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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821조 풀고 한은은 금리 올린다…한국경제 어디로 가나
[경제일보] 내년 나라살림 규모가 821조원에 이른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7년도 예산안은 올해보다 12.8%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청년, 국방·미래산업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호황 등에 힘입어 세수가 크게 늘면서 정부는 미래투자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같은 시기 한국은행은 반대 방향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27일 기준금리를 2.75%에서 3.00%로 올렸다. 수출 호조와 내수 회복으로 성장세가 예상보다 강한 데다 물가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웃돌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등 금융안정 위험에도 계속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금리 인상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물론 금리 결정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독립적 권한이다. 대통령이 금리의 방향을 미리 제시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발언은 중앙은행 독립성 측면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다만 지금 한국경제가 확장재정과 긴축통화를 동시에 요구받는 복잡한 상황에 놓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겉으로 보면 모순처럼 보인다. 정부는 821조원의 재정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고 미래산업에 투자한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려 소비와 대출, 투자 등 총수요와 신용 팽창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쪽에서는 액셀을 밟고 다른 쪽에서는 브레이크를 밟는 모양새다. 하지만 재정 확대와 금리 인상이 항상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어디에 돈을 쓰느냐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인프라, 전력망, 연구개발, 인재 양성처럼 경제의 공급능력을 높이는 분야에 투자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런 지출은 단기적으로 수요를 늘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생산성과 공급능력을 높여 물가 압력을 완화하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반대로 현금성 지원과 소비 진작, 효과가 불분명한 지역 사업처럼 즉각적인 수요를 키우는 지출이 대규모로 늘어난다면 한국은행의 긴축 효과와 충돌할 수 있다. 정부가 재정으로 수요를 끌어올리고 중앙은행은 금리로 이를 억제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결국 821조원이라는 총액보다 구성표를 봐야 한다. 정부는 이번 예산을 ‘생산적 재정’이라고 설명한다. 그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미래투자와 소비성 지출을 명확히 구분해 보여줘야 한다. AI와 반도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모두 생산적 투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 지원이 민간투자를 끌어냈는지, 기술 경쟁력을 높였는지,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들었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 더구나 지금 물가 상황도 편하지 않다.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보다 3.1% 올랐다. 휴대전화 요금의 기저효과라는 일회성 요인이 크게 작용했지만 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3.4% 상승했다. 국제유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물가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기 어렵다. 세계 금리 환경도 달라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의 장기 국채금리가 함께 상승하면서 정부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재정 상황, 국채 공급 확대, 에너지 가격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국만 저금리 환경으로 쉽게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까지 빠르게 팽창하면 통화정책의 부담이 커질 위험이 있다. 정부 지출 확대가 총수요와 물가를 추가로 자극한다면 한국은행이 높은 금리를 더 오래 유지하거나 추가 인상을 검토해야 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 비용은 가계와 기업이 먼저 체감한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이자가 높아지고 자영업자의 금융비용도 늘어난다. 기업은 설비투자를 할 때 더 높은 자금조달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정부가 재정을 확대해 경기와 투자를 살리려는데 높은 금리가 민간의 투자와 소비를 누르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지난 6월 말 가계신용이 2019조8000억원에 달한 한국에서는 금리 상승이 가계의 이자 부담과 소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수 있다. 재정이 만들어내는 경기 부양 효과의 상당 부분이 가계의 이자 부담 증가로 상쇄되는 상황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정책 효과가 충돌하지 않도록 조율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같은 방향으로만 움직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통화정책은 물가와 금융안정을 보고 움직이고, 재정은 성장잠재력과 사회적 필요까지 고려한다. 역할이 다르다. 문제는 서로의 정책 효과를 무력화할 정도로 강도가 엇갈릴 때다. 정부가 할 일은 명확하다. 재정 확대를 선택한다면 공급능력을 늘리는 투자에 더 집중해야 한다. AI·반도체·전력망·국방기술·연구개발처럼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분야에는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다. 대신 단순 소비성 지출과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지원사업은 줄이는 편이 맞다. 기존 사업 구조조정도 함께 가야 한다. 총지출이 12.8% 늘어난 상황에서 정부가 정말 불요불급한 사업을 얼마나 덜어냈는지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새 사업은 늘리고 기존 사업은 그대로 남겨둔다면 ‘생산적 재정’은 결국 확장재정을 포장하는 이름으로 끝날 수 있다. 한국은행 역시 금리 인상의 속도를 세밀하게 조절해야 한다. 7월과 8월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린 만큼 물가와 가계대출, 부동산시장뿐 아니라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도 함께 살펴볼 시점이다. 또 하나 짚을 것은 대통령의 역할이다. 정부는 재정과 산업정책을 책임지고, 금리는 한국은행이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통령이 금리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언급할수록 시장은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을 받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금리 결정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은행이 물가를 안정시키는 동안 재정정책이 불필요하게 물가를 자극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821조원 예산과 3% 기준금리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경제 상황에 따라 이런 정책 조합이 필요할 수도 있다. 관건은 821조원이 어디로 가느냐다. 생산성을 높이고 민간투자를 끌어내는 지출이라면 높은 금리의 부담을 이겨내며 한국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자산이 될 수 있다. 반면 소비와 단기 부양에 재정이 집중되면 금리 인상 압력을 키우고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을 높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경제정책은 액셀과 브레이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둘을 함께 써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운전자가 어디로 가려는지 분명히 알고 두 장치를 정교하게 조절하는 일이다. 지금 한국경제가 확인해야 할 것도 바로 그것이다. 821조원을 쓰면서 물가는 잡고 성장잠재력은 높이며 가계와 기업의 금융 부담까지 관리할 수 있느냐다. 확장재정과 긴축통화의 동시 운용이 성공하려면 돈의 규모보다 쓰임새, 금리의 수준보다 정책 간 조율이 먼저다.
2026-09-02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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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68.7% 증가, 숫자가 너무 좋아서 더 걱정되는 이유
[경제일보] 숫자만 보면 한국 경제는 눈부시다. 8월 수출이 982억5000만달러다. 1년 전보다 68.7% 늘었다. 역대 월간 수출 3위다. 6월과 7월에 이어 석 달 연속 900억달러를 넘겼다. 무역수지는 347억5000만달러 흑자다. 더 놀라운 것은 반도체다. 466억5000만달러를 팔았다. 1년 전보다 209% 늘었다. 역대 최대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이 한국의 반도체 공장을 거대한 수출 기계로 만들고 있다. 컴퓨터 수출도 419.5% 뛰었다. 정부가 경기를 낙관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제조업의 생산과 설비투자는 살아 있고 수출은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숫자가 국민의 장바구니에도 반영되고 있는지 잘 봐야한다. 최근 발표된 7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답은 간단하지 않다.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2.4% 줄었다.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해도 0.8% 감소했다. 서비스업 생산은 전월보다 1.3% 감소했다. 설비투자만 7.5% 늘었다. 기업이 생산시설에는 돈을 쓰는데 소비자는 지갑을 닫는 모습이다. 더 불편한 숫자도 있다. 6월 말 가계신용은 2019조8000억원이다.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섰다. 한 분기 만에 25조9000억원이 늘었다. 집을 사기 위한 돈도, 생활과 투자를 위한 대출도 함께 증가했다. 수출이 잘되는데 소비는 왜 힘든가. 한국 경제의 오래된 병이다. 수출과 내수가 서로 다른 경제처럼 움직인다. 반도체와 대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번 돈으로 성장하지만, 그 돈이 국내 서비스업과 자영업, 가계소득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연결고리는 약하다. 특히 이번 수출 증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반도체가 전체 증가분을 압도한다. 자동차는 29.8% 감소했고 선박도 45.9% 줄었다. 20대 주력 품목 가운데 14개가 증가했지만 모든 산업이 같은 속도로 좋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반도체 호황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순간 위험해진다. 지금의 수출을 끌어올리는 가장 강력한 힘은 AI다. 미국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계속되고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 한국의 수출은 더 늘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AI 투자 사이클이 꺾이거나 공급망이 재편되면 한국 경제 전체가 동시에 흔들릴 가능성도 커진다. 그래서 수출 기록을 축하하는 것과 동시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돈이 국내에서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얼마나 많은 중소기업의 매출을 늘리고, 얼마나 많은 가계의 소득으로 돌아가는지를 따져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성장률’보다 ‘성장의 전달 과정’을 봐야 한다. 수출기업이 돈을 벌었다고 국민의 삶이 자동으로 좋아지는 시대는 지났다. 대기업의 투자와 중소기업의 매출, 임금과 소비, 지역 상권이 연결되지 않으면 수출 1000억달러 시대도 일부 산업의 기록에 그칠 수 있다. 정부 역시 “수출이 좋다”는 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소비가 왜 다시 꺾였는지, 가계가 왜 빚을 늘리고 있는지, 건설과 자영업의 체감경기는 왜 회복이 더딘지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한국은행의 8월 소비자심리지수도 104.5로 전월보다 2.3포인트 떨어졌다. 경제 전체에 온기가 퍼지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출 기록을 깎아내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호황을 어떻게 내수의 회복으로 연결할 것인지 답을 찾는 일이다. 반도체가 벌어온 달러가 기업의 곳간에만 머물지 않고 투자와 임금, 협력업체의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동네 식당의 매출과 자영업자의 소득, 청년의 일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982억달러의 수출은 분명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경제에서 더 중요한 숫자는 따로 있다. 그 기록이 국민의 삶을 얼마나 바꿨느냐는 숫자다. 수출이 이렇게 좋은데도 국민이 경기를 좋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문제는 국민의 체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구조에 있는지도 모른다. 숫자가 너무 좋을 때 오히려 경제의 그늘을 더 꼼꼼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2026-09-01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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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2000조, 금리 올리면서 빚 늘리는 정책 끝내야
[경제일보] 가계부채가 결국 20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이 지난 19일 발표한 ‘2026년 2분기 가계신용’에 따르면 6월 말 가계신용 잔액은 2019조8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25조9000억원 늘었다. 증가 폭은 2021년 3분기 이후 가장 컸다. 가계대출은 1891조3000억원으로 24조9000억원 증가했고, 판매신용도 128조5000억원으로 9000억원 늘었다. 2000조원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증가 속도다. 가계부채가 줄기는커녕 다시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은 금리와 부동산, 금융정책 사이에 엇박자가 생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물가를 잡겠다며 기준금리를 올리고 다른 쪽에서는 주택시장과 실수요자를 지원한다며 금융을 풀 경우 정책 효과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2.50%에서 2.75%로 인상했다.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강화되는 가운데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판단해서다. 여기에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을 둘러싼 금융안정 위험도 여전히 크다고 봤다. 그러나 금리가 올라가는데도 가계대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면 통화정책만으로 부채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계부채의 위험은 단순히 금융기관의 건전성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대출이 늘면 금리 상승의 충격도 커진다. 특히 변동금리 대출을 많이 가진 가계와 소득이 불안정한 자영업자, 다중채무자에게 기준금리 인상은 곧바로 이자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한국은행도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취약차주 비중 상승과 일부 취약계층의 채무상환능력 저하를 위험요인으로 지적했다. 가계가 벌어들인 소득 가운데 상당 부분을 원리금 상환에 쓰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소비 감소는 자영업자 매출 감소로 이어지고 다시 내수 부진을 키운다. 가계부채는 부동산 문제가 아니라 성장과 소비, 자영업과 금융안정을 동시에 압박하는 구조적 문제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최근 주택·금융지원 정책은 더욱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와 함께 청년·신혼부부 등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지원을 강화하고, 주택 공급 촉진을 위한 금융지원도 확대하고 있다. 공급 프로젝트에 필요한 금융지원을 기존 26조3000억원에서 47조8000억원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내놓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 종합대책에서 주택공급 금융지원 확대와 함께 올해 가계부채 총량 증가율 관리 목표를 당초 1.5%에서 3% 수준으로 높였다. 확대된 대출 여력을 주택공급과 청년·실수요자 지원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려 대출 수요를 억제하는 시점에 가계부채 총량 증가 허용폭을 두 배로 넓힌 것은 시장에 엇갈린 신호를 줄 소지가 있다. 정책 목적이 다르더라도 통화·금융정책의 방향이 충돌하지 않도록 세밀한 조율이 필요하다.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향은 맞다. 서울과 수도권의 공급 부족이 장기간 이어지면 집값 불안과 대출 증가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정상적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이 일시적인 자금경색 때문에 멈추지 않도록 금융을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공급 금융과 주택 구입 금융은 구분해야 한다. 실제 주택 공급을 늘리는 PF와 건설자금은 필요한 곳에 투입하되, 가계의 주택 매수 여력을 무차별적으로 키우는 지원은 신중해야 한다. 저금리·고한도 대출이 실수요자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과도하게 확대되면 공급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매수 수요부터 자극할 수 있다. 실수요자 보호라는 명분도 정교하게 적용해야 한다. 생애 최초 구입자나 신혼부부, 청년의 주거 사다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소득과 상환능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대출 한도를 확대하는 방식이라면 결국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은 빚을 지게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집을 살 기회를 주는 것과 빚을 낼 기회를 늘리는 것은 같은 정책이 아니다. 가계부채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방향을 맞추는 일이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며 수요를 억제하는데 정부가 재정과 금융으로 주택 수요를 크게 늘린다면 한쪽은 브레이크를 밟고 다른 쪽은 가속페달을 밟는 셈이다. 결국 더 높은 금리와 더 많은 부채라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집값 안정이라는 목표 아래 공급 확대, 대출 규제, 세제 정책이 같은 방향을 가야 한다. 공급은 장기적으로 충분히 늘리되 단기적인 투기 수요와 과도한 레버리지는 누르는 것이 먼저다. 실수요자는 보호하되 주택가격 상승을 전제로 과도하게 빚을 내는 구조는 줄여 나가야 한다. 취약차주 지원도 전면적인 채무 탕감이나 이자 보전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 상환 의지가 있고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는 차주에게는 만기 조정과 장기·고정금리 전환, 재기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반면 상환능력을 넘어선 신규 대출까지 정책적으로 늘려주는 것은 문제를 미래로 미루는 데 불과하다. 가계부채 문제의 근본에는 부동산에 지나치게 집중된 한국 가계의 자산구조도 있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강할수록 가계는 미래 소득을 앞당겨 대출을 받고 주택을 산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다시 대출이 늘고 그 유동성이 집값을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고리를 끊으려면 주택 공급만으로는 부족하다. 금융자산을 통한 장기적인 자산 형성 기회를 넓히고, 전월세 시장을 안정시키며, 주거 이동이 자산투자와 동일시되는 구조도 함께 손봐야 한다. 가계부채 2000조원 돌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문제가 아니다. 저금리와 부동산 상승 기대, 대출 확대와 정책의 반복적인 완화·규제가 오랜 기간 쌓인 결과다. 어느 한 정부나 한국은행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의 선택은 다를 수 있다. 통화정책과 금융정책, 주택정책이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구조부터 끝내야 한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면 정부도 불필요한 수요 자극부터 걷어내야 한다. 주택 공급 금융은 확대하되 가계부채를 다시 끌어올릴 정책대출은 선별해야 한다. 가계부채는 한번 커지면 금리를 내릴 때도, 올릴 때도 경제정책의 발목을 잡는다. 금리를 올리면 이자 부담이 커지고 금리를 낮추면 다시 부동산과 대출을 자극할 수 있다. 2000조원의 부채는 한국경제가 움직일 수 있는 정책 공간을 그만큼 좁히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 필요한 것은 ‘대출을 조이느냐 푸느냐’의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공급에 필요한 돈은 풀되 투기와 과도한 레버리지는 막아야 한다. 취약차주는 정밀하게 가려 보호하는 금융정책이 요구된다. 가계부채 2000조원은 숫자가 아니라 경고다. 금리는 올리면서 빚은 더 늘어나는 정책 조합이 계속된다면 그 비용은 결국 국민이 떠안는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정책 방향부터 맞춰야 한다. 가계부채를 관리하면서 주택 공급과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정교한 균형이 지금 한국경제에 가장 필요한 과제다.
2026-08-20 10: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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