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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검증의 출발선" 청와대 사전 검증은 무엇을 했나
[경제일보]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검증을 대신하는 절차가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마지막 문턱에 가깝다. 그 문턱에 누구를 세울 것인지를 먼저 가려내는 일은 인사권자의 몫이다. 이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청문회는 검증 장치가 아니라 잘못된 인사를 뒤늦게 수습하는 무대가 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청와대가 내놓은 설명은 그래서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청문 제도 자체가 후보자에 대한 국민적 검증 과정”이라며 두 후보자가 “인사위원장의 책임 아래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된 후보”인 만큼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국민 눈높이에 부족함이 없도록 인사 검증체계를 갖추고 강화하겠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사청문회는 국민을 대신한 국회의 공개 검증 절차다.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는 보장도 없고, 청문회를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다만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했다면서 왜 곧바로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인가. 김 후보자에게는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과 관련한 청탁 의혹과 과거 음주운전 문제가 제기됐다. 김 후보자는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고 반박하면서도 민원 전달 과정에는 신중했어야 했다고 밝혔고,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용 후보자에게는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의 겸직 문제, 당 운영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 등이 제기되고 있다. 각각의 의혹과 적격성은 청문회에서 사실관계를 더 따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명 전 어디까지 검토됐느냐는 것이다. 이미 알고도 장관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청와대가 그 판단에 책임을 지면 된다. 반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사전 검증에 구멍이 있었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경우든 “청문회에서 검증하자”는 말만으로 끝낼 문제는 아니다. 국회법은 국무위원 후보자 등에 대해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에게서 후보자를 고르는 책임을 넘겨받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 이후 국회가 공직 수행 능력과 도덕성 등을 공개적으로 다시 검증하는 견제 장치다. 사전 검증과 인사청문은 순서만 다른 같은 검증이 아니다. 책임의 주체부터 다르다. 청와대 검증은 대통령의 책임이고, 국회 청문회는 국회의 책임이다. 이 단순한 구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청와대가 후보자의 재산과 세금, 범죄·징계 이력, 이해충돌 가능성, 과거 행적과 정무적 리스크를 충분히 확인한 뒤 “이 정도 문제를 감안해도 국정을 맡길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지명이다. 청문회는 그 판단에 누락이나 왜곡이 없는지 국민 앞에서 다시 따지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전 단계에서 걸러졌어야 할 문제가 지명 직후 쏟아지고, 그때마다 “청문회에서 보자”는 답이 반복되면 인사의 책임 구조가 거꾸로 선다. 대통령이 고르고 청와대가 검증했는데, 최종적으로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발견하고 판단하는 책임은 국회와 언론, 국민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방식이 반복될 때 생기는 ‘지명의 관성’이다. 후보자를 발표한 뒤에는 철회 비용이 커진다. 인사 실패를 인정해야 하고 야당의 공세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이미 지명했다는 이유 자체가 후보자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되기 쉽다. 검증의 판단 기준이 ‘공직에 적합한가’에서 ‘청문회를 버틸 수 있는가’로 바뀌는 순간이다. 제대로 된 사전 검증은 흠결을 하나도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현실 정치에 거의 없다. 핵심은 어떤 흠결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기준을 미리 세우는 것이다. 음주운전이나 세금 체납, 부동산 투기, 연구윤리 위반, 갑질, 이해충돌, 수사·징계 이력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검증 항목부터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부족하다. 공직의 성격에 따라 어느 정도의 흠결을 결격으로 볼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기준과 산업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전문성의 기준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제는 탈락 사유였던 문제가 오늘은 해명 가능한 문제가 되는 것도 곤란하다. 법적 결격과 정치적·윤리적 부적격을 구분하는 기준도 필요하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장관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장관은 형사재판에서 유죄인지 무죄인지만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에게 정책의 준수를 요구하고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법률상 임명 가능성과 국민이 기대하는 공직 윤리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그때그때 여론을 보며 판단해서는 인사 원칙이 생기지 않는다. 책임선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청와대 인사는 인사위원회를 중심으로 후보 추천과 검증, 정무적 판단이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인사수석실까지 신설됐지만 후보자 논란이 반복되면서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누가 후보자를 추천했는지까지 모두 공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인사에는 보안이 필요하다. 후보군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하지만 지명 이후 중대한 문제가 드러났다면 최소한 내부적으로는 추천 단계에서 놓쳤는지, 검증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했는지, 알고도 정무적으로 수용했는지를 구분하고 책임을 남겨야 한다. 알고도 선택했다면 대통령과 인사위원회가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된다. 몰랐다면 검증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상서’ 고요모에는 ‘지인즉철 능관인(知人則哲 能官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지혜이며, 그래야 사람을 제대로 벼슬에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수천 년 전에도 국정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를 ‘사람을 알아보는 일’에서 찾았다. 인사가 어려운 것은 시대가 달라져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고 완벽한 후보자는 없다. 사생활과 공적 검증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도 쉽지 않다. 지나치게 가혹한 검증은 유능한 인재가 공직을 피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준이 필요하다. 정권에 가까운 사람에게는 느슨하고 반대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아니라, 어느 정부에서든 대체로 예측할 수 있는 기준 말이다. 청와대가 이번에 인사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한 것은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강화하겠다’는 말만 반복해서는 같은 문제가 다음 개각에서 다시 돌아온다. 검증 항목을 표준화하고, 중대한 결격 사유와 해명 가능한 사안을 구분하며, 추천·검증·정무 판단의 책임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명 뒤 예상하지 못한 중대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어떤 단계에서 놓쳤는지 복기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또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인사청문회는 청와대 검증의 실패를 대신 책임지는 곳이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명하기 전에 제대로 검증하는 것은 그보다 먼저 존재하는 권한이자 책임이다. 청문회에서 모든 것을 확인하겠다면 사전 검증은 형식이 된다. 반대로 청와대가 자신 있게 검증을 마쳤다면 논란이 불거졌을 때 “청문회에서 보자”에 앞서 왜 그 문제를 감수하고도 지명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사의 신뢰는 흠결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왜 골랐고, 무엇을 확인했으며,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 분명할 때 생긴다. 청문회는 검증의 시작이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국민 앞에서 확인하는 마지막 문턱이어야 한다.
2026-09-08 09: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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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된다고 다 해도 되나…공직자의 '공정 감수성'이 무너지고 있다
[경제일보] 공직은 권리가 아니라 책임이다. 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모두 해도 되는 자리도 아니다. 공직자와 공직후보자에게는 법률의 최소 기준을 넘어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이라는 더 높은 잣대가 따라붙는다. 최근 잇따른 논란은 이 당연한 원칙을 다시 묻게 한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재정 비상상황’을 선언했다. 경기도는 재정난을 이유로 5465억원 규모의 세출 구조조정에 나섰고, 직원들에게도 고통 분담을 주문했다. 그런데 추 지사가 도청 인근 156㎡ 아파트를 12억2000만원에 전세 계약한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경기도는 업무 효율을 위해 관련 규정에 따라 계약했고, 계약 당시에는 재정 상황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규정을 어겼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상징이다. 직원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서 최고 책임자가 상대적으로 넓고 비싼 관사를 사용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재정 비상이 정말 심각하다면 먼저 줄여야 할 비용이 무엇인지 지도자가 보여주는 것이 순리다. 조직은 말보다 행동을 먼저 본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비례대표 의원직 겸직 논란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법적으로 겸직이 가능한지 여부와 국민이 이를 공정하다고 받아들이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공직은 가능한 권리를 최대한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제한할 줄 아는 자리여야 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과 관련해 식약처장에게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취지의 문자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김 후보자는 민원 전달일 뿐 부정한 로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현 단계에서 위법을 단정해선 곤란하다. 그렇지만 국회의원의 문자 한 통이 평범한 민원인의 전화 한 통과 같은 무게일 리는 없다. 의원은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사하며 정부기관을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 지위에서 “빨리 처리해달라”는 말은 의도와 무관하게 행정기관을 압박하는 신호로 읽힌다. 이 세 사례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하나는 관사, 하나는 겸직, 하나는 민원 전달 문제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모두 법 위반 여부를 따지기 전에 공직자의 자기 절제가 충분했는지를 묻게 한다. 정치권은 이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규정에 따른 것이다” “관행이었다”고 설명한다.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논어>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공직 윤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직원들에게 긴축과 희생을 요구한다면 자신부터 절제해야 하고, 국민에게 공정한 절차를 요구한다면 자신도 권력의 지름길을 경계해야 한다. 최근 여론 흐름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국갤럽의 지난 1~3일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40%, 부정 평가는 51%였다. 20대 긍정 평가는 25%로 전주보다 6%포인트 떨어졌다. 부정평가 이유에서는 ‘인사’가 9%로 올라섰다. 한 번의 조사 결과만으로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근 인사 논란이 특히 청년층의 공정 감수성을 건드렸다는 정치권의 해석에는 귀 기울일 대목이 있다. 2030 세대가 특권 문제에 민감한 이유는 단순하다. 취업과 주거, 자산 형성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는 세대에게 ‘누군가는 자리도 갖고, 혜택도 갖고, 인맥도 활용한다’는 인상은 강한 박탈감으로 돌아온다. 공직자가 이를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말로 넘기면 민심과 더 멀어진다. 정치는 법률가의 시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합법인지뿐 아니라 무엇이 적절한지를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다. 규정상 가능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해친다면 스스로 한 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장관과 도지사, 국회의원처럼 권한이 큰 자리일수록 기준은 엄격해져야 한다. 권력이 크면 책임도 커진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공직 후보자 검증도 달라져야 한다. 재산과 세금, 전과 여부만 확인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이해충돌 가능성, 특혜의식, 권한 행사 방식, 공적 자원을 대하는 태도까지 함께 봐야 한다. 결국 국민이 묻는 것은 ‘법을 어겼느냐’만이 아니라 ‘이 사람이 공직을 맡을 자세가 돼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인사는 능력만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도덕성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사람인가에 대한 신뢰가 함께 있어야 한다. 지금 공직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해명이 아니다. 법과 규정을 내세우기 전에 스스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선택을 하는 문화다. 특권처럼 보이는 관사는 줄이고 이해충돌의 여지가 있는 자리는 내려놓고 권한 있는 사람의 전화 한 통도 조심하는 것이다. 이런 작은 절제가 쌓여 공직의 신뢰가 만들어진다. 공직은 가능한 것을 모두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절제, 누릴 수 있어도 내려놓는 태도에서 공직의 품격이 드러난다.
2026-09-07 14: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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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라인 갈아치우면 정책도 달라지나
[경제일보]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을 설계해 온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이 물러났다. 김 실장은 지난달 31일 사의를 밝혔고 이재명 대통령은 1일 사표를 수리했다. 이 정부 초대 정책실장으로 부동산과 산업정책, 대미 관세협상 등을 조율해 온 핵심 참모가 출범 1년3개월여 만에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재정경제부와 국토교통부 등 6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중폭 개각도 단행했다. 시점도 예사롭지 않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4~28일 전국 유권자 25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8.9%로 나타났다. 취임 후 처음 30%대로 내려왔고 7주 연속 하락했다. 조사기관은 집값과 전월세 불안 등을 지지율 하락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정권이 국정 동력을 잃을 때 인적 쇄신은 오래된 처방이다. 장관과 참모를 바꾸면 국민에게 변화의 신호를 줄 수 있고 조직에도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정책 실패에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인사는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사람을 바꾸면 정책도 달라지느냐다. 김 정책실장 개인의 공과를 따지는 것만으로는 최근의 문제를 설명하기 어렵다. 부동산과 세제, 금융, 재정 같은 핵심 정책은 정책실장 한 사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통령실과 관계부처, 여당, 관료조직이 함께 논의하고 대통령의 최종 판단을 거쳐 실행된다. 결과가 좋을 때는 ‘정부의 성과’라 하고 문제가 생기면 장관이나 참모 한두 명의 책임으로 정리한다면 같은 오류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집값을 안정시키고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목표 자체에 반대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공급과 금융, 세제 정책이 시장에 어떤 신호를 줬는지다. 대출을 억제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실수요 지원을 확대하고, 공급을 강조하면서도 재건축·재개발이나 토지 활용 문제를 놓고 정책 메시지가 엇갈리면 시장은 혼란스러워진다. 정책을 만든 사람을 바꾸기 전에 이런 엇박자가 왜 생겼는지부터 찾아야 한다. 세제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시장이 움직일 때마다 세율과 공제, 대출규제를 꺼내 들면 국민은 정책의 원칙보다 다음 규제가 무엇일지를 먼저 생각한다. 정책이 시장의 기대를 안정시키는 대신 정부 발표 때마다 새로운 불확실성을 만드는 구조라면 담당 장관 교체만으로 신뢰가 회복되기 어렵다. 재정정책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생산적 재정을 내세우며 AI와 미래산업, 청년과 지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필요한 방향이다. 그러나 지출 확대와 국가채무 관리, 기존 사업 구조조정의 원칙이 동시에 제시되지 않으면 결국 돈을 더 쓰겠다는 메시지만 시장에 남을 수 있다. 산업정책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지는 문제를 경계해야 한다. 반도체와 AI부터 SMR·양자·우주·바이오까지 정부가 미래산업을 선정하고 금융과 세제, 연구개발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전략산업 육성은 필요하지만 정부가 산업의 승자를 모두 골라주려 하면 민간의 판단과 경쟁이 약해질 수 있다. 어느 선까지 정부가 개입하고 어디서부터 시장에 맡길 것인지 원칙이 분명해야 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정책 하나하나보다 정책을 만드는 방식에 있을 수 있다. 한국의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실로 정책 결정이 집중되기 쉽다. 장관은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책임자지만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전달되는 순간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렵다. 청와대가 방향을 정하면 부처는 세부안을 만드는 집행기관으로 밀리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구조에서는 정책실장과 장관을 아무리 유능한 인물로 바꿔도 한계가 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올라가는 조직에서는 정책 실패가 반복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대통령에게 “이 정책은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속도를 늦춰야 한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대통령의 철학을 가장 빠르게 실행하는 참모만큼 그 정책의 위험을 냉정하게 경고하는 참모도 필요하다. 장관 역시 대통령실의 지시를 받아 적는 자리가 돼선 곤란하다. 경제부처 장관이라면 시장과 기업, 가계의 현실을 근거로 대통령에게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국토부 장관은 집값이 정부의 기대와 다르게 움직이면 그 원인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정책 수정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 수정에 대한 정부의 인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 한번 발표한 정책을 고치는 것을 실패나 후퇴로 받아들이면 잘못된 정책을 오래 끌고 가게 된다. 상황이 달라졌거나 부작용이 확인됐다면 빨리 수정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 있는 정부다. 다만 여론이 나빠질 때마다 정책을 뒤집는 것도 답은 아니다. 수정에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부동산이라면 집값과 거래량, 입주 물량, 가계대출과 전월세 가격 등 사전에 정한 지표를 기준으로 정책을 평가할 수 있다. 재정사업이라면 투자 대비 생산성과 민간투자 유발 효과, 일자리 창출 같은 성과를 측정하면 된다. 정책을 발표할 때부터 어떤 결과가 나타나면 유지하고, 어떤 결과가 나타나면 수정하겠다는 기준을 공개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 정부의 체면보다 정책 효과를 앞세우는 구조다. 여당의 역할도 중요하다. 집권당이 정부 정책을 무조건 방어하면 민심의 경고가 대통령실에 전달될 통로가 사라진다. 여당은 야당보다 먼저 정부 정책의 허점을 찾아내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대통령을 돕는 길이다. 이번 인사가 책임 회피용이라는 뜻은 아니다. 김 정책실장이 스스로 사의를 밝혔고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만큼 새로운 경제라인이 정책을 다시 정비할 기회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장관과 참모들이 기존 정책을 원점에서 점검한다면 인적 쇄신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얼굴만 바꾸고 정책 결정 구조가 그대로라면 개각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지지율 38.9%라는 숫자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한 차례 여론조사를 국정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다만 7주 연속 하락이라는 흐름은 정부가 국민이 느끼는 불안을 돌아보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만하다. 그 신호에 대한 답이 사람 몇 명을 바꾸는 데 그쳐서는 부족하다. 정권의 실패는 흔히 사람과 정책,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만든다. 사람을 바꾸는 것이 가장 빠르고 눈에 잘 보인다. 정책을 고치는 것은 더 어렵고,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는 일은 그보다 더 어렵다. 그렇지만 어려운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 같은 장면을 다시 보게 된다. 이번 개각과 정책실장 교체가 진정한 쇄신이 되려면 새 경제팀에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주고 대통령실도 다른 목소리를 듣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잘못된 정책은 체면을 따지지 않고 수정하고, 효과가 없는 사업은 접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누가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뉴스만이 아니다. 집값과 생활비 부담이 줄고 일자리가 늘고 기업이 투자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것이다. 인사의 성패도 결국 그 결과에서 판가름 난다. 사람을 바꾸는 것으로 국정 쇄신은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또 다른 인사만 기다리게 된다. 이번 개각이 남겨야 할 진짜 변화는 새 얼굴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을 스스로 발견하고 고칠 수 있는 정부 시스템이다.
2026-09-01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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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공급에 징벌적 과세"…오세훈, 정부 부동산 정책에 '맞불'
정부의 8·13 부동산 대책을 둘러싼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공방이 본격화한다. 국민의힘 서울시당과 서울시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막힌 공급·징벌적 과세, 8·13 부동산 대책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부동산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모색한다는 취지지만, 서울 주택 공급과 세제 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시각차가 재확인되는 자리였다. 국민의힘 서울 지역 의원들은 이날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주택 공급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비거주 1주택자, 초고가 주택 보유자 등에 대한 과세를 강화한 8·13 부동산 세제 개편으로 수도권 민심이 반응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민간 공급 확대 등을 해법으로 제시하며 여론 공략에 나선 모습이다. 오 시장은 "현재 부동산 시장은 매매·전세·월세가 함께 오르는 트리플 강세다. 시장이 정부 정책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정부가 내놓는 건 확실한 공급 신호가 아닌 더 징벌적인 세금과 규제"라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국민이 고통받을 것을 알면서도 실패한 정책을 고집한다면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독선"이라며 "서울에는 이미 가장 확실하고 검증된 공급 대안이 있다. 바로 재개발·재건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시가 계획 중인 정비사업만 정상적으로 진행돼도 2031년까지 31만 호를 착공할 수 있다"며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민간 정비사업 용적률 규제, 재개발 임대주택 비율 등 아직도 사업의 속도를 가로막고 있는 핵심 규제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당위원장인 배현진 의원은 이번 세제 개편안에 대해 "서울에서 살 사다리를 붕괴시키고, 서울에서 나가라는 말과 진배없을 정도로 내용이 허술하고 교활하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으로 "대출을 못 하게 하고 1거주 1주택, 실거주를 세금으로 강요하는 주택 규제 등에 대한 불안, 공급 대책에 대한 불안이 서울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악재가 됐다"고 진단했다. 김재섭 의원은 "트리플 강세의 가장 큰 피해 지역 중 하나가 도봉구다. 저만 해도 당장 똑같은 평수의 전세가 1억 5천만 원이 더 올라서 내년에 계약할 때 1억 5000만 원을 더 넣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방향이 달랐다 내지는 무지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이재명 정부는 분명한 해답을 알고 있음에도 거꾸로 가고 있다"며 "재건축·재개발이 공급을 가장 원활하고 정확하게,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임이 이미 여러 차례 증명이 됐음에도 막아놨다"고 지적했다. 용산공원 부지 주택 공급 방안에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가 잇따랐다. 오 시장은 "집값을 잡지 못하는 책임을 용산공원으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일축했다. 서초갑 조은희 의원은 "공원에 집을 짓기 전에 도심의 재개발·재건축부터 막힌 길을 뚫으면 된다"고 거들었다. 강서갑 당협위원장인 구상찬 서울시당 수석부위원장은 "용산공원 재개발 금지법을 가장 열심히 하신 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며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용산공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오 시장은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여왔다. 오 시장은 지난 14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 직접 참석해 정부의 세제 개편안과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서울시 정책을 설명했다. 이어 이번 토론회까지 직접 참석하면서 서울시 차원의 부동산 정책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제시했다는 분석이다.
2026-08-19 1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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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 잡은 김민석…'명심·확장·2순위표'가 만든 승리
[경제일보]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더불어민주당의 새 당대표로 선출됐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며 선호투표까지 간 끝에 54.08%를 얻으며 45.92%에 그친 정청래 후보를 꺾었다. 최고위원에는 최민희·박선원·서미화·이성윤·한민수 후보가 선출됐다. 이 가운데 최민희·이성윤·한민수 최고위원은 친정청래계, 박선원·서미화 최고위원은 친이재명계로 분류된다. 전당대회에서 맞붙었던 두 진영이 이제 하나의 지도부 안에서 공존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번 전당대회를 단순한 김 대표 개인의 승리로만 볼 수는 없다. 당정 관계를 둘러싼 노선 경쟁, 이재명 대통령과의 거리, 정청래 전 대표를 둘러싼 평가, 친명·친청 간 계파전, 지역별 당심과 세대별 선호, 선호투표제에서 나타난 ‘2순위 확장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당선 직후 수락연설에서 가장 먼저 꺼낸 말 역시 승리보다 ‘정부의 성공’과 ‘통합’이었다. 그는 “당은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 주권 정부의 성공을 위해 뛸 것”이라며 “당청의 관계는 국정의 중심인 대통령과 정부를 지원하는 전면 협력의 창조적인 수평 관계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민석 체제’가 어디를 향할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명심’만으로 이긴 선거 아니었다…지역서 버티고 2순위까지 넓혔다 김 대표의 선거전략은 비교적 명확했다. 첫 번째 축은 ‘당정 일치’였다.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신을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정부 운영을 가장 잘 이해하는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단순한 친명 후보가 아니라 정부와 당 사이를 실제로 연결할 수 있는 ‘집권당형 대표’라는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다. 반대편에 선 정 후보는 강한 개혁성과 당 정체성을 앞세웠다. 검찰개혁 등 민주당 핵심 지지층이 원하는 선명한 의제를 전면에 배치하면서 ‘강한 민주당’을 강조했다. 결국 두 후보의 대결은 ‘안정적 당정 운영’과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가운데 당원들이 무엇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의 싸움으로 흘렀다. 김 대표의 두 번째 전략은 지역별 ‘승리’보다 ‘손실 최소화’였다. 초반 순회경선부터 압도적인 선두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충청권에서는 김 후보 45.05%, 정 후보 44.61%로 불과 0.44%포인트 차였다. 사실상 초접전이었다. 부울경에서는 오히려 정 후보가 46.65%, 김 대표가 43.85%로 앞섰다. 1주차 누적에서도 정 후보 45.51%, 김 대표 44.52%로 정 후보가 근소하게 우세했다. 하지만 김 대표에게 중요한 것은 초반에 승부를 끝내는 것이 아니었다. 전체 권리당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호남과 수도권까지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불리한 지역에서 크게 지지 않고, 우호적인 지역에서 격차를 벌리는 방식이다. 특히 호남에서는 김 대표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보여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부터 민주당 정치에 몸담아 온 경력과 이재명 정부 초대 총리라는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세대별 흐름에서도 김 대표의 강점은 핵심 민주당 지지층과 중도적 이미지 사이에 있었다. 전당대회 직전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김 대표는 40·50대에서 비교적 높은 선호를 보였다. 반면 20·30대에서는 특정 후보로의 강한 쏠림보다 유보층이 많아 세대별 표심을 한쪽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양상이 나타났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김 대표의 승리를 단순히 특정 연령층이 만들어냈다고 해석하기보다는 핵심 당원층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상대적으로 넓은 유권자층에서 거부감을 낮춘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했다. 세 번째 결정적 변수는 선호투표제였다.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후보들의 2순위 선호까지 반영하는 방식으로 최종 승자가 결정됐다. 여기서 김 대표의 ‘확장성’이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송영길 후보를 1순위로 선택한 당원 가운데 상당수가 2순위 후보로 김 대표를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구조가 형성돼 있었다. 김 대표와 송 후보는 모두 큰 틀에서는 이재명 정부 성공과 당정 협력을 강조했고, 정 후보와는 차별화된 선택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선거는 ‘누가 가장 강한 1순위 지지층을 확보했는가’에서 끝나지 않았다. 탈락한 후보의 지지자를 누가 더 많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느냐가 최종 승패를 갈랐다. 김 대표의 54.08%라는 최종 득표율에는 이 같은 2순위 확장 전략이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명청대전’ 끝낼 수 있나…수락연설부터 통합 메시지 하지만 김 대표 체제의 진짜 승부는 전당대회 이후다. 이번 경선은 정책 경쟁 못지않게 계파 대결이 거칠었다. 김 대표 측은 정청래 대표 체제에서 불거졌던 당정 간 긴장과 ‘자기 정치’ 논란을 부각하며 ‘명청대전’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정 후보 측에서는 김 대표의 과거 정치 행적과 탈당 전력 등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후보 간 논쟁은 당대표 선거를 넘어 최고위원 선거로까지 번지면서 친명과 친청의 사실상 ‘팀 대결’ 양상을 보였다. 최고위원 선거 결과는 그 갈등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민희·이성윤·한민수 등 친청계로 분류되는 인사 3명이 지도부에 입성했고, 박선원·서미화 등 친명계 2명이 함께 선출됐다. 김 대표가 최고위원회를 일방적으로 장악할 수 없는 구조다. 반대로 보면 계파 통합을 실제로 시험할 수 있는 구성이기도 하다. 김 대표도 이를 의식한 듯 당선 직후부터 경쟁자와의 화합을 강조했다. 그는 수락연설에서 “(낙선한) 정청래·송영길 후보와도 함께 뛸 것”이라며 “제가 그 장을 넓게 열고 함께 열고 함께 모실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어려운 당내외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데, 이를 동지들과 함께, 신임 지도부와 함께 반드시 돌파해 내겠다”고 강조했다. 경선 과정에서 정 후보를 향해 날을 세웠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메시지다. 이제 김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이기는 정치가 아니라 상대를 지도부 운영 안으로 끌어들이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지도부 인선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친명계만을 전진 배치한다면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갈등이 최고위원회의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친청계 최고위원들에게 실질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정청래·송영길 후보까지 당 운영에 참여시킨다면 이번 전대를 계파 경쟁의 정점이 아닌 종착점으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 김 대표가 ‘명청대전의 종식’을 주장했던 만큼 이제 그 책임도 고스란히 김 대표에게 돌아왔다. 수락연설에서 제시한 당청관계의 개념 역시 주목된다. 김 대표는 대통령과 정부를 지원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관계를 단순한 수직적 관계가 아닌 “전면 협력의 창조적인 수평 관계”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직언하고, 방패가 되고, 민심의 창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정 일치를 주장하면서도 정부의 결정을 그대로 추인하는 정당에 머무르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방패’는 정부를 외부 정치공세로부터 지키겠다는 의미이고, ‘직언’과 ‘민심의 창구’는 국민 여론을 대통령과 정부에 전달하는 집권여당의 기능을 수행하겠다는 의미다. 결국 김민석식 당정관계의 성패는 이 세 가지 기능 사이에서 얼마나 균형을 잡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를 보호하는 역할만 커지면 여당의 독립성이 약화될 수 있고, 반대로 차별화만 강조하면 다시 당정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ABC 플랜’ 즉각 가동…민주당을 ‘생활 책임 정당’으로 김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당 운영의 방향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민주당을 변화시키기 위한 ‘ABC 플랜’을 즉각 가동하겠다고 선언했다. 핵심은 민주당의 정치 의제를 거대 담론에서 국민의 일상으로 더 깊숙이 옮기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먹고사는 민생 정치, 생활비 정치, 크고 넓은 덧셈 정치, 확장 정치, 유능한 민생 중심 다수 정당인 민주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부터 민주당은 역사정당, 민주 정당을 넘어 국민의 삶에 대한 책임 정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당대회 기간 내세웠던 ‘민생·실용·확장’ 전략을 당대표 취임과 동시에 실제 당 운영 원칙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계산도 깔려 있다.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만으로는 향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안정적인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념이나 계파보다 물가와 주거, 일자리, 생활비처럼 국민의 일상과 맞닿은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중도층까지 지지 기반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덧셈 정치’와 ‘확장 정치’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당대회 과정에서는 상대 진영의 문제점을 공격해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표가 된 순간부터는 자신을 찍지 않은 당원과 중도 유권자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김 대표의 선거전략이 2순위 표까지 확보하는 ‘확장’에 있었다면, 당 운영에서도 같은 전략을 적용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경선 과정에서 갈라진 친명과 친청을 하나의 지도부로 묶어야 한다”며 “대통령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해야 하고, 민주당의 정치적 의제를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로 이동시켜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선거에서 ‘당정 일치’를 내세워 승리했다. 수락연설에서는 여기에 직언·방패·민심, 그리고 통합·민생·확장을 더했다. 전당대회에서 승리하는 데 필요했던 것은 경쟁력이었다면, 집권당 대표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조정력이다. 친명과 친청, 당과 대통령실, 강성 당원과 중도층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좁힐 수 있느냐가 김민석 체제의 성패를 결정할 전망이다.
2026-08-17 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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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민주당 새 대표 선출…'명청대전' 끝내고 당정 원팀 세울까
[경제일보]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에서 물러나 당으로 돌아온 지 한 달 반 만에 집권여당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경선 과정에서 정청래 전 대표 측과 김 대표 측이 이른바 ‘친청(친정청래) 대 친명(친이재명)’ 구도로 격하게 충돌했던 만큼 새 지도부의 첫 시험대는 승리의 여세보다 갈라진 당을 얼마나 빠르게 다시 묶어내느냐가 될 전망이다. 또한 최근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김 대표는 국정 동력을 살려야 하는 중책도 함께 맡게 됐다. 민주당은 17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제3차 정기전국당원대회를 열고 김민석·정청래·송영길 후보 가운데 김 후보를 신임 당대표로 선택했다. 민주당은 이번 전대에서 대의원·권리당원 투표 70%와 국민여론조사 30%를 반영하고, 당대표 선거에는 선호투표제를 적용했다. 이번 전대는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중치를 사실상 없앤 1인1표제가 적용된 첫 정기 전당대회이기도 하다. 앞선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해 선호투표를 통한 결선투표가 진행된 끝에 김 대표는 최종 득표율 54.08%를 얻어 정 후보(45.92%)를 꺾고 승리했다. 선호투표제는 선호도에 따라 1∼3순위 후보를 명기하고,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최하위 득표자를 1순위로 투표한 유권자의 2순위 후보를 합산해 당선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함께 치러진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최민희·박선원·서미화·이성윤·한민수 의원이 새로운 지도부로 당선됐다. 본선에는 이들을 포함해 김용·김영호·임미애 후보까지 모두 8명이 올라 5개의 최고위원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본선 초반부터 최고위원 경쟁 역시 친명·친청 진영 간 세 대결 양상으로 전개됐다. ‘DJ 키즈’에서 초대 총리 거쳐 당대표까지 김 대표는 민주당 정치사에서 부침이 특히 컸던 정치인 중 한 명이다. 1964년생인 김 대표는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 의장을 지낸 86세대 운동권 출신이다. 1990년 정계에 입문한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며 이른바 ‘DJ 키즈’의 대표 주자로 성장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32세의 나이로 당선돼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렸고, 16대 총선에서도 승리했다. 현재까지 15·16·21·22대 국회의원을 지낸 4선 의원이다. 정치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2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고, 같은 해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 대신 정몽준 후보 측으로 이동한 이른바 ‘후단협’ 사태는 이후 오랫동안 정치적 부담으로 따라다녔다. 김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사과했다. 국회를 떠난 뒤 긴 정치적 공백을 겪은 그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영등포을에 당선되며 18년 만에 국회로 복귀했다. 정치적 재기의 결정적인 계기는 이 대통령과의 결합이었다. 김 대표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초대 국무총리에 올라 2025년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약 1년간 내각을 이끌었다. 총리직을 떠나는 자리에서는 “새 정부 출범 당일 지명돼 1년의 임무를 마쳤다”며 당과 국회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이후 당권 도전에 나서면서 ‘당정 일치’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핵심 구호로 내걸었다. 이번 당대표 선출은 1990년 정계 입문 이후 36년, 첫 국회의원 당선 이후 30년 만에 집권여당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다는 의미도 있다.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된 적은 있지만 당대표로 당을 이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대표 앞에는 2028년 총선이라는 더 큰 정치 일정도 놓여 있다. 이번에 선출된 지도부가 차기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게 되는 만큼 당대표의 권한은 단순한 당무 관리를 넘어 향후 여권의 권력 지형과도 직결된다. ‘반명’ ‘자기 정치’까지 등장한 경선…승자보다 봉합이 중요 문제는 경선 과정에서 생긴 상처다. 이번 전당대회는 정책과 노선 경쟁 못지않게 ‘친명 대 친청’이라는 계파 구도가 강하게 작동했다. 김 대표 측과 정청래 후보 측 최고위원 후보들이 사실상 팀을 이뤄 움직이면서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거가 하나의 ‘팀전’처럼 전개됐다. 김 대표는 경선 초반부터 정 후보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는 첫 합동연설회에서 “명청대전을 끝내야 한다”며 “자기 정치와 사당화로 당정 갈등을 일으키는 당대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 후보가 이재명 정부와 엇박자를 냈다는 프레임을 전면에 세운 것이다. 정 후보 측도 물러서지 않았다. 정 후보와 친청계 후보들은 김 대표의 과거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김 대표가 제기한 ‘신천지의 전당대회 개입 가능성’을 두고서도 친청계는 근거를 제시하라며 사과와 책임을 요구했고, 친명계는 특정 종교집단의 정치 개입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맞섰다. 공방은 ‘누가 진짜 이재명 대통령을 지키는가’라는 경쟁으로까지 번졌다. 김 대표는 정 후보 측을 향해 반명 세력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고, 정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을 지켜왔다며 맞섰다. 최고위원 후보들도 “당정 엇박자”와 “자기 정치”, “반명 프레임”을 놓고 공개적으로 충돌했다. 때문에 김 대표가 당선 직후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도 당내 통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경선에서 승리한 친명 진영이 당직과 의사결정 구조까지 독점하는 방식으로 움직일 경우 전당대회에서 드러난 계파 갈등이 오히려 장기화할 수 있다”며 “반대로 정 후보를 지지했던 세력을 지도부 운영과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경선에서 나온 공격적 표현을 더 이상 소환하지 않는다면 이번 전대를 계기로 계파 갈등을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최고위원 지도부에는 친명계와 친청계로 분류된 인사들이 골고루 들어간 만큼 지도부 자체가 두 진영의 공존 능력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 대표가 후보 시절 스스로 “명청대전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만큼 이제는 그 말을 당 운영으로 증명해야 하는 위치가 됐다. 이 과정에서 ‘당정 일치’ 역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대통령과 집권당이 주요 국정과제에서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은 국정 추진력을 높일 수 있지만, 여당이 대통령실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는 데 머물 경우 민심을 전달하고 정책을 조정해야 할 집권당의 역할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강조해 온 ‘당정 원팀’을 정부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민심을 대통령실에 전달하고 필요한 정책 조정을 이끌어내는 관계로 설계할 수 있느냐가 리더십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 李대통령이 강조했던 ‘경쟁 뒤 역량 확대’…이제 김민석의 숙제 이 대통령은 전당대회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당권 경쟁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경쟁을 통한 전체 진영의 성장’을 강조해 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민주당 초선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전당대회를 언급하며 “능력 있는 많은 분이 경쟁했으면 좋겠다”, “진영 전체 역량이 커졌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참석자들은 이를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선의의 경쟁을 강조한 원론적 발언으로 설명했다. 김 대표를 향해서는 총리 퇴임을 앞둔 지난 6월 공개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김민석 당시 총리를 두고 “단기간 내에 구체적 성과를 많이 낸 내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해줬다”고 평가하면서 “이제는 또 다른 역할을 맡는 게 더 적정하다고 보이기 때문에 역할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김 총리의 당 복귀와 당권 도전이 이어지면서 정치권에서는 이 발언이 적지 않은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앞서 당내에서 ‘친명’과 ‘친청’, ‘명청대결’이라는 표현이 확산됐을 때도 공개적으로 경계한 바 있다. 지난 1월 민주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는 ‘반명’, ‘명청 대결’ 등 표현을 거론하며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고, 현장의 민심과 세상 이야기를 당 지도부를 통해 자주 듣고 싶다고 강조했다. 결국 대통령의 기존 메시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특정 계파의 승리보다 경쟁 이후의 통합과 여당의 역량 강화에 가깝다. 전당대회는 김 대표의 승리로 끝났지만 정치적으로 더 어려운 승부는 이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경선 과정에서 갈라진 친명·친청 세력을 다시 묶고, 대통령실과 긴밀하게 호흡하면서도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며, 2028년 총선을 준비할 수 있는 확장성을 보여줘야 한다. ‘명청대전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던 김 대표가 실제로 민주당의 계파전을 끝내고 집권 2년차 이재명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새 지도부의 첫 시험대가 됐다.
2026-08-17 19:3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