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7건
-
-
-
"미국선 전기로·인도선 고로"…포스코, 세계 제철지도 다시 짠다
[경제일보] 미국 루이지애나에서는 전기로, 인도 오디샤에서는 고로. 포스코가 세계 주요 철강시장에서 지역별 여건에 맞춘 생산거점 구축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광양 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HyREX)을 앞세워 탈탄소 전환을 추진하는 반면 해외에서는 수요와 원료, 통상환경에 따라 생산 방식과 제품 전략을 달리하고 있다. 배경에는 세계 철강 공급과잉과 보호무역 확산이 있다. 국내에서 생산한 철강을 해외로 수출하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성장과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이다. 포스코는 2031년까지 인도·미국·인도네시아 등 고성장·고수익 시장의 생산능력을 1000만t으로 확대하고 해외에서 확보한 수익을 국내 저탄소 전환에 재투자한다는 구상이다. OECD는 세계 철강 초과 생산능력이 2025년 6억4000만t에서 2028년 7억4500만t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철강 수요 증가율도 2030년까지 연평균 0.9%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세계철강협회는 인도의 철강 수요가 올해 7.4%, 내년에는 9.2%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시장이 공급과잉과 저성장에 직면한 가운데 인도는 인프라 투자와 자동차산업 성장에 힘입어 주요 수요처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해외 철강투자는 고수익·고성장 시장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인도에서는 자동차강판과 PosMAC 등 고부가 제품 비중을 확대하고, 미국에서는 지분 비례 물량에 추가 물량을 더해 오프테이크한 뒤 현지 완성차 업체와 포스코 멕시코 등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은 현지생산, 인도는 대형 고로 미국 시장 공략의 핵심은 관세 대응과 고객 접근성이다. 현대제철이 주도하는 루이지애나 전기로 일관제철소에는 총 58억달러가 투입된다. 연산 270만t 규모로 2029년 상업생산을 목표로 한다. 지분은 현대제철 측이 50%, 포스코 20%,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15%를 보유한다. 미국이 수입 철강에 50% 관세를 적용하는 상황에서 현지 생산은 관세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완성차 고객과의 물류거리도 줄일 수 있다. 포스코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자동차강판과 소재 가운데 지분 비례 물량에 추가 물량을 더해 오프테이크(Off-take)할 예정이다. 기존 북미 가공·판매망에 현지 생산 소재를 연결하면서 고객 기반을 넓히는 구조다. 정확한 오프테이크 물량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 투자의 의미는 단순한 지분 참여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보내던 기존 공급망에 현지 생산축을 추가하고 투자와 동시에 판매 물량까지 확보한다. 미국의 높은 철강 관세와 완성차 공급망 재편에 대응해 북미 자동차강판 시장을 직접 공략할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에서는 미국과 다른 전략을 택했다. 포스코는 JSW스틸과 지분 50대50으로 오디샤주에 연산 600만t 규모의 고로 기반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2031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선·제강부터 열연, 냉연·도금까지 전 공정을 갖추고 초기 건설·인프라 수요에 대응한 뒤 자동차강판과 PosMAC 등 고부가 제품 비중을 점차 높일 계획이다. 오디샤주는 철광석 산지와 가깝다는 것이 강점이다. 포스코는 현지 철광석과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 JSW그룹의 구매력을 활용해 원료와 설비 조달비를 낮추고 600만t 규모의 일관생산 체제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투자재원은 자기자본 30%, 차입 70%로 조달하고 양사가 같은 비율로 책임을 나눈다. 포스코의 오디샤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포스코는 2005년 오디샤주에 연산 1200만t 규모 제철소 건설을 추진했지만 토지 확보와 주민 반대, 광산 개발권 문제 등에 부딪혀 2017년 사실상 철수했다. 이번에는 사업 규모를 절반으로 낮추고 인도 최대 철강사 중 하나인 JSW와 손잡아 투자와 사업 리스크를 분담하는 방식을 택했다. 과거 단독 진출에 가까웠던 방식에서 현지 유력 기업과 합작하는 구조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빠르게 커지는 인도 철강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판단과 동시에 20여 년 전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계산이 함께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제철방식 전환 국내에서는 생산능력 확대보다 탈탄소 전환에 무게가 실린다. 포스코는 지난 6월 광양제철소에 약 6000억원을 투자한 연산 250만t 규모 전기로를 준공했다. 고로와 비교해 탄소배출을 약 75% 줄이고, 전기로 쇳물과 고로 쇳물을 섞는 ‘합탕’ 기술을 활용해 자동차강판 등 고급강까지 생산한다는 목표다. 포항에서는 연산 30만t 규모 하이렉스(HyREX) 실증설비를 통해 2030년까지 상용화 기술 확보를 추진한다. 석탄 대신 수소를 활용해 철광석을 환원하는 기술로, 포스코가 장기적으로 기존 고로 중심의 생산체제를 저탄소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 기술이다. 인도 신규 제철소가 고로 방식이라는 점은 국내 전략과 대비된다. 포스코는 인도 공장에 JSW의 재생에너지 인프라와 저탄소 조업기술을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수소 기반 기술 검증 이후 추가적인 저탄소 전환을 추진할 계획이다. 인도 정부도 완제품 철강 1t당 배출량이 2.2tCO₂e 미만인 제품을 그린스틸로 분류하며 철강산업의 탄소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다만 석탄을 사용하는 고로 방식으로 출발하는 만큼 탄소 감축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남는다. 포스코의 글로벌 생산전략은 결국 하나의 공법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전기로와 HyREX를 통해 기존 생산체제를 저탄소 방식으로 전환하고, 미국에서는 관세장벽 안으로 들어가 자동차강판을 현지 생산한다. 인도에서는 저렴한 원료와 빠른 수요 증가를 활용해 고로 기반의 대규모 고부가강 생산체제를 구축한다. 관건은 투자 이후의 수익성이다. 미국과 인도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동시에 국내에서는 전기로와 HyREX 등 탈탄소 전환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해외 사업이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야 포스코가 내세운 ‘해외 성장을 국내 저탄소 투자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도 힘을 받을 수 있다. 생산량을 얼마나 늘리느냐보다 어느 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산해 수익을 남기느냐가 포스코의 글로벌 철강 전략을 가를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2026-09-01 16:45:49
-
-
100조 미래대응기금, 미래투자 명분이 '정부 쌈짓돈' 돼선 안 된다
[경제일보] 정부가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미래 산업과 청년 등에 장기 투자하는 '미래대응기금'을 추진한다. 기획예산처가 지난 21일 밝힌 구상에 따르면 내국세가 최근 10년 안팎의 평균 증가율을 웃돌 경우 초과분을 기금에 적립한다. 세수가 부진할 때는 기금을 재정 안전판으로 활용해 변동성을 완화한다는 구상이다. 초과세수와 세계잉여금, 여유자금 운용수익 등도 재원으로 활용한다. 구체적인 규모는 다음 달 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확정되지만 첫해부터 100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의 문제의식에는 일리가 있다.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가 크게 늘었을 때 이를 단기 소비성 지출에 모두 써버리기보다 인공지능(AI), 첨단산업, 청년, 지방, 인재 등 미래 성장에 투자하자는 방향은 평가할 만하다. 경기 호황기에 세입이 늘었다고 지출을 급격히 확대했다가 불황기에 세수가 줄면서 다시 긴축에 나서는 재정 운용의 반복도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을 일종의 '재정 저수지'로 설명하는 이유다. 문제는 규모가 커질수록 통제장치도 강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100조원 안팎의 자금을 정부가 장기간 운용한다면 사실상 또 하나의 거대한 재정계정이 생기는 셈이다. 미래투자라는 명분만 앞세우고 사용처와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면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쌈짓돈'이나 '슈퍼 예비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정부 설명대로 연간 기금운용계획 자체는 국회의 심사를 받는다. 다만 국가재정법 제70조는 일정 요건 아래 기금운용계획의 주요항목 지출금액을 국회에 변경안을 제출하지 않고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금융성 기금은 주요항목 지출금액의 20%, 금융성 기금은 30% 범위다. 미래대응기금처럼 대규모 기금이 신설될 경우 이 운용상 재량이 국회의 사전 통제를 약화시키지 않도록 별도의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래대응기금에는 일반 기금보다 강화된 재정통제 장치를 두는 편이 맞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 변경이나 신규 사업 편성에는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고 국회 심의 없이 조정할 수 있는 범위도 일반 기금보다 엄격하게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분야별 투자 한도와 사용 목적도 법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미래라는 이름만 붙이면 무엇이든 투자할 수 있는 구조가 돼서는 안 된다. 사업 평가도 엄격해야 한다. 정부는 청년과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에 집중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모두 중요하고 필요한 분야다. 그러나 범위가 넓을수록 각 부처가 기존 사업을 미래투자라는 이름으로 기금에 얹을 가능성도 커진다. 기존 예산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업이나 단순 현금성 지원까지 미래대응기금으로 돌린다면 기금 신설의 의미가 없다. 특히 AI와 첨단산업 투자는 성과를 냉정하게 측정하는 일이 관건이다. 투입된 정부 재원이 얼마나 많은 민간투자를 끌어냈는지, 기술 수준과 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일자리와 수출에 어떤 효과를 냈는지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성과가 없는 사업은 과감하게 지원을 끊는 일몰제도 함께 검토할 만하다. 청년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 주거와 교육, 자산형성은 장기적으로 필요한 정책이지만 일회성 세수 호황을 영구적인 복지 지출의 재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한번 시작한 지원은 중단하기 어렵다. 반도체 경기가 꺾여 기금 적립이 줄었을 때도 계속 지급해야 하는 사업이라면 결국 일반재정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재원의 지속 가능성은 미래대응기금의 가장 큰 숙제다. 정부 구상은 최근 10년 안팎의 내국세 증가 추세보다 세수가 더 늘었을 때 초과분을 적립하는 방식이다. 현재처럼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좋고 법인세가 크게 늘어날 때는 기금이 빠르게 쌓일 수 있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3~5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될 수 있고, 세계 경기나 기술 경쟁에 따라 세수 전망이 급변할 수도 있다. 정부는 호황 때 적립하고 불황 때 꺼내 쓰는 구조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때문에 어느 수준까지 적립하고 어느 상황에서 얼마를 사용할 것인지 명확한 규칙이 필요하다. 세입이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기금을 일반회계 적자 보전에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시작하면 미래투자기금이라는 성격도 흐려질 수 있다. 국가채무와의 관계도 따져볼 대목이다.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들어왔을 때 그 돈을 모두 투자에 돌리는 것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어난 상황이라면 일부는 빚을 갚아 미래의 이자 부담을 줄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미래투자와 재정건전성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기금에 들어오는 추가세수 가운데 일정 비율을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 배분하거나, 국가채무비율과 재정수지에 따라 적립과 상환 비율이 자동으로 조정되는 준칙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그때그때 판단하는 방식보다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편이 재정 신뢰를 높인다. 기금 운용의 투명성도 중요하다. 투자 대상과 수익률, 손실, 사업별 집행 내역을 정기적으로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순리다.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평가기구를 두고 국회와 감사원이 상시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수십조원의 돈이 움직이는데 의사결정 과정이 정부 내부에만 머문다면 정치적 사업이나 지역 나눠주기 예산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원칙이 유지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미래대응기금은 본질적으로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재정장치다. 특정 정부의 국정과제나 공약사업을 지원하는 계정이 돼서는 곤란하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기술과 시장성, 국가 경쟁력이라는 동일한 기준이 흔들리지 않아야 기금이 신뢰를 유지한다. 반도체 호황으로 벌어들인 세수를 미래에 재투자한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저출생과 생산성 하락, 잠재성장률 둔화에 직면한 한국경제에는 이런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재정도 단기 경기 대응을 넘어 성장의 토대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다만 좋은 목적이 좋은 제도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100조원 규모의 기금을 만들면서 통제장치가 약하다면 미래투자보다 재정 낭비의 통로가 될 위험이 더 크다. 반대로 국회 통제와 성과 평가, 재정준칙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설계하면 정부가 강조하는 신속한 미래투자의 장점이 사라질 수도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유연성과 통제의 균형이다. 정부가 신속하게 미래 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은 열어주되 큰 돈이 움직일 때는 국회의 감시와 국민의 검증을 반드시 거치도록 해야 한다. 미래대응기금은 이름 그대로 미래를 위한 돈이어야 한다. 정부가 쓰기 편한 돈이 돼선 안 된다. 반도체 호황이 가져온 세수를 청년과 AI, 지역과 인재에 투자하겠다면 그만큼 더 엄격한 회계와 평가, 국회 통제를 받아야 한다. 미래를 위한 100조원이 정부의 쌈짓돈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기금 조성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다.
2026-08-24 12:02:00
-
풍산 탄약사업 매각설 일단락…류진 "한화에 지금은 안 판다"
[경제일보] 풍산 탄약사업 매각 검토는 실제로 진행됐지만 최종 거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방산사업의 시장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매각 가능성을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풍산은 현재 탄약사업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번 검토 과정은 풍산이 높은 수익성을 가진 방산부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향후 사업구조를 어떤 방향으로 재편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다시 불러왔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7일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제주 기자간담회에서 “방산이 잘 되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까 궁금해서 매각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지만, 지금은 안 팔기로 했다”고 했다. 지난 4월 풍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매각·인수 검토 중단을 공시한 데 이어 류 회장이 직접 거래 종료를 재확인한 것이다. 매각 대상은 풍산 전체가 아니라 탄약 제조사업을 중심으로 한 방산부문이었다. 4월 초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풍산 탄약사업 인수를 위한 비공개 입찰에 참여해 최종제안서를 냈다는 보도가 나왔고, 풍산은 사업구조 개편 등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공시했다. 하지만 같은 달 9일 한화는 인수 검토 중단을, 풍산은 “탄약사업 매각과 관련해 현재 추진하고 있는 바가 없다”고 공시했다. 거래가 성사됐다면 국내 방산업계 판도를 바꿀 사안이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 등 화력체계를 수출하고 있고, 풍산은 소구경탄부터 155㎜ 대구경탄까지 생산한다. 시장에서는 한화가 탄약사업을 확보하면 무기체계와 탄약을 묶은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거론된 매각가격은 약 1조5000억원 수준이었다. 다만 가격과 거래 구조는 업계 추산으로, 양사가 공식 확인한 내용은 아니다. 풍산이 매각을 접은 배경으로는 방산부문의 높은 수익성이 꼽힌다. 풍산의 2025년 연결 매출은 5조485억원이며, 방산부문 매출은 1조3115억원으로 약 26%를 차지했다. 반면 법인세비용차감전이익은 방산이 2108억원으로 신동부문 217억원의 약 10배였다. 방산은 매출 규모보다 수익 기여도가 높은 핵심 사업이다. 글로벌 탄약 수요 증가도 사업 가치를 높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유럽은 155㎜ 포탄 부족을 겪었고, 각국은 탄약 생산능력 확대에 나섰다. 탄약 생산기반은 단순 제조시설을 넘어 전략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류 회장 설명도 자금 확보 목적의 매각과는 거리가 있다. 방산사업의 시장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취지다. 그는 방산 수익을 부산 부지 개발과 골프장·호텔 등 신사업에 활용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다만 수익성이 높은 방산사업을 활용한 자산 재배치가 주주가치를 높이는지는 별도 검토가 필요하다. 투자 규모와 예상 수익률, 자금 회수 계획 등에 대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풍산의 사업구조 개편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방산부문 물적분할을 추진했다가 소액주주 반발로 철회했다. 이번 매각 검토까지 핵심 방산사업을 분리하려는 구상이 반복됐다는 점에서 논란은 남아 있다. 승계 문제와 방산 규제를 매각 배경으로 연결하는 해석도 있었지만, 풍산이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는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였다. 매각 검토 과정과 중단 배경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류 회장의 “안 판다”는 발언으로 한화와의 거래 가능성은 일단락 됐지만, 풍산 방산사업의 향후 운영 방향과 재투자 계획,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설명 과제는 남아 있다.
2026-07-20 16:03:45
-
-
-
-
-
-
-
반도체 초과세수, '나눠 쓰기'보다 '국가 재투자'가 먼저다
[경제일보] 반도체 경기 회복이 한국 재정의 새 변수가 됐다. 인공지능(AI) 확산,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 D램 가격 반등이 맞물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기업 실적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그 결과 정부 세수에도 예상 밖의 여력이 생기고 있다. 문제는 이 돈을 어디에 쓰느냐다. 빚을 갚을 것인가, 국민에게 나눌 것인가, 아니면 미래 성장에 투자할 것인가.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한양대 겸임교수)은 27일 발표자료 ‘100조 반도체 초과세수, 갚을까, 나눌까, 투자할까?’에서 초과세수 활용의 세 갈래 선택지를 제시했다. 핵심은 단순하다. 반도체 호황으로 생긴 재정 여력을 일회성 소비로 소진할 것이 아니라, 국가채무 관리와 미래 산업 투자에 우선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과세수, 갚을까 나눌까 투자할까 이번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초과세수의 성격 때문이다. 세수가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구조적 세입 증가인지, 특정 산업 호황에 따른 일시적 수입인지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핵심 산업이지만 동시에 경기 변동성이 큰 산업이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를 항구적 복지 지출이나 반복성 현금 지원의 재원으로 삼으면, 불황기가 왔을 때 재정은 다시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김 실장의 발표자료는 이 지점을 분명히 짚는다. 2019년 이후 한국 재정은 적자 흐름을 이어왔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총수입과 총지출은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벌어졌고, 2026년에도 총지출이 총수입을 웃도는 구조가 이어지는 것으로 제시됐다. 국가채무도 빠르게 늘어 2026년 전망 기준 1415조원, 2027년 전망 기준 1533조원으로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2027년 56.6%까지 오르는 것으로 제시됐다. 초과세수, 갚을까 나눌까 투자할까 이는 초과세수를 단순한 ‘쓸 돈’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재정은 경기 좋을 때 고삐를 죄고, 경기 나쁠 때 버팀목이 돼야 한다. 호황기에 생긴 여력을 정치적 인기 지출로 먼저 쓰면 정작 위기 때 쓸 탄약이 줄어든다. 중도보수적 재정 운용의 기본은 여기에 있다. 국가는 벌 때 아껴야 하고, 빚이 늘었을 때는 갚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분배의 필요성을 외면할 수는 없다. 발표자료는 경기 회복이 모든 계층에 균등하게 돌아가지 않는 현실도 함께 제시했다. 이른바 ‘K자형 회복’이다. 고소득층과 디지털 기업은 회복의 상단에 있지만, 임시·일용근로자와 자영업자, 전통 기업은 회복의 하단에 놓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활용한 발표자료에서는 2024년 1분기부터 2025년 1분기까지 소득 1분위의 처분가능소득이 3.6% 감소한 반면, 4분위와 5분위는 각각 5.6%, 5.9% 증가한 것으로 제시됐다. 초과세수, 갚을까 나눌까 투자할까 따라서 분배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방식이다. 재정 여력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전 국민 현금성 지원이나 단기 소비 진작책을 반복하는 것은 재정 원칙에 맞지 않는다. 지원이 필요하다면 취약계층, 저소득 근로자, 한계 자영업자처럼 실제 충격이 집중된 계층에 한정해야 한다. 넓고 얕은 지원보다 좁고 두터운 지원이 재정 효율에도 맞고, 시장 질서에도 덜 해롭다. 더 중요한 선택지는 투자다.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의 문턱을 넘었다. 발표자료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장기적으로 하락해 왔고, 노동·자본·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도 과거보다 낮아졌다는 점을 제시한다. 한국은행 자료를 인용한 발표자료에 따르면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5.1%에서 20162020년 2.5% 수준으로 낮아졌다.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초과세수를 단순 소비로 쓰는 것은 미래 세대의 몫을 현재 세대가 앞당겨 쓰는 일에 가깝다. 초과세수, 갚을까 나눌까 투자할까 반도체 호황도 영원하지 않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최근 큰 폭으로 개선되는 흐름을 보였고, DDR4·DDR5 가격도 급등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가격이 오를 때는 세수가 늘지만, 가격이 꺾이면 기업 이익과 법인세 수입도 함께 줄어든다. 특정 시점의 초과세수를 영구 재원처럼 취급하는 것은 위험하다. 경쟁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발표자료는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뿐 아니라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점유율 확대 흐름을 제시했다. 2024년 1분기 1% 수준으로 표시된 CXMT 점유율은 2025년 4분기 4%까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격차는 크지만, 중국의 추격은 가격 경쟁과 공급망 재편을 통해 한국 기업의 수익성을 압박할 수 있다. 갚을까 나눌까 투자할까 이런 상황에서 초과세수의 최우선 사용처는 분명해진다. 첫째, 국가채무 관리다. 최소한 일정 비율은 채무 상환이나 적자 보전에 자동 배분하는 재정준칙이 필요하다. 둘째, 미래 산업 투자다. AI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전력망, 데이터센터, 인재 양성, 소부장 국산화,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 지원이다. 이 순서가 바뀌면 재정은 느슨해지고 산업 정책은 흔들린다. 발표자료가 제시한 세계 데이터센터 수요 전망도 이를 뒷받침한다. 맥킨지 자료를 인용한 발표자료에 따르면 세계 데이터센터 수요는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빠르게 증가하고, 특히 AI 워크로드 수요가 큰 폭으로 확대될 것으로 제시됐다.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는 반도체, 전력, 냉각,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다. 한국이 이 흐름을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려면 세수 증가분을 소비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에 투입해야 한다. 초과세수, 갚을까 나눌까 투자할까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절대적이다. 발표자료에 따르면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6년 1분기 36.1%까지 높아진 것으로 제시됐다. 주요 품목별 수출에서도 반도체는 자동차, 일반기계, 석유제품 등을 크게 앞서는 핵심 품목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비중 역시 국내 증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반도체가 흔들리면 수출, 세수, 증시, 고용, 환율까지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초과세수, 갚을까 나눌까 투자할까 그러나 국가경제가 특정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는 장점이자 약점이다. 반도체 호황은 성장의 기회지만, 동시에 편중의 위험을 키운다. 초과세수는 이 위험을 줄이는 데 써야 한다. 반도체 초과세수로 반도체만 더 키우자는 의미가 아니다. 반도체를 기반으로 AI, 로봇, 방산, 바이오, 에너지, 미래 모빌리티 등 다음 성장 축을 넓히는 데 써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권은 초과세수를 ‘누가 더 많이 나눠줄 것인가’의 경쟁으로 끌고 가기 쉽다. 그러나 재정은 선거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기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기 있는 지출이 아니라 오래 버티는 지출이다. 국민에게 돈을 돌려주는 방식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재정건전성 회복과 성장잠재력 확충이라는 큰 원칙 안에서 제한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반도체 호황은 한국 경제에 찾아온 귀한 기회다. 하지만 기회는 관리하지 않으면 금세 비용으로 바뀐다. 초과세수를 모두 써버리는 국가는 다음 불황에 빚으로 버틴다. 초과세수를 빚 갚기와 미래 투자에 배분하는 국가는 다음 호황의 체력을 만든다. 결론은 분명하다. 반도체 초과세수는 ‘공돈’이 아니다. 국민 경제가 특정 산업의 위험을 떠안고 얻은 성과다. 따라서 그 쓰임도 신중해야 한다. 먼저 갚고, 필요한 곳에 선별적으로 나누며, 남은 힘은 미래 성장에 투자해야 한다. 그것이 재정의 상식이고, 산업국가 한국이 선택해야 할 책임 있는 길이다.
2026-05-27 22:41:57
-
반도체 초과수익, '나눠 쓰기'보다 '나라의 성장판'에 먼저 써야
[경제일보] AI 반도체 호황이 한국 경제의 새 숙제를 던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뛰고, 수출과 기업 이익이 늘면서 법인세 등 초과세수 기대도 커지고 있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가 27일 경제일보 주최 국회정책간담회에서 던진 질문도 이 지점이다. “100조 반도체 초과세수, 갚을까, 나눌까, 투자할까.” 자료는 국가채무 증가, 소득분배 악화, 잠재성장률 하락, 중국 등 경쟁국 추격, 데이터센터 수요 확대를 함께 제시하며 재정 운용의 우선순위를 묻고 있다. 논쟁은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으로 더 커졌다. 김 실장은 안공지능(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이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며, 반도체 호황이 역대급 초과세수로 이어질 경우 국민배당금 방식의 환원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김 실장은 특히 과거 반도체 호황기의 초과세수가 사전에 설계된 원칙 없이 소진됐다며, 이번에는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 제기는 의미가 있다. AI 반도체 호황은 개별 기업의 기술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국가가 깔아온 전력망, 교육, 연구개발 인프라, 세제 지원, 산업단지, 외교·통상 전략이 모두 얽혀 있다. 산업의 과실이 사회 전체의 기반 위에서 생겼다면, 그 일부가 사회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완전히 배척할 수 없다. 더구나 반도체 호황이 자산시장과 고소득층에 먼저 전달되고, 저소득층과 자영업자에게는 늦게 닿는다면 국민경제의 체감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론이 곧바로 ‘현금 배당’이어서는 안 된다. 초과세수는 영구 재원이 아니다. 반도체는 구조적 성장 산업이지만 동시에 가격 사이클이 큰 산업이다. 호황기에 들어온 세수를 반복 지출의 재원으로 삼으면, 불황기에는 국채 발행과 증세 논의가 뒤따른다. 재정은 인기의 장부가 아니라 국가의 안전판이다. ‘생긴 김에 나눠주자’는 방식은 정치적으로 쉽지만 경제적으로는 위험하다. 삼성전자 노사의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이 노조 투표에서 찬성률 73.7%로 가결된 것도 중요한 신호다. 전체 의결권자 6만5593명 가운데 6만2616명이 투표해 투표율은 95.5%에 달했다. 반도체 초과수익의 1차 분배는 기업 내부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임금, 성과급, 협력사 단가, 연구개발 투자, 주주환원은 모두 초과수익을 배분하는 통로다. 정부가 할 일은 이를 정치 구호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지 않으면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 첫째, 초과세수의 일정 부분은 국가채무와 미래 의무지출 관리에 써야 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 기초연금 지출은 빠르게 늘 수밖에 없다. 지금의 호황은 미래 세대에게 넘길 빚을 줄일 드문 기회다. 둘째, 더 큰 몫은 반도체 생태계의 재투자에 배정해야 한다. 전력망, 용수, 송전선, 첨단 패키징, 소재·부품·장비, AI 데이터센터, 전문 인력 양성에 돈을 넣어야 한다. 한국 반도체가 벌어들인 세수를 단기 소비로 흩뿌리면 한 번의 온기에서 끝난다. 그러나 생산 기반과 인재에 투자하면 다음 세대의 세수로 돌아온다. 셋째, 국민 환원은 보편 현금 지급보다 ‘목적 있는 배당’이어야 한다. 취약계층 에너지 비용, 직업 전환 교육, 청년 과학기술 장학금, 지역 산업 전환기금처럼 생산성과 안전망을 동시에 높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이 필요하다면, 소비 진작용 현금보다 미래 역량을 키우는 사회적 배당이 맞다. 넷째, 기업에 대한 추가 부담 논의는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초과이윤을 겨냥한 별도 과세는 투자 결정을 지연시키고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한 신호를 줄 수 있다. 미국, 대만, 일본,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국가 전략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한국만 기업 이익을 정치적 배분 대상으로 먼저 규정하면 자본과 인재는 더 예측 가능한 곳으로 움직인다. 초과세수 활용과 기업 초과이윤 과세는 다른 문제다.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동양 고전 <논어> 헌문편에는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견리사의(見利思義)다. 지금 한국 경제 앞에 놓인 반도체 호황이 바로 그런 시험대다. 이익을 보되, 의로움을 생각해야 한다. 다만 그 의로움은 당장의 박수갈채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번영이어야 한다. 반도체 초과수익은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먼저 지켜야 한다. 더 크게 키워야 한다. 그리고 오래 가게 만들어야 한다. 초과세수의 원칙은 세 가지면 충분하다. 빚을 줄이고, 성장에 투자하고, 약자를 두텁게 돕는 것이다. 그것이 AI 반도체 시대의 과실을 국민 모두의 미래로 바꾸는 길이다.
2026-05-27 14:50:46
-
삼성의 초과이익, 그 몫은 누구에게 있는가
[경제일보] 삼성전자 노사 갈등은 급한 불을 껐다. 파국 직전 멈춰 선 파업 시계는 잠정합의안이라는 봉투에 담겨 조합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질문은 남았다. 인공지능(AI) 호황의 파도를 탄 반도체 부문이 창출할 거대한 초과이익, 그 잉여는 과연 누구의 몫인가. 노조가 요구했던 ‘영업이익의 15%’라는 숫자는 단순한 임금협상을 넘어 한국 자본주의의 기본 문법을 묻는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이재명 대통령조차 이 문제를 피해 가지 않았다. 외신들은 대통령이 노조의 ‘세전 영업이익 배분’ 주장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노동 친화적 정부의 수장이 특정 기업 노사 문제에 이런 메시지를 낸 것은 가볍지 않다. 반도체는 일반 제조업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한국 수출의 4분의 1을 떠받치는 기둥이자 글로벌 공급망의 심장이다. 정부가 긴급조정권까지 검토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노사 분쟁이 회사 담장 안에서 끝나지 않고 국가 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냉정한 판단이 깔려 있었다. 그렇다고 파업의 위험이 크다고 해서 노동자의 몫을 외면하라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삼성전자가 막대한 이익을 냈다고 해서 그 전부가 임금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성립할 수 없다.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기업의 이익은 성격이 있다. 매출에서 온갖 비용을 제하고 남는 금액은 단순한 현금 더미가 아니다. 그 안에는 과거 투자에 대한 회수, 미래를 위한 재투자 재원, 주주가 떠안은 위험에 대한 보상, 국가가 징수할 세금 그리고 구성원에게 돌아갈 성과 보상이 뒤섞여 있다. 이 복잡한 꾸러미를 어느 한쪽이 “이것은 내 몫”이라고 선을 긋는 순간 기업은 생산 조직이 아니라 분배 투쟁의 경기장이 된다. 회사의 비용에는 눈에 보이는 운영비용과 잘 보이지 않는 자본비용이 있다. 임금, 전력비, 협력업체 대금은 장부에 선명히 잡힌다. 그러나 더 무거운 것은 자본비용이다. 반도체 공장 하나에 수십조 원, EUV 장비 한 대에 수천억 원이 들어간다. 오늘 쏟아부은 자본이 내일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메모리 가격은 곤두박질치고 경쟁사는 무섭게 추격한다. 불과 2023년,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은 6조 원대까지 추락했다. 호황기의 초과이익만 보려면 이 혹독했던 적자의 기억도 함께 봐야 한다. 2023년의 손실은 누가 떠안았나. 임금을 받은 노동자는 월급을 토해내지 않았다. 협력업체도, 채권자도 약속된 돈을 받았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주주였다. 주가는 이익 전망을 따라 흔들리고 자기자본은 손실을 흡수한다. 이것이 주식회사의 기본 원리다. 주주가 마지막에 남는 것을 가져가는 ‘잔여청구권’을 갖는 이유는 모든 것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맞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자의 기여는 부정할 수 없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초격차는 엔지니어들의 밤샘 노동 위에 세워졌다. 그들에게 충분하고 투명한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 노조가 “성과급 산정 기준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성과주의를 말하려면 성과의 계산법부터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영구적 권리처럼 임금으로 고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영업이익은 주주의 돈이기 전에 회사의 미래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HBM, 차세대 D램, 파운드리 미세공정. 이 모든 것은 오늘의 이익을 내일의 기술에 쏟아부어야만 유지되는 살얼음판 경쟁이다. 오늘의 초과이익을 모두 현금으로 나눠버리면 내일의 연구개발은 무엇으로 감당할 것인가. 반도체 산업에서 투자를 멈춘 기업의 운명은 죽음뿐이다. 유럽의 사례는 서늘한 경고다. 유럽은 오랫동안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모범을 자처했다. 노동자 보호, 사회적 합의의 이름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AI와 반도체의 시대에 유럽은 주도권을 잃었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EU 경쟁력 보고서에서 투자 부족과 생산성 둔화를 통렬하게 지적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본진에서 나온 자기반성이었다. 한국은 유럽을 닮을 여유가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밀리면 그 충격은 주주 몇 명의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협력업체, 수출, 세수, 청년 일자리까지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인다. 그래서 삼성의 이익 논쟁은 임금협상인 동시에 산업정책이다. 노동자에게 더 많은 성과 보상이 필요하다면 길은 있다. 현금 성과급만이 답은 아니다. 회사의 장기 가치 상승에 참여하는 주식 보상이야말로 노동자와 주주의 이해를 맞추는 진정한 공동체의 길이다. 위험은 주주에게만 남기고 이익은 매년 영업이익 비율로 먼저 떼어가자는 구조는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손실 없는 잔여청구권이며 세상에 그런 권리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삼성전자 노사가 잠정합의에 이른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투표가 끝나도 논쟁은 끝나지 않는다. AI가 만들어낼 거대한 초과이익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다. 그때마다 분노와 구호로 답하면 산업은 버티지 못한다. 상식은 단순하다. 노동은 존중받아야 하고 위험을 건 자본도 존중받아야 한다. 국가는 세금으로 기업은 미래 투자로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어느 하나를 절대화하면 나머지는 무너진다. 삼성의 초과이익은 모두의 땀 위에 서 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청구할 수는 없다. 그것이 주식회사의 질서다. 그 질서가 무너지면 나눌 이익 자체가 사라진다.
2026-05-21 14:4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