 월세 수준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도입한다. 혼인지원금, 출산지원금, 아동기본수당을 묶은 저출생 대응 3종 패키지도 신설한다. 지역균형발전 예산도 대폭 늘어난다. 국토 대전환과 지방주도 성장 예산은 올해 16조1000억원에서 내년 33조원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5극3특 성장엔진특별보조금을 신설해 앵커기업이 지방에 대규모 투자를 할 경우 설비투자액의 최대 50%를 지원할 계획이다. 지방 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지역 필수의료 지원 예산은 8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늘어난다. 2027년 신입생부터 지방 국립대에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민생 안정 예산은 10조원에서 15조4000억원으로 늘고,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의 장기연체 채무 특별조정에는 7000억원이 투입된다. ◆지출 구조조정 107조…교부금 개편 충돌 가능성 정부는 대규모 확장 재정과 함께 107조6000억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도 병행한다. 소규모·관행적 사업과 불요불급한 경상비, 저성과·유사·중복 사업을 줄여 38조6000억원을 절감하고, 의무지출 조정으로 69조원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국회 심사에서 특히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교부세 개편이다.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제 폐지로 32조5000억원을 줄이고, 교부세 산정 방식 개편으로 30조5000억원을 절감한다는 방침이다.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교육재정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는 게 정부 논리다. 그러나 교육계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지역 교육재정의 핵심 재원이고, 교부세는 지방정부의 재정 운영과 직결된다. 정부가 지방 투자 예산을 대폭 늘리면서도 기존 지방·교육 재정 배분 방식을 바꾸겠다고 한 만큼, 국회에서는 재원 배분의 형평성과 지역별 영향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국회 심사 본격화…12월 2일 법정 시한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인 9월 3일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 본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예산안을 확정한다.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하는 법정 시한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이다. 이번 예산안은 반도체 호황이라는 특수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성장과 분배, 미래 투자와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정부는 적극 재정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양극화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내년도 적극적인 재정 투자를 통해 V자형 경제 회복을 보다 공고히 견인하고, 성장주도형 재정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회에서는 ‘슈퍼예산’의 방향과 재정 운용 방식에 대한 검증이 불가피하다. 820조9000억원이라는 지출 규모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 어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느냐다. AI·반도체·청년·지방 투자처럼 미래 성장과 사회 구조 개선에 필요한 예산은 힘을 받을 수 있지만, 미래대응기금의 행정부 재량 확대와 지방교육재정·교부세 개편은 치열한 공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2027년도 예산안 심사는 정부가 내세운 ‘성장 투자’ 논리가 국회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얻느냐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낸 일시적 세수 여력을 미래 성장의 마중물로 쓸 것인지, 재정 건전성과 국회 통제를 우선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기국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6-09-01 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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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전'도 좋다, 대통령이 모든 길을 뚫을 순 없다
[경제일보] 대통령이 다시 기업들의 투자 일정표를 펼쳐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메가프로젝트’ 제2차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한 대형 투자사업의 진행 상황을 직접 챙겼다. 지난달 첫 회의를 연 지 한 달여 만이다. 광주 군공항 이전에서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전력과 용수 공급, 각종 인허가와 규제 개선까지 대통령 앞에 올라왔다. 이 대통령은 “속도전을 넘어서 전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세계 산업전쟁의 시계에 한국 행정의 느린 걸음을 맞출 수 없다는 주문일 것이다. 맞는 진단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피지컬AI에서 1~2년은 단순히 달력 몇 장이 넘어가는 시간이 아니다. 기술 세대가 바뀌고 고객사가 공급망을 다시 짜고, 경쟁국이 새로운 공장을 먼저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기업이 수십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는데 부지와 전력, 용수, 환경영향평가를 놓고 정부 부처를 몇 년씩 오가게 한다면 국가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특별법’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각종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전력·용수·교통 등 기반시설을 함께 구축하며, 여러 부처에 흩어진 사안을 범정부 차원에서 신속하게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광주 군공항의 기능을 조기에 분산 배치해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을 앞당기고, 필요한 전력도 사업 일정에 맞춰 공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충청권과 영남권에서도 수백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가 예정돼 있다. 대통령이 나서자 오래 얽혀 있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기업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런 일이라면 대통령이 몇 번이고 회의를 열어도 좋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박수를 치고 끝내기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일이 움직이는가.’ 군공항 이전 시점부터 산업단지 착공, 송전망과 용수 공급까지 대통령이 일일이 일정표를 확인해야 비로소 부처가 움직인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추진력을 보여주는 장면인 동시에 우리 행정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처음 길을 뚫는 것은 필요하다. 군과 지방자치단체, 여러 정부 부처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수십 년간 뒤엉킨 사업이라면 최고 책임자의 결단 없이는 첫 삽을 뜨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누구도 책임지고 먼저 움직이지 못하는 사안에서 대통령이 “이 방향으로 가라”고 정리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할이다. 대통령이 첫 문을 열었다면 두 번째 문부터는 장관들이 열어야 한다. 산업부 장관은 투자 일정을 책임지고, 국토·환경 행정은 부지와 교통망, 환경과 용수를 맡아야 한다. 전력 당국은 송전망의 완공 시점을 책임져야 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을 설득하고 정주 여건을 갖추는 일을 자신의 이름으로 해내야 한다. 약속한 날짜를 지키지 못했다면 왜 늦었는지 설명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책임도 져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행정이다. 한국 행정의 고질적인 문제는 책임자가 없어서라기보다 책임이 너무 잘게 쪼개져 있다는 데 있다. 대형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산업·국토·환경·전력·지방행정이 모두 관여한다. 하지만 각 기관은 자기 업무만 처리하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산단 지정에는 문제가 없고, 환경 절차에도 문제가 없고, 전력 공급도 규정대로 검토했다고 한다. 모든 기관이 자기 몫을 했다는 데 정작 공장 착공은 늦어진다. 기업 눈에는 정부가 여러 개가 아니다. 하나다. 이 단순한 상식을 행정이 자주 잊는다. 기업인은 어느 부처의 어느 과가 무엇을 맡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공장을 지을 수 있는가”라는 한 가지 답을 원한다. 하지만 그 답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니 결국 대통령 앞까지 사안이 올라간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리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그동안 “어렵다”고 하던 사안에 대안이 붙고, “검토 중”이던 사업에 날짜가 생긴다. 법이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니다. 책임지고 결정할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 직할 행정’의 효용과 위험이 함께 있다. 초기에는 빠르다. 강력한 정치적 권위가 부처의 칸막이와 오래된 이해관계를 단숨에 넘어설 수 있다. 이런 방식이 일상화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사업은 빨리 가고, 대통령의 회의 안건에 올라가지 못한 사업은 다시 평소의 속도로 돌아간다. 기업 입장에서 법과 제도보다 대통령의 관심 여부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된다면 그것은 좋은 투자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에게도 시간은 하루 24시간뿐이다. 반도체 공장의 물길과 송전선까지 대통령이 끝까지 챙기는 동안 외교와 안보, 복지와 교육, 저출생과 재정도 대통령을 기다린다. 메가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대통령실이 거대한 민원조정실이 되는 구조는 오래갈 수 없다. 이번 ‘전격전’의 진짜 성과는 특정 공장의 착공 시점을 몇 년 앞당기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챙기지 않아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정부를 만드는 데까지 가야 한다. 먼저 대형 전략투자에는 한 사람이 전체 일정을 책임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원스톱 창구’를 설치했다고 해놓고 접수만 한 곳에서 받은 뒤 서류가 다시 여러 기관을 순회한다면 간판만 바꾼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국가전략 프로젝트에는 총괄 책임자를 두고 부지·전력·용수·환경·교통 문제를 한꺼번에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행정 방식도 바꿔야 한다. 환경 검토가 끝난 뒤 전력을 논의하고, 전력 문제가 정리된 뒤 용수를 검토하는 식으로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서는 세계 산업경쟁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사업 초기부터 환경·전력·용수·교통 문제를 동시에 들여다봐야 한다. 이것은 환경 기준을 낮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절차를 없애는 것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주민의 권리와 노동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이유로 주민 의견을 건너뛰거나 노동·환경 기준을 일괄적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빨라 보일지 몰라도 갈등이 쌓이면 소송과 반발로 더 많은 시간을 잃는다. 빠른 정부는 절차를 무시하는 정부가 아니라, 필요한 절차를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는 정부다. 공무원이 결정을 피하지 않게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새로운 사업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성공하면 정치권의 성과가 되고 실패하면 실무자의 책임이 되는 구조에서는 누구라도 전례를 찾고 결재를 미룬다. 명백한 특혜나 위법이 아니라면 당시의 자료와 절차에 따라 내린 합리적인 정책 판단은 보호할 필요가 있다. 적극행정은 구호가 아니라 감사와 인사제도에서 시작해야 한다. ‘맹자’에는 “도선부족이위정 도법불능이자행(徒善不足以爲政 徒法不能以自行)”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뜻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고, 법도 스스로 실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사람이 움직여야 제도가 움직인다. 지금 메가프로젝트에 대통령의 힘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래 굳어버린 행정을 처음 움직이려면 최고 책임자의 결단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국가는 뛰어난 지도자 한 사람의 독촉에 오래 의존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의지를 제도로 바꾸고, 제도를 조직의 습관으로 만드는 나라가 강한 나라다. 대통령의 역할은 방향을 정하고 처음 막힌 길을 여는 데 있어야 한다. 그다음부터는 총리가 부처를 조정하고 장관이 일정에 책임을 지며, 지자체장이 현장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사업이 늦어질 때마다 대통령이 다시 등장하는 구조가 아니라, 대통령이 없어도 담당자가 움직이고 정해진 날짜에 답을 내놓는 구조가 필요하다. 메가프로젝트의 성적표도 그렇게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몇 차례 회의를 열었는지가 아니라 그 뒤 대통령이 회의를 열지 않아도 사업이 일정대로 진행됐는지를 봐야 한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에 장관이 문제를 풀었는지, 지자체장이 기업과 주민을 설득했는지, 담당 기관이 약속한 날짜 안에 결정을 내렸는지를 따져야 한다. ‘전격전’은 시작할 때 필요하다. 다만, 국가가 언제까지나 전격전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지금은 대통령이 직접 뛰어 막힌 길을 열어야 할 때일 수 있다. 그 길이 열렸다면 이제 장관과 지자체장이 달려야 한다. 대통령은 방향을 정하고, 장관은 일정과 결과에 책임지며, 공무원은 법과 원칙 안에서 결정을 내리는 정부. 그것이 메가프로젝트 속도전의 다음 단계다. 대통령의 속도는 임기와 함께 끝난다. 시스템의 속도는 정권이 바뀌어도 남는다. 이번 ‘전격전’의 가장 값진 성과는 공장 몇 곳을 빨리 세우는 데 있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않아도 제시간에 움직이는 정부를 남기는 데 있다.
2026-08-11 09: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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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호남 반도체 국가산단 설계 착수…광주 군공항 개발 속도전
[경제일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호남권 반도체 첨단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의 예비사업시행자로 선정되자마자 조사설계용역 발주 절차에 들어갔다. 정부가 광주 군공항 부지를 수도권에 이은 제2 반도체 생산기지 후보지로 정한 데 이어 사업 시행과 설계 절차를 곧바로 연결하면서 산단 조성 속도를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LH는 호남권 반도체 첨단 국가산업단지 (예비)사업시행자 선정과 동시에 조사설계용역 발주 절차를 개시했다고 30일 밝혔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광주 군공항 부지를 호남권 반도체 산업단지 후보지로 결정했다. 정부는 이 부지가 약 250만평 규모의 대규모 부지 확보가 가능하고 공항 특성상 이미 평탄화가 이뤄져 부지 조성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봤다. LH는 예비사업시행자 선정 당일 조사설계용역 발주 절차를 시작했다. 이날 사전규격공고를 낸 뒤 8월 초 입찰공고, 8월 중순 1차 심사, 9월 초 2차 심사를 거쳐 오는 9월 말 최종 낙찰자를 정할 계획이다. 이후 10월 첫째 주부터 설계에 착수한다는 목표다. 속도전도 예고했다. 통상 조사설계용역 입찰에 약 107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해 이번 절차를 58일 안팎으로 줄이기로 한 것이다.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3대 메가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만큼 관계기관 협의도 동시에 진행해 후속 행정 절차를 최대한 앞당긴다는 방침이다. 호남권 반도체 첨단 국가산단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주 군공항 부지 일원 약 826만㎡ 규모로 조성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보완하는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는 구상이다. 사업 대상지가 대부분 국방부 소유 국유지인 만큼 일반 산단보다 보상과 부지 확보 절차에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투기 차단 장치도 먼저 걸렸다. 국토부는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호남권 반도체 첨단 국가산단 사업 예정지 일원 364.19㎢를 2년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지정 효력은 지난 14일부터 발생했으며 지정 기간은 2028년 7월 13일까지다. 개발 기대감이 선반영되면서 군공항 주변 토지 거래가 과열될 가능성을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 일정 면적을 초과하는 토지를 거래할 때 관할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받은 뒤에도 실제 이용 목적에 맞게 토지를 사용해야 한다. 산업단지 후보지 발표 이후 주변 땅값이 먼저 움직이는 것을 막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보상과 투기 논란을 줄이려는 취지다. 호남 반도체 국가산단과 함께 경기도 용인반도체 국가산단도 동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LH는 이달 16일 용인반도체 국가산단 1공구 우선 발주를 마쳤으며 보상 절차와 문화재조사, 법정보호종 이주 용역 등 필수 절차를 병행하고 있다. 호남권 산단과 용인 산단을 함께 밀어붙여 반도체 생산기지 확장 일정을 앞당기겠다는 전략이다. 호남권 반도체 국가산단은 부지 선정 직후 사업시행자 지정, 설계 발주, 토지거래 관리까지 한꺼번에 진행되는 구조다. 대규모 투자 유치와 산업기반 조성이 핵심이지만 실제 성패는 설계와 인허가, 부지 이전, 기반시설 공급을 얼마나 빠르게 맞물리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성훈 LH 사장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 속도 경쟁에서 확실히 앞서기 위해 LH는 모든 역량을 쏟아 신속하게 산단 조성을 완수해 내겠다”며 “최단기간 승인, 설계, 착공을 목표로 가능한 절차는 병행 추진하고 앞당길 수 있는 절차는 최대한 앞당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2026-07-30 17: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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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지는 한 달이면 정한다는데…반도체 공장은 언제 돌아가나
[경제일보] 정부가 반도체 첨단산업단지 지정 요청이 들어오면 한 달 안에 후보지를 정하기로 했다. 통상 10년 이상 걸리는 산업단지 조성 기간을 기업 투자 일정에 맞춰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의 전체 조성 일정도 당초 2047년에서 2040년으로 최대 7년 앞당길 방침이다. 그러나 후보지 지정은 공장이 가동되기까지 거쳐야 할 긴 절차의 출발점일 뿐이다. 반도체 산업은 시간 싸움이다. 미국과 일본, 대만은 생산시설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앞세우고 있다. 기술이 있어도 공장 건설과 양산이 늦어지면 시장을 선점하기 어렵다. 기업의 투자를 느린 행정절차가 붙잡아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문제의식은 타당하다. 문제는 정부가 내세운 ‘한 달’이 전체 산단 조성기간 가운데 극히 일부라는 점이다. 후보지 선정 이후 산업단지계획 수립과 관계기관 협의, 주민 의견 수렴, 환경영향평가, 토지보상, 이주대책, 부지 조성공사가 이어진다. 전력과 용수, 도로와 철도까지 제때 갖춰져야 생산라인을 돌릴 수 있다. 후보지를 빨리 정해도 나머지 절차가 뒤따르지 못하면 기업이 체감하는 투자 시계는 달라지지 않는다. 산업단지 인허가를 줄이기 위한 제도도 이미 있다.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 특례법은 관계기관 협의를 동시에 진행하고 일정한 기간 안에 의견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다시 패스트트랙을 꺼내 들었다면 기존 제도가 현장에서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은 원인부터 밝혀야 한다. 법을 하나 더 만들고 전담 조직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처 간 이견과 주민 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 용인 국가산단은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정부는 2023년 3월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과 남사읍 일대를 국가산단 후보지로 선정했고 2024년 12월 산업단지계획을 승인했다. 후보지 선정에서 산단 승인까지 1년9개월이 걸렸다. 통상적인 국가산단 사업과 비교하면 빠른 편이지만 정작 사업 현장에서는 토지보상이 다음 관문으로 남아 있다. 용인 국가산단 예정지 727만4000㎡ 가운데 지난달 말까지 토지 보상 협의가 끝난 면적은 274만1000㎡로 37.7% 수준이다. 상당수 토지 소유자가 보상액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수용재결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연내 보상을 마무리한 뒤 부지 조성공사에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보상과 이주가 계획대로 끝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사업기간을 줄인다는 이유로 보상과 주민 의견 수렴을 형식적으로 처리해서도 안 된다. 보상 기준과 이주대책을 둘러싼 갈등이 길어지면 공사 지연과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민을 설득하는 데 드는 시간을 행정 낭비로 볼 것이 아니라 전체 사업기간을 줄이기 위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 초기 단계부터 보상 기준과 생활대책을 공개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빠르다. 토지보상보다 더 까다로운 문제는 전력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장기적으로 10GW가 넘는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발전소와 변전소를 산단 안에 짓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외부 전력을 끌어오기 위한 장거리 송전망도 새로 설치해야 한다. 송전선로의 노선 선정과 부지 확보, 환경 검토, 주민 협의를 감안하면 산단 승인과는 다른 차원의 난제다. 산단 부지 조성만 7년 앞당기고 송전망이 뒤따르지 못하면 공장 가동 시점은 앞당겨지지 않는다. 어느 지역에서 전기를 가져오고 송전선로가 어느 지방자치단체를 지나며 변전소를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가 먼저 확정돼야 한다. 첫 번째 생산라인이 필요로 하는 전력을 언제부터 공급할 수 있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전력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원론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용수 문제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는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통합용수공급 사업은 하루 107만2000t의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대형 사업이다. 팔당댐에서 용인까지 46.9㎞에 이르는 전용 관로와 가압시설을 새로 설치해야 하고 사업비도 2조원을 웃돈다. 1단계 용수 공급 목표 시점은 2031년이다. 용인 국가산단과 인근 일반산단의 전체 용수 수요는 하루 약 133만t으로 예상된다. 기존 댐의 여유 물량만으로는 부족해 하수 재이용수와 발전용 댐의 물까지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물을 확보하는 것과 수십㎞의 관로를 제때 설치하는 일은 별개 문제다. 관로가 지나는 지역과의 협의가 늦어지면 공장 완공 이후에도 용수 공급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정부는 용인 국가산단의 최종 완공 시점을 2040년으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업에 중요한 시점은 마지막 공장이 들어서는 2040년이 아니라 첫 번째 생산라인을 언제 착공하고 가동할 수 있느냐다. 첫 팹에 필요한 토지를 언제 넘기고 공사용 도로를 언제 개통하며 전력과 용수를 어느 시점부터 얼마나 공급할 것인지가 투자 판단을 좌우한다. 배후 교통망도 산단 공사와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동 공공주택지구 인허가를 내년 초까지 마치고 국도 45호선 확장사업도 오는 8월 발주할 계획이다. 주택과 도로 건설이 산단보다 늦으면 출퇴근 혼잡과 주거난이 불가피하다. 공장만 먼저 지어 놓고 근로자에게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하라고 할 수는 없다. 호남권에 새로 조성하겠다는 반도체 국가산단은 용인보다 불확실성이 더 크다. 정부는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를 중심으로 팹 4기가 들어서는 국가산단과 연구·창업·주거 기능을 갖춘 첨단도시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기업 투자 규모로 800조원을 제시했지만 투자 주체와 투자 시기, 공장별 착공 일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산단 부지로 거론된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는 군공항 이전과 종전부지 개발, 재원 조달 문제가 먼저 풀려야 한다. 군공항 이전이 늦어지면 산단 부지 확보도 늦어진다. 후보지 지정만 한 달 안에 마치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군공항 이전부터 토지 인도와 산단 조성, 기반시설 공급까지 하나의 일정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부가 내세운 ‘출퇴근 30분, 수출입 물류 1시간’이라는 목표도 구체성이 부족하다. 도로와 철도의 노선, 사업비, 착공과 개통 시점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무안국제공항의 기반시설과 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도 어떤 물류를 얼마나 처리할 것인지가 나와야 한다. 반도체 물류에 필요한 보안과 온습도 관리, 신속한 통관 체계를 어떻게 갖출 것인지도 설명해야 한다. 산업단지 조성기간을 줄이는 방법이 환경영향평가를 건너뛰거나 주민 권리를 축소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개발계획 수립과 환경조사, 기반시설 설계를 사업 초기부터 동시에 진행하고 부처 간 이견을 신속히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관계부처 회의를 여는 방식으로는 기업 시간표를 맞출 수 없다. 단계별 책임 기관과 최종 결정권자를 정해 둬야 한다. 정부가 내놓아야 할 것은 ‘한 달 안에 후보지 지정’이라는 숫자보다 공장 가동일까지 이어지는 전체 공정표다. 후보지 선정과 산단 승인, 토지보상, 부지 조성, 송전망과 용수관로, 도로와 철도 건설을 하나의 일정표에 담아야 한다. 각 단계의 완료 시점과 책임 부처를 공개하고 일정이 늦어질 경우의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은 산업단지 지정 고시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땅과 전기, 물, 도로가 필요한 시점에 함께 준비돼야 생산라인이 움직인다. 후보지를 한 달 안에 정하는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정부의 속도전이 성과를 내려면 그다음 10년을 어디에서 어떻게 줄일 것인지부터 보여줘야 한다.
2026-07-13 16: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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