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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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사람이 함께 일하는 법을 고민할 때다
AI를 둘러싼 뉴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일자리가 사라진다", "사무직이 가장 먼저 대체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섰다." 제목만 보면 세상이 곧 뒤집힐 것처럼 느껴진다. 기업은 앞다퉈 AI를 도입하고 직장인은 자신의 자리가 언제까지 안전할지 불안해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AI는 어느새 '함께 일할 기술'이 아니라 '싸워야 할 경쟁자'가 돼 버렸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 할까. 산업혁명 당시에도 증기기관은 노동자의 적이었다. 정보화 시대에는 컴퓨터가 사무직을 없앨 것이라는 전망이 넘쳐났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는 기존 산업이 모두 무너질 것이라는 공포도 있었다. 변화는 늘 불안을 동반했지만 역사는 기술이 일자리를 단순히 없애기보다 산업의 모습을 바꾸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왔음을 보여준다. AI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다. 기술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준비 수준이다. 최근 기업들의 AI 도입 목적을 보면 대부분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맞춰져 있다. 반복 업무를 줄이고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당연한 선택이다. 그러나 생산성이 높아진 만큼 사람에게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역할을 맡길 준비도 함께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 역시 비슷하다. AI 육성을 말하고, 데이터센터를 짓고, 반도체와 GPU 확보 경쟁에 뛰어든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AI 산업의 성패는 인프라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을 다룰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기존 산업 종사자들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어떤 교육과 전환 기회를 제공할 것인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기업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AI를 사람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능력을 키우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반복적인 보고서 작성은 AI가 맡더라도 고객을 설득하고,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고, 시장의 변화를 읽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에 더 많은 시간과 역량을 투자할 수 있도록 조직을 바꾸는 것이 진짜 디지털 전환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AI는 반도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전력이 필요하며,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 콘텐츠와 서비스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대학과 연구기관, 지역 산업까지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될 때 AI 경쟁력은 비로소 완성된다. 어느 한쪽만 성장해서는 오래갈 수 없다. 기술의 속도를 늦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더 빠르게 준비하자는 것이다. 기술이 앞서가더라도 사람이 뒤처지지 않도록 AI가 만들어내는 성과가 특정 기업이나 일부 계층에만 머물지 않도록 사회적 설계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반도체와 제조업, 통신 인프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제 그 기반 위에 AI 생태계를 어떻게 쌓아 올릴 것인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빨리 도입했느냐가 아니라 AI와 사람이 얼마나 잘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었느냐다. AI는 사람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아니다. 사람의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등장한 도구다. 기술은 이미 출발했다.
2026-08-07 13: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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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빅테크의 한국행, 공짜 투자는 없다
[경제일보] 미국 빅테크의 투자를 한국으로 끌어오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 등을 만난다. 삼성전자, SK,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기업 총수들도 함께한다. 청와대는 단순한 양해각서를 넘어 전략적 제휴, 장기계약, 실질적인 투자 성과를 이끌어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출국을 앞두고 이번 방문은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늘리는 자리가 아니라 미국 기업이 한국 투자를 강화하도록 만드는 자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브로드컴과 오픈AI, 앤트로픽, 엔비디아 등을 상대로 AI와 반도체, 데이터센터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한국이 미국 빅테크에 돈을 들고 찾아가는 외교에서 미국의 자본과 기술을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외교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의미다. 방향은 옳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업 기반, 빠른 통신망, 높은 교육 수준을 갖고 있다.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도 반도체와 기계·장비 수출에 힘입어 전 분기 대비 0.6% 성장했다. 건설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이 경제를 떠받쳤다는 것은 한국 산업의 힘과 약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반도체는 강하지만, 국내 투자와 내수의 온기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미국 빅테크의 데이터센터와 연구소, 클라우드 거점을 유치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투자는 애국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엔비디아와 오픈AI가 한국을 좋아해서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정상과 기업인이 악수했다고 공장이 세워지는 것도 아니다. 기업은 전력 가격과 공급 안정성, 인허가 속도, 세금, 인재, 시장 접근성, 데이터 규제를 계산한다. 한국이 경쟁국보다 더 나은 수익과 더 적은 불확실성을 제공하지 못하면 빅테크의 돈은 미국이나 일본, 싱가포르, 중동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내줘야 할까. 먼저 내줄 것은 속도다. 공장을 짓고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기까지 몇 년씩 허가를 기다려야 하는 나라에 초대형 투자가 들어오기 어렵다. 환경과 안전 기준을 낮추라는 뜻이 아니다.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돌며 같은 서류를 반복해서 내는 행정,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규제, 허가 일정을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 빅테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엄격한 규제보다 예측할 수 없는 규제다. 두 번째로 내줄 것은 전력과 기반시설이다. AI 데이터센터는 반도체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막대한 전기와 냉각용수, 통신망, 변전소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외치면서도 송전망 건설과 전력 공급 결정을 미룬다면 투자 유치 구호는 공허해진다. 전력을 기업에 싸게 퍼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업이 부담할 비용과 정부가 구축할 기반시설,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전력조달 방식, 지역사회에 돌아갈 이익을 사전에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세 번째는 시장이다. 미국 빅테크가 한국에 데이터센터와 연구개발 거점을 두면 정부와 공공기관, 금융·의료·제조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공공부문의 AI 도입을 국내 기업 보호라는 명분 아래 무조건 막아도 안 되고, 반대로 해외 플랫폼에 통째로 넘겨서도 안 된다. 국내 기업과 글로벌 기업이 공동으로 제품을 만들고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 세제 혜택도 필요하다. 경쟁국들이 법인세 감면과 부지, 전력, 정책금융을 한 묶음으로 제공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시장원리를 외치며 빈손으로 기다릴 수는 없다. 다만 보조금은 투자 발표가 아니라 투자 이행에 지급해야 한다. 공장 착공과 고용, 국내 조달, 공동 연구개발 등 약속이 실제 집행되는 단계마다 혜택을 나누는 방식이 옳다. 일자리도 기술도 남기지 않는 서버 건물 하나를 유치하기 위해 세금과 전력을 무제한 제공하는 것은 투자 유치가 아니라 임대업에 가깝다. 내주지 말아야 할 것도 분명하다. 첫째는 데이터 주권이다. 의료와 금융, 공공행정, 산업기술 데이터가 해외 기업의 폐쇄된 플랫폼 안에 갇히면 한국은 AI를 사용하는 나라는 될 수 있어도 AI를 통제하는 나라는 되기 어렵다. 민감정보의 저장 위치와 처리 방식, 제3국 이전, 정부의 감독권은 협상 가능한 부수 조건이 아니다. 둘째는 규제 면책특권이다. 빅테크의 투자가 크다고 해서 개인정보 보호나 공정경쟁, 저작권, 소비자 보호 기준까지 면제해서는 안 된다. 국내 기업에는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면서 해외 기업에는 투자 유치를 이유로 예외를 준다면 시장은 기울어진다. 규제는 단순해야 하지만 공평해야 한다. 셋째는 국내 산업의 성장 기회다. 미국 빅테크가 한국 시장과 전력, 데이터를 이용하면서 국내 클라우드·소프트웨어·AI 스타트업을 하청업체로만 남겨서는 안 된다. 투자 협약에는 국내 기업의 공급망 참여, 대학·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 국내 인재 채용과 교육, 한국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 지원이 포함돼야 한다. 한국이 제공한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가 모두 본사로 빠져나가는 구조라면 투자액이 아무리 커도 국익은 작다. 노자는 ‘도덕경’ 36장에서 “장차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將欲取之 必固與之)”고 했다. 투자를 얻으려면 한국도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한다. 문제는 많이 주느냐 적게 주느냐가 아니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다. 한국이 줘야 할 것은 신속한 행정과 안정적인 전력, 예측 가능한 세제, 매력적인 시장이다. 내줘서는 안 될 것은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과 공정한 경쟁질서, 국내 산업이 성장할 몫이다. 전자는 투자의 기반이고, 후자는 국가의 주권이다.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빅테크 투자 유치는 막대한 보조금으로 외국 기업의 건물과 서버를 대신 지어주는 사업으로 전락한다. 정부는 이번 정상외교의 성과를 투자금액 한 줄로 발표해서는 안 된다. 어느 지역에 무엇을 짓는지, 전력과 물은 누가 얼마를 부담하는지, 국내 기업은 어떤 공급망에 참여하는지, 몇 명을 고용하고 어떤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지까지 공개해야 한다. 투자 유치의 성적표는 협약서에 적힌 달러가 아니라 한국에 남은 기술과 일자리, 세수와 수출로 작성돼야 한다. 미국 빅테크의 한국 투자는 구걸할 대상도, 두려워할 대상도 아니다. 국가와 기업의 이해관계를 맞추는 거래다. 한국은 반도체와 제조업, 시장과 인재라는 귀한 카드를 갖고 있다. 그 카드를 헐값에 내주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들어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빅테크를 불러오는 데 공짜 점심은 없다. 그렇다고 식당과 주방까지 넘길 필요도 없다. 문은 열되 집문서는 지키는 협상, 그것이 AI 정상외교가 갖춰야 할 국익의 원칙이다.
2026-07-24 07: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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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가 만든 성장, 나라 경제의 착시가 되어선 안 된다
[경제일보] 한국 경제가 모처럼 의미 있는 성장 지표를 받아 들었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1.7%, 전년 동기 대비 3.6% 성장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수출 증가와 설비투자 확대가 성장을 이끌었다. 장기간 이어진 경기 둔화 속에서 반가운 소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는 숫자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성장률은 높아졌지만 시장의 체감 온도는 여전히 낮다. 대기업 실적은 개선됐지만 중소 제조업 현장은 여전히 어렵다. 수출은 늘었지만 청년 취업난은 계속되고 지방 산업단지는 일감 부족과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간극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번 성장률은 경제 회복이 아니라 ‘통계의 위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성장의 핵심 동력은 단연 반도체다.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와 함께 메모리 및 첨단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고 한국 기업들은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반도체가 없었다면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반도체의 호조가 곧 한국 제조업 전체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제조업 생산은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상당수 업종은 사실상 정체 상태에 가깝다. 거대한 엔진 하나가 경제 전체를 끌어올린 셈이다. 엔진이 강한 것은 다행이지만 차체 곳곳이 흔들리는데 속도계 숫자만 보고 안심할 수는 없다.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제조업 생태계의 힘으로 성장해 왔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기계, 전자, 소재·부품 산업이 서로 맞물려 국가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중소기업과 협력업체, 지역 산업단지, 숙련 기술자들이 존재했다. 대기업 혼자 만든 성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첨단 반도체와 AI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는 반면 전통 제조업과 중소기업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지만 협력업체들은 원가 상승과 인건비, 고금리 부담에 시달린다. 수도권 첨단 클러스터에는 자금과 인재가 몰리지만 지방 산업단지는 노후 설비와 인력 유출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경제 회복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도체는 분명 한국의 핵심 전략산업이다. 정부가 전력과 용수, 세제, 연구개발(R&D), 인력 양성 등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반도체 산업은 더 이상 기업만의 경쟁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대만, 유럽 모두 국가 차원의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지원이 산업정책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도체는 고부가가치 산업이지만 고용 창출 효과는 제한적이다. 자동화 수준이 높고 생산 효율 중심 구조이기 때문이다. 수출액은 커도 그 효과가 모든 지역과 가계로 곧장 확산되지는 않는다. 반도체 호황만으로 민생 회복을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더 위험한 것은 착시다. 성장률이 좋다는 이유로 경제 전반이 안정됐다고 판단하는 순간 정책은 느슨해질 수 있다. 반도체가 버텨주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산업의 침체를 과소평가하게 되고 수출 지표 개선에 가려 내수 부진과 자영업 위기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위기는 눈에 보이지만 착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경제 변동성도 커진다. AI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 성장세는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수요 둔화나 공급 과잉, 미·중 기술 갈등 심화, 대만해협과 중동 정세 불안 같은 변수들이 현실화되면 충격은 곧바로 한국 경제로 전이된다. 특정 산업 하나가 경제 전체의 방파제이자 동시에 급소가 되는 구조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지금 한국 경제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반도체의 성공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AI 시대의 수혜가 메모리 반도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데이터센터, 전력기기, 냉각장비, 로봇, 제조 자동화, 통신장비, 보안, 소프트웨어, 소재·부품 산업까지 연결돼야 한다. 반도체가 앞에서 끌고 다른 산업이 뒤따라야 진짜 산업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중소·중견 제조업의 생산성 강화도 시급하다. 한국 산업의 가장 약한 고리는 대기업이 아니라 산업의 ‘허리’다. 스마트공장과 공정 자동화, 에너지 효율 개선, 기술 인력 재교육, 수출 판로 확대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해야 한다. 단순한 보조금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금융과 기술, 인력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지역 산업 생태계도 살펴야 한다. 반도체 클러스터 하나가 전국 산업의 미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조선과 자동차 부품, 철강, 화학, 기계, 뿌리산업 등 지역마다 필요한 전략은 다르다. 지방 산업단지가 쇠퇴하는데 수도권 첨단산업만 성장한다면 국가 경제의 균형은 더욱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인력 문제 역시 심각하다. 반도체 인력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용접공과 정밀가공 기술자, 배터리 공정 엔지니어, AI 기반 제조 소프트웨어 인력까지 산업 전반에서 숙련 인력이 부족하다. 대학 정원 확대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마이스터고와 전문대, 지역대학, 기업 훈련체계가 산업 현장과 직접 연결돼야 한다. 내수 회복도 중요하다. 수출이 경제의 엔진이라면 내수는 국민 생활의 체감 온도다. 성장률이 높아도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면 국민은 경기 회복을 실감하지 못한다. 물가와 금리, 주거비, 가계부채, 자영업 침체가 여전히 소비를 짓누르고 있다. 반도체 수출이 좋아도 동네 상권이 무너지면 경제 회복은 공허한 말이 된다. 정부의 메시지도 정직해야 한다. 좋은 지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한계 역시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반도체는 강하지만 제조업 전반은 아직 불안하다. 수출은 회복되고 있지만 내수는 충분히 살아나지 않았다. 대기업은 선전하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여전히 어렵다. 이 현실을 숨기지 않는 것이 정책 신뢰의 출발점이다. 정치권 역시 경제를 정쟁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여당은 성장률만 내세워 자화자찬하고 야당은 체감 경기만 부각해 경제 전체를 부정한다면 둘 다 무책임하다. 산업 현장은 정치 구호보다 전기료와 금리, 인력난, 해외 주문 상황을 더 절박하게 체감하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 반도체 호황은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다. 단기적인 성과 홍보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산업 구조를 재정비하고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데 활용할 것인가. 한 산업의 호황을 국가 경제 전체의 건강으로 착각하면 다음 위기는 더 깊어진다. 반대로 지금 제조업의 허리를 보강하고 산업 생태계를 넓히며 내수와 고용의 약한 고리를 보완한다면 반도체 호황은 진짜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경제의 기본 원리는 단순하다. 한 산업만 강한 경제보다 여러 산업이 함께 버티는 경제가 더 강하다. 대기업 몇 곳만 좋은 경제보다 중소기업과 지역 산업이 함께 살아나는 경제가 오래간다. 성장률 숫자보다 국민이 일자리와 소득으로 체감하는 경제가 진짜 건강한 경제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하나의 산업에 국가 경제의 미래를 모두 걸 수는 없다. 산업의 뿌리가 깊고 생태계가 넓어야 경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반도체 호황에 대한 환호가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 격차와 취약성을 함께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분명 의미 있는 성적표다. 그러나 한 과목 점수가 높다고 학생 전체가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도체가 만든 성장의 빛이 강할수록 그 그늘 또한 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지금 그것을 놓친다면 우리는 호황 속에서 다음 위기의 씨앗을 키우게 될 것이다.
2026-05-06 09: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