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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장관 청문회, 이게 제대로 된 인사검증인가
[경제일보] 국회가 15일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김승원 법무부 장관, 이소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동시에 연다. 경제정책과 사법행정, 중소기업·벤처정책을 책임질 세 장관 후보자가 같은 날 국회의 검증대에 오르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전날 김성수 대법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16일 국방부·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18일 특별감찰관 후보자 청문회까지 이어진다. 말 그대로 ‘인사청문 슈퍼위크’다. 문제는 청문회가 많다는 데 있지 않다. 하루에 장관 후보자 세 명을 동시에 검증하는 방식으로 국민이 원하는 제대로 된 인사검증이 가능하느냐는 것이다. 세 후보자에게는 각각 검증해야 할 쟁점이 적지 않다. 이형일 후보자는 부동산 문제와 미래대응기금·세제개편 등 경제정책, 김승원 후보자는 신약 관련 청탁 의혹과 형사사법체계 개편, 이소영 후보자는 부동산·용역계약 논란과 중소기업 정책 전문성 등이 청문회 쟁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청문회가 이런 의혹을 확인하는 데만 그쳐서도 안 된다. 경제부총리 후보자에게는 고유가와 금융시장 불안, 재정 운용과 부동산·세제 정책을 물어야 한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는 형사사법체계 개편과 검찰·경찰 관계, 법치주의와 정치적 중립에 대한 철학을 확인해야 한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에게는 소상공인 부채와 벤처투자, 창업 생태계와 중소기업 경쟁력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따져야 한다. 장관 청문회의 본질은 과거의 흠결을 찾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맡길 능력과 판단력을 검증하는 데 있다. 세 청문회는 각각 다른 상임위원회에서 진행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청문회가 같은 날 몰리면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 국민의 관심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한 후보자의 중요한 정책 답변이나 새로운 의혹이 다른 청문회의 정치적 공방에 묻힐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자극적인 한두 장면이나 여야 충돌만 부각되고 정작 정책과 자질에 대한 깊이 있는 검증은 뒷전으로 밀릴 우려가 있다. 인사청문회의 목적은 흠을 많이 찾는 것이 아니라 적임자인지를 제대로 가려내는 데 있다. 증인 채택을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도 문제다. 이번 청문회를 앞두고도 야당은 다수의 증인 채택을 요구했고 여당은 정치공세라며 맞섰다. 증인을 무더기로 불러 세우는 것도 문제지만 필요한 증인마저 정쟁 때문에 부르지 못한다면 청문회는 후보자의 일방적인 해명만 듣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증인은 여당이 후보자를 보호하거나 야당이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과 정책적 판단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이어야 한다. 자료 제출을 둘러싼 공방도 달라져야 한다. 청문회 때마다 야당은 후보자가 핵심 자료를 내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후보자 측은 개인정보나 자료 부존재 등을 이유로 맞서는 일이 반복된다. 청문회 당일 새로운 자료를 들이밀고 즉답을 요구하는 방식만으로도 제대로 된 검증은 어렵다. 후보자가 제출해야 할 자료의 범위와 기한을 보다 명확히 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핵심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책임을 묻는 장치가 필요하다. 국회 역시 검증과 직접 관계없는 가족의 사생활이나 정치적 공격을 위한 자료까지 무차별적으로 요구하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 자료 제출을 놓고 며칠씩 싸우다 정작 정책 검증 시간을 잃는다면 청문제도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도덕성 검증과 정책 검증의 균형도 되찾아야 한다. 장관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재산 형성 과정과 이해충돌, 법 위반 여부, 공직 윤리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 그러나 도덕성 검증이 정책 검증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흠결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것과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사람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후보자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만이 아니라 장관이 된 뒤 무엇을 할 사람인지다. 우리 인사청문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장면을 되풀이해 왔다. 여당은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야당은 어떻게든 낙마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일이 적지 않았다.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까지 후보자의 능력보다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반복됐다. 이래서는 청문회가 고위공직자를 검증하는 제도가 아니라 정치적 승패를 겨루는 무대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청문회 일정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조속한 내각 구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핵심 장관 후보자들을 같은 날 한꺼번에 검증하는 것이 관행이 돼서는 곤란하다. 일정의 효율성보다 검증의 충실성이 우선이다. 최소한 경제·사법·산업처럼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부처 장관들의 청문회는 국민이 충분히 지켜보고 평가할 수 있도록 일정을 분산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를 국회가 ‘통과시켜 주는’ 절차가 아니다. 야당이 후보자를 흠집 내는 정치무대도 아니다. 국민을 대신해 고위공직자의 도덕성과 전문성, 정책 역량을 확인하는 국회의 중요한 견제 장치다. 오늘 세 청문회에서 여야가 누구를 더 몰아붙였고 누가 더 잘 방어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세 후보자가 경제부총리와 법무부 장관, 중기부 장관으로서 어떤 원칙과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루에 장관 세 명을 불러놓고 몇 시간씩 공방을 벌인 뒤 ‘청문회를 했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인사청문회의 성패는 몇 명을 통과시키고 몇 명을 낙마시켰느냐가 아니라, 국민이 그 사람에게 국가의 중요한 권한을 맡겨도 되는지를 얼마나 제대로 밝혀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2026-09-15 09: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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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감찰관 순기능이 크다면 그 길을 가야 한다
[경제일보] 권력은 스스로를 감시할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그 점에서 특별감찰관 제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 권력 핵심을 상시적으로 감찰하는 장치는 권력의 오만을 제어하고 국정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가까이 특별감찰관이 공석으로 방치된 현실은 우리 정치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대통령이 다시금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을 국회에 요청한 것은 늦었지만 의미 있는 행보다. 반복된 요청 자체가 이 제도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방증한다. 과거 국정농단 사태나 권력 주변의 사적 영향력 논란은 감시 장치 부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미 경험으로 확인된 바 있다. 권력은 견제받지 않을 때 반드시 균열이 생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럼에도 절차가 지연되는 원인은 분명하다. 첫째, 정치적 이해관계다. 특별감찰관은 권력 핵심을 겨누는 자리인 만큼 어느 정권, 어느 정당도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 여야 모두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행’에는 소극적인 이중적 태도를 보여왔다. 둘째, 제도의 정치화다. 추천권을 쥔 국회가 정략적 셈법에 매몰되면서 제도의 본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 셋째, 책임 회피다. 서로 상대를 탓하며 시간을 끄는 사이, 결국 아무도 결단하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연은 결코 중립적 결과를 낳지 않는다. 감찰이 없는 권력은 방치된 권력이며, 방치는 곧 위험이다. 우리는 이미 ‘관리할 때’와 ‘관리하지 않을 때’의 차이를 수차례 경험했다. 완전한 제도는 없지만, 최소한의 통제 장치가 존재할 때 권력의 일탈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역기능을 이유로 기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의 태도가 아니다. 해결의 방향은 명확하다. 우선 국회는 정쟁을 중단하고 추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법이 정한 틀 안에서 기한을 설정하고, 투명한 기준에 따라 후보를 선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둘째, 대통령 역시 임명권 행사에 있어 독립성과 중립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셋째,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보완도 병행되어야 한다. 감찰 권한의 범위와 절차, 보고 체계 등을 명확히 해 정치적 논란의 여지를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 전반의 인식 전환이다. 특별감찰관은 특정 정권을 겨냥한 도구가 아니라, 어떤 권력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헌정 질서의 일부다. 이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순간 제도는 무력화되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제 선택의 문제만 남았다. 불완전하더라도 작동하는 견제 장치를 둘 것인가, 아니면 아무 장치 없이 권력의 자율에 맡길 것인가. 상식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조금이라도 순기능이 크다면 그 길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소한의 책임이며, 정치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2026-04-21 09:5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