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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 JB금융 회장, ROE 13% 질적 성장…캐피탈·동남아로 사업 확대
[경제일보] 김기홍 회장이 이끄는 JB금융그룹이 수익성과 자본효율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지배주주지분 순이익은 385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1% 증가했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3.0%,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12.53%를 기록했다. 김 회장은 위험가중자산이익률(RORWA)을 중심으로 자산별 수익성을 관리하는 질적 성장 전략을 추진해왔다. 은행·캐피탈의 수익 기반을 넓히는 한편 인도네시아 여신금융과 금융특화 인공지능(AI) 등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RORWA 중심 질적 성장…반기 최대 순익 김 회장은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와 KB국민은행 수석부행장, JB자산운용 대표를 거쳐 지난 2019년 3월 JB금융 회장에 취임했다. 2022년과 지난해 연임에 성공해 세 번째 임기를 맡고 있다. 현 임기는 오는 2028년 3월까지다. 취임 이후에는 자산 규모 확대보다 위험가중자산 대비 이익과 자본효율을 중시하는 경영을 추진했다. 은행과 비은행 계열사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수익성과 건전성을 함께 고려해 자본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올해 상반기 JB금융의 RORWA는 2.03%로 지난해 말 1.91%보다 0.12%포인트(p) 높아졌다. 총자산이익률(ROA)은 1.07%, 영업이익경비율(CIR)은 36.9%를 기록했다. CET1비율은 지난해 말 12.58%에서 12.53%로 0.05%포인트 낮아졌지만 12% 중반을 유지했다. JB금융은 대출이 위험에 비해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내는지, 조달비용과 신용비용을 빼고도 수익성이 있는지를 따져 여신을 T1~T4로 구분한다. 두 기준에서 모두 수익성이 높은 T1은 확대하고 한쪽만 높은 T2·T3는 선별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수익성이 낮은 T4는 비중을 조정해 사업구조를 개선한다. ◆JB우리캐피탈 34% 성장…그룹 수익구조 다변화 JB금융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385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1% 증가하며 반기 최대를 기록했다. 은행 계열사들의 순이익이 감소한 가운데 JB우리캐피탈이 성장하며 그룹 실적을 뒷받침했다. 전북은행은 945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9.0% 감소했고 광주은행은 1467억원으로 1.2% 줄었다. 반면 JB우리캐피탈은 1768억원으로 34.2% 증가했다. JB자산운용과 JB인베스트먼트는 각각 15억원, 53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JB우리캐피탈은 개인신용대출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동차담보대출과 비부동산 기업금융, 투자금융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말 자동차담보대출 잔액은 1조9299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345억원 증가했다. 기업금융 자산은 4조4522억원, 투자금융 자산은 1조7065억원으로 같은 기간 각각 2770억원, 2335억원 늘었다. 그룹 차원에서는 은행과 캐피탈의 사업 역량을 연계해 특화 여신을 확대한다. JB금융은 JB우리캐피탈의 자동차담보대출 취급 경험을 전북은행과 광주은행에 적용해 관련 상품과 영업을 넓힐 계획이다. 외국인대출도 그룹의 주요 특화 여신 사업으로 추진한다. 전북은행·광주은행·JB우리캐피탈은 기존 외국인 근로자 중심의 고객군을 유학생과 장기체류 외국인으로 확대하고 있다. 체류자격과 국내 정착 단계에 따라 상품을 세분화해 취업·정주 과정에서 금융거래를 이어가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이들 3사의 외국인대출 잔액은 상반기 말 1조904억원이며 연말 목표는 1조3000억원이다. ◆인도네시아 진출…동남아 사업 기반 확장 JB우리캐피탈은 이달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으로부터 현지 여신전문금융사 KB부코핀파이낸스 인수와 관련한 대주주 변경 승인을 확보했다. JB우리캐피탈은 지난해 7월 KB부코핀파이낸스 지분 85%를 약 29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현지 금융당국의 승인으로 주요 인허가 절차를 마쳤으며 지분 취득 완료 후 현지 사업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JB금융은 이미 캄보디아·미얀마·베트남에서 금융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는 프놈펜상업은행(PPCBank)과 자산운용업을 운영하고 미얀마에서는 소액대출업, 베트남에서는 증권업을 영위한다. 캄보디아 프놈펜상업은행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26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9% 증가했다. JB금융은 기존 은행·소액대출·증권 사업에 인도네시아 여신금융을 추가해 동남아 수익 기반을 넓힐 계획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전기이륜차를 중심으로 새로운 금융상품을 개발한다. JB우리캐피탈은 AI 핀테크기업 에이젠글로벌의 현지 법인과 협력해 전동이륜차 구매자금과 운전자 신용대출, 배터리 매입자금 대출 등을 추진한다. 국내 자동차금융 사업에서 축적한 여신심사와 상품 운영 경험을 현지 시장에 적용하려는 구상이다. 기존 기업금융 중심의 사업을 개인 고객으로 확대하고 전기이륜차 구매와 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 수요를 확보할 계획이다. ◆주주환원 50%·금융특화 AI…성장전략 구체화 수익성 중심 경영과 함께 주주환원도 확대하고 있다. JB금융의 지난해 총주주환원율은 45.0%로 전년 32.4%보다 12.6%포인트 상승했다. 올해 목표는 50%이며 중장기 ROE 목표는 15%다. 지난 7월에는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소각을 결정했다. 취득 예정액 가운데 약 820억원은 올해 말까지, 나머지 약 180억원은 내년 1월 신탁계약 만료 전까지 취득할 계획이다. 확보한 주식은 전량 소각한다는 방침이다. JB금융은 최근 업스테이지와 금융특화 AI 에이전트 개발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전북은행·광주은행·JB우리캐피탈의 금융업무에 AI 기술을 접목해 업무 효율과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올해 우선 추진 과제는 △컴플라이언스 △여신 프로세스 △IT 개발 프로세스 △디지털 마케팅 △AI 컨택센터다. 금융특화 AI 모델을 그룹 안에 도입하고 기존 인력의 업무 역량 전환과 신규 사업 배치도 추진한다. 김 회장은 수익성 중심 경영을 유지하면서 해외사업과 AI를 새로운 성장 기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 여신금융 사업을 본격화하고 금융특화 AI를 은행·캐피탈 업무에 적용해 2030년 기준 연간 1000억원 이상의 가치 창출을 추진한다. [아주경제 2026년 09월 29일자 15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9-29 07: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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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로 오른 증시, 반도체 때문에 무너졌다
[경제일보] 코스피가 하루 만에 10% 넘게 폭락했다. 지난 28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0.84% 내린 6023.66으로 거래를 마쳤다. 장중 낙폭은 11.3%까지 커졌고 시장 전체의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도 발동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4% 넘게 떨어졌다. 외국인은 약 5조원어치를 순매도했고 개인은 4조원가량을 받아냈다. 거래 종목 917개 가운데 오른 종목은 36개에 불과했다. 직접적인 충격은 글로벌 반도체주 매도세였다. 중국 메모리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성공적인 증시 상장과 중국의 노광장비 기술 진전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과 시장점유율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인공지능 투자 과열과 반도체 수요의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의문도 매도세를 부추겼다. 그러나 이번 폭락을 중국 반도체 기업이나 외국인 매도, 공매도 세력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외부 충격이 거셌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충격을 코스피 전체의 붕괴로 키운 것은 한국 증시의 편중된 구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가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두 종목이 흔들리면 업종과 실적이 다른 수백 개 기업까지 함께 추락하는 구조다. 한국 증시는 반도체 호황을 타고 빠르게 올랐다. 코스피는 지난 6월 9114.55까지 상승했지만 이후 반도체주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불과 한 달여 만에 고점 대비 34% 밀렸다. 7월 하락률만 29%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0월의 월간 하락 폭까지 넘어섰다. 상승할 때는 반도체가 시장 전체를 끌어올렸지만 하락할 때도 같은 종목들이 지수 전체를 끌어내린 것이다. 특정 산업의 경쟁력이 증시를 이끄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미국 증시도 대형 기술기업의 영향력이 크다. 문제는 반도체를 제외하고 시장을 떠받칠 만한 두 번째, 세 번째 성장축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자동차와 바이오, 조선, 방산, 콘텐츠, 금융 등 경쟁력 있는 산업이 존재하지만 기업가치와 주주 신뢰를 높여 장기자금을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외국인 수급 의존도도 낮춰야 한다. 외국인이 대규모로 매도하면 이를 받아줄 국내 장기투자 기반이 취약하다. 개인투자자는 시장이 급락할 때 저가 매수에 나서지만 단기 손실을 감당할 능력이 제한적이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공모펀드 등 장기자금은 경직된 운용규정과 낮은 주식 비중, 투자자 불신에 묶여 있다. 외국인 자금이 빠질 때마다 환율과 주가가 동시에 흔들리는 천수답 구조가 반복되는 이유다. 장기투자자가 부족한 것은 단순히 자금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지배구조와 주주환원, 회계 투명성에 대한 불신도 장기투자를 가로막는다. 실적이 좋아도 지배주주의 결정에 따라 합병과 분할, 자사주 처분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다면 투자자는 장기 보유보다 단기 차익을 택하게 된다. 증시 안정은 매매 규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기업이 주주의 신뢰를 얻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최근 도입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변동성을 키웠는지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필요할 경우 개인투자자의 투자 한도를 제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정 대형주 주가를 두 배로 추종하는 상품은 상승장에서 수익을 키우지만 하락장에서는 매도 압력을 증폭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시장이 급락할 때마다 공매도를 금지하거나 가격 제한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공매도 불법행위와 시세조종은 엄벌해야 하지만 정상적인 가격 발견 기능까지 막으면 외국인 투자자의 불신과 시장 왜곡을 키울 수 있다. 서킷브레이커도 공포를 진정시키는 안전장치이지 주가 하락 자체를 막는 수단은 아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시장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주가 수준을 떠받치려 하기보다 구조적 취약성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선 반도체 이외의 성장기업이 증시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산업정책과 자본시장 정책을 연결해야 한다. 성장기업의 상장을 활성화하되 부실기업의 우회 상장과 과도한 공모가 책정은 엄격히 걸러내야 한다. 퇴직연금과 연기금 등 장기자금이 국내 우량기업에 안정적으로 투자할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주주환원 확대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자사주 제도 개선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기업의 장기 성장을 유도해야 한다. 시장이 신뢰를 얻지 못한 채 세제 혜택만 확대한다고 장기투자가 늘지는 않는다. 기업들도 반도체 호황이 영원할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연구개발과 인재, 공급망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주주와 시장에 기술 격차와 투자 성과를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중국 기업의 부상을 단순한 저가 공세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생산능력과 기술 자립 속도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대비해야 한다. <서경>의 ‘거안사위(居安思危)’는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한국 증시는 반도체가 사상 최고치를 끌어올릴 때 편중의 위험을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 이제 시장이 무너진 뒤 투기세력과 공매도만 탓한다면 같은 충격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반도체는 한국경제와 증시의 강력한 엔진이다. 그러나 하나의 엔진에만 의존하는 시장은 그 엔진이 멈추는 순간 전체가 흔들린다. 코스피 10% 폭락이 보여준 것은 반도체 산업의 실패가 아니라 반도체밖에 믿을 것이 부족한 증시의 취약성이다. 시장을 살리는 길은 주가를 임시로 떠받치는 데 있지 않다. 산업을 다변화하고 장기자금을 키우며 기업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있다.
2026-07-29 10: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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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피의 오명, 자본시장 신뢰부터 다시 세워야
[경제일보] 우리나라 증시가 이른바 '롤러코스피', '홀짝 증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은 지 오래다. 하루는 급등했다가 다음 날에는 급락하는 극심한 변동성이 반복되면서 투자자들은 시장의 방향성을 예측하기보다 운에 기대야 하는 현실에 내몰리고 있다. 글로벌 거시경제 변수와 미국 기술주 흐름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구조 속에서 한국 증시는 독자적인 상승 동력을 잃었고, 개인투자자들의 피로감은 한계에 이르렀다. 결국 국내 증시를 떠나 미국 등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른바 '국장 탈출' 현상마저 일상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투자 성향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본시장은 기업의 성장 자금을 공급하고 국민에게는 안정적인 자산 형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경제의 혈맥이다. 증시가 활력을 잃으면 기업의 투자와 고용도 위축되고, 국가 경제의 성장 기반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와 금융당국의 대응은 단기적인 시장 안정책에 머물러 있을 뿐,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수 방어가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구조 개혁이다. 한국 증시의 가장 큰 고질병은 세계가 지적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우리 기업들의 실적과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에 근접했지만, 시장에서는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 배경에는 낙후된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 친화성이 부족한 경영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대주주 중심의 의사결정, 소액주주의 권익을 외면하는 경영 관행, 물적분할 이후의 중복 상장, 그리고 지배력 유지를 위한 불투명한 기업 운영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시장에서는 "한국 주식은 장기 투자할수록 손해"라는 자조가 나오는 현실이다. 이러한 인식이 굳어진다면 국내 자본은 물론 해외 투자자들까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역시 방향성은 옳지만 실효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자율적 참여와 공시 확대, 세제 지원만으로는 수십 년간 고착된 지배구조를 바꾸기 어렵다. 시장은 선언이 아니라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뿐 아니라 전체 주주에 대해 부담하도록 명확히 하는 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사회가 특정 지배주주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도록 만드는 것이 자본시장 선진화의 출발점이다. 주주 권익 보호 장치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물적 분할과 합병, 대규모 구조조정 등 소액주주의 재산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서는 공정한 보상과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더욱 정교하게 보완하고,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자사주 소각 활성화, 합리적인 상속세 제도 개선 등을 통해 기업이 이익을 주주와 적극적으로 공유하도록 유도하는 세제 개편도 병행되어야 한다. 기업이 현금을 쌓아두기보다 투자와 배당을 통해 시장과 성과를 공유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다. 자본시장은 숫자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결국 신뢰 위에서 작동하는 시장이다. 신뢰를 잃은 시장에는 자금도, 투자도, 미래도 머물지 않는다. 지금 한국 증시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이나 경기 순환이 아니라 시장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붕괴에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자본시장 선진화를 정쟁의 대상이 아닌 국가 경쟁력 강화의 핵심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기업 또한 소액주주를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기업의 공동 주인으로 존중하는 경영 철학을 확립해야 한다. 투명한 지배구조와 책임 있는 경영, 공정한 시장 질서가 확립될 때 비로소 '롤러코스피'라는 오명을 벗고 한국 증시는 국민의 자산을 키우고 세계 자본을 끌어들이는 진정한 선진 자본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2026-07-16 10: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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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손보는 스튜어드십 코드, 감시자도 감시받아야 한다
[경제일보] 한국 자본시장에서 오래된 질문이 하나 있다. “주인은 누구인가.” 상장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말하지만, 현실의 이사회와 경영진은 때로 오너 일가의 뜻을 더 무겁게 받아들였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굴리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도 기업의 주인이라기보다 조용한 손님처럼 주주총회장 한쪽에 앉아 있었다.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에도 침묵했고, 일반 주주가 손해를 보는 합병이나 배당정책에도 뒤늦게 반대표를 던지는 정도에 머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침묵을 깨기 위해 도입된 것이 스튜어드십 코드다. 기관투자자가 고객과 수익자의 돈을 맡은 수탁자로서 투자대상 기업을 점검하고 필요하면 의결권과 주주권을 행사하라는 행동지침이다.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6년 12월 도입됐다. 이후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4대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사모펀드 운용사, 벤처캐피털 등 수백 개 기관이 참여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참여기관은 249곳이었다. 기관투자자의 반대 의결권 행사와 주주제안이 늘어나는 등 일정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성적표는 절반의 성공에 가깝다. 가입 기관은 늘었지만 실제 무엇을 했는지 알기 어려웠다. 코드에 참여한다고 선언해도 이행보고서를 제대로 쓰지 않거나, 써도 각 기관 홈페이지에 흩어져 비교와 검증이 어려웠다. 금융위에 따르면 과거 이행보고서를 공시한 기관은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책임투자’라는 간판은 걸었지만 책임의 내용을 시장이 확인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정부와 한국ESG기준원이 추진하는 이번 개정안은 바로 그 약한 고리를 겨냥한다. 핵심은 수탁자 책임 활동 보고서를 매년 한국ESG기준원에 제출하도록 하고, 이행 여부를 점검해 공시하는 것이다. 기관투자자는 고객과 수익자에게 수탁자 책임 정책과 이행 현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면 왜 지키지 않았는지 설명해야 한다. 기존 국내 상장주식 중심이던 적용 대상도 채권, 인프라, 부동산, 비상장주식 등으로 넓어질 전망이다. 수탁자 책임 활동의 고려 요소도 지배구조를 넘어 환경·사회·지배구조, 즉 ESG 전반으로 확대된다. 방향은 옳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구조적 저평가에 갇혀 있었다. 낮은 배당, 불투명한 지배구조,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충돌, 이사회 독립성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정부가 말하는 밸류업도 결국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와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누고, 경영진이 자본비용을 의식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기관투자자의 역할은 작지 않다. 기관이 침묵하면 기업은 변하지 않는다. 기관이 원칙 있게 묻고 따지면 이사회는 긴장한다. 특히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다. 국민의 노후자금, 직장인의 퇴직연금, 개인투자자의 펀드 자금을 맡은 관리자다. 이들이 기업의 사업모델, 재무상황, 자본배분, 지배구조를 살피는 것은 정치적 개입이 아니라 수탁자의 기본 책무다. 기업이 현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하지 않는지, 대주주에게 유리한 거래가 일반주주에게 불리하지 않은지 따지는 것은 시장경제의 정상 작동에 속한다. 주주권 행사를 ‘기업 때리기’로만 보는 낡은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밝은 면만 볼 수는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칼날은 기업을 향하지만, 그 칼을 쥔 기관투자자도 감시받아야 한다. 문제는 누가 감시하느냐다. 이번 개정안에서 이행점검의 실무는 한국ESG기준원이 맡고,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가 최종 검토·의결하는 구조다. 그런데 시장 일각에서는 이 점검 체계의 독립성을 우려한다. 발전위원회에 자산운용업계 인사가 참여하고, ESG기준원이 의결권 자문이나 의안분석 서비스 등 금융투자업계와 거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지적이다. 피점검 대상과 점검 주체 사이에 이해상충 가능성이 있다면 제도의 신뢰는 출발선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ESG기준원은 스튜어드십 코드 지원 조직을 별도로 운영하고, 의결권 자문 등 다른 업무와 공간·인력·정보교류를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도 내부정보 교류 차단장치를 통해 이해상충 가능성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신뢰는 선언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보아도 이해상충이 없다고 믿을 수 있는 구조다. 감시자는 실제로 독립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독립적으로 보여야 한다. 영국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원류는 2010년 영국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관투자자의 무관심과 단기주의가 위기를 키웠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영국은 재무보고위원회(FRC)를 중심으로 코드의 이행력을 높여왔다. 한국도 같은 모델을 그대로 베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업계가 업계를 점검한다’는 의심을 줄일 장치는 필요하다. 자율규범이라는 이름 아래 점검이 느슨하면 시장은 냉소하고, 정부 입김이 과도하면 기업과 기관투자자는 정치적 압박으로 받아들인다. 반민반관형 독립기구, 외부 전문가 중심의 평가위원회, 이해상충 공개 의무 같은 보완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ESG와 공동관여 활동도 신중해야 한다. ESG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지만,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과 무관한 정치적 구호로 흐르면 책임투자는 방향을 잃는다. 여러 기관투자자가 함께 기업과 대화하는 공동관여도 영향력을 키울 수 있지만, 특정 기업을 압박하는 집단행동처럼 비치면 시장의 자율성과 경영 판단을 위축시킬 수 있다. 주주권 행사는 강해야 하지만 무리해서는 안 된다. 자본시장 개혁은 칼보다 저울에 가까워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은 한국 자본시장에 필요한 수술이다.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주권을 정상화하며, 기관투자자의 책임을 실질화하는 방향은 맞다. 특히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 미만 기업이 여전히 절반 안팎에 이르는 현실에서 기관투자자의 침묵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시장은 이제 ‘착한 기관’이 아니라 ‘책임 있는 기관’을 요구한다. 다만 제도의 성패는 문구가 아니라 집행에 달려 있다. 보고서를 의무화해도 내용이 부실하면 또 하나의 서류 행정이 된다. ESG를 넣어도 평가 기준이 모호하면 ESG 워싱만 키운다. 점검 체계를 만들어도 감시자가 독립적이지 않으면 시장은 믿지 않는다. 기관투자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면 그 책임을 점검하는 사람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10년의 과제는 분명하다. 침묵하는 기관을 깨우는 것, 그리고 그 기관을 감시하는 눈까지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둘이 함께 갈 때 한국 증시는 숫자의 상승을 넘어 신뢰의 상승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26-06-22 14: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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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8000시대…이제 다음을 준비하자
[경제일보] 코스피 8000시대가 열렸다. 숫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시장의 공기는 달라졌다. 5000선 돌파 때는 기대가 앞섰고, 6000선에서는 의심과 환호가 엇갈렸다. 7000선을 지나 8000선을 넘자 이제 다른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 오를 것인가’가 아니라 ‘이 상승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가 2026년 5월 26일 종가 기준 사상 처음 8000선을 돌파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55% 오른 8047.51에 마감했고, 삼성전자는 2.22%, SK하이닉스는 5.72% 상승했다. 다음 날에도 반도체 대형주는 신고가 행진을 이어갔다. 5월 27일 SK하이닉스가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섰고, 한국 코스피가 올해 들어 세계 주요 지수 가운데 가장 강한 흐름을 보였다. 이번 랠리의 주역은 단연 반도체다. 인공지능 서버, 고대역폭메모리,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다시 한국 증시의 심장부로 밀어 올렸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수출 엔진이고, 기술 주권의 방파제이며, 자본시장의 가장 강력한 실적 근거다. 주가가 오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 유동성 장세와 달리 이번 상승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익 전망 상향과 산업 슈퍼사이클이라는 실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언제나 축포 소리 속에서 다음 위험을 키운다. 로이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고, 기술주가 향후 이익 전망의 대부분을 떠받치는 구조가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 달간 코스피 상장사의 17%만 주가가 올랐고, 반도체 ‘투톱’ 쏠림이 뚜렷하다. 지수는 8000인데, 체감 수익률은 투자자마다 크게 다르다. 이것이 8000시대의 첫 번째 역설이다. 코스피 8000은 끝이 아니라 시험대다. 시장이 한 단계 더 성숙하려면 주가 상승을 제도 상승으로 연결해야 한다. 주주친화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자본시장 신뢰의 기본 조건이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이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에만 쓰이고 일반주주는 의사결정의 주변부에 머문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이름만 바꿔 다시 돌아온다. 주가가 올랐다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주가 상승은 개혁을 미룰 이유가 아니라 개혁을 완성할 기회다. 그런 점에서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 개혁은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이미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집중투표제 확대, 감사위원 분리선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은 시장의 기대를 키운 핵심 재료였다. 한국의 개정 상법이 새로 취득한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 소각하도록 해 자사주가 지배력 방어 수단으로 활용돼 온 관행을 겨냥했다. 다만 제도는 법전에 적힌 문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실질적 주주환원으로 이어지는지, 물적분할과 중복상장 과정에서 기존 주주의 이익이 보호되는지,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가 수탁자 책임을 제대로 행사하는지, 불공정거래에 대한 처벌이 시장의 공포가 될 만큼 강한지까지 봐야 한다. 자본시장 개혁은 지수를 올리는 이벤트가 아니라 시장의 습관을 바꾸는 일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수익의 다각화다. 반도체가 한국 증시의 앞문을 열었다면, 다음 방은 전력기기, 원전, 조선, 방산, 자동차, 로봇, 바이오, 금융, 콘텐츠, 인프라 기업들이 채워야 한다. AI 시대의 반도체 수요는 전력망과 냉각장치, 데이터센터, 소재·부품·장비, 보안,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어진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반도체 주가만의 축제로 끝낼 것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의 투자 기회로 넓혀야 한다. 금융권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은행 예금과 부동산에 갇혀 있던 가계 자산을 생산적 자본으로 이동시키려면 장기투자 상품, 배당형 상품, 연금계좌, ISA, 퇴직연금의 질을 높여야 한다. 개인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 급등주를 따라붙는 통로가 아니라 산업 성장의 열매를 장기적으로 나눠 갖는 구조다. 레버리지 ETF와 신용융자가 시장의 불쏘시개가 될 수는 있어도, 국민 자산 형성의 기둥이 될 수는 없다. 특히 빚투의 확산은 경계해야 한다. 최근 한국 증시 랠리가 개인투자자의 신용거래와 레버리지 상품으로 더 가팔라지고 있으며, 증거금 부채가 크게 늘었다. 거래대금이 늘고 계좌가 불어나는 것은 시장의 활력이다. 그러나 빚으로 산 주식은 작은 조정에도 큰 손실을 만든다. 상승장에서는 모두가 용감해 보이지만, 하락장에서는 레버리지가 먼저 무너진다. 정부도 시장의 환호에 취해선 안 된다. 세제 혜택, 배당소득 과세 정비, 장기투자 유인, 불공정거래 근절, 공시 투명성 강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특정 지수 목표를 앞세워 시장을 관리하려 해서는 안 된다. 시장은 방향을 제시받을 수는 있어도 끌려가서는 안 된다. 자본시장 선진화의 핵심은 정부의 손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 선명해지고, 기업과 투자자가 그 규칙을 신뢰하는 데 있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주주환원은 주가가 오를 때만 내놓는 시혜가 아니라 자본 조달의 대가다. 배당을 늘리고, 불필요한 자사주는 소각하며, 자본비용보다 낮은 수익률의 투자는 과감히 접어야 한다. 총수 일가의 지배권 방어보다 기업가치 제고가 우선이라는 원칙이 자리 잡아야 한다. 8000시대의 기업은 더 이상 ‘한국 시장이라서 이 정도면 된다’고 말할 수 없다. 글로벌 자금은 한국 기업을 삼성전자·SK하이닉스만으로 보지 않는다. 이사회, 공시, 배당, 승계, 소수주주 보호까지 함께 본다. 고전은 늘 흥분한 시대에 차가운 생명수 역할을 한다. <맹자>에는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번영의 순간에 위험을 생각하는 나라와 기업은 오래 간다. 반대로 좋은 시절이 계속될 것이라 믿는 순간, 시장은 가장 비싼 수업료를 요구한다. 코스피 8000시대에 필요한 태도는 도취가 아니라 절제다. 비관이 아니라 준비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저평가의 늪에 갇혀 있었다. 기업은 돈을 벌어도 주주는 소외됐고, 지배구조는 복잡했으며, 불공정거래 처벌은 약하다는 불신이 컸다. 이제 그 늪에서 빠져나올 기회가 왔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문을 열었고, 자본시장 개혁은 그 문을 닫히지 않게 만드는 경첩이다. 문이 열렸다고 집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코스피 8000은 한국 경제에 주어진 상장이 아니다. 숙제장이다. 첫 줄에는 반도체 경쟁력을 더 키우라고 적혀 있다. 둘째 줄에는 주주친화 정책을 되돌리지 말라고 적혀 있다. 셋째 줄에는 특정 업종 쏠림을 넘어 산업과 수익의 지평을 넓히라고 적혀 있다. 넷째 줄에는 개인투자자의 열기를 장기 자산 형성의 문화로 바꾸라고 적혀 있다. 지금 필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코스피 8000을 자축하되 8000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음 단계의 한국 자본시장은 더 높은 지수가 아니라 더 깊은 신뢰로 증명돼야 한다. 반도체가 끌어올린 시장을 제도가 떠받치고, 주주가 믿는 기업이 자금을 끌어오며, 국민의 자산이 생산적 투자로 흐를 때 비로소 코스피 8000은 일시적 기록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새 출발선이 될 것이다.
2026-05-28 1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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