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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 후보, 삼권분립과 협치를 보여줘라
[경제일보] 더불어민주당이 13일 제22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6선의 조정식 의원을 선출했다. 조 후보는 5선의 박지원·김태년 의원을 꺾고 결선 없이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었다. 원내 제1당 후보가 국회의장으로 선출돼 온 관례를 감안하면, 본회의 표결을 거쳐 후반기 입법부 수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몫 국회부의장 후보로는 남인순 의원, 국민의힘 몫 국회부의장 후보로는 박덕흠 의원이 각각 선출됐다. 국회의장 후보 선출은 한 정당의 내부 행사가 아니다. 국회 운영의 방향을 가늠하는 정치적 신호다. 더욱이 지금 국회는 대화와 타협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 여야는 민생과 경제, 외교·안보, 재정과 세제, 연금과 노동개혁처럼 협상이 필요한 의제 앞에서도 먼저 상대를 공격하고, 나중에 명분을 찾는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 국회의장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책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의장은 다수당의 승리 전리품이 아니라 입법부 전체의 균형추여야 한다. 조정식 국회의장 후보는 수락 발언에서 “일 잘하는 이재명 정부와 함께 대한민국 대전환과 도약을 국회도 함께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올해 말까지 정부 국정과제 입법을 처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집권세력과 국회 다수당이 국정과제 추진에 책임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국회의장이 그 책임감을 어떻게 구현하느냐다. 의장이 행정부의 입법 지원 창구처럼 보이는 순간 국회의 권위는 스스로 낮아진다. 국회가 정부와 협력할 수는 있지만 정부의 하위 기관이 돼서는 안 된다. 삼권분립은 교과서 속 장식물이 아니다. 권력이 스스로 절제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막기 위해 만든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장치다. 입법부는 법을 만들고 행정부는 집행하며 사법부는 법과 권력의 충돌을 심판한다. 이 세 축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잡을 때 국가 운영은 안정된다. 국회의장은 그중 입법부의 얼굴이다. 여당 출신일 수는 있지만 의장석에 앉는 순간 당의 사람을 넘어 국회의 사람이 돼야 한다. 지금 국민이 국회에 느끼는 피로감은 단순히 말싸움이 많아서가 아니다. 싸움의 방식이 낡았고 결과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정쟁은 거칠지만 민생 성과는 더디다. 회의장은 열리지만 합의는 닫힌다. 법안은 쏟아지지만 숙의는 줄어든다. 다수당은 의석의 힘을 앞세우고 소수당은 반대의 명분만 쌓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어느 쪽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국회의장의 역할은 바로 이 악순환을 끊는 데 있다. 첫째, 의장은 본회의와 상임위 운영에서 절차의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지만 다수결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충분한 토론, 소수 의견의 반영, 법안 심사의 투명성,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가 함께 있어야 한다. 의장이 의사봉을 빠르게 두드리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왜 지금 표결해야 하는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둘째, 의장은 여야 지도부의 정쟁을 중재할 정치적 권위를 세워야 한다. 지금의 국회에는 싸움을 말릴 어른이 부족하다. 당 대표는 당의 이해를 대변하고, 원내대표는 표결 전략을 짠다. 그래서 국회의장은 더더욱 정파의 계산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한다. 여당이 밀어붙일 때는 속도를 조절하고 야당이 발목잡기에 머물 때는 대안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의장의 균형이다. 셋째, 의장은 민생 입법의 우선순위를 세워야 한다. 물가, 주거, 고용, 자영업, 금융소비자 보호, 지역경제, 저출생과 연금 문제는 여야가 끝없이 대치할 사안이 아니다. 입장이 다르더라도 합의 가능한 지대는 있다. 모든 법안을 이념 전선으로 끌고 가면 국회는 문제 해결 기관이 아니라 갈등 증폭 장치가 된다. 의장은 여야가 최소한의 공통분모부터 처리하도록 회의 구조와 협상 테이블을 설계해야 한다. 넷째, 의장은 행정부 견제라는 국회의 본령을 회복해야 한다. 여당 정부라고 해서 감시가 약해져서는 안 된다. 예산은 국민의 돈이고 법률은 국민의 삶을 바꾼다. 정부가 잘하면 뒷받침하되, 무리하면 멈춰 세워야 한다. 그것이 협치다. 협치는 야당을 달래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이 독주하지 않도록 제도를 작동시키는 일이다. 동양 고전 <논어> 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말이 있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무작정 같아지지 않고, 소인은 겉으로 같아 보여도 진정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국회가 배워야 할 말이다. 협치는 여야가 생각을 같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되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함께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을 찾는 일이다. 국회의장은 이 ‘화이부동’의 정치가 가능한지 보여주는 자리다. 여당과 뜻이 같다는 이유로 야당을 밀어내면 ‘동이불화’가 된다. 야당의 반대가 두렵다는 이유로 아무 결정도 못 하면 그것 역시 책임 회피다. 의장은 다름을 조정하고, 충돌을 절차 안으로 끌어들이며, 최종 결정에 국민적 정당성을 부여해야 한다. 조 후보에게 따라붙는 정치적 평가는 분명하다. 그는 6선 중진이자 민주당 내 핵심 인사로 꼽힌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무특보를 지냈고, 당내에서는 친명계 인사로 분류된다. 이런 정치적 이력은 강점일 수도 부담일 수도 있다. 강점은 여권 내부를 설득할 힘이 있다는 점이다. 부담은 국회의장이 여권의 입법 드라이브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평가는 의장 취임 이후의 행동으로 갈릴 것이다. 후반기 국회는 쉽지 않다. 6·3 지방선거 이후 정국은 더 거칠어질 가능성이 있다. 여야는 선거 결과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 할 것이다.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성장, 물가, 가계부채, 부동산, 기업 투자, 연금개혁 등 어느 하나 간단한 문제가 없다. 이럴 때 국회가 정쟁의 무대에 머물면 그 비용은 국민이 치른다. 국회의장은 국회법의 관리자이자 헌정 질서의 수호자다. 박수를 많이 받는 자리보다 욕을 덜 두려워해야 하는 자리다. 여당에는 절제를 요구하고 야당에는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행정부에는 협력하되 견제해야 하고 국민에게는 국회가 아직 문제를 풀 수 있는 기관이라는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조 후보가 진정으로 민생 국회를 말하려면 첫 출발은 명확해야 한다. 국회의장석은 정당의 연장선이 아니라 헌법의 자리라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여당의 속도전과 야당의 반대정치 사이에서 절차와 숙의를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삼권분립이다. 그것이 협치다. 국회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은 거창하지 않다. 덜 싸우라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싸우라는 것이다. 국민 앞에서 근거를 놓고 다투고 절차 안에서 양보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정치가 필요하다. 후반기 국회의장은 그 첫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조정식 국회의장 후보가 보여줘야 할 것은 당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헌법에 대한 충성이다. 지금 국회에 필요한 의장은 강한 의장이 아니라 공정한 의장이다.
2026-05-14 10: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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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공천 '사사로운 의리'로 법치(法治)의 붕괴 가져와선 안된다
법치의 균열은 언제나 사소한 예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예외는 대개 ‘사람에 대한 의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공적 질서를 지탱하는 법치와 사적 관계를 지탱하는 의리는 애초에 다른 영역이다. 이 둘이 뒤섞이는 순간, 국가는 원칙을 잃고 정치는 신뢰를 잃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불거진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공천 논란은 바로 이 위험한 경계를 시험하고 있다. 법원의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단이 내려진 인물을 두고, 수십 명의 현역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공천을 요구하는 장면은 단순한 당내 갈등을 넘어선다. 이는 법치의 권위를 정면으로 흔드는 정치적 행동이며, 공과 사의 구분을 흐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정치는 본래 ‘도(道)’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노자의 말처럼 큰 길이 무너지면 그 자리를 인위적 명분과 위선이 채운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그러하다. 사법부의 판단이라는 객관적 기준 대신 ‘정치적 피해자’라는 서사가 앞세워지고, 판결의 무게보다 정파적 연대가 우선시되는 현실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책임의식의 부재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천을 강행하자는 주장은 형식 논리일 뿐이다. 만약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에게 돌아간다. 재·보궐 선거라는 비용과 혼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정치는 결과에 책임지는 행위여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유교의 가르침이 강조하는 것도 결국 자기 절제와 책임이다. 자신을 바로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공적 권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는 공동체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을 스스로 낮추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라 구조적 퇴행이다. 사법부에 대한 압박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특정 사건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공개적으로 판결 방향을 언급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모습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흔드는 일이다. 법원이 정치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순간, 법치는 더 이상 약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없다. 결국 이 사안의 본질은 하나다. 공당이 ‘국민의 상식’ 위에 서 있느냐, 아니면 ‘내 편의 논리’에 갇혀 있느냐의 문제다. 공천은 특정인을 구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유권자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그 기준이 무너지면 정당 정치의 존재 이유 자체가 흔들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복잡한 해석이 아니라 단순한 원칙이다. 법적 판단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면 그 결론을 기다리는 것이 순리다. 무죄가 확정된다면 그때 당당히 정치적 평가를 받으면 된다. 그 이전에 권력을 동원해 길을 열어주려는 시도는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허무는 일이다. 정치는 결국 신뢰로 유지된다. 그리고 그 신뢰는 공정함에서 나온다. 사사로운 의리가 공적 판단을 압도하는 순간, 정치는 공동체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특정 집단의 도구로 전락한다. 지금의 논란은 단순한 공천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치가 여전히 ‘법 위에 사람을 두는가’라는 오래된 질문 앞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답은 어렵지 않다.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상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무너질 때, 어떤 명분도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2026-04-27 13: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