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9건
-
청문보고서 통과 이틀 만에 사퇴…인사검증은 어디서 멈췄나
[경제일보] 국회가 적격이라고 보고서를 채택한 후보자가 이틀 뒤 물러났다. 대통령은 그사이 인사 시스템을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후보자의 자질을 둘러싼 공방은 끝났지만, 그를 지명하고 검증했던 과정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커졌다. 청와대와 국회가 차례로 후보자를 살폈는데도 임명 직전까지 적격성을 둘러싼 판단이 달라졌다면 어느 단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9일 자진 사퇴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지명한 지 20일 만이다. 앞서 13일 물러난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이번 개각에서 두 번째 낙마자다. 장관 후보자 6명 가운데 2명이 임명 문턱을 넘지 못한 셈이다. 특히 김 후보자의 사퇴에 이르는 과정은 인사검증 절차를 되짚어볼 중요한 사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5일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열고 이틀 뒤인 17일 적격 의견의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국민의힘은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퇴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청문 과정에서 상당 부분 소명됐다며 보고서 채택을 주도했다. 18일 이 대통령은 임명 여부에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면서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튿날 후보자는 사퇴했다. 적격 보고서 채택과 후보자 사퇴가 이틀 간격으로 이어졌다. 보고서 채택이 대통령의 임명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 판단과 인사권자의 최종 결정이 다를 수도 있다. 다만 이번처럼 짧은 시간에 결론이 달라진 경우에는 그 사이 새롭게 확인된 정보가 있었는지, 기존 자료를 다시 평가한 것인지 구분해 살펴볼 여지가 있다. 김 후보자의 전직 보좌진이 추가 의혹을 담은 탄원서를 17일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청와대는 탄원서 전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김 후보자는 사퇴가 새로운 의혹 때문이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탄원서가 사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정보의 인지 시점과 처리 경로다. 새로운 자료가 접수됐다면 언제 누구에게 전달됐고 어떤 추가 확인을 거쳤는가. 기존에 파악한 사안이었다면 최초의 적격성 판단과 최종 판단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경위를 알아야 이번 사례를 제도 개선의 자료로 삼을 수 있다. 용혜인 전 후보자 사례는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용 전 후보자는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을 겸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논란이 이어진 끝에 청문회 전에 물러났다. 국회법상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은 허용된다. 쟁점은 법률상 가능 여부와 별개로, 후보자의 의원직 유지 의향과 그에 따른 정치적 논란을 지명 전에 충분히 확인했느냐는 것이었다. 앞서 청와대는 용 전 후보자의 겸직 의사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검증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사항 자체가 누락됐는지가 문제다. 의향을 파악하고도 지명했다면 당시 판단의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후보자의 사퇴는 같은 결과로 이어졌지만, 드러낸 과제는 다르다. 용 전 후보자 사례에서는 지명 전에 무엇을 물었는지가 중요하다. 김 전 후보자 사례에서는 무엇을 알고 있었으며 그 정보를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중요하다. 단순한 정보 누락과 정보를 확보한 뒤의 판단 차이를 모두 '검증 부실'이라는 말로 묶어버리면 정작 고쳐야 할 절차를 찾기 어려워진다. 인사검증의 핵심은 흠결을 찾아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확인한 정보를 적격성 판단으로 연결하고, 그 판단의 근거를 남기는 데 있다. 대통령의 인사는 추천에서 시작한다. 후보군을 발굴하고 경력과 전문성을 살피는 과정이다. 이어 검증 단계에서는 재산과 세금, 범죄경력 등 법정 제출사항을 포함해 해당 직책과 관련된 이해충돌 가능성과 과거 행적을 확인한다. 최종 지명에서는 전문성과 정책 방향, 검증 결과를 종합해 판단한다. 인사청문회는 그 결정에 대해 국회가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별도의 절차다. 실제로 인사청문회법 제5조는 국회에 제출하는 임명동의안 등에 경력과 재산, 세금 납부 실적, 범죄경력 등에 관한 증빙서류를 첨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검증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임명권자 또는 지명권자가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각 단계의 기능은 분명하지만 실제 인선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추천 단계에서 우려가 제기됐는데도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다. 검증 조직이 사실관계를 확인했지만 적격성 판단 과정에서 중요도가 낮게 평가됐을 수도 있다. 지명 당시에는 없던 정보가 청문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 가운데 무엇이 이번 사례에 해당하는지는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알 수 없다. 대통령이 18일 인사 시스템 재점검을 언급한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나름의 시스템과 노력이 있었지만 추가로 발견되는 문제도 있고, 정부의 판단과 다른 판단이 제기되기도 한다며 미처 대비하지 못한 부족함을 인정했다. 재점검의 범위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추천의 문제였다면 후보 발굴과 평판 확인 절차를 살펴봐야 한다. 검증에서 정보를 놓쳤다면 자료 수집과 교차확인 방식이 대상이다. 이미 알고도 지명했다면 당시 적용한 적격성 기준과 최종 판단 과정을 검토해야 한다. 청문회 이후 새로운 문제가 나왔다면 정보가 접수돼 인사권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경로가 쟁점이다. 책임을 따지기 전에 판단의 경위를 복원하는 일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인사검증 조직이 모든 의혹을 사전에 찾아낼 수는 없다. 수사기관과 같은 조사권을 갖고 있지 않은 데다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의 경계도 지켜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이유로 후보자를 무조건 배제한다면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따라서 검증을 강화한다는 말이 모든 후보자에 대한 무제한 조사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확인된 사실과 미확인 의혹, 법률상 결격 사유와 정치적·윤리적 판단을 구분하는 기준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국회 청문 절차의 역할도 돌아볼 대목이 있다. 여당은 정부의 인사를 뒷받침하려 하고 야당은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검증하려는 정치적 이해를 가질 수 있다. 이번에도 민주당은 의혹이 소명됐다고 판단했지만 국민의힘은 그렇지 않다고 맞섰다. 의견 차이 자체가 청문 절차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청문보고서에 확인된 사실과 다투는 의혹,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구분해 남기면 대통령의 최종 판단에도 더 명확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인사청문회는 정부가 선택한 후보자를 검증하는 자리이지, 청와대가 해야 할 사전 판단을 대신하는 자리는 아니다. 반대로 사전 검증을 마쳤다는 이유만으로 청문회에서 새롭게 제기된 문제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두 절차가 서로의 책임을 넘겨받는 관계가 아니라 판단을 보완하는 관계가 되려면, 무엇이 언제 확인됐고 어떤 결론을 거쳤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용'에는 '범사예즉립 불예즉폐(凡事豫則立 不豫則廢)'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면 이루어지고, 준비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뜻이다. 인사에서도 준비란 서류를 빠짐없이 모으는 행정 절차만을 뜻하지 않는다. 문제가 제기됐을 때 누가 판단하고 그 근거를 어디에 남길 것인지까지 정해두는 일이다. 후보자 두 명이 사퇴한 뒤 후임을 찾는 일과 이번 인선 과정을 되짚는 일은 별개의 과제다. 다음 후보자를 지명한다고 앞선 인사에서 어떤 정보가 누락됐는지 저절로 밝혀지지 않는다. 검증 담당자를 바꾸더라도 적격성 판단의 기준과 기록 방식이 그대로라면 같은 질문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이번 개각이 남긴 물음은 김승원과 용혜인이라는 두 이름에만 머물지 않는다. 추천자는 무엇을 보고 후보자를 올렸는가. 검증 조직은 어떤 사실을 확인했는가. 인사권자는 무엇을 근거로 지명을 결정했는가. 청문회에서 판단이 달라졌다면 새로 밝혀진 것은 무엇인가. 인사검증의 신뢰는 후보자가 물러난 뒤 누가 잘못했는지 다투는 것만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추천부터 최종 판단까지 무엇을 알고 어떻게 결정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개선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지 이틀 만에 후보자가 사퇴한 이번 사례는 그 기록과 설명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2026-09-21 13:00:00
-
-
'합법적 겸직'보다 무거운 공직의 책임
[경제일보]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비례대표 의원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거듭 분명히 밝혔다. 용 후보자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은 “법률이 허용하는 것”이라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야당 현역 의원을 장관으로 지명한 데에는 연합정치의 의미가 있다는 설명도 내놨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회법 제29조는 국회의원이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을 겸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용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된 뒤 의원직을 유지한다고 해서 위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의 질문은 법전의 마지막 조항에서 끝나지 않는다. 할 수 있느냐와 해야 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번 논란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장관은 대통령을 보좌해 한 부처의 정책과 예산, 인사를 책임지는 행정부의 핵심 구성원이다. 국회의원은 정부를 감시하고 법과 예산을 심사한다. 우리 헌법과 국회법이 두 직책의 겸직을 인정하고 있으니 그 자체를 제도적 모순이라고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의원 출신 장관이 국회와 정부 사이의 소통을 돕는 장점도 있다. 다만 비례대표 의원이라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지역구 의원이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일정 기간 해당 지역의 대표가 사라지고 보궐선거가 필요할 수 있다. 비례대표 의원은 사퇴하더라도 명부의 후순위 후보자가 의석을 승계한다. 국회의 의석 자체가 비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비례대표 의원이 국무위원으로 입각할 때 의원직을 내려놓는 관행이 이어져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에는 아예 비례대표 의원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경우 의원직에서 퇴직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까지 발의됐다. 개별 후보자를 겨냥한 입법이 돼서는 안 되겠지만, 이번 논란이 현행 겸직 제도의 원칙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용 후보자에게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 그가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기본소득당은 원내 의석을 잃는다. 용 후보자 스스로도 자신이 당의 유일한 현역 의원이고, 사퇴할 경우 기본소득당이 원외정당이 되는 어려움이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2024년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명부를 통해 당선됐기 때문에 후순위 승계자가 기본소득당 소속이 되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치적 고민이다. 소수정당에서 국회의원 한 명이 갖는 무게는 거대정당의 한 석과 다르다. 원내 발언권과 입법 활동, 정당의 존재감이 그 한 석에 걸릴 수 있다. 다당제와 정치적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도 작은 정당의 원내 활동을 가볍게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사정이 오히려 선택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기본소득당의 원내 지위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의원으로 남으면 된다. 성평등가족부를 이끌어 정부 정책을 책임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면 장관직을 선택하면 된다. 소수정당의 어려움은 두 선택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지 고민하게 하는 이유일 수는 있어도, 두 자리를 모두 가져야 하는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 연합정치라는 설명 역시 마찬가지다. 야당 정치인이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정치 실험이다. 서로 다른 정당이 정책 목표를 공유하고 정부 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협치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다만 연합정치의 의미는 장관으로 정부에 참여하는 데서 이미 구현된다. 의원직까지 반드시 함께 보유해야 연합정치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관으로 국무회의에 들어가 정부 정책을 함께 책임지면서 동시에 야당 의원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책임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정부 정책이 성공하면 장관의 성과이고, 정치적 부담이 생기면 야당 의원의 위치로 돌아가는 구조여서는 곤란하다. 공직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지가 많은 것이 아니라 책임의 위치가 분명한 것이다. 때문에 이번 문제를 법률상 ‘이해충돌’이라는 단어 하나로 재단할 필요도 없다. 현행법이 허용하는 직책인 만큼 불법적인 이해충돌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더 정확한 문제는 역할의 충돌과 정치적 책임이다. 의원은 정부를 묻는 자리이고 장관은 정부의 답을 내놓는 자리다. 한 사람이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법은 허용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경우에 겸직이 바람직하다는 뜻까지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비례대표 의석은 개인의 정치적 재산으로 보기 어렵다. 유권자는 후보 개인에게 직접 한 표를 준 것이 아니라 정당과 명부에 투표했다. 앞 순번 후보가 다른 길을 선택하면 후순위 후보가 이어받도록 제도를 만든 것도 비례대표 의석의 이런 성격 때문이다. 이번 사안을 용 후보자 개인의 문제로만 끝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누구에게는 겸직을 허용하고 누구에게는 사퇴를 요구한다면 결국 논란은 반복된다. 비례대표 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을 계속 허용할 것인지, 아니면 입각할 경우 의원직을 내려놓도록 할 것인지 국회가 일반적인 원칙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제도를 고치기 전까지는 선택의 책임이 당사자에게 돌아간다. 현행법이 겸직을 허용하기 때문에 대통령도 사퇴를 강제할 수 없고 국회 역시 의원직을 빼앗을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정치적 판단이다. ‘예기’ 예운편에는 ‘대도지행야 천하위공(大道之行也 天下爲公)’이라는 말이 나온다. 큰 도가 행해지면 천하는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다. 공직도 그렇다. 장관 자리도, 국회의원 자리도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의 소유물이 아니다. 모두 국민으로부터 일정 기간 맡겨진 자리다. 용 후보자가 기본소득당의 유일한 의원으로 남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책임이라고 판단한다면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대신 장관직을 맡지 않으면 된다. 반대로 성평등가족부 장관으로서 국정을 책임지는 길을 택한다면 그 역시 존중해야 한다. 대신 비례대표 의석을 내려놓는 것이 자연스럽다. 두 선택 모두 정치적 비용이 따른다. 공직을 맡는다는 것은 원래 그 비용까지 감수하는 일이다. 법이 두 자리를 허용한다는 사실이 두 자리를 모두 가져야 할 이유는 아니다. 이번 논란에서 국민이 묻는 것도 법률 조문 하나가 아니다.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이 무엇을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는가 하는 문제다. 장관도 하고 의원도 하겠다는 선택보다 어느 한쪽을 택하고 그 책임을 온전히 지는 정치가 더 설득력 있다. 책임정치는 자리를 얼마나 많이 갖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리를 선택하고 그 선택의 대가를 얼마나 분명하게 감당하느냐에서 시작한다.
2026-09-11 14:00:00
-
"청문회, 검증의 출발선" 청와대 사전 검증은 무엇을 했나
[경제일보]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검증을 대신하는 절차가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마지막 문턱에 가깝다. 그 문턱에 누구를 세울 것인지를 먼저 가려내는 일은 인사권자의 몫이다. 이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청문회는 검증 장치가 아니라 잘못된 인사를 뒤늦게 수습하는 무대가 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청와대가 내놓은 설명은 그래서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청문 제도 자체가 후보자에 대한 국민적 검증 과정”이라며 두 후보자가 “인사위원장의 책임 아래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된 후보”인 만큼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국민 눈높이에 부족함이 없도록 인사 검증체계를 갖추고 강화하겠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사청문회는 국민을 대신한 국회의 공개 검증 절차다.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는 보장도 없고, 청문회를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다만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했다면서 왜 곧바로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인가. 김 후보자에게는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과 관련한 청탁 의혹과 과거 음주운전 문제가 제기됐다. 김 후보자는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고 반박하면서도 민원 전달 과정에는 신중했어야 했다고 밝혔고,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용 후보자에게는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의 겸직 문제, 당 운영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 등이 제기되고 있다. 각각의 의혹과 적격성은 청문회에서 사실관계를 더 따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명 전 어디까지 검토됐느냐는 것이다. 이미 알고도 장관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청와대가 그 판단에 책임을 지면 된다. 반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사전 검증에 구멍이 있었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경우든 “청문회에서 검증하자”는 말만으로 끝낼 문제는 아니다. 국회법은 국무위원 후보자 등에 대해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에게서 후보자를 고르는 책임을 넘겨받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 이후 국회가 공직 수행 능력과 도덕성 등을 공개적으로 다시 검증하는 견제 장치다. 사전 검증과 인사청문은 순서만 다른 같은 검증이 아니다. 책임의 주체부터 다르다. 청와대 검증은 대통령의 책임이고, 국회 청문회는 국회의 책임이다. 이 단순한 구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청와대가 후보자의 재산과 세금, 범죄·징계 이력, 이해충돌 가능성, 과거 행적과 정무적 리스크를 충분히 확인한 뒤 “이 정도 문제를 감안해도 국정을 맡길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지명이다. 청문회는 그 판단에 누락이나 왜곡이 없는지 국민 앞에서 다시 따지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전 단계에서 걸러졌어야 할 문제가 지명 직후 쏟아지고, 그때마다 “청문회에서 보자”는 답이 반복되면 인사의 책임 구조가 거꾸로 선다. 대통령이 고르고 청와대가 검증했는데, 최종적으로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발견하고 판단하는 책임은 국회와 언론, 국민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방식이 반복될 때 생기는 ‘지명의 관성’이다. 후보자를 발표한 뒤에는 철회 비용이 커진다. 인사 실패를 인정해야 하고 야당의 공세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이미 지명했다는 이유 자체가 후보자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되기 쉽다. 검증의 판단 기준이 ‘공직에 적합한가’에서 ‘청문회를 버틸 수 있는가’로 바뀌는 순간이다. 제대로 된 사전 검증은 흠결을 하나도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현실 정치에 거의 없다. 핵심은 어떤 흠결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기준을 미리 세우는 것이다. 음주운전이나 세금 체납, 부동산 투기, 연구윤리 위반, 갑질, 이해충돌, 수사·징계 이력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검증 항목부터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부족하다. 공직의 성격에 따라 어느 정도의 흠결을 결격으로 볼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기준과 산업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전문성의 기준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제는 탈락 사유였던 문제가 오늘은 해명 가능한 문제가 되는 것도 곤란하다. 법적 결격과 정치적·윤리적 부적격을 구분하는 기준도 필요하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장관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장관은 형사재판에서 유죄인지 무죄인지만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에게 정책의 준수를 요구하고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법률상 임명 가능성과 국민이 기대하는 공직 윤리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그때그때 여론을 보며 판단해서는 인사 원칙이 생기지 않는다. 책임선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청와대 인사는 인사위원회를 중심으로 후보 추천과 검증, 정무적 판단이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인사수석실까지 신설됐지만 후보자 논란이 반복되면서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누가 후보자를 추천했는지까지 모두 공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인사에는 보안이 필요하다. 후보군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하지만 지명 이후 중대한 문제가 드러났다면 최소한 내부적으로는 추천 단계에서 놓쳤는지, 검증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했는지, 알고도 정무적으로 수용했는지를 구분하고 책임을 남겨야 한다. 알고도 선택했다면 대통령과 인사위원회가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된다. 몰랐다면 검증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상서’ 고요모에는 ‘지인즉철 능관인(知人則哲 能官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지혜이며, 그래야 사람을 제대로 벼슬에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수천 년 전에도 국정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를 ‘사람을 알아보는 일’에서 찾았다. 인사가 어려운 것은 시대가 달라져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고 완벽한 후보자는 없다. 사생활과 공적 검증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도 쉽지 않다. 지나치게 가혹한 검증은 유능한 인재가 공직을 피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준이 필요하다. 정권에 가까운 사람에게는 느슨하고 반대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아니라, 어느 정부에서든 대체로 예측할 수 있는 기준 말이다. 청와대가 이번에 인사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한 것은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강화하겠다’는 말만 반복해서는 같은 문제가 다음 개각에서 다시 돌아온다. 검증 항목을 표준화하고, 중대한 결격 사유와 해명 가능한 사안을 구분하며, 추천·검증·정무 판단의 책임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명 뒤 예상하지 못한 중대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어떤 단계에서 놓쳤는지 복기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또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인사청문회는 청와대 검증의 실패를 대신 책임지는 곳이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명하기 전에 제대로 검증하는 것은 그보다 먼저 존재하는 권한이자 책임이다. 청문회에서 모든 것을 확인하겠다면 사전 검증은 형식이 된다. 반대로 청와대가 자신 있게 검증을 마쳤다면 논란이 불거졌을 때 “청문회에서 보자”에 앞서 왜 그 문제를 감수하고도 지명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사의 신뢰는 흠결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왜 골랐고, 무엇을 확인했으며,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 분명할 때 생긴다. 청문회는 검증의 시작이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국민 앞에서 확인하는 마지막 문턱이어야 한다.
2026-09-08 09:41:03
-
법에 된다고 다 해도 되나…공직자의 '공정 감수성'이 무너지고 있다
[경제일보] 공직은 권리가 아니라 책임이다. 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모두 해도 되는 자리도 아니다. 공직자와 공직후보자에게는 법률의 최소 기준을 넘어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이라는 더 높은 잣대가 따라붙는다. 최근 잇따른 논란은 이 당연한 원칙을 다시 묻게 한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재정 비상상황’을 선언했다. 경기도는 재정난을 이유로 5465억원 규모의 세출 구조조정에 나섰고, 직원들에게도 고통 분담을 주문했다. 그런데 추 지사가 도청 인근 156㎡ 아파트를 12억2000만원에 전세 계약한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경기도는 업무 효율을 위해 관련 규정에 따라 계약했고, 계약 당시에는 재정 상황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규정을 어겼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상징이다. 직원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서 최고 책임자가 상대적으로 넓고 비싼 관사를 사용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재정 비상이 정말 심각하다면 먼저 줄여야 할 비용이 무엇인지 지도자가 보여주는 것이 순리다. 조직은 말보다 행동을 먼저 본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비례대표 의원직 겸직 논란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법적으로 겸직이 가능한지 여부와 국민이 이를 공정하다고 받아들이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공직은 가능한 권리를 최대한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제한할 줄 아는 자리여야 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과 관련해 식약처장에게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취지의 문자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김 후보자는 민원 전달일 뿐 부정한 로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현 단계에서 위법을 단정해선 곤란하다. 그렇지만 국회의원의 문자 한 통이 평범한 민원인의 전화 한 통과 같은 무게일 리는 없다. 의원은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사하며 정부기관을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 지위에서 “빨리 처리해달라”는 말은 의도와 무관하게 행정기관을 압박하는 신호로 읽힌다. 이 세 사례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하나는 관사, 하나는 겸직, 하나는 민원 전달 문제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모두 법 위반 여부를 따지기 전에 공직자의 자기 절제가 충분했는지를 묻게 한다. 정치권은 이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규정에 따른 것이다” “관행이었다”고 설명한다.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논어>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공직 윤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직원들에게 긴축과 희생을 요구한다면 자신부터 절제해야 하고, 국민에게 공정한 절차를 요구한다면 자신도 권력의 지름길을 경계해야 한다. 최근 여론 흐름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국갤럽의 지난 1~3일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40%, 부정 평가는 51%였다. 20대 긍정 평가는 25%로 전주보다 6%포인트 떨어졌다. 부정평가 이유에서는 ‘인사’가 9%로 올라섰다. 한 번의 조사 결과만으로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근 인사 논란이 특히 청년층의 공정 감수성을 건드렸다는 정치권의 해석에는 귀 기울일 대목이 있다. 2030 세대가 특권 문제에 민감한 이유는 단순하다. 취업과 주거, 자산 형성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는 세대에게 ‘누군가는 자리도 갖고, 혜택도 갖고, 인맥도 활용한다’는 인상은 강한 박탈감으로 돌아온다. 공직자가 이를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말로 넘기면 민심과 더 멀어진다. 정치는 법률가의 시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합법인지뿐 아니라 무엇이 적절한지를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다. 규정상 가능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해친다면 스스로 한 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장관과 도지사, 국회의원처럼 권한이 큰 자리일수록 기준은 엄격해져야 한다. 권력이 크면 책임도 커진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공직 후보자 검증도 달라져야 한다. 재산과 세금, 전과 여부만 확인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이해충돌 가능성, 특혜의식, 권한 행사 방식, 공적 자원을 대하는 태도까지 함께 봐야 한다. 결국 국민이 묻는 것은 ‘법을 어겼느냐’만이 아니라 ‘이 사람이 공직을 맡을 자세가 돼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인사는 능력만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도덕성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사람인가에 대한 신뢰가 함께 있어야 한다. 지금 공직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해명이 아니다. 법과 규정을 내세우기 전에 스스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선택을 하는 문화다. 특권처럼 보이는 관사는 줄이고 이해충돌의 여지가 있는 자리는 내려놓고 권한 있는 사람의 전화 한 통도 조심하는 것이다. 이런 작은 절제가 쌓여 공직의 신뢰가 만들어진다. 공직은 가능한 것을 모두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절제, 누릴 수 있어도 내려놓는 태도에서 공직의 품격이 드러난다.
2026-09-07 14:09:33
-
-
서울 부동산 시계, 속도보다 설득의 시간이 왔다
[경제일보] 서울 유권자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5선을 허락했지만 서울시의회 권력은 더불어민주당에 넘겼다. 시장은 국민의힘이 지켰고 예산과 조례의 문은 민주당이 쥐게 됐다. 이번 선거 결과는 서울시정 전반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건설부동산 시장에는 더 직접적인 신호로 읽힌다. 앞으로 4년 서울의 재개발·재건축과 도심 개발, 청년 주거정책은 속도보다 설득을 먼저 요구받게 됐다.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 118석 가운데 80석을 확보했다. 지역구 73석과 비례대표 7석이다. 전체 의석의 67.8%에 이른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30석과 비례대표 8석을 합쳐 38석을 얻었다. 2022년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이 주도했던 서울시의회 권력 지형이 4년 만에 뒤집혔다. 오 시장 입장에서는 복잡한 결과다. 개인적으로는 5선에 성공했다. 서울시장 선거만 놓고 보면 정치적 생명력을 다시 입증했다. 그러나 시정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예산과 조례의 관문은 야당 다수 의회가 쥐게 됐다. 시장 선거의 승리와 시정 운영의 안정성이 반드시 같은 말은 아니라는 점을 이번 선거가 보여줬다. 서울 부동산 정책은 시장의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서울시장은 도시계획과 인허가의 큰 방향을 쥐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사업은 예산과 조례, 도시계획 관련 의회 논의와 맞물려 간다. 정비사업 규제 완화, 역세권 개발, 공공기여, 임대주택 비율, 청년 주거 지원, 기반시설 부담 같은 사안은 어느 하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어렵다. 시장의 추진력과 의회의 동의가 맞물려야 정책은 현장에서 작동한다. 오 시장은 그동안 서울의 개발 시계를 다시 빠르게 돌리겠다는 메시지를 내왔다. 재개발·재건축 정상화, 한강변 도시경쟁력 강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세운지구 정비, 청년안심주택 확대 등이 그 흐름 안에 있다. 국민의힘이 다수를 차지했던 제11대 서울시의회는 오 시장의 역점 사업 추진에 비교적 우호적인 의회 환경이었다. 그러나 새 시의회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사업의 필요성과 속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재정 부담, 공공성, 주민 수용성, 도시 경관, 공급 효과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이미 비슷한 장면은 있었다. 오 시장은 2021년 보궐선거로 서울시에 복귀한 뒤 민주당이 우위였던 시의회와 여러 차례 충돌했다. 지천르네상스 사업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서울의 지천을 생활권 수변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당시 시의회는 기본 구상과 시급성을 문제 삼았다. 상생주택 사업도 예산 삭감 논란을 겪었다. 민간 토지를 활용해 장기전세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취지였지만 당시 시의회는 사업 절차와 재정 투입의 적정성을 문제 삼았다. 의회 문턱을 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갈등은 앞으로의 예고편에 가깝다. 서울 부동산 정책은 언제나 개발과 보존, 공급과 공공성, 속도와 절차 사이에서 움직인다. 시장은 공급 확대와 도시 경쟁력을 앞세우고 의회는 예산과 절차, 공공성을 따진다. 어느 한쪽만 옳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대형 개발사업일수록 정치적 동의 없이 오래 가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업성이 높아도 설명이 부족하면 논란이 커지고 공공성이 강조돼도 현실성이 떨어지면 현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새 시의회 출범 이후 가장 먼저 주목할 곳은 세운4구역이다. 종묘 인근 세운4구역 개발은 서울 도심 재편의 상징적 사업이다. 낡은 도심을 정비하고 업무·상업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반면 종묘 경관과 역사문화 보전 문제도 가볍게 다룰 수 없다. 이 사안은 개발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도심의 노후 공간을 어떻게 바꾸되 역사적 경관을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의 문제다. 새 시의회가 이 문제를 정쟁으로 끌고 가면 해법은 멀어진다. 서울시도 사업성만 앞세우는 방식으로는 동의를 얻기 어렵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역시 서울 부동산 시장의 핵심 변수다. 용산은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개발지로 불린다. 국제업무 기능과 주택 공급, 교통 인프라, 공공기여가 한꺼번에 얽혀 있다. 공급 물량을 얼마나 늘릴 것인지, 학교와 도로 등 기반시설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개발 이익을 어디까지 공공에 환원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숫자 경쟁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서울시가 도시 경쟁력을 말한다면 시의회는 생활 기반과 공공성을 따질 것이다. 이 둘을 조정하지 못하면 용산 개발은 다시 정치적 논란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주택 공급의 핵심은 결국 정비사업이다.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지 않고 서울의 주택난을 풀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비사업에는 집값 상승 기대와 세입자 보호, 임대주택 확보, 공사비 부담, 조합 갈등이 동시에 따라붙는다. 오 시장이 정비사업 활성화를 강조할수록 민주당 시의회는 공공성과 주거 안정 장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이 생산적인 견제가 되면 정책은 정교해진다. 반대로 정치적 충돌로 흐르면 공급 일정만 늦어진다. 청년안심주택도 새 시의회의 검증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는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재원과 공급 방식, 보증금 지원의 안전성이다. 주거 취약층을 위한 정책일수록 더 정밀해야 한다. 실제 수혜자가 누구인지, 임대료 부담은 얼마나 낮아지는지, 민간사업자와 공공의 부담은 어떻게 나뉘는지 따져야 한다. 청년 주거정책은 선의만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지속 가능한 재원과 집행의 투명성이 따라야 한다. 민주당 시의회의 책임도 작지 않다. 의석이 많다는 것은 제동을 걸 권한이 커졌다는 뜻만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해야 할 책임도 함께 커졌다는 의미다. 서울의 주택 공급 부족은 이미 시민 생활의 압박으로 돌아오고 있다. 전세와 월세 부담, 청년 주거 불안, 노후 주거지의 안전 문제는 정당의 유불리보다 앞선다. 다수 의회가 견제라는 이름으로 모든 개발사업을 막아선다면 시민은 이를 균형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삭감과 반대만으로는 다수당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오 시장도 달라져야 한다. 5선 시장의 경험은 강점이지만 동시에 부담이다. 오래 시정을 이끌었다는 것은 더 많은 성과를 요구받는다는 뜻이다. 서울 부동산 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일정과 숫자, 재원과 인허가로 평가된다. 재건축 규제 완화와 도심 개발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공성의 언어가 빠지면 의회의 벽을 넘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발표가 아니라 설득이고 속도전이 아니라 조율이다. 서울 부동산 시장은 정치적 신호에 민감하다. 시의회 구도가 바뀌었다고 당장 사업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업 인허가와 예산, 조례 논의가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만으로도 시장은 반응한다. 개발 기대가 큰 지역은 속도 조절 가능성을 따질 것이고 정비사업장은 공공기여와 임대주택 비율, 기반시설 부담 논의를 더 예민하게 볼 것이다. 정치의 변화는 결국 현장의 비용과 시간으로 이어진다. 이번 선거의 서울 민심은 한쪽에 백지위임을 한 것이 아니다. 오 시장에게는 계속 일할 기회를 줬고 민주당 시의회에는 견제의 힘을 실었다. 이 선택은 불편한 동거를 뜻한다. 그러나 지방자치에서 불편한 동거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제대로 작동하면 정책은 더 정교해지고 잘못 작동하면 사업은 늦어지며 시민 부담은 커진다. 서울시정의 첫 시험대는 부동산이다. 세운4구역과 용산국제업무지구, 재개발·재건축, 청년안심주택은 모두 서울의 미래와 시민의 주거비를 동시에 건드리는 사안이다. 시민이 보고 싶은 것은 승자의 목소리나 다수당의 힘자랑이 아니다. 서울의 집값과 주거 안정, 도시 경쟁력을 어떻게 함께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다. 오 시장은 이겼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은 이겼지만 반대만으로는 평가받을 수 없게 됐다. 이번 선거가 남긴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 서울 부동산 시계는 이제 속도보다 설득의 시간이 왔다. 협치는 구호로 증명되지 않는다. 예산과 조례, 정비사업의 우선순위에서 증명된다. 서울의 다음 4년은 그 증명의 시간이다.
2026-06-06 13:18:56
-
1000만 노인 앞 7장의 투표용지… 선관위의 '합법적 방치'
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교육감 등 대부분의 유권자는 이날 최대 7장의 투표용지를 받는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과 달리 선출하는 대상이 많고 구조가 복잡하다. 1995년 지방선거가 부활한 이래 투표율이 가장 낮은 선거로 꼽혀온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복잡성이 특정 유권자 집단에게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실질적인 참정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는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선 지금, 고령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20%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이 투표소에서 겪는 현실적 장벽은 선거 제도 설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7장의 투표용지 — 복잡성은 설계의 문제다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매수는 선거구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다수 유권자는 5장에서 7장을 받는다. 광역단체장 1장, 기초단체장 1장, 광역의회 지역구 1장, 광역의회 비례대표 1장, 기초의회 지역구 1장, 기초의회 비례대표 1장, 교육감 1장이다. 각각의 선거에서 기표 방식이 미묘하게 다르고, 특히 기초의원 선거의 경우 같은 정당 소속 후보가 여러 명 나오는 중선거구제가 적용돼 그중 한 명에게만 기표해야 한다. 이 구조는 선거 제도를 잘 아는 유권자에게도 혼란을 줄 수 있다. 복수 후보에게 기표하면 무효표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정당의 여러 후보 모두에게 기표하는 사례가 실제로 반복 발생해왔다. 인지 기능이 저하된 고령 유권자, 지방선거 경험이 적은 유권자일수록 이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중앙선관위의 고령 유권자 대응 — 현황과 한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거동이 불편한 유권자를 위해 거소투표(우편투표), 임시기표소 설치, 투표보조인 동반 등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와 투표 보조용구도 제공한다. 제도의 존재 자체는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제도의 존재와 제도의 도달은 다른 문제다. 거소투표는 신청 기한이 있고, 신청 방법을 모르면 이용할 수 없다. 투표보조인 제도도 마찬가지로 유권자가 먼저 요청해야 한다. 디지털 정보 접근성이 낮은 고령 유권자일수록 이 제도들의 존재를 접하기 어렵다. 이번 선관위 유권자 의식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78.1%에 달했지만, 의지와 실제 투표 참여 사이를 가로막는 접근성 장벽은 별도로 측정되지 않는다. 제도가 있다고 접근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고령 유권자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의 목록이 아니라 제도가 그들에게 닿는 경로다. 지방선거가 특히 더 어려운 이유 고령 유권자가 대선이나 총선보다 지방선거를 더 어렵게 느끼는 데에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첫째, 선출 대상이 다수여서 각 투표용지의 의미를 구분해야 한다. 둘째, 교육감 선거는 정당 표시 없이 후보자 이름만 나오는 경우가 많아 사전 정보 없이 투표소에서 즉각 판단하기 어렵다. 셋째, 지역구 의원 선거는 선거구 범위가 주민 생활권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내 지역구 후보'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2022년 8회 지방선거 투표율은 50.9%로 역대 지방선거 중 두 번째로 낮았다. 낮은 투표율의 원인으로는 정치적 피로도와 선거 구조의 복잡성이 함께 거론됐다. 고령 유권자의 투표율과 무효표 비율이 연령대별로 어떻게 분포하는지에 대한 공식 분석은 공개되지 않는다. 측정하지 않으면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선거 접근성은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선거 접근성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토대에 관한 문제다. 투표할 의사가 있는 유권자가 제도의 복잡성과 정보 접근성 부재로 인해 실질적으로 배제된다면, 이는 선거 제도 설계의 실패다. 고령 인구가 전체 유권자의 20%에 달하는 지금, 이 집단의 참정권 접근성은 선거 정책의 핵심 의제가 돼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세 가지 조치가 검토될 수 있다. 첫째, 투표용지 수와 기표 방식을 쉬운 언어와 그림으로 설명하는 고령자 맞춤 안내물을 투표소 전 단계에서 의무 배포하는 것이다. 둘째, 거소투표와 투표보조인 신청 안내를 노인맞춤돌봄서비스와 경로당 네트워크를 통해 사전 전달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셋째, 연령대별 무효표 비율과 고령 유권자 투표 참여 실태를 선관위가 공식 집계하고 공개하는 것이다. 측정 없이는 개선도 없다. 6·3 지방선거까지 사흘이 남았다. 이번 선거에서 고령 유권자 접근성 문제가 해소될 여지는 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끝난 후, 1000만 노인 시대의 선거 제도가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7장의 투표용지는 민주주의의 풍요로운 증거일 수 있다. 동시에 그 앞에서 포기하게 만드는 장벽이기도 하다.
2026-05-31 17:00:00
-
'26년 아성' 수성이냐, '제2공항' 탈환이냐…'안갯속' 서귀포 재보선
[경제일보]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주 서귀포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제주 정가의 최대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3선 의원인 위성곤 전 의원이 제주도지사 출마를 위해 사퇴하며 공석이 된 자리로 단순히 의석 하나를 넘어서는 ‘제주 정치의 심장부’를 둔 자존심 대결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해양수산 행정 전문가인 김성범 전 차관,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에서 석패한 고기철 전 제주도당위원장을 각각 전략공천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서귀포는 지난 2000년 16대 총선 이후 26년간 민주당이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민주당의 아성’이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심상치 않다. 2024년 총선 당시 위성곤 후보(54.0%)와 고기철 후보(45.99%)의 격차는 8.01%포인트에 불과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충분히 가시권에 들어온 ‘탈환 가능 지역’인 셈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제주도지사 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며 ‘위성곤 변수’가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 높은 정당 지지도를 바탕으로 위 전 의원의 조직력을 승계하려는 김 후보와 ‘민주당 장기 집권 피로감’을 파고들며 제2공항이라는 실익을 내세운 고 후보의 전략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후보들의 면면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김 후보는 해양수산부 요직을 거친 ‘정통 관료’ 출신임을 전면에 내세운다. 서귀포의 바다와 숲을 잇는 해양치유·산림휴양 관광벨트 조성, 헬스케어타운 정상화, 재생에너지와 AI를 결합한 미래 먹거리 육성 등이 그의 핵심 카드다. 행정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의 예산을 끌어올 ‘실행력 있는 적임자’라는 논리다. 반면, 고 후보는 제2공항 조속 추진을 통한 지역경제의 극적인 반등을 약속한다. 서귀포 혁신도시에 한국마사회를 유치하고 레저·스포츠 복합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은 지역 경제 침체를 우려하는 유권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농어민수당 월급제 도입과 물류 지원 확대 등 민생 밀착형 공약 역시 강력한 ‘탈환’의 의지를 보여준다. 제2공항이 가를 승부의 추…투표용지 5장의 변수 가장 큰 쟁점은 단연 제주 제2공항이다. 두 후보 모두 추진에는 찬성하지만, 속도와 방법론에서 결을 달리한다. 김 후보는 ‘절차적 신뢰와 도민 합의’에 무게를 두는 반면, 고 후보는 제2공항을 제주 성장의 ‘신성장 동력’으로 규정하고 조기 추진을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앞서 2022년 대선 당시 성산읍에서 보수 성향 후보가 압도적 우위를 점했던 선례를 볼 때, 동부권 표심이 이번 보선의 캐스팅보트가 될 전망이다. 최근 KBS제주방송총국 의뢰해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KBS제주방송총국 의뢰, 한국리서치, 2026년 4월 13~14일, 제주도 내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무선전화 안심번호 면접조사 방식, 응답률 27.9%,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제주 내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68%)이 국민의힘(9%)을 크게 앞서고 있다. 하지만 서귀포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도의원 의석을 양당이 5:5로 양분했을 만큼 바닥 민심의 지형이 팽팽하다. 지방선거와 보궐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도지사, 교육감, 도의원, 비례대표, 국회의원 보궐까지 5장의 투표용지가 유권자 앞에 놓인다. 표심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성범 ‘전문성’ vs 고기철 ‘재도전 서사’…조직의 민주당 vs 추진력의 국민의힘 두 후보의 대결은 단순한 인물 경쟁을 넘어 전략적 지향점이 명확히 갈리는 한판승부다. 김 후보의 핵심 자산은 해양수산부 차관을 지낸 풍부한 행정 경험과 중앙정부 네트워크다. 여기에 위 전 의원이 다져놓은 견고한 지역 기반은 든든한 버팀목이다. 다만, 선출직 경험이 전무한 ‘신인’으로서 전략공천에 따른 유권자의 낯섦을 얼마나 빠르게 해소하느냐가 숙제다. 제주 전역의 높은 정당 지지도와 위 전 의원과의 ‘러닝메이트 효과’는 강력한 기회 요인이지만, 제2공항 조기 추진을 갈망하는 성산·동부권의 반감과 지역 밀착성 검증 요구는 위협 요소로 꼽힌다. 고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증명한 45.99%의 득표력과 꾸준히 관리해 온 바닥 민심이 최대 강점이다. 제2공항 추진에 대한 선명한 입장은 그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반면, 제주 내 국민의힘 약세라는 구도적 한계는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어업·관광 침체에 따른 ‘정권 교체론’의 불씨와 동부권의 보수 성향은 반전을 꾀할 기회다. 다만, 민주당이 제기한 당직자 관련 의혹 공세 등 도덕성 프레임과 상대 후보의 컨벤션 효과를 어떻게 차단하느냐가 당면 과제다. 두 후보의 정책 대결은 ‘미래’와 ‘현실’의 접점에서 격돌한다. 김 후보는 해양치유, 산림휴양, 헬스케어타운을 재생에너지와 AI로 엮어 ‘서귀포 미래 산업의 재설계’를 꿈꾼다. 행정가로서의 치밀함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의 예산을 끌어들여 서귀포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복안이다. 고 후보는 제2공항 조기 추진을 필두로 한국마사회 이전, 레저·스포츠 복합클러스터 조성 등 ‘멈춘 지역경제의 재가동’에 방점을 찍는다. 농어민수당 월급제와 물류 지원 등 피부에 닿는 생활밀착형 공약을 통해 지역 경제의 ‘체감 온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김 후보가 거시적 행정력을 앞세운다면, 고 후보는 미시적 생활 경제의 절박함을 파고드는 모양새다. 결국 이번 선거의 승패는 성산읍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의 ‘제2공항 표심’, 감귤과 수산업, 관광업 종사자들이 느끼는 ‘생활 경제의 체감도’,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위 전 의원의 선전이 김 후보에게 줄 ‘낙수 효과’ 크기 등 세 갈래의 승부처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제주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제주 서귀포 재보궐 선거는 민주당에는 26년 아성을 지키는 수성전이자 국민의힘에는 제주 정치의 발판을 다시 마련하는 탈환전”이라며 “행정가의 실행력으로 ‘위성곤 이후’를 안정적으로 잇느냐, 아니면 공항 추진론으로 견고한 민주당 구도에 균열을 내느냐가 관전 포인트”라고 했다.
2026-05-13 14:4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