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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 넘칠 때가 재정의 진짜 시험대다
[경제일보]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기업의 장부를 넘어 나라 곳간까지 바꾸고 있다. 정부가 예상한 내년 국세수입은 584조4000억원. 올해 본예산보다 크게 늘어난다. 법인세와 소득세가 동시에 증가하는 배경에는 AI 반도체 호황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이 가운데 최근 10년의 내국세 추세를 웃도는 추가 세수 162조3000억원을 떼어 ‘미래대응기금’을 만들겠다고 했다. 숫자가 워낙 크다 보니 먼저 하나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162조3000억원 전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이 직접 낸 세금이라는 뜻은 아니다. 정부가 추세선을 웃도는 전체 내국세 증가분을 계산한 금액이고, 반도체 호황은 그 세수 급증을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반도체가 번 세금’이라는 표현이 던지는 질문은 유효하다. 호황기에 갑자기 늘어난 세수는 누구의 돈인가. 지금 살아 있는 국민이 당장 써도 되는 돈인가. 아니면 경기가 꺾인 뒤를 위해 남겨둬야 할 돈인가. 더 멀리 보면 아직 세금을 낼 나이조차 되지 않은 미래세대에게도 일정한 몫이 있는 돈인가.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3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에서 짚은 것도 같은 문제다. 그는 대외 불확실성과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려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동시에 국가채무와 의무지출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재정 여력을 떨어뜨리고 잠재성장률과 미래세대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두 말은 모순되지 않는다. 경기가 무너질 때 재정은 과감하게 써야 한다. 민간이 움츠러들고 기업이 투자를 미룰 때 정부까지 지갑을 닫으면 불황을 더 깊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세수가 예상보다 크게 늘어난 호황기에는 일부를 남겨야 한다. 불황에 쓸 수 있는 정부가 되려면 호황기에 다 쓰지 않는 정부여야 한다. 이것이 재정의 기본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대응기금이라는 발상 자체는 평가할 대목이 있다. 정부는 162조3000억원 가운데 45조4000억원을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분야에 쓰고, 12조5000억원으로 신규 국채 발행을 줄일 계획이다. 가장 큰 몫인 104조4000억원은 당장 쓰지 않고 여유자금으로 적립한다. 전체 기금의 64%가량이다. 세수가 더 들어왔다고 한 해에 모두 지출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더구나 반도체는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AI 붐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메모리 가격이 떨어지고 투자 사이클이 꺾이면 기업이익과 법인세는 빠르게 줄어든다. 세수는 내려가는데 한 번 시작한 복지와 보조금, 기관과 사업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재정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일시적인 돈으로 영구적인 지출을 만드는 일이다. 올해만 들어오는 10조원을 근거로 매년 10조원이 필요한 사업을 시작하면 호황이 끝나는 순간 그 차이는 빚이 된다. 세금을 올리거나 다른 지출을 줄이지 않는 한 결국 국채가 빈자리를 메운다. 때문에 미래대응기금의 성패도 ‘얼마를 담았느냐’보다 어떤 돈을 어디까지 쓸 수 있게 하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45조4000억원의 사업지출 가운데 AI와 전략기술, 인재 양성처럼 미래의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 오늘의 반도체 호황에서 나온 세금으로 다음 산업을 만드는 것은 세대 간 이전이라기보다 세대 간 투자에 가깝다. 반면 한번 시작하면 끊기 어려운 경상적 복지와 반복성 지원사업을 초과세수에 기대어 늘리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반도체 가격은 내려가도 법으로 정해진 의무지출은 내려가지 않는다. 반도체 사이클은 꺾여도 정부 사업에는 사이클이 없다. 바로 이 점에서 104조4000억원의 여유자금이 중요하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이 돈은 향후 세수 결손이나 예상하지 못한 재정 수요가 발생할 때 재정을 보강하는 일종의 ‘저수지’ 역할을 하게 된다. 방향은 합리적이지만 정부는 일정한 범위에서 추가경정예산을 거치지 않고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들고 있다. 신속성은 커지지만, 100조원이 넘는 자금에 행정부의 재량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을 쌓아두는 것만으로 미래세대의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 꺼낼 수 있는지, 무엇에 쓸 수 있는지, 누가 결정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세수 결손이 어느 정도일 때 사용할 것인지, 경기침체의 기준은 무엇인지, 미래투자라는 이름으로 어떤 사업까지 허용할 것인지 법과 제도로 선을 그어야 한다. 특히 기금의 여유자금이 그때그때 정부가 원하는 사업을 담는 별도 예산처럼 운용돼서는 안 된다. 노르웨이의 경험은 참고할 만하다. 노르웨이는 석유와 가스에서 들어오는 정부 순수입을 정부연기금 글로벌(GPFG)에 넣고 해외에 투자한다. 재정에는 기금의 원금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대신 장기적으로 예상 실질수익률에 해당하는 수준을 기준으로 활용한다. 현재 그 기준은 약 3%다. 핵심은 석유로 갑자기 부자가 된 한 세대가 자원을 모두 소비하지 않고 금융자산으로 바꿔 후대와 나누겠다는 데 있다. 물론 한국의 반도체 세수와 노르웨이의 석유 수입을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석유는 땅에서 한 번 꺼내 쓰면 사라지는 국민 자산이고, 반도체 기업의 이익과 세금은 혁신과 생산 활동에서 생긴다. 정부가 기업이 낸 세금을 영구적으로 묶어둘 이유도 없다. 하지만 배울 원칙은 있다. 일시적으로 크게 들어온 돈을 평상시의 소득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 노르웨이는 석유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한국 재정도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기’ 왕제편에는 ‘국무구년지축왈부족(國無九年之蓄曰不足)’이라는 구절이 있다. ‘나라에 아홉 해를 버틸 비축이 없으면 부족한 것’이라는 의미다. 이어 3년을 농사지으면 1년치 식량을 남기고, 9년이면 3년치를 비축해야 한다고 했다. 풍년에 남겨 흉년을 견딘다는 오래된 국가운영의 원칙이다. 2500년 전 곡식창고가 오늘의 재정기금으로 바뀌었을 뿐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2027년 예산안은 총지출이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8% 늘어난다. 동시에 정부는 미래대응기금과 국채 발행 축소를 통해 내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8.3%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적극적인 지출과 재정안정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구상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원칙이 필요하다. 우선 경기순환으로 생긴 초과세수와 경제의 기초체력에서 생긴 구조적 세수를 구분해야 한다. 일시적 초과세수는 상시 지출의 재원으로 잡아서는 안 된다. 또한 초과세수의 사용 순서를 정해야 한다. 미래 성장투자, 재정안정 적립, 국가채무 축소 사이의 기준을 사전에 만들어 정권과 경기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기금에서 돈을 꺼내는 조건도 엄격해야 한다. 불황이나 세수 급감 때는 과감하게 쓰되 단순히 예산을 더 쓰기 위한 우회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오늘의 호황을 내일의 고정비로 바꾸지 않는 것이다. 반도체 기업이 잘 벌어 세금이 많이 들어온 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 돈으로 AI와 첨단산업을 키우고 청년에게 기회를 만들며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나라 살림은 기업의 분기 실적과 달라야 한다. 기업은 좋은 해에 성과급을 더 줄 수 있다. 국가는 좋은 해의 세수를 보고 수십 년 동안 지급해야 할 약속을 쉽게 늘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연금과 의료, 돌봄 지출은 계속 커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 늘어난 돈을 모두 현재의 소비에 써버리면 다음 세대는 호황의 혜택은 누리지 못한 채 그때 만들어진 지출 의무만 넘겨받을 수 있다. 반도체가 벌어준 추가 세수는 현 정부의 돈도, 현 세대만의 돈도 아니다. 호황을 만든 기업과 노동자의 성과에서 나왔지만 국가의 세금이 된 순간 현재와 미래의 국민 모두를 위해 써야 할 자원이 된다. 재정이 돈이 들어올 때보다 그 돈이 사라진 뒤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언젠가 끝난다. 그때도 남아 있어야 할 것은 새로 만든 지출의 청구서가 아니라, 다음 위기를 견딜 재정 여력과 다음 산업을 만들어낼 자산이다. 돈이 많이 들어왔을 때 많이 쓰는 정부보다, 돈이 사라질 때를 준비하는 정부가 더 유능하다. 162조3000억원 미래대응기금의 진짜 이름값도 거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2026-09-14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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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9조 '슈퍼예산' 국회로…성장 투자냐, 재정 재량 확대냐
[경제일보] 정부가 820조9000억원 규모의 2027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국회 심사의 막이 오른다. 올해 본예산보다 93조원, 12.8%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총지출이 8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총수입이 200조원 넘게 늘어나는 특수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미래산업, 청년, 지방, 민생 분야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관전 포인트는 분명하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잠재성장률 반등과 양극화 완화를 위한 ‘성장 투자 예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국회 심사 과정에서는 162조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의 운용 방식, 100조원대 지출 구조조정의 타당성,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교부세 개편의 파장, 2030년 총지출 1000조원 시대의 재정 지속 가능성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부는 1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2027년 예산안’과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심의·의결했다. 내년도 총수입은 880조8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05조6000억원, 30.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세수입은 584조4000억원으로 49.8% 늘어날 것으로 봤다. 법인세와 소득세 증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입 개선이 수입 확대의 핵심 배경이다. 수입 증가 폭이 지출 증가 폭을 웃돌면서 재정지표는 일시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올해 본예산 기준 3.9%에서 내년 0.1%로 낮아지고, 국가채무비율도 51.6%에서 48.3%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확장 재정 기조가 이어지면서 2030년 총지출은 1005조2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첫 쟁점은 162조 미래대응기금 가장 큰 쟁점은 미래대응기금이다. 정부는 최근 10년 내국세 증가 추세선을 웃도는 추가세수를 기금에 적립해 경기 변동과 세수 급감에 대비하는 ‘재정 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내년 추가세수 162조3000억원을 기금에 적립하고, 이 가운데 45조4000억원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투입한다. 또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 활용하고,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비축한다. 정부는 세수가 급격히 줄거나 경기 대응이 필요할 때 추가경정예산 편성 없이 기금 변경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회 심사에서는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국회 통제 문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금은 일반 예산보다 행정부 재량이 크다.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의 주요 항목 지출 금액을 일정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하는 점도 논란거리다. 야당과 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수 호황기에 여윳돈이 생기면 우선 국가채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AI·반도체에 21조원…미래산업 투자 확대 정부는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 3대 메가프로젝트와 AI 분야에 21조3000억원을 배정했다. 올해 10조8000억원보다 97.2% 늘어난 규모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등 국가 전략 프로젝트를 집중 지원해 한국 경제의 차세대 성장축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2조6000억원 규모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회계’를 신설한다. 용인·평택 반도체 생산기지 조기 가동을 위한 기반시설 투자에 1000억원을 배정하고,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신속한 착공을 위해 1조5000억원을 지원한다. 반도체 산업단지 전력 공급을 위한 지중 송전망과 고압 변전소 등 전력 인프라에도 881억원을 투입한다. 서남권·충청권 산업단지 용수 공급과 수자원시설 확충에는 1277억원이 배정됐다. AI 분야에는 4조700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과 데이터, 인재를 집중 지원해 독자 AI 모델 고도화에 나선다. 이를 기반으로 ‘모두의 AI’를 개발해 대국민 서비스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미래 성장엔진 확충 예산은 올해 51조2000억원에서 내년 62조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우주항공, 바이오, 모빌리티, 원자력, 방산 등 10대 전략기술 분야에 15조원을 투입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등 미래선도기술 분야 연구 기반도 강화한다. 재생에너지 보급 예산은 9000억원에서 1조8000억원으로 두 배 늘어난다. ◆청년·지방 예산 급증…양극화 대응 전면에 청년 지원 예산은 올해 28조2000억원에서 내년 43조3000억원으로 53.5% 확대된다. 교육, 일자리, 자산, 주거, 혼인·출산·양육, 생활·문화 등 성장단계별 종합 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를 두 배로 늘리고, 대학생 6만 명에게 졸업 전 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인턴학기제를 추진한다. K-뉴딜아카데미 등 첨단 분야 직업훈련도 확대한다. 창업안심보험을 신설해 취업 초기 청년에게 보험료의 최대 80%를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자산 형성 지원도 강화된다. 출생부터 18세까지 연 최대 120만원을 지원하는 ‘우리아이자립펀드’를 신설하고, 청년미래적금은 소득요건을 없애 모든 청년이 가입할 수 있도록 개편한다. 주거 분야에서는 청년 공공임대주택 10만6000호를 공급하고, 비아파트 구매 시 월세 수준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도입한다. 혼인지원금, 출산지원금, 아동기본수당을 묶은 저출생 대응 3종 패키지도 신설한다. 지역균형발전 예산도 대폭 늘어난다. 국토 대전환과 지방주도 성장 예산은 올해 16조1000억원에서 내년 33조원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5극3특 성장엔진특별보조금을 신설해 앵커기업이 지방에 대규모 투자를 할 경우 설비투자액의 최대 50%를 지원할 계획이다. 지방 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지역 필수의료 지원 예산은 8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늘어난다. 2027년 신입생부터 지방 국립대에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민생 안정 예산은 10조원에서 15조4000억원으로 늘고,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의 장기연체 채무 특별조정에는 7000억원이 투입된다. ◆지출 구조조정 107조…교부금 개편 충돌 가능성 정부는 대규모 확장 재정과 함께 107조6000억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도 병행한다. 소규모·관행적 사업과 불요불급한 경상비, 저성과·유사·중복 사업을 줄여 38조6000억원을 절감하고, 의무지출 조정으로 69조원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국회 심사에서 특히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교부세 개편이다.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제 폐지로 32조5000억원을 줄이고, 교부세 산정 방식 개편으로 30조5000억원을 절감한다는 방침이다.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교육재정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는 게 정부 논리다. 그러나 교육계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지역 교육재정의 핵심 재원이고, 교부세는 지방정부의 재정 운영과 직결된다. 정부가 지방 투자 예산을 대폭 늘리면서도 기존 지방·교육 재정 배분 방식을 바꾸겠다고 한 만큼, 국회에서는 재원 배분의 형평성과 지역별 영향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국회 심사 본격화…12월 2일 법정 시한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인 9월 3일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 본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예산안을 확정한다.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하는 법정 시한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이다. 이번 예산안은 반도체 호황이라는 특수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성장과 분배, 미래 투자와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정부는 적극 재정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양극화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내년도 적극적인 재정 투자를 통해 V자형 경제 회복을 보다 공고히 견인하고, 성장주도형 재정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회에서는 ‘슈퍼예산’의 방향과 재정 운용 방식에 대한 검증이 불가피하다. 820조9000억원이라는 지출 규모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 어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느냐다. AI·반도체·청년·지방 투자처럼 미래 성장과 사회 구조 개선에 필요한 예산은 힘을 받을 수 있지만, 미래대응기금의 행정부 재량 확대와 지방교육재정·교부세 개편은 치열한 공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2027년도 예산안 심사는 정부가 내세운 ‘성장 투자’ 논리가 국회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얻느냐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낸 일시적 세수 여력을 미래 성장의 마중물로 쓸 것인지, 재정 건전성과 국회 통제를 우선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기국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6-09-01 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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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주주·투자, 세 갈래로 찢긴 초과이익
[경제일보] 삼성전자 노사 갈등의 핵심은 임금 인상률 몇 퍼센트가 아니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이 만든 초과이익을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어디까지 나눌 것인가의 문제였다. 삼성전자 노사는 총파업 개시 90분을 앞두고 2026년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극적으로 도출했다. 공개된 합의안에는 기준인상률 4.1%, 성과인상률 평균 2.1%,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 신설, 주거안정 지원, 출산장려금 확대 등이 포함됐다. 잠정합의안은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과해야 최종 효력이 발생한다. 이번 합의의 가장 큰 변화는 반도체 부문 성과급 체계다. 노사는 기존 성과인센티브 제도를 유지하되, DS부문에 별도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별경영성과급은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고, 일정 조건 아래 10년간 운영되는 구조로 알려졌다. 지급 방식은 현금이 아닌 자사주 중심으로 설계됐다. 노조 입장에서는 성과급 상한 폐지 요구가 일정 부분 반영된 결과다. 회사 입장에서는 현금 유출을 줄이면서 핵심 인재 이탈을 막는 절충안을 마련한 셈이다. 다만, 이번 합의가 파업을 피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와 한국 경제 전반에 안도감을 줬지만, 비메모리 부문 직원과 일부 주주 사이의 불만도 남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앞으로다. 반도체 호황은 언제나 사이클을 탄다. AI 메모리와 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금은 초과이익 배분 논의가 가능하지만, 업황이 꺾이면 같은 공식은 곧바로 비용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성과급 제도는 호황기에만 작동하는 보상 장치가 아니라 불황기에도 조직이 받아들일 수 있는 원칙이어야 한다. 삼성전자가 마주한 질문은 명확하다. 성과를 낸 직원에게 충분히 보상해야 한다. 동시에 미래 투자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주주가치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도 외면할 수 없다. 이 네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공식은 쉽지 않다. 때문에 이번 삼성전자 노사 사태는 한 기업의 임금협상으로만 볼 수 없다. 한국 경제 전체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과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묻는 사건이다. 임금과 성과급, 주주환원, 설비투자, 연구개발, 세수 확충, 재정 운용이 한꺼번에 연결돼 있다. 실제로 정부는 올해 추가경정예산 편성 과정에서 국세수입 전망을 본예산보다 25조2000억원 늘려 잡았고, 이 가운데 법인세만 14조8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경기 개선에 따른 기업 실적 증가가 주요 배경으로 거론됐다. 결국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은 기업 내부의 분배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가 재정의 문제다. 초과이익이 직원에게만, 주주에게만, 정부 세수로만 흘러가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누가 기여했고, 누가 위험을 감수했으며, 미래 경쟁력을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노사 사태는 끝난 것이 아니고, 잠정합의는 시작일 뿐”이라며 “초과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는 삼성전자를 넘어 한국 경제가 반드시 풀어야 할 다음 과제로 남았다”고 했다. 한편, 본지는 이번 삼성전자 노사 사태 관련 오는 27일 오후 3시 국회의사당 본관 2식당(귀빈식당)에서 ‘삼성전자 노사 사태, 지금부터 시작이다’를 주제로 ‘경제일보 정책 간담회’를 개최한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반도체 초과이익 배분, 임금과 성과급, 미래 투자, 주주환원, 사회적 책임의 균형점을 논의한다. 아울러 반도체 호황이 만든 초과 세수를 단기 지출에 쓸 것인지, 국가채무와 재정준칙 복원에 활용할 것인지, 미래 성장 투자로 돌릴 것인지도 함께 따져볼 예정이다.
2026-05-23 13: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