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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두나무' 빅딜마저 덮친 '규제 리스크'… K-핀테크의 잃어버린 3개월
[경제일보] 국내 IT 업계 최대 규모로 꼽히던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합병이 결국 3개월 연기됐다. 단순한 일정 조정으로 비칠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글로벌 금융 인프라’를 구축해 세계 시장으로 나가겠다던 양사의 원대한 청사진이 입법 불확실성과 당국의 규제 장벽에 가로막힌 ‘현실적 좌절’이 담겨 있다. 이번 연기는 대한민국이 신기술(AI·블록체인)과 전통 규제 사이에서 얼마나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네이버와 두나무는 지난 30일 종속 회사 간 포괄적 주식 교환 일정을 5월에서 8월로 연기한다고 공시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관련 인허가 절차 및 법령 정비 상황”이지만 업계는 이를 사실상 ‘정부 정책 리스크’로 해석한다. 가장 큰 난관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다. 간편결제 시장 1위(네이버파이낸셜)와 가상자산 거래소 1위(두나무)의 결합인 만큼 시장 지배력 전이 가능성에 대한 당국의 조사가 깐깐하다. 여기에 ‘디지털자산 기본법(가상자산 2단계 입법)’ 논의가 중동 사태 등 대외 변수로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면서 합병 이후의 지배구조조차 확정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이 투자자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있다. 특히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거래소 대주주 지분 20% 제한’ 규제가 도입될 경우 네이버파이낸셜이 두나무를 100%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려던 합병 설계 자체가 무효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연기가 뼈아픈 이유는 글로벌 시장의 속도전 때문이다.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는 ‘쇼피파이(Shopify)’와 ‘코인베이스(Coinbase)’가 스트라이프(Stripe)를 매개로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도입하고 전통 금융과 블록체인을 결합한 RWA(실물자산 토큰화) 서비스가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규제 정비가 늦어지면서 글로벌 표준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지난해 11월 “AI와 웹3 흐름에서 생존하기 위한 절박한 전략”이라며 합병의 필요성을 역설했음에도 입법 공백 속에 기업의 성장 동력은 3개월, 혹은 그 이상 멈춰 서게 됐다. 기술 주권을 확보하겠다던 10조 원 규모의 투자가 규제라는 덫에 걸려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글로벌 빅테크들은 이미 한 발짝 앞서 나가고 있다. ◆ 9월 종결 가능할까...‘입법 리스크’가 변수 최종 거래 종결일이 9월 30일로 미뤄졌지만 업계는 이마저도 낙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6월 지방선거 이후 국회 원 구성이 바뀌고 9월 국정감사가 예정되어 있어 입법 논의가 다시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이라는 민감한 조항 때문에 여야 간 입장은 물론 당국과 업계 간의 간극도 매우 크다. 만약 2단계 입법이 연내 처리가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네이버와 두나무는 지배구조를 재설계하거나 규제 리스크를 안고 합병을 강행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부닥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우리 정부의 ‘디지털 금융 정책’의 허점을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신기술인 AI와 블록체인이 결합한 금융 인프라는 규제의 ‘표준’이 아직 전 세계적으로도 확립되지 않은 미개척 분야다. 그럼에도 당국이 전통 금융권의 낡은 지분 규제 잣대를 들이대며 신산업의 싹을 자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물론 거래소의 투명성 확보와 대주주 리스크 방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방법론에서 ‘사후 규제’와 ‘투명성 공시’ 등 기술적 대안보다 ‘지분 강제 매각’이라는 물리적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기업의 경영권 확보와 글로벌 확장성을 저해한다. 이번 합병 연기는 단순한 기업 간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웹3 금융의 허브가 될 것인지 아니면 규제라는 덫에 걸려 갈라파고스화될 것인지를 결정짓는 시금석이다. 9월까지 입법이 마무리되지 않거나 규제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의 빅딜은 ‘글로벌 금융 인프라’라는 타이틀을 떼고 그저 그런 국내용 합병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정부와 국회가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정교하고 유연한 디지털 자산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2026-03-31 17:26:02
'AICT 퀀텀점프' 위해선 이사회 물갈이 必
[경제일보] KT의 차기 사령탑으로 낙점된 박윤영 대표이사 내정자가 출발선에 서기도 전에 험난한 가시밭길을 마주했다. 다행히 법원이 대표 선임 절차 중단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최악의 사법 리스크라는 큰 암초는 피했지만 붕괴 직전의 이사회를 안고 겹겹이 쌓인 경영 현안을 처리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 자본시장은 사법 족쇄를 풀어낸 박윤영호(號)가 '거버넌스 리셋'이라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본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최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민사5부(부장판사 김원수)는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이 제기한 KT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전격 기각했다. 소송의 핵심은 상법상 겸직 금지 규정을 위반한 조승아 전 사외이사가 박 내정자를 발탁하는 차기 CEO 숏리스트 심사 과정에 개입했으므로 선임 절차가 무효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냉철했다. 재판부는 "결격 사유가 있는 이사가 회의에 참여한 절차적 흠결은 인정된다"면서도 "하지만 해당 이사가 최종 후보 1인을 결정하는 투표에는 불참했고 그의 표를 제외하더라도 당시 이사회의 의결 정족수(과반수 찬성)를 충족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판시했다. 무엇보다 법원의 기각 결정 이면에는 국가 기간통신망 사업자인 KT의 경영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초래될 막대한 사회·경제적 파장에 대한 우려가 깊게 깔려 있었다. 이로써 박 내정자는 오는 3월 31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정식 취임할 수 있는 탄탄한 법적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에 불복한 조 위원장 측이 지난 6일 즉시항고장을 제출하고 이사회 결의 무효를 다투는 본안 소송을 제기하며 자본시장법상 '성별 다양성 규정 위반(여성 이사 부재)' 등 추가 쟁점을 꺼내 들었지만 당장의 박윤영 체제 출범을 막을 명분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 '잃어버린 1분기' 만회할 무기… 4월 인사 태풍과 'AICT' 비전 법적 장애물을 치운 KT의 시선은 이제 '4월의 대격변'으로 쏠린다. KT는 전임 경영진과의 마찰과 이사회의 인사권 통제 논란 탓에 매년 연말 연초에 단행해야 할 정기 임원 인사와 대규모 조직 개편을 3개월째 미뤄둔 상태다. 현재 주요 핵심 임원들이 사상 초유의 '월 단위 쪼개기 연장 계약'으로 버티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이어지며 조직 피로도가 한계치에 달했다. 박 내정자는 취임 직후인 4월, 그동안 억눌렸던 경영 쇄신의 고삐를 당길 전망이다. 정통 'KT맨' 출신이자 기업부문장(사장)으로서 B2B(기업간거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그의 성향을 감안할 때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매머드급' 조직 개편이 확실시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통한 'AICT(AI+ICT) 컴퍼니'로의 도약이다. 경쟁사인 SK텔레콤이 'AI-RAN' 기술을 선점하고 LG유플러스가 '익시오(ixi-O)' 등 AI 에이전트로 MWC(Mobile World Congress)와 같은 글로벌 무대를 누비며 6G 생태계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동안 KT의 혁신 시계는 사실상 멈춰 있었다. 박 내정자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체결한 수조 원대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체적인 실적 모델로 구현해 내야 한다. 한국형 소버린 AI(Sovereign AI) 인프라 구축과 공공·금융 클라우드 시장 장악은 통신 본업의 정체를 돌파할 유일한 탈출구다. 이를 위해 4월 조직 개편에서 AI, 클라우드, 데이터센터(AIDC) 등 신사업 부서에 인력과 권한을 대폭 실어주는 전면적인 '판 짜기'가 이뤄질 것으로 예측된다. ◆ 진정한 밸류에이션 정상화, '이사회 물갈이'에 달렸다 그러나 완벽한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뼈아픈 숙제가 남아있다. 바로 '거버넌스 디스카운트(지배구조 불확실성에 따른 주가 저평가)'의 해소다. KT는 높은 배당 수익률 등 방어주로서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지분 한도가 49%에 달해 추가적인 외국인 수급 유입이 꽉 막힌 상태다. 결국 주가를 레벨업 시키기 위해서는 국내 기관 투자자들의 뭉칫돈을 끌어와야 한다. 기관 투자자들을 움직이는 핵심 지표는 실적을 넘어선 '지배구조의 예측 가능성'이다. 박 내정자는 윤종수 이사 사퇴로 촉발된 이사회 공백 사태를 역이용해 '거버넌스 2.0'을 구축해야 한다. 3월 주총에서 신규 선임될 서진석(회계), 김영한(미래기술), 권명숙(경영) 이사 등 새로운 인사들과 합심하여 과거 특정 세력의 이권 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철저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이사회로 물갈이를 단행해야 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사법 리스크 해소는 단기 이벤트에 불과하다”며 “KT가 정상화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박윤영 내정자가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분명한 쇄신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어 “경영 안정화, 기술 비전 실현, 주주 자본주의 원칙에 기반한 투명한 거버넌스 확립이 2026년 KT의 운명을 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벼랑 끝에서 돌아온 KT에 4월은 또 한 번의 시험대다. ‘잔혹사’의 고리를 끊을지, 또 하나의 4월을 남길지 갈림길에 섰다.
2026-03-20 13:34:00
'거버넌스 리셋'이 해답이다
[경제일보] 2026년 3월, 대한민국 국가 기간통신망 사업자인 KT의 '거버넌스(지배구조) 잔혹사'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오는 3월 31일 정기 주주총회를 불과 보름 앞둔 시점에서 이사회가 유일하게 연임을 추진하던 윤종수 사외이사(ESG위원회 위원장)가 돌연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일신상의 사유'로 포장됐으나 그가 남긴 사퇴의 변은 겹겹이 감춰져 있던 KT 지배구조의 곪은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T는 최근 주주총회 소집 공고를 정정하며 윤 이사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전격 폐기했다. 윤 이사는 사퇴 직후 "이사회 거버넌스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새 대표 취임에 맞춰 KT 발전을 위해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며 심경을 밝혔다. 이는 가히 충격적인 고백이다.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와 투명성을 감시하고 책임져야 할 현직 ESG위원장이 자사 이사회의 구조적 결함과 파행적 운영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상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뻗어 있는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계를 3년 전으로 되돌려야 한다. 2023년 상반기, KT는 구현모·윤경림 전 대표 후보가 정치권의 외풍과 대주주의 압박에 밀려 잇따라 낙마하고 이사진 대다수가 사퇴하는 경영 마비 사태를 겪었다. 이후 위기 수습을 위해 꾸려진 '뉴 거버넌스 구축 TF'를 통해 외부에서 수혈된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환경부 차관 출신의 윤종수 이사였다. 하지만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이사회는 김영섭 전 대표 체제를 거치며 본연의 견제 기능을 넘어 점차 권력화되었다는 뼈아픈 비판에 직면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고경영자(CEO)의 인사권 침해 시도다. 이사회는 지난해 하반기, 부문장급 이상 고위 임원 인사와 대규모 조직 개편을 단행할 때 이사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내부 규정을 슬그머니 개정했다. 이는 통상적인 '사전 협의' 수준을 넘어 CEO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과 경영권을 통제하겠다는 명백한 월권이자 '상왕(上王) 경영'의 신호탄이었다. 내부 통제와 도덕성마저 처참히 무너졌다. 특정 사외이사가 자신의 측근에 대한 인사 청탁을 시도하고 독일 위성통신 업체 '리바다'에 대한 불투명한 투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사내 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통해 터져 나왔다. 더욱 황당한 것은 조승아 전 사외이사의 자격 상실 사태다. 조 전 이사는 KT 사외이사로 재임 중이던 2024년 3월부터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제철 사외이사를 겸직했다. 상법상 최대주주(현대차그룹) 법인의 임원은 사외이사를 맡을 수 없다는 명백한 결격 사유가 발생했음에도 KT 이사회는 이를 무려 1년 반이 넘도록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조 전 이사는 무자격 상태로 차기 CEO(박윤영 내정자) 선임을 위한 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버젓이 참여했고 이는 훗날 시민단체의 가처분 소송을 부르는 치명적인 빌미가 됐다. 폭주하던 이사회에 제동을 건 것은 시장의 냉혹한 평가와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지분율 약 8.5%)의 철퇴였다. 국민연금은 지난 2월 초, KT 지분 보유 목적을 기존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전격 상향 조정했다. 이는 단순한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을 넘어 필요할 경우 이사 해임 청구, 정관 변경, 보수 산정 등 이사회의 전횡을 직접 타격하는 강력한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실제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KT 이사회를 향해 "규정 개정이 단순한 협의 의미라면 왜 굳이 '심의·의결'이라는 강제 조항을 넣었는가"라며 주주권 침해 소지를 강하게 경고했다. 결국 이사회는 국민연금의 압박과 악화된 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해당 규정을 다시 '사전 협의' 수준으로 되돌리기로 합의하며 백기를 들었다. 유일하게 연임을 노리던 윤종수 이사의 사퇴 역시 이러한 외부의 전방위적 압박과 내부 거버넌스 붕괴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견디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 소유분산기업의 숙명...시스템의 근본적 재건 절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소유분산기업(주인 없는 기업)'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대리인 문제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강력한 지배주주가 없는 상황에서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 세워둔 이사회가 오히려 기득권 집단으로 변질되어 조직의 효율성을 갉아먹는 역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윤 이사의 사퇴로 인해 당장 3월 주총에서 KT 이사회는 반쪽짜리 상태로 출범할 위기에 처했다. 상법상 감사위원회 요건을 맞추기 위해 서진석 전 EY한영 대표를 회계 분야 사외이사로 급하게 수혈했지만 KT 새노조 등 구성원들은 "경영 공백을 초래하고 자정 능력을 상실한 현 이사진 전원의 즉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김용헌 의장을 비롯한 남은 4명의 이사 역시 강력한 사퇴 압박에 직면해 있다.
2026-03-17 09:32:27
사법 리스크 털어낸 박윤영호(號)… 멈춰선 KT 시계 다시 돌린다
[경제일보] 대한민국 국가 기간통신망의 중추인 KT가 창사 이래 최악의 '시계 제로' 상태에서 벗어나 기사회생했다. 차기 수장 선임 과정을 둘러싸고 불거진 사법 리스크에 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리며 제동을 걸어준 덕분이다. 이로써 박윤영 내정자 체제는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멈춰 섰던 경영 시계를 다시 돌릴 수 있게 됐다.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KT는 비상 경영 체제를 끝내고 AI(인공지능) 등 미래 경쟁력 회복을 위한 '속도전'에 돌입할 전망이다. 28일 법조계와 통신업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제5민사부(부장판사 김원수)는 지난 27일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이 제기한 'KT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번 소송은 단순한 법적 다툼을 넘어 소유분산기업(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 취약성과 경영 연속성을 시험하는 중대한 분수령이었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차기 대표이사 후보를 압축하는 과정(숏리스트 선정)에 현대차그룹 계열사 임원을 겸직해 결격 사유가 발생한 조승아 전 사외이사가 참여한 것이 '원천 무효'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조 위원장 측은 "자격 없는 이사가 심사에 관여했으므로 선임 절차 전체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상식'과 '현실'에 기반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일부 절차적 흠결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되나 이것이 주주총회에서의 대표이사 선임 결의를 금지할 만큼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KT 측이 주장한 "조 전 이사의 표를 제외하더라도 의결 정족수 충족에는 문제가 없으며 박윤영 내정자를 확정하는 최종 1인 선정 투표에는 아예 불참했다"는 소명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을 두고 법원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절차적 엄격성을 이유로 가처분을 인용할 경우 자산 40조 원 규모의 거대 기업이자 국가 통신 인프라를 책임지는 KT가 장기간 '선장 없는 배'로 표류하게 될 위험성을 경계한 것이다. 이는 기업 경영에 있어 절차적 정당성만큼이나 '경영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이 중요한 가치임을 사법부가 확인해 준 사례로 남게 됐다. ◆ '잃어버린 1분기'의 대가… 처절한 반성 필요 법원의 결정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KT가 치른 대가는 혹독하다. KT는 김영섭 현 대표와 박윤영 차기 대표 내정자 간의 '어색한 동거'와 이사회의 과도한 경영 개입 논란 탓에 2026년 1분기를 통째로 허비했다. 통상 연초에 마무리되어야 할 조직 개편과 임원 인사는 3개월째 올스톱 상태다. 주요 임원들은 사상 초유의 '월 단위 쪼개기 계약'을 맺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리더십의 공백은 곧 실무의 마비로 이어졌다. 의사결정 라인이 멈추면서 신규 사업 추진은 지연됐고 일선 영업 현장에서는 경쟁사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경쟁사들의 행보를 보면 KT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된다. SK텔레콤은 연초부터 'AI-RAN(AI 무선접속망)' 기술을 세계 최초로 실증하며 6G 주도권 잡기에 나섰고 LG유플러스는 MWC 2026에서 'AI 에이전트' 서비스를 대거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경쟁사들이 AI 컴퍼니로 체질을 바꾸고 전력 질주하는 동안 KT는 내부 지배구조 이슈에 발목이 잡혀 출발선조차 넘지 못한 셈이다. 이제 모든 시선은 박윤영 내정자에게 쏠리고 있다. 그는 3월 말 열릴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승인을 얻어 공식적으로 대표이사직에 오르게 된다. 박 내정자는 KT 기업부문장(사장)을 역임하며 B2B(기업간거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정통 KT맨'이다. 외부 낙하산 인사가 아닌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라는 점에서 조직을 빠르게 추스르고 안정화할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박 내정자의 첫 번째 과제는 '내부 결속'이다. 장기간 이어진 경영 공백과 리더십 혼란으로 인해 떨어진 임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느슨해진 조직 기강을 다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전임 경영진 체제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과 파벌 싸움을 끊어내고 '원팀(One Team) KT'를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대외적으로는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국민연금은 최근 KT 주식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로 상향하며 경영 견제 의지를 분명히 했다. 박 내정자는 주총에서 구체적인 비전 제시와 주주 환원 정책을 통해 국민연금을 포함한 주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 'AICT 컴퍼니'로의 도약,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박윤영 호(號)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AICT(AI+ICT) 컴퍼니'다. KT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수조 원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한국형 AI·클라우드 시장 공략을 선언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협약을 넘어 구체적인 사업 모델을 만들고 수익성을 증명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법원의 가처분 기각은 KT에게 다시 뛸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지,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박 내정자가 취임 후 얼마나 신속하게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고 AI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KT의 향후 10년이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법 리스크라는 거대한 암초를 넘은 KT. 이제는 소모적인 논쟁을 뒤로하고 기술과 혁신이라는 본연의 가치로 돌아가야 할 때다. 3월 주주총회는 그 새로운 항해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2026-02-28 17: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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