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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 앞에서 누구의 이권을 따지고 있나
[경제일보] 국가유산청이 13일 고려시대 금속활자로 알려진 ‘증도가자’의 문화유산 지정 재심의 여부를 결정한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증도가자의 진위와 2017년 심사 과정을 다시 살펴보겠다고 밝힌 지 10개월 만이다. 증도가자가 진품으로 인정되면 우리나라 금속활자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1377년 인쇄된 직지보다 최소 138년 앞선 시기에 금속활자가 사용됐다는 사실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지가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라면 증도가자는 활자 자체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결론은 증거가 말하게 하면 된다. 진품이라는 근거가 충분하면 인정하고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기존 학설이나 전문가의 이해관계, 과거 심사의 체면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그런데 증도가자가 지난 16년 동안 겪어온 과정을 보면 그런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문이 남는다. 2010년 존재가 알려진 뒤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연대와 성분 분석이 진행됐고 문화재청이 발주한 연구도 이어졌다. 2014년 연구에서는 다보성갤러리 소장 활자 가운데 상당수가 ‘증도가’ 인출에 사용된 활자라는 결론이 나왔다. 처음 보물 지정 신청을 권유한 곳도 당시 문화재청이었다. 문화재청 관계자가 직접 소장자를 찾아가 지정 신청을 권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청이 들어온 뒤 심의에는 6년이 넘게 걸렸고 2017년에야 열린 문화재위원회에서 지정이 부결됐다. 따져야 할 것은 부결이라는 결론보다 그 과정이다. 당시 부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출처와 소장 경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장자는 일본에서 국내로 들어온 뒤 여러 사람을 거쳐 현재 소유자에게 넘어오기까지의 경위를 제시했다고 한다. 문화재 지정 신청 이후 만들어진 규정을 출처 판단에 적용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전래 유물 가운데 처음 발견된 장소와 소유 경위가 완벽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증도가자에만 유독 출처를 엄격하게 따졌다면 국가유산청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은 따로 있다. 당시 심사에 관여한 한 전문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개인이 소유한 물건을 보물로 지정해 값이 뛰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판단해야 할 사람이 소유자의 재산상 이익부터 걱정했다면 심사의 출발부터 잘못됐다. 보물 지정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소유자가 누구인지도, 지정 뒤 가격이 얼마가 되는지도 아니다. 그 유물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를 보는 것이 국가의 일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더 무거운 문제가 제기됐다. 2017년 심의를 담당했던 공무원이 활자 조판시험 결과를 보고하면서 중요한 내용을 누락하고 통계 분석을 잘못 적용해 결론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이 관련 제보를 조사한 뒤 국가유산청에 재검토를 권유했다는 내용도 국정감사 과정에서 공개됐다. 이 정도 문제가 제기됐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한다. 과학적 분석과 서지학적 근거를 다시 확인하고 기존 연구에 오류가 있었는지도 따져야 한다. 새로운 자료가 있다면 공개하고 최종 판단의 근거도 국민과 학계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내놓아야 한다. 그보다 먼저 정리할 일이 있다. 심사하는 사람이다. 2017년 심사에 관여했던 인사 가운데 일부가 지금도 국가유산위원회 관련 분과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당시 심의 실무를 맡았던 공무원도 국가유산청에 남아 있다. 과거 심사에 중대한 문제가 제기돼 다시 판단하는 자리라면 당시 판단에 관여했던 사람은 빠지는 것이 맞다. 공정성을 의심받을 사람이 다시 판단자로 들어오는 순간 재심의 의미부터 흔들린다. 법원에 제척과 기피, 회피 제도가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판단의 공정성을 믿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아예 재판에서 빠지도록 한다. 국가기관의 결정은 결과뿐 아니라 누가 어떤 절차로 결정했는지까지 신뢰를 얻어야 한다. 문화유산 심사라고 다를 까닭이 없다. 감사원 조사와 국정감사에서 과거 심사 과정의 문제까지 제기된 사안이다. 당시 관계자들이 다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이번에 어떤 결론을 내놓더라도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증도가자를 둘러싸고는 학계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오래 따라다녔다. 직지 연구로 명성을 쌓은 일부 전문가들이 증도가자가 인정될 경우 자신들의 연구 성과나 학계에서의 권위가 흔들리는 것을 우려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어떤 학자가 평생 직지를 연구했든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것이 학문이다. 기존 연구를 지키려고 새로운 자료를 밀어낸다면 학문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이 된다. 역사 앞에서 학자의 권위가 기득권이 돼서는 안 된다. 수십 년 동안 통설로 받아들여진 학설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바뀔 수 있다. 학문의 권위는 과거의 결론을 끝까지 지키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을 고칠 수 있을 때 생긴다. 공무원 조직의 체면도 역사보다 앞설 수 없다. 2017년 판단이 잘못됐다면 지금 고치면 된다. 잘못된 결론을 지키는 것이 조직의 체면을 세우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지키려고 역사적 판단까지 붙들고 있었느냐는 질문만 남긴다. 이 문제는 국익과도 맞닿아 있다. 증도가자가 실제 13세기 고려 금속활자라면 그 가치는 소장자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세계 인쇄문화사에서 얼마나 앞선 기술을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우리 문화유산의 국제적 위상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 가능성이 있는 유물을 두고 개인의 이해관계와 학계의 체면부터 계산한다면 손해를 보는 쪽은 대한민국이다. 역사 앞에서 사익을 먼저 따지는 순간 국익은 뒷전으로 밀린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제 그 말을 절차로 보여줘야 한다. 과거 심사에 문제가 있었다면 당시 관계자를 빼고 새로운 전문가들에게 판단을 맡기면 된다. 누구의 이권도, 학문적 자존심도, 관료 조직의 체면도 걷어내야 한다. 남겨야 할 것은 증거와 사실뿐이다. 역사는 어느 학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느 공무원이 지켜야 할 과거의 결재 서류도 아니다. 증도가자가 진짜라면 대한민국의 역사로 인정하면 되고 아니라면 누구나 납득할 근거를 대면 된다. 국가유산청이 이번에 지켜야 할 것은 2017년의 결론이 아니다. 역사 앞에서 국가기관이 가져야 할 신뢰다.
2026-08-12 07:53:27
세운4구역 재개발 갈등 재점화…주민들 "국가유산청 행정폭주" 반발
[경제일보] 서울 도심 재개발 핵심 사업지 가운데 하나인 세운4구역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격화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이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먼저 진행하라고 요구하자 주민들이 “법적 근거 없는 행정 개입”이라며 공개 반발에 나선 것이다. 사업시행계획 변경 인가만 남겨둔 상황에서 인허가 지연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재개발 추진에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14일 세운4구역 주민대표회의는 서울 종묘 맞은편 세운상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유산청의 세계유산영향평가 요구 철회를 촉구했다. 주민대표회의는 “세운4구역은 이미 서울시 재정비촉진계획 변경 고시와 통합심의를 모두 거친 상태로 사업시행계획 변경 인가만 남겨두고 있다”며 “법률상 의무가 없는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강제하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유산 보호구역 바깥 지역까지 영향평가를 강제하며 서울시와 종로구의 인허가 자치권을 방해하는 것은 행정 신뢰성을 훼손하는 ‘행정 폭주’”라며 “불법적인 인허가 항해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주민들은 허민 국가유산청장의 사퇴도 요구했다. 대표회의는 “법률에 없는 절차를 사실상 강제하고 이를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며 “법치주의 근간을 파괴한 허 청장은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주민대표회의는 국가유산청이 언급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공문 원문 공개도 요구했다. 앞서 허 청장은 지난 3월 기자회견에서 세계유산센터가 보낸 서한을 공개하며 서울시가 영향평가 실시 여부를 회신하지 않을 경우 세계유산위원회 차원의 보존 의제 상정이나 현장 실사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설명한 바 있다. 세운4구역은 서울 도심 재개발 사업 가운데서도 상징성이 큰 지역으로 꼽힌다. 다만 오랜 기간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개발 속도가 더뎠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에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먼저 진행한 뒤 사업을 추진하라는 내용의 이행 명령을 내린 상태다. 업계에서는 향후 행정소송이나 인허가 지연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갈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026-05-14 17:13:26
종묘 앞 세운4구역 해법 찾기…개발과 보존 사이 기준을 세울 때
[경제일보]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 앞 세운4구역 개발 갈등이 길어지고 있다. 서울 도심 재생과 문화유산 보존이 맞부딪힌 이 사안에서 국가유산청은 다시 “개발을 막자는 것이 아니라 개발과 보존이 공존할 기준을 만들자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놨다. 이번 논쟁은 특정 사업장의 인허가 다툼을 넘어 역사도시 서울이 앞으로 어떤 원칙으로 성장할 것인가를 묻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21일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최근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두고 사업 지연을 부르는 규제가 아니라 갈등 비용을 줄이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사업 초기 단계부터 유산 가치 훼손 가능성을 점검하고 설계를 조정하면 착공 직전 충돌이나 소송으로 번지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뒤늦은 충돌보다 사전 조정이 더 빠른 길이라는 판단이다. 세운4구역은 서울 도심 한복판 노후 지역 정비사업이다. 서울시는 주거와 업무 기능을 확충하고 낙후 지역을 정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가유산청은 종묘의 경관과 역사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쟁점은 단순한 건물 높이나 용적률이 아니다. 세계유산 주변 공간을 어디까지 개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 설정 문제다. 종묘는 조선 왕실 제례 문화가 집약된 상징 공간이다. 건축물 자체뿐 아니라 주변 조망과 공간감, 역사적 맥락까지 함께 보존 가치로 평가받는다. 세계유산은 담장 안 문화재만 지키면 끝나는 자산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주변 개발은 늘 민감한 논쟁거리가 된다. 세계유산영향평가는 대형 개발사업이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전에 검토하는 절차다. 환경영향평가처럼 문제가 발생한 뒤 제동을 거는 방식이 아니라 착공 전 위험 요소를 확인하고 대안을 찾는 예방적 성격이 강하다. 국가유산청은 미리 협의하면 사업 기간 전체로 보면 오히려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서울시는 별도 규제가 추가되면 사업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결국 핵심은 평가 자체보다 그 기준을 얼마나 일관되게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허 청장이 협의 모델로 제시한 사례는 태릉CC 개발이다. 국토교통부와 LH가 추진하는 주택공급 사업도 문화유산 이슈가 얽혀 있지만 초기부터 영향평가 절차를 병행하며 조정에 들어갔다. 국가유산청은 이런 방식이라면 개발과 보존을 함께 추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세운4구역 역시 승인 이후 충돌하는 방식이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기준을 맞추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운4구역 논의가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 합의 여부는 향후 한양의 수도성곽 등 다른 세계유산 주변 개발에도 선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 번 기준이 정리되면 이후 사업자와 주민도 허용 범위와 보완 조건을 예측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줄어들면 사업 일정과 자금 조달 부담도 덜 수 있다. 남은 쟁점은 세 가지다. 첫째는 권한 문제다. 세계유산영향평가 결과가 행정 절차에서 어느 정도 효력을 갖는지 정리가 필요하다. 둘째는 시간 문제다. 주민과 사업자는 지연 비용을 우려하고 유산 당국은 졸속 추진의 후과를 우려한다. 셋째는 도시 철학의 문제다. 서울 중심부를 고밀 개발 위주로 키울 것인지 역사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성장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세운4구역 갈등을 개발과 보존의 대결로만 보면 해법은 멀어진다. 도시는 변화해야 하고 유산은 지켜져야 한다. 어느 한쪽만 앞세우면 또 다른 비용을 치르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기준이다. 종묘 앞에서 합리적 원칙을 세운다면 서울의 다음 갈등은 훨씬 덜 거칠게 풀릴 수 있다.
2026-04-21 10: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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