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부의 821조원 규모 내년도 예산안을 겨냥해 부동산 시장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출과 거래를 규제하면서 한편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재정을 풀면 시중 유동성이 늘어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 주택 공급이 단기간에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규모 재정지출이 자산시장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다만 정부가 내년에 821조원을 쓴다는 것과 821조원의 새로운 돈이 시중에 풀린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내년도 예산의 수입과 지출, 주택 분야 투자까지 함께 따져봐야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4일 정치권과 정부 등에 따르면 오 시장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부의 2027년도 예산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오 시장은 시중 유동성과 주택가격이 함께 움직여왔다며 “수요를 단기간에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주택 공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부동산 불씨에 유동성이라는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는다며 세금과 대출, 거래를 규제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대규모 재정지출에 나서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게 오 시장의 주장이다. 오 시장은 국회에도 선심성·소비성 예산을 걷어내고 국가채무를 관리할 수 있도록 예산안을 엄격하게 심사해달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총지출은 820조9000억원이다. 올해 본예산 727조9000억원보다 93조원 늘어난다. 증가율은 12.8%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출 증가 규모만 놓고 보면 오 시장이 ‘확장재정’을 문제 삼을 만한 수치다.
다만 820조9000억원은 정부가 내년 한 해 동안 쓰는 전체 예산이다. 올해보다 새로 늘어나는 지출은 93조원이다. 이마저 모두 빚을 내 마련해 시중에 투입하는 돈으로 볼 수 없다.
정부는 내년 총수입을 880조800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세수입만 584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와 소득세 증가 등을 반영한 전망이다. 정부 예상대로 세수가 들어온다면 지출이 크게 늘어도 재정 적자가 함께 확대되는 형태는 아니다.
정부가 제시한 관리재정수지 전망도 같은 방향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올해보다 3.8%포인트 낮은 0.1% 수준으로 잡았다. 국가채무 비율도 올해 51.6%에서 내년 48.3%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821조원이라는 예산 총액만 놓고 정부가 그만큼의 유동성을 새로 만들어 시장에 공급한다고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다. 재정이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도 지출 규모만이 아니라 세입 규모와 재원 조달 방식, 돈이 쓰이는 분야를 함께 봐야 한다.
지출의 용처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인공지능(AI)과 미래산업, 청년 지원, 양극화 대응, 안전 분야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모든 증가분이 소비 지원이나 자산 매입 여력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분야에서는 오히려 공급 확대에 재정을 투입한다. 국토교통부의 내년도 예산은 올해보다 9.9% 늘어난 69조원으로 편성됐다. 정부는 올해 19만4000호인 공적주택 공급을 내년 21만8000호로 확대할 계획이다. 공공임대 17만2000호와 공공분양 3만4000호, 공공지원 민간임대 1만2000호가 포함된다.
주택사업장의 조기 착공을 돕기 위한 PF 대출 이차보전과 공공이 개발 초기 자금을 넣는 PF 앵커리츠 사업도 추진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확대 가운데 일부를 주택 수요가 아니라 공급을 늘리는 데 투입하는 셈이다.
따라서 정부의 전체 지출이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부동산 시장에 그만큼의 돈이 직접 유입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 시장의 우려를 숫자의 착시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재정지출이 크게 늘면 경기와 가계소득을 끌어올리고 시중 자금 사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서울 주택시장에서 유동성이 늘어날 경우 일부 자금이 부동산으로 향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정부가 공급 확대를 위해 예산을 늘려도 실제 주택이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공공주택 사업에 예산을 투입했다고 곧바로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재정의 경기 부양 효과가 주택 공급 효과보다 먼저 나타날 경우 단기적인 시장 불안을 키울 가능성은 남는다.
결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확장재정이 충돌하는지는 821조원이라는 예산 총액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늘어난 93조원이 어디에 쓰이는지, 정부가 예상한 세수가 실제로 얼마나 들어오는지, 주택 공급 확대가 어느 속도로 시장에 나타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특히 정부가 내다본 국세수입 584조4000억원이 중요하다. 정부 예상대로 세금이 걷히면 지출 확대에도 재정수지가 개선된다는 정부 설명에 힘이 실린다. 반대로 경기나 반도체 업황이 예상에 못 미쳐 세입이 크게 부족해지면 정부가 세운 재정 운용의 전제부터 흔들릴 수 있다.
대출을 조이면서 재정을 크게 늘리는 정책 조합이 서울 집값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821조원을 쓴다’는 숫자 하나만으로 정부가 821조원의 돈을 새로 풀어 부동산을 자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집값에 미칠 영향을 따지려면 예산 총액보다 돈을 어떻게 마련하고 어디에 쓰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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