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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엿새 만에 다시 손보는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세제
[경제일보] 정부가 지난 3일 부동산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실거주 1주택자의 세 부담은 줄이고 자기 집에 살지 않는 1주택자와 다주택자, 초고가 주택 보유자의 부담은 늘리는 내용이다. 그런데 발표한 지 엿새 만에 여당이 다시 의견을 듣겠다고 나섰다. 주요 쟁점을 정부와 조율해 8월 말까지 정리하겠다고 한다. 국회가 정부안을 심사하고 고치는 것은 정상적인 입법 절차다. 입법예고도 국민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논의한다는 내용은 세부 문구나 시행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실거주와 비거주를 어떤 기준으로 나눌지, 직장이나 자녀 교육 때문에 자기 집에 살지 못한 경우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누구에게 세금을 더 물릴지를 다시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제도의 뼈대에 해당하는 문제다. 정부안에 따르면 실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는 현행 12억원에서 14억원으로 올라간다. 반면 자기 집에 살지 않는 1주택자의 기본공제는 12억원에서 9억원으로 낮아진다. 같은 가격의 집 한 채를 갖고 있어도 실제 거주하는지에 따라 공제액이 5억원이나 차이 난다. 보유기간에 따라 주던 종부세 공제와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도 거주기간 중심으로 바뀐다. 실제로 거주한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집에 살지 않는 사람을 곧바로 투자자나 투기 목적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직장 발령이나 자녀의 취학, 부모 봉양, 해외 근무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사는 경우가 있다. 임차인의 계약기간이 남아 자기 집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재건축 과정에서 잠시 이주한 사람도 있다. 정부안에는 전근과 취학, 질병, 해외 체류, 부모 봉양 등에 관한 예외가 들어 있다. 다만 원칙적으로 해당 주택에서 1년 이상 거주했어야 하고 비거주 기간도 최장 3년까지만 인정한다. 예외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반발이 커지자 정부와 여당은 사유와 기간을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문제는 세 부담의 많고 적음에만 있지 않다. 직장과 가족 문제처럼 흔히 생길 수 있는 사정을 정부가 발표 전에 충분히 따졌는지가 의문이다. 세법은 국민의 생활 사정을 반영해야지, 국민에게 세법에 맞춰 살라고 요구해서는 곤란하다. 직장을 옮기지 말고 부모를 돌보러 가지 말며 세입자의 계약이 끝나기 전이라도 자기 집에 들어가 살라는 식으로 세제가 작동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처음부터 다양한 거주 사정을 검토했다면 발표 직후 예외 규정을 다시 설계하는 일도 줄었을 것이다. 정부안을 먼저 내놓고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예외를 붙이는 방식은 과세 기준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납세자는 자신이 예외에 해당하는지 확인하려고 다시 계산해야 하고 과세당국은 개인의 거주 사정을 일일이 판단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세제가 신뢰를 잃는 이유는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가 5월 9일 끝난다며 재연장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정부도 2월 중과 유예 종료 방침을 발표하면서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을 내세웠다. 정부가 정한 날짜를 믿고 집을 팔거나 계속 보유할지 결정하라는 의미였다. 부동산 거래는 며칠 만에 끝나지 않는다. 세입자에게 계약 종료를 알리고 매수자를 찾은 뒤 계약금과 잔금 일정을 맞춰야 한다. 매수자는 대출을 준비하고 기존 집을 처분해야 할 수도 있다. 정부가 중과 유예 종료 날짜를 못 박으면 시장 참여자들은 그 일정에 맞춰 수개월 전부터 움직인다. 그런데 정부는 8월 세제개편안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율을 2027년과 2028년에 다시 한시적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5월에는 예측 가능성과 신뢰를 이유로 중과를 재개했고 석 달 뒤에는 매도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며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 정책도 바뀔 수 있다. 문제는 몇 달 전까지 재연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던 정부가 반대 방향의 정책을 내놓고도 그 사이 정부 말을 믿고 움직인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정책을 바꿀 필요가 생겼다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이전 판단이 왜 틀렸는지, 새 기준을 얼마나 유지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정부와 시장의 힘겨루기를 연상시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대통령이 상대해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집을 사려는 신혼부부와 집을 팔아 노후자금을 마련하려는 은퇴자, 전세계약이 끝나 이사를 준비하는 세입자, 직장 발령으로 다른 지역에 살아야 하는 1주택자의 선택이 모여 시장을 이룬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이들의 결정을 바꾼다. 대통령이 세금 강화를 예고하면 매도자는 계약을 서두르고 매수자는 기다린다. 유예가 끝난다고 못 박으면 잔금 날짜와 등기 일정이 달라진다. 실거주하지 않는 1주택자의 혜택을 줄이겠다고 말하면 집주인은 세입자를 내보내고 직접 들어갈지 계산한다. 이처럼 대통령이 정책 방향을 직접 제시했다면 결과에 대한 설명도 대통령이 맡아야 한다. 세부 규정은 재정경제부가 만들고 국회가 법안을 고치더라도 큰 방향을 정하고 국민에게 신호를 보낸 사람은 이 대통령이다. 정부안에서 문제가 드러났다고 부처의 준비 부족이나 여당의 의견 수렴 문제로 돌릴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왜 비거주 1주택자를 실거주자보다 크게 불리하게 과세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직장과 가족 사정으로 거주하지 못한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지도 밝혀야 한다. 양도세 중과를 다시 완화하면서 불과 몇 달 전 강조했던 예측 가능성과 신뢰는 어떻게 되는지에도 답해야 한다. 세제 변경이 반복되면 시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집을 팔았다가 다음 달 세금이 내려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매도자는 기다린다. 집을 샀다가 새로운 규제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하면 매수자도 계약을 미룬다. 거래가 멈추면 매물이 필요한 실수요자와 이사해야 하는 세입자가 먼저 불편을 겪는다. 세법이 자주 바뀌고 예외 규정이 늘어날수록 일반 국민은 정부 발표만으로 자신의 세 부담을 알기 어려워진다. 세무사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산가는 변경된 규정에 맞춰 계약 시기와 보유 방식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 평범한 1주택자와 세입자는 뒤늦게 바뀐 기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과세 정상화라고 설명한다. 정상적인 세제라면 국민이 몇 년 뒤 자신의 세 부담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원칙도 상당 기간 유지돼야 한다. 과세 대상과 공제 기준이 몇 달마다 바뀌고 발표 직후 다시 조정된다면 국민은 정부 발표를 마지막 결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동산은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주거와 생업, 가족생활이 얽힌 재산이다. 정부가 그 세금을 고칠 때는 충분한 검토와 예고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먼저 발표하고 관료들이 뒤늦게 예외를 채우는 방식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가 지금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세금을 얼마나 올리고 내릴지가 아니다. 어떤 원칙으로 세금을 매기고 그 원칙을 얼마나 오래 지킬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정부안을 발표하기 전에 시장과 국민 생활에 미칠 영향을 살피고 일단 내놓은 기준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8월 말 수정안이 나오면 정부는 국민 의견을 반영했다고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정책을 내놓고 반발이 생긴 뒤 고치는 일을 의견 수렴이라고 포장하기는 어렵다. 시장이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세율표가 아니라 내년에도 믿을 수 있는 기준이다. 이 대통령은 올해 초 대한민국이 예측 가능한 사회로 돌아오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지금의 부동산 세제부터 그 말에 맞는지 돌아볼 때다. 정부가 스스로 만든 원칙을 몇 달도 지키지 못하면서 국민에게 수십 년짜리 주거와 재산 계획을 세우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2026-08-10 09: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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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ISA·주가누르기법 재검토 지시…여야 공방 격화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가 발표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안과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정부가 수정안 마련에 착수했다. 당초 정부가 마련한 세제 개편안에 대해 투자자와 정치권에서 비판이 잇따르자 대통령이 직접 제동을 건 것이다. 여당 내에서는 그동안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의원들이 재검토 지시에 환영의 뜻을 나타낸 반면, 국민의힘은 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한 책임을 정부와 대통령이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ISA 개편안과 주가 누르기 방지법 개선안을 다시 검토하고 국회와의 협의에도 나설 예정이다. 당초 정부 세제 개편안은 오는 20일까지 입법예고를 거친 뒤 28일 차관회의와 다음 달 1일 국무회의를 거쳐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었다.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만큼 국회 제출 전 정부안을 수정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린다. ◆ ISA 혜택 축소 논란에 대통령 직접 재검토 논란의 중심에 선 ISA는 예·적금과 펀드, 주식 등 여러 금융상품을 하나의 계좌에서 운용하면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절세형 계좌다. 정부가 마련한 개편안에는 국내 자산에 투자하는 ‘생산적 금융 ISA’를 신설하고 기존 ISA의 의무 가입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국내 증시로 자금을 유도하기 위한 취지였지만 기존 ISA의 세제 혜택을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투자자들의 반발이 나왔다. 특히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ISA를 활용해 온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국내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기존 계좌의 혜택을 줄이는 방식이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커졌다. 이 대통령은 전날 세제 개편안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담당 부처를 질타하며 관련 내용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책 발표 이후 시장과 정치권에서 예상보다 큰 반발이 나오면서 정부가 당초 마련한 개편안의 실효성과 부작용을 다시 따져보게 된 것이다. ◆ 주가 누르기 방지법도 실효성 논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았다. 해당 법안은 일정 기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을 대상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안에서는 최근 13개 반기 가운데 12개 반기 동안 PBR이 코스피 업종별 하위 25%, 코스닥 하위 10%에 해당하는 기업 등을 규제 대상으로 삼는 내용이 포함됐다. 문제는 기업들이 일부 기간에만 PBR 순위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규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주가를 관리한 뒤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제도의 실효성을 놓고 논란이 제기됐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여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이소영·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그동안 관련 법안과 정부안의 보완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해왔다.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가 나오자 이들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이날 “수많은 개미투자자에게 ‘장기투자’를 위해 ISA 계좌를 권유했던 본래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더 이상은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이라도 대통령께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바로잡도록 조치하신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소영 의원도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와 관련해 “바로잡겠다. 재정경제부는 정신 차리시라”고 밝혔다. 이훈기 의원은 “이소영 의원과 제가 대표 발의한 주가 누르기 방지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K-코스닥 지킴이’, ‘K-개미 지킴이’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안에 대한 여당 내 공개적인 이견이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 국민의힘 “졸속 국정…책임 회피”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를 비판했다. 정책의 내용 자체뿐 아니라 정부가 정책을 발표한 뒤 여론이 악화하자 대통령이 담당 부처를 질책하며 방향을 바꾸는 과정 자체를 문제 삼았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비겁한 책임 회피”라며 “일단 발표하고 국민이 반발하면 고치는 졸속 국정을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재검토를 지시하며 ‘왜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진행했느냐’고 참모들을 질책했다”며 “국민이 분노하면 정책 입안자를 탓하고, 문제가 터지니 보고가 잘못됐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론의 거센 저항이 없었다면 졸속 개편안을 그대로 밀어붙였을 것 아니냐”며 “결국 드러난 것은 대통령도, 청와대도, 정부도 발표 전에 정책의 파장과 부작용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ISA 개편과 함께 비거주 1주택자 과세 문제, 주가 누르기 방지 제도의 역효과 등을 거론하며 정부의 정책 검토 과정 자체를 문제 삼기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ISA 한도 이월과 기한 연장은 반드시 원상복구 돼야 한다”며 “개악에 동의한 책임자들 역시 갈아치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국회 제출 전 정부안 얼마나 바뀔까 이번 재검토의 핵심은 정부가 기존 개편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수정안을 내놓느냐에 달렸다. 당초 정부안은 국내 자본시장으로 자금을 유도하고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를 촉진한다는 정책 목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ISA 혜택과 투자자의 장기투자 유인 사이의 충돌, PBR을 활용한 규제의 실효성 등이 논란이 되면서 세부 설계에 대한 보완이 불가피해졌다. 정부가 국민 의견을 반영한 개선안을 마련할 경우 기존 ISA 가입자의 혜택을 어떻게 유지할지, 생산적 금융 ISA를 기존 ISA와 어떤 관계로 설계할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 역시 PBR 기준만으로 기업을 규제하는 방식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특정 기간의 주가나 PBR을 기준으로 삼는 것보다 기업의 배당, 자사주 소각, 지배구조 개선 등 실제 주주환원 노력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정부는 당초 일정대로라면 이달 입법예고 이후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정기국회에 세제 개편안을 제출할 예정이었다.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로 국회 제출 전 정부안이 얼마나 수정될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여야의 입장 차이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를 계기로 투자자 보호와 자본시장 활성화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정부가 정책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발표한 뒤 여론에 따라 수정하고 있다며 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2026-08-08 12: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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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듈러는 가야 한다. 그러나 특별법은 지름길이어선 안 된다
건설 현장은 이미 한계 신호를 보내고 있다. 생산성 저하가 고착화한 데다 숙련인력 부족, 고령화, 청년층 신규 유입 감소가 겹치며 예전 방식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 그래서 탈현장 건설(OSC)과 모듈러 건축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공장에서 주요 부재를 제작하고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은 공기를 줄이고, 품질의 일관성을 높이며, 고소작업을 줄여 안전사고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매력적이다. 정부가 2025년 12월 “더 빠르고, 보다 안전하게”를 내걸고 특별법 제정을 본격 추진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와 방식이다. 혁신은 필요하지만, 법이 혁신의 이름으로 책임의 질서를 허물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모듈러 건축 활성화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입법예고 과정에서 반대 의견만 7077건이 접수됐고, 2026년 3월 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상정도 무산됐다. 이 정도면 단순한 업계 민원이 아니라, 법안의 설계에 중대한 충돌 지점이 있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옳다. 쟁점도 분명하다. 법안은 일정 요건 아래 건축공사업 등록이 없는 업체에도 도급의 길을 열고, 공공기관이 모듈러 건축공사에 일괄입찰이나 대안입찰을 우선 적용할 수 있도록 하며, 모듈러 제작업체가 공동수급체 대표가 될 수 있는 특례 논란까지 낳고 있다. 전기·정보통신·소방 업계가 통합발주와 분리발주 예외에 반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결국 이 법은 단순한 기술 진흥법이 아니라 업역, 책임, 발주 질서를 한꺼번에 건드리는 법안인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책임 구조를 어떻게 세우느냐다. 건축은 블록을 끼워 맞추는 조립 게임이 아니다. 부지 조성에서 설비, 방재, 마감, 하자 책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비로소 하나의 건축물이 된다. 기술은 공장에서 시작할 수 있어도, 책임은 현장에서 끝까지 완결돼야 한다. 이 기본을 놓치면 혁신은 진보가 아니라 혼선이 된다. 그렇다고 특별법 자체를 무조건 접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모듈러는 한국 건설산업이 외면할 수 없는 미래다. 세계적으로도 건설의 제조업화, 표준화, 자동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우리가 계속 현장 중심의 낡은 규제와 관행에만 기대어 있다면 생산성의 벽을 넘기 어렵다. 공기 단축과 품질 안정, 탄소 저감, 인력난 대응이라는 과제 앞에서 모듈러의 전략적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혁신일수록 더 원칙적이어야 한다. 논어의 말처럼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조화를 이루되 무작정 같아져서는 안 된다. 모듈러 산업을 키우자는 목표에는 뜻을 함께하되, 그 방법까지 졸속 특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법은 산업의 요구만 반영해선 안 된다. 국민의 안전, 공정한 거래 질서, 명확한 하자 책임까지 함께 담아야 비로소 법답다. 해법은 전면 완화가 아니라 단계적 허용이다. 공공 시범사업부터 좁게 적용하고, 생산인증과 건축인증, 보험과 하자 책임, 현장 총괄관리의 주체를 먼저 촘촘히 세워야 한다. 분리발주 예외 역시 포괄적으로 열 것이 아니라 정말 불가피한 경우에만 엄격하게 한정해야 한다. 그래야 종합건설업계의 불안도, 전문업계의 생존 우려도 줄일 수 있다. 혁신의 길은 넓혀 주되, 책임의 문턱은 더 높여야 한다. 모듈러는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특별법은 지름길이어선 안 된다. 맹목적 반대도 답이 아니고, 무조건적 완화도 정답이 아니다. 기본과 원칙, 상식과 책임 위에서 길을 내야 한다. 그래야만 모듈러는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한국 건설산업을 바꾸는 진짜 혁신이 될 수 있다.
2026-05-02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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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 '제조사·생산국' 전면 공개…허위 정보 최대 1000만원 과태료
[경제일보] 전기차 배터리의 제조사와 생산국 등 핵심 정보가 구매 단계에서 공개된다. 소비자가 차량 선택 시 배터리 이력과 출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편되면서 정보 비대칭 구조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2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정보 공개 확대와 인증 취소 기준 강화를 포함한 자동차관리법 시행령·시행규칙 및 자동차 등록규칙 개정안을 오는 5월 4일까지 입법예고한다. 이번 개정은 전기차 확산 과정에서 제기된 배터리 안전성 문제와 정보 공개 요구를 반영한 조치다. 개정안에 따르면 전기차 판매 시 제공되는 배터리 정보 항목은 기존 6종에서 10종으로 확대된다. 기존에는 배터리 용량과 정격 전압 등 기본 사양 중심으로 제한됐지만 앞으로는 배터리 제조사, 생산국, 제조 연월, 제품명 또는 관리번호 등 식별 가능한 정보까지 포함된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차량 구매 단계에서 배터리의 생산 배경과 이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완성차 업체가 어떤 배터리를 적용했는지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구매 판단 기준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정보 제공 방식도 구체화된다. 판매사 홈페이지, 자동차 매매계약서, 차량 인수증, 온라인 안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배터리 정보를 제공하도록 명시했다. 계약 전후 전 과정에서 소비자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제재 수준 역시 크게 강화된다. 현재는 배터리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에만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개정안은 허위 정보 제공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했다. 과태료 상한은 최대 1000만원으로 상향되며 위반 횟수에 따라 1회 200만원, 2회 500만원, 3회 이상 1000만원이 부과된다. 배터리 결함에 대한 사후 관리 기준도 신설됐다. 동일 배터리에서 2년 이내 반복적으로 결함이 발생할 경우 안전성 인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 설계·제조 결함으로 화재 등 피해가 발생한 경우는 2회, 기준에 적합하더라도 안전에 영향을 주는 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3회 발생 시 인증 취소가 가능하다. 다만 단순 표시 오류나 일시적 경고등 점등 등 경미한 결함은 인증 취소 요건에서 제외했다. 결함의 중대성을 기준으로 규제 강도를 차등 적용하는 구조다. 이번 개정은 배터리 안전성 논란과 리콜 사례 증가 등 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한 조치로 해석된다. 배터리 정보 공개와 인증 관리 기준을 동시에 강화하면서 사전 정보 제공과 사후 규제를 함께 보완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됐다. 업계에서는 배터리 공급망 전략에도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와 생산국 정보가 공개될 경우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선택 기준과 협력 구조가 소비자 평가에 직접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용선 국토부 자동차정책과장은 “이번 개정으로 소비자 알 권리 제고와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안전 관리가 강화될 것”이라며 “배터리에 대한 신뢰성·안전성을 높여 전기차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6-03-23 08:2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