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8건
-
차례상 대신 여행가방…전통도 시대를 따라야 한다
[경제일보] 형식에 매달려 본질을 놓쳐선 안 돼…조상 공경과 가족애라는 가치는 지키되 시대착오적 관습은 과감히 바꿔야 명절의 풍경이 달라졌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추석 연휴가 시작되면 전국의 도로는 고향으로 향하는 차량으로 몸살을 앓았다. 집집마다 차례상을 준비하고 전을 부쳤으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명절의 당연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공항 출국장은 여행객으로 넘쳐나고 호텔과 리조트는 일찌감치 예약이 끝난다. 차례상을 준비하는 대신 여행가방을 챙겨 가족과 휴식을 떠나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다. ‘민족의 대이동’이 ‘가족의 휴식 여행’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전통이 무너지고 가족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효와 경로의식이 사라지고 젊은 세대가 조상과 고향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40년 넘게 우리 사회의 변화를 지켜본 필자의 눈에는 이 현상을 단순한 ‘전통의 붕괴’로만 규정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물어야 한다. 전통은 지켜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전통은 박물관에 보관된 유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생활문화다. 따라서 사람들의 삶이 달라졌다면 전통의 모습도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농경사회와 대가족을 바탕으로 형성된 명절 풍습을 핵가족과 맞벌이, 1인 가구가 늘어난 오늘날에도 과거와 똑같이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특히 명절은 오랜 기간 누군가의 희생 위에 유지돼 왔다.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일은 주로 여성들의 몫이었다. 장거리 귀성에 따른 교통체증과 비용 부담도 컸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기는커녕 결혼, 출산, 취업, 재산 문제를 캐묻다가 상처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족을 만나 위로받아야 할 명절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피하고 싶은 시간이 되어버린 이유다. 여기서 형식과 본질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중요한가, 아니면 차례상에 몇 가지 음식을 올렸느냐가 중요한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중요한가, 아니면 정해진 날에 반드시 고향을 찾아야 한다는 형식이 중요한가. 답은 어렵지 않다. 형식은 본질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그릇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 바꾸면 된다. 차례상을 간소화한다고 조상을 덜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 차례를 생략한다고 효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 자연을 거닐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돌아보는 것 역시 가족애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부모와 자녀가 오랜만에 마주 앉아 서로의 고단함을 위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명절이 지켜야 할 본질에 가깝다. 물론 변화라는 이름으로 모든 전통을 내던져서는 안 된다. 전통에는 한 세대의 경험과 기억이 축적돼 있다. 조상을 기억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가족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신은 지켜야 한다. 다만 그 정신을 표현하는 방식까지 과거와 똑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차례를 간소화하고 가족 구성원이 번갈아 준비할 수도 있다. 차례를 지내지 않더라도 가족사진을 펼쳐놓고 조상의 삶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고향을 찾기 어렵다면 전화나 영상통화로 부모와 친지의 안부를 묻는 것도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의식의 형태가 아니라 그 의식에 담긴 마음이다. 우리의 전통문화 역시 그렇게 변화해왔다. 한복은 시대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졌고 음식은 새로운 식재료와 조리법을 받아들이며 발전했다. 전통음악도 새로운 장르와 결합하면서 생명력을 얻었다. 유독 명절 문화만 수십 년 전의 틀에 묶어둘 이유는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가 전통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전통은 강요한다고 계승되지 않는다. 의미를 느끼고 공감할 때 이어진다. 젊은 세대가 명절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전통을 모른다”고 탓하기에 앞서 왜 그렇게 됐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명절이 가족에게 의무와 스트레스로 기억된다면 전통은 다음 세대에서 끊길 수밖에 없다. 반대로 명절이 가족과 함께 웃고 쉬며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으로 기억된다면 그것 자체가 새로운 전통이 된다. ‘차례상 대신 여행가방’은 그래서 전통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형식 중심의 전통에서 가치 중심의 전통으로 이동하는 사회 변화의 한 단면일 수 있다. 물론 고향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는 가족도 소중하다. 여행을 떠나는 가족도 나름의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는 것이다. 어느 한쪽만 옳다고 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장소도, 음식도, 의식의 형식도 아니다. 가족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존중하느냐가 핵심이다. 40년 전과 지금의 가족은 다르다. 사는 곳도, 일하는 방식도, 가족의 규모도 달라졌다. 그렇다면 문화 역시 변해야 한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만이 전통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사람을 위해 전통이 존재해야지, 전통을 위해 사람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 전통은 과거에 머물러 있을 때 박제가 된다. 시대와 함께 변하고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낡은 형식은 과감히 덜어내되 조상 공경과 가족애라는 소중한 가치는 더욱 단단하게 이어가야 한다. 이번 명절에도 누군가는 차례상 앞에 앉고, 누군가는 여행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어느 쪽도 전통의 배신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가족이 서로를 생각하고 존중하며 함께하는 시간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명절의 본뜻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과거의 모습을 복사하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가치가 오늘의 삶에서도 살아 숨 쉬도록 끊임없이 새롭게 만드는 일이다.
2026-09-27 15:21:47
-
-
-
"호남의 마음을 잡아라"…민주당 당대표 후보들, 광주서 절절한 구애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호남 및 서울·경기의 권리당원 투표가 11일부터 차례대로 시작되면서 김민석·정청래·송영길 당 대표 후보가 사활을 건 득표전에 급피치를 내고 있다. 일반 여론조사(30%)에서 격차가 대체로 크지 않지, 상황에서 전체 권리당원의 70%가 몰린 호남과 서울 및 경기의 순회경선에서 사실상 전당대회 승부가 결정 날 수 있다는 것이 인식에서다. 이들 후보는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광주에서 저마다의 인연과 경험, 지역 발전 구상을 꺼내 들며 절절한 구애에 나섰다. 김 후보는 이날 오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출근 인사를 했고, 정 후보는 광주교대에서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와 간담회를 한 뒤 전남 광양으로 향했다. 김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김민석이 광주, 전남, 전북의 미래, 국정 성공, 총선 승리, 그리고 호남 발전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면서 "든든한 당 대표로 이기는 민주당을 만들어서 당도 정부도 안정적으로 승리해 나갈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후보도 페이스북에서 "2002년 노무현의 바람이 이인제의 조직을 이겼듯이 정청래의 바람이 김민석의 조직을 이기게 해달라, 의리를 지킨 정청래를 지켜달라", "호남의 어머니, 아버지들께서 강력한 개혁 당 대표 정청래를 지켜달라"고 잇따라 호소했다. 사실상 호남에서 상주하는 전략을 택한 송영길 후보는 이날 오후에 조선대 해오름관에서 전남·광주 필승 결의대회에 참석한다. 세 후보 중 유일하게 호남 출신인 송 후보는 연고를 앞세워 반전을 노리고 있다. 이들의 경쟁은 지난 10일 KBC 광주방송에서 열린 TV 토론회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토론회의 상당 부분은 호남의 정치적 의미와 광주·전남의 미래 발전을 놓고 누가 더 호남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를 겨루는 장면으로 채워졌다. 김 후보는 첫 발언부터 자신의 정치적 뿌리를 호남과 연결했다. 전남 진도와의 가족 인연도 언급했다. 자신이 전남 진도의 외손이며 현재 전북 익산의 주민이라는 점까지 강조하면서 호남과의 관계가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했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의 초대 총리라는 정치적 경력까지 내세우며 호남 발전을 책임질 수 있는 후보라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정 후보의 접근법은 조금 달랐다. 그는 자신을 한마디로 ‘호남의 사위’라고 규정했다. 호남과의 혈연적·가족적 인연을 앞세우면서 호남이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만들어온 주역이라는 점을 강하게 강조했다.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이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오늘날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는 논리를 폈다. 송 후보는 두 후보와 달리 자신의 출신지를 가장 강력한 무기로 꺼내 들었다. 전남 고흥 출신인 그는 “제 고향”이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호남 발전을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이 광주에서 쏟아낸 메시지에는 민주당 경선에서 호남이 갖는 무게감이 고스란히 담겼다.
2026-08-11 13:57:01
-
-
-
-
이란, 하메네이 장례식 공식 개시…반미 구호 속 엿새 애도
[경제일보] 이란이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장례 절차를 공식 시작했다. 지난 2월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뒤 전쟁 상황 탓에 장례를 미뤄온 지 4개월여 만이다. 미국 독립기념일이자 건국 250주년인 4일 장례가 본격화되면서 이란 내부의 반미·반이스라엘 정서도 다시 고조되고 있다. 장례식은 4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대형 예배장소인 이맘호메이니 대모살라 광장에서 시작됐다. 하메네이의 운구 행렬이 도착하기 전부터 광장 주변에는 추모객이 몰렸다. 일부 조문객들은 복수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을 들고 “미국에 죽음을”, “복수”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란 당국은 장례 기간 대규모 추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보고 교통, 숙박, 식사 지원에 나섰다. 로이터는 이란 당국이 앞으로 이어질 장례 행렬에 수백만명의 동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메네이는 1989년 최고지도자에 오른 뒤 37년간 이란의 정치와 군사, 종교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의 장례는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니라 이슬람공화국 체제 결속을 과시하는 정치적 무대이기도 하다. 장례 일정은 오는 9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테헤란 모살라에서 일반 조문이 진행된 뒤 운구는 이란 중부 종교도시 곰으로 옮겨진다. 이후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 나자프와 카르발라에서도 장례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마지막 매장은 하메네이의 고향이자 이란 북동부의 대표 시아파 성지인 마슈하드 이맘 레자 성지 인근에서 진행된다. 하메네이는 지난 2월28일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관저에서 가족 일부와 함께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슬람 장례 관습상 매장은 사망 직후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전쟁과 보안 위험 때문에 장례는 휴전 이후로 연기됐다. 이란 입장에서는 이번 장례가 전쟁을 견뎌냈다는 체제의 내구성을 보여주는 행사이자 대미·대이스라엘 강경 기조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행사장 주변에서는 군과 경찰, 바시즈 민병대의 경계가 강화됐다. 이란은 장례 기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추가 공격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장례가 미국 독립기념일과 겹쳤다는 점도 상징성이 크다. 이란은 하메네이 장례를 통해 반미 결집을 극대화하려 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한 보복 요구도 내부 여론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관심은 하메네이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모즈타바 하메네이 현 최고지도자의 참석 여부에도 쏠린다. 모즈타바는 부친이 숨진 2월28일 공습 당시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공개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장례식에 직접 참석할 경우 새 권력의 정통성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장면이 될 수 있지만 불참할 경우 건강 이상설과 권력 장악력 논란이 다시 커질 수 있다. 하메네이 장례식은 추모와 정치가 뒤섞인 장면이다. 이란 지도부는 대규모 조문 행렬을 통해 체제 결속과 반미 저항의 상징을 만들려 한다. 그러나 장례식이 끝난 뒤 이란이 마주할 현실은 더 복잡하다. 전쟁의 상처, 제재로 약해진 경제, 새 최고지도자의 정통성 문제, 미국과의 후속 협상이 동시에 남아 있다. 하메네이의 관이 마슈하드에 묻힌 뒤에도 이란 권력의 불안정성은 쉽게 묻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026-07-04 12:45:49
-
매출 49조, 포춘 500 132위… 쿠팡이 만든 이커머스의 새 기준
[경제일보] 서울 어느 동네에서 밤 11시에 주문을 넣으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택배가 놓여 있다. 이제는 당연한 일처럼 여기지만 1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쿠팡이 2014년 로켓배송을 선보이기 전까지, 택배는 '1~3일 내 도착'이 통념이었다. 그 쿠팡이 지난해 49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미국 포춘지가 매년 총매출 기준으로 발표하는 '포춘 500'에는 132위로 이름을 올렸다. 2023년 195위로 처음 진입한 뒤 4년 연속 순위를 높인 결과다. 한국 이커머스 기업이 세계 최대 기업 순위 150위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역대 최대 실적, 3년 연속 흑자 쿠팡Inc가 올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5년 연간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매출은 345억달러(원화 기준 49조1197억원)로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 고정환율 기준으로는 18% 성장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6790억원으로 전년 대비 8% 늘었다. 2023년 6170억원으로 처음 연간 흑자를 낸 이후 3년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당기순이익은 3030억원으로 전년의 세 배를 넘겼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3억달러(약 9조원)로 전년보다 늘었다. 같은 해 패스트컴퍼니도 쿠팡을 '2025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유통 부문 2위로 선정했다. ◆AI가 먼저 움직인다, 로켓배송의 원리 로켓배송이 가능한 이유를 쿠팡은 AI에서 찾는다. 수천만 건의 구매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상품이 언제, 어느 지역에서 팔릴지를 미리 예측하고, 주문이 들어오기 전에 해당 상품을 가까운 물류센터로 옮겨두는 방식이다. 쿠팡 관계자는 "수조 건 이상의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문 예측부터 배송 완료까지 물류 전 과정에 AI 기술을 깊숙이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물류센터 내부에서도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무인운반로봇(AGV)이 선반을 작업자 앞으로 옮겨주고, 소팅 로봇이 배송지에 따라 상품을 자동 분류한다. 소팅 봇 도입 이후 상품 분류 작업의 업무량은 약 65% 줄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3조원의 투자, 지방에 생긴 일자리 이 기술 기반 위에서 쿠팡은 물류망을 전국으로 넓히고 있다. 현재 전국 260개 시군구 중 182곳(70%)에서 로켓배송이 가능하다. 쿠팡은 2026년까지 3조원 이상을 물류 인프라에 추가 투자해 2027년에는 230여 곳(88% 이상)까지 서비스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지방에 물류센터가 들어서는 동안 일자리도 함께 생겼다. 2024년 9월 기준 쿠팡과 물류 자회사(쿠팡풀필먼트서비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의 합산 고용 인원은 8만 명을 넘어섰다. 국내 민간 고용 규모 2위다. 특히 지방 청년 일자리가 빠르게 늘고 있다. 비서울 지역 물류센터의 20~30대 청년 직원 수(일용직 제외)는 올해 1만7000명을 넘었다. 지난해 9월 1만5000명에서 반년 만에 2000명 더 늘어난 것이다. 광주, 대전, 경남 등 지방 물류센터의 2030 청년 비중은 50% 안팎으로 수도권 물류센터(약 40%)보다 오히려 높다. 광주첨단물류센터에서 출고팀 현장 관리자로 일하는 배희재(29) 씨는 "수도권의 높은 월세와 생활비로 어려움을 겪다가 고향 인근 물류센터에 입사해 경제적으로 안정됐다"고 말했다. 쿠팡은 지역 대학 15곳과 산학협력을 맺어 인턴십과 정규직 채용을 이어가고 있다. ◆대만에서 검증된 '한국 공식' 2022년 10월, 쿠팡은 대만에 진출했다. 한국에서 만든 로켓배송 모델을 그대로 이식하는 실험이었다. 대만 사업은 진출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2025년 2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54% 성장했다. 쿠팡은 현지 물류 인프라 구축에만 50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투자했고, 최근에는 와우 멤버십 프로그램도 현지에 출시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한국에서 만들어낸 플레이북이 다른 시장에서도 똑같이 적용된 사례가 대만"이라고 밝혔다. 쿠팡을 통해 대만에 동반 진출한 국내 기업은 1만2000곳에 달하며, 현지 판매 제품의 70%가 한국 중소기업 생산품이다. '로켓그로스' 서비스를 통해 소상공인들도 쿠팡의 물류망을 빌려 해외에 나갈 수 있다. 럭셔리 커머스 플랫폼 파페치까지 더하면 쿠팡의 판매망은 190개국으로 넓어진다. 1400개 이상의 브랜드와 부티크가 파페치를 통해 전 세계 고객과 거래한다. 로버트 포터 최고글로벌책임자(CGO)는 "AI, 맞춤형 로보틱스, 물류 분야 전략적 투자를 통해 미국 상품·서비스 수출 50억달러 이상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2014년 로켓배송이 세상에 나왔을 때 '밤 11시 주문이 다음 날 아침 도착한다'는 약속을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11년 뒤, 그 약속은 한국 소비자의 일상이 됐다. 같은 약속이 이번엔 대만 소비자를 향하고 있다.
2026-06-08 16:43:59
-
'오차범위 내 1위'는 금물…'깜깜이 선거' 막판 총력전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본투표를 하루 앞둔 2일, 선거판은 숫자에서 현장으로 옮겨갔다. 새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할 수 없는 ‘깜깜이 기간’에 들어선 뒤 후보들은 지지율 대신 유세차에 올랐다. 오차범위 안의 수치를 두고 ‘1위’나 ‘우세’를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지막 승부는 후보가 어느 지역을 찾고, 어느 계층을 겨냥하며, 어떤 메시지로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불러내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멈춘 ‘깜깜이 선거 기간’, ‘마지막 표밭’ 뛰어든 후보들 이에 여야 지도부는 접전지로 향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강원과 수도권에서 집중 유세에 들어갔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충청과 경기 유세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는 도심과 청년 밀집 지역을 선거운동의 마지막 무대로 낙점했다. 정원오 민주당 후보는 이날 새벽부터 강서·은평·서대문·영등포·동대문·종로·중·용산·마포·강남·강동·송파 등 서울 12개구를 돌고, 오후 7시 청계광장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피날레 유세를 한 뒤 밤 11시 40분 송파구 복정역 환승센터에서 선거운동을 마무리하는 일정을 잡았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신촌역 인근 스타광장에서 마지막 유세에 나서 2030세대를 겨냥한다. 서울의 마지막 구호는 선명하게 갈렸다. 정 후보는 “이재명 정부에 힘을 싣는 선거”를 강조하며 민주당 구청장 후보들과의 원팀론을 앞세웠다. 반면, 오 후보는 신촌을 마지막 유세지로 택하며 젊은 유권자와 중도층을 향한 메시지를 부각했다. 수도 서울의 승부가 단순한 광역단체장 선거를 넘어 정권 지원론과 견제론의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구에서는 양당 후보가 모두 동성로를 피날레 무대로 골랐다. 김부겸 민주당 후보는 중구 반월당네거리에서 아침 인사를 시작한 뒤 수성구와 동구 일대를 돌고, 오후 6시 동성로 대구백화점 본점 앞에서 마지막 총력 유세를 하기로 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는 북구 복현오거리에서 아침 인사를 한 뒤 북구·남구·동구·중구를 잇따라 돌고, 오후 7시 30분 동성로 CGV 한일극장 앞에서 총집결 유세에 나선다. 대구의 막판전은 변화론과 보수 결집론의 정면 충돌이다. 김 후보는 자신의 정치 이력을 걸고 대구의 변화를 호소하고, 추 후보는 보수의 중심지 대구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로 맞섰다. 두 후보가 같은 도심 번화가를 마지막 장소로 택한 것은 부동층과 청년층, 도심 생활권 유권자를 끝까지 붙잡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부산은 원도심과 서면, 북갑이 마지막 승부처가 됐다. 전재수 민주당 후보는 영도구·서구·사하구·중구·부산진구 등 원도심을 유세차로 돌고, 오후 7시 40분부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 북갑에서 표심을 공략한 뒤 도보 유세로 전환해 자정까지 유권자들을 만난다.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는 기장군·금정구·동래구·해운대구·연제구·서면역 등지를 돈 뒤 오후 7시 30분 서면 쥬디스 태화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고, 이후 전포동 카페 거리에서 막판 표심을 훑는다. 부산시장 선거는 정책 경쟁보다 네거티브 공방이 부각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부산시장 후보 간 의혹 제기와 맞고발, 부산 북갑 보궐선거 후보들의 공방까지 겹치며 지역 정가에서 ‘역대 선거 가운데 네거티브가 가장 심한 선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막판 유세가 단순 지지 호소를 넘어 피로감을 느낀 유권자에게 다시 정책과 실행력을 설득해야 하는 무대가 된 이유다. 경남에서는 창원이 마지막 전장이 됐다. 김경수 민주당 후보와 박완수 국민의힘 후보는 모두 2일 창원에서 선거운동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일정을 택했다. 경남 18개 시군 유권자 약 277만5000명 가운데 창원 유권자는 약 85만8000명으로 30%를 넘는다. 김 후보는 진해 안민터널 입구 출근 인사와 김해 오일장을 거쳐 창원으로 돌아오고, 밤 8시 30분 창원시청 사거리 유세와 밤 11시 창원중앙역 인사로 선거운동을 끝낸다. 박 후보는 마산합포·마산회원·의창·성산을 돌고 오후 7시 30분 성산구 상남분수광장에서 피날레 유세를 한다. 경남의 창원 집중은 단순한 동선이 아니다. 창원은 제조업과 공공기관, 신도심과 구도심, 노동자와 자영업자가 함께 얽힌 경남 표심의 압축판이다. 김 후보는 여당 후보의 힘을 내세우고, 박 후보는 현직 도정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후보들이 마지막 시간을 창원에 쏟아붓는 것은 경남 전체 판세를 가를 수 있는 최대 표밭이기 때문이다. 충남에서는 박수현 민주당 후보가 공주에서 출발해 서산·당진·천안·아산으로 이동하고, 김태흠 국민의힘 후보는 천안과 아산에 집중했다. 박 후보는 공주 옥룡교차로에서 출근길 인사를 한 뒤 서산동부전통시장, 당진 시내, 아산 온양온천시장, 천안 신불당을 찾는 일정을 잡았다. 김 후보는 충남도청 기자회견 이후 아산 집중 유세와 천안 피날레 유세로 마지막 선거운동을 이어간다. 충남의 막판 동선은 중원 표심의 성격을 보여준다. 박 후보는 고향이자 정치적 출발점인 공주에서 초심을 강조하고, 서해안 산업벨트와 천안·아산 생활권을 연결했다. 김 후보는 충남 인구와 경제 활동이 몰린 천안·아산에 화력을 집중했다. 충남지사 선거가 단순 정당 대결을 넘어 서북부 산업벨트와 내포 행정권, 원도심 민심이 맞물린 선거라는 점이 마지막 유세 일정에 그대로 반영됐다. 사전투표율 역대 최고…본투표층 동원이 마지막 변수 이번 선거의 막판 총력전의 배경은 높은 사전투표율이다. 6·3 지방선거 전국 사전투표율은 23.51%였고, 서울 23.84%, 부산 21.29%, 대구 18.65%, 광주 27.83%, 대전 22.53%, 울산 22.46% 등 지역별 온도차가 나타났다. 역대 지방선거 최고 사전투표율은 선거판에 두 가지 압박을 동시에 줬다. 이미 투표를 마친 유권자가 많아진 만큼 남은 본투표층의 규모는 줄었다. 하지만 접전지에서는 그 줄어든 표밭 안에서 어느 쪽이 지지층을 더 촘촘히 불러내느냐가 승패를 가를 수 있다. 사전투표가 특정 정당의 우세 신호인지, 단순한 조기 투표 확산인지는 개표 전까지 단정하기 어렵다. 이에 각 캠프는 마지막 하루를 ‘판세 확인’이 아니라 ‘투표 독려’에 쏟아붓고 있다. 지역별 사전투표율 차이도 후보들의 막판 동선을 자극하고 있다. 호남권처럼 사전투표율이 높게 나온 지역에서는 이미 결집한 표심을 본투표일까지 유지하는 것이 과제다. 반대로 대구처럼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에서는 전통 지지층의 본투표 참여를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해졌다. 수도권과 충청권에서는 부동층과 중도층의 최종 선택이 남아 있다. 후보들이 서울 청계광장과 신촌, 대구 동성로, 부산 서면, 창원, 천안·아산으로 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사전투표율이 높다고 곧바로 어느 한쪽의 우세를 뜻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이미 투표한 유권자가 많아진 만큼 각 후보에게 남은 과제는 본투표층을 최대한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깜깜이 기간에는 여론조사 숫자를 새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장 분위기와 조직 점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마지막 유세지는 캠프가 보는 최대 승부처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2026-06-02 15:38:12
-
박형룡 '7전8기 지역론' vs 이진숙 '보수 결집론'…다사·현풍 신도시 표심은 어디로
[경제일보]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더불어민주당 박형룡 후보와 국민의힘 이진숙 후보의 양자 대결로 막판까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달성은 대구에서도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상징성도 여전히 작동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흐름은 예전과 다르다. 국민의힘 후보가 우세하다는 큰 구도는 유지되고 있지만, 민주당 후보가 오차 범위 안까지 따라붙은 조사들이 나오면서 ‘대구 달성 이변 가능성’이 선거 막판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세대·생활권 따라 갈라진 달성 표심 대구MBC가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대구MBC 의뢰, 에이스리서치 조사, 2026년 5월17~18일, 대구 달성군 유권자 504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및 대구MBC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 후보와 박 후보는 각각 48.5%, 41.7%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두 후보 격차는 6.8%p로 오차범위 안이었다.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 투표층에서는 이 후보 49.3%, 박 후보 46.8%로 격차가 2.5%p까지 줄었다. 연령별로는 박 후보가 30대·40대·50대에서 우세했고, 이 후보는 18~29세와 60대·70대 이상에서 강했다. 중도층에서는 박 후보 58.1%, 이 후보 30.5%로 박 후보가 앞섰다. 해당 여론조사는 대구 달성군의 선거 지형이 세대와 생활권에 따라 갈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 농촌지역과 보수 고령층에서는 이 후보의 방어선이 두꺼운 반면, 다사·유가·현풍·구지 등 신도시 성격이 짙은 지역, 젊은 제조업·서비스업 종사자, 중도층에서는 박 후보가 파고들 여지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박 후보는 ‘지역에 뿌리내린 여당 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대구에서 여러 차례 도전했고, 달성에서도 세 번째 도전에 나선 점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공약의 중심은 산업이다. 박 후보는 국가로봇테스트필드 고도화와 금융 인프라 확충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대구 시장 선거에 출마한 김부겸 전 총리 재직 시기 유치된 국가로봇테스트필드를 실제 산업 환경에서 로봇 서비스 품질과 안정성을 검증하는 실증 체계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또 IBK기업은행 본점 유치를 내세우며 달성군과 달서구 성서산업단지에 중소기업과 제조업체가 집중돼 있는 만큼 금융 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의 핵심 메시지는 ‘보수 본진 수성’이다. 국민의힘 후보로서 정권 견제와 보수 결집을 전면에 세운다. 달성이 보수의 상징 지역이라는 점, 국민의힘 조직 기반이 여전히 강하다는 점은 이 후보의 가장 큰 자산이다. 이 후보의 공약 역시 산업 경쟁력에 맞춰져 있다. 그는 산업단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에너지 기반 구축을 전면에 내세웠다. 달성은 대구국가산단, 테크노폴리스, 달성1·2차 산업단지 등 제조업 기반이 두꺼운 지역이다. 전기료, 전력망, 탄소중립 대응, 에너지 효율화는 기업 입주와 투자 유지에 직결된다. 이 후보는 지역 산업단지의 비용 구조와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 공약으로 보수층을 넘어 기업인·근로자 표심까지 넓히려고 하고 있다. 두 후보의 차이는 ‘지역성’과 ‘정치성’의 차이다. 박 후보는 “달성을 오래 봐온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이 후보는 “보수 정체성을 지킬 사람”이라는 점을 앞세우고 있다. 다사·화원·현풍 ‘3대 승부처’, 승패 판가름 SWOT 분석 결과, 박 후보의 강점은 지역 도전 이력과 중도층 확장성이다. 대구와 달성에서 오랫동안 출마해 온 정치적 축적은 ‘낙선의 이력’이면서 동시에 ‘버틴 사람’이라는 상징이 됐다. 반면, 약점은 민주당 간판이다. 달성에서 민주당 후보라는 사실은 여전히 높은 장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 입장에서 기회 요인은 다사·현풍·구지 등 신도시 표심과 김부겸 효과, 적극 투표층 초박빙 흐름 등이고, 보수층 막판 결집과 이 후보의 정권 견제론은 위협 요소로 작용될 전망이다. 이 후보의 강점은 국민의힘 조직력과 보수 핵심지 프리미엄이다. 달성의 정당 지형은 여전히 이 후보에게 우호적이다. 이 후보가 달성과의 접점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는 점 등은 이 후보의 약점 포인트로 꼽힌다. 다만, 고령층과 전통 보수 생활권의 투표율 상승 등은 이 후보의 기회 요인이고, 박 후보의 중도층 선전, 공천·지역성 논란, 토론 과정에서 불거진 검증 공방의 확산 등은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막판 승부처는 세 곳이다. 첫째는 다사·하빈권이다. 대구MBC 조사에서 박 후보가 다사읍·하빈면에서 49.9%로 우세했다. 이 지역에서 박 후보가 격차를 더 벌리면 전체 판세는 접전으로 굳어질 수 있다. 둘째는 화원·가창권이다. 같은 조사에서 이 후보는 화원읍·가창면에서 53%를 기록했다. 보수 결집의 핵심 방어선이다. 셋째는 현풍·유가·구지의 산업·신도시권이다. 이곳은 산업단지, 젊은 근로자, 신축 주거지, 출퇴근 문제가 겹친 지역이다. 후보의 정당보다 생활경제 공약이 더 크게 작동할 수 있다. 대구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결국 이번 대구 달성군 선거의 본질은 ‘보수 텃밭의 균열’”이라며 “이 후보는 달성군을 잘 모른다는 공격을 넘어서 산업단지와 생활권을 실제로 이해하고 있다는 신뢰를 줘야 하고, 박 후보는 민주당 후보도 달성의 산업과 교통,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2026-06-01 16:30:20
-
급변하는 동북아 격랑(激浪), 안동 한일회담이 전략적 공조의 이정표 되어야
[경제일보] 국제 정세의 지각변동이 가히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만큼 가파르다. 중동발(發) 전운이 짙어지며 미·이란 간의 무력 충돌이 세계 경제와 글로벌 공급망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형국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중 정상이 전격적인 회담을 통해 자국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어제의 맹방(盟방)과 동맹이라는 철석같던 신뢰마저 자국의 실리 앞에서는 언제든 형해화(形骸化)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엄중한 현실이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외교 안보 지형 속에서, 우리 정부에 요구되는 책략은 유연하면서도 국익 중심의 단단한 중심추를 잡는 일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에 맞춰 매일 새로운 외교적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할 만큼 다변화된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런 격랑 속에서 오늘 이재명 대통령이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 머리를 맞댄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여섯 번째이자, 셔틀외교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이번 정상회담에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안동 회담은 단순한 외교적 연례행사를 넘어, 동북아의 지정학적 위기를 관리하고 한일 간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엄중한 책무를 안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역사적 앙금으로 인해 멀게만 느껴졌던 양국이지만, 지금의 복합 위기 상황은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 있을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미·중 패권 경쟁의 틈바구니와 중동 전쟁의 여파 속에서 한일 양국이 긴밀하게 공조하지 않는다면, 동북아의 안보 공백과 경제적 타격은 고스란히 양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부 발표대로 이번 회담에서 장기화하는 중동 전쟁 관련 현안과 자유 통상 질서 확립, 동북아 안전 보장 및 공급망 위기 타개책 등이 심도 있게 논의되는 것은 시의적절하다. 경제와 안보가 분리될 수 없는 ‘경제 안보’의 시대에, 첨단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의 안정적 공급망 구축과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한 한일 간의 전략적 스크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나아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안보 협력의 틀을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한다. 주목할 점은 이번 회담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한국의 선비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안동 하회마을에서 열린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 부자가 찾았던 외교적 명소에서, 양국 정상이 안동의 전통 불꽃놀이인 ‘선유줄불놀이’를 관람하고 전통 음식을 나누며 신뢰를 쌓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의미가 깊다. 양국의 화합을 상징하는 안동소주와 나라현의 사케가 만찬 테이블에 함께 오르듯, 외교적 갈등의 실타래도 이처럼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에서 풀리기 시작하는 법이다. 다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국익을 위한 냉철한 손익계산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일본 정부 역시 이번 회담을 계기로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데 보다 전향적이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임해야 할 것이다. 상호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 전략적 공조는 모래 위에 세운 성과 같다. 우리 정부 또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되, 국익의 마지노선을 확실히 지키는 균형 잡힌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전통문화의 온기가 흐르는 안동에서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이, 한일 양국이 당면한 글로벌 위기를 함께 돌파하는 실질적이고 전략적인 협력의 대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거친 파고가 몰아치는 국제 사회에서 한일 관계의 안정이 곧 대한민국 안보와 경제의 강력한 방파제가 될 수 있음을, 양국 정상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2026-05-19 09:41:03
-
-
李대통령·다카이치 총리, 19일 안동서 정상회담…한일 셔틀외교 재가동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오는 19일 경북 안동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한일 셔틀외교를 재가동한다. 지난 1월 이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일본 나라현을 방문한 데 이은 답방 성격으로, 이번에는 이 대통령의 고향인 안동에서 회담이 열린다. 이번 정상회담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여섯 번째 한일 정상회담으로 알려졌다. 양 정상은 19일부터 20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소인수 회담, 확대 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 만찬 등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가장 주목되는 의제는 경제안보다. 양국은 지난 1월 나라현 회담에서 공급망 안정과 경제안보 협력, 첨단산업 연계 강화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당시 논의가 협력 활성화 수준이었다면, 이번 회담에서는 중동전쟁 장기화와 원유·천연가스 수급 불안까지 맞물리며 경제안보 협력이 보다 핵심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통항 문제에 대한 한일 간 소통 여부가 관심사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에너지 수송로의 안정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 모두 원유와 LNG 수입 의존도가 높다. 양국 정상이 비공개 회담에서 선박 통항 상황과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를 공유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국 선박 HMM 나무호 손상 사고도 관련 논의 배경으로 꼽힌다. HMM 나무호는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미확인 비행체로 추정되는 물체에 의해 손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고, 현재 잔해 분석이 진행 중이다. 일본 역시 최근 자국 선박의 호르무즈 통항 문제를 관리해온 만큼 양국이 해상 수송로 안전과 위기 대응 공조를 논의할 여지가 있다. 최근 미중 정상회담 결과도 회담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미중은 이번 회담에서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메시지를 냈지만, 대만과 AI·반도체, 공급망 문제에서는 긴장을 남겼다. 일본은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 이후 중국과 관계가 급격히 악화된 상황인 만큼 관련 동향을 한국과 공유할 필요성이 커졌다. 안보 분야에서는 한미일 협력과 북한 비핵화 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 다만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가 핵심 의제로 부각되지 않았고, 중동과 대만 문제가 국제 안보 현안의 전면에 떠오른 만큼 이번 회담에서도 안보 협력 원칙을 재확인하는 수준의 수위 조절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과거사 문제의 진전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한일 양국은 지난 1월 회담에서 1942년 일본 야마구치현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로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 유해 발굴을 위한 DNA 감정 추진에 합의한 바 있다. 이번 회담에서 실제 감정 절차 착수나 추가 유해 조사 협력 등 후속 조치가 논의될지 주목된다. 이번 안동 회담은 한일 정상이 서로의 고향을 방문하는 ‘고향 셔틀외교’라는 상징성도 갖는다. 과거사와 안보 현안이 여전히 민감하지만, 정상 간 신뢰를 바탕으로 실용적 협력 의제를 넓혀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일정으로 풀이된다. 향후 관건은 회담 결과가 선언적 메시지를 넘어 구체적 협력으로 이어질지 여부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과 에너지 수급, 공급망 안정, 첨단산업 협력, 과거사 후속 조치에서 실질적 성과가 나와야 셔틀외교의 동력이 이어질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중동 정세를 포함해 지역·글로벌 현안도 당연히 논의될 것”이라며 “양국이 벌써 여러 번 만났기 때문에 깊이 있는 소통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6-05-16 12:17: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