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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PEF 운용사 30곳 내부통제 점검…준법감시·이해상충 집중
[경제일보] 금융감독원이 기관전용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내부통제 실태 점검에 나선다. 지난 3월 표준내부통제기준 발표 이후 실제 운영 현황을 확인하고 자율적인 내부통제 체계 정착을 유도하려는 취지다. 금감원은 이달부터 PEF 운용사의 내부통제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모범사례 전파와 개선 필요사항 지도를 순차적으로 진행한다고 12일 밝혔다. 점검 대상은 국내 등록 전업 PEF 운용사 약 30곳이다. 이들 운용사는 국내 전업 PEF 운용사 총 약정액의 46.5%를 차지한다. 금감원은 주요 대형 무한책임사원(GP)을 중심으로 점검 대상을 선정하되 감독업무 과정에서 점검 필요성이 포착된 회사와 중소형사도 균형 있게 포함할 계획이다. 이번 점검은 내규 마련 등 형식적 이행 여부에 그치지 않는다. 내부통제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는지까지 살핀다. 예를 들어 준법감시인이 형식적으로 임명됐는지뿐 아니라 경력과 지위 등을 고려해 내부통제 담당자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도 확인한다. 점검은 서면점검과 현장점검을 병행한다. 전체 점검대상 회사에는 체크리스트 등을 통해 관련 내규와 이행 실적을 제출받아 서면으로 점검한다. 대형 GP 등 일부 회사에 대해서는 담당자 면담과 현장점검도 진행한다. 중점 점검 분야는 총 5개다. 금감원은 △내부통제 관련 조직·체계 △준법감시인 운영 △정보교류 관리 △이해상충 평가 △임직원 금융투자상품 거래 관리 등을 집중적으로 살필 예정이다. 내부통제 조직·체계 분야에서는 내부통제기준 제정 여부와 대표이사·이사회 역할, 내부통제 관련 사고 발생 시 보고 및 대응 절차 등을 확인한다. 준법감시인 운영에서는 임면 절차의 적정성, 경력, 직위와 보상체계, 업무수행 실적 등을 점검한다. 정보교류 관리와 관련해서는 부서 간 공간 분리, 전산 접근권한 차등화, 정보 외부 유출 관리체계 등을 살핀다. 이해상충 평가 분야에서는 이해상충을 파악하고 평가하는 절차와 보고체계, 이해상충 발생 시 처리 방안을 확인한다. 임직원 금융투자상품 거래 관리에서는 계좌개설 신고와 매매내역 보고 관리 현황 등을 점검한다. 직원 교육과 내부고발제도 운영 현황도 점검 대상이다. 금감원은 조직 내부통제 문화 정착을 위한 경영진의 노력도 함께 볼 계획이다. 앞서 금감원은 PEF 신뢰 회복을 위해 제도 개선과 자율규제 역량 강화 작업을 추진해 왔다. 지난 1월 PEF 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윤리경영 실천 등 사회적 책임 이행을 당부했고 3월에는 내부통제 워크숍을 열어 기관전용 사모펀드 업무집행사원 표준내부통제기준을 발표했다. 표준내부통제기준은 GP의 내부통제 조직, 임직원이 업무수행 때 지켜야 할 기준과 절차, 준수 여부 자율점검 등으로 구성됐다. 주요 내용에는 대표이사 역할과 책임, 준법감시담당자 자격과 역할, 정보교류차단 의무화, 이해상충 방지체계, 내부고발제도 운영, 임직원 자기매매 점검 등이 포함됐다. 금감원은 이번 점검 결과에 따라 모범·미흡 사례를 공유하고 회사별 개선을 지도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PEF 운용사 전반의 내부통제 역량을 높이고 최근 사회적 물의를 초래한 내부통제 실패 사례의 재발을 예방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제도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표준내부통제기준 등에 반영한다. 금감원은 점검대상 확대와 내부통제 수준에 따른 감독·검사 차등화 등을 통해 기관전용 사모펀드가 양적·질적으로 균형 있게 성장하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2026-10-12 14: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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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쟁 '한 우물' 피터앤김 vs 글로벌 연합 KL파트너스
[경제일보] 수조원이 걸린 국제중재에서는 로펌의 변호사 숫자만으로 승부가 갈리지 않는다. 수백명 이상의 변호사를 둔 대형 로펌과 수십명 규모의 전문 로펌이 같은 사건을 놓고 경쟁한다. 국제중재 경험과 해외 변론 능력이 필요한 만큼 특정 분야만 깊게 파고든 로펌이 대형 로펌과 맞설 수 있는 시장이다. 법률시장에서는 이런 전문 로펌을 ‘부티크 펌(Boutique Firm)’이라고 부른다. 기업 인수·합병과 금융, 조세, 형사, 노동 등 거의 모든 법률업무를 다루는 종합로펌과 달리 특정 분야에 인력과 경험을 집중한다. 규모보다 전문성을 앞세우고 사건을 맡은 파트너가 직접 실무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국제중재 시장의 대표적인 부티크 펌으로 피터앤김과 KL파트너스가 꼽힌다. 두 곳 모두 대형 로펌에서 국제분쟁을 다룬 변호사들이 주축이지만 성장법은 다르다. 피터앤김은 국제분쟁에 집중한 채 자기 이름으로 해외 사무소를 늘렸고 KL파트너스는 국제중재와 기업자문을 함께 가져가면서 글로벌 로펌 베이커맥켄지와 손잡았다. 한쪽은 직접 세계로 나갔다. 다른 한쪽은 세계적인 로펌의 네트워크를 서울로 끌어왔다. 국제중재 부티크 시장을 두고 피터앤김과 KL파트너스가 벌이는 첫 번째 싸움이다. ◆ 자체 해외망 피터앤김 vs 글로벌망 붙인 KL 피터앤김의 선택은 직접 진출이다. 2020년 출범한 뒤 서울을 비롯해 스위스 제네바·취리히와 싱가포르, 호주 시드니·퍼스까지 6곳에 사무소를 냈다. 해외 로펌과 제휴해 사건을 넘기는 대신 주요 국제중재 거점에 자기 간판을 달았다. KL파트너스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2015년 설립된 뒤 국제중재와 기업 인수·합병을 주력으로 삼았고 2023년 베이커맥켄지와 합작법무법인을 만들었다. 국내 로펌과 미국계 글로벌 로펌이 만든 첫 합작법무법인이다. 베이커맥켄지는 세계 70개가 넘는 사무소를 두고 있다. KL파트너스는 각국에 자기 사무소를 하나씩 만드는 대신 베이커맥켄지의 해외 변호사와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현재 합작법인은 국제중재와 소송뿐 아니라 기업 인수·합병과 조세, 에너지·인프라 등도 함께 다룬다. 피터앤김은 해외 거점의 통제권과 브랜드를 직접 가져간다. KL파트너스는 사무소를 직접 늘리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곧바로 사용한다. 어느 방식이 해외 사건을 더 많이 가져올지는 앞으로 수임 실적에서 갈린다. ◆ 국제분쟁 집중 피터앤김 vs M&A까지 넓힌 KL 업무를 넓히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피터앤김은 출범 이후 국제중재와 국제분쟁이라는 영역에 힘을 모았다. 기업 간 상사중재뿐 아니라 투자자와 국가 사이의 분쟁과 중재판정 관련 소송까지 다룬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2026년 한국 국제중재 분야에서 피터앤김을 최고등급인 Band 1에 올렸다. 국제중재 전문매체 GAR도 피터앤김을 2025년 세계 주요 국제중재 로펌 30곳 가운데 26위로 평가했다. 2020년 출범 이후 5년 가운데 4차례 GAR 30에 이름을 올렸다. 변호사 숫자가 많은 종합로펌이 아니라 국제중재 사건의 규모와 수행시간 등을 토대로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부티크 전략을 보여준다. KL파트너스도 출발점에는 국제중재가 있었다. 김범수 대표변호사는 세종에서 16년간 일하며 국제분쟁팀장을 지냈고 국제상업회의소(ICC)와 싱가포르국제중재원(SIAC),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 등의 사건을 수행했다. 투자자·국가 분쟁도 주요 업무다. 다만 KL파트너스는 국제중재만 남겨두지 않았다. 설립 때부터 기업 인수·합병을 함께 키웠고 베이커맥켄지와 합작한 뒤 기업자문과 조세, 에너지·인프라까지 해외 네트워크와 연결했다. 피터앤김이 국제분쟁의 깊이를 더하는 동안 KL파트너스는 국제분쟁에서 확보한 고객의 다른 법률 수요까지 가져가는 전략이다. ◆ 파트너 직접 투입…결국 사람 싸움 두 곳이 대형 로펌과 맞설 수 있는 무기는 결국 사람이다. 국제중재는 한 사건이 몇 년씩 이어지기도 한다. 계약서와 증거를 분석하고 외국법을 검토한 뒤 해외 중재판정부에서 영어로 직접 변론해야 한다. 사건 경험이 많은 파트너가 실제 사건 수행에서 얼마나 오래 관여하느냐가 중요하다. 피터앤김은 사건마다 파트너가 참여하는 전담팀을 구성하는 방식을 내세운다. 서로 다른 국가와 법체계에서 경험을 쌓은 변호사를 사건 성격에 따라 묶는다. 서울 사무소뿐 아니라 유럽과 싱가포르, 호주의 변호사들이 한 사건에 함께 참여한다. 올해도 사람을 늘렸다. 지난 7월 광장과 화우에서 약 15년간 근무한 김진욱 변호사가 파트너로 합류했고 9월에는 김앤장 국제중재팀에서 10년간 일한 최준학 변호사를 영입했다. 싱가포르에서도 국제중재 경력 20년 안팎의 엘로디 둘락 변호사를 파트너로 데려왔다. KL파트너스의 무기는 김범수 대표를 비롯한 자체 중재팀과 베이커맥켄지의 해외 인력이다. 한국법 문제는 서울에서 맡고 외국법과 현지 규제가 걸리면 해외 사무소를 붙일 수 있다. 2026년 7월부터는 조세·통상 전문가 곽장운 변호사가 합작법인의 한국 대표를 맡아 조직 확대를 이끌고 있다. 피터앤김은 국제중재 스타 변호사를 자기 조직으로 끌어들인다. KL파트너스는 자체 전문가에 글로벌 로펌 인력을 붙인다. 두 전략 모두 결국 좋은 변호사를 얼마나 빨리 사건에 투입하느냐의 싸움으로 모인다. ◆ 굵직한 국제분쟁 놓고 실적 경쟁 피터앤김은 고액 국제분쟁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교보생명과 어피니티·GIC 등이 벌인 주주 간 분쟁에서는 사모펀드 측을 대리해 유리한 중재판정과 합의를 이끌었다. 체임버스는 이 사건을 피터앤김의 대표 업무로 소개하고 있다. 투자자·국가 분쟁도 다룬다. 기업 간 계약분쟁만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한 투자중재와 국제공법까지 업무 범위를 가져가고 있다. 건설과 에너지, 자원개발, 기업 인수·합병 등 국제중재가 많이 발생하는 산업도 주요 시장이다. KL파트너스 역시 투자자·국가 분쟁 경험을 쌓아왔다. 김범수 대표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미국·유럽 투자자의 분쟁을 비롯해 ICC와 SIAC, HKIAC 등 여러 국제중재 사건을 수행했다. 대형 로펌 세종의 국제분쟁팀장을 떠나 부티크를 만든 뒤 같은 시장에서 독자적인 고객을 확보했다. 여기에 기업 인수·합병이 붙는다. 베이커맥켄지와의 합작 이후에는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와 외국 기업의 한국 진출을 중재·송무와 연결할 수 있다. 국제분쟁이 터진 뒤 사건을 가져오는 것뿐 아니라 거래 단계부터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KL파트너스의 계산이다. ◆ ‘한 우물’이냐 ‘두 시장’이냐 부티크 펌에는 성장할수록 피하기 어려운 선택이 있다. 잘하는 분야에 계속 집중할지 아니면 고객이 요구하는 다른 업무까지 받을지 정해야 한다. 피터앤김은 아직 첫 번째 길을 택하고 있다. 사무소는 6곳까지 늘었지만 중심 업무는 국제중재와 국제분쟁이다. 해외로 나가면서도 종합로펌으로 바꾸지 않고 분쟁 전문 로펌이라는 간판을 유지한다. KL파트너스는 두 번째 길로 움직이고 있다. 국제중재라는 출발점은 유지하면서 기업 인수·합병과 송무 등으로 업무를 넓혔다. 베이커맥켄지와의 합작법인은 조세와 에너지·인프라까지 다루면서 종합적인 국제 기업자문 조직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위험도 다르다. 피터앤김은 국제중재 시장이 흔들리면 다른 업무로 매출을 보완하기 어렵다. KL파트너스는 영역을 넓힐수록 ‘국제중재 전문 부티크’라는 기존 색깔이 약해질 수 있다. 한 곳은 전문성을 더 좁고 깊게 가져간다. 다른 곳은 전문성을 발판으로 고객의 다른 사건까지 가져간다. 부티크 펌이 커지는 두 가지 방법이 국내 국제중재 시장에서 동시에 시험대에 올라 있다. ◆ 다음 승부는 ‘한국 밖의 사건’ 두 펌 모두 한국 국제중재 시장에서 이름을 알렸다. 다음 싸움은 한국 기업이나 한국 정부가 당사자인 사건을 넘어 제3국 기업과 정부의 분쟁을 얼마나 가져오느냐에 있다. 피터앤김에는 자체 해외 사무소가 무기다. 스위스와 싱가포르, 호주에 직접 변호사를 두고 있어 한국과 관계없는 국제분쟁도 자기 브랜드로 받을 수 있다.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을 연결하는 국제분쟁 로펌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KL파트너스에는 베이커맥켄지의 70여개 해외 사무소가 있다. 세계 각지의 고객을 서울로 연결하고 한국 기업의 해외 사건을 현지 사무소와 함께 가져올 수 있다. 2026년 새 한국 대표 선임 이후 합작법인도 해외 기업의 한국 투자와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을 성장 방향으로 제시했다. 피터앤김은 자기 간판을 들고 세계로 나갔다. KL파트너스는 세계적인 간판과 손을 잡고 서울에서 세계를 연결한다. 국제중재 부티크 시장에서 두 펌의 승부는 이제 국내 순위로 가리기 어렵다. 어느 쪽이 더 많은 국경 밖 사건을 반복해서 수임하느냐가 다음 성적표가 된다.
2026-10-02 0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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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에서 400명으로…지평, 공익·해외개척으로 키운 26년
[경제일보] 2000년 4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강금실 변호사와 법무법인 세종을 나온 젊은 변호사들이 새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출발 인원은 한국 변호사 10여 명이었다. 이미 김앤장과 광장, 태평양, 세종 등이 기업법무 시장에 자리 잡고 있던 때였다. 새 로펌은 처음부터 조금 다른 말을 꺼냈다. 일을 잘하는 로펌과 함께 민주적이고 윤리적이며 공익적인 조직을 만들겠다고 했다. 설립과 동시에 공익위원회를 만들고 공익활동 규정과 윤리헌장도 마련했다. 법무법인 지평의 출발이었다. 26년이 지난 지금 지평에는 변호사와 외국변호사, 각 분야 전문가 등 400명가량이 일한다. 2025년 국내 법무법인 매출은 1327억원으로 전년보다 10.03% 늘었고 특허법인과 해외사무소를 합친 매출은 1500억원을 넘어섰다. 2000년대 초 신생 로펌이던 지평은 이제 대형 로펌 바로 아래에서 경쟁하는 중견 대형로펌으로 올라섰다. 지평이 걸어온 길에는 다른 대형 로펌과 다른 선택이 여러 번 있었다. 초창기에는 벤처와 M&A를 파고들었고 해외에서는 뉴욕이나 런던보다 베트남과 중국, 캄보디아 같은 신흥시장으로 먼저 향했다. 규모가 필요할 때는 합병도 했지만 공익활동과 구성원 중심의 운영방식은 그대로 가져갔다. ◆ 강금실과 젊은 변호사들이 만든 새 로펌 창립을 주도한 사람은 양영태·김상준·임성택 변호사 등이었다. 양영태 변호사는 1995년 세종에 입사해 금융과 증권, 보험, M&A와 각종 송무를 담당하다 2000년 지평 설립에 참여했다. 임성택 변호사 등도 당시 기존 대형 로펌에서 일하던 젊은 법률가였다. 강금실 변호사가 대표로 합류하면서 신생 로펌의 이름도 빠르게 알려졌다. 당시 지평이 노린 시장 가운데 하나는 벤처기업이었다. 인터넷과 정보기술 기업이 빠르게 생겨나던 시기였지만 이들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로펌은 많지 않았다. 지평은 출범 당시부터 벤처기업의 투자와 기업공개, 인수·합병 등을 주요 업무로 내걸었다. 당시 언론에는 ‘벤처전문 로펌’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작은 조직이 이름을 알리는 데는 사건이 필요했다. 2005년 지평은 당시 국내 M&A 시장의 대형 거래였던 하이트맥주의 진로 인수에 참여했다. 거래 규모는 3조4000억원에 달했다. 설립 5년 만에 대기업 M&A 시장에서 이름을 올렸다. 송무에서도 실적을 쌓았다. 설립 당시 10명 남짓했던 한국 변호사는 2004년 35명, 2006년 43명으로 늘었다. 기업자문과 송무를 함께 키우면서 신생 로펌에서 종합로펌으로 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시작했다. ◆ 뉴욕 대신 베트남으로 갔다 지평의 성장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해외시장이다. 국내 대형 로펌들이 미국과 영국의 유수 로펌과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힘을 쏟을 때 지평은 한국 기업이 실제 투자를 늘리던 아시아 신흥시장으로 변호사를 보냈다. 양영태 변호사는 2006년 말부터 베트남에 장기 체류하며 현지 법인 설립을 준비했다. 2007년 호찌민과 중국 상하이에 사무소를 열었고 2009년에는 하노이와 캄보디아 프놈펜,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거점을 넓혔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미얀마 양곤에도 차례로 진출했다. 한국 기업들이 생산시설과 판매망을 찾아 동남아시아로 움직이던 시기였다. 국내 본사에서 현지 로펌을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에 직접 사무소를 두고 한국 기업을 따라간 것이 지평의 선택이었다. 해외 사무소에는 현지 법률가들도 함께 배치했다. 2024년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사무소를 열었다. 배터리와 자동차 등 한국 기업의 중동부유럽 투자가 늘어난 데 따른 결정이었다. 헝가리까지 더하면서 해외 네트워크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확장됐다. 현재 지평은 8개국에 9개 해외 거점을 두고 있다. 국내 대형 로펌 가운데 해외 사무소 숫자가 많은 곳으로 꼽힌다. 김앤장이나 빅5보다 변호사 숫자는 적지만 신흥시장 현지 네트워크에서는 일찍부터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었다. ◆ 2008년 지성과 합병해 단숨에 100명 넘어 자체 성장만 고집한 것은 아니다. 2008년 지평은 법무법인 지성과 합병을 결정했다. 그해 5월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합병을 발표했고 9월 법무법인 지평지성이 출범했다. 합병 당시 두 로펌을 합친 변호사는 125명이었다. 한국 변호사 104명과 외국 변호사 21명이 한 조직에 들어오면서 당시 국내 7위 규모로 올라섰다. 출범 8년 만에 변호사 100명대의 대형로펌이 됐다. 업무도 보강됐다. 지평이 M&A와 기업소송, 해외업무에 강점이 있었다면 지성은 M&A와 노동, 금융자문 분야의 경험을 갖고 있었다. 합병 뒤 금융 전문인력도 늘었고 대형 M&A와 공기업 민영화처럼 여러 분야가 얽힌 업무를 함께 맡을 여건이 만들어졌다. 통합 법인은 한동안 ‘지평지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2014년 다시 법무법인 지평으로 사명을 바꿨다. 두 조직을 합쳐 몸집은 키웠지만 브랜드는 창립 때 사용했던 ‘지평’으로 돌아왔다. ◆ 돈 버는 일과 공익을 따로 놓지 않았다 지평을 다른 로펌과 구별해온 또 다른 축은 공익활동이다. 설립 당시부터 공익위원회를 운영했고 변호사의 공익활동을 조직 차원에서 관리했다. 로펌이 어느 정도 성장한 뒤 사회공헌 조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창립 때부터 회사 운영의 한 부분으로 넣었다. 2014년에는 공익법단체 사단법인 두루를 설립했다. 로펌 변호사들이 본업을 하면서 시간을 내는 방식에서 더 나아가 공익사건을 전업으로 맡는 변호사 조직을 따로 만든 것이다. 두루는 장애와 아동·청소년, 사회적 경제, 국제인권 등에서 소송과 입법 활동을 해왔다. 2015년에는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공익활동보고서를 냈고 2018년에는 사회책임보고서를 발간했다. 기업 고객에게 요구되는 환경과 인권, 지배구조 문제를 로펌 자신의 운영에도 적용하려는 시도였다. 공익은 훗날 새로운 법률시장과도 연결됐다. 기업들이 인권과 환경, 공급망 관리 문제를 경영 리스크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지평이 오래 다뤄온 인권과 사회적 가치 문제가 기업자문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공익에서 ESG 사업으로 지평은 2019년 인권경영팀을 만들었다. 이듬해 환경팀과 컴플라이언스팀 등을 합쳐 ESG센터를 출범시켰다. 변호사뿐 아니라 인권과 환경, 지속가능경영을 다루는 컨설턴트와 전문위원을 함께 배치했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영문 첫 글자를 딴 말이다. 기업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만 보지 않고 환경과 노동·인권, 지배구조까지 함께 평가하는 경영 기준이다. 지평은 기업의 인권·환경 실사와 공급망 관리, 지속가능경영 전략, 해외 규제 대응까지 업무를 넓혔다. 이 과정에는 지평이 창립 때부터 강조해온 공익활동 경험이 활용됐다. 장애인이나 아동의 권리를 다루던 공익 업무와 기업 인권실사는 성격이 다르지만 인권을 법률 문제로 다뤄온 경험은 기업 자문에도 이어졌다. 공익활동과 기업자문 사이에 새로운 시장이 생긴 것이다. 지평은 ESG센터를 법률자문에만 묶어두지 않았다. 비변호사 컨설턴트를 영입해 기업의 정책 수립과 평가, 실사까지 맡도록 했다. 최근 대형 로펌들이 변호사 외 전문가를 늘리는 흐름을 지평은 ESG 분야에서 일찍 시험했다. ◆ 퀄컴 10년 소송으로 공정거래 이름 알려 지평의 성장에는 장기 소송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미국 반도체기업 퀄컴과 공정거래위원회의 1조원대 과징금 소송이다. 공정위가 2009년 퀄컴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을 문제 삼아 과징금을 부과하자 퀄컴은 행정소송을 냈다. 지평은 공정위를 대리해 10년 넘게 소송을 수행했고 최종적으로 공정위 측 승소를 이끌었다. 현재 공동집행대표인 김지홍 변호사도 이 사건을 맡았다. 공정거래는 이후 지평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의 2026년 평가에서도 김지홍 대표는 국내 공정거래 분야 주요 변호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평 전체로는 기업·M&A와 송무, 노동, 금융 등 14개 업무 분야가 평가 대상에 포함됐다. 최근에는 플랫폼 기업 사건도 맡았다. 2025년 카카오모빌리티의 택시 배차 알고리즘 사건과 네이버쇼핑 검색 알고리즘 사건 등에서 성과를 냈다. 공정거래 규제 대상이 제조업과 재벌에서 플랫폼과 알고리즘으로 옮겨가면서 사건의 내용도 달라졌다. ◆ 부동산·리츠까지 사람을 붙였다 지평은 전문분야를 키울 때 팀 단위 영입도 활용했다. 2020년에는 부동산 거래와 리츠 업무에 강했던 법무법인 넥서스의 전문 변호사 12명을 영입했다. 기존 건설·부동산 송무에 거래와 금융 업무를 붙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성과는 몇 년 뒤 나타났다. 지평은 2025년 리츠와 실물 부동산 거래에서 상반기 법률자문 1위를 기록했고 연간 리그테이블에서도 상위권에 올랐다. 건설·부동산 분쟁과 프로젝트금융, 리츠를 하나의 부문으로 묶는 작업도 진행했다. 2026년에는 정원 변호사를 건설·부동산 부문대표로 선임했다. 건설과 리츠, 부동산금융, 정비사업, 도심복합개발을 함께 총괄하도록 조직을 바꿨다. 한 사건을 자문과 송무로 나누기보다 산업 단위로 묶겠다는 최근 지평의 경영 방향이 반영됐다. M&A에서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2026년 지평의 기업·M&A 분야를 국내 Band 3로 평가했다. 국영기업과 사모펀드, 국내외 기업을 대상으로 인수와 합작투자, 해외투자, 구조조정 등을 맡고 있다. ◆ 창업세대 뒤를 공채세대가 이어받았다 2025년 지평 경영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김지홍·이행규 변호사가 공동집행대표에 올랐다. 두 사람 모두 창업자가 아니라 지평이 공개채용한 초기 세대다. 김지홍 대표는 공정거래를 중심으로 경력을 쌓았고 이행규 대표는 기업공개와 자본시장 업무를 맡아왔다. 2000년 로펌을 세운 창업세대에서 조직 안에서 성장한 변호사들에게 경영이 넘어갔다. 주요 집행위원에도 2000년대 초 입사한 변호사들이 배치됐다. 대표를 정하는 과정도 창립 당시 운영방식과 연결돼 있다. 파트너들의 의견을 모으고 후보자에 대한 질의와 간담회를 거쳐 집행부를 구성했다. 특정 창업자가 후계자를 지명하는 방식보다 파트너들의 합의를 중시했다. 새 경영진은 법률 문제를 분야별로 잘라 처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방향을 내놨다. 회계와 기술, 정책, 글로벌 규제 등을 법률자문과 함께 제공하는 ‘Legal & Beyond’를 내걸고 비변호사 전문가와 전문센터를 늘리고 있다. ◆ 매출 1500억원…위에는 아직 큰 벽 숫자만 놓고 보면 지평이 갈 길은 길다. 2025년 국내 법무법인 매출은 1327억원이다. 특허법인과 해외사무소를 합쳐야 1500억원을 넘는다. 같은 해 김앤장의 추정 매출은 1조6000억원 수준이고 태평양과 세종, 광장, 율촌은 모두 4000억원을 넘었다. 화우도 2812억원을 기록했다. 1694억원을 올린 YK에도 매출에서는 뒤져 있다. 지평이 목표로 내건 상위권 진입까지는 상당한 차이가 남아 있다. 고객 평가도 비슷하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조사에서 지평은 종합과 전문성, 서비스에서 각각 7위를 기록했다. 해외 거점과 공익활동처럼 지평이 먼저 만들어온 영역이 곧바로 기업 고객의 종합평가 순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견 로펌 경쟁도 거세지고 있다. YK가 빠르게 몸집을 키웠고 바른과 동인도 합병을 논의하고 있다. 대륙아주와 린도 합병 절차에 들어가면서 지평이 자리한 1000억원대 시장에서도 규모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 ◆ 26년 동안 버리지 않은 것 2000년 지평은 변호사 10여 명으로 출발했다. 당시 내건 것은 대형 로펌이라는 목표보다 전문성과 윤리성, 공익성, 민주적 운영이었다. 기업법무 시장에서는 벤처와 M&A를 파고들었고 해외에서는 베트남과 중국 등 한국 기업이 향하는 신흥시장으로 먼저 나갔다. 필요할 때는 지성과 합쳐 변호사 100명대 조직을 만들었다. 이후 공정거래와 노동, 부동산·리츠를 키웠고 공익활동에서 쌓은 경험을 ESG와 인권경영이라는 기업자문으로 연결했다. 2025년에는 창업세대 대신 공개채용으로 들어온 변호사들이 경영을 넘겨받았다. 지평은 매출로는 아직 빅6와 거리가 있다. 변호사 숫자도 수백 명 차이가 난다. 대신 26년 동안 조직을 키우면서 창립 당시 내세운 공익과 구성원 중심의 운영방식을 접지는 않았다. 큰 로펌이 된 뒤 원칙을 만든 것이 아니라 원칙을 정한 뒤 몸집을 키웠다. 지평의 26년은 그 순서로 이어져 왔다.
2026-09-22 08: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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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 월가 '엑셀·피치북'까지 파고든다…금융판 챗GPT 출격
[경제일보] 오픈AI가 투자은행의 리서치부터 엑셀 재무모델과 피치북 작성까지 지원하는 금융권 전용 챗GPT를 내놨다. 범용 챗봇을 넘어 산업별 업무 자체를 AI로 재설계하려는 전략으로, 월가의 반복적인 분석·문서작성 업무를 둘러싼 AI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오픈AI는 10일(현지시간) 금융기관용 AI 서비스 '챗GPT 포 파이낸셜 서비스(ChatGPT for Financial Services)'를 공개했다. 최신 모델 GPT-6 아스트라를 기반으로 모건스탠리와 에버코어가 설계 파트너로 참여했다. 우선 투자은행(IB)과 주식 리서치 업무에 초점을 맞췄다. 기존 챗GPT와 가장 큰 차이는 금융 데이터가 업무 과정에 직접 들어온다는 점이다. 달루파와 피치북, LSEG 뉴스, 크런치베이스 등의 데이터를 기본으로 제공해 실적 발표와 재무제표, 기업 펀더멘털, 비상장 기업 정보를 검색하고 분석할 수 있다. 분석에 사용된 수치가 어느 표나 문단에서 나왔는지도 확인할 수 있도록 출처 추적 기능을 넣었다. 금융회사가 이미 돈을 내고 쓰는 데이터도 연결한다. 오픈AI는 S&P 캐피털 IQ와 LSEG, MSCI, 다우존스 팩티바, 무디스 등과 계정·접근권한 연동을 추진하고 있다. 데이터사이트와 박스, 프리퀸, 팩트셋, 인탭트 등 50개 이상의 커넥터도 지원한다. 결국 별도 데이터 단말을 단순 대체하기보다는 여러 금융 데이터와 사내 자료를 챗GPT 안에서 묶어 분석부터 결과물 작성까지 이어가는 구조다. 실제 업무 범위도 투자은행 실무에 맞췄다. 기업가치 평가와 차입매수(LBO) 모델링, 인수 후보 기업 선별, 실적 분석을 수행하고 결과를 엑셀·워드·파워포인트로 만들 수 있다. 각 금융회사가 사용하는 재무모델이나 피치북 양식을 관리자 페이지에 등록하면 같은 형식으로 결과물을 생성할 수도 있다. 오픈AI는 아스트라의 금융문서 처리 성능도 강조했다. 미국 재무부 보고서의 복잡한 표와 차트, 주석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 분석하는 'OfficeQA Pro'에서 69.9%를 기록했다. 이전 GPT-5.6 솔은 60.2%였다. 다만 이는 오픈AI가 제시한 벤치마크 결과로 실제 투자은행 업무에서 동일한 정확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작은 숫자 오류도 투자 판단이나 고객 자료의 신뢰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오픈AI 역시 금융서비스 약관에서 데이터와 AI 결과물이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할 수 있고 최신 정보가 아닐 수 있다고 명시했다. 달루파 데이터는 최대 24시간 지연될 수 있으며 일부 미국 주식 시세도 최소 15분 지연된다. 투자 조언이나 매매 추천 서비스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보안 장벽도 높였다. 사내 데이터는 기본적으로 모델 학습에 사용하지 않으며 저장·전송 과정에서 암호화한다. 역할별 접근 통제와 SAML 기반 통합 로그인(SSO), SCIM 계정 관리, 데이터 보존기간 설정을 지원한다. 준법감시 조직은 업무 로그를 추출해 감사나 조사에 사용할 수 있다. 금융 AI 시장 경쟁은 이미 달아오르고 있다. 앤트로픽은 올해 금융분석과 주식 리서치, 사모펀드 등을 겨냥한 금융 AI 도구와 에이전트를 잇달아 내놨다. 금융 특화 AI 업체 로고(Rogo)도 300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4만명 이상의 금융 전문가가 이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오픈AI는 현재 이 서비스를 자격을 갖춘 금융기관에 판매하고 있으며 가격은 공개하지 않았다. 향후 금융 데이터 범위를 넓히고 투자은행과 주식 리서치를 넘어 다른 금융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AI가 보고서를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숫자의 출처를 검증하면서 실제 업무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시장 안착을 가를 관건이 될 전망이다.
2026-09-11 15: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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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대신 내부 확장…태평양이 종합로펌이 된 방법
[경제일보] 1980년 12월 서울 서소문.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은 김인섭 변호사가 자신의 이름을 건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해외 로스쿨이나 외국 로펌 경력은 없었다. 김 변호사가 내세운 목표는 한국 법률시장에서 출발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로펌을 만드는 것이었다. 6년 뒤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배명인 변호사와 이정훈 변호사 등이 합류하면서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가 출범했다. 영문명 ‘BKL(Bae, Kim & Lee)’은 배명인·김인섭·이정훈 세 창업자의 성에서 따왔다. 1987년 법무법인으로 전환했고 1995년 지금의 법무법인 태평양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46년이 흐른 현재 태평양은 김앤장에 이어 국내 매출 2위 로펌이다. 2025년 법무법인 매출은 4402억원, 특허법인과 해외법인을 합친 매출은 470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약 25% 늘었다. 국내 변호사는 지난 6월 기준 628명으로 김앤장 다음으로 많다. 김앤장이 국제금융과 외국 기업 자문에서 출발했고 광장이 서로 다른 두 로펌의 합병으로 기업자문과 송무를 결합했다면 태평양의 길은 달랐다. 국내 송무에서 시작해 기업자문과 M&A를 붙이고 국제중재와 공정거래, 조세, 노동, 기업형사로 영역을 넓혔다. 외부 로펌과의 대형 합병 없이 필요한 분야를 조직 안에서 키워온 것이 태평양 성장사의 한 축이다. ◆ 법정에서 시작한 ‘한국형 로펌’ 창업자 김인섭 변호사는 1963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법조 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서울고법 판사를 거쳐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냈다. 1980년 법원을 떠나 변호사 개업을 할 때 김 변호사가 구상한 조직은 몇 명의 변호사가 사무실을 함께 쓰는 합동사무소와는 달랐다. 당시 한국 법률시장은 개인 변호사의 송무가 중심이었다. 대기업이 성장하면서 기업법무 시장도 열리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대형 종합로펌은 막 걸음을 떼던 시기였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법관 경험을 토대로 송무를 맡으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법률서비스를 조직적으로 제공하는 로펌을 만들기 시작했다. 1986년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 출범은 개인사무소에서 조직형 로펌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다. 배명인·김인섭·이정훈을 비롯해 이재식·황의인 변호사 등이 초기 조직을 만들었고 이후 기업법무를 담당할 변호사들이 잇달아 합류했다. 송무에서 시작한 조직에 기업자문과 금융, 지식재산권 분야가 하나씩 붙었다. 태평양이 당시 내세운 말은 ‘한국적인 국제로펌’이었다. 외국 로펌의 운영방식을 그대로 옮겨오는 대신 국내 법률시장과 법조 실무에 뿌리를 두고 국제 업무까지 처리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김인섭 변호사는 훗날 이를 ‘한국적 국제로펌’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 외환위기, 송무 로펌이 기업 안으로 들어갔다 태평양의 업무가 크게 넓어진 시기는 1990년대 후반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기업 매각과 구조조정, 워크아웃이 한꺼번에 진행됐다. 기업의 생존 문제가 법률 문제로 이어지면서 송무뿐 아니라 금융과 M&A, 기업회생을 함께 다룰 변호사들이 필요해졌다. 태평양은 기아자동차 파산 처리와 대우그룹 계열사의 워크아웃 등에 참여했다. 법원에서 분쟁을 처리하던 변호사들이 기업의 재무상태와 채권관계, 구조조정 과정까지 들여다보게 됐다. 이 과정에서 기업회생과 M&A 업무 경험도 쌓였다. 1998년에는 서소문을 떠나 강남 테헤란로로 본사를 옮겼다.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모이는 곳으로 로펌의 중심도 이동했다. 태평양이 송무를 중심으로 성장한 법률사무소에서 기업의 거래와 경영 문제까지 다루는 종합로펌으로 몸집을 키우던 때였다. 외환위기는 태평양에 새로운 숙제도 안겼다. 국내 기업을 둘러싼 분쟁의 상대가 외국 기업과 해외 자본으로 넓어지면서 국내 법원만 알아서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이 늘었다. 태평양은 다음 승부처로 국제분쟁을 택했다. ◆ 2002년 국제중재팀 만들고 해외로 태평양은 2002년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중재팀을 만들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와 수출이 늘면서 계약 분쟁을 해외 중재기관에서 해결하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었다. 국제중재가 지금처럼 대형 로펌의 주요 업무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2009년에는 현대 측을 대리해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에 넘어갔던 현대오일뱅크 경영권을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를 통해 되찾는 사건에 참여했다. 국제중재팀을 만든 지 7년 만이었다. 기업 간 국제분쟁을 넘어 국가를 상대로 한 투자분쟁으로 업무 범위도 넓어졌다. 대표적인 사건이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이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2012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약 6조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자 태평양은 정부 측 대리를 맡았다. 13년에 걸쳐 진행된 사건은 2025년 원 판정이 취소되면서 한국 정부가 배상 책임에서 벗어나는 결과로 끝났다. 해외 거점도 늘렸다. 2004년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열었고 이후 상하이와 홍콩, 하노이, 호찌민, 두바이, 싱가포르 등으로 진출했다. 국내 기업이 해외로 이동하는 곳을 따라 법률서비스의 범위도 넓혔다. ◆ 기업의 싸움이 바뀌자 ‘경영권 분쟁’을 따로 떼냈다 기업분쟁의 양상도 달라졌다. 단순한 계약 위반이나 손해배상 소송을 넘어 기업 지배권을 두고 주주와 경영진, 국내 기업과 해외 펀드가 맞붙는 사건이 늘었다. 태평양이 일찍부터 공을 들인 분야 가운데 하나가 경영권 분쟁이다. 2000년대 초 SK그룹과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영권 분쟁에서 태평양은 SK 측을 대리했다. 소버린이 최태원 회장을 이사회에서 밀어내기 위해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법원에 소집 허가까지 신청하자 태평양은 SK 측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법원이 소버린의 신청을 기각하면서 경영권 분쟁은 SK 측에 유리하게 끝났다. 태평양은 2012년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별도의 경영권 분쟁팀을 만들었다. M&A 변호사와 송무 변호사를 한 조직에 모아 주주총회와 이사회, 가처분, 공개매수 등 경영권 싸움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문제를 처리하도록 했다.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도 참여하며 이 분야를 주요 업무로 이어가고 있다. 경영권 분쟁은 태평양의 출발점이었던 송무와 이후 키운 기업자문이 만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회사법과 자본시장법을 알아야 하고 주주총회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도 대응해야 한다. 태평양이 오랫동안 두 분야를 함께 키운 효과가 드러나는 시장이다. ◆ 로펌도 회사처럼 운영했다 업무 분야만 넓힌 것은 아니었다. 조직 운영에서도 몇 차례 변화를 먼저 시도했다. 2007년에는 국내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법무법인(유한)으로 조직을 바꿨다. 법무법인(유한)은 구성원 변호사의 책임을 일정 범위로 제한하고 규모가 커진 로펌을 조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든 형태다. 변호사 개인의 사무실을 크게 만든 수준에서 벗어나 수백 명의 전문가가 일하는 조직에 맞는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려는 선택이었다. 공익활동도 조직 안에 넣었다. 2001년 공익활동위원회를 만들었고 2009년에는 공익법률지원 활동을 전담하는 재단법인 동천을 설립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태평양이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내부 프로보노 조직을 만든 뒤 별도 공익재단까지 설립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2020년에는 22년간 머물던 강남을 떠나 종로 센트로폴리스로 본사를 옮겼다. 당시 약 650명의 전문가를 포함해 1300여 명이 여러 건물에 나뉘어 근무하던 조직을 한 건물에 모았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금융기관, 법원 등과의 접근성을 고려한 이전이었다. ◆ 송무와 자문을 함께 키운 46년 태평양의 현재 업무를 보면 처음부터 키워온 송무와 이후 확대한 기업자문이 함께 남아 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2026년 태평양의 기업·M&A와 송무, 조세, 공정거래 등을 국내 주요 분야로 평가하고 있다. 기업·M&A에는 200명이 넘는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다. 최근 대형 사건도 한 분야에 몰리지 않는다. 론스타 ISDS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아일리아 특허 분쟁,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한전KPS 중대재해 사건 등을 맡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형사재판에도 김앤장과 함께 참여해 대법원 무죄 확정까지 변론했다. 실적도 회복됐다. 태평양의 2025년 법무법인 매출은 4402억원으로 2024년 3918억원보다 12.4% 늘었다. 김앤장을 제외한 법무법인 가운데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며 6년 만에 2위로 올라섰고 올해 상반기 성장률도 약 25%로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가장 높았다. 현재 업무집행대표는 이준기 변호사가 맡고 있다. 1996년 태평양에 입사한 이 대표는 M&A와 해외투자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삼성·한화 빅딜과 금호타이어 인수 등 대형 거래를 자문했다. 외부에서 경영자를 데려오기보다 조직 안에서 성장한 변호사가 경영을 맡고 있다는 것도 태평양의 세대교체를 보여준다. ◆ 2위 탈환했지만 격차는 사라졌다 매출 2위 복귀만으로 앞으로의 경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2025년 태평양 매출은 4402억원이었지만 세종은 4363억원, 광장은 4309억원이었다. 2위부터 4위까지 불과 93억원 안에 들어와 있다. 한두 건의 대형 사건이나 인재 이동으로 순서가 달라질 수 있는 격차다. 기업 고객의 평가에서도 태평양이 모든 분야를 앞서는 것은 아니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조사에서 태평양은 종합과 전문성, 서비스 평가에서 각각 4위를 기록했다. 민사·송무와 형사·수사기관 대응, 조세·관세, 금융 등 주요 분야에서도 4위권이었다. 세종은 최근 공격적인 인재 영입을 바탕으로 매출을 빠르게 늘렸고 광장과 율촌 역시 M&A와 송무, 규제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 대형 로펌 사이의 변호사 이동도 잦아졌다. 태평양이 2025년 되찾은 2위 자리를 지키려면 과거에 쌓은 송무 경쟁력과 최근 확대하는 기업자문을 동시에 끌고 가야 한다. 태평양도 사람을 늘리고 있다. 지난 6월 국내 변호사는 628명으로 1년 전보다 41명 증가해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증가 폭이 가장 컸다. AI와 디지털금융, 공급망, 통상, 중대재해 등 새로운 규제 분야에도 별도 조직을 두고 있다. ◆ 국내 법정에서 시작해 바다를 건넜다 태평양의 출발점에는 국제금융 계약서도, 두 대형 로펌의 합병도 없었다.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변호사가 1980년 서소문에 연 작은 법률사무소가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송무를 했다. 기업이 커지자 기업자문과 금융, M&A를 붙였고 외환위기가 터지자 구조조정 업무를 키웠다. 국내 기업의 분쟁이 해외로 넘어가자 국제중재팀을 만들었고 기업 경영권을 둘러싼 싸움이 늘자 경영권 분쟁팀을 따로 꾸렸다. 그 과정에서 다른 대형 로펌을 합병하거나 조직을 나눠 새 로펌을 만드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필요한 분야를 내부에서 만들고 사람을 영입해 조직 안에 쌓았다. 1980년 김인섭 변호사가 말했던 ‘한국적인 국제로펌’도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태평양으로 이어졌다. 법정에서 출발한 로펌은 이제 국제중재와 M&A, 공정거래, 조세, 기업형사를 함께 다룬다. 태평양이 46년 동안 넓혀온 영역이다.
2026-09-11 09: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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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조 실탄 든 삼성SDS, AI 넘어 '로봇 공장'까지 노린다
[경제일보] 삼성SDS가 2031년까지 10조원을 투입해 인공지능 전환(AX)에서 로봇 전환(RX)과 물류까지 사업 영토를 넓힌다. 삼성 관계사의 제조 현장을 로봇 사업의 시험대로 활용하고 공공·금융에 특화한 AI 에이전트를 앞세워 외부 시장으로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이준희 삼성SDS 대표는 지난 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리얼 서밋 2026’ 기자간담회에서 “AX와 RX, 물류 분야에서 전략적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며 “빠른 시일 안에 결과물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SDS의 10조원 투자계획은 AI 인프라 5조원, AX 서비스·플랫폼 1조원, 인수합병(M&A)과 신사업 4조원으로 구성된다. 재원은 보유 현금성 자산 6조6000억원과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KKR로부터 조달한 1조2200억원, 향후 영업현금흐름으로 마련한다. KKR 자금은 단순 출자가 아니라 2032년 만기, 연 2.5% 금리의 전환사채(CB)다. 주식으로 전환되면 기존 주주의 지분이 희석될 수 있는 만큼 투자 규모보다 수익성과 회수 속도가 중요하다. 삼성SDS가 M&A 대상과 투자 시점을 보수적으로 선별해야 하는 이유다. 신규 성장축은 RX다. 삼성SDS는 2027년 생산설비와 서로 다른 로봇을 통합 제어하는 ‘로봇 오케스트레이션 플랫폼’을 출시한다. 로봇 하드웨어를 직접 만드는 대신 공정 데이터와 제조실행시스템(MES), 로봇을 연결해 생산라인 전체를 운영하는 역할을 맡는다. 초기 시장은 삼성 관계사의 1000여개 생산라인이다. 수작업 비중이 높은 공정을 범용 로봇으로 전환해 성능과 경제성을 먼저 검증한다. 이후 삼성SDS가 MES와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한 외부 제조 고객사 430여곳과 미국 리쇼어링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와 월든로보틱스 등 10개 기업으로 구성한 ‘팀 REX’도 가동한다. 로봇 본체와 손 역할을 하는 엔드이펙터, 시뮬레이션 기술을 묶어 제조 현장별로 최적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삼성SDS의 경쟁력은 개별 로봇보다 여러 기종을 기존 생산시스템과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통합 역량에서 갈릴 전망이다. 기업용 AI 시장에서는 오는 10월 출시하는 ‘브리티웍스 코워크’를 전면에 세운다. 이용자의 메일과 일정, 문서 등 업무 맥락을 이해해 자료 조사와 문서 작성, 이메일 발송까지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다. 글로벌 범용 서비스와 정면 대결하기보다 외부 클라우드 사용이 제한되는 공공·국방·금융 폐쇄망 시장을 먼저 공략한다. 이는 삼성SDS가 가진 기업 내부 시스템 구축 경험을 AI 에이전트와 결합하는 전략이다. 모델 성능만으로는 오픈AI·마이크로소프트·구글과 차별화하기 어렵지만, 고객사의 데이터와 업무 절차를 연결하고 구축 이후 운영까지 책임지는 능력은 기존 IT서비스 사업자의 강점이다. 오픈AI와의 보안 협력도 확대한다. 삼성SDS는 국내 기업 최초로 오픈AI의 ‘데이브레이크 파트너 프로그램’ 파일럿 파트너로 참여해 취약점 탐지부터 위험도 판단, 보안패치 생성·검증까지 자동화하는 기술을 적용한다. 다만 현재는 초기 검증 단계인 만큼 실제 고객 확보와 매출 규모는 지켜봐야 한다. 이번 삼성SDS의 전략은 데이터센터와 AI 에이전트, 제조 로봇을 하나의 사업 사슬로 묶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관건은 삼성 관계사에서 확보한 실적을 외부 고객과 해외시장으로 얼마나 빠르게 확장하느냐다. 10조원이라는 투자 규모가 성장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외부 매출과 반복 가능한 서비스 수익으로 연결될 때 AX·RX 전환의 성과가 비로소 숫자로 입증될 전망이다. [아주경제 2026년 09월 10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9-10 07:5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