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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만에 다시 3위…세종이 판을 뒤집은 방법
[경제일보] 2025년 국내 대형 로펌의 순위가 바뀌었다. 법무법인 세종은 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 기준 매출 4363억원을 기록하며 광장과 율촌을 앞섰다. 2007년 광장에 자리를 내준 뒤 19년 만에 매출 3위로 돌아왔다. 2021년 말 455명이던 변호사는 2025년 말 603명으로 늘었다. 순위 하나가 바뀐 것보다 그 과정이 더 눈에 들어온다. 한동안 세종은 대형 로펌 경쟁에서 성장 속도가 더딘 곳으로 꼽혔다. 2007년 광장에 밀렸고 2013년에는 율촌에도 뒤졌다. 최근 5년 사이 세종은 조세와 정보통신기술(TMT), 송무와 형사, 공정거래 등 필요한 분야의 사람을 공격적으로 끌어들이며 다시 선두권으로 올라왔다. 1983년 문을 연 세종은 올해로 43년째다. 처음부터 모든 분야를 갖춘 종합로펌은 아니었다. 출발점에는 증권과 금융이 있었고 성장 과정에는 몇 차례 합병이 있었다. 최근의 세종은 여기에 인재 영입이라는 승부수를 더했다. ◆ ‘증권법 1호 박사’가 만든 로펌 세종의 출발에는 신영무 변호사가 있다. 신 변호사는 판사로 법조 생활을 시작했지만 2년 만에 법복을 벗었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에서 증권법을 공부했고 미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 연수와 뉴욕 로펌 근무를 거쳤다. 국내에서 증권법을 전공한 법률가를 찾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1980년 귀국한 신 변호사는 남산합동법률사무소에 합류했다. 1983년 사무실을 광화문 교보빌딩으로 옮기면서 세종합동법률사무소가 출범했다. 당시 함께 일하던 김두식 변호사의 성을 더해 영문 이름도 지금의 ‘SHIN & KIM’으로 정착했다. 창업 초기부터 금융과 증권을 주력 분야로 잡았다. 자본시장 개방이 시작되면서 세종은 외국인전용수익증권과 코리아펀드 설립을 자문했다. 삼성전자 해외 전환사채(CB), 삼미종합특수강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삼성물산 해외 주식예탁증서(DR), 포스코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에도 관여했다. 한국 기업이 해외 자본시장으로 나가기 시작하던 때였다. 세종은 그 길목에서 금융과 증권을 다룬 경험을 쌓았다. ◆ 창업자 혼자 가져가는 로펌을 만들지 않았다 신영무 변호사가 신경 쓴 것은 사건만이 아니었다. 로펌을 누가 소유하고 어떻게 운영할지도 중요하게 봤다. 당시 국내 법률사무소 상당수는 창업자의 영향력이 강했고 젊은 변호사가 일정 기간 일한 뒤 독립하는 일도 흔했다. 신 변호사는 미국 로펌에서 경험한 파트너십을 세종에 도입했다. 연공과 성과를 배당에 함께 반영하고 지분을 가진 파트너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 운영 방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세종은 지분 파트너들의 직접 투표로 경영위원을 선출하고 현재 오종한 경영대표를 비롯한 5명의 경영위원이 주요 경영 판단에 참여한다. 한 명의 창업자나 대표에게 경영권을 집중시키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신 변호사는 2013년 세종에서 물러났다. 창업자가 조직을 떠난 뒤에도 로펌 이름과 경영체제는 그대로 유지됐다. 개인의 이름으로 시작한 법률사무소를 구성원들이 이어가는 조직으로 바꾸려 했던 초기 선택이 세대교체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 외환위기가 증권·금융 로펌을 바꿨다 1997년 외환위기는 세종에도 큰 전환점이었다.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법률시장의 일도 달라졌다. 새로운 투자와 증권 발행보다 부도와 회생, 워크아웃, 채권 회수가 급해졌다. 세종은 대농과 한일합섬, 쌍방울그룹, 미도파, 국제상사, 삼성자동차, 기아자동차, 진로 등 당시 도산 절차를 밟은 기업들의 사건에 관여했다. 대우그룹 워크아웃과 하이닉스·SK글로벌 구조조정에도 참여했다. 금융과 증권을 다루던 변호사들이 부실기업의 채권관계와 구조조정까지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세종의 기업법무 영역도 M&A와 도산, 기업분쟁으로 넓어졌다. 외환위기가 금융·증권 중심의 로펌을 종합 기업법무 쪽으로 밀어낸 셈이다. 기업의 자금조달 문제와 구조조정, 소송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자문만 잘해서는 기업 고객의 문제를 끝까지 맡기 어려웠다. 세종은 2000년대 초 송무를 크게 보강하는 선택을 했다. ◆ 국내 첫 로펌 간 합병…송무를 붙였다 2001년 1월 세종은 열린합동법률사무소와 합쳤다. 열린합동에는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지낸 황상현 당시 부장판사와 이건웅 부장판사 등 법원 출신 변호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금융과 기업자문에 강했던 세종에 송무 경험이 많은 변호사들이 대거 들어왔다. 국내 법무법인 사이에서 이뤄진 첫 합병으로 알려져 있다. 합병 뒤 세종은 김앤장에 이어 국내 2위권 종합로펌으로 몸집을 키웠다. 제조물 책임 소송 등 대형 송무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2010년에는 세종 출신 변호사들이 설립했던 에버그린을 다시 합쳐 국내외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인력을 280여명으로 늘렸다. 금융·증권이라는 기존 기반에 송무와 기업분쟁을 붙이는 작업이 계속됐다. 광장도 2001년 한미와 합병하며 기업자문과 송무를 결합했다. 세종은 합병 이후에도 금융·증권을 중심축으로 두고 송무와 기업분쟁을 계속 보강했다. 지금의 세종에는 창립기의 금융·증권과 2000년대 이후 강화한 송무가 함께 남아 있다. 다만 몸집을 키운다고 순위가 계속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 2위권에서 밀려난 뒤 길었던 정체 2000년대 초 세종은 김앤장 다음을 다투는 로펌이었다. 이후 경쟁사들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2007년 광장이 세종을 앞섰고 2013년에는 율촌에도 추월당했다. 기업법무 시장이 M&A와 공정거래, 조세, 노동, 지식재산권, 국제중재 등으로 세분화되면서 전문인력 확보 경쟁도 거세졌다. 세종은 오랫동안 상위권을 지켰지만 순위에서는 4~5위권에 머물렀다. 금융과 증권이라는 전통적인 강점만으로는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격차를 다시 벌리기 어려웠다. 변화가 빨라진 것은 2021년 오종한 대표변호사가 경영을 맡으면서부터다. 오 대표는 1989년 세종에 입사해 기업분쟁과 M&A를 맡아온 내부 출신 변호사다. 취임 이후 세종은 부족한 분야를 외부 인재 영입으로 빠르게 채우기 시작했다. 2020년 말 434명이던 세종의 변호사는 2025년 말 603명으로 늘었다. 5년 동안 169명이 증가했고 같은 기간 매출은 93% 늘었다. 대형 로펌 가운데서도 빠른 외형 확장이었다. ◆ 사람을 데려와 팀째 키웠다 세종의 최근 성장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영입 방식이다. 유명한 전관 한두 명을 데려오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세와 TMT, 공정거래, 송무·형사처럼 경쟁력이 부족했던 분야에 필요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붙였다. 조세에서는 2022년 백제흠 변호사를 영입한 뒤 인력을 확대했고 송무에는 법원 출신 변호사들을 보강했다. 방송·통신과 개인정보 분야에도 정부와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들어왔다. 결과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는 영풍·MBK 연합을 대리했고 한미약품과 콜마그룹의 경영권 분쟁에도 참여했다. 아시아나항공과 HDC현대산업개발 사이의 2500억원대 계약금 소송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을 대리해 대법원까지 승소했다. 송무와 기업분쟁에서 존재감이 커졌다. M&A에서도 대형 거래가 늘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신세계그룹의 온라인 플랫폼 합작법인 설립과 아워홈 경영권 지분 매각, 교보생명의 SBI저축은행 인수 등에 참여했다. 2026년 상반기에는 부동산·SOC 법률자문에서도 거래금액과 건수 기준 선두에 올랐다. 외부에서 데려온 인력이 기존 금융·기업자문 조직과 맞물리면서 업무 폭도 넓어졌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의 2026년 평가에서는 금융과 자본시장, 공정거래, 기업자문·M&A, 국제중재, 송무, 노동, 부동산, 조세, TMT 등 11개 분야가 최고등급인 Band 1을 받았다. 김앤장 다음으로 많은 숫자였다. 초기 금융·증권 중심의 로펌에서 여러 분야를 함께 가져가는 조직으로 업무 구성이 달라졌다. ◆ 19년 만의 3위…격차는 39억원 인재 영입은 숫자로도 나타났다. 세종은 2025년 매출 4363억원으로 전년보다 18% 성장했다. 태평양은 4402억원, 광장은 4309억원을 기록했다. 2위 태평양과 세종의 차이는 39억원, 세종과 광장의 차이는 54억원에 불과했다. 세종에는 19년 만의 3위 복귀지만 안심할 만한 격차는 아니다. 한두 건의 대형 M&A나 송무 수임만으로 순서가 바뀔 수 있다. 공격적인 인재 영입으로 몸집을 키운 만큼 새로 들어온 변호사들과 기존 조직을 얼마나 잘 묶느냐도 중요해졌다. 외형 확대 다음 단계의 문제다. 고객 평가에서는 가능성과 한계가 함께 나타난다. 2025년 한국경제·한국사내변호사회 조사에서 세종은 종합평가와 전문성에서 각각 3위, 서비스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M&A·IPO와 금융 일반, 경영자문에서는 2위였고 민사·송무와 형사·수사기관 대응, 조세·관세에서는 3위였다. 1위 김앤장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김앤장의 2025년 추정 매출은 약 1조6000억원이다. 세종을 포함한 2위권 로펌들이 4000억원대에서 치열하게 순위를 다투는 것과는 시장 규모가 다르다. 세종의 경쟁 상대는 당장 김앤장보다 태평양과 광장, 율촌 쪽에 더 가깝다. ◆ 변호사만 늘리는 경쟁은 끝나고 있다 세종도 다음 단계에서는 다른 문제를 풀어야 한다. 오종한 대표는 최근 로펌이 변호사만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회계사와 세무사, 변리사, 컨설턴트 등이 함께 일하는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세종은 방산·국방과 통상 분야에 비변호사 전문가를 늘리고 AI·디지털 경쟁법팀과 통상산업정책센터도 새로 만들었다. AI도 업무 안으로 들어왔다. 세종은 글로벌 법률 AI 서비스 ‘하비’ 사용 계정을 기존 30개에서 100개로 확대하기로 했다. 계약서 검토에 주로 사용하던 AI를 소장과 준비서면 등 송무 업무로 넓히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변호사를 더 뽑는 방식에서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쟁이 옮겨가고 있다. 60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같은 고객을 놓고 경쟁하지 않고 서로 사건을 연결하는 일도 중요하다. 영입한 스타 변호사의 개인 실적이 조직 전체의 실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매출 4000억원대에서 5000억원대로 넘어가려면 인력의 숫자뿐 아니라 협업과 생산성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 오 대표는 2026년 목표로 5000억원을 언급하면서 외형보다 조직의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법률 수요 상당 부분이 현지 로펌으로 흘러가는 한계도 직접 거론했다. 국내에서 몸집을 키우는 것과 해외에서 한국 기업의 사건을 가져오는 것은 또 다른 경쟁이다. ◆ 밀린 순위를 사람으로 되찾았다 세종의 43년에는 앞선 대형 로펌과 다른 굴곡이 있다. 신영무 변호사는 증권법을 들고 로펌을 만들었고 자본시장이 열리자 금융과 증권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기업 구조조정과 도산으로 업무를 넓혔고 송무가 부족해지자 2001년 열린합동과 합쳤다. 그 뒤 경쟁사들이 더 빨리 성장하면서 세종은 2위권에서 밀려났다. 2021년부터는 방향을 바꿨다. 부족한 분야를 하나씩 오래 키우는 대신 필요한 전문가를 외부에서 데려와 기존 조직과 묶었다. 조세와 TMT, 기업송무, 형사, 공정거래에서 사람이 늘자 사건도 따라왔다. 2025년 세종은 19년 만에 다시 3위에 올라섰다. 창업기의 무기는 증권법이었고 최근의 무기는 사람이다. 한 번 밀린 순위를 되찾는 데 19년이 걸렸다. 세종이 다시 치고 올라온 방법은 복잡하지 않았다. 부족한 곳에 사람을 넣었고 그 사람들이 가져온 사건을 조직의 일로 만들었다. 43년 전 금융과 증권에서 시작한 로펌은 이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으로 다시 순위를 올리고 있다.
2026-09-14 08: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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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가 TSMC를 닮았다고?…닛케이가 주목한 '분업의 힘'
[경제일보] "K-뷰티는 대만의 TSMC를 닮았다."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최근 한국 화장품 산업을 두고 내놓은 평가다. 처음 들으면 화장품과 반도체가 무슨 관계냐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산업 구조를 들여다보면 두 산업은 의외로 닮은 점이 많다. 한국 화장품 산업은 지난해 수출액 114억 달러를 넘어서며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K-팝과 K-드라마에 이어 K-뷰티가 한국의 대표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브랜드는 팔고, ODM은 만든다 닛케이가 주목한 것은 화장품 자체보다 산업 생태계다. 과거 화장품 기업은 제품 기획부터 연구개발(R&D), 생산, 마케팅, 유통까지 대부분 직접 담당했다. 일본의 시세이도와 가오 같은 전통 화장품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반면 한국은 역할을 과감하게 나눴다. 브랜드 기업은 제품 기획과 마케팅, 판매에 집중하고, 한국콜마·코스맥스 같은 전문 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은 연구개발과 원료 조달, 생산, 품질관리를 맡는다. 이는 반도체 산업에서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와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의 관계와 비슷하다. TSMC가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으로 성장하며 반도체 생태계를 바꿨듯, 한국의 ODM 기업들도 K-뷰티 생태계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공장 없는 화장품 회사'가 늘어난 이유 이 같은 분업 구조 덕분에 화장품 창업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브랜드를 만들려면 생산시설부터 갖춰야 했다. 하지만 제도 개선 이후 제조시설 없이도 책임판매업자로 등록할 수 있게 되면서 브랜드 창업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덕분에 소규모 스타트업도 공장을 직접 짓지 않고 ODM 기업과 협업해 제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됐다. 사업 방식도 바뀌었다.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품을 먼저 출시한 뒤 시장 반응을 확인하고, 잘 팔리는 제품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이다. 초기 투자 부담은 줄이고 성공 가능성이 확인된 제품에는 빠르게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 구조다. ODM 기업도 여러 브랜드의 주문을 동시에 생산하면서 원료를 대량 구매하고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브랜드는 브랜드대로, 제조사는 제조대로 경쟁력을 키우는 '윈윈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아마존이 만든 K-뷰티의 새 공식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도 K-뷰티 성장의 또 다른 축이다. 대표 사례가 에이피알(APR)의 메디큐브다. 메디큐브는 미국 아마존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북미 시장에서 대표 K-뷰티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코스알엑스(COSRX) 역시 아마존 스킨케어 분야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글로벌 인지도를 키웠다. 여기에 틱톡, 세포라, 울타뷰티 등 글로벌 플랫폼이 더해지면서 K-뷰티는 해외 소비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곧바로 신제품을 내놓는 구조를 갖추게 됐다. 예전에는 해외 진출을 위해 현지 유통망을 확보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면,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곧바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품질보다 생태계가 경쟁력 물론 K-뷰티를 TSMC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TSMC의 경쟁력은 초미세 반도체 공정과 막대한 설비투자, 제조 기술에 있다. 반면 K-뷰티의 강점은 빠른 제품 개발과 트렌드 대응, ODM 생태계, 디지털 마케팅이 결합된 산업 구조다. 닛케이가 말한 'TSMC형'이라는 표현도 제품이 아니라 산업의 분업 구조를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K-뷰티의 성공을 단순히 화장품 품질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브랜드는 기획과 마케팅에 집중하고, ODM은 연구개발과 제조에 집중한다. 여기에 글로벌 플랫폼이 소비자 반응을 빠르게 전달하면서 '아이디어→제품 개발→출시→시장 검증→성공 제품 확대'라는 선순환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좋은 공장을 가진 회사가 경쟁력이었다면 지금은 좋은 아이디어를 가장 빠르게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생태계가 경쟁력"이라며 "K-뷰티의 진짜 강점은 특정 기업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브랜드와 ODM 기업, 글로벌 플랫폼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 구조에 있다"고 말했다. 결국 K-뷰티의 경쟁력은 '잘 만드는 기술'만이 아니다. 시장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읽고, 가장 빠르게 제품으로 구현해 세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생태계 자체가 한국 화장품 산업의 가장 큰 무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2026-08-09 0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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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넘어 헬스케어로"…한국콜마, 제약·바이오 축으로 몸집 키운다
[경제일보] 한국콜마가 화장품 위탁개발생산(ODM)에 머무르지 않고 제약·바이오를 중심으로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콜마는 2018년 4월 HK이노엔을 인수한 이후 전문의약품, 헬스앤뷰티, 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너지를 확대해 왔다. 최근에는 신약 개발 성과와 뷰티테크 기술력이 잇따라 가시화되면서 기존 화장품 중심 기업 이미지를 벗고 종합 헬스케어 기업으로 전환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도 꾸준하다. 한국콜마는 매년 매출의 약 5%를 연구개발(R&D)에 투입하고 있으며 매출 대비 R&D 비중은 2024년 5.57%, 2025년 5.58%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의 핵심 축은 자회사 HK이노엔이다. 특히 HK이노엔이 개발한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은 미국 시장 진출 가능성을 높이며 주목받고 있다. 미국 파트너사 세벨라는 테고프라잔의 3상 임상시험 ‘트라이엄프(TRIUMpH)’에서 유의미한 치료 효과를 확인했으며 이에 따라 케이캡의 글로벌 확장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는 한국콜마의 중장기 실적 개선 기대를 높이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HK이노엔은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면역, 비만, 만성질환, 암·감염 등 다양한 분야의 신약과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 판교에 구축한 ‘HK이노엔 스퀘어’에는 연구 인력이 집결해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HK이노엔은 지난해 한국콜마 연결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며 그룹 실적을 견인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연구개발 인프라도 다각화 전략을 뒷받침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은 화장품,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연구소를 통합한 융합 연구 거점으로 약 700명의 연구 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이곳에서 개발된 기술은 세종·부천 공장을 비롯해 중국, 미국, 캐나다 등 글로벌 생산기지에 적용되고 있다. 뷰티테크 분야에서도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합기술원을 방문해 한국콜마의 인공지능 피부진단 기기 ‘카이옴’을 직접 체험했다. 앞서 한국콜마는 CES 2026에서 AI 기반 ‘스카 뷰티 디바이스’로 뷰티테크 부문 최고혁신상과 디지털헬스 부문 혁신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이 같은 사업 다각화는 실적 개선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콜마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789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고 지난해에는 연간 영업이익 2396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업 규모 확대에 따라 지난 4월에는 콜마그룹이 화장품 ODM 기업 최초로 공정거래위원회 대규모기업집단에 지정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한국콜마가 화장품 제조 기술과 제약·바이오 개발 역량을 결합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신약 파이프라인 확대와 뷰티테크 융합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6-08-07 1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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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마 경영권 분쟁 봉합…윤상현 체제, 이제 성과로 답할 때
[경제일보] 국내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대표 기업인 콜마그룹이 1년여간 이어진 오너가 경영권 분쟁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창업주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장남 윤상현 콜마홀딩스 부회장을 상대로 낸 주식반환 청구소송을 취하하면서다. 표면적으로는 가족 간 법정 다툼의 종결이다. 그러나 산업계가 주목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콜마그룹이 윤상현 체제를 확정한 뒤 북미 시장 확대와 건강기능식품 사업 재정비라는 숙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윤 회장은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에 윤 부회장을 상대로 낸 주식반환 청구소송 취하서를 제출했다. 윤 부회장 측도 소 취하에 동의하면서 증여 주식을 둘러싼 부자 간 법정 다툼은 법원 판단 없이 끝났다. 윤 부회장은 콜마홀딩스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오너 일가 내부의 지분 갈등이 회사 경영의 불확실성으로 번지는 국면은 일단 정리됐다. 이번 분쟁의 출발점은 콜마비앤에이치였다. 윤 부회장은 지난해 4월 동생 윤여원 대표가 이끌던 건강기능식품 계열사 콜마비앤에이치의 실적 부진을 이유로 임시주주총회 소집허가를 신청했다. 자신과 이승화 전 CJ제일제당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해 경영을 재편하겠다는 취지였다. 윤 대표 측은 이를 경영권 개입으로 받아들였고 윤 회장이 딸의 편에 서면서 남매 갈등은 부자 갈등으로 번졌다. 윤 회장이 제기한 주식반환 소송은 그 상징적 장면이었다. 윤 회장은 윤 부회장이 합의된 승계 구도를 흔들었다고 보고 2019년 12월 증여한 콜마홀딩스 지분 반환을 요구했다. 콜마그룹 내부 갈등은 특정 계열사의 대표이사 자리를 둘러싼 문제가 아니었다. 지주회사 지분과 핵심 계열사 경영권, 창업주가 설계한 승계 방식이 한꺼번에 충돌한 사건이었다. 분수령은 지난해 9월 콜마비앤에이치 임시주총이었다. 윤상현 부회장과 이승화 전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이 통과되면서 윤 부회장 측은 콜마비앤에이치 이사회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윤 부회장이 요구했던 경영 개입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후 콜마비앤에이치는 윤여원 단독 대표 체제에서 윤상현·윤여원·이승화 각자대표 체제로 바뀌었다. 올해 들어서는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윤 부회장은 올 3월 말 콜마비앤에이치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윤여원 대표도 4월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사내이사직만 유지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콜마비앤에이치는 이승화 단독 대표 체제로 이동했다. 윤 부회장은 핵심 계열사의 직접 경영에서 물러나는 대신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위치를 굳혔다. 윤 대표는 콜마비앤에이치 경영 전면에서 후퇴했다. 윤 회장의 소송 취하는 이 같은 연쇄 조정의 마지막 장면에 가깝다. 창업주가 법적 분쟁을 계속 끌고 갈 경우 그룹 전체의 대외 신뢰가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콜마그룹은 올해 자산 5조원을 넘기며 처음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편입됐다. 중견기업의 경계를 넘어선 순간에 오너 일가 분쟁이 계속되는 것은 투자자와 거래처, 해외 고객사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콜마그룹에 올해 대기업집단 지정은 성장의 훈장인 동시에 새로운 관리 부담이다. 공시 의무가 강화되고 내부거래와 사익편취 규제에 대한 감시도 높아진다. 윤 부회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된 것은 그의 실질 지배력이 제도적으로 확인됐다는 뜻이다. 동시에 그룹 경영 성과와 지배질서에 대한 책임도 윤 부회장에게 집중된다는 의미다. 윤상현 체제의 성적표가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 윤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2019년 이후 콜마그룹은 외형을 키웠다. 2019년 2조2345억원 수준이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3조4912억원으로 늘었다. 자산도 4조423억원에서 5조2429억원 규모로 증가했다. 창업주 윤동한 회장이 1990년 직원 4명으로 시작한 회사를 국내 화장품 ODM 기업 중 처음 대기업집단 반열에 올려놓은 데는 K뷰티 성장세와 윤상현 체제의 확장 전략이 맞물린 영향이 컸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콜마그룹의 본업인 화장품 ODM은 글로벌 고객사 확보와 현지 생산망 경쟁이 동시에 중요해졌다. K뷰티 수출이 커질수록 제조사는 납품처를 넘어 브랜드 성장의 파트너로 평가받는다. 연구개발 역량, 빠른 제품화, 현지 규제 대응, 납기 안정성이 경쟁력을 가른다. 콜마가 북미 생산기지를 확대한 것도 이런 시장 변화와 맞닿아 있다. 한국콜마는 지난해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콜마USA 제2공장을 준공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제2공장은 연면적 1만7805㎡ 규모로 연간 약 1억2000만개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기존 1공장과 합치면 미국에서만 연간 약 3억개, 캐나다 법인을 포함하면 북미 전체 기준 연간 약 4억7000만개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회사는 이를 북미 ODM 기업 중 최대 규모라고 설명한다. 북미 생산기지는 윤상현 체제의 핵심 승부처다. 미국은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이다. 동시에 관세와 물류비, 현지 규제, 고객사 대응 속도가 기업 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주는 시장이다. 콜마가 미국 현지에서 기초 스킨케어와 선케어 제품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은 K뷰티 브랜드와 글로벌 고객사를 동시에 끌어들일 수 있는 기반이다. 다만 생산능력 확대가 곧바로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비 투자 이후 가동률을 얼마나 빨리 끌어올리는지가 관건이다. 건강기능식품 사업도 윤 부회장에게 남은 숙제다. 이번 경영권 분쟁의 출발점이 콜마비앤에이치였다는 점에서 이 회사의 실적 회복은 상징성이 크다. 콜마비앤에이치는 한때 그룹 신사업의 핵심 축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실적 부진과 경영진 교체 논란이 겹치면서 그룹 내 갈등의 진원지가 됐다. 이승화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된 뒤 제품 경쟁력과 영업망, 수익성 회복을 얼마나 빠르게 보여줄지가 중요하다. 윤 부회장 체제는 창업주가 만들어 놓은 연구개발 중심 제조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제약과 건기식, 해외 ODM을 동시에 키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확장보다 사업별 수익성을 점검하는 경영이 요구된다. 대기업집단 편입 이후에는 내부거래와 계열사 지원 방식도 이전보다 더 정교해야 한다. 규모가 커질수록 가족기업 방식의 의사결정은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번 분쟁 종식은 콜마그룹에 기회다. 법정 다툼이 끝나면서 지분과 경영권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줄었다. 해외 고객사와 투자자에게도 긍정적 신호가 될 수 있다. 창업주의 결단은 그룹이 가족 간 대립보다 회사의 장기 성장을 우선했다는 메시지를 줄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분쟁이 남긴 상처는 실적과 지배질서 개선으로만 회복된다. 윤상현 부회장은 이제 오너 일가 갈등의 승자가 아니라 대기업집단 총수로 평가받게 됐다. 북미 공장은 매출과 이익으로 증명해야 하고 콜마비앤에이치는 분쟁의 무대에서 성장의 축으로 돌아와야 한다. 제약과 건기식 투자는 구호가 아니라 숫자로 확인돼야 한다. 콜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끝났지만 윤상현 체제의 검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26-05-29 09: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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