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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6000의 허상…반도체 착시에 가려진 한국 경제의 민낯
[경제일보] 코스피가 장중 7000선을 돌파했다가 급락해 6000선을 겨우 지켰다. 주가지수가 한국 경제의 부활을 보증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반도체 대형주가 지수를 끌어올렸지만 산업 현장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일부 기업의 실적 개선이 마치 한국 경제 전체의 도약인 듯한 착시를 낳고 있다. 지수의 상승과 경제의 체력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일부 기업의 눈부신 실적을 국가 경제 전체의 경쟁력으로 포장하는 순간 구조개혁의 절박성은 사라지고 위기의 경고음은 묻힌다.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주가 하락만이 아니라 주가 상승이 만들어낸 위험한 자기만족이다. 반도체의 저력은 부정할 수 없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첨단 반도체 수요 확대는 우리 기업에 귀중한 기회다. 그러나 반도체의 호황이 산업 전반의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석유화학은 공급과잉과 중국발 저가 공세에 시달리고, 철강은 보호무역 장벽과 탄소 규제에 직면해 있다. 배터리와 전기차 산업도 수요와 가격 경쟁, 해외 생산 확대 등 복합적인 과제에 맞서고 있다. 고금리와 인건비, 원자재 부담에 시달리는 중소·중견기업의 투자 여력도 충분하지 않다. 산업마다 회복 속도와 여건이 다른데 증시의 상승만으로 경제 전반이 살아났다고 볼 수는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반도체 호황이 경제정책의 성적표마저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수출과 대형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면 정부는 경제가 회복 궤도에 올랐다고 자평하기 쉽다. 그러나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과 생산, 설비투자, 고용, 소비가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 따로 살피지 않는다면 정책 진단부터 빗나간다. 대형 반도체 기업의 호실적이 협력업체의 수익성 개선과 내수 회복, 양질의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성장의 온기는 경제 전반에 퍼지지 않은 것이다. 지수는 높아도 민생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번영을 선언하기 어렵다. 시장의 숫자와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의 간극부터 살펴야 한다. 반도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국가 경제의 위험을 키운다. 반도체는 기술 변화와 국제 수요, 공급 능력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교차하는 경기순환 산업이다. AI 투자가 둔화하거나 경쟁 기업의 공급 확대와 기술 추격으로 가격과 수익성이 꺾이면 지금의 상승 동력도 약해질 수 있다. 특정 산업이 수출과 기업 실적, 증시를 동시에 떠받치는 구조에서는 업황 변화가 경제 전체의 충격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호황일 때 위험을 분산하지 못한 경제는 불황이 닥친 뒤 더 큰 비용을 치른다. 반도체가 잘나갈 때야말로 다음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코스피 상승을 치적으로 내세우거나 반도체 투자 확대만으로 미래가 보장된 듯 행동한다면 무책임하다. 필요한 것은 특정 산업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복원하는 구조개혁이다. 석유화학은 범용제품 중심에서 고부가가치 소재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바꾸고, 철강은 저탄소 공정과 고급강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배터리와 전기차는 원가 절감과 기술 차별화, 공급망 다변화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AI·로봇·바이오·첨단소재 등 미래 산업도 연구개발과 인재 육성, 시장 창출을 통해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워야 한다. 보조금에 의존하는 산업정책이 아니라 기업이 혁신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여건을 바꾸는 정책이 필요하다. 규제 개혁은 그 출발점이다. 불합리한 인허가와 중복 규제,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은 기업의 투자 결정을 늦추고 자본과 인재의 해외 유출을 부추긴다. 정부는 규제의 존치 필요성을 원점에서 검토하고 노동·세제·입지·연구개발 제도를 산업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공정경쟁과 안전, 환경이라는 원칙은 지키되 혁신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는 걷어내야 한다. 기업 역시 정부 지원에 기대기보다 기술 투자와 생산성 향상, 투명한 지배구조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 경제의 건강성을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코스피와 반도체 수출액만 볼 것이 아니라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 증가율, 제조업 가동률, 설비투자, 중소기업 수익성, 고용과 실질소득을 함께 살펴야 한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협력업체와 지역경제, 근로자의 소득으로 확산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성장의 폭이 좁고 과실이 한쪽에 집중된다면 높은 지수는 번영의 증거가 아니라 경제의 취약성을 가리는 가림막일 수 있다. 코스피 6000은 자축할 숫자가 아니라 냉정한 자기 점검을 요구하는 시험대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것은 축복이지만, 반도체 없이는 경제의 활력을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는 위험하다. 반도체의 성공을 한국 경제 전체의 성공으로 착각하는 순간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은 사라진다. 정부는 장밋빛 지수에 기대 현실을 미화하지 말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과 민생 회복을 기준으로 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 증시의 높이가 아니라 경제의 저변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승에 취한 환호가 아니라 반도체 이후까지 내다보는 냉철한 결단이다.
2026-10-14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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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반도체 소재·SMR·신재생에너지로…AI 시대 신사업 재편
[경제일보] SK그룹이 반도체 소재와 차세대 에너지 사업을 중심으로 미래 성장축을 재편하고 있다. SKC는 글라스기판을, SK이노베이션은 SMR을 신사업으로 키우고 있으며 SK㈜는 KKR과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합해 발전용량 확대에 나섰다. 기존 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AI 산업 확대로 커지는 반도체 소재와 전력 수요를 새로운 성장 기회로 삼는 전략이다. ◆ SKC, 반도체 소재 고부가화…글라스기판에 3년간 5900억원 투자 SKC는 화학·필름 소재를 기반으로 성장한 뒤 이차전지용 동박과 반도체 소재·부품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해왔다. 지난 2023년에는 반도체 테스트 소켓 기업 ISC를 인수하며 후공정 사업을 강화했고, 이후 반도체 소재 사업을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재편했다.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테스트 소켓과 함께 글라스기판을 차세대 성장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글라스기판은 AI 가속기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반도체의 고집적 패키징에 활용되는 차세대 소재다. 기존 유기 소재 기판보다 평탄성이 높고 대형화에 유리해 고집적 회로 구현에 적합하다. AI 반도체의 성능이 높아지면서 여러 칩을 하나의 패키지에 집적하는 첨단 패키징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관련 소재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사업은 자회사 앱솔릭스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앱솔릭스는 미국 조지아주에 글라스기판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고객사 검증과 양산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임베딩과 논임베딩 제품을 동시에 개발하고 있으며 임베딩 제품은 현지 생산 샘플의 신뢰성 평가, 논임베딩 제품은 고객사 기술검증(PoC)을 진행하고 있다. 투자 규모도 확대됐다. SKC는 올해 1조167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자금 가운데 약 5900억원을 글라스기판 사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약 4700억원은 설비투자, 1200억원은 운영자금으로 배정해 미국 생산시설의 상업화와 장비 고도화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최대주주인 SK㈜도 배정 물량의 120%를 초과청약하며 SKC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실제 자금 집행도 이어지고 있다. SKC는 이달 4일 앱솔릭스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약 2810억원을 출자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출자는 올해 상반기 SKC가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글라스기판 투자 재원을 실제 사업에 투입하는 과정이다. 앱솔릭스는 임베딩 제품의 신뢰성 평가와 논임베딩 제품의 고객사 기술검증을 진행하며 양산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아직 대규모 양산 전 단계인 만큼 고객사 인증과 제품 신뢰성 확보, 수율 안정화가 향후 사업 확대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 SK이노베이션, 테라파워 손잡고 SMR 진출…차세대 원전 사업 본격화 SK이노베이션은 기존 LNG와 전력 사업에 배터리와 ESS를 더한 데 이어 SMR까지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미국 SMR 기업 테라파워에 총 2억5000만달러를 공동 투자한 데 이어 지난 8월 나트륨냉각고속로 기반 SMR 사업 협력을 위한 주요 조건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번 협력에는 미국 실증 원자로 참여 확대와 후속 상업 프로젝트 참여, 국내 SMR 사업모델 개발, 글로벌 SMR 사업기회 공동 발굴 등이 포함됐다. 테라파워의 나트륨은 소듐냉각고속로와 에너지저장장치를 결합한 4세대 SMR이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와이오밍주 캐머러 1호기 프로젝트와 후속 상업 프로젝트 참여를 확대해 차세대 원전의 설계·건설·운영 경험을 확보하고, 이를 국내 및 글로벌 사업개발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생산시설 등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 수요처를 대상으로 LNG·ESS·SMR을 연결하는 에너지 플랫폼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에서는 SK㈜가 계열사에 분산된 사업을 KKR과 통합해 투자 규모를 키우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SK㈜는 지난 7월 KKR이 운용하는 펀드와 신재생에너지 통합법인 지분 투자 계약을 체결했으며, 올해 말 통합법인 출범을 추진하고 있다. 통합법인은 KKR 51%, SK㈜ 49%로 구성되며 SK이노베이션·SK에코플랜트·SK디스커버리 등에 분산된 태양광, 해상·육상풍력, 연료전지, ESS 등 관련 사업과 자산을 통합한다. 사업 규모 확대 목표도 구체적이다. 현재 SK이노베이션·SK에코플랜트·SK디스커버리 등 통합 대상 계열사가 운영 중인 신재생에너지 전력 용량은 약 1.7GW다. 이를 기반으로 통합법인의 발전용량을 오는 2031년까지 10GW로 확대할 계획이다. 개발부터 건설, 운영, 유지보수까지 사업 밸류체인을 통합하고 KKR의 자본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신규 발전사업 발굴에도 나선다. 다만 SMR은 기술 실증과 인허가, 상업 프로젝트 확보가 필요하고 신재생에너지도 발전용량 확대 과정에서 대규모 자본 투입과 신규 프로젝트 확보가 요구된다. SMR은 테라파워 프로젝트의 상업화 진행 상황과 사업성 확보 여부, 신재생에너지는 현재 통합 대상 사업의 1.7GW를 10GW까지 확대하는 과정에서의 투자 효율성과 신규 발전사업 확보가 주요 변수로 꼽힌다.
2026-09-22 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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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만 바라볼 수 없다"…삼성·SK하이닉스, 중국 D램의 역습에 맞서다
[경제일보] 인공지능(AI) 열풍으로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역대급 실적을 올리는 사이 중국이 또 다른 전선에서 추격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에 생산능력을 집중하는 동안 중국 창신메모리(CXMT)는 모바일 메모리의 공정 미세화와 생산성 개선을 앞세워 시장 확대에 나섰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CXMT는 전날 중국 허페이에서 열린 세계제조업대회에서 5세대 D램 기술 플랫폼인 ‘G5’의 양산을 공식 발표했다. G5를 적용한 24기가비트(Gb) LPDDR5X 제품 2종도 공개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주도해 온 시장에 중국산 첨단 D램 공급을 늘리겠다는 선언이다. 이번 발표의 핵심은 생산성이다. CXMT는 네 차례 패터닝하는 공정 기술을 활용해 메모리 배열 내 특정 구조의 반간격을 11.95나노미터까지 줄였다고 밝혔다. 8Gb 제품으로 환산한 웨이퍼당 생산 가능한 칩 수는 이전 세대보다 최소 50% 늘었다는 설명이다. 단일 칩 용량도 기존 동급 제품보다 50% 증가한 24Gb로 높였다. 다만 이를 한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 해소로 단정할 수는 없다. 11.95나노미터는 메모리 배열의 특정 구조를 측정한 값으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사용하는 공정 세대 명칭과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 웨이퍼당 칩 수 증가도 불량품을 제외한 양품 수율과 다르다. CXMT는 G5의 실제 수율과 월간 생산량, 고객사별 공급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1세계 D램 4위까지 올라온 중국…공백 파고드는 생산능력 CXMT의 추격은 기술 발표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D램 매출 점유율은 삼성전자 39.4%, SK하이닉스 24.9%, 미국 마이크론 23.3%, CXMT 9.5% 순이었다. CXMT의 점유율은 1분기 7.6%에서 한 분기 만에 1.9%포인트 상승했다.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4위 공급업체의 존재감이 커진 것이다. 중국 업체에 기회가 생긴 배경에는 기존 강자들의 생산능력 재배치가 있다. HBM과 고용량 서버용 D램 수요가 폭증하자 주요 업체들이 수익성이 높은 제품에 설비를 우선 배정했다. 상대적으로 모바일·PC용 제품의 공급 여력이 줄면서 CXMT를 비롯한 후발 업체들이 고객을 확보할 공간이 넓어졌다. 그렇다고 범용 D램 시장이 이미 가격 폭락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트렌드포스는 지난 7일 보고서에서 2분기 D램 업계 매출이 전분기보다 59.5%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3분기 일반 D램 계약가격 역시 13~18%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확인되는 것은 중국산 공급 확대에 따른 잠재적 경쟁 압력이지, 한국산 제품의 가격 하락이 현실화됐다는 사실은 아니다. 당장의 접점은 스마트폰이다. CXMT가 이번에 내놓은 G5 기반 제품은 저전력 모바일 D램인 LPDDR5X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공급처를 다변화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가격뿐 아니라 전력 효율, 품질, 안정적인 공급 능력으로 고객을 붙잡아야 한다. 실제 경쟁 강도는 신제품의 양산 수율과 고객사 채택 규모가 확인돼야 판단할 수 있다. 삼성은 제품 포트폴리오, SK는 고객 밀착…서로 다른 방어전 삼성전자는 HBM과 일반 D램을 동시에 고도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지난 7월 30일 발표한 2분기 실적 자료에서 HBM4 공급 확대와 업계 최초 HBM4E 샘플 출하를 강조하는 한편, DDR5와 저전력 서버 메모리 규격인 SOCAMM2도 고부가 제품군으로 제시했다. 서버용 제품 매출 비중도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폭넓은 제품군을 확보한 삼성의 과제는 제한된 설비를 어디에 배정하느냐다. HBM과 서버용 제품의 호황에 대응하면서도 모바일 고객이 요구하는 물량과 가격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HBM 투자 확대가 범용 D램 포기를 뜻하지는 않지만, 수요가 다른 제품군 사이에서 생산능력을 조정하는 부담은 커졌다. SK하이닉스는 HBM과 고부가 서버 메모리에 무게를 싣고 고객과의 장기계약을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2분기 HBM4 대량 출하를 시작했고 약 10개 주요 고객사와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10나노급 6세대 공정 기반 D램 출하와 SOCAMM2 판매도 확대하고 있다. HBM에 집중하면서 서버용 일반 메모리까지 묶어 고객 수요에 대응하는 구조다. 두 기업의 차이는 경쟁의 출발점이다. 삼성은 폭넓은 메모리 제품군과 생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하고, SK하이닉스는 HBM을 중심으로 구축한 고객 관계와 고부가 제품 판매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중국 업체가 모바일과 일반 D램에서 공급을 늘리면 기존 제품의 수익성과 시장 기반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 中 LPDDR6까지 상용화…승부는 ‘양산 발표’ 다음에 CXMT의 행보는 LPDDR5X에 그치지 않는다. 회사는 지난 7일 차세대 모바일 메모리인 LPDDR6의 양산과 샤오미 플래그십 스마트폰 적용을 발표했다. 이번 G5 발표에 앞서 차세대 규격의 상용화를 알린 셈이다. 중국 업체의 경쟁 영역을 과거 세대의 저가 D램에만 한정해 볼 수 없는 이유다. 사업영역도 넓히고 있다. 실제 CXMT는 베이징 신규 시설에 낸드플래시 연구개발 생산라인 구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는 계획 단계로, 상업 생산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D램에서 확보한 자본과 고객 기반을 다른 메모리 분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한국 기업에 필요한 것은 HBM 투자를 줄이는 단순한 대응이 아니다. AI 서버는 HBM뿐 아니라 고용량 일반 D램도 사용한다. HBM의 기술 우위를 강화하는 동시에 서버용 DDR5와 저전력 메모리에서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가격·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G5 양산 발표가 글로벌 가격 질서를 바꿀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며 “앞으로 확인해야 할 지표는 생산라인의 실제 양품 수율, 월간 출하량, 해외 고객사 확보 여부”라고 했다. 이어 “한국 기업에는 여기에 제품별 수익성과 생산능력 배분이라는 과제가 더해진다”면서 “AI 호황이 한국 메모리 산업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지만, 그 사이 일반 D램 시장의 경쟁 구도도 달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HBM을 앞세운 성장과 폭넓은 D램 시장의 기반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느냐. 중국의 추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 두 가지 과제를 함께 던지고 있다”고 했다.
2026-09-21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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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른 AI·희토류…한국은 어디에 설 것인가
[경제일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오는 24일 워싱턴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국은 아직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이번 주말 만나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과 희토류, 무역·에너지 등 경제안보 현안이 폭넓게 다뤄질 전망이다. 한국에는 남의 나라 정상회담이 아니다. 미중이 협상 테이블에서 다루는 현안 하나하나가 한국의 주력 산업과 연결돼 있어서다. AI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고 희토류와 핵심광물은 배터리·자동차·항공우주·방위산업에 들어간다. 미국과 중국의 합의와 충돌에 따라 한국 기업의 투자와 생산, 공급망 전략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AI는 특히 그렇다. 베선트 장관은 미국이 중국과 AI가 초래할 공동의 위험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미중 AI 경쟁이 첨단 반도체와 기술 수출통제를 넘어 안전과 국제규칙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 AI 산업에서도 안전 규칙을 누가 만들고 집행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이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끌고 있고 AI 가속기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도 한국 기업의 비중이 크다. 미중 기술 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과 생산시설은 단순한 기업 자산을 넘어 경제안보의 자산이 된다.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로이터는 SK하이닉스가 인텔과 미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지난 16일 보도했다. 인텔의 오하이오 공장 일부를 활용하거나 인텔·클라우드 기업 등이 참여하는 합작법인을 만드는 방안이 거론된다. 아직 초기 협의 단계이고 결정된 것은 없다. 하지만 한국 메모리 기업이 처음으로 미국에서 생산할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도체 공급망이 얼마나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에는 한국이 고민해야 할 지점도 있다. 미국의 공급망 현지화와 한국의 이해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시설을 미국에 두는 것이 시장 접근과 공급망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핵심 제조기술의 해외 이전과 국내 산업 생태계 약화 가능성도 함께 살펴야 한다. 기업의 투자 판단을 존중하되 국가 차원에서는 어떤 기술과 생산기반을 국내에 반드시 남겨야 하는지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희토류 문제는 더 절박하다. 중국은 미국이 자국 중심의 핵심광물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주요 핵심광물의 정제 과정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분석한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희토류 정제 비중은 2023년 90% 이상에서 2025년 약 85%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세계 공급망을 좌우할 수준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희토류 원소인 이트륨은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트륨은 반도체와 항공우주, 제트엔진 코팅 등에 쓰이는 전략 물질이다. 중국은 세계 이트륨 공급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고 수출통제를 통해 공급량을 조절해 왔다. 미국 제조업에서도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이트륨 문제 역시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현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한국의 취약점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를 세계에 수출하지만 이를 만드는 핵심광물과 소재 상당 부분은 해외에서 들여온다. 미국이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속도를 높이면 한국 기업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세계 제조업의 거대한 생산기지이자 시장인 중국과의 공급망을 단기간에 끊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을 단순히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문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안보와 직결된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되 핵심 원료와 소재는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열린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도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은 핵심광물과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주요 의제로 다뤘고 70건이 넘는 협정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정부는 단순한 원료 수입을 넘어 탐사와 정제, 소재 가공, 완제품 생산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공급망 다변화는 양해각서 숫자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광물 탐사와 개발이 실제 정제·가공과 국내 기업의 장기 구매로 이어져야 한다. 핵심광물 개발은 투자 회수 기간이 길고 가격 변동성도 큰 만큼 정부가 정책금융과 비축제도 등을 활용해 민간의 위험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은 평상시에는 비용의 문제지만 위기가 닥치면 국가안보의 문제가 된다. AI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 미래 경쟁력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 소프트웨어와 AI 모델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함께 키워야 한다. 미중이 AI의 기술표준과 안전 문제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면 한국도 이미 만들어진 규칙을 받아들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제 AI 거버넌스와 기술표준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미중 경쟁은 이제 관세 몇 퍼센트(%)를 주고받는 무역전쟁을 넘어섰다. 누가 AI의 규칙을 만들고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며 핵심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를 둘러싼 경제안보 경쟁이다. 중국은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AI 생태계를 중심으로 자국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운명을 워싱턴과 베이징의 협상 결과에 맡길 수는 없다. 어느 한쪽을 무조건 선택하는 것도, 양쪽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미루는 것도 해법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을 강요받았을 때 버틸 수 있는 힘을 먼저 만드는 것이다.
2026-09-17 10:4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