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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위성부품, 개발만으론 못 큰다"…우주항공청, 실증·판로 지원 나서
[경제일보] 우주항공청이 국내 위성 핵심부품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기술 국산화부터 우주 실증, 공급망 진입까지 전 주기를 지원하는 방안 마련에 나선다. 국내 우주산업이 위성 완제품 중심에서 핵심 부품과 소재 등 공급망 경쟁력 확보로 확대되는 가운데, 기업들이 실제 우주에서 기술력을 입증하고 판로까지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27일 우주항공청은 대전 유성구 텔레픽스에서 국내 위성 핵심부품 개발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10개사와 '제10차 우주항공 SOS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간담회에는 그린광학, 나라스페이스, 레오스페이스, 솔탑, 엠아이디, 인스페이스, 져스텍, 카이로스페이스, 코스모비, 텔레픽스 등이 참석했다. 위성체와 탑재체, 부품·소재, 지상시스템 등 우주산업 밸류체인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과 정책 지원 필요성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간담회의 핵심 의제는 '개발 이후'가 다뤄졌다. 국내 기업들이 위성 핵심부품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실제 위성에 탑재해 우주에서 성능을 검증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고 우주 실증을 마친 이후에도 체계기업 공급망에 진입하거나 초기 시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참석 기업들은 핵심부품 기술 개발 및 고도화, 우주환경 시험·인증, 위성 탑재를 통한 우주 실증 및 우주 이력(헤리티지) 확보, 체계기업과의 협력 및 공급망 진입, 초기 시장 확보와 판로 확대 등을 주요 애로사항으로 제시했다. 특히 우주산업에서는 실제 우주환경에서 제품 성능을 검증한 이력이 기업의 기술 신뢰도를 좌우하는 만큼 '우주 헤리티지' 확보가 중소기업의 사업화에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지상에서 성능과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과 실제 위성에 탑재돼 발사와 운용 과정을 거치는 것은 기술적·사업적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해당 이유로 정부 지원도 연구개발(R&D)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우주환경 시험과 인증, 실제 위성 탑재 및 실증, 후속 사업화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확대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업이 기술을 개발한 이후 실제 고객과 시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내 우주산업 생태계의 지속적인 성장에 중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위성산업 역시 민간 기업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핵심부품 경쟁력 확보가 중요해지고 있다. 위성 제작과 발사 비용이 낮아지고 민간 주도의 뉴 스페이스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위성 서비스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핵심 부품을 해외에 의존할 경우 공급망 불안이나 기술 종속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성용 부품은 일반 산업용 부품과 달리 극한의 온도와 진공, 방사선 등 우주환경을 견뎌야 하는 만큼 별도의 시험과 인증이 필요하다. 국내 기업이 기술력을 확보하더라도 실제 우주환경에서 검증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점은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체계기업과의 연결도 과제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자체적으로 핵심부품을 개발하더라도 대형 위성 제작사나 체계기업의 공급망에 진입하지 못하면 안정적인 매출로 연결하기 어렵다. 이에 정부가 기술 개발 기업과 체계기업 간 협력을 촉진하고 초기 수요를 만들어주는 역할이 중요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태석 우주항공청장은 "우주산업의 경쟁력은 위성체뿐만 아니라 위성의 성능을 뒷받침하는 핵심부품 기술력에서 결정된다"며 "국내 기업들이 개발한 우수한 기술이 실제 우주에서 검증되고 시장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6-08-27 1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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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미래산업, 또 하나의 백화점식 정책 돼선 안 된다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반도체와 인공지능(AI)에 이은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 방안을 직접 주재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날 '미래성장동력 7대 SEED 보고회'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차세대 재생에너지,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첨단 공급망을 10~20년 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전략 분야로 제시했다. 목표도 야심차다. 정부는 경수형 SMR을 2035년 상용화하고, 2029년까지 오류정정이 가능한 100큐비트 양자프로세서(QPU)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우주·항공 분야에서는 2030년 민간 주도 달 착륙선을 발사하고, 첨단바이오에서는 AI 바이오 인프라 구축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상용화를 추진한다. 미래 기술에 국가가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방향은 옳다. 반도체 하나에 국가 수출과 성장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심해지고 에너지와 핵심광물, 바이오와 우주까지 경제안보 영역으로 편입되는 상황에서 제2, 제3의 성장동력을 준비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무엇을 선정했느냐보다 어떻게 키울 것이냐다. 우리 정부의 미래산업 정책은 정권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했다. 녹색성장, 창조경제, 혁신성장, 한국판 뉴딜, 국가전략기술 등 간판은 달랐지만 비슷한 분야가 반복해서 포함됐다. 정부가 여러 산업을 동시에 전략 분야로 지정하고 예산을 나눠주다가 정권이 바뀌면 사업 이름과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번 7대 SEED가 과거 정책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첫 번째 원칙은 선택과 집중이다. SMR과 핵융합, 재생에너지, 양자, 우주항공, 바이오, 첨단 공급망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하다는 것과 한국이 모두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가 재정과 인재, 연구개발 역량은 한정돼 있다. 양자와 우주, 핵융합처럼 막대한 장기투자가 필요한 분야까지 모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한다면 결국 각 부처와 연구기관에 예산을 나눠주는 백화점식 지원으로 흐를 수 있다. 정부는 한국이 이미 기술과 산업 생태계를 가진 분야와 장기적인 원천기술 확보가 필요한 분야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SMR처럼 원전 산업과 제조 공급망이라는 기존 강점이 있는 분야는 상용화 전략을 공격적으로 짤 수 있다. 반면 핵융합이나 심우주 탐사처럼 장기간의 기초연구가 필요한 분야는 당장의 매출과 수출 실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기술 수준과 시장성, 민간기업의 투자 의지, 공급망 파급효과가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 모두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돈을 나눠주는 것은 전략이 아니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도 분명해야 한다. 정부가 미래 산업의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시장의 승자를 미리 결정할 수는 없다. 특정 기술과 기업을 '국가대표'로 정해 지원을 집중하면 민간의 경쟁과 혁신이 오히려 약해질 수도 있다. 정부는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초연구와 대규모 실증 인프라, 규제개혁과 초기 시장 형성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술개발과 사업화, 해외시장 진출은 기업의 경쟁과 선택에 맡겨야 한다. 정부 지원 1원이 민간투자 몇 원을 끌어냈는지, 지원이 끝난 뒤에도 기업이 투자를 이어가는지를 성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실패를 인정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미래기술은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높다. 10년 뒤 시장을 지금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7개 분야 가운데 일부는 시장이 예상보다 늦게 열리거나 다른 기술에 밀릴 수 있다. 따라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만큼 중단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원칙을 미리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정 기간마다 세계 기술 수준과 민간투자, 시장 규모를 평가하고 경쟁력을 잃은 사업은 과감하게 축소해야 한다. 반대로 한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앞서가는 분야에는 자원을 더 집중해야 한다. 정부 사업이 한번 시작되면 예산과 조직, 지역 이해관계 때문에 없애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성과가 부족해도 지원이 이어지는 이른바 '좀비 프로젝트'가 생겨서는 안 된다. 미래산업 정책의 목표는 실패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빨리 찾아내 자원을 다시 배치하는 데 있다. 인재 전략도 함께 가야 한다. SMR과 핵융합,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는 모두 세계적으로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정부가 연구개발비를 늘려도 이를 수행할 연구자와 엔지니어가 없다면 목표는 계획표에 머문다. 대학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해외 우수 연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국내 연구자가 장기간 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실패한 연구에도 재도전할 기회를 주고 박사급 연구자가 산업계와 연구소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7대 SEED는 대부분 2030년대 이후를 바라보는 사업이다. 한 정부 임기 안에 끝낼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여야와 산업계, 과학계가 최소한의 장기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미래산업 전략은 대통령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의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첨단 공급망 전략도 단순한 국산화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모든 소재와 부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반드시 국내 생산능력을 확보해야 하는 품목과 우방국과 공급망을 나눌 품목을 구분해야 한다. 경제안보도 결국 비용과 효율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반도체가 오늘의 한국경제를 만들었다면 10년, 20년 뒤에는 새로운 산업이 그 역할을 이어받아야 한다. 그러나 반도체도 정부가 어느 날 '국가대표 산업'으로 지정했다고 세계 1위가 된 것은 아니다. 수십 년간 기업의 투자와 연구개발, 인재 축적, 치열한 글로벌 경쟁이 쌓인 결과다. 정부가 씨앗을 뿌릴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씨앗이 큰 나무로 자랄지는 시장과 기술의 경쟁이 결정한다. 국가의 역할은 모든 씨앗에 같은 양의 물을 주는 데 있지 않다.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는 자원을 집중하고, 성장이 멈춘 사업에는 지원을 과감히 줄이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손자병법 허실편에는 모든 곳을 지키려 하면 모든 곳이 약해진다는 취지의 가르침이 있다. 국가 산업전략도 다르지 않다. 한정된 자원을 모든 분야에 흩뿌리면 세계 최고가 필요한 첨단기술 경쟁에서 어느 하나도 앞서기 어렵다. 7대 SEED는 출발점일 뿐이다. 정부가 평가받을 것은 7개의 화려한 청사진을 발표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가운데 몇 개를 실제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으로 키웠는지다. '제2의 반도체'는 예산을 많이 배정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술 수준과 시장성, 민간 역량을 냉정하게 따지고 가능성 있는 분야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실패한 사업을 중단할 용기까지 갖출 때 비로소 미래성장동력 전략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래산업 육성에서 가장 필요한 것도 결국 선택과 집중이다.
2026-08-13 17: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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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ESS 전해질 생산 67% 단축…흐름전지 원가 병목 풀었다
[경제일보]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바나듐 전해질의 생산 시간을 67% 줄이는 공정이 나왔다. 흐름전지는 전해질 자체가 전기를 저장하는 매질이어서 전지 가격의 30~50%가 전해질에서 나온다. 생산 공정을 줄이는 일이 곧 시스템 가격을 건드리는 구조다. KAIST는 김희탁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바나듐 레독스 흐름전지(VRFB)의 초기 구동용 전해질인 'V3.5+'를 빠르게 생산하는 공정을 개발했다고 5일 밝혔다. VRFB는 바나듐이 녹은 액체 전해질을 외부 탱크에 담아 순환시키며 충·방전한다. 탱크를 키우면 저장 용량이 늘어 출력과 용량을 따로 설계할 수 있고, 물을 기반으로 한 전해질이라 발화 위험이 낮다. 24시간 멈출 수 없는 AI 데이터센터의 보조 전원이나 태양광·풍력의 출력 변동을 받아내는 장주기 저장 용도로 거론되는 이유다. 문제는 그 전해질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기존 공정은 5가 바나듐 전구체를 환원제로 4가까지 낮춘 뒤, 전기를 흘려 3.5가로 맞추는 2단계를 거친다. 마지막 전기분해 단계가 설비값과 전력비를 동시에 잡아먹으면서 대량 생산의 발목을 잡아왔다. 연구팀이 짚어낸 것은 병목의 위치다. 화학 환원은 평균 산화수가 약 +4.1에 이르는 지점부터 반응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연구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전기분해 대신 백금-탄소(Pt/C) 촉매를 투입하도록 전환 시점을 다시 잡았다. 공정 전체를 바꾸는 대신 가장 느린 구간만 갈아 끼운 셈이다. 전환 시점을 앞당길 수 있었던 근거는 촉매 수명 분석에 있다. 강한 산화성 전해액 안에서 Pt/C 촉매는 탄소 지지체가 부식되고 백금 입자가 뭉치며 성능이 떨어진다. 연구팀은 촉매가 안정적으로 버티는 산화수 범위를 열역학적으로 규명하고, 촉매가 열화되면 반응 속도 상수가 줄어 생산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에 착안해 속도론 기반 가속 수명 평가법을 새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2500회 이상 반복 생산에도 성능이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다. 생산 시간은 기존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환원제로 쓴 옥살산 잔류물도 함께 제거됐다. 이번 성과는 김 교수팀이 7년 가까이 이어온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연구팀은 2019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함께 전기분해를 촉매 반응으로 대체하는 공정을 내놓아 생산 비용을 40% 낮췄고, 2021년에는 대용량 촉매 반응기로 연속 생산을 실증했다. 당시 남아 있던 과제가 화학 환원과 촉매 환원 사이의 전환 지점을 어디로 잡느냐였고, 이번 연구가 그 답을 산화수 수준에서 제시했다. 산업 적용을 좌우하는 대목은 설비 교체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이미 상용화된 촉매를 쓰기 때문에 현재 가동 중인 바나듐 전해질 라인에 그대로 얹을 수 있다. 이번 연구는 롯데케미칼 지원으로 수행됐고, 관련 공정 기술은 롯데케미칼과 공동으로 국내 특허 등록을 마쳤다. 해외 특허도 출원 상태다. 롯데케미칼은 2019년부터 바나듐 전해액 사업을 준비해 왔고 2022년 바나듐 배터리 기업 스탠다드에너지에 650억원을 투입해 2대 주주에 올랐다. 전해액 국산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국내 바나듐 전해액은 그동안 수입 의존도가 높았고, 중국 업체들이 수직계열화를 앞세워 저가 공급에 나서면서 가격 격차가 벌어져 있다. 국내 ESS 보급의 주된 통로인 전력거래소 중앙계약시장 물량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대부분 가져갔다. 흐름전지가 이 판에 끼려면 안전성 논리만으로는 부족하고 전해질 원가부터 낮춰야 한다. 김희탁 교수는 "이번 연구는 대용량 배터리 상용화의 가장 큰 숙제였던 전해질 생산 과정을 반응공학적으로 정밀 분석해 새롭게 설계한 성과"라며 "촉매가 전해액 환경에서 손상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조건을 과학적으로 규명해 산업 현장의 생산 병목을 해결한 만큼 대용량 에너지저장 기술의 상용화를 크게 앞당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는 석경화 박사과정이 제1저자로 주도했다.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즈에 지난 5월 7일 온라인 게재됐고, 9월 초 공개되는 34호 표지논문으로 선정됐다.
2026-08-05 1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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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AI 국가전략, 이젠 실행이 답
[경제일보]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글과 그림, 영상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단계를 넘어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피지컬 AI’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로봇이 공장을 운영하고 무인 농기계가 작물을 관리하며 자율주행 장비가 물류를 담당하는 시대다. AI 경쟁의 무대가 컴퓨터 화면에서 제조·농업·물류·국방·돌봄 현장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피지컬 AI를 국가 전략기술로 정하고 관련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데이터와 기술, 산업 확산, 생태계 조성을 아우르는 피지컬 AI 전략을 내놓았다. 독자적인 월드모델과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온디바이스 컴퓨팅 기술을 확보하고 제조·농업·국방·돌봄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월드모델 핵심기술 국산화를 위해 올해부터 2년간 340억원을 투입하고 국내 산학연 컨소시엄을 가동했다. 방향은 옳다. 생성형 AI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형 플랫폼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적인 제조업과 반도체, 통신망, 로봇 기술, 높은 현장 자동화 수준을 갖추고 있다. 디지털 두뇌를 실제 기계와 산업현장에 연결하는 피지컬 AI에서는 충분히 승부를 걸 수 있다. 그 중심지로 새만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만금은 넓은 산업용지와 재생에너지 기반, 항만과 공항을 연계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부도 새만금을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AI 데이터센터와 로봇산업을 결합한 혁신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향을 제시해 왔다. 새만금개발청은 정부 출범 1년 성과로 새만금 피지컬 AI 산업 육성을 내세웠다. 이제는 새만금을 국가 AI 특구로 명확히 지정하고 권한과 재원을 집중해야 한다. 여러 부처가 개별 사업을 나눠 추진하는 방식으로는 글로벌 경쟁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규제 특례와 연구개발, 데이터 구축, 실증, 사업화를 하나의 체계로 묶고 성과에 책임지는 전담 추진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새만금은 단순히 AI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데이터센터만 들어서고 핵심 기술과 기업, 일자리가 수도권이나 해외에 남는다면 지역경제에 돌아오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농업 AI와 재생에너지 AI, 물류로봇과 자율주행 장비, 스마트 제조를 실제 현장에서 시험하고 사업화하는 ‘피지컬 AI 수도’로 만들어야 한다. 농업은 새만금의 강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분야다. 드론과 무인 농기계, 작황 예측, 병충해 탐지, 수자원 관리 기술을 대규모 농업 현장에 적용하면 농촌의 인력 부족과 생산성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다. 농업 AI 실증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장비, 운영 경험은 해외 스마트농업 시장으로 수출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 AI도 중요한 축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기상 여건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 AI로 발전량과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에너지저장장치와 송전망을 통합 관리하면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줄일 수 있다. 새만금의 에너지 인프라를 AI 데이터센터와 연계한다면 친환경 전력을 사용하는 미래형 산업단지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센터와 로봇 공장은 발표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막대한 전력과 용수, 초고속 통신망이 필요하다. 정부는 대형 AI 데이터센터의 입지에 맞춰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다양한 전원을 조화롭게 활용하고 전력망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관건은 계획의 속도와 주민 수용성이다. 송전망 건설과 용수 확보가 늦어지면 기업의 투자 일정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전력 공급 원칙도 현실적으로 세워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날씨에 좌우되는 전원만으로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시설을 안정적으로 가동하기 어렵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저장장치와 수요관리 기술을 결합해 비용과 안정성, 탄소 감축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이념 논쟁이 AI 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AI 인재 전략도 숫자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AI 인재 100만 시대’는 연구자 100만명을 양성한다는 뜻일 수 없다. 세계적 수준의 모델을 개발하는 고급 연구자와 산업 현장에서 AI를 적용하는 엔지니어, AI 도구를 활용하는 일반 노동자를 구분해 교육해야 한다. 정부도 피지컬 AI를 활용할 실무인재부터 핵심 모델을 개발할 고급인재까지 전방위 양성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대학 정원 몇 명을 늘리고 단기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만금과 전북 지역의 대학, 연구기관, 기업이 공동으로 교육과 실증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이 지역에서 배우고 현장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지역 기업에 취업하거나 창업하는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수도권 인재를 잠시 내려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 지속 가능한 연구·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국가 AI 예산도 대폭 확대하되 나눠주기식 지원은 피해야 한다. 정부는 국가 AI 프로젝트와 GPU 인프라 확보, 데이터 플랫폼, 피지컬 AI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GPU 확보·운용 사업만도 2조원대 규모로 제시됐다. 예산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비슷한 AI 센터와 교육사업을 경쟁적으로 만드는 방식은 효과가 낮다. 핵심 모델과 컴퓨팅 인프라, 현장 데이터, 실증단지를 중심으로 국가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민간기업이 정부 지원이 끝난 뒤에도 투자와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지 사업 초기부터 검증해야 한다. 성과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데이터센터 유치 건수나 교육 수료자 수, 양해각서 체결 숫자를 성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국산 기술의 현장 적용률과 생산성 향상, 민간 투자액, 새로 생긴 양질의 일자리, 해외 수출 실적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사업은 과감히 중단하고 가능성이 확인된 분야에 예산을 다시 집중해야 한다. 피지컬 AI는 사람과 기계가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는 기술이다. 기술 경쟁력 못지않게 안전과 책임 기준이 중요하다. 로봇이나 자율 장비의 판단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개발사와 제조사, 운영자 가운데 누가 책임지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정부도 실데이터와 합성데이터의 품질 관리, 통신·보안과 안전·신뢰 기술을 함께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AI 강국은 정부가 선언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업이 투자하고 인재가 모이며 기술이 현장에서 성과를 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새만금을 특구로 지정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규제와 인프라, 데이터와 인재, 연구개발과 사업화를 한곳에서 연결해야 한다. <한비자>에는 “세상의 일이 달라지면 대비책도 달라져야 한다”는 뜻의 ‘세이즉사이(世異則事異)’가 나온다. 생성형 AI 시대의 전략을 피지컬 AI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이제 국가는 기술을 지원하는 보조자를 넘어 산업과 에너지, 지역과 인재 정책을 함께 설계하는 운영자가 돼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1년 동안 AI를 국가 성장전략의 중심에 놓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비전이나 구호가 아니다. 새만금 국가 AI 특구 지정과 전력·용수 인프라 구축, 데이터센터와 로봇기업 유치, 농업·에너지 AI 실증, 인재 양성, 예산 집중을 구체적인 일정표로 제시해야 한다. AI 경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선언이 길어질수록 기술과 기업, 인재는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 새만금을 피지컬 AI 수도로 만들고 그 성과를 전국의 제조업과 농업, 물류와 돌봄으로 확산해야 한다. 한국 AI 국가전략의 성패는 계획의 크기가 아니라 실행의 속도와 결과로 판가름 날 것이다.
2026-08-05 10: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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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짜리 혁명'의 진실…중국 DUV, ASML 성벽에 첫 균열
[경제일보] 중국이 올해 생산한다는 액침형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는 5대다. 네덜란드 ASML이 올해 출하할 것으로 예상되는 액침형 DUV 장비 약 130대와 비교하면 4%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첨단 반도체 공장 한 곳에 필요한 장비 수를 감안하면 생산라인을 바꾸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그런데 세계 증시는 이 5대에 크게 흔들렸다. 중국이 자체 개발한 액침형 DUV 장비 생산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오자 ASML 주가는 장중 8% 넘게 떨어졌다가 5.8% 하락 마감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각각 13%, 14% 넘게 급락했다.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CXMT)의 증시 상장과 AI 산업의 투자 수익성 논란, 외국인 매도와 레버리지 청산이 겹쳤지만 중국산 DUV 소식이 불안을 증폭한 것은 분명하다. 시장의 반응만 보면 중국이 당장 ASML을 대체하고 한국 메모리 산업을 추월할 것처럼 보인다. 이는 과장이다. 반대로 장비 5대를 만들어낸 일을 선전용 행사로만 치부하는 것도 위험하다. 중국산 DUV의 현재 사업 가치는 작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산업의 방향은 가볍지 않다. ◆ 노광장비 한 대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문제 노광은 반도체 회로가 그려진 마스크에 빛을 쏘아 웨이퍼 위 감광액에 회로를 새기는 공정이다. 반도체 제조에서 사진 인화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요구되는 정밀도는 전혀 다르다.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분의 1에 해당하는 회로를 웨이퍼 위 수십 개 층에 반복해 정확히 포개야 한다. DUV는 193나노미터 파장의 불화아르곤 레이저를 사용한다. 액침형 DUV는 렌즈와 웨이퍼 사이에 초순수를 채워 빛의 굴절률과 렌즈의 개구수를 높인다. 같은 파장의 빛으로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있도록 만든 기술이다. ASML의 최신 액침형 DUV 장비는 시간당 300장 이상의 웨이퍼를 처리하면서 1나노미터 이하 수준의 오버레이 정밀도를 목표로 한다. 오버레이는 여러 차례 노광한 회로가 얼마나 정확하게 겹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해상도가 좋아도 위아래 회로가 어긋나면 칩은 작동하지 않는다. 노광장비의 경쟁력은 ‘몇 나노를 찍었느냐’만으로 판정할 수 없다. 시간당 웨이퍼 처리량, 장비 가동률, 오버레이 오차, 초점 제어, 결함 밀도, 장비 간 편차, 유지보수 시간과 소모품 수명까지 모두 맞아야 한다. 연구실에서 회로 하나를 그리는 것과 매일 수천 장의 웨이퍼를 같은 품질로 생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ASML의 진입장벽도 장비 설계도 한 장에 있지 않다. 독일 자이스가 공급하는 초정밀 광학계, 레이저 광원과 웨이퍼 스테이지, 계측 장비, 보정 소프트웨어, 수십 년간 축적한 공정 데이터와 글로벌 유지보수망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있다. 장비가 고장 났을 때 몇 시간 안에 복구할 수 있는 현장 인력과 부품 공급망도 경쟁력이다. ASML의 시장 지위는 기계 한 대가 아니라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만든 결과다. ◆ 863계획에서 아이성나까지 이어진 20년 중국의 노광장비 개발은 최근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니다. 중국 정부는 2000년대 초 국가 첨단기술 개발계획인 ‘863계획’을 통해 노광장비 국산화에 착수했다. 2002년 설립된 상하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MEE)는 건식 DUV 장비를 개발한 뒤 액침형 장비로 영역을 넓혀왔다. 초기 중국 장비는 90나노급 공정에 머물렀다. 해상도를 높이더라도 처리량과 오버레이, 장시간 안정성이 부족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주력 생산라인에 투입하기 어려웠다. 중국은 이후 광학, 정밀 스테이지, 광원, 계측과 제어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기업과 연구기관을 나눠 육성했다. 이번에 주목받은 아이성나는 2023년 상하이에 설립된 국유자본 지원 기업으로 알려졌다. 설립된 지 2∼3년에 불과한 회사가 갑자기 액침형 DUV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SMEE와 별도 장비업체, 연구기관에 축적된 인력과 기술을 결집한 프로젝트에 가깝다. 기업의 나이는 짧아도 기술 계보는 20년 이상 이어진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아이성나는 올해 5대, 2027년 20대의 액침형 DUV 장비를 생산할 계획이다. 초기 공급 대상으로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와 화훙반도체, D램 업체 CXMT가 거론된다. 다만 장비의 공식 성능표와 고객사 양산 인증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생산을 시작했다’는 표현과 ‘상업적 대량생산에 사용할 수 있다’는 평가는 구분해야 한다. ◆ 28나노 장비를 7나노 장비로 부를 수 없는 이유 중국 장비의 목표는 단일 노광 기준 28나노급으로 알려졌다. 28나노는 액침형 DUV가 한 번의 노광으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정 구간이다. DUV로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리는 방법도 있다. 한 장의 복잡한 회로를 두 개나 네 개의 단순한 패턴으로 나눈 뒤 노광과 식각을 반복하는 다중 패터닝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14나노와 10나노 이하 회로도 구현할 수 있다. 중국이 수입산 DUV를 활용해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한 것도 이러한 공정 기술과 관련돼 있다. 그러나 28나노 장비로 7나노급 회로를 구현할 수 있다는 설명과 7나노 전용 장비를 확보했다는 말은 같지 않다. 노광 횟수가 늘면 마스크와 식각·증착 공정도 증가한다. 생산시간이 길어지고 장비 사용량과 전력, 소재 비용이 커진다. 매번 회로를 정밀하게 포개야 하므로 오버레이 오차가 누적되고 수율도 떨어질 수 있다. 반도체 생산비는 노광장비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 장의 웨이퍼가 생산라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양품 칩의 비율이 더 중요하다. 동일한 7나노급 칩을 만들더라도 EUV를 활용한 공정과 DUV 다중 패터닝 공정의 원가와 생산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중국산 DUV가 28나노 회로를 한 번 찍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 최첨단 반도체 양산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장비 출하 뒤에 기다리는 ‘죽음의 계곡’ 새 장비가 반도체 공장에 들어가면 설치 직후 생산에 투입되지 않는다. 우선 장비가 제시된 해상도와 오버레이 성능을 반복해 구현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다른 장비에서 생산한 웨이퍼와 결과가 일치하는지도 검증한다. 특정 장비만 다른 결과를 내면 전체 공정을 따로 설계해야 해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결함 검증은 더 까다롭다. 미세한 입자나 온도 변화, 진동, 렌즈 왜곡과 광원 불안정이 웨이퍼 수율에 영향을 미친다. 하루나 일주일 동안 정상 작동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개월 이상 연속 가동하면서 성능과 부품 수명, 고장 빈도와 복구 시간을 입증해야 한다. 고객사의 공정 레시피와 연결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노광장비는 식각·증착·세정·검사 장비와 맞물려 작동한다. 노광 결과가 달라지면 전후 공정의 조건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장비 인증에는 제조사뿐 아니라 팹의 공정 엔지니어, 소재 업체, 마스크와 계측 기업이 함께 참여한다. 중국산 장비가 넘어야 할 벽은 최초의 5대를 조립하는 일이 아니라 이 장비를 고객 생산라인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가동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5대는 연구·시험 장비에 머문다. 반대로 초기 장비에서 발생한 오류와 수율 데이터를 축적해 20대, 50대로 개선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 왜 하필 5대인가 중국이 올해 5대만 생산하는 이유는 수요가 없어서라기보다 공급망과 조립 역량이 아직 제한됐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노광장비에는 수만 개의 정밀 부품이 들어간다. 렌즈와 광원, 스테이지, 모터, 센서, 진동 제어장치와 정밀 계측 부품 가운데 하나만 공급이 늦어져도 완제품을 만들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산 장비에는 아직 일본 등 해외에서 들여오는 일부 핵심 부품이 사용되고 있으며 중국 내 부품업체의 납기와 품질 문제도 생산 확대를 제약하고 있다. ‘국산 장비’라는 표현이 모든 부품의 100% 중국산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장비는 부품만 있다고 대량 조립할 수도 없다. 완성된 장비마다 광학계와 스테이지를 정밀하게 보정해야 한다. 생산량을 늘릴수록 장비 간 편차를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이 단계에서 제조 노하우와 숙련 인력의 차이가 드러난다. ASML이 장기간에 걸쳐 공급망과 생산설비를 확충하고도 연간 액침형 DUV 출하량을 100여 대 수준으로 관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의 목표가 2026년 5대에서 2027년 20대로 늘어난다는 것은 생산능력이 네 배로 커진다는 의미이지만 ASML과의 규모 차이는 여전히 크다. ◆ ‘낡은 28나노’가 중국에는 중요한 까닭 28나노를 최첨단 기술과 비교해 낡은 공정으로 보는 시각도 바로잡아야 한다.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와 AI 가속기는 3나노·5나노 공정에서 생산되지만 자동차와 산업기기, 통신장비, 가전에는 28나노 이상 성숙 공정 반도체가 대량으로 사용된다. 전력관리반도체, 디스플레이 구동칩, 마이크로컨트롤러, 네트워크칩과 각종 센서는 최신 공정을 사용할 필요가 없거나 최신 공정을 적용했을 때 오히려 비용이 증가한다. 세계 반도체 수요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성숙 공정에서 발생한다. 중국이 28나노급 장비를 안정적으로 양산하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곳도 이 시장이다. 중국 팹은 수입 장비의 추가 공급과 유지보수가 제한되더라도 국내 장비로 생산설비를 늘릴 수 있다. 중국 정부와 국유기업은 성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국산 장비를 의무적으로 구매해 초기 시장을 만들어줄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을 장비가 중국 내수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다. 장비업체는 확보한 매출과 생산 데이터를 다시 연구개발에 투입할 수 있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이 기술 격차를 줄이는 시험장이 되는 구조다. ◆ 한국을 먼저 압박할 곳은 HBM이 아닌 범용 D램 중국산 DUV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사업을 단기간에 위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HBM은 미세공정에서 D램 셀을 만드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개의 D램 다이를 얇게 가공해 수직으로 쌓고 TSV로 연결해야 한다. 적층·접합, 발열 제어와 신호 무결성, 패키징 수율, 고객사의 GPU·가속기 인증이 모두 필요하다. HBM4 이후에는 로직 베이스 다이와 파운드리 공정, 첨단 패키징 기술의 결합이 더욱 중요해진다. DUV 한 종류를 확보했다고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미국의 대중국 HBM 수출통제까지 고려하면 중국이 한국 기업을 곧바로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한국이 주의 깊게 볼 곳은 일반 D램이다. CXMT는 이미 세계 D램 출하량의 약 8%를 차지하는 4위 업체로 성장했다. 아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기술 및 수익성 격차가 있지만 DDR4와 DDR5, 모바일용 LPDDR 시장에서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중국산 DUV가 양산 인증을 통과하면 CXMT는 수입 장비에 대한 불확실성을 낮추고 증설을 지속할 수 있다. 중국 스마트폰과 PC, 서버업체가 자국산 메모리 채택을 늘리면 CXMT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중국 내수만으로도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 기업에 나타날 첫 충격은 시장점유율 상실보다 가격 하락일 가능성이 높다. CXMT가 범용 D램 공급을 늘리면 국제 가격의 하단이 낮아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에서 높은 수익을 거두더라도 일반 D램의 수익성이 악화하면 전체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중국산 DUV는 HBM 왕좌를 빼앗는 무기라기보다 범용 메모리 시장의 가격 질서를 바꾸는 기반시설로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미국은 2022년 이후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을 제한하기 위해 노광과 식각·증착·계측 장비, 설계 소프트웨어와 첨단 AI 반도체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네덜란드와 일본도 일부 장비 수출 제한에 동참했다. 2024년에는 HBM과 장비 생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까지 통제 범위가 확대됐다. 수출통제는 효과가 있었다. 중국은 최첨단 장비를 제때 확보하기 어려워졌고 기존 수입 장비의 유지보수와 부품 공급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중국이 EUV를 활용한 대규모 첨단공정을 구축하는 시점도 늦어졌다. 하지만 통제에는 반대 방향의 힘도 작용한다. 해외 장비를 살 수 없게 되면 중국 팹은 성능이 부족해도 국산 장비를 시험해야 한다. 정부는 투자 실패를 감수하면서 자금을 공급하고, 고객사는 초기 제품의 결함을 함께 고친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선택받기 어려운 장비가 보호된 시장 안에서 성장할 수 있다. 수출통제가 중국의 개발 비용과 시간을 늘릴 수는 있어도 기술 개발 의지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 오히려 노광장비 국산화를 경제성의 문제가 아닌 국가안보 과제로 바꿨다. 중국 기업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도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 미국과 동맹국도 통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우위를 지킬 수 없다. 중국의 기술 진전을 늦추는 동안 차세대 기술과 공급망, 고객 생태계의 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 통제가 시간을 벌어주는 정책이라면 혁신은 그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정책이다. ◆ 한국 반도체주 급락, 공포와 현실을 구분해야 중국산 DUV 5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를 하루아침에 10% 이상 떨어뜨릴 만큼 직접적인 실적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올해와 내년 생산량만 놓고 보면 한국 반도체 공장의 생산능력이나 HBM 수주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지난 28일 주가 급락은 여러 불안이 한꺼번에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비해 빅테크 기업의 수익 창출이 더디다는 우려, CXMT의 자금 조달과 증설 가능성, 중국 장비 국산화, 외국인 대규모 매도와 레버리지 포지션 청산이 겹쳤다. 그럼에도 시장의 과민 반응에는 읽어야 할 메시지가 있다. 투자자들은 장비 5대의 매출 효과가 아니라 ASML 독점과 한국 메모리 지배력이 영구적이지 않을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했다. 지금까지 거의 0으로 보던 중국 장비의 성공 가능성을 아주 낮은 확률이나마 계산에 넣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급락을 전적으로 비이성적 공포라고 단정하는 것도, 중국이 곧 한국을 추월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단기 주가는 과도하게 움직였을 수 있지만 중국 공급망 자립이라는 장기 변수가 현실로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2026-07-29 16: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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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3사·네이버·카카오 'AIDC 원팀'…18.4GW 구축·수출 추진
[경제일보] 정부와 통신 3사, 네이버·카카오를 비롯한 국내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AIDC)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협력체를 가동한다. 18.4기가와트(GW) 규모의 AIDC 구축계획을 국내 서버·전력·냉각·클라우드 산업의 성장과 해외 수출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산업통상부·금융위원회·국토교통부와 산·학·연 관계자 약 400명이 참석한 가운데 ‘AI DC 얼라이언스’ 출범식을 개최했다. 얼라이언스는 정부가 지난 6월 발표한 ‘AI 데이터센터 국가 전략 산업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민관 협의체다. 정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의 하나로 2035년까지 총 18.4GW 규모의 AIDC를 구축하고, 데이터센터 전후방 산업의 수출산업화와 권역별 클러스터·대규모 테스트베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SK·GS·네이버 등은 1단계로 8.4GW 규모의 AIDC를 구축한다. 관련 민간 투자 계획은 약 550조원이다. 이후 SK가 10GW를 추가해 전체 규모를 18.4GW까지 확대하는 구상이다. 다만 이는 장기 구축 목표와 투자계획을 합산한 수치로, 실제 집행은 부지와 전력망, 인허가, 고객 확보와 프로젝트 금융 조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얼라이언스는 과기정통부와 민간 공동의장 체제로 운영된다. 초대 민간 공동의장은 정재헌 SK텔레콤 대표 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장이 맡았다. 의장단에는 네이버클라우드, 삼성SDS, SK텔레콤, NHN클라우드, LS일렉트릭, LG유플러스, LG전자, GS, 카카오, KT, 케이티엔에프, 퓨리오사AI 등 12개 기업이 참여한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이 간사를 맡는다. 실무 조직은 수요·공급·기반 등 3개 분과와 수출산업화 태스크포스(TF)로 구성된다. 네이버클라우드가 이끄는 수요 분과는 AIDC 구축·운영 경험을 토대로 국산 솔루션과 클라우드 기술을 실증한다. 대규모 테스트베드에서 성능을 검증하고 국내 기업이 해외사업에 제시할 수 있는 레퍼런스를 확보하는 역할도 맡는다. LG전자가 분과장을 맡은 공급 분과는 서버와 전력, 냉각, 네트워크, AI 반도체 등 핵심 기술의 국산화와 고도화를 추진한다. 서로 다른 장비와 솔루션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상호운용성과 표준화 방안도 마련한다. 카카오가 이끄는 기반 분과는 AIDC 관련 협·단체와 대학, 법무법인 등이 참여해 법·제도 개선과 전문인력 양성을 논의한다. 대규모 전력 사용에 따른 계통 연결과 입지 규제, 데이터·보안 기준 등 현장 애로사항도 다룰 예정이다. 수출산업화 TF는 데이터센터의 설계와 시공, 서버·전력·냉각 설비, 클라우드 운영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해외에 공급하는 전략을 수립한다. 글로벌 빅테크 중심의 AI 학습시장과 개방형 모델 중심의 추론시장을 구분해 접근하고 UAE 등 AIDC 수요가 큰 국가를 우선 공략할 계획이다. 정재헌 공동의장은 “AI DC 얼라이언스는 AI 시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연대의 시작”이라며 “대한민국이 대체 불가능한 AI 데이터센터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GW급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국민성장펀드 등을 통해 지원할 방침이다. 산업부는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기술개발과 실증, 시장 진출을 연계한 공급망 지원체계를 구축한다. 18.4GW 계획이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데이터센터 건설량뿐 아니라 실제 가동률과 고객 수요를 확보해야 한다. 국산 NPU와 서버, 냉각·전력 솔루션이 테스트베드에서 성능과 경제성을 입증하고 상용 데이터센터에 채택되는 과정도 필요하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대규모 투자가 건물을 세우고 서버를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설계·구축·운영과 클라우드 기술 전반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2026-07-29 15: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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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에서 지능산업으로…샌프란시스코 선언이 연 한국 AI의 미래
[경제일보] 10년 뒤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은 무엇으로 평가받을까. 젠슨 황과 샘 알트만, 다리오 아모데이, 혹 탄이 한국 기업인들과 한자리에 섰던 장면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날 발표된 투자액도 시간이 지나면 낡은 숫자가 된다. 한국에서 태어난 AI 기업과 제품, 일자리와 수출이 남아야 비로소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행사의 의미는 참석자의 면면보다 산업 질서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엔비디아와 오픈AI, 앤트로픽, 브로드컴은 서로 다른 시장에서 경쟁하지만 모두 같은 제약에 맞닥뜨렸다. AI의 성장 속도를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만날 때마다 더 많은 칩을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고 전한 것은 이 변화를 상징한다. 과거에는 반도체 기업이 수요처를 찾아다녔다. 지금은 AI 기업이 생산되지도 않은 칩과 아직 지어지지 않은 데이터센터의 연산 자원까지 먼저 확보하려 한다. AI 산업은 소프트웨어의 얼굴로 출발했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중공업의 속성을 띤다. 모델을 고도화하려면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필요하다. 서비스를 확장하려면 발전설비와 변전소, 냉각장치, 통신망이 따라붙는다. 최첨단 알고리즘도 전기와 반도체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AI 기술 패권이 제조 역량과 자본조달 능력의 경쟁으로 넓어진 것이다. 이 변화는 한국에 드문 기회다. 한국은 HBM과 메모리,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갖고 있다. 자동차·조선·배터리·로봇·바이오 등 AI가 적용될 산업 현장도 폭넓다. 통신망과 클라우드,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기업까지 보유했다. 반도체 생산과 산업 실증을 한 국가 안에서 연결할 수 있는 조건이다.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은 이 자산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겠다는 약속에 가깝다. 한국이 반도체를 납품하는 공급국에서 벗어나 컴퓨팅 인프라를 운영하고, 산업용 AI를 개발하며, 세계 시장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풀스택 AI 국가로 진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구상을 가장 구체적인 사업으로 옮긴 기업 중 하나가 네이버다. 엔비디아는 10억달러를 투자해 네이버 지분 약 4.5%를 확보하기로 했다. 네이버는 글로벌 투자사 브룩필드와도 최대 90억달러 규모의 GPU·데이터센터 인프라를 조달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100억달러가 모두 네이버 계좌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엔비디아의 10억달러는 지분 투자이고, 브룩필드의 최대 90억달러는 프로젝트금융 등을 활용한 인프라 조달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이 네이버의 주주가 되고, 글로벌 대체투자사가 데이터센터 금융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의미가 작지 않다. 네이버는 2027년 상반기 55MW 규모 AI 팩토리를 가동하고 2028년 200MW, 장기적으로 1GW급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200MW 시설에는 블랙웰과 베라 루빈 등 약 10만개의 엔비디아 GPU가 투입될 전망이다. 데이터센터 ‘각 세종’,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클로바X, 검색과 지도·커머스 서비스를 연결해 아시아·태평양과 유럽, 중동의 소버린 AI 수요를 흡수한다는 구상이다. 네이버의 도전은 한국 AI 산업이 가야 할 방향을 압축해 보여준다. 반도체를 구매해 데이터센터에 설치하는 데서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GPU 임대와 모델 학습, 추론, AI 에이전트 개발, 산업별 서비스까지 하나의 체계로 제공해야 한다. 포털 기업이 AI 시대의 컴퓨팅·서비스 사업자로 체질을 바꾸는 실험이다. 소버린 AI의 의미도 여기서 분명해진다. 모든 장비와 기술을 국산화하는 것이 주권은 아니다. 엔비디아 GPU와 글로벌 자본을 활용하더라도 데이터와 모델, 운영 권한을 국내 기업과 고객이 통제하고 그 위에서 독자적인 서비스를 만든다면 산업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외국 기술을 쓰지 않는 나라보다 외국 기술을 자국의 가치로 전환하는 나라가 강하다. 네이버의 AI 팩토리가 성공하려면 시설 규모만큼 고객 구성이 중요하다. 해외 빅테크의 연산 수요만 채우는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국내 스타트업과 제조기업, 대학과 공공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컴퓨팅 기반이 돼야 한다. 그곳에서 한국의 산업 데이터로 학습한 모델과 에이전트가 나오고, 다시 세계 시장으로 수출돼야 투자 의미가 완성된다. 이 지점에서 최태원 회장이 제시한 세 가지 방향과 네이버의 투자가 만난다. 최 회장은 국민 1인당 하나 이상의 AI 에이전트를 사용하는 ‘AI 네이티브 국가’, 메모리 생산과 데이터센터 확충을 통한 토큰 비용 절감, 일자리와 환경을 포괄하는 AI 거버넌스를 제안했다. SK가 HBM과 데이터센터로 공급 기반을 만들고 네이버가 클라우드와 모델, 서비스로 활용 경로를 넓힌다면 한국형 풀스택 AI의 윤곽도 선명해질 수 있다. 정부의 ‘모두의 AI’는 이 구상을 대규모 수요로 연결할 수 있는 정책이다. 5000만 국민이 일상과 업무에서 AI를 활용하면 한국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AI 테스트베드가 된다. 국내 모델과 스타트업에는 초기 시장이 생기고 공공·교육·의료·제조 현장에서는 다양한 사용 사례가 축적될 수 있다. 정책의 목표는 무료 이용자 수가 아니다. 국민이 자신에게 필요한 에이전트와 서비스를 만들고, 기업이 생산공정과 업무 방식을 재설계하도록 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그 결과를 제품으로 만들어 해외에 팔아야 한다. 사용 경험이 창업과 수출로 이어질 때 모두의 AI는 보급 정책을 넘어 성장 정책이 된다. 이를 뒷받침할 자원이 데이터다. 한국은 제조와 의료, 금융, 교육, 행정 분야에 높은 품질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이 기관과 기업 내부에 흩어져 있다. 개인정보와 산업기밀을 보호하면서도 AI 학습과 검증에 활용할 수 있는 규칙과 기술 기반을 갖춰야 한다. 데이터 개방을 무조건 확대하자는 뜻은 아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데이터를 사용했고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보안형 데이터 공간과 비식별 처리, 접근권한 관리, 사용 이력 기록을 결합하면 보호와 활용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데이터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산업 현장의 경험도 수출 가능한 AI 제품으로 전환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확인된 것은 한국의 가능성이다. 세계 AI 기업들은 한국을 반도체 공급처로만 보지 않기 시작했다. 제조 역량과 인프라, 산업 수요를 갖춘 전략적 파트너로 평가하고 있다. 네이버의 AI 팩토리는 그 가능성을 실제 사업과 매출로 증명해야 하는 첫 시험대 가운데 하나다. AI 시대의 선진국은 칩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칩 위에서 새로운 지능을 만들고 산업을 바꾸며, 완성된 제품과 서비스를 세계에 판매하는 나라다.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은 한국이 그 길로 들어섰음을 알린 신호다. 다음 10년의 목표는 분명하다. 세계에 반도체를 공급해 온 나라에서 세계가 사용하는 지능과 서비스를 수출하는 나라로 나아가는 것이다.
2026-07-27 14: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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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조원 AI 데이터센터, 속도가 성패…SK·GS·네이버 "세금·전력·GPU 풀어달라"
[경제일보] 정부와 SK텔레콤, GS, 네이버가 2029년까지 8.4기가와트(GW) 규모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를 구축하는 메가프로젝트를 본격화한다. 투자 유치를 포함해 약 550조원을 민간이 조달하고 정부는 전력과 부지, 용수, 인허가를 지원하는 구조다. 1단계 사업은 △SK텔레콤 5GW △GS 2.4GW △네이버 1GW로 구성된다. 이후 SK텔레콤이 2035년까지 자체 구축 규모를 15GW로 늘리면 전체 프로젝트는 18.4GW로 확대된다. 2029년 8.4GW와 2035년 18.4GW는 사업 단계와 목표 시점이 다른 수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AI 인프라 투자 촉진과 지능 수출을 위한 전략 토론회’를 열고 사업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송기헌 과방위원장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SK텔레콤과 GS, 네이버클라우드, 삼성SDS,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AI 경쟁, 모델에서 ‘전력·GPU 확보전’으로 초거대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 수요가 급증하면서 AI 경쟁의 무게중심은 모델 개발에서 이를 안정적으로 가동할 컴퓨팅 인프라 확보로 확대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전력·냉각 설비를 결합해 AI 서비스에 필요한 토큰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정부가 대규모 AIDC를 국가 메가프로젝트로 추진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AI 모델을 보유하더라도 국내에 충분한 컴퓨팅 자원이 없으면 해외 클라우드와 GPU 공급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글로벌 빅테크의 연산 자산을 국내에 유치하면 데이터센터 운영뿐 아니라 반도체와 전력기기, 냉각, 네트워크, 클라우드 소프트웨어까지 후방 산업을 함께 키울 수 있다. 한국은 HBM을 생산하는 반도체 기업과 초고속 통신망, 해저케이블, 대형 산업시설 운영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수백조원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실제 착공과 가동으로 연결하려면 전력망과 부지, 장비 조달 시간을 글로벌 고객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단축해야 한다. ◆ SKT “AI 자산 유치는 국가 안보 자산 확보” SK텔레콤은 2029년까지 5GW를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2035년까지 아시아 최대 수준인 15GW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울산 AIDC를 시작으로 전국 거점에 인프라를 조성하고 아마존웹서비스(AWS)를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을 확대한다. 윤성은 SK텔레콤 Comm센터장 겸 AI정책연구원장은 “과거 아시아의 금융 허브는 홍콩과 싱가포르였지만 AI 허브의 주인은 우리가 매우 유력하다”며 한국의 반도체·건설 역량과 안정적인 전력망, 통신 인프라를 강점으로 제시했다. 윤 센터장은 글로벌 빅테크의 AI 연산 자산을 국내에 유치하는 것은 “그 어떤 안보동맹보다 강력한 국가 전략 안보 자산이 된다”고 강조했다. 국가와 산업의 AI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국내 컴퓨팅 자원 확보가 경제안보와 직결된다는 의미다. SK텔레콤은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상 코로케이션 방식의 데이터센터가 임대업으로 해석돼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AIDC를 지능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보고 국가전략기술 사업화 시설에 포함하는 한편 부지와 전력, 건축 관련 인허가를 한 번에 처리하는 패스트트랙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GS “변압기 납기만 2년…글로벌 수주 놓칠 수 있어” GS는 강원도 동해 일원에 총 2.4GW 규모의 AIDC 캠퍼스를 추진한다. 2028년까지 1단계 1.2GW, 2029년까지 2단계 1.2GW를 구축할 계획이다. GPU와 메모리 등 컴퓨팅 장비를 포함한 총투자비는 약 120조원으로 추산했다. 도현수 GS AI인프라 대표는 글로벌 고객 유치의 핵심으로 ‘속도’를 꼽았다. 해외 빅테크는 데이터센터 공급 가능 시점을 먼저 확인하지만 국내에서는 대형 변압기 조달에만 약 2년이 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도 대표는 “글로벌 고객 대부분이 ‘2년 안에 지어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며 “부품과 변압기 조달에 유연성을 발휘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공장 증설과 데이터센터 투자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전력기기 생산 물량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도 병목 요인으로 지목했다. 대규모 냉각 용수 확보도 과제다. GS는 해수와 중수도 등 대체 수자원을 냉각에 활용할 수 있도록 취수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환경·건축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 네이버 “국가가 GPU 구매력 모아야” 네이버클라우드는 자체 데이터센터 ‘각 춘천’과 ‘각 세종’, 초거대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1GW 규모의 글로벌 AI 팩토리를 구축한다. 내년 상반기까지 55메가와트(MW) 규모의 GPU 서비스(GPUaaS)를 제공하고 같은 해 100MW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배성준 네이버클라우드 전무는 AI 팩토리 구축 비용의 약 70%가 GPU와 서버 등 컴퓨팅 장비에 집중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빅테크보다 구매 물량이 적은 국내 기업은 GPU 가격과 공급 시기 협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배 전무는 “국가 차원에서 GPU 구매력을 모아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수도권 데이터센터의 전력계통영향평가 절차를 단축하고 장기간 안정적인 전력 비용을 보장하는 AIDC 전용 요금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네이버는 공공기관이 국산 AI 모델을 우선 도입해 초기 시장을 만들고 일본·대만 등과 보안 인증을 공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AI 모델, 서비스를 묶어 수출하려면 해외에서도 통용되는 실적과 인증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 삼성SDS·업계 “세제 혜택과 규제 컨트롤타워 필요” 삼성SDS도 AIDC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데 힘을 보탰다. 이항재 삼성SDS 상무는 “데이터센터 하나를 짓는 데도 파이낸싱이 필요하고 이자 비용까지 감당하며 영업해야 하는 구조여서 세제 혜택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기업이 개별적으로 부지와 전력 공급처를 찾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국에 2∼3GW 규모의 AIDC 클러스터를 미리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기정통부 내 AIDC 사업을 전담할 정규 조직을 신설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채효근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전무는 “현재 데이터센터는 1년에 8차례 안팎의 비슷한 점검을 여러 부처로부터 받고 있다”며 부처별 규제를 일원화할 컨트롤타워 지정을 요청했다. ◆ 정부, 테스트랩 10곳·범부처 TF로 지원 정부는 국산 AIDC 솔루션을 검증하고 수출 실적을 확보할 수 있도록 테스트랩 10곳을 구축한다. 국산 AI 반도체와 대형 비상발전기, 무정전전원장치(UPS), 냉각 설비 등 국산화가 부족한 장비의 기술개발도 지원할 계획이다. 김경만 과기정통부 AI정책실장은 “AI 인프라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AI 생태계 전체에서 데이터센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력·냉각 등 물리적 설비와 GPU·네트워크·클라우드 운영 기술을 함께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전력과 부지, 용수 등 부처 간 쟁점을 조율하는 실무 태스크포스(TF)를 월 1회 정기 운영하고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소집할 방침이다. 관건은 550조원이라는 투자계획을 실제 고객 계약과 가동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8.4GW는 확정된 매출이나 수주가 아니라 기업과 정부가 제시한 구축 목표다. 글로벌 고객 확보와 투자금 조달, 전력망 연결, GPU·변압기 공급이 일정에 맞춰 진행돼야 계획이 현실화할 수 있다. 송기헌 국회 과방위원장은 “기업의 투자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정부와 국회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예측 가능한 투자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데이터센터와 반도체·클라우드·소프트웨어·운영기술을 결합한 인프라 모델을 경쟁력 있는 수출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능을 생산·수출할 AI 팩토리 투자를 가속화할 골든타임”이라며 “산업 현장에서 나온 제언을 입법과 정책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2026-07-16 17: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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