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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스파이는 간첩인가
[경제일보] 삼성전자가 1조6000억원을 들여 개발한 18나노 D램 국가핵심기술을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 빼돌린 전직 부장은 지난 4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6년4개월을 선고받았다. 회사의 핵심 기술을 외국으로 넘겼으니 산업스파이다. 그런데 반도체 기술이 아니라 군사기밀을 외국에 넘겼다면 사람들은 그를 간첩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반도체 한 세대의 기술격차가 국가 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시대에도 이 둘을 전혀 다른 범죄로만 봐야 하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형법은 지난 13일부터 달라졌다. 제98조의2 ‘외국 등을 위한 간첩죄’가 시행됐다. 과거처럼 적국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의 지령이나 사주, 의사 연락을 받아 국가기밀을 탐지하거나 수집·누설·전달한 사람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적국이 아니면 간첩죄 적용이 쉽지 않았던 형법의 오래된 빈틈 하나가 메워졌다. 산업스파이까지 곧바로 간첩이 된 것은 아니다. 새 형법은 대상을 ‘국가기밀’로 정했다. 대법원은 국가기밀을 군사 분야에만 한정하지 않고 정치·경제·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인정해 왔다. 공개되지 않았고 외부로 빠져나갈 경우 국가안전에 위험을 줄 우려가 있는 정보라면 국가기밀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이라는 이유만으로 형법상 국가기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법 사이의 틈이 생긴다.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핵심기술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이라고 규정한다. 국가가 반도체와 배터리, 디스플레이 기술을 기업 재산만의 문제로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 기술이 외국으로 넘어가면 국가안보에 영향을 준다고 해놓고 정작 외국 국가권력이 조직적으로 빼내더라도 간첩죄 적용에는 별도의 벽이 남아 있다. 실제 유출 규모도 작지 않다. 지난해 경찰이 적발한 기술유출 사건은 179건, 검거자는 378명이다. 해외유출은 33건이었다. 중국으로 향한 사건이 18건으로 절반을 넘었고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 범행이 몰렸다. 국정원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적발한 해외 기술유출도 96건에 달한다. 기업들이 추산한 피해 예방액은 23조원이다. 반도체가 38건으로 가장 많았다. 국회에서도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고동진 의원은 지난달 외국 간첩죄의 상대방에 ‘외국 기업’을 넣고 대상에 ‘국가핵심기술’을 추가하는 형법 개정안을 냈다. 외국 등을 위한 간첩죄의 최저형도 징역 3년에서 10년으로 높이자는 내용이다. 현행법으로는 국가핵심기술을 빼돌리는 산업스파이를 경제간첩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안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외국 기업을 일률적으로 간첩죄의 상대방에 넣는 것은 따져봐야 한다. 국내 배터리업체 연구원이 두 배의 연봉을 받고 미국이나 독일 경쟁기업으로 옮기면서 기술자료를 빼돌렸다면 중대한 범죄다. 그래도 곧바로 미국 간첩이나 독일 간첩으로 부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외국 기업이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산업기술 유출과 국가안보범죄 사이의 선을 지워서는 안 된다. 미국은 일반적인 영업비밀 절도와 경제간첩을 법률상 구분한다. 외국 정부나 외국 정부기관 또는 그 대리인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영업비밀을 빼돌렸을 때 경제간첩죄를 적용한다. 중국 회사로 기술이 넘어갔다는 사실만 보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외국 국가권력이 있는지를 본다. 기업 간 기술절도와 국가가 개입한 기술탈취를 같은 죄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를 둔 대만은 한발 더 나갔다. 2022년 국가안전법을 고쳐 국가핵심관건기술의 영업비밀을 외국이나 중국·홍콩·마카오 또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조직을 위해 빼돌리는 행위를 경제간첩죄로 처벌하기 시작했다. 첨단기술 유출을 한 기업의 피해로 끝내지 않고 국가안보 문제로 다룬다. 대만 정부가 내세운 이유도 첨단산업 경쟁력과 국가의 경제명맥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한국이 따져야 할 것도 몇 년을 더 감옥에 보낼 것이냐만은 아니다. 외국 정부나 정보기관의 지시를 받거나 국가가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조직을 위해 반도체·배터리·AI의 국가핵심기술을 조직적으로 빼돌렸다면 피해자는 해당 기업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경쟁국은 개발기간을 줄이고 시장점유율을 높인다. 우리는 수년간 쌓은 기술격차와 투자비, 일자리를 잃는다. 국가가 배후에 있는 기술탈취를 일반적인 기업 범죄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산업스파이가 간첩은 아니다. 외국 경쟁기업에 돈을 받고 기술을 넘긴 범죄와 외국 국가권력의 지시를 받아 국가핵심기술을 빼돌린 범죄를 똑같이 취급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후자까지 산업기술 유출이라는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도 맞지 않는다. 군사기밀만 나라를 무너뜨리는 시대는 지났다. 반도체 공정 하나가 수십 년 쌓은 산업 경쟁력을 흔든다. 외국 국가권력이 그 기술을 조직적으로 빼낸다면 이름부터 제대로 붙여야 한다. 산업스파이가 아니라 경제간첩이다.
2026-09-14 08:24:57
삼성 이어 SK하이닉스도 챗GPT 도입 추진…반도체 업계 'AI 전환' 가속
[경제일보] 삼성전자가 외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사내에 전면 도입한 데 이어 SK하이닉스도 챗GPT를 포함한 외부 AI 모델 도입을 추진한다. AI를 단순한 업무 지원 도구를 넘어 연구개발(R&D)과 의사결정, 조직 운영 전반에 활용하려는 'AI 전환(AX)' 경쟁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전날 열린 '뉴 이천포럼' 최고경영자(CEO) 타운홀 행사에서 외부 생성형 AI 도입 검토 계획을 밝혔다. 곽 사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 365와 코파일럿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챗GPT 엔터프라이즈 활용 가능성도 보안과 시스템 측면에서 검토 중"이라며 "국가핵심기술과 관련이 없는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외부 AI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오픈소스 기반 생성형 AI 모델을 활용한 사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향후 외부 AI 플랫폼을 추가 도입해 임직원들의 활용 범위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곽 사장은 AI 시대 경쟁력의 핵심으로 학습과 적응 속도를 꼽았다. 그는 "AI 시대에는 누가 더 많이 아는가보다 누가 더 빨리 배우고 변화하는지가 중요하다"며 "각자의 업무를 AI와 함께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AI를 경험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과정이 SK하이닉스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도 AX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 DX부문은 이날부터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나이 엔터프라이즈, 앤트로픽의 클로드 등 외부 생성형 AI 서비스를 공식 도입했다. 이에 따라 임직원들은 업무 특성과 목적에 따라 다양한 AI 모델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특정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복수의 AI 모델을 업무 환경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생산성과 의사결정 속도 향상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 역시 현재 클로드를 활용하고 있으며 이달 중 챗GPT를 추가 도입하고 연내 제미나이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성형 AI를 조직 전반에 확산하며 'AI 활용 능력'을 미래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기술 개발 경쟁에서 나아가 AI를 조직 운영 전반에 적용하고 성과로 연결하는 실행력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오는 15일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임직원들과 AI 기술 변화와 업무 혁신 방향을 논의하는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2026-06-12 10:08:50
생산량 아닌 생산 방식…LG엔솔, 'AX 50% 생산성'으로 배터리 경쟁 승부수
[경제일보] 글로벌 배터리 기업 LG에너지솔루션이 전사 인공지능 전환(AX)을 통해 생산성 50% 개선이라는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하며 '양적 경쟁'에서 '지능형 제조 경쟁'으로의 전략 전환에 나섰다. 중국 업체들의 대규모 설비·인력 투입에 맞서 AI 기반 효율 혁신으로 경쟁 구도 자체를 바꾸겠다는 시도다. 김동명 사장은 최근 구성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AX는 생존과 직결된 과제"라고 규정하며 오는 2028년까지 전사 생산성을 50%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공식화했다. 이는 기존 '2030년까지 30% 개선' 목표를 대폭 상향·조기화한 것으로 글로벌 경쟁 심화에 대한 위기 인식이 반영된 결정으로 풀이된다. 현재 배터리 시장은 중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설비 투자와 인력 확충이 이어지는 '규모 중심 경쟁'이 지배하고 있다. 중국 CATL, BYD 등 주요 업체들은 정부 보조금과 내수 전기차 시장을 기반으로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으며 원재료 확보부터 셀 생산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구축해 원가 경쟁력까지 확보하고 있다. 김 사장이 이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표현한 것도 이 같은 구조적 격차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LG에너지솔루션은 단순 증설로 대응하기보다 AI를 통해 생산·품질·공정 전반의 효율을 끌어올리는 '질적 경쟁'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공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최적 생산 조건을 도출하고 불량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차단하는 방식으로 수율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설비 운영과 유지보수 과정에도 AI를 적용해 가동 중단 시간을 최소화하고 에너지 사용 효율까지 동시에 끌어올리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결국 동일한 설비와 인력으로 생산량과 품질을 동시에 높여 원가 경쟁력까지 확보하는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단순 효율 개선을 넘어 제조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AX 전략은 단순 자동화를 넘어 데이터 기반 제조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배터리 생산은 수백 개 공정이 연결된 고도화된 제조 시스템으로 미세한 변수 하나가 수율과 품질을 좌우한다. 이 때문에 공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최적 조건을 도출하는 AI 기술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트윈, 공정 최적화, 품질 예측 등 AI 기반 기술이 적용될 경우 생산성 향상뿐 아니라 불량률 감소, 개발 기간 단축까지 기대할 수 있다. 결국 AX는 비용 절감이 아닌 수익 구조 개선으로 이어지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LG에너지솔루션이 강조한 '핵심 자산 중심 전략'도 주목된다. 30년 이상 축적된 제조 노하우와 대규모 특허, 숙련된 인재를 AI와 결합해 경쟁력을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데이터와 경험이 결합될 때 AI의 성능이 극대화된다는 점을 고려한 접근으로 단순 기술 도입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전사적 실행 체계 구축도 병행되고 있다. CEO 직속 'AI 거버넌스 위원회'를 통해 도입 전략과 보안, 변화관리 이슈를 점검하고 기업형 AI 플랫폼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전사 교육을 강화하는 등 조직 전반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AX를 특정 부서의 프로젝트가 아닌 기업 운영 방식 변화로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 같은 흐름은 글로벌 제조업 전반에서 나타나는 AI 전환 경쟁과 맞닿아 있다. 테슬라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은 이미 생산 공정에 AI를 적극 도입하며 생산성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 산업은 원가 경쟁력이 핵심인 만큼 생산 효율을 좌우하는 AI 기술이 향후 시장 판도를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현실적인 제약도 함께 제기된다. 배터리 제조는 국가핵심기술과 직결되는 영역인 만큼 데이터 보안 문제가 중요하고 복잡한 공정에 AI를 실제로 적용하기까지는 시간과 비용이 수반된다. 또한 조직 구성원들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변화관리 역시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요소다. 배터리 산업의 경쟁 기준은 더 이상 생산 규모가 아니라 생산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내건 AX 전략은 효율과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경쟁 모델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결국 AI를 얼마나 빠르고 깊게 제조 현장에 안착시키느냐가 향후 시장 주도권을 가를 핵심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2026-04-13 10: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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