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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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뒷전, 당권만 좇는 여의도의 씁쓸한 자화상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선장과 항해사는 서로 조타기를 잘못 잡았다며 멱살잡이만 하고 있다. 갑판 아래에서는 승객들이 물이 차오르는 공포에 떨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의 모습이 꼭 그렇다. 6·3 지방선거가 끝난 지 2주가 지났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선거의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거의 교훈을 되새기기는커녕 선거 결과를 둘러싼 책임 공방과 당권 투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의도는 민심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권력을 계산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예외가 아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자 지도부를 향한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진정 묻고 있는 것은 누가 대표직을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다. 왜 국민이 등을 돌렸는가, 왜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은 그 질문을 외면한 채 차기 권력의 향배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투표용지 부실 관리 사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였다. 선거 관리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고 국민의 신뢰는 상처를 입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고민하고 청년들은 취업난에 신음하며 노년층은 생활비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민생 대책이 아니라 계파 갈등과 권력 재편 이야기뿐이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정치인 자신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자가 바르면 백성도 자연히 바르게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는 바름보다 유불리를 먼저 따지고 있다. 국민의 고통보다 당내 권력 지형에 더 관심을 보이고, 국가의 미래보다 다음 전당대회와 공천을 더 걱정하는 모습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성인은 자기 자신을 뒤로하고 백성을 앞세운다"고 했다. 또한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이 살아남는다"고 가르쳤다. 지도자는 권력을 움켜쥐려 할수록 결국 그 권력에 갇히게 되고, 백성의 목소리를 낮은 자세로 듣는 자만이 오래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권은 어떠한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상대 진영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데 더 익숙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양당 모두 선거 결과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한다는 점이다.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이를 내부 권력투쟁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선거 책임론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순간, 정치의 품격은 무너진다. 국민의 채찍질은 쇄신을 위한 것이지 계파 싸움의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책임 정치다. 권한을 가졌다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는 책임지는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 모두가 남의 탓을 한다. 정부는 야당을 탓하고 야당은 정부를 탓한다. 당 지도부는 전임 지도부를 탓하고 계파는 상대 계파를 탓한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서로를 향한 비난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성경 잠언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도자가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순간 몰락은 시작된다는 경고다. 역사를 돌아보면 국민의 경고를 무시한 정권과 정당 가운데 오래 살아남은 사례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저성장과 고물가, 인구 감소와 청년 실업, 인공지능(AI) 시대의 산업 재편,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권력 다툼에만 몰두한다면 국가는 방향을 잃고 국민은 희망을 잃게 된다. 정당은 권력을 얻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적 기관이다. 대표직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당권은 국민을 위한 봉사의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수단이 목적이 되고 봉사가 권력욕으로 변질되면 정치는 본래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배가 침몰할 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잘못을 따지는 싸움이 아니다. 승객을 구하기 위한 협력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도 필요한 것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다. 국민은 더 이상 변명하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국민은 책임지는 지도자, 듣는 지도자, 행동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여야는 이제 당권이라는 독배를 내려놓아야 한다. 선거 결과에 담긴 국민의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민생이라는 본분으로 돌아와야 한다. 쇄신 없는 권력투쟁의 끝은 공멸이다. 반대로 책임 정치와 협치의 정신을 회복한다면 위기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치는 권력을 위한 게임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일이다. 그 가장 단순한 진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대한민국 정치가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할 상식이다.
2026-06-18 17: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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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초과이익 배분, 갈등 아닌 '사회적 대타협'의 지혜 모을 때다
[경제일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의 역대급 초호황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인공지능(AI) 혁명의 물결을 타고 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지만, 이 ‘달콤한 결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둘러싼 노·사·정과 시민사회의 시선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려던 사회연대임금 긴급토론회마저 연기된 것은 이 문제가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숙제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초과이익 환원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명확하다. 오늘날 반도체 대기업이 거둔 천문학적 성과는 국가의 막대한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R&D) 투자, 전력·용수 등 사회기반시설 지원이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수많은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의 헌신이 결합된 결과물인 만큼, 이익의 일부를 산업 생태계와 사회 전체로 환원해 원·하청 격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우려 역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미국, 중국, 대만, 일본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벌이는 총성 없는 전장이다. 수십조 원 단위의 선제적 투자가 멈추는 순간 도태되는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명확한 기준도 없이 정부가 기업의 이익 배분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칙을 흔들고 미래 투자 의욕을 꺾을 수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이분법적 이념 논리로 해결할 수 없다. 과거 대기업들이 내놓았던 수많은 상생기금이나 사회공헌 사업이 일회성 생색내기에 그치며 구조적 불평등을 가리는 '면죄부'로 전락했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선의나 정부의 강제적 개입 모두 답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적 대타협'이다. 원청과 협력업체, 노사와 정부,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공신력 있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초과이익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정립하는 동시에,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 강화, 공정한 조세 체계 확립, 직업훈련 및 산업 전환 지원 등 노동시장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적 해법을 함께 도출해야 한다. 초과이익은 기업의 미래 투자, 노동자의 정당한 보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라는 세 가지 가치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은 공멸을 부를 뿐이다. 지금의 논쟁이 소모적 갈등으로 끝난다면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축인 반도체 산업마저 흔들릴 수 있다. 이번 논의를 성장과 분배, 경쟁력과 상생이 공존하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지혜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세계적 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2026-06-06 13: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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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초과이익 배분, 갈등 아닌 '사회적 대타협'의 지혜 모을 때다
[경제일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의 역대급 초호황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인공지능(AI) 혁명의 물결을 타고 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지만, 이 ‘달콤한 결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둘러싼 노·사·정과 시민사회의 시선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려던 사회연대임금 긴급토론회마저 연기된 것은 이 문제가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숙제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초과이익 환원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명확하다. 오늘날 반도체 대기업이 거둔 천문학적 성과는 국가의 막대한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R&D) 투자, 전력·용수 등 사회기반시설 지원이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수많은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의 헌신이 결합된 결과물인 만큼, 이익의 일부를 산업 생태계와 사회 전체로 환원해 원·하청 격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우려 역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미국, 중국, 대만, 일본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벌이는 총성 없는 전장이다. 수십조 원 단위의 선제적 투자가 멈추는 순간 도태되는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명확한 기준도 없이 정부가 기업의 이익 배분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칙을 흔들고 미래 투자 의욕을 꺾을 수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이분법적 이념 논리로 해결할 수 없다. 과거 대기업들이 내놓았던 수많은 상생기금이나 사회공헌 사업이 일회성 생색내기에 그치며 구조적 불평등을 가리는 '면죄부'로 전락했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선의나 정부의 강제적 개입 모두 답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적 대타협'이다. 원청과 협력업체, 노사와 정부,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공신력 있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초과이익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정립하는 동시에,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 강화, 공정한 조세 체계 확립, 직업훈련 및 산업 전환 지원 등 노동시장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적 해법을 함께 도출해야 한다. 초과이익은 기업의 미래 투자, 노동자의 정당한 보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라는 세 가지 가치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은 공멸을 부를 뿐이다. 지금의 논쟁이 소모적 갈등으로 끝난다면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축인 반도체 산업마저 흔들릴 수 있다. 이번 논의를 성장과 분배, 경쟁력과 상생이 공존하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지혜의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세계적 기술 패권 전쟁 속에서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2026-06-05 07: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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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물에 매겨진 '탄소 청구서'…포스코·현대제철, 패러다임이 바뀐다
[경제일보] 철강의 ‘가격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철광석과 유연탄, 전기료, 인건비로 귀결되던 전통적 원가 방정식에 ‘탄소’라는 무거운 청구서가 추가되면서다. 이제 쇳물 1톤을 뽑아낼 때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뿜어냈는지가 수출 경쟁력은 물론, 글로벌 고객사의 구매 조건과 자본 시장의 평가를 좌우하는 시대가 열렸다. 올해 1월 1일부터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확정기간이 시작되면서, 철강 등 대상 품목의 내재 배출량은 본격적인 비용 산정 대상이 됐다. EU 수입자는 올해 수입분에 대해 2027년부터 CBAM 인증서를 구매·제출해야 하고, 이 부담은 한국 철강사의 수출 가격과 고객사 구매 조건을 압박하는 새로운 원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한복판에는 한국 철강산업을 이끌어온 두 거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서 있다. 현재 이들이 벌이는 진검승부는 과거처럼 ‘누가 고로(高爐)에서 더 많은 쇳물을 쏟아내느냐’, ‘누가 더 싼 값에 강재를 밀어내느냐’의 1차원적 물량전이 아니다. 앞으로의 철강 패권은 누가 더 탄소를 적게 배출하면서도 고품질의 돈 되는 철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 이를 위해 고로의 절대강자 포스코는 쇳물을 끓이는 공정 자체를 뜯어고치는 험난한 길을 택했고, 현대제철은 범(汎)현대라는 강력한 ‘캡티브 마켓(내부 시장)’을 지렛대 삼아 전기로와 자동차강판을 결합한 차별화된 전환 경로를 구축하고 있다. “기술의 포스코 vs 공급망의 현대제철”…엇갈린 ‘탈탄소’ 해법 12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가 꺼내든 승부수는 ‘공정의 근본적 혁신’이다. 기존 고로 기반의 막대한 생산 규모와 고급강 기술력은 유지하되,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저탄소 원료 기술을 동시다발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 기후기술 기업 일렉트라(Electra)와 맺은 저탄소 철 생산 기술 공동개발 협약이 대표적이다. 일렉트라는 전기화학 반응을 통해 철광석에서 불순물을 솎아내고 고체 철을 얻는 기술을 쥔 기업으로 연산 500톤 규모의 시범공장을 올해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포스코는 자사의 직접환원제철 기술에 일렉트라의 전기화학 기법을 접목해 조기 상업 생산의 길을 닦겠다는 복안이다. 궁극적으로 포스코가 닿고자 하는 종착지는 ‘수소환원제철’이다.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쓰는 차세대 공정으로 고로 대비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이다. 다만, 실제 탄소 저감 효과는 수소 생산 방식과 전력의 탄소집약도에 좌우된다. 포스코는 포항제철소 내에 전담 개발센터를 꾸리고 연산 30만 톤급 시험 설비(데모플랜트) 구축에 나섰다. 광양제철소에 신설되는 대형 전기로 역시 탄소 저감 강재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핵심 인프라다. 포스코의 저력은 반세기에 걸쳐 축적된 세계 최고 수준의 일관제철 경험과 폭넓은 글로벌 고객망에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거대한 덩치가 탈탄소 시대엔 가장 무거운 짐이다. 철강 산업의 문법 자체를 갈아엎어야 하는 만큼 천문학적인 자본과 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혁신의 기회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지난한 궤도 수정에 성공한다면, 포스코는 글로벌 철강업계의 새로운 기술 표준(Standard)으로 군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현대제철은 ‘공급망의 진화’로 맞불을 놨다. 고로의 역사와 규모 면에서는 포스코에 한발 비켜서 있지만, 이들에겐 현대자동차그룹이라는 가장 확실하고 든든한 우군이 있다. 현대제철이 앞세운 저탄소 철강 브랜드 ‘하이에코스틸(HyECOsteel)‘은 철스크랩과 HBI 등을 전기로에서 녹인 쇳물을 고로 쇳물과 합탕한 뒤 전로 공정을 거쳐 생산하는 전기로-고로 복합프로세스 제품으로 기존 자사 고로재 대비 탄소배출을 20% 이상 줄인 것이 특징이다. 단기적으로는 주력인 자동차강판에 이를 집중 적용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신(新)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제철의 구상은 이미 양산 단계에 진입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2월부터 탄소저감강판 양산에 돌입했고, 연내 강종 인증 범위를 53종까지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부터 탄소저감 철강재를 국내·유럽 생산 차종에 일부 적용하고, 적용 강종과 물량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안방선 혈투·해외선 동맹…‘녹색 쇳물’은 공짜가 아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미국 루이지애나 프로젝트에서 드러난 양사의 묘한 역학관계다. 지난해 말 공시와 국내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대제철·포스코·현대차·기아는 미국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 프로젝트의 투자 구조를 확정했다. 현대제철은 미국 현지 법인을 통해 총 58억 달러(약 8조원)를 투입, 연산 270만톤 규모의 제철소 건립을 추진 중이다. 현대제철(50%)을 필두로 포스코(20%), 현대차·기아(각 15%)가 한 배를 탔다. 국내 시장에서 이들은 자동차강판과 후판을 두고 치열하게 맞붙는 경쟁자다. 하지만 국경 밖의 사정은 다르다. 높은 관세와 옥죄어오는 탄소 규제, 자국 중심주의라는 거센 파도 앞에서 한국 기업끼리의 소모전은 공멸을 뜻한다. ‘안방에서는 싸우되, 해외에서는 뭉쳐야 산다’는 냉혹한 현실 인식이 탄소 원가전쟁 시대의 새로운 합종연횡을 만들어낸 셈이다. 물론 양사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포스코는 본사 철강 사업에서 환율 상승에 따른 원료비 부담으로 이익이 줄었지만, 해외 철강법인 판매 확대와 원가절감 효과로 철강부문 전체 이익은 개선됐다. 현대제철의 경우 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 대비 크게 감소했다. 탈탄소가 기업의 명운을 건 숭고한 미래 투자라 할지라도 당장 재무제표에 찍히는 막대한 비용의 압박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철강업계의 얄궂은 현실이다. 전기로 비중을 높인다 한들 천문학적인 전력비와 국내 전력망의 높은 탄소배출계수라는 근본적 한계를 풀어내야 하는 숙제도 남는다. 진정한 그린스틸은 그저 ‘값싼 전기’가 아니라 ‘깨끗한 전기’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 패권 전쟁은 ‘친환경’이라는 매끄러운 수사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며 “비용과 가격, 품질과 납기, 나아가 국가 제조업의 경쟁력이 통째로 걸린 산업 구조의 대수술”이라고 했다. 이어 “녹색 쇳물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라며 “고객사가 저탄소 철강에 기꺼이 프리미엄 지갑을 열 것인지도 미지수다. 철강사의 전환은 단순한 환경 캠페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기술의 판을 엎으려는 포스코와 공급망의 룰을 바꾸려는 현대제철. 승자의 윤곽은 아직 희미하다. 과거 용광로의 온도와 크기로 군림했던 철강업의 잣대는 이제 무용지물이다. 가장 적은 탄소로, 최고 품질의 철을, 가장 경쟁력 있는 가격에 안정적으로 뽑아내는 자만이 새로운 철의 제국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철강 거인들의 사투를 한낱 기업 간 점유율 경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이는 결국 한국 제조업의 튼튼한 뼈대가 다가올 10년 뒤에도 굳건히 버텨낼 수 있을지를 묻는 가장 엄중한 시험대다.
2026-05-12 07: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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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은 파업 후 무엇을 잃었나
[경제일보] 노동은 신성하고, 연대는 자유로운 인간의 권리다. 자신의 땀방울에 합당한 몫을 요구하는 것은 시장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보편적 ‘정의(Justice)’에 부합한다. 노조가 정당한 보상과 투명한 기준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자, 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치러야 할 민주적 과정이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단행되는 굵직한 파업은 결코 회사 내부의 좁은 울타리 안에 갇힌 고립된 섬으로 남지 않는다.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예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얄팍한 이분법에 갇혀 있다. 한쪽에서는 노조의 정당한 요구를 전적인 ‘탐욕’이나 ‘귀족 노조의 몽니’로 매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파업이 초래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그저 ‘사측의 뻔한 엄살’로 치부해 버린다. 이와 같은 두 가지 극단적 시각은 모두 ‘진리(Truth)’에서 빗겨나 있다. 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무겁고 복잡하다. 반도체라는 현대 문명의 쌀을 생산하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멈춰 설 때, 그 파장은 일개 기업의 노사 갈등을 넘어 생태계 전체에 잔혹한 청구서를 내민다. 자동차, 항공, 엔터테인먼트 등 최근 해외에서 벌어진 대형 파업의 궤적은 강한 노조일수록 자신들의 ‘자유(Freedom)’가 수반하는 막대한 비용에 대해 사회와 정직하게 대화해야 한다는 서늘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 UAW·할리우드 파업이 남긴 공급망 붕괴의 경고 기계음이 멎은 공장은 적막하지만, 그 적막이 파생시키는 파음은 국경을 넘어 요동친다. 지난 2023년 미국 전미자동차노조(UAW)가 포드, GM, 스텔란티스 등 이른바 자동차 ‘빅3’를 상대로 벌인 ‘스탠드업 파업(Stand-up Strike)’은 현대 산업 생태계가 얼마나 촘촘하고도 연약하게 얽혀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 바 있다. 미국 AP통신과 로이터(Reuters) 통신이 인용한 경제컨설팅업체 ‘앤더슨이코노믹그룹’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파업 6주 차를 기준으로 발생한 직접적인 경제 손실만 무려 104억 달러(한화 약 14조원)를 넘어섰다. 더욱 뼈아픈 진실은 타격의 영점이 완성차 업체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심층 보도에 따르면, 파업 4주 차에 이미 리어, 마그나 등 주요 부품업체와 영세한 2·3차 협력사가 입은 임금·수익 손실만 약 26억7000만 달러에 달했다. 노조가 사측의 항복을 받아내는 동안 방파제 없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생계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같은 해 발생한 미국 할리우드 작가 및 배우 노동조합(WGA·SAG-AFTRA)의 동반 파업 역시 궤를 같이한다. 인공지능(AI)의 무분별한 활용에 반대하고 정당한 보상 구조를 요구한 그들의 명분은 시대적 정의에 부합했다. 하지만 미국 CNN 방송과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이 전한 파업의 후폭풍은 참혹했다. 영화와 TV 제작이 전면 중단되면서 캘리포니아와 조지아 등 제작 중심 지역의 일일 촬영 스태프, 소규모 외주 제작사, 심지어 촬영장 인근의 식당과 세탁소 등 지역 상권이 떠안은 경제적 손실은 6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됐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밖의 평범한 이웃들이 파업의 가장 무거운 비용을 대신 치른 셈이다. 이들 사례들은 삼성전자에 매우 뚜렷한 시사점을 남긴다. 평택과 화성의 반도체 라인이 멈추면 단순히 삼성전자라는 거대 기업의 영업이익 감소로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장비·소재·부품 협력사는 물론이고, 삼성의 메모리에 의존하는 전 세계 AI 서버·데이터센터 공급망 전체가 짙은 불확실성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 보잉·루프트한자가 경험한 ‘신뢰 상실’의 청구서 파업의 가장 무서운 비용은 공장의 가동이 멈춘 물리적 시간이나 미지급 임금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2024년 약 3만3000명이 참여한 미국 보잉(Boeing) 노조의 파업은 737 MAX, 777 등 핵심 상업용 제트기 생산을 완전히 중단시켰다. 7주간의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38% 임금 인상이라는 노조 측의 승리로 타결됐지만, 회사가 치른 대가는 혹독했다. 보잉은 전체 직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1만7000명 감원이라는 뼈아픈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어야 했고, 3분기에만 50억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글로벌 항공사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납기 지연’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는 점이다. 보잉의 위기는 반도체 납기 신뢰가 핵심 경쟁력인 삼성전자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 글로벌 B2B 시장에서 공급자가 한 번 신뢰를 잃으면, 고객은 다음 계약에서 단가보다 ‘안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따지게 된다. 이는 독일의 국적 항공사 루프트한자(Lufthansa) 사례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와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2024년 연이은 노조 파업으로 루프트한자가 입은 누적 비용 2억5000만 유로 중 운항 취소 등으로 인한 직접 비용은 1억 유로에 불과했다. 나머지 1억5000만 유로는 파업의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고객들이 선제적으로 경쟁 항공사로 예약을 돌리면서 발생한 ‘장부 밖의 손실’이었다. 반도체 시장의 큰손 고객들 역시 공급망 리스크가 감지되는 순간, 언제든 대만 TSMC나 미국 마이크론 등 경쟁사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다. 한 번 떠난 고객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 ‘18일의 멈춤’보다 치명적인 ‘내일의 상실’ 삼성전자가 직면한 위험은 기우가 아니라 가시화된 현실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기본급 7% 인상과 연간 영업이익의 15% 성과급 배정 등을 요구하며 평택 반도체 단지 생산량의 절반에 타격을 줄 수 있는 ‘18일간의 총파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신제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사내 메시지를 통해 “고객 이탈과 경쟁력 하락, 나아가 자본 유출과 세수 감소 등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 것은 사측의 방어적 엄살로만 폄하할 수 없는 냉혹한 진리다. 노조가 경쟁사와의 보상 격차를 지적하고, 경영진의 불투명한 성과급 산정 기준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타당한 문제 제기다. 그들은 수만 명을 운집시킨 압도적 동원력을 통해 노동조합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증명했다. 다만, 수만명의 결속력이 곧바로 산업 생태계 전체를 뒤흔들 명분까지 무조건적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국가의 명운을 짊어진 핵심 전략 산업의 노조일수록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몫’과 함께 ‘우리가 라인을 멈췄을 때 이름 없는 협력사와 고객이 치러야 할 비용’을 조합원과 국민에게 정직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전장(戰場)에서 고객은 기다려주지 않고, 경쟁사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삼성전자 노조가 진정 조합원들의 장기적 이익과 일자리의 안녕을 원한다면, 단기적인 보상 획득과 장기적 경쟁력 훼손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잠시 멈추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파업은 언젠가 타결의 순간을 맞이하고 라인은 다시 돌아가겠지만, 한 번 훼손된 고객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며 “글로벌 초일류 기업과 구성원들이 함께 치러야 할 가장 비싸고 고통스러운 청구서는 매출 손실이 아니라 영영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고객의 신뢰”라고 했다. 이어 “사측과 노조 모두가 공멸의 청구서를 찢어버릴 상생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2026-05-08 16: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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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이름의 미궁, 언제까지 죽음의길을 찾을 것인가
경남 진주 CU 물류센터 앞에서 울려 퍼지던 구호가 비명으로 바뀌었다. 원청의 교섭 참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화물연대 조합원이 대체 차량과 충돌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달 10일,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 현장의 혼란이 비등점으로 치닫더니,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소실로 이어진 것이다. 노조 측은 이번 사고가 법 시행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긋는다. 이전부터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받아왔기에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라는 목소리를 높여왔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형용모순이다.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범위를 확장하는 것 자체가 노란봉투법의 골자이자 핵심 쟁점이기 때문이다. 법의 울타리 안에서 권리를 찾으려는 투쟁이 법의 모호함이 만든 균열 사이에서 비극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노란봉투법 시행 한 달 만에 나타난 지표들은 가히 충격적이다. 하청 노조 소속 14만여 명이 368개 원청 기업을 상대로 동시다발적인 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단체교섭 거부 시정 요구’ 건수는 단 한 달 만에 지난해 1년 치에 육박하는 279건을 기록했다. 산업 현장은 그야말로 법적 분쟁과 대립의 화약고가 되었다. 그동안 노란봉투법 시행 전부터 여러 차례 지면을 통해 경고해 왔다.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붙이는 입법은 노사 모두를 공멸의 길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현장의 불확실성이 물리적 충돌로 비화할 수 있음을 누차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관계 당국은 귀를 닫았다. '입법 성과'라는 전리품에 취해 현장의 비명을 외면한 결과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차가운 주검이다.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뒤따라야 우리는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인가. 사태의 근본 원인은 법 조항의 추상성에 있다.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문구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해석을 낳는다. 원청 기업 입장에서는 수많은 하청업체 노조와 일일이 교섭 테이블에 앉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자칫 경영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를 느낀다. 반면 노동자들은 직접적인 지시를 내리는 진짜 주인을 찾겠다며 거리로 나선다. 이 평행선 같은 대립 사이에는 ‘대화’가 실종되어 있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법 조문을 방패 삼고, 집단행동을 창 삼아 맞붙는다. 고대 인류의 지혜를 담은 경전들은 한결같이 가르친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적 상식이자 인류 문명을 지탱해 온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지금의 노사 관계에는 오직 ‘나의 권리’만 있을 뿐 ‘상대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누구 한쪽의 완승으로 끝날 수 없는 싸움이다. 노사 관계는 일방향적인 복종도, 파괴적인 투쟁도 아닌 '상대성'에 기반한 계약 공동체다.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의 숨통을 조이는 방식은 결국 스스로가 속한 생태계를 파괴하는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첫째, 정부와 입법부는 즉각적인 법 보완에 착수해야 한다. 사용자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여 현장의 자의적 해석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모호한 법은 정의가 아니라 흉기다. 산업 생태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교섭 체계를 설계하고, 현장의 혼란을 중재할 전문적인 기구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노동계는 투쟁의 선명성보다 협상의 실효성을 고민해야 한다. 교섭권 쟁취가 곧 생존권 보장이라는 믿음은 이해하나, 그것이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방식이어야 하는지는 자문해봐야 한다. 셋째, 경영계는 변화된 시대 정신을 수용하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복잡해진 고용 구조 속에서 원청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갈등을 봉합할 수 없다.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곧 원청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하다. 진주에서 스러진 노동자의 명복을 빌며, 우리는 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다. 죽음으로 쓴 경고장을 읽고도 대화와 타협의 자리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문명’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다. 자신의 입장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역지사지'의 지혜가 절실하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란, 법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의 부족함을 대화로 채우려 노력할 때 완성된다. 빠른 시일 내에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의 '예견된 인재'를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를 넘어 범죄에 가깝다. 비극의 사슬을 끊어내는 열쇠는 결국 서로를 향한 '열린 마음'과 '책임 있는 자세'에 있다. 오늘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내일의 희망이 되려면, 지금 당장 극한의 대립을 멈추고 타협의 테이블로 복귀해야 한다. 그것이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무너진 현장을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2026-04-21 1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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