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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은 뛰는데 왜 서민 경기는 뛰지 않는가
[경제일보] 한국 경제의 성적표만 놓고 보면 요즘처럼 반가운 때도 드물다. 수출이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특히 반도체가 수출 증가를 이끌면서 대외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월간 수출액이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상반기 수출도 같은 기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7월 수출 역시 988억9000만 달러로 역대 2위였으며 반도체 수출은 410억1000만 달러에 달했다. 숫자만 보면 한국 경제가 힘차게 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장과 골목의 표정은 그만큼 밝지 않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자영업자들은 손님이 줄었다고 말한다. 가계는 월급보다 빠르게 오르는 생활비에 지갑을 닫고 있다. 수출은 역대급인데 왜 국민이 느끼는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가. 문제는 거시경제 지표와 실물경제의 체감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반도체의 선전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AI 산업 확산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우리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6월 반도체 수출은 448억2000만 달러로 사상 처음 4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상반기 반도체 수출은 1924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경제 전체를 반도체 하나의 성적표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는 고도의 자동화와 자본집약적 생산구조를 갖고 있어 수출 증가가 고용과 내수 확대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반도체 수출이 늘었다고 동네 식당 매출이 함께 증가하는 것도, 대기업의 수출 호황이 청년 일자리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성장의 미스매치’다. 수출이 늘고 기업 실적이 좋아지는 것은 분명한 호재다. 문제는 성장의 과실이 어디로 흘러가느냐다. 대기업과 첨단산업에 집중된 성과가 중견·중소기업과 서비스업, 자영업자, 근로자에게 충분히 확산되지 않는다면 국민이 체감하는 풍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수출 호황을 내수 회복으로 연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첨단산업의 성과가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중소·중견기업으로 확산되도록 공급망을 강화하고,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 해외시장 진출까지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에게도 단기 일자리 숫자보다 AI·반도체·바이오·로봇·에너지 등 미래 산업과 연결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내수와 서비스업을 살리는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자영업자에 대한 일회성 지원을 넘어 임대료와 금융비용 등 고정비 부담을 낮추고 생산성이 낮은 부문의 구조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 관광·문화·의료·콘텐츠·돌봄 등 고용 효과가 큰 서비스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는 것도 방법이다. 가계의 실질소득을 높여 소비 여력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숫자에 취해서는 안 된다. 수출이 잘된다고 경제가 저절로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체감경기가 어렵다고 수출 호조의 가치를 깎아내려서도 안 된다. 두 현실을 함께 보는 것이 경제를 제대로 보는 상식이다. 수출은 우리 경제의 엔진이고 내수는 그 엔진이 움직이는 도로다. 엔진만 아무리 좋아도 도로가 무너지면 자동차는 제대로 달릴 수 없다. 진짜 경제 회복은 수출 통계표에서 끝나지 않는다. 청년이 첫 직장을 얻고, 직장인이 월급의 실질가치를 체감하며, 자영업자가 저녁 장사를 걱정하지 않고, 평범한 가정이 내일을 불안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성장의 의미가 완성된다. 경제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다. 반도체 수출의 기록을 축하하되 그 기록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수출의 온기가 산업 전반으로, 기업에서 가계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 ‘수출은 잘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라는 국민의 질문에 경제정책이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화려한 경제지표도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성장만이 아니다. 성장의 과실이 더 넓고 깊게 국민에게 돌아가는 성장, 그것이야말로 진짜 경제성장이다.
2026-08-23 1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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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호르무즈 美 영토 선언"…이란 반발 속 유가·해상교통 긴장 고조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 영토로 선언하겠다”고 언급하면서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법상 영유권 주장이라기보다 미군의 해상 봉쇄를 근거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을 과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뉴욕주 롱아일랜드 연설에서 “이란을 완전히 패배시킨 뒤 조만간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 영토로 선언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그는 “우리가 그곳을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원하지 않는 한 어떤 배도 통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도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전략 수로다.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의 상당 부분이 이곳을 통과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 이후 해협 봉쇄를 지속하는 가운데 나왔다.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이란은 미국의 봉쇄와 제재가 해협 폐쇄의 원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 “핵무기 허용 못 해”…이란 “해협은 이란 통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란과의 군사 충돌에 대해 “우리는 정말 잘하고 있다”며 “내가 원했던 것보다 군대를 조금 더 많이 사용하긴 했지만 괜찮다. 이란이 핵무기를 갖도록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재무부도 이란을 상대로 전례 없는 경제 조치를 예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이란 측은 호르무즈 해협의 개폐 여부는 이란이 결정할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 바시즈 민병대의 호세인 타엡 신임 사령관은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의 통제와 관리 아래 있다”고 밝혔다. 이란 군 당국도 선박이 이란의 승인 없이 해협을 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양측 주장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미국은 해상 봉쇄와 군사력을 근거로 실질적 통제권을 강조하고 있고, 이란은 지리적·군사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국 통제권을 주장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협상용 압박 카드이자 국내 여론을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해협 통항 급감…유조선 피격에 긴장 확산 실제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항은 크게 줄어든 상태다. 로이터통신은 선박 추적업체 자료를 인용해 최근 해협 통과 선박 수가 하루 8척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전했다. 전쟁 전 하루 130~140척이 통과하던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해상 물류가 마비에 가까운 수준으로 위축된 셈이다. 긴장은 유조선 공격으로도 번지고 있다. AP통신은 14일 아랍에미리트(UAE) 국영 ADNOC이 운항하는 유조선 2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중 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UAE는 이란 혁명수비대를 배후로 지목하며 “해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사상자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위험이 다시 부각됐다. 미국은 이란 항구에 대한 해상 봉쇄를 장기화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 압박을 강화하고 해상 봉쇄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보이면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더 위축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은 제재 해제와 동결자산 반환, 전쟁 피해 보상 등을 요구하며 해협 재개방을 협상 카드로 삼고 있다. ◆국제유가 다시 상승…세계 경제 부담 커져 호르무즈 리스크는 국제유가를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4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88.52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82.40달러로 각각 1달러 이상 올랐다. 브렌트유와 WTI 모두 주간 기준 상승세를 보였다. 유조선 공격과 미·이란 협상 교착, 러시아 수출 터미널에 대한 드론 공격 등이 겹치며 공급 불안이 커진 영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휘발유 가격 상승에 대한 불만도 의식하고 있다. 그는 미국인들이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해 “조금 더 높은 휘발유 가격”을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장기전과 유가 상승이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시아 수입국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핵심 통로다. 통항 차질이 장기화하면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등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운송비 상승과 공급선 전환 압박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일부 아시아 구매자들이 러시아산이나 미국산 원유로 대체 조달을 검토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협상 교착…유럽 외교 채널도 가동 외교적 해법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AP통신은 미국과 이란 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미국이 오스트리아와 그리스 등 유럽 국가들과 접촉하며 외교 채널을 넓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스트리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있는 국가이고, 그리스는 해운 이해관계가 큰 국가라는 점에서 호르무즈 사태와 관련한 외교적 역할이 거론된다. 다만 이란은 미국의 제재 해제와 동결자산 반환, 전쟁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의 핵 개발 포기와 해협 재개방, 지역 내 친이란 세력의 공격 중단을 압박하고 있다. 양측 모두 물러서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면서 협상 재개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미국 영토’ 발언이 실제 영토 편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군사적 봉쇄 장기화와 추가 제재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수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수사가 시장과 군사 현장에서 실제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 국제정세 전문가는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시장의 목줄과 같은 곳”이라며 “미국과 이란이 통제권을 두고 정면 충돌할수록 유가, 해운, 보험료,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충격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협상 압박용인지 실제 봉쇄 장기화 신호인지가 향후 시장의 핵심 변수”라고 덧붙였다.
2026-08-15 09: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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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경선, 선명성 경쟁보다 집권당 책임을 보여라
[경제일보] 더불어민주당 차기 대표 경선이 초박빙으로 흐르고 있다. 정청래 후보는 부산·울산·경남 권리당원 투표에서 김민석 후보의 연승을 저지했다. 앞선 충청권 경선에서도 두 후보의 격차는 1%포인트에 미치지 못했다. 누가 당권을 쥘지 예측하기 어려운 접전이다. 경선이 치열한 것은 정당에 나쁜 일이 아니다. 후보 간 경쟁은 당원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고 지도부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번 경선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같게 한 ‘1인 1표제’가 적용된 것도 당원주권 강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당비를 내고 당의 활동에 참여한 당원이 대표 선출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 경선에서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누가 권리당원의 박수를 더 많이 받느냐가 아니다. 누가 집권당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국민의 삶에 책임질 수 있느냐다. 당 대표를 뽑는 선거이지만 민주당은 야당이 아니다. 대통령실과 정부, 국회 다수당을 연결하며 국정의 성패를 함께 책임져야 하는 집권여당이다. 그런데 경선이 과열될수록 후보들의 메시지는 당 안쪽으로 향하기 쉽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 야당과의 관계,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를 놓고 누가 더 강경하고 선명한지를 겨루려는 유혹이 커진다. 적극적으로 투표하는 핵심 당원에게는 강한 구호와 단호한 태도가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환호받은 말이 국정 운영에서도 좋은 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선명성 경쟁은 정당의 외연을 좁힌다. 상대보다 한발 더 강한 주장을 내놓고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개혁 의지 부족’이나 ‘대통령 흔들기’로 몰아붙이기 시작하면 당내 토론은 사라진다. 집권당 내부에서조차 정책의 부작용과 현실적인 한계를 말하기 어려워진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당심은 존중해야 하지만 민심과 같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권리당원은 정치 참여도가 높고 당의 가치와 노선에 충실한 집단이다. 그러나 무당층과 중도층,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시민, 당의 정책에 비판적인 국민까지 그대로 대표하지는 않는다. 당원들의 열망을 국민 전체의 요구로 착각하는 순간 집권당은 민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집권당에는 야당보다 무거운 현실의 제약이 따른다. 야당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여당은 재원을 마련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정책 결과까지 책임져야 한다. 지지층이 원하는 정책이라도 경제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법률과 행정 체계에서 실행할 수 있는지 따져야 한다.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이 대표적이다. ‘검찰개혁 완수’라는 구호는 당원들에게 강한 호응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수사 공백과 사건 지연, 범죄 피해자 보호에 대한 대안 없이 권한부터 없앤다면 그 시행착오의 비용은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이 부담한다. 개혁의 속도를 과시하는 것보다 무엇으로 빈자리를 채울지 설계하는 일이 집권당의 책임이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집값 안정과 투기 억제라는 명분만 앞세워 대출을 과도하게 조이면 현금 보유자만 유리한 시장이 될 수 있다. 보유세와 거래세를 여론에 따라 반복해서 손질하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은 무너진다. 당원에게 박수받는 강한 규제가 반드시 무주택자와 실수요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 문제에서는 더욱 냉정해야 한다. 반도체 수출은 급증했지만 내수와 고용, 자영업자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미국의 관세 압박과 중국의 산업 추격, 고유가와 금융시장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당 대표가 내놓아야 할 것은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언어가 아니라 성장과 일자리, 산업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해법이다. 당정 관계에 대한 후보들의 태도도 중요하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뒷받침하는 것과 대통령실의 판단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은 다르다.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여당이 먼저 경고하고 조정해야 한다. 반대로 당내 강경론이 국정의 안정성을 흔들 때는 대표가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지시만 기다리는 전달자가 된다면 국회 다수당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강성 당원의 요구를 그대로 대통령실에 전달하는 확성기가 돼서도 안 된다. 대통령과 당원, 국민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잘못된 정책에는 책임 있게 제동을 거는 것이 집권당 대표의 역할이다. 국민 여론조사 30%를 반영한다고 민심과의 간극이 저절로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경선 규칙상 국민의 의견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보다 후보들이 실제로 누구를 바라보며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국민 여론조사는 민심을 얻기 위한 형식적인 관문이 아니다. 당 밖의 국민에게도 신뢰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이어야 한다. 두 후보는 남은 경선에서 자신이 상대보다 더 강한 개혁가라는 점을 증명하는 데 매달려서는 안 된다. 검찰개혁 이후 수사 공백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반도체 호황을 내수와 고용으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부동산 공급과 가계부채를 어떤 원칙으로 관리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 야당과 무엇을 놓고 협상하고 어떤 사안에서는 타협하지 않을지도 밝혀야 한다. 정당은 지지층의 요구를 모으는 조직이지만 집권당은 그 요구를 국가 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과 충돌까지 책임져야 한다. 당원에게 듣기 좋은 말만 되풀이하다가 정책 실패가 발생하면 국민에게 이해를 요구하는 정치는 무책임하다. <논어>에는 “군자는 화합하되 같기만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이 나온다. 건강한 정당은 같은 목표를 향하면서도 다른 의견을 허용한다. 이견을 배신으로 규정하고 선명한 목소리만 남긴 정당은 강한 정당이 아니라 잘못을 바로잡을 능력을 잃은 정당이다. 민주당의 이번 경선은 단순히 당권의 주인을 가리는 선거가 아니다. 집권 1년을 지난 이재명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국정 성과를 만들 수 있을지를 좌우하는 선택이다. 대표가 강성 지지층의 환호에 기대 당내 주도권만 행사한다면 대통령과 당, 국민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당원이 대표를 뽑지만 대표가 책임질 대상은 국민 전체다. 당심을 얻고도 민심을 잃는다면 경선에서 이기고 국정에서 지는 결과가 된다. 민주당 후보들이 보여줘야 할 것은 누가 더 선명한지가 아니다. 누가 더 넓게 듣고 더 현실적으로 판단하며 집권당의 결과에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다.
2026-08-03 15: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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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하메네이 장례식 공식 개시…반미 구호 속 엿새 애도
[경제일보] 이란이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장례 절차를 공식 시작했다. 지난 2월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뒤 전쟁 상황 탓에 장례를 미뤄온 지 4개월여 만이다. 미국 독립기념일이자 건국 250주년인 4일 장례가 본격화되면서 이란 내부의 반미·반이스라엘 정서도 다시 고조되고 있다. 장례식은 4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대형 예배장소인 이맘호메이니 대모살라 광장에서 시작됐다. 하메네이의 운구 행렬이 도착하기 전부터 광장 주변에는 추모객이 몰렸다. 일부 조문객들은 복수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을 들고 “미국에 죽음을”, “복수”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란 당국은 장례 기간 대규모 추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보고 교통, 숙박, 식사 지원에 나섰다. 로이터는 이란 당국이 앞으로 이어질 장례 행렬에 수백만명의 동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메네이는 1989년 최고지도자에 오른 뒤 37년간 이란의 정치와 군사, 종교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의 장례는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니라 이슬람공화국 체제 결속을 과시하는 정치적 무대이기도 하다. 장례 일정은 오는 9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테헤란 모살라에서 일반 조문이 진행된 뒤 운구는 이란 중부 종교도시 곰으로 옮겨진다. 이후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 나자프와 카르발라에서도 장례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마지막 매장은 하메네이의 고향이자 이란 북동부의 대표 시아파 성지인 마슈하드 이맘 레자 성지 인근에서 진행된다. 하메네이는 지난 2월28일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관저에서 가족 일부와 함께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슬람 장례 관습상 매장은 사망 직후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전쟁과 보안 위험 때문에 장례는 휴전 이후로 연기됐다. 이란 입장에서는 이번 장례가 전쟁을 견뎌냈다는 체제의 내구성을 보여주는 행사이자 대미·대이스라엘 강경 기조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행사장 주변에서는 군과 경찰, 바시즈 민병대의 경계가 강화됐다. 이란은 장례 기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추가 공격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장례가 미국 독립기념일과 겹쳤다는 점도 상징성이 크다. 이란은 하메네이 장례를 통해 반미 결집을 극대화하려 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한 보복 요구도 내부 여론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관심은 하메네이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모즈타바 하메네이 현 최고지도자의 참석 여부에도 쏠린다. 모즈타바는 부친이 숨진 2월28일 공습 당시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공개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장례식에 직접 참석할 경우 새 권력의 정통성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장면이 될 수 있지만 불참할 경우 건강 이상설과 권력 장악력 논란이 다시 커질 수 있다. 하메네이 장례식은 추모와 정치가 뒤섞인 장면이다. 이란 지도부는 대규모 조문 행렬을 통해 체제 결속과 반미 저항의 상징을 만들려 한다. 그러나 장례식이 끝난 뒤 이란이 마주할 현실은 더 복잡하다. 전쟁의 상처, 제재로 약해진 경제, 새 최고지도자의 정통성 문제, 미국과의 후속 협상이 동시에 남아 있다. 하메네이의 관이 마슈하드에 묻힌 뒤에도 이란 권력의 불안정성은 쉽게 묻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026-07-04 12: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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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블5가 멈춘 날, 한국 AI의 시간이 시작됐다
앤트로픽의 최신 인공지능(AI) 모델 페이블5와 미토스5가 멈췄다. 표면적인 이유는 보안이다. 안전장치를 우회하는 이른바 '탈옥' 가능성이 있고 이를 통해 소프트웨어 취약점 탐색이 사이버 공격에 악용될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외국 국적자의 접근을 차단했고 앤트로픽은 결국 전체 고객을 대상으로 해당 모델 사용을 비활성화했다. 여기까지 보면 하나의 보안 사고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미국이 인공지능을 반도체 다음의 전략물자로 공식 편입한 장면이다. 예전에는 칩을 막았다. 그다음에는 첨단 장비를 막았다. 이제는 AI 모델을 막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최상위 AI의 지능에 접근할 권리 자체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국적이었다. 미국 밖 이용자뿐 아니라 미국 내 외국인과 앤트로픽 내부의 외국 국적 직원까지 대상에 포함됐다. API 키와 결제 정보로 사용자를 구분하던 시대는 끝났다. 여권이 로그인 화면 위로 올라온 셈이다. "당신은 누구인가"가 아니라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가 인공지능 접근권의 마지막 질문이 된 것이다. 미국의 행태는 낯설지 않다. 미국은 늘 개방의 언어로 세계시장을 열어왔다. 자유무역을 말했고 혁신 생태계를 말했으며 글로벌 표준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결정적 기술이 안보와 연결되는 순간 문을 닫았다. 반도체에서 그랬고 첨단 장비에서 그랬으며 이제 AI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기업의 서비스라고 해서 끝까지 시장 논리로만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일이다. 마지막 스위치는 결국 워싱턴에 있다. 물론 미국에도 명분은 있다. 최상위 AI 모델은 더 이상 검색창의 연장선이 아니다. 긴 코드베이스를 읽고 취약점을 찾으며 생명과학 연구를 돕고 복잡한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하고 있다. 방어자에게 유용한 능력은 공격자에게도 유용하다. 미국 정부가 이를 안보 자산으로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문제는 방식이다. 특정 위험을 정밀하게 통제하는 대신 국적이라는 거친 잣대를 꺼내 들었다. 글로벌 업무 환경에서는 버튼을 누른 사람과 결과물을 받은 사람이 다를 수 있다. 한국 국적자가 미국 법인에서 일하고 싱가포르 법인이 결제하며 유럽 고객 데이터를 다루는 시대다. 국적만으로 접근권을 자르는 방식은 현실의 업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신뢰다. AI 인프라는 성능만으로 선택되지 않는다. 계속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업무 시스템에 한 번 들어간 모델은 전기나 통신망처럼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정부 지침 하나로 막힐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페이블5가 언제 다시 열릴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이미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리 핵심 업무가 미국 모델 하나에 얼마나 묶여 있는가. 내일 더 강력한 모델이 국적이나 용도, 외교 문제로 막히면 무엇이 멈추는가. 대체 모델은 있는가. 자체 튜닝은 가능한가. 오픈 모델로 버틸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시작된 순간 미국은 일부 신뢰 자본을 잃었다. 기술 패권국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경쟁자의 추격만이 아니다. 고객이 "이 인프라는 언제든 끊길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최고 성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겼다. 지속 가능성이다. 한국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소버린 AI는 더 이상 관료적 구호가 아니다. 산업 보험이자 디지털 안보이며 국가 경쟁력의 하부 구조다. 행정, 금융, 제조, 의료, 국방이 AI 위에서 돌아가기 시작하면 모델 접근권은 선택재가 아니라 필수재가 된다. 남의 나라 안보 판단에 따라 멈출 수 있는 AI에 핵심 업무를 모두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다고 한국이 닫힌 모델의 작은 미국이 되자는 뜻은 아니다. 미국이 "누구는 못 쓴다"고 말할 때 한국은 "여기서는 만들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한국에서 개발하고 한국에서 검증하며 한국의 인프라 위에서 세계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 AI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에는 그럴 자산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 공급망이 있고 초고속 통신망과 데이터센터 운영 경험이 있다. 금융·제조·의료·공공행정처럼 규제가 복잡하고 품질 검증이 중요한 산업 현장도 갖추고 있다. AI가 진짜 돈을 버는 곳은 화려한 시연장이 아니라 이런 현장이다. 거대 모델 하나를 자랑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산업 데이터를 안전하게 연결하고 성능을 평가하며 보안을 통제하고 규제를 통과시키는 운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기업이 원하는 것은 가장 똑똑한 모델 하나가 아니다. 모델이 바뀌어도 업무가 멈추지 않는 구조다. 오늘은 미국 모델을 쓰고 내일은 한국형 모델을 쓰며 특정 업무에는 오픈웨이트 모델을 적용하더라도 전체 시스템이 흔들리지 않는 환경이다. 모델 라우팅, 품질 평가, 비용 최적화, 보안 통제, 감사 기록, 데이터 주권을 묶은 운영층이 진짜 승부처가 된다. 한국 AI 산업이 잡아야 할 곳도 바로 그 지점이다. 정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국산 모델 이름 몇 개를 지정하고 지원금을 배분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충분한 컴퓨팅 자원과 저렴한 추론 인프라, 안정적인 전력과 데이터센터, 공공 데이터의 안전한 개방, 산업별 평가 기준, 해외 개발자와 연구자가 들어올 수 있는 제도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AI 주권은 연구실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전력망과 통신망, 클라우드, 법·제도, 인재 정책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기업도 선택해야 한다. 미국 모델을 붙여 업무 효율을 조금 높이는 수준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제조 공정과 고객 상담, 금융 심사, 네트워크 운용, 보안 관제 같은 실제 업무에 AI를 깊숙이 심고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데이터와 평가 체계를 자산으로 만들 것인가. 앞으로의 해자는 모델 크기가 아니라 현장에서 쌓이는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매일 축적되는 업무 데이터와 사람이 고친 흔적, 실패 사례, 규정 해석, 산업별 언어가 진짜 경쟁력이다. 페이블5 사태는 불편한 현실을 보여줬다. 우리가 사용하는 최고 수준의 AI 상당수는 남의 나라 법과 남의 나라 안보 판단 아래 있다. 오늘은 앤트로픽이고 내일은 다른 회사일 수 있다. 미국이 동맹이라고 해서 모든 지능을 끝까지 나눠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국가는 결국 자국의 이익을 먼저 본다. 그것이 국제질서의 냉정한 얼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이 통제의 언어를 강화할수록 세계는 대체지를 찾게 된다. 중국 모델을 쓰기에는 안보가 불안하고 미국 모델에만 기대기에는 접근권이 불안한 나라들이 늘어날 것이다. 한국이 그 사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개방형 AI 인프라 국가로 자리 잡는다면 새로운 길은 열린다. 반도체를 수출하던 나라에서 AI 운영 인프라를 제공하는 나라로 도약할 수 있다. 페이블5가 멈춘 날, 한국 AI가 가야 할 길도 분명해졌다. 닫힌 제국의 주변부가 될 것인가. 열린 항구가 될 것인가. 남의 모델이 허락한 만큼만 일할 것인가. 우리가 만든 인프라 위에서 세계가 일하게 할 것인가. AI 주권은 선언으로 오지 않는다. 끊겨도 버틸 수 있는 능력, 세계가 믿고 들어오는 생태계에서 온다. 미국은 페이블5를 잠그며 힘을 과시했다. 동시에 세계에 불안을 심었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그 불안을 기회로 바꾸는 것이다. AI 시대의 승자는 가장 높이 성을 쌓은 나라가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항구를 만든 나라가 될 것이다.
2026-06-14 15: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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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호르무즈 비밀작전으로 1억배럴 공급"…유가 방어 앞세워 이란 압박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군의 호르무즈 해협 비밀작전을 공개하며 1억배럴 이상의 원유가 시장에 공급됐다고 주장했다. 이란과의 군사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이 핵심 원유 수송로를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으로, 유가 안정과 대이란 압박을 동시에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지난달 미군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과 상선을 지원하는 비밀작전을 지시했다”며 “그 결과 1억배럴 이상의 석유가 해협을 지나 공개 시장에 공급됐다”고 밝혔다. 그는 상선 200척 이상이 해협을 안전하게 통과했다고도 주장했다. 다만 해당 원유 물량과 선박 수는 현재 공개자료 기준으로 독립 검증에 한계가 있다. ABC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숫자의 정확성을 즉시 확인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백악관 행사에서도 “매일 밤 수백만배럴의 석유를 끌어내 왔다”고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작전 방식과 기간, 참여 선박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시장의 급소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이 해협을 지난 석유 물동량은 하루 평균 약 2000만배럴로 세계 석유·석유제품 소비의 약 20%에 해당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UAE, 쿠웨이트, 카타르 등의 원유와 액화천연가스가 이 해협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 시장으로 이동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작전이 유가 급등을 막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가 아니라 85~90달러 수준에 있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실제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도 전날 호르무즈 해협과 걸프 지역의 선박 통항, 원유 수출이 최근 의미 있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상적인 에너지 흐름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내놨다. 이번 발언은 군사·외교적 신호도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아니라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있다”며 이란을 강하게 압박했다. 미국은 이란과 평화 합의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협상에 실패할 경우 강경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병행하고 있다. 호르무즈 작전 공개는 에너지 안보와 대이란 군사 압박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는 행보다. 시장 시선은 실제 통항 회복 속도와 이란의 대응에 쏠린다.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이 안정되면 국제유가에는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재확산되거나 상선 안전이 다시 흔들릴 경우 유가는 언제든 급등할 수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주요 원유 수입국은 호르무즈 리스크에 직접 노출돼 있다. 호르무즈는 단순한 해협이 아니다. 세계 경제의 혈관이자 중동 정세의 압력이 곧바로 유가와 물가로 번지는 통로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밀작전 공개는 유가 방어의 성과를 과시하는 정치적 선언이지만 시장이 원하는 것은 숫자의 주장보다 항로의 안정이다. 전쟁의 안개가 걷히기 전까지 호르무즈의 물길은 세계 경제의 가장 예민한 가격표로 남을 것이다.
2026-06-11 07: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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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엔비디아, PC방서 25년 동맹 과시…RTX Spark로 '아이온2' 시연
[경제일보] 엔씨와 엔비디아가 파트너십 25주년을 맞아 PC방에서 특별 회동을 가졌다. 게임 그래픽 기술로 시작된 양사의 협력이 인공지능(AI)과 피지컬 AI 영역으로 확장될지 주목된다. 엔씨는 김택진 대표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7일 서울 신논현역 인근 PC방에서 열린 ‘아이온2’ 이용자 행사에 깜짝 방문했다고 밝혔다. PC방은 엔씨와 엔비디아가 성장 기반을 다져온 상징적 공간이다. 엔씨는 2000년대 초 ‘리니지’ 시리즈를 시작으로 엔비디아와 게임 그래픽 기술 협력을 이어왔다. 두 사람은 현장에서 차세대 윈도용 AI PC 플랫폼 ‘RTX Spark’를 소개하고 지포스 RTX GPU와 RTX Spark 기반 노트북을 이용자에게 선물했다. RTX Spark 기반 노트북으로 엔씨 최신작 ‘아이온2’와 출시 예정작 ‘신더시티’ 플레이 화면도 공개했다. 이번 회동은 단순한 팬 이벤트를 넘어 양사의 기술 협력 방향을 보여주는 자리로 해석된다. 엔비디아는 게임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서 성장한 뒤 AI 반도체와 로보틱스 플랫폼 기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엔씨 역시 게임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AI 연구와 피지컬 AI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엔씨와 엔비디아는 게임스컴, 지스타,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 등 주요 글로벌 행사에서 공동 행보를 이어왔다. 특히 ‘신더시티’는 지난해 독일 게임스컴에서 엔비디아 RTX 플래그십 타이틀로 공개됐다. 엔씨는 해당 게임에 DLSS 4 멀티 프레임 생성, 레이 리컨스트럭션, 엔비디아 리플렉스 등 최신 RTX 그래픽 기술을 적용해 개발 중이다. 김택진 엔씨 대표는 “2000년대 초부터 20년 넘게 협력을 이어가고 있는 엔비디아 젠슨 황과 국내에서 함께 게이머를 만나 매우 기쁘다”며 “앞으로도 엔비디아와 엔씨의 신작 개발 및 AI 연구 관련 협력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의 다음 협력 축은 피지컬 AI가 될 가능성이 크다. 피지컬 AI는 AI가 현실 세계의 로봇과 장비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움직이도록 하는 기술이다. 게임사가 보유한 3D 공간 구현, 물리 기반 시뮬레이션, 캐릭터 행동 설계 역량은 로봇 학습과 디지털 트윈 구축에 활용될 수 있다. 엔씨는 2011년부터 AI 연구를 시작했고 올해 AI 전문 자회사 NC AI를 출범시키며 사업 확장에 나섰다. NC AI는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과 비전언어모델(VLM)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월드모델과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 연구도 추진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코스모스, 옴니버스, 아이작 등 피지컬 AI 플랫폼과 결합할 경우 게임을 넘어 산업용 로봇과 시뮬레이션 분야로 협력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검증대에는 실제 공동 프로젝트가 오른다. PC방 회동은 상징성이 크지만 피지컬 AI 협력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구체적인 연구개발 과제와 산업 현장 실증, GPU 인프라 확보가 뒤따라야 한다. 엔씨가 게임 기술을 AI·로봇 기술로 확장하고, 엔비디아가 이를 플랫폼 생태계와 연결할 수 있을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다.
2026-06-07 17: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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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이 다시 한국을 불렀다…AI 반도체 전쟁의 심장에 선 삼성·SK
[경제일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재 위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홍대 삼겹살집 앞에서 시민들에게 ‘HBM칩’ 과자를 나눠주며 “모두가 HBM을 사랑한다”고 외친 장면은 가벼운 팬서비스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AI 반도체 시대 한국의 전략적 위상이 담겨 있었다. 엔비디아가 한국을 다시 찾은 첫 번째 이유는 메모리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GPU 성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읽고 쓰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없으면 AI 가속기는 제 성능을 내기 어렵다. GPU가 AI 서버의 엔진이라면 HBM은 그 엔진에 데이터를 공급하는 혈관이다. 젠슨 황이 이번 방한 과정에서 언급한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은 이 구도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베라 루빈 시대에는 HBM4가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다. 황 CEO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베라 루빈용 HBM4 공급사로 자격을 갖췄다고 언급한 것은 글로벌 메모리 3사가 다시 엔비디아 공급망을 놓고 경쟁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엔비디아 AI 공급망에서 가장 앞선 위치에 있다. HBM 시장에서 쌓아온 기술 우위와 공급 경험은 SK하이닉스를 AI 반도체 시대의 핵심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젠슨 황과 직접 만난 것도 단순 친분 과시가 아니다. HBM 공급 안정화, 차세대 메모리 투자, AI 데이터센터와 산업용 AI 클라우드까지 이어지는 큰 그림이 맞물려 있다. SK의 과제는 주도권을 지키는 일이다. AI 서버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HBM 생산능력은 단기간에 확대하기 어렵다. 웨이퍼 투입, 패키징, 테스트, 수율 안정화까지 시간이 걸린다. 공급 부족이 이어질수록 엔비디아는 복수 공급망을 원할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가 높은 수익성을 지키면서도 엔비디아의 물량 요구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맞출지가 향후 핵심 변수다. 삼성전자는 다른 시험대에 서 있다. 삼성은 메모리 절대 강자였지만 HBM 경쟁에서는 한동안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다. 그러나 베라 루빈과 HBM4는 삼성에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다. 삼성은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시스템 반도체까지 갖춘 종합 반도체 기업이다. 엔비디아가 원하는 것은 단순 부품 공급이 아니라 안정적인 장기 협력이다. 삼성은 HBM4 성능과 수율, 납기에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파운드리 협력 가능성도 관심이다. 엔비디아는 여전히 대만 TSMC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젠슨 황이 TSMC와의 신뢰와 우정을 강조한 것도 반도체 공급망에서 안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 파운드리 협력을 확대하려면 기술력만이 아니라 장기간 검증된 제조 신뢰를 입증해야 한다. 이번 방한은 한국 반도체에 기회이자 경고다. HBM 수요가 폭증하는 것은 분명한 호재다. 그러나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서 한국 기업이 단순 공급자로만 남으면 가격과 물량 협상에 끌려갈 수 있다. HBM, 패키징, 파운드리, AI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솔루션까지 묶어 공급할 수 있어야 한국 반도체는 AI 시대의 구조적 수혜자가 된다. 결국 베라 루빈 시대의 승부는 누가 더 많은 HBM을 만드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누가 엔비디아의 다음 플랫폼 설계 단계부터 함께 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 삼성과 SK가 공급망 바깥의 납품업체가 아니라 AI 반도체 아키텍처의 전략 파트너로 올라설 수 있느냐가 이번 방한의 첫 번째 질문이다. 젠슨 황의 방한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명확한 메시지를 남겼다. AI 시대의 금맥은 HBM에 있고, 그 금맥을 캐는 기술은 한국에 있다. 그러나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SK하이닉스는 선두를 지켜야 하고, 삼성전자는 다시 증명해야 한다. 엔비디아의 네 가지 선물 가운데 가장 먼저 한국 산업을 흔들 선물은 결국 HBM4다.
2026-06-07 12: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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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트랩에 투영된 중화(中華)의 서열: 의전(儀典)으로 읽는 중국 외교의 본색
[경제일보] 국가 간 외교에서 의전은 단순한 형식이나 예법을 넘어선다. 그것은 말 없는 언어이자, 자국의 전략적 속내와 상대국에 대한 냉정한 손익계산서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다. 특히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라 믿으며 예의(禮義)와 서열, 그리고 체면(面子)을 극도로 중시해 온 중국 외교에서 공항 영접의 격(格)은 상대국의 전략적 가치를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리트머스 시험지다. 최근 방중한 글로벌 정상들을 맞이한 베이징 서오두(首都) 공항의 풍경은 오늘날 중국이 바라보는 세계 질서의 재편도와 그들의 속내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영접을 둘러싸고 외교가 안팎에서 ‘홀대론’과 ‘격하론’ 등 설왕설래가 분분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항 마중에 전직 상무위원을 역임한 국가부주석(정치국원)을 내보냈다. 언뜻 거물급 인사를 배치한 듯 보이지만, 실권을 쥔 현직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세련되게 포장된 ‘외교적 메시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해석은 다른 정상들과의 비교를 통해 확신으로 굳어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공항 트랩 아래에서 그를 맞이한 이는 중국 외교의 총괄 수장이자 시진핑의 심복인 왕이(王毅) 정치국원 겸 외교부장이었다. 실질적인 대미(對美) 전선에서 동맹 이상의 밀착을 과시하는 러시아에 대해 확실한 예우를 갖춘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 전승절 행사를 전후해 중국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영접에는 무려 중국 권력 서열 5위인 차이치(蔡奇) 중앙서기처 서기 겸 상무위원이 직접 공항으로 나갔다. 혈맹이자 지정학적 최전방 보루인 북한에 대해 중국이 부여하는 전략적 무게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서열의 숫자로 명백히 보여준 장면이다. 중국 외교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영접의 변천사’는 그들의 국력 신장 및 대외 전략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과거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냉전의 장막을 걷고 베이징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마오쩌둥 체제의 2인자이자 외교 총사령관이었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직접 공항에 나가 영접했다. 당시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미국의 손이 절실했던 중국으로서는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극진한 예우이자, 생존을 위한 절박함의 표현이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도광양회(韜光養晦) 시대에도 중국은 서방 강대국 정상들이 방문할 때마다 철저히 격식을 맞추며 몸을 낮췄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다르다. 시진핑 체제 이후 대국외교(大國外交)와 분발유위(奮發有爲)를 표방하며 굴기를 선언한 중국은 이제 미국을 향해 더 이상 저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이번 영접 격은 중국이 미국을 두려워하거나 눈치 보지 않으며, 이제는 겉치레식 환대에 연연하기보다 ‘대등한 G2 관계’로서 냉정하게 국익 대 국익으로 맞서겠다는 오만함과 자신감의 발로다. 반면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붙잡아야 할 러시아와 북한이라는 전통적 우방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서열과 격식을 갖추며 ‘우리 편’을 챙기는 실리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국 역사와 사상의 뿌리인 『도덕경(道德經)』 제61장에는 대국과 소국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나온다. “대국자는 하류야(大國者 下流也), 천하교(天下之交), 천하지빈(天下之牝)” 큰 나라는 강의 하류와 같아서 천하의 물이 모여드는 곳이자 천하의 어머니와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노자(老子)는 대국일수록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아랫자리에 처해야(大國以下小國, 則取小國) 진정으로 천하의 인심을 얻고 대국으로서의 위엄을 세울 수 있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현재 시진핑의 중국이 보여주는 의전 외교는 노자의 이런 현명한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공항 영접 하나에도 치밀하게 서열을 매기고, 상대국의 힘과 이용 가치에 따라 환대와 홀대의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은 대국(大國)의 풍모라기보다는 지극히 계산적이고 옹졸한 패권주의의 단면을 드러낼 뿐이다.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혈맹이라며 서열 5위를 내보내고, 견제해야 할 상대에게는 은근한 엇박자의 격을 적용하는 세태는 단기적으로는 외교적 기싸움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주변국들로 하여금 중국이라는 거대한 이웃에 대해 신뢰보다는 끊임없는 경계심과 피로감을 느끼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의전의 격을 바꾸어 상대의 기를 꺾는 방식은 일시적인 전술은 될 수 있어도 천하를 아우르는 도(道)가 될 수는 없다. 진정한 대국 외교란 공항 트랩에 누구를 내보내느냐는 형식적 서열 정치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노자의 말대로 스스로를 낮추어 천하의 물을 품어 안는 포용력과 예측 가능한 규범을 보여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영접 인물의 서열로 아군과 적군을 가르고 대국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중국의 영접 외교 변천사는,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중국이 직면한 외교적 고립감과 조급증을 방증하는 씁쓸한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2026-05-20 10: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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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패권보다 세계 안정과 평화의 지혜 모아야
[경제일보] 9년 만에 성사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의미를 남겼다. 135분 동안 이어진 이번 회담은 미·중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대신 일정 수준의 관리와 공존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미·이란 전쟁 이후 국제 유가 급등과 공급망 불안, 세계 경제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두 초강대국 정상이 직접 마주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 시장과 국제사회에는 하나의 안도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중국 시진핑 주석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직접 언급하며 미국과의 공존 필요성을 강조한 점이다.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이 충돌로 치닫는 역사의 악순환을 피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현재 국제 질서가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위기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은 경제·안보·기술 분야에서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 경제와 공급망, 에너지 질서의 중심축이라는 점에서 어느 한쪽의 붕괴나 충돌은 곧 세계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전과는 다소 다른 태도를 보였다. 과거처럼 중국을 정면으로 압박하기보다는 협력과 관계 안정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드러냈다. 시 주석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평가하고, 미국 기업인들을 대거 동행시켜 경제 협력 의지를 강조한 것은 미국 역시 중국과의 완전한 대결보다는 관리 가능한 경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미·이란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과 미국 내 물가 상승, 에너지 가격 불안은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무한정 감당하기 어려운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마냥 낙관적인 신호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강경한 입장이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확인됐다. 시 주석은 대만 문제를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규정하며, 잘못 처리할 경우 양국 충돌 가능성까지 직접 언급했다. 이는 중국이 대만 문제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만해협의 긴장은 여전히 동아시아와 세계 안보의 가장 위험한 화약고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아쉬운 점은 세계가 주목했던 미·이란 전쟁과 관련해 구체적인 합의나 공동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양국 정상이 중동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는 하지만, 휴전이나 종전을 위한 실질적 공조 방안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세계가 가장 절실히 바라는 것은 패권 경쟁의 승패가 아니라 전쟁의 종식과 국제 질서의 안정이다. 중동의 불안은 단순히 한 지역의 분쟁에 그치지 않는다. 에너지 가격 폭등과 물류 차질,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져 전 세계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이제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양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세계 최강을 다투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 평화와 경제 안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 큰 책무도 지니고 있다. 자국의 국익만을 앞세운 무한 경쟁은 결국 세계 경제를 더 깊은 불안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패권을 향한 과도한 집착은 갈등을 키우고 국제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절제와 책임의 리더십이다. 미국은 패권 유지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협력 질서를 존중해야 하며, 중국 역시 확대된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특히 두 나라는 중동 전쟁의 조기 종식과 에너지 시장 안정, 글로벌 공급망 회복을 위해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세계가 두 초강대국에 기대하는 역할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분명 갈등 관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화만으로 평화가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 진정한 시험대는 앞으로다. 두 나라가 경쟁 속에서도 국제 질서의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협력 원칙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리고 세계 시민들의 불안과 고통을 덜어줄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국제사회는 지켜보고 있다. 강대국의 진정한 위대함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힘에 있지 않다. 전쟁의 위험을 줄이고 세계 평화를 지켜내는 지혜에 있다. 미국과 중국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패권 경쟁을 넘어 인류 공동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책임 있는 길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2026-05-14 18: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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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vs 두산, 로봇 상용화 '수익성 고개' 누가 먼저 넘나
[경제일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제조 거인, 현대자동차그룹과 두산의 시선이 ‘로봇’이라는 같은 지점을 향하면서도 그 방법론에서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가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를 통해 산업 생태계 전체를 바꾸려는 ‘대담한 도약’을 선택했다면, 두산은 사람 곁에서 즉각적인 도움을 주는 협동로봇(Cobot)을 통해 ‘실용적 진화’에 집중하고 있다. “차를 넘어 기계로”…‘아틀라스’에 담은 현대차의 꿈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 개발형 모델은 로봇 공학의 정점을 보여줬다. 아틀라스는 단순한 보행을 넘어 물구나무를 서고 L자 균형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이 동작의 핵심은 ‘강화학습 기반 전신 제어 기술’에 있다. 이는 비정형 환경에서도 로봇이 스스로 균형을 잡고 복잡한 과업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대차의 전략은 명확하다. 로봇을 단순한 설비가 아닌, 자동차 바깥의 ‘모빌리티 운영체제’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이 지난 2021년 소프트뱅크로부터 약 11억 달러에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것을 두고 ‘자동차 회사가 움직이는 기계 그 자체를 사들인 결정적 순간’이라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실제 현대차는 지난 CES2026에서 AI 로보틱스 비전을 구체화했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아틀라스를 전격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오는 2028년부터 반복적인 부품 배열 작업을 시작으로 2030년에는 고도의 숙련도가 필요한 조립 업무까지 로봇의 영역을 넓힐 계획이고, 연간 3만대 규모의 로봇 생산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손잡은 두산…제조업 DX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 현대차가 ‘미래’를 설계한다면 두산은 ‘현재’를 수선한다. 2015년 두산로보틱스 설립 이후 두산이 일관되게 밀고 온 카드는 협동로봇이다. 대규모 공정 교체 없이 기존 생산 라인에 즉시 투입 가능한 코봇은 중소·중견 기업의 실질적인 해법으로 떠올랐다. 두산의 경쟁력은 ‘현장 침투력’에서 나온다. 두산은 최근 제조업을 넘어 식음료(F&B), 의료, 물류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9일 두산로보틱스가 엔비디아(NVIDIA)와 ‘피지컬 AI’ 협력을 논의했다는 소식은 시장의 큰 관심을 끌었다. 양사는 두산의 로봇 운영체제와 엔비디아의 AI 인프라를 결합해 작업 환경을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경로를 최적화하는 ‘지능형 협동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질적인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광진그룹에 2027년까지 100대 이상의 제조용 로봇 솔루션을 공급하기로 했다. 기존 현장에서 제품 불량률을 ‘0’에 수렴하게 만든 실적이 대규모 수주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고가의 자동화 설비 도입이 어려운 중소 제조업체들에게 코봇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임을 증명하는 사례다. ‘멋진 영상’은 돈이 될까…상용화·노동 간극 숙제 두 기업 모두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의 아틀라스는 ‘멋진 영상물’을 넘어 ‘돈이 되는 제품’임을 증명해야 한다. 앞서 지난 2월 보스턴다이내믹스 경영진 교체를 두고도 현대차가 기술 과시형 연구에서 상용화와 수익 창출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제조 현장 노동자와의 간극도 숙제다. 로봇 투입이 고용 충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어떻게 불식시키느냐가 기술 도입의 속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두산은 ‘수익성 개선’이라는 현실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올해 1분기 두산로보틱스의 매출은 전년 대비 약 190% 가까이 급증했지만, 여전히 121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글로벌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고, 고객 맞춤형 솔루션 제공에 따르는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판매를 넘어 애플리케이션과 유지보수 등 서비스 영역에서 수익 모델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로봇 밀도 1위 韓…‘양적 팽창’ 넘어 ‘질적 패권’ 쥐어야 국제로봇연맹(IFR)의 ‘World Robotics 2025’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직원 1만명당 로봇 1220대를 보유한 세계 1위의 로봇 밀도 국가다. 이미 로봇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정부 역시 ‘AI 로봇 M.AX 얼라이언스’를 통해 세계 3대 로봇 강국 도약을 목표로 핵심 부품 내재화와 규제 개선에 나서고 있다. 결국 현대차와 두산의 대결은 기술의 우열이 아닌 ‘산업 철학’의 대결이다. 현대차는 공장과 물류, 도시 전체를 잇는 거대 운영체제(OS)를 선점하려 하고, 두산은 사람의 팔이 닿지 않는 곳, 숙련공이 부족한 현장을 하나하나 고쳐나가고 있다. 다만 기술적 찬사가 걷힌 뒤에는 냉혹한 시장의 숫자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현대차에는 조지아 메타플랜트 투입 이후 아틀라스가 보여줄 ‘실제 공정 가동률’과 노동 유연성 확보 여부가, 두산에는 폭발적인 외형 성장을 실질적인 수익으로 치환할 ‘손익분기점(BEP) 달성 시점’이 향후 1~2년의 성패를 가를 결정적 지표(Critical Indicator)가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30년 전 자동차와 중공업이 대한민국의 성장을 견인했듯 이제 로봇이 그 역할을 이어받아야 할 시점”이라며 “현대차의 아틀라스가 보여주는 압도적 기술력과 두산의 코봇이 보여주는 기민한 현장 대응력 중 누가 먼저 ‘돈이 되는 생태계’를 완성할 것인가에 주목된다”고 했다.
2026-05-14 16:3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