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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800조 반도체 투자에 숟가락 얹지 말라
[경제일보] 800조원. 기업 투자 규모만으로도 한국 산업사의 기록을 새로 쓸 만한 숫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서남권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이야기다. 문제는 이 천문학적인 투자계획을 놓고 정치권의 지역 논쟁까지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부 국정감사에서도 입지 선정 과정이 도마에 올랐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정부가 여러 후보지를 제안했고 최종 결정은 기업이 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야당 의원들은 기업들에 확인한 결과 특정 지역을 먼저 제안하거나 투자계획을 확정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정부 설명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누가 먼저 호남을 거론했느냐를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는 상황이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까지 예단할 필요는 없다. 정부가 기업에 특정 지역 투자를 강요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기업과 정부가 대규모 투자계획을 협의하면서 여러 후보지를 검토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이번 논란은 800조원짜리 반도체 투자를 어떤 원칙으로 다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반도체 공장은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다. 전력과 용수, 부지와 물류, 인재, 협력업체, 연구개발 생태계를 종합적으로 따져 수십 년 뒤까지 경쟁력을 계산해야 하는 기업 투자다. 더구나 반도체는 한번 공장을 지으면 되돌리기 어려운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투자액도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에 이른다. 그 판단의 최종 책임은 투자하는 기업이 져야 한다. 세계 반도체 경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미국과 대만, 일본, 중국, 유럽은 생산시설과 첨단기술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세제와 보조금, 전력과 용수 등 기반시설을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길어지거나 경제성 이외의 변수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그 비용은 기업이 떠안는다. 결국 한국 반도체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국가균형발전을 외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가 집중된 한국에서 지방에 첨단산업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전력과 용수 확보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새로운 생산거점을 비수도권에서 찾는 것은 산업정책 측면에서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선택지다. 문제는 순서다. 기업에 지방으로 가라고 요구하는 것과 기업이 지방을 선택할 만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이다. 반도체 공장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과 막대한 양의 공업용수다. 장비와 소재·부품을 공급할 기업이 가까이 있어야 하고 국내외 고급인력이 일하고 정착할 수 있는 여건도 필요하다. 도로와 철도, 항만 같은 물류망도 갖춰야 한다. 정치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전력망과 용수시설을 제때 구축하고 교통·물류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을 연결해 인재를 키우고 교육·의료·주거 등 정주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세제와 연구개발 지원의 예측 가능성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기업이 사업성만 따져도 지방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균형발전이다. 지역끼리 경쟁하는 것도 나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필요하다. 다만 정치적 영향력으로 기업을 끌어가는 경쟁이 아니라 어느 지역이 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인재를 확보하며 빠르게 인허가를 처리할 수 있는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중앙정부도 심판과 지원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 공장을 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각 지역이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기업의 선택을 지원해야 한다. 이번 800조원 투자를 정치적 성과로 앞세우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발표된 투자계획이 곧바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경기는 변하고 기술도 바뀐다. 글로벌 수요와 메모리 가격, 금융시장과 기업의 수익성에 따라 투자 시기와 규모가 조정될 수도 있다. 기업 역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장·경영상황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수백조원의 숫자를 먼저 정치적 치적으로 만들어놓으면 나중에 기업의 합리적인 투자 조정까지 정치적 실패나 약속 파기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 기업의 투자는 기업이 책임지고 정부 지원에는 정부가 책임지면 된다. 특히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전력망과 용수, 산업단지, 세제지원에는 더 엄격한 경제성 검토와 투명성이 필요하다. 기업 자율을 강조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지원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 결정을 존중하되 국가가 부담하는 비용과 기대효과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회가 할 일도 분명하다. 반도체 특별법과 관련 예산을 어느 지역이 얼마나 가져갈지를 놓고 경쟁하기보다 한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무엇이 부족한지를 살펴야 한다. 전력과 용수, 인력과 연구개발, 세제와 인허가 가운데 경쟁국보다 뒤처진 것이 무엇인지 찾아 고치는 것이 먼저다. <관자>에는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는 말이 있다. 국가의 산업정책도 경제적 토대를 무시한 채 명분만 앞세워서는 오래가기 어렵다. 균형발전이라는 목표가 아무리 옳더라도 산업이 지속될 경제적 기반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반대로 지방이 기업하기 좋은 곳이 되면 정치가 기업에 내려가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투자는 움직인다. 800조원은 정치권의 전리품이 아니다. 특정 지역의 몫으로 미리 떼어놓을 돈도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행하는 민간의 장기 투자다. 동시에 그 투자의 성공 여부가 한국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국가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치의 역할은 더 절제돼야 한다. 기업이 투자할 곳을 정치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투자하고 싶은 곳을 만드는 것. 기업의 결정을 정치적 치적으로 포장하는 대신 전력망 하나, 용수시설 하나라도 제때 완성하는 것. 그것이 800조원 앞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정치세력이 투자계획에 이름을 올렸느냐가 아니다. 누가 더 빨리 공장을 짓고 더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정치가 800조원에 숟가락을 얹기보다 반도체가 달릴 길부터 닦아야 한다.
2026-10-07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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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진 금감원장, 은행지주 회장 소집…CEO 승계·내부통제 강화 주문
[경제일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지주 회장들에게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 달라고 당부했다. 지자체 금고 입찰 과정의 과당 경쟁과 금융사고 증가 문제도 함께 거론하며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했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 원장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금감원에서 8개 은행지주 회장과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을 만나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금감원에서 이 원장과 곽범준 은행부문 부원장보, 은행감독국장이 참석했다. 금융권에서는 은행연합회장과 8대 은행지주 회장이 참석했다. 이 원장은 올해 하반기를 대외적으로 글로벌 통화정책 기조 변화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시기라고 평가했다. 내부적으로는 은행장을 포함해 70여개 자회사 CEO 선임 절차가 진행되는 변화의 시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금융권이 공정한 원칙에 기반해 업무를 처리해야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회사 CEO 선임과 관련해서는 특정 계파나 친소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능력에 기반한 적임자를 선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CEO 후보군 선정과 검증, 평가, 기록 등 승계 절차 전반에서 지켜야 할 기준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주회사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CEO 후보 추천과 검증, 선정 과정에서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실질적인 역할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CEO 상시 후보군 등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후보 평가 과정에서 임추위원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자체 금고 입찰 과정의 과당 경쟁 우려도 거론됐다. 이 원장은 금고 운영이 사업적 관점에서 매력적인 것은 이해하지만 자본력이 큰 은행이 협력사업비 경쟁을 통해 낙찰자로 선정되는 모습은 불공정한 경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자체 금고 입찰을 이해타산의 관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지역 내 자금 순환과 지방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금감원은 향후 협력사업비 지출이 은행의 건전성과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은행들이 면밀히 분석했는지 살펴볼 방침이다.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강화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금감원은 내부통제 혁신방안과 여신 프로세스 개선 태스크포스(TF), 책무구조도 도입 등에도 금융사고가 내부 직원 사고뿐 아니라 외부인 사기와 해외 점포를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권 금융사고는 지난 2023년 33건, 696억9000만원에서 올해 1~7월 47건, 1708억2000만원으로 늘었다. 이 원장은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인력과 자원이 충분히 투입되지 않으면 제도 개선도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지주그룹 내 금융회사들의 내부통제가 경영 전반에서 작동하도록 충분한 내부자원 확보와 책임 있는 실행이 필요하다고 했다. 금감원은 앞으로 위규행위가 발생하면 평가·보상 체계의 적정성과 조직 차원의 유인 여부 등 근본적인 문제까지 점검할 계획이다. 조 회장은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내부통제, 소비자 보호까지 책임지는 CEO 선임 절차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은행지주가 금융산업에 미치는 위상에 맞게 지방 균형발전과 지배구조 개선, 내부통제 강화 등에 협조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은행지주 회장들은 자회사 CEO 선임 절차에 부족한 부분이나 개선할 점이 없는지 다시 살피겠다고 했다.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충분한 인력과 자원을 배치하고 금융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2026-09-23 09: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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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국민 실망에 책임 인정…검찰개혁 완수·집값 안정 약속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지지율 하락 등으로 나타난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실망을 자신의 책임으로 인정하고 민생 개선과 개혁 완수, 국민 통합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검찰개혁을 추진하면서 경찰에 대한 견제 장치를 강화하고 부동산 시장 안정과 국토 균형발전에도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개헌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연임은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명확히 했다. 이 대통령은 18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지난 472일간 경제·사회·외교·안보 분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 실망과 걱정에 직면해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숙고와 성찰 끝에 내린 결론으로 "언제나 국민이 옳다"는 생각을 제시하며 "모두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산적한 국정 과제를 처리하는 데 마음이 앞서 국민 개개인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정책의 당위성을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행을 통해 결과를 증명하려는 과정에서 민생과 개혁, 통합에 수반되는 갈등과 고통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거둔 성과와 국민의 성원 속에서 대통령에게 필요한 두려움과 겸손함이 줄어들었다는 반성도 내놨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국민을 더욱 섬기는 자세로 국정에 임하고 세심하고 치열하게 민생을 챙기겠다"고 했다. 특히 경제지표 개선이 국민의 실제 생활 여건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과 성장 회복에 주력하는 동안 국민이 느끼는 생활의 어려움에 충분히 답하지 못했다"며 "성장을 회복하는 일과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일 모두 중요한 국정 과제인 만큼, 앞으로는 성장 못지않게 민생 개선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거시경제 지표의 개선뿐 아니라 성장의 기회와 성과가 국민에게 얼마나 폭넓게 돌아가는지도 중요한 국정 과제로 삼겠다는 의미다. 다만 구체적인 소득 지원이나 재정 확대 방안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별도로 제시하지 않았다. 개혁의 가치 유지하면서 추진 방식 재점검…검찰 수사권 분리와 경찰 견제 병행 대통령은 국정 운영 과정에 미흡함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개혁의 목표와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지향해 온 사회 개혁의 목표에는 변화가 없고, 지금은 국가 최고 책임자로서 실제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설명이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로는 기존 이해관계자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들었다. 변화를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의 지지는 분산돼 있는 반면,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은 강하게 결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이 같은 저항을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이 대통령의 역량과 책임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개혁을 추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입장을 설명했다. 강경한 표현과 추진 방식으로 개혁 의지를 부각하다가 오히려 저항을 키우고 정책 실행이 지연되거나 실패할 가능성을 경계해 왔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이전 정부의 의료개혁을 사례로 거론하면서 "정책의 실질적인 성과 없이 사회적 혼란만 초래하는 상황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가급적 조용히 성과를 만들어 국민의 평가를 받는 데 집중해 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개혁의 속도와 통합의 범위를 조화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 "통합을 강조하면 개혁이 흐려진다는 비판을 받았고, 개혁을 추진하면 통합의 진정성을 의심받는 상황도 있었다"고 했다. 앞으로는 개혁에 따른 이해관계자들의 고통과 상실감을 줄이면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소통과 존중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입장이다. 검찰개혁에 대해서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검사를 수사에서 배제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분리하는 개혁 과제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다"며 "검찰개혁의 목적은 수사·소추 기관의 권한이 정치적 수사와 기소에 악용되는 것을 막고 국민의 인권과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검찰 보완수사권이 사라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경찰 수사에 대한 견제·보완 장치를 통해 해소하겠다는 구상이다. 경찰에 수사권이 집중되면서 새로운 권력기관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경찰개혁으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 통합과 관련해서는 "정치적 지향과 개혁의 방법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주권정부 출범에 힘을 모았던 사람들이 서로 비난과 혐오의 언어를 주고받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자신의 지지자들이 개혁과 진보라는 공통의 가치를 바탕으로 함께해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에 대해서는 민주당의 당원이자 국정 최고 책임자인 자신의 책임이 크다며 더 많이 듣고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민생, 개혁, 통합은 결국 하나의 길로 수렴한다"면서, 개혁은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이고, 통합은 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토대라는 인식을 제시했다. 집값 안정·행정수도 완성 약속…개헌 추진 속 연임에는 선 긋기 경제 분야에서는 부동산 시장 안정과 국토 균형발전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 회복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성장의 기회와 성과를 국민 모두가 누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장기적인 경제 침체를 피하기 위해 부동산 시장을 반드시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수도권 집값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수도권 집중을 지목했다. 수도권에 집중된 성장 동력을 다른 지역으로 분산하고 지역별 성장 거점을 육성하는 국토 균형발전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주택 공급과 규제, 세제 정책을 신속하게 집행하면서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히 소통해 정책 추진 과정의 혼란과 반발을 최소화하겠다고 설명했다. 행정수도 건설에 대해서는 최대한 신속하게 완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울을 경제수도, 세종을 행정수도로 하는 이른바 경제·행정 2수도 체제를 구축해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국토 균형발전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 뉴욕과 워싱턴의 역할 분담을 사례로 제시했다. 개헌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치적 타협의 결과로 만들어진 1987년 헌법이 변화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개헌 과제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정신의 헌법 전문 반영, 국민 기본권 강화, 대통령 권한 일부의 국회·지방정부 분산, 대통령 연임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개헌은 여야 정치권의 합리적 토론과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신의 연임을 위한 개헌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의 연임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 개정은 헌법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저는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도 부인했다. 인사 논란과 관련해서는 인사권을 포함한 국가권력의 원천이 국민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으로 인사 행정과 국가권력을 행사할 때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인사 시스템도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을 마무리하면서 안보와 경제의 지형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단결과 지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되새기며 민생 개선, 개혁 과제 해결, 국민 통합을 위해 국정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6-09-18 11: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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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재정, 많이 쓰는 것보다 무엇을 남기느냐가 중요하다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 편성을 앞두고 ‘생산적 재정’으로의 전환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에서 “지금은 눈앞의 재정 수치 관리에 매몰되는 우를 범할 때가 아니다”라며 늘어난 재정 여력을 미래에 더 큰 성과를 만드는 분야에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불요불급한 예산은 과감하게 조정해 재정을 건실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가 재정을 단순한 지출 수단이 아닌 성장 기반을 만드는 투자 수단으로 보겠다는 방향에는 공감할 부분이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저출생 대응, 지역균형발전, 국방, 인재 육성처럼 장기간 투자가 필요한 분야는 민간에만 맡겨서는 속도를 내기 어렵다. 정부가 마중물을 놓고 민간투자를 끌어내야 할 영역도 분명히 있다. 특히 산업 대전환기에는 적절한 재정투자가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다. AI 인프라와 연구개발, 전력망, 인재 양성 같은 분야는 투자 시기를 놓치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지역 소멸과 저출생 역시 대응을 미룰수록 나중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 다만 ‘생산적 재정’이라는 이름만으로 지출 확대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핵심은 투입한 재정이 얼마나 큰 생산성과 민간투자, 일자리로 돌아오느냐다. 1조원을 투입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린 사업과 같은 돈을 쓰고도 효과를 검증하지 못한 사업을 같은 선상에서 볼 수는 없다. 재정 확대가 한번 시작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도 경계할 대목이다. 새로운 사업은 조직과 이해관계를 만들고 지원을 받기 시작한 계층과 지역은 사업 축소에 반발한다. 그래서 재정 확대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재정 구조조정이다. 이 대통령이 불요불급한 예산을 과감하게 조정하라고 주문한 것도 이런 현실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예산안에서 무엇을 줄이느냐다. 오래됐지만 효과가 떨어지는 보조금, 중복된 연구개발 사업, 성과가 불분명한 지역 사업, 일회성 현금지원부터 손보는 것이 순리다. 정부가 신규 사업만 늘리고 기존 사업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생산적 재정’은 결국 지출 총액을 키우는 명분에 그칠 수 있다. 새로운 투자에 얼마를 넣을지 제시하는 동시에 기존 지출에서 무엇을 얼마나 덜어냈는지도 함께 공개할 필요가 있다. 성과평가 체계도 달라져야 한다. 예산 집행률보다 그 돈이 생산성과 성장률, 일자리, 민간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따져야 한다. AI나 첨단산업 지원이라면 민간투자 유발 효과와 기술 경쟁력, 사업화 성과가 기준이 될 수 있다. 지역 사업이라면 인구 유입과 고용, 기업 투자로 이어졌는지를 보는 것이 관건이다. 성과가 없는 사업을 정리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정부 사업은 한번 시작하면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예산을 계속 투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른바 좀비 사업을 정리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돈을 미래 산업에 투입해도 재정의 생산성은 높아지기 어렵다. 저출생 대책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생률 반등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그렇다면 기존 정책을 그대로 늘리기보다 주거·일자리·돌봄·교육비 가운데 실제 출산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를 가려 자원을 집중하는 편이 낫다. 지역균형발전 예산 역시 지역별 나눠주기로 흐르면 곤란하다. 모든 지역에 비슷한 사업을 배분하는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만들기 어렵다. 산업 기반과 대학, 교통, 인재 여건을 따져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곳에는 과감하게 집중하고 성과가 낮은 사업은 정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균형발전의 목표는 지역마다 같은 돈을 나누는 데 있지 않고 지역 스스로 성장할 기반을 만드는 데 있다. 국방 예산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첨단전쟁에 대응하려면 국방비 확대는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병력과 조직을 그대로 둔 채 장비와 예산만 늘리는 방식은 생산적 재정과 거리가 멀다. AI·드론·무인체계·정찰위성 등 미래전력에 우선순위를 두고 낡은 전력과 중복 조직을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정 확대를 주장할수록 국가채무에 대한 원칙도 분명해야 한다. 대통령이 말한 대로 단기적인 재정수치에만 매몰돼 미래투자를 포기하는 것도 현명하지 않다. 그렇다고 국가채무 증가를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재정 부담은 결국 미래 세대와 연결된다. 지금의 지출이 미래 성장률을 높여 세수 증가로 돌아온다면 빚을 내서라도 투자할 이유가 있다. 반대로 미래 수익을 만들지 못하는 지출을 국채로 충당한다면 다음 세대는 원금과 이자를 함께 떠안는다. 이런 이유에서 재정준칙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기 침체나 대규모 재난, 미래 전략산업 투자처럼 재정 확대가 필요한 경우에는 일정한 유연성을 허용하고 평상시에는 국가채무와 재정적자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예외를 인정할 때도 이유와 기간, 정상화 계획을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순리다. 재정준칙은 정부의 손발을 묶는 장치로만 볼 일이 아니다. 평소 원칙을 지켜 신뢰를 쌓아야 위기 때 더 과감한 재정정책을 펼칠 여지도 생긴다. 재정의 신뢰와 정책의 유연성을 함께 확보하는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대응기금과의 관계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호황 등에 따른 세수를 미래 산업과 청년에 투자하는 구상은 장기투자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일반회계와 기금, 정책금융이 중복되면 전체 재정 규모와 정책 효과를 국민이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어떤 사업을 예산으로 하고 어떤 사업을 기금으로 할지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관건이다. 생산적 재정의 성패는 결국 선택과 집중에 달려 있다. 모든 정책의 예산을 늘리는 식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래 성장에 꼭 필요한 분야에는 과감하게 투자하되 효과가 낮은 곳에서는 과감하게 거둬들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정치적으로 인기 있는 사업을 줄이지 못한 채 미래투자만 더하면 재정은 계속 팽창한다. 반대로 국가채무 숫자를 지키는 데만 집중해 필요한 투자를 미루면 성장잠재력이 떨어진다. 이 두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재정정책의 실력이다. 국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가 구조조정한 사업을 지역구 이해관계 때문에 다시 살리고 새로운 지출을 얹으면서 재정건전성만 정부 탓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 국회 역시 증액 경쟁에서 벗어나 감액과 사업 통폐합에 책임 있게 나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확장재정은 결국 결과로 평가받는다. AI 경쟁력이 높아졌는지, 청년에게 더 좋은 일자리가 생겼는지, 지역에 기업과 사람이 모였는지, 저출생의 구조적 원인이 완화됐는지가 성적표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내놓을 때는 총지출 규모와 함께 이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지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1만원을 내일의 10만원, 100만원으로 키우겠다’는 생산적 재정의 취지를 현실로 만들려면 투자 성과를 측정하고 실패한 사업을 정리하는 시스템이 먼저 작동해야 한다. 좋은 사업을 새로 만드는 능력만큼 오래된 사업을 끝낼 수 있는 결단도 중요하다. 재정은 필요한 곳에는 과감해야 하고 효과 없는 곳에는 냉정해야 한다. 지금 한국경제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긴축도, 무조건적인 확장도 아니다. 미래 성장에 필요한 투자를 놓치지 않으면서 국가채무의 지속 가능성까지 지켜내는 정교한 운용이다. 내년도 예산안은 정부가 말하는 생산적 재정이 구호인지 새로운 재정운용 원칙인지 판가름하는 첫 시험대다. 신규 투자 규모만큼 기존 지출을 얼마나 덜어냈는지, 투자의 성과를 어떤 기준으로 검증할지, 늘어난 국가채무를 어떻게 관리할지를 함께 보여줘야 한다. 미래에 투자한다는 명분은 충분하다. 이제 정부가 증명해야 할 것은 그 돈이 정말 미래를 바꾸는가 하는 점이다.
2026-08-26 09: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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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만 옮겨선 '수도권 공화국' 끝낼 수 없다
[경제일보] 대통령이 세종으로 간다. 국회도 뒤따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임기 안에 대통령 세종집무실 시대를 열고, 마지막 국무회의도 세종집무실에서 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에도 속도를 내고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법·제도적 뒷받침을 계속하라고 주문했다. 세종을 명실상부한 국정의 중심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 상당수가 세종에 내려가 있는데 대통령실과 국회는 서울에 남아 있는 지금의 구조는 비효율적이다. 장관과 공무원이 회의 하나 때문에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일이 반복되고, 행정부와 국회의 물리적 거리는 정책 결정의 비용을 높인다.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이 자리 잡으면 행정수도의 마지막 퍼즐 하나가 맞춰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수도권 집중까지 끝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오랫동안 ‘서울공화국’을 넘어 ‘수도권공화국’으로 움직여 왔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토 면적의 11.8%인 수도권에 전국 인구의 50.8%, 지역내총생산의 52.5%가 집중돼 있다. 사람만 서울로 몰린 것이 아니다. 생산과 소비, 좋은 일자리와 인재, 기업과 자본이 함께 수도권으로 모였다. 행정기관을 옮기는 것만으로 이 흐름을 거꾸로 돌리기 어려운 이유도 이미 확인됐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7일 공개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분석을 보면 공공기관 이전이 집중됐던 2010년대 중반 수도권에서 혁신도시로의 인구 이동은 한동안 늘었지만 2017년 이후 사실상 사라졌다. 2023년부터는 혁신도시 인구가 순유출로 돌아섰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늘어난 고용도 상당 부분 음식·숙박·의료·교육 등 지역 내부 수요에 의존하는 서비스업에 집중됐다. 무엇보다 직업을 이유로 혁신도시를 떠나는 흐름이 이어졌다는 점을 연구진은 주목했다. 사람은 청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따라 움직인다. 공무원 수천 명이 내려가면 아파트가 들어서고 음식점과 학원이 생긴다. 그것만으로 도시 하나의 외형은 갖출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취업을 위해 서울로 떠나고, 배우자가 원하는 직장을 지역에서 구하지 못하며, 기업의 연구소와 본사가 수도권에 남아 있다면 도시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행정기관 이전으로 사람을 옮기는 데는 성공해도 다음 세대까지 붙잡는 데 실패할 수 있다. 떄문에 세종 행정수도의 다음 단계는 ‘무엇을 더 옮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스스로 오게 만들 것인가’여야 한다. 먼저 기업이 와야 한다. 세종과 대전·청주·천안·오송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고 AI·반도체·바이오·양자·국방산업 등 충청권이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 기업 본사와 연구개발센터가 들어오고 스타트업이 생기며, 그 기업을 지원하는 금융과 법률·회계 서비스가 따라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도 이 방향을 일부 제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세종의 자족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AI·바이오 등을 중심으로 산학연 기업혁신허브를 조성하고 기업과 대학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통령 역시 11일 세종 국무회의에서 균형발전과 함께 SMR·재생에너지·양자컴퓨터·우주항공·첨단바이오 등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겠다고 강조했다. 행정수도와 첨단산업 거점을 연결하겠다는 방향은 맞다. 대학도 달라져야 한다. 지역 대학을 중앙정부가 보조금으로 연명시키는 대상으로만 보는 정책으로는 청년을 붙잡기 어렵다. 기업 연구소와 대학 연구실이 연결되고, 학생이 지역 기업에서 인턴을 거쳐 취업하며, 교수가 창업하고 그 기업이 다시 지역 대학의 인재를 채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보스턴이나 실리콘밸리, 독일 뮌헨 같은 혁신도시는 관공서가 많아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다. 대학과 기업, 연구소와 자본이 서로 사람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졌다. 의료와 문화도 산업정책만큼 중요하다. 좋은 연봉을 주는 기업을 데려와 놓고 아이를 보낼 학교와 가족이 이용할 병원, 공연장과 문화시설이 부족하다면 핵심 인재는 장기간 머물지 않는다. 특히 고급 연구인력과 기업 경영진의 이동은 월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배우자의 직장과 자녀 교육, 의료와 문화까지 가족 전체의 삶을 계산한다. 균형발전이 산업부와 국토부만의 정책일 수 없는 이유다. 기업 이전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수도권 공장을 지방으로 옮기면 세금을 깎아주는 식의 일회성 유인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연구개발 인력 확보와 대학 협력, 벤처투자, 공급망까지 묶어 기업이 지방에 있을수록 오히려 사업하기 좋은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수도권 기업에 불이익을 줘 억지로 내려보내기보다 세종·충청에 있을 때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시장경제에도 맞다. 무엇보다 세종을 또 하나의 서울로 만들겠다는 욕심도 경계해야 한다. 균형발전의 목적은 수도권의 모든 것을 세종으로 옮겨 새로운 집중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세종은 행정과 정책, 대전은 연구개발과 과학기술, 청주는 반도체·바이오, 천안·아산은 첨단 제조업처럼 각 도시의 강점을 광역교통망으로 연결해야 한다. 하나의 거대한 충청 경제권이 서울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맹자’에는 “항산이 있는 자에게 항심이 있다(有恒産者有恒心)”는 말이 나온다. 안정된 삶의 기반이 있어야 마음도 안정된다는 뜻이다. 오늘의 균형발전에 적용한다면 사람에게 지역에 남으라고 요구하기 전에,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 부처를 옮긴다고 청년에게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세종에서 근무한다고 대기업 본사가 따라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사당이 들어선다고 서울의 대학과 병원, 문화와 자본이 저절로 분산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은 필요하다.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이 공간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강한 상징이며, 행정 효율을 높이는 실질적인 효과도 있다. 이 첫걸음을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다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세종 행정수도의 성공 여부는 몇 개 부처와 기관이 내려왔는지가 아니라 세종과 충청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 일자리가 새로 생겼는지, 지역 대학을 나온 청년이 서울행 열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지, 기업이 정부 권유가 없어도 스스로 내려가겠다고 판단하는지를 보고 평가해야 한다. 균형발전의 단위를 ‘기관’에서 ‘생태계’로 바꿔야 한다. 대통령실과 국회를 옮기는 것은 행정수도를 만드는 일이다. 기업과 대학, 연구소와 병원, 문화와 자본이 함께 움직여야 경제수도가 만들어진다. 행정수도 하나를 만드는 것으로 수도권공화국은 끝나지 않는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강한 경제권을 만드는 것. 그것이 세종 행정수도 완성의 진짜 목적이어야 한다.
2026-08-12 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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