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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은 사람 아닌 제도를 보고 해야 한다
[경제일보] 헌법에는 권력을 주는 조항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권력을 자신을 위해 고치지 못하도록 막는 조항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8조 2항이 그렇다.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짧은 한 문장이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권력과 헌법의 관계에 대한 무거운 원칙이 들어 있다. 헌법을 고칠 수는 있어도 자신을 위해 고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프랑스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9일 파리 동포간담회에서 자신의 임기를 직접 언급했다. 취임 초 정상외교 일정을 많이 잡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저의 임기는 헌법상 명확하게 제한돼 있기 때문에” 정상외교를 빨리 시작해야 효과를 오래 누릴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정상외교에 관한 설명이었지만 정치권에서 대통령 4년 중임·연임제 개헌과 현직 대통령의 향후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주목받았다. 대통령의 말은 원칙적으로 옳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하고 중임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말한 제128조다. 대통령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은 개헌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도록 못 박았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개헌이 현직 권력자의 집권 연장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그런데 최근 개헌 논의는 이 단순한 원칙에서 자꾸 벗어난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로 바꾸는 권력구조 개편을 언급하면서 개헌을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야권에서는 중임제와 임기 단축이 결합할 경우 현직 대통령의 향후 재출마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반대편에서는 연임제 개헌의 경우 현직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반론이 나온다. 개헌의 필요성보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시 출마할 수 있느냐’가 정치적 관심사가 돼버린 셈이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개헌은 대통령 한 사람의 임기를 정하는 작업이 아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대통령과 국회, 정부와 사법부가 어떤 관계를 맺고 국가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결정하는 국가의 기본설계다. 지금 개헌한다면 그 기준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가 아니라 2030년, 2040년의 대한민국에 어떤 권력구조가 필요한가여야 한다. 1987년 헌법이 만들어진 지 거의 40년이 흘렀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크게 변했다. 경제 규모도, 인구 구조도, 지방의 현실도 달라졌다.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 역시 1987년과 같지 않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장단점도 충분히 경험했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다음 선거를 의식해야 하고 임기 후반에는 급격한 레임덕이 나타나는 문제, 국회의원 임기와 대통령 임기가 엇갈리면서 선거가 사실상 상시화되는 문제도 있다. 반대로 4년 중임제는 국민에게 대통령을 한 번 더 평가할 기회를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권력 집중이 장기화할 위험도 있다. 그러니 논의할 것은 많다. 대통령 임기만 고칠 일도 아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어디까지 조정할 것인지, 국회의 견제 기능은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국무총리의 역할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감사원과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의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지방분권과 기본권, 국민투표와 개헌 절차도 논의 대상이다.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4년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대한민국의 권력구조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개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사람을 먼저 놓고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동양 고전 <한비자>에는 “법불아귀(法不阿貴)”라는 말이 나온다. 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법의 적용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2000여 년 전의 말이지만 헌법 논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좋은 헌법은 좋은 지도자를 전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권력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좋은 헌법이다. 그래서 헌법 제128조 2항의 정신은 중요하다. 헌법을 고치는 사람이 그 결과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개헌의 정당성을 지키는 일종의 ‘이해충돌 방지장치’다. 헌법을 바꾸는 정치세력과 그 헌법의 혜택을 받는 정치세력을 분리해야 개헌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생긴다. 여야 모두 이 원칙 앞에서는 한발 물러서야 한다. 여권은 개헌 논의를 현직 대통령의 정치 일정과 연결할 여지를 스스로 차단해야 한다. 야권 역시 모든 개헌 논의를 ‘집권 연장 시도’라고 규정하며 정치적 의심부터 앞세우는 태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실제 현행 헌법에는 현직 대통령의 임기 연장과 중임 변경을 제한하는 조항이 존재한다. 개헌 논쟁은 그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대통령도 이번 발언을 한 걸음 더 분명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임기는 헌법상 제한돼 있다”는 언급에서 그칠 게 아니라 개헌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권력구조가 자신의 정치적 거취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래야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개헌 논의를 제도의 문제로 되돌릴 수 있다. 개헌에는 더 중요한 관문도 있다. 헌법 제130조에 따르면 개헌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이후 국민투표에서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가 투표해 투표자 과반수가 찬성해야 확정된다. 어느 한 정당이나 대통령 혼자 밀어붙일 수 없는 구조다. 헌법 자체가 개헌을 ‘합의의 정치’로 설계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누가 다음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 있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대통령제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4년 연임제와 중임제의 장단점을 공개적으로 비교하고 대통령·국회·사법부 사이의 권력 배분 방안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여야와 헌법학자,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개헌 논의기구를 만들어 쟁점을 정리할 수도 있다. 개헌은 정치공학이 되는 순간 실패한다. 현직 대통령에게 유리하도록 설계해도 안 되고, 현직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설계해서도 안 된다. 헌법은 특정 정치인을 위한 계약서가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까지 적용받을 국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파리에서 말한 대로 대통령의 임기는 헌법에 의해 제한된다. 그렇다면 이제 정치권도 그 헌법의 정신을 받아들일 차례다. 사람은 임기가 끝나면 떠난다. 헌법은 남는다. 개헌의 출발점은 바로 그 단순한 사실이어야 한다.
2026-09-10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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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셈법만 바꾸는 개헌, 국민은 왜 찬성해야 하나
[경제일보] 개헌 논의가 다시 출발선에 섰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28일 여야가 참여하는 국회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27년 개헌 논의를 본궤도에 올리고, 22대 국회 임기 안에 제10차 개헌을 마무리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1987년 헌법 이후 39년 만에 국가의 기본 설계도를 다시 그리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개헌의 첫 장면부터 국민의 삶은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장이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국민 선택의 문제”라고 언급하자 정치권의 관심은 순식간에 대통령 임기로 쏠렸다. 논란이 커지자 조 의장은 29일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개헌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현행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이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문이 분명한 문제를 둘러싸고 하루 동안 정치권 전체가 소모전을 벌인 셈이다. 이 장면은 앞으로 개헌 논의가 어디에서 실패할지를 미리 보여준다. 대통령을 5년 단임으로 둘지, 4년 연임으로 바꿀지, 총리에게 얼마나 권한을 나눌지는 물론 중요하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을 어떻게 통제하고 국회·정부·사법기관 사이의 견제 장치를 어떻게 보완할지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조 의장도 권력구조 개편과 계엄권 제한, 선거관리 개혁 등을 주요 의제로 제시했다. 다만 그것이 개헌의 전부라면 국민은 다시 묻게 된다.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 권한을 조정하는 일이 내 월급과 집값, 아이의 미래와 지역의 소멸, 플랫폼 노동과 개인정보 침해를 어떻게 바꾸느냐고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개헌은 정치인들끼리 권력의 방 크기를 다시 재는 공사로 보일 수밖에 없다. 1987년 헌법은 위대한 민주화의 성취였다.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고 헌법재판소를 설치했고, 국가권력에 맞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토대를 세웠다. 하지만 그 헌법이 만들어진 시절에는 스마트폰도, 생성형 인공지능도, 플랫폼 노동도 없었다.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환경문제로 여겨졌고, 지방소멸과 초고령사회라는 말도 익숙하지 않았다. 헌법은 낡았기 때문에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삶이 헌법의 언어보다 훨씬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보완해야 한다. 먼저 디지털 시대의 기본권을 논의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채용과 대출, 보험과 행정처분에 영향을 미치고, 개인의 행동과 취향이 데이터로 축적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과 사생활의 자유를 과거의 문장만으로 충분히 지키기 어렵다. 현행 헌법에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알고리즘에 의한 차별, 자동화된 결정에 대한 설명 요구권을 직접 규정한 조항이 없다. 학계에서도 디지털 정보의 활용과 개인의 결정권 사이에 새로운 헌법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기후위기와 미래세대의 권리도 헌법의 중심 의제가 돼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정부가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제대로 제시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 의무에 어긋난다며 탄소중립기본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현재 세대가 편익을 누리고 미래세대에 위험과 비용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헌법적 판단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 논의가 대통령 임기에만 머문다면 정치는 이미 헌법재판소가 던진 질문보다 뒤처지는 셈이다. 환경권을 국가의 추상적 노력 의무로 남겨둘 것인지,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미래세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더 구체적으로 담을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말하면서 다음 선거의 권력 배분만 따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방분권도 더 이상 부속 의제가 아니다. 현행 헌법의 지방자치 장은 제117조와 제118조 두 조문으로 구성돼 있고, 자치의 구체적인 범위를 대부분 법률에 맡기고 있다. 국회와 지방자치 분야의 연구에서는 주민자치권의 기본권화, 보충성 원칙,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의 강화를 개헌 과제로 제시한다. 지역이 스스로 산업과 교육, 의료와 교통정책을 설계하지 못한 채 중앙정부의 예산 배분만 기다리는 구조로는 지방소멸을 막기 어렵다. 수도권 집중을 걱정하면서 모든 결정권과 세원을 중앙에 붙들어 두는 것은 병의 원인을 그대로 둔 채 해마다 진통제만 처방하는 것과 같다. 지방분권 개헌은 지방 정치인을 위한 권한 확대가 아니라, 국민이 사는 곳에 따라 삶의 기회를 차별받지 않게 하는 기본권의 문제다. 노동과 돌봄의 변화도 담아야 한다. 현행 헌법이 상정한 노동자는 일정한 사업장에서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는 전통적인 노동자에 가깝다. 하지만 오늘의 국민은 플랫폼을 통해 일하고, 여러 직업을 오가며, 가족의 돌봄과 생계를 동시에 감당한다. 고용 형태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사회보험과 노동권의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새로운 사회권의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을 가족만의 책임으로 남길 것인지도 헌법적 토론의 대상이다. 개헌 과정도 달라져야 한다. 헌법개정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거친 뒤 국민투표에서 선거권자 과반수가 투표하고, 투표자 과반수가 찬성해야 확정된다. 결국 정치권의 합의만으로는 한 글자도 바꿀 수 없다. 국민이 개헌의 필요성을 자기 삶의 문제로 받아들여야만 문턱을 넘을 수 있다. 조 의장이 국민 참여용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다만 국민 참여가 정치권이 만든 초안을 설명하고 찬반을 묻는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개헌 의제를 정하는 단계부터 시민과 전문가, 청년과 노동자, 장애인과 지역 주민, 미래세대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한다. 숙의 없는 국민투표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승인 절차에 불과하다. 맹자 ‘진심 하’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는 말이 나온다. 헌법 역시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존엄과 자유, 안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권력이 어디까지 행사될 수 있는지를 정한 약속이다. 권력구조 개편을 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고, 행정부와 국회가 협력하면서도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체제를 찾아야 한다. 비상권한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강화해야 한다. 다만 권력구조는 개헌의 한 장이지 표지와 본문 전체가 아니다. 정치권이 대통령의 임기와 권한 배분부터 앞세우는 순간 국민은 개헌을 현직 권력과 차기 권력 사이의 거래로 의심한다. 그 의심을 탓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개헌사는 권력을 연장하거나 통치구조를 바꾸려는 정치적 계산과 자주 얽혀 있었다. 이번 개헌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정치가 먼저 권력의 셈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이 찬성할 개헌은 대통령이 한 번 더 출마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헌법이 아니다. 내 정보가 인공지능에 함부로 이용되지 않고, 어느 지역에 살든 교육과 의료의 기회를 누리며, 기후재난의 비용을 아이들에게 떠넘기지 않고, 어떤 형태로 일하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헌법이다. 대통령 임기만 고치기 위해 국민을 투표장으로 부르는 개헌은 성공하기 어렵다. 국민의 삶을 고치는 개헌이어야 국민이 움직인다. 권력의 자리를 다시 배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40년을 살아갈 시민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을 새로 쓰는 것. 그것이 10차 개헌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26-07-29 10: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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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시대적 과제라면 더 늦기 전에 국민부터 물어야 한다
[경제일보] 개헌론이 다시 정치권의 전면에 섰다. 1987년 헌법 체제가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버티는 동안 대통령 권한 집중과 극한 대립 정치, 승자독식 선거 제도, 중앙 권한 편중 같은 한계가 누적됐다는 지적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시대 변화에 맞게 국가 운영의 틀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개헌 필요성 자체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방향보다 순서다. 헌법은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이는 법안이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유불리를 따져 꺼내 들 카드도 아니다. 한 사회가 어떤 가치 위에 서고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나누며 국민의 권리를 어디까지 보장할지를 정하는 최상위 규범이다. 내용만큼 절차가 무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권력 분산, 계엄 통제 장치 강화, 지방분권 확대 등 여러 구상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겉으로 보면 활발한 논의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국민 다수는 각 안의 차이와 파급 효과를 충분히 설명받지 못했다. 대통령 권한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국회의 권한은 어디까지 넓힐 것인지, 지방정부에 재정 권한까지 넘길 것인지, 기본권 확대에 따른 국가 책임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핵심 쟁점마다 답이 선명하지 않다. 여론조사에서 개헌 찬성이 높게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과 “어떤 헌법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문제의식이고 후자는 선택이다. 설계도를 보여주지 않은 채 동의부터 구하는 방식으로는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더구나 국민 삶의 현장에는 더 시급한 과제가 쌓여 있다. 주거비 부담은 여전하고 저출생은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흔든다. 청년 일자리와 지역 소멸, 연금 재정, 산업 경쟁력, 재난과 안전 문제도 하나같이 무겁다. 개헌 논의가 이런 현실을 풀어낼 국가 운영 개편과 맞닿아 있지 않다면 정치권만 뜨거운 의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 삶이 달라질 때 제도의 의미를 체감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공론의 토대다. 국회 안의 협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별 순회 토론회와 시민참여형 숙의 절차, 쟁점별 비교 자료 공개, 학계와 법조계, 시민사회의 공개 검증이 함께 가야 한다. 찬반을 나누기 전에 국민이 이해할 기회를 먼저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오래가는 제도는 충분히 듣고 넓게 묻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반대로 서둘러 손본 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시 흔들렸다. 헌법은 정권의 작품이 아니라 국민의 약속이어야 한다. 개헌이 시대적 과제라면 더욱 서둘러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조문을 먼저 쓰는 일이 아니다. 국민에게 먼저 묻는 일이다. 그 순서를 놓치면 개헌은 출발부터 힘을 잃는다.
2026-04-16 08: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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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의 조급함이 시대의 순리를 앞지를 순 없다
[경제일보] 국회의장의 개헌 제안에 이어 여권 일각에서도 개헌의 군불을 지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산물로 현행 헌법이 뿌리 내린 지도 어느덧 마흔 해가 가까워졌다. 강산이 네 번 변하는 동안 국가의 위상은 높아졌고 사회 구조는 복잡다단해졌다. 옷이 몸에 맞지 않으면 새로 지어 입는 것이 마땅하듯, 낡은 헌법 체제를 현실에 맞게 수선하자는 논의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가의 근간을 세우는 헌법 개정은 결코 정치적 이해득실이나 특정 진영의 전략적 카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도덕경(道德經) 제60장에는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말이 나온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물고기를 굽는 것과 같아서, 너무 자주 뒤집으면 살이 다 부서진다는 뜻이다. 헌법은 국가라는 거대한 유기체를 지탱하는 뼈대다. 뼈대를 새로 맞추는 과정에서 정치권이 성급하게 이리저리 뒤집으려 든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삶과 국가의 안녕으로 돌아간다. 지금의 개헌 논의가 과연 시대적 소명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정국 돌파를 위한 정략적 도구인지를 엄중히 따져 물어야 하는 이유다. 그동안 개헌의 필요성은 간헐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권력 구조의 분점, 지방분권 강화, 기본권 확대 등 명분은 늘 그럴듯했다. 하지만 매번 실패로 끝난 이유는 명확하다. 국민적 공감대라는 토양 없이 정치적 야심이라는 씨앗만 뿌렸기 때문이다. 공자(孔子)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다.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의 어떤 정책도 바로 설 수 없다. 하물며 국가 최고의 규범인 헌법을 고치는 일에서 사회적 동의와 공조가 빠진다면, 그것은 '국민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 '정치꾼을 위한 잔치'로 전락할 뿐이다. 일부 진영에서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그것을 민의(民意)의 전부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인 동시에 절차적 정당성의 산물이다. 특정 세력의 정치적 일정에 맞춰 개헌 시한을 정해놓고 몰아붙이는 것은 헌법 정신에 대한 모독이다. 진정한 개헌은 광장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국민의 요구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추진력을 얻는다. 지금 우리 국민이 절실히 원하는 것이 과연 통치 구조의 변경인가, 아니면 무너진 민생의 회복과 공정의 가치 바로 세우기인가를 정치권은 자문해야 한다. 개헌은 아무리 신중해도 과하지 않다. 서구의 명언에도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는 말이 있다. 40년 된 헌법이 낡았다고 비판하기 전에, 그 헌법이 보장한 민주적 가치를 우리 정치권이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부터 돌아보는 것이 순서다. 법이 문제가 아니라 법을 운용하는 사람이 문제였던 적은 없었는지 뼈아프게 성찰해야 한다. 사회적 동의라는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개헌은 갈등의 치유가 아닌 새로운 분열의 씨앗이 될 뿐이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일에 조급함은 독(毒)이다. 여야는 정략적 계산기를 두드리기 전에 국민의 마음부터 살펴야 한다. 개헌의 당위성이 차고 넘친다 해도, 국민의 실질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잠시 멈추어 서는 것이 옳다. 헌법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가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 전해 내려갈 장엄한 교향곡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중함'이라는 미덕이 결여된 개헌 논의는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2026-03-24 09: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