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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나락스, 도면부터 품질까지 AI로…118억원대 산업부 R&D 참여
[경제일보] 마키나락스가 자동차부품 열간단조의 금형 설계부터 생산·품질관리까지 연결하는 인공지능(AI) 자율생산 기술 개발에 참여한다. 도면에서 설계 정보를 추출하는 AI와 생산라인의 센서·영상 데이터를 결합해 숙련자의 경험에 의존하던 단조 공정을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마키나락스는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이 관리하는 산업통상부의 ‘2026년 기계장비산업기술개발사업’ 공동연구개발기관으로 선정됐다고 14일 밝혔다. 과제명은 ‘AI 기반 자동차부품 열간단조 금형 설계 자동 보정 및 단조품 자율 생산 시스템 개발’이다. 세일단조가 주관하며 마키나락스 등 5개 기관이 공동연구개발기관으로 참여한다. 아이엔지글로벌,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경상국립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등이 함께한다. 연구는 2029년 12월까지 진행되며 개발 기술은 세일단조 양산라인에서 실증할 예정이다. 전체 사업비는 118억3303만원이며, 정부지원 연구비는 86억원이다. 마키나락스에 배정된 정부지원 연구개발비는 16억원이다. 회사 측이 제시한 자사 수행분 전체 연구개발비는 약 24억원이다. 정부지원금 16억원은 2025년 말 연결 기준 자기자본의 11.07%에 해당한다. 열간단조는 금속을 고온으로 가열한 뒤 금형으로 압력을 가해 원하는 형상을 만드는 공정이다. 제품의 형상과 품질을 확보하려면 정밀한 금형 설계와 생산 조건 관리가 필요하다. 기존에는 담당자가 부품 도면에서 설계 정보를 일일이 추출하는 과정에서 숙련도에 따른 편차와 오류, 작업 지연이 발생할 수 있었다. 마키나락스는 AI 운영체제 ‘런웨이(Runway)’와 도면 의사결정 AI 에이전트 ‘드로우엑스(DrawX)’를 활용한다. AI가 단조 도면을 인식해 필요한 설계 변수를 추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금형 설계 보정안을 추천하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드로우엑스는 회사가 지난 2월 공개한 제조 특화 솔루션이다. 분산된 도면을 통합 관리하고 유사 도면 검색, 원가 산정, 수주 판단 등을 지원한다. 이번 과제에서는 도면 해석 역량을 단조 금형 설계에 적용해 자동 보정 기술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생산 단계에서는 온도·하중·영상 등 센서 데이터를 분석해 공정 이상을 진단하고, 비전 AI로 단조품의 품질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설계·공정·품질 데이터를 연결하는 통합관제 시스템도 런웨이 기반으로 구현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적용하는 ‘디지털 스레드(Digital Thread)’는 설계부터 생산·검사까지 단계별 데이터를 연결해 제품과 공정의 이력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설계 정보와 실제 생산 조건, 품질 결과를 연계해 공정 전반을 관리하고 자율생산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런웨이는 AI 모델의 개발·배포·재학습을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이다. 회사는 지난달 업데이트에서 입력 데이터의 분포가 학습 당시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감지하는 기능과 모델 정확도를 추적하는 기능 등을 추가했다. 이를 통해 생산 조건이 바뀌는 현장에서 AI의 상태를 점검하고 재검증·재학습 시점을 데이터에 근거해 판단하도록 지원한다. 마키나락스는 반도체·이차전지 등 첨단 제조 분야에서 축적한 AI 기술을 단조 등 전통 뿌리산업으로 확대해 숙련자 의존도를 낮추고 생산성과 품질을 높인다는 목표다. 윤성호 대표는 “단조 공정은 고온의 환경에서 고강도 작업이 진행되는 현장으로, 변수가 많고 작업자의 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AI를 적용하기 까다로운 분야로 꼽혀왔다”며 “뿌리산업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자율생산 기술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2026-10-14 08: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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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800조 반도체 투자에 숟가락 얹지 말라
[경제일보] 800조원. 기업 투자 규모만으로도 한국 산업사의 기록을 새로 쓸 만한 숫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서남권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이야기다. 문제는 이 천문학적인 투자계획을 놓고 정치권의 지역 논쟁까지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부 국정감사에서도 입지 선정 과정이 도마에 올랐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정부가 여러 후보지를 제안했고 최종 결정은 기업이 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야당 의원들은 기업들에 확인한 결과 특정 지역을 먼저 제안하거나 투자계획을 확정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정부 설명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누가 먼저 호남을 거론했느냐를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는 상황이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까지 예단할 필요는 없다. 정부가 기업에 특정 지역 투자를 강요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기업과 정부가 대규모 투자계획을 협의하면서 여러 후보지를 검토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이번 논란은 800조원짜리 반도체 투자를 어떤 원칙으로 다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반도체 공장은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다. 전력과 용수, 부지와 물류, 인재, 협력업체, 연구개발 생태계를 종합적으로 따져 수십 년 뒤까지 경쟁력을 계산해야 하는 기업 투자다. 더구나 반도체는 한번 공장을 지으면 되돌리기 어려운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투자액도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에 이른다. 그 판단의 최종 책임은 투자하는 기업이 져야 한다. 세계 반도체 경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미국과 대만, 일본, 중국, 유럽은 생산시설과 첨단기술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세제와 보조금, 전력과 용수 등 기반시설을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길어지거나 경제성 이외의 변수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그 비용은 기업이 떠안는다. 결국 한국 반도체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국가균형발전을 외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가 집중된 한국에서 지방에 첨단산업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전력과 용수 확보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새로운 생산거점을 비수도권에서 찾는 것은 산업정책 측면에서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선택지다. 문제는 순서다. 기업에 지방으로 가라고 요구하는 것과 기업이 지방을 선택할 만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이다. 반도체 공장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과 막대한 양의 공업용수다. 장비와 소재·부품을 공급할 기업이 가까이 있어야 하고 국내외 고급인력이 일하고 정착할 수 있는 여건도 필요하다. 도로와 철도, 항만 같은 물류망도 갖춰야 한다. 정치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전력망과 용수시설을 제때 구축하고 교통·물류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을 연결해 인재를 키우고 교육·의료·주거 등 정주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세제와 연구개발 지원의 예측 가능성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기업이 사업성만 따져도 지방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균형발전이다. 지역끼리 경쟁하는 것도 나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필요하다. 다만 정치적 영향력으로 기업을 끌어가는 경쟁이 아니라 어느 지역이 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인재를 확보하며 빠르게 인허가를 처리할 수 있는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중앙정부도 심판과 지원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 공장을 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각 지역이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기업의 선택을 지원해야 한다. 이번 800조원 투자를 정치적 성과로 앞세우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발표된 투자계획이 곧바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경기는 변하고 기술도 바뀐다. 글로벌 수요와 메모리 가격, 금융시장과 기업의 수익성에 따라 투자 시기와 규모가 조정될 수도 있다. 기업 역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장·경영상황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수백조원의 숫자를 먼저 정치적 치적으로 만들어놓으면 나중에 기업의 합리적인 투자 조정까지 정치적 실패나 약속 파기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 기업의 투자는 기업이 책임지고 정부 지원에는 정부가 책임지면 된다. 특히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전력망과 용수, 산업단지, 세제지원에는 더 엄격한 경제성 검토와 투명성이 필요하다. 기업 자율을 강조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지원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 결정을 존중하되 국가가 부담하는 비용과 기대효과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회가 할 일도 분명하다. 반도체 특별법과 관련 예산을 어느 지역이 얼마나 가져갈지를 놓고 경쟁하기보다 한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무엇이 부족한지를 살펴야 한다. 전력과 용수, 인력과 연구개발, 세제와 인허가 가운데 경쟁국보다 뒤처진 것이 무엇인지 찾아 고치는 것이 먼저다. <관자>에는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는 말이 있다. 국가의 산업정책도 경제적 토대를 무시한 채 명분만 앞세워서는 오래가기 어렵다. 균형발전이라는 목표가 아무리 옳더라도 산업이 지속될 경제적 기반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반대로 지방이 기업하기 좋은 곳이 되면 정치가 기업에 내려가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투자는 움직인다. 800조원은 정치권의 전리품이 아니다. 특정 지역의 몫으로 미리 떼어놓을 돈도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행하는 민간의 장기 투자다. 동시에 그 투자의 성공 여부가 한국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국가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치의 역할은 더 절제돼야 한다. 기업이 투자할 곳을 정치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투자하고 싶은 곳을 만드는 것. 기업의 결정을 정치적 치적으로 포장하는 대신 전력망 하나, 용수시설 하나라도 제때 완성하는 것. 그것이 800조원 앞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정치세력이 투자계획에 이름을 올렸느냐가 아니다. 누가 더 빨리 공장을 짓고 더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정치가 800조원에 숟가락을 얹기보다 반도체가 달릴 길부터 닦아야 한다.
2026-10-07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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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검증의 출발선" 청와대 사전 검증은 무엇을 했나
[경제일보]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검증을 대신하는 절차가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마지막 문턱에 가깝다. 그 문턱에 누구를 세울 것인지를 먼저 가려내는 일은 인사권자의 몫이다. 이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청문회는 검증 장치가 아니라 잘못된 인사를 뒤늦게 수습하는 무대가 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청와대가 내놓은 설명은 그래서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청문 제도 자체가 후보자에 대한 국민적 검증 과정”이라며 두 후보자가 “인사위원장의 책임 아래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된 후보”인 만큼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국민 눈높이에 부족함이 없도록 인사 검증체계를 갖추고 강화하겠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사청문회는 국민을 대신한 국회의 공개 검증 절차다.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는 보장도 없고, 청문회를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다만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했다면서 왜 곧바로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인가. 김 후보자에게는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과 관련한 청탁 의혹과 과거 음주운전 문제가 제기됐다. 김 후보자는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고 반박하면서도 민원 전달 과정에는 신중했어야 했다고 밝혔고,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용 후보자에게는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의 겸직 문제, 당 운영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 등이 제기되고 있다. 각각의 의혹과 적격성은 청문회에서 사실관계를 더 따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명 전 어디까지 검토됐느냐는 것이다. 이미 알고도 장관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청와대가 그 판단에 책임을 지면 된다. 반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사전 검증에 구멍이 있었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경우든 “청문회에서 검증하자”는 말만으로 끝낼 문제는 아니다. 국회법은 국무위원 후보자 등에 대해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에게서 후보자를 고르는 책임을 넘겨받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 이후 국회가 공직 수행 능력과 도덕성 등을 공개적으로 다시 검증하는 견제 장치다. 사전 검증과 인사청문은 순서만 다른 같은 검증이 아니다. 책임의 주체부터 다르다. 청와대 검증은 대통령의 책임이고, 국회 청문회는 국회의 책임이다. 이 단순한 구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청와대가 후보자의 재산과 세금, 범죄·징계 이력, 이해충돌 가능성, 과거 행적과 정무적 리스크를 충분히 확인한 뒤 “이 정도 문제를 감안해도 국정을 맡길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지명이다. 청문회는 그 판단에 누락이나 왜곡이 없는지 국민 앞에서 다시 따지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전 단계에서 걸러졌어야 할 문제가 지명 직후 쏟아지고, 그때마다 “청문회에서 보자”는 답이 반복되면 인사의 책임 구조가 거꾸로 선다. 대통령이 고르고 청와대가 검증했는데, 최종적으로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발견하고 판단하는 책임은 국회와 언론, 국민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방식이 반복될 때 생기는 ‘지명의 관성’이다. 후보자를 발표한 뒤에는 철회 비용이 커진다. 인사 실패를 인정해야 하고 야당의 공세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이미 지명했다는 이유 자체가 후보자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되기 쉽다. 검증의 판단 기준이 ‘공직에 적합한가’에서 ‘청문회를 버틸 수 있는가’로 바뀌는 순간이다. 제대로 된 사전 검증은 흠결을 하나도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현실 정치에 거의 없다. 핵심은 어떤 흠결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기준을 미리 세우는 것이다. 음주운전이나 세금 체납, 부동산 투기, 연구윤리 위반, 갑질, 이해충돌, 수사·징계 이력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검증 항목부터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부족하다. 공직의 성격에 따라 어느 정도의 흠결을 결격으로 볼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기준과 산업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전문성의 기준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제는 탈락 사유였던 문제가 오늘은 해명 가능한 문제가 되는 것도 곤란하다. 법적 결격과 정치적·윤리적 부적격을 구분하는 기준도 필요하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장관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장관은 형사재판에서 유죄인지 무죄인지만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에게 정책의 준수를 요구하고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법률상 임명 가능성과 국민이 기대하는 공직 윤리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그때그때 여론을 보며 판단해서는 인사 원칙이 생기지 않는다. 책임선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청와대 인사는 인사위원회를 중심으로 후보 추천과 검증, 정무적 판단이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인사수석실까지 신설됐지만 후보자 논란이 반복되면서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누가 후보자를 추천했는지까지 모두 공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인사에는 보안이 필요하다. 후보군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하지만 지명 이후 중대한 문제가 드러났다면 최소한 내부적으로는 추천 단계에서 놓쳤는지, 검증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했는지, 알고도 정무적으로 수용했는지를 구분하고 책임을 남겨야 한다. 알고도 선택했다면 대통령과 인사위원회가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된다. 몰랐다면 검증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상서’ 고요모에는 ‘지인즉철 능관인(知人則哲 能官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지혜이며, 그래야 사람을 제대로 벼슬에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수천 년 전에도 국정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를 ‘사람을 알아보는 일’에서 찾았다. 인사가 어려운 것은 시대가 달라져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고 완벽한 후보자는 없다. 사생활과 공적 검증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도 쉽지 않다. 지나치게 가혹한 검증은 유능한 인재가 공직을 피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준이 필요하다. 정권에 가까운 사람에게는 느슨하고 반대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아니라, 어느 정부에서든 대체로 예측할 수 있는 기준 말이다. 청와대가 이번에 인사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한 것은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강화하겠다’는 말만 반복해서는 같은 문제가 다음 개각에서 다시 돌아온다. 검증 항목을 표준화하고, 중대한 결격 사유와 해명 가능한 사안을 구분하며, 추천·검증·정무 판단의 책임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명 뒤 예상하지 못한 중대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어떤 단계에서 놓쳤는지 복기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또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인사청문회는 청와대 검증의 실패를 대신 책임지는 곳이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명하기 전에 제대로 검증하는 것은 그보다 먼저 존재하는 권한이자 책임이다. 청문회에서 모든 것을 확인하겠다면 사전 검증은 형식이 된다. 반대로 청와대가 자신 있게 검증을 마쳤다면 논란이 불거졌을 때 “청문회에서 보자”에 앞서 왜 그 문제를 감수하고도 지명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사의 신뢰는 흠결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왜 골랐고, 무엇을 확인했으며,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 분명할 때 생긴다. 청문회는 검증의 시작이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국민 앞에서 확인하는 마지막 문턱이어야 한다.
2026-09-08 09: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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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만 옮겨선 '수도권 공화국' 끝낼 수 없다
[경제일보] 대통령이 세종으로 간다. 국회도 뒤따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임기 안에 대통령 세종집무실 시대를 열고, 마지막 국무회의도 세종집무실에서 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에도 속도를 내고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법·제도적 뒷받침을 계속하라고 주문했다. 세종을 명실상부한 국정의 중심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 상당수가 세종에 내려가 있는데 대통령실과 국회는 서울에 남아 있는 지금의 구조는 비효율적이다. 장관과 공무원이 회의 하나 때문에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일이 반복되고, 행정부와 국회의 물리적 거리는 정책 결정의 비용을 높인다.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이 자리 잡으면 행정수도의 마지막 퍼즐 하나가 맞춰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수도권 집중까지 끝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오랫동안 ‘서울공화국’을 넘어 ‘수도권공화국’으로 움직여 왔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토 면적의 11.8%인 수도권에 전국 인구의 50.8%, 지역내총생산의 52.5%가 집중돼 있다. 사람만 서울로 몰린 것이 아니다. 생산과 소비, 좋은 일자리와 인재, 기업과 자본이 함께 수도권으로 모였다. 행정기관을 옮기는 것만으로 이 흐름을 거꾸로 돌리기 어려운 이유도 이미 확인됐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7일 공개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분석을 보면 공공기관 이전이 집중됐던 2010년대 중반 수도권에서 혁신도시로의 인구 이동은 한동안 늘었지만 2017년 이후 사실상 사라졌다. 2023년부터는 혁신도시 인구가 순유출로 돌아섰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늘어난 고용도 상당 부분 음식·숙박·의료·교육 등 지역 내부 수요에 의존하는 서비스업에 집중됐다. 무엇보다 직업을 이유로 혁신도시를 떠나는 흐름이 이어졌다는 점을 연구진은 주목했다. 사람은 청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따라 움직인다. 공무원 수천 명이 내려가면 아파트가 들어서고 음식점과 학원이 생긴다. 그것만으로 도시 하나의 외형은 갖출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취업을 위해 서울로 떠나고, 배우자가 원하는 직장을 지역에서 구하지 못하며, 기업의 연구소와 본사가 수도권에 남아 있다면 도시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행정기관 이전으로 사람을 옮기는 데는 성공해도 다음 세대까지 붙잡는 데 실패할 수 있다. 떄문에 세종 행정수도의 다음 단계는 ‘무엇을 더 옮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스스로 오게 만들 것인가’여야 한다. 먼저 기업이 와야 한다. 세종과 대전·청주·천안·오송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고 AI·반도체·바이오·양자·국방산업 등 충청권이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 기업 본사와 연구개발센터가 들어오고 스타트업이 생기며, 그 기업을 지원하는 금융과 법률·회계 서비스가 따라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도 이 방향을 일부 제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세종의 자족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AI·바이오 등을 중심으로 산학연 기업혁신허브를 조성하고 기업과 대학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통령 역시 11일 세종 국무회의에서 균형발전과 함께 SMR·재생에너지·양자컴퓨터·우주항공·첨단바이오 등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겠다고 강조했다. 행정수도와 첨단산업 거점을 연결하겠다는 방향은 맞다. 대학도 달라져야 한다. 지역 대학을 중앙정부가 보조금으로 연명시키는 대상으로만 보는 정책으로는 청년을 붙잡기 어렵다. 기업 연구소와 대학 연구실이 연결되고, 학생이 지역 기업에서 인턴을 거쳐 취업하며, 교수가 창업하고 그 기업이 다시 지역 대학의 인재를 채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보스턴이나 실리콘밸리, 독일 뮌헨 같은 혁신도시는 관공서가 많아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다. 대학과 기업, 연구소와 자본이 서로 사람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졌다. 의료와 문화도 산업정책만큼 중요하다. 좋은 연봉을 주는 기업을 데려와 놓고 아이를 보낼 학교와 가족이 이용할 병원, 공연장과 문화시설이 부족하다면 핵심 인재는 장기간 머물지 않는다. 특히 고급 연구인력과 기업 경영진의 이동은 월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배우자의 직장과 자녀 교육, 의료와 문화까지 가족 전체의 삶을 계산한다. 균형발전이 산업부와 국토부만의 정책일 수 없는 이유다. 기업 이전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수도권 공장을 지방으로 옮기면 세금을 깎아주는 식의 일회성 유인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연구개발 인력 확보와 대학 협력, 벤처투자, 공급망까지 묶어 기업이 지방에 있을수록 오히려 사업하기 좋은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수도권 기업에 불이익을 줘 억지로 내려보내기보다 세종·충청에 있을 때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시장경제에도 맞다. 무엇보다 세종을 또 하나의 서울로 만들겠다는 욕심도 경계해야 한다. 균형발전의 목적은 수도권의 모든 것을 세종으로 옮겨 새로운 집중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세종은 행정과 정책, 대전은 연구개발과 과학기술, 청주는 반도체·바이오, 천안·아산은 첨단 제조업처럼 각 도시의 강점을 광역교통망으로 연결해야 한다. 하나의 거대한 충청 경제권이 서울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맹자’에는 “항산이 있는 자에게 항심이 있다(有恒産者有恒心)”는 말이 나온다. 안정된 삶의 기반이 있어야 마음도 안정된다는 뜻이다. 오늘의 균형발전에 적용한다면 사람에게 지역에 남으라고 요구하기 전에,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 부처를 옮긴다고 청년에게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세종에서 근무한다고 대기업 본사가 따라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사당이 들어선다고 서울의 대학과 병원, 문화와 자본이 저절로 분산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은 필요하다.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이 공간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강한 상징이며, 행정 효율을 높이는 실질적인 효과도 있다. 이 첫걸음을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다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세종 행정수도의 성공 여부는 몇 개 부처와 기관이 내려왔는지가 아니라 세종과 충청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 일자리가 새로 생겼는지, 지역 대학을 나온 청년이 서울행 열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지, 기업이 정부 권유가 없어도 스스로 내려가겠다고 판단하는지를 보고 평가해야 한다. 균형발전의 단위를 ‘기관’에서 ‘생태계’로 바꿔야 한다. 대통령실과 국회를 옮기는 것은 행정수도를 만드는 일이다. 기업과 대학, 연구소와 병원, 문화와 자본이 함께 움직여야 경제수도가 만들어진다. 행정수도 하나를 만드는 것으로 수도권공화국은 끝나지 않는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강한 경제권을 만드는 것. 그것이 세종 행정수도 완성의 진짜 목적이어야 한다.
2026-08-12 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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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전'도 좋다, 대통령이 모든 길을 뚫을 순 없다
[경제일보] 대통령이 다시 기업들의 투자 일정표를 펼쳐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메가프로젝트’ 제2차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한 대형 투자사업의 진행 상황을 직접 챙겼다. 지난달 첫 회의를 연 지 한 달여 만이다. 광주 군공항 이전에서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전력과 용수 공급, 각종 인허가와 규제 개선까지 대통령 앞에 올라왔다. 이 대통령은 “속도전을 넘어서 전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세계 산업전쟁의 시계에 한국 행정의 느린 걸음을 맞출 수 없다는 주문일 것이다. 맞는 진단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피지컬AI에서 1~2년은 단순히 달력 몇 장이 넘어가는 시간이 아니다. 기술 세대가 바뀌고 고객사가 공급망을 다시 짜고, 경쟁국이 새로운 공장을 먼저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기업이 수십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는데 부지와 전력, 용수, 환경영향평가를 놓고 정부 부처를 몇 년씩 오가게 한다면 국가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특별법’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각종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전력·용수·교통 등 기반시설을 함께 구축하며, 여러 부처에 흩어진 사안을 범정부 차원에서 신속하게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광주 군공항의 기능을 조기에 분산 배치해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을 앞당기고, 필요한 전력도 사업 일정에 맞춰 공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충청권과 영남권에서도 수백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가 예정돼 있다. 대통령이 나서자 오래 얽혀 있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기업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런 일이라면 대통령이 몇 번이고 회의를 열어도 좋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박수를 치고 끝내기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일이 움직이는가.’ 군공항 이전 시점부터 산업단지 착공, 송전망과 용수 공급까지 대통령이 일일이 일정표를 확인해야 비로소 부처가 움직인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추진력을 보여주는 장면인 동시에 우리 행정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처음 길을 뚫는 것은 필요하다. 군과 지방자치단체, 여러 정부 부처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수십 년간 뒤엉킨 사업이라면 최고 책임자의 결단 없이는 첫 삽을 뜨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누구도 책임지고 먼저 움직이지 못하는 사안에서 대통령이 “이 방향으로 가라”고 정리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할이다. 대통령이 첫 문을 열었다면 두 번째 문부터는 장관들이 열어야 한다. 산업부 장관은 투자 일정을 책임지고, 국토·환경 행정은 부지와 교통망, 환경과 용수를 맡아야 한다. 전력 당국은 송전망의 완공 시점을 책임져야 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을 설득하고 정주 여건을 갖추는 일을 자신의 이름으로 해내야 한다. 약속한 날짜를 지키지 못했다면 왜 늦었는지 설명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책임도 져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행정이다. 한국 행정의 고질적인 문제는 책임자가 없어서라기보다 책임이 너무 잘게 쪼개져 있다는 데 있다. 대형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산업·국토·환경·전력·지방행정이 모두 관여한다. 하지만 각 기관은 자기 업무만 처리하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산단 지정에는 문제가 없고, 환경 절차에도 문제가 없고, 전력 공급도 규정대로 검토했다고 한다. 모든 기관이 자기 몫을 했다는 데 정작 공장 착공은 늦어진다. 기업 눈에는 정부가 여러 개가 아니다. 하나다. 이 단순한 상식을 행정이 자주 잊는다. 기업인은 어느 부처의 어느 과가 무엇을 맡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공장을 지을 수 있는가”라는 한 가지 답을 원한다. 하지만 그 답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니 결국 대통령 앞까지 사안이 올라간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리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그동안 “어렵다”고 하던 사안에 대안이 붙고, “검토 중”이던 사업에 날짜가 생긴다. 법이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니다. 책임지고 결정할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 직할 행정’의 효용과 위험이 함께 있다. 초기에는 빠르다. 강력한 정치적 권위가 부처의 칸막이와 오래된 이해관계를 단숨에 넘어설 수 있다. 이런 방식이 일상화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사업은 빨리 가고, 대통령의 회의 안건에 올라가지 못한 사업은 다시 평소의 속도로 돌아간다. 기업 입장에서 법과 제도보다 대통령의 관심 여부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된다면 그것은 좋은 투자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에게도 시간은 하루 24시간뿐이다. 반도체 공장의 물길과 송전선까지 대통령이 끝까지 챙기는 동안 외교와 안보, 복지와 교육, 저출생과 재정도 대통령을 기다린다. 메가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대통령실이 거대한 민원조정실이 되는 구조는 오래갈 수 없다. 이번 ‘전격전’의 진짜 성과는 특정 공장의 착공 시점을 몇 년 앞당기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챙기지 않아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정부를 만드는 데까지 가야 한다. 먼저 대형 전략투자에는 한 사람이 전체 일정을 책임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원스톱 창구’를 설치했다고 해놓고 접수만 한 곳에서 받은 뒤 서류가 다시 여러 기관을 순회한다면 간판만 바꾼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국가전략 프로젝트에는 총괄 책임자를 두고 부지·전력·용수·환경·교통 문제를 한꺼번에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행정 방식도 바꿔야 한다. 환경 검토가 끝난 뒤 전력을 논의하고, 전력 문제가 정리된 뒤 용수를 검토하는 식으로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서는 세계 산업경쟁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사업 초기부터 환경·전력·용수·교통 문제를 동시에 들여다봐야 한다. 이것은 환경 기준을 낮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절차를 없애는 것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주민의 권리와 노동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이유로 주민 의견을 건너뛰거나 노동·환경 기준을 일괄적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빨라 보일지 몰라도 갈등이 쌓이면 소송과 반발로 더 많은 시간을 잃는다. 빠른 정부는 절차를 무시하는 정부가 아니라, 필요한 절차를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는 정부다. 공무원이 결정을 피하지 않게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새로운 사업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성공하면 정치권의 성과가 되고 실패하면 실무자의 책임이 되는 구조에서는 누구라도 전례를 찾고 결재를 미룬다. 명백한 특혜나 위법이 아니라면 당시의 자료와 절차에 따라 내린 합리적인 정책 판단은 보호할 필요가 있다. 적극행정은 구호가 아니라 감사와 인사제도에서 시작해야 한다. ‘맹자’에는 “도선부족이위정 도법불능이자행(徒善不足以爲政 徒法不能以自行)”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뜻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고, 법도 스스로 실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사람이 움직여야 제도가 움직인다. 지금 메가프로젝트에 대통령의 힘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래 굳어버린 행정을 처음 움직이려면 최고 책임자의 결단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국가는 뛰어난 지도자 한 사람의 독촉에 오래 의존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의지를 제도로 바꾸고, 제도를 조직의 습관으로 만드는 나라가 강한 나라다. 대통령의 역할은 방향을 정하고 처음 막힌 길을 여는 데 있어야 한다. 그다음부터는 총리가 부처를 조정하고 장관이 일정에 책임을 지며, 지자체장이 현장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사업이 늦어질 때마다 대통령이 다시 등장하는 구조가 아니라, 대통령이 없어도 담당자가 움직이고 정해진 날짜에 답을 내놓는 구조가 필요하다. 메가프로젝트의 성적표도 그렇게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몇 차례 회의를 열었는지가 아니라 그 뒤 대통령이 회의를 열지 않아도 사업이 일정대로 진행됐는지를 봐야 한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에 장관이 문제를 풀었는지, 지자체장이 기업과 주민을 설득했는지, 담당 기관이 약속한 날짜 안에 결정을 내렸는지를 따져야 한다. ‘전격전’은 시작할 때 필요하다. 다만, 국가가 언제까지나 전격전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지금은 대통령이 직접 뛰어 막힌 길을 열어야 할 때일 수 있다. 그 길이 열렸다면 이제 장관과 지자체장이 달려야 한다. 대통령은 방향을 정하고, 장관은 일정과 결과에 책임지며, 공무원은 법과 원칙 안에서 결정을 내리는 정부. 그것이 메가프로젝트 속도전의 다음 단계다. 대통령의 속도는 임기와 함께 끝난다. 시스템의 속도는 정권이 바뀌어도 남는다. 이번 ‘전격전’의 가장 값진 성과는 공장 몇 곳을 빨리 세우는 데 있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않아도 제시간에 움직이는 정부를 남기는 데 있다.
2026-08-11 09: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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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이차전지 국내 생산 세액공제…2036년 말까지 지원
[경제일보] 정부가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전략산업의 국내 생산을 늘리기 위해 생산 단계에 대한 세제 지원을 도입한다.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해 공급망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구상이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에 국내생산세액공제를 신설했다. 새 제도는 국내 생산기반 확충이 필요한 전략산업을 대상으로 한다. 대상 분야는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이차전지, 반도체, 핵심소재, AI 로봇부품 등 6개 산업이다. 국내에서 직접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생산량과 기준공제액에 따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제도 적용 기한은 오는 2036년 말까지다. 정부는 지방 중심의 산업 육성을 위해 생산지역별 계수도 적용하기로 했다. 수도권은 1.0, 비수도권 광역시는 1.1, 기타 비수도권은 1.3, 기타 비수도권 우대지역은 1.5를 적용해 비수도권 기업이 더 큰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공제 제도는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재정 부담을 고려해 종료 직전 3년은 공제 규모를 단계적으로 줄이고, 통합투자세액공제와는 중복 적용하지 않는다. 산업부는 이번 제도가 생산비 부담으로 해외 생산 비중이 높았던 기업들의 국내 생산 확대를 유도하고, 공급망 안정과 국가 산업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는 국회 논의와 후속 법령 마련 과정에서 업종별 협·단체 의견을 수렴해 대상 품목과 적용 요건, 기준공제액 등을 확정할 계획이다.
2026-08-07 14: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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