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허진호 감독이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에 입을 열었다. 배우와 스태프가 열심히 만들었는데 작품이 폄하되고 있다며 “배우들도 다들 힘들어한다”고 했다. 출연 배우들에게 역사 왜곡 논란의 프레임이 씌워지고 있다는 말도 했다.
배우들이 힘든 것은 이해할 만하다. 출연한 영화 때문에 개인 SNS와 광고 영상에까지 항의가 쏟아지면 괴로울 것이다. 실제 유해진이 출연한 일부 광고 영상은 댓글 기능이 제한됐고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리뷰 영상도 비공개로 전환됐다.
하지만 배우들이 힘들다는 말이 지금 벌어진 논란에 대한 답은 아니다. ‘암살자(들)’은 완전히 만들어낸 사람과 사건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삼아 그날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한다.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고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한 것도 아니라고 밝혔다. 허 감독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 여사를 죽이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했다.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설명이다.
영화에는 허구와 상상력이 허용된다. 역사적 사건에 다른 시각을 내놓고 기존 기록에 의문을 던지는 것도 창작의 영역이다. 그 자유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실존 인물의 실제 죽음을 소재로 삼았다는 데 있다. 등장인물에게 실제 이름이 있고 그 죽음을 기억하는 가족도 살아 있다. 죽음의 배후를 다루는 이야기는 고인의 명예뿐 아니라 남겨진 가족의 기억까지 건드릴 수밖에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는 이 문제와 떼어놓고 봐야 한다. 그의 집권과 정치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 평가의 영역이다.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와 육영수 여사의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육 여사의 죽음을 다시 영화로 불러냈다면 유가족이 영화의 장면과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생각했어야 한다. 어느 자식에게 자기 어머니가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은 영화가 끝나면 함께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50여 년이 흘렀다고 가족에게까지 그 죽음이 단순한 영화 소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배우 역시 이 논란에서 완전히 비켜서 있기는 어렵다. 배우는 대본과 역할을 검토하고 출연을 결정한다. 역사 검증의 최종 책임을 배우에게 물을 수는 없지만 자신이 선택한 작품에 대한 평가까지 피할 수는 없다.
선을 넘는 공격은 다른 문제다. 욕설과 협박, 가족이나 사생활을 겨냥한 공격은 비판이라고 할 수 없다. 작품과 관계없는 곳까지 찾아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행동도 마찬가지다.
그런 공격과 작품 선택에 대한 비판은 구분해야 한다. 배우가 힘들다는 사정만으로 작품과 출연 결정에 대한 비판까지 악성 댓글로 묶을 수는 없다.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면 관객이 그 선택을 묻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법은 또 다른 기준을 둔다. 형법 제308조는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해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를 처벌한다. 이 영화가 그 요건에 해당하는지는 영화 속 구체적인 표현을 놓고 판단할 문제다.
법에 걸리느냐만으로 이 논란을 설명할 수는 없다. 형사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실존 인물과 유가족을 다루는 창작자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와 창작자가 스스로 지켜야 할 선은 늘 같지 않다.
허구라는 말로 그 책임을 모두 덮을 수는 없다. 예술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실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가져다 썼다면 그 무게까지 함께 짊어져야 한다.
배우들이 힘들다고 한다. 그 말이 이 논란의 답이 될 수는 없다. 배우들의 고통을 말하기 전에 그 죽음을 평생 안고 살아온 유가족부터 생각했어야 한다.


















































![[현장] 명품 옆에 예술, 다음은 재건축…갤러리아, 압구정 명품관 새 얼굴 준비](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6/09/30/20260930152650320950_388_136.jpg)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