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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 16년 만에 개인전 금맥 이었다…13번 홀 이글로 쐐기
[경제일보] 김주형이 한국 남자 골프에 16년 만의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을 안겼다. 미국에서 프레지던츠컵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온 강행군 속에서도 마지막 날 6타를 줄이며 정상에 올랐다. 개인전 금메달과 단체전 은메달을 수확한 김주형은 병역 부담도 덜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김주형은 3일 일본 아이치현 가스가이 컨트리클럽 동코스(파70)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골프 개인전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5개, 보기 1개를 묶어 6언더파 64타를 쳤다. 최종 합계 18언더파 262타로 딩웬이(중국), 히가 가즈키(일본), 사돔 깨우깐차나(태국) 등 추격자들을 3타 차로 따돌렸다. 한국 선수가 아시안게임 남자 개인전에서 우승한 것은 2010년 광저우 대회 김민휘 이후 처음이다. 2006년 도하 대회 김경태와 김민휘에 이어 김주형이 세 번째 한국인 남자 개인전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한국은 2014년 인천 대회 김남훈,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오승택, 2023년에 열린 항저우 대회 임성재가 잇따라 개인전 은메달을 따냈다. 김주형은 세 대회 동안 이어진 은메달 행진을 끊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한 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일을 시작한 김주형은 전반부터 타수를 줄였다. 2번 홀(파4)에서 첫 버디를 잡은 뒤 4번 홀(파3), 6번 홀(파4), 8번 홀(파5)에서도 버디를 추가했다. 4번 홀에서는 티샷이 그린 뒤로 넘어갔지만 칩샷을 그대로 홀에 넣어 버디를 만들었다. 그린을 놓친 상황을 오히려 타수를 줄이는 기회로 바꾸며 선두 경쟁을 이어갔다. 승부를 가른 장면은 13번 홀(파5)이었다. 추격자들과 두 타 차를 유지하던 김주형은 두 번째 샷을 홀 옆 약 1m에 붙였다. 이글 퍼트를 넣은 뒤 주먹을 불끈 쥐었고, 격차는 단숨에 네 타로 벌어졌다. 후반 위기에서는 손실을 줄였다. 16번 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이 호수 경계에 떨어졌지만 파를 지켰다. 17번 홀(파4)에서는 티샷이 왼쪽 나무 뒤로 향하자 무리하게 그린을 노리지 않고 페어웨이로 공을 빼낸 뒤 보기로 마무리했다. 세 타 차 선두로 들어선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는 파를 기록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전반의 버디와 후반의 이글로 승기를 잡고, 마지막 두 홀에서 격차를 지켜낸 경기였다. 단체전에서는 한국이 최종 합계 26언더파 534타로 중국의 28언더파 532타에 두 타 뒤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단체전은 매 라운드 국가별 출전 선수 세 명 가운데 성적이 좋은 두 명의 스코어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주형과 함께 출전한 문도엽, 김성현도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문도엽은 개인전에서 8언더파 272타로 공동 8위, 김성현은 1오버파 281타로 공동 24위를 기록했다. 항저우 대회에서 김시우·임성재·장유빈·조우영이 합작했던 남자 단체전 금메달은 이번에는 중국에 돌아갔다. 김주형의 우승에는 빡빡한 이동 일정과 시차를 견뎌낸 과정도 있었다. 그는 지난달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에서 4승 1패를 기록한 뒤 곧바로 일본행 항공편에 올랐다. 대표팀에 합류한 뒤 충분한 적응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 지난달 30일 첫 라운드를 마친 김주형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48시간 동안 6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피로를 호소하면서도 첫날 3언더파 67타로 출발했고, 이후 선두로 올라 마지막 날까지 자리를 지켰다. 올해 PGA 투어에서 되찾은 우승 감각도 아시안게임으로 이어졌다. 김주형은 지난 7월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에서 우승하며 투어 통산 4승을 달성했다. 2023년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 이후 약 2년 9개월 만의 우승이었다. 프레지던츠컵 활약에 이어 국가대표로 출전한 무대에서도 금메달을 보탰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공동 8위로 메달을 놓쳤던 아쉬움도 털어냈다. 이번 금메달로 김주형은 예술·체육요원 편입 대상이 됐다. 해외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에게 현역 복무에 따른 경력 중단 부담을 덜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결과다. 김주형은 대회 첫날 병역 혜택에 관한 질문에 “금메달을 따면 정말 좋겠지만, 무엇보다 조국을 위해 좋은 경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나흘 뒤 개인전 금메달과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며 국가대표 일정을 마쳤다.
2026-10-03 17: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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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로펌을 합쳐 만든 '최연소 빅6'…화우 23년의 승부
[경제일보] 2002년 12월 4일 법무법인 우방과 화백이 합병을 결정했다. 국제거래와 기업자문에 강했던 우방과 송무로 이름을 알린 화백의 결합이었다. 우방은 변호사 40명, 화백은 60명 안팎이었다. 양측은 기존 인력을 내보내지 않는 대등 합병을 택했다. 이듬해 2월 법무법인 화우가 출범했다. 이름은 화백의 ‘화’와 우방의 ‘우’를 따왔고 ‘화목한 집안’이라는 뜻도 담았다. 출범 당시 변호사는 90명을 넘어 김앤장과 광장, 태평양, 세종에 이은 국내 5위 규모였다. 작은 법률사무소가 조금씩 몸집을 키운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두 조직이 한꺼번에 합쳐져 대형 로펌 시장에 들어왔다. 23년이 지난 현재 화우는 국내 대형 로펌을 일컫는 ‘빅6’ 가운데 역사가 가장 짧다. 2025년 법무법인 매출은 2812억원으로 전년보다 12.5% 늘었고 자매법인과 해외사무소를 포함하면 3012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 이후 2년 동안 매출은 약 35% 증가했다. 한국 변호사 1인당 매출은 7억6200만원으로 김앤장을 제외한 주요 대형 법무법인 가운데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화우의 성장사는 합병으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전문분야를 붙여온 과정이다. 첫 합병으로 기업자문과 송무를 묶었고 3년 뒤 두 번째 합병으로 지식재산권 분야를 보강했다. 최근에는 금융과 기업형사에 더해 M&A와 중대재해, AI·데이터까지 사람을 늘리고 있다. ◆ 자문 우방과 송무 화백이 만났다 화우의 한쪽 뿌리인 우방은 윤호일 변호사가 1989년 세운 법률사무소에서 출발했다. 윤 변호사는 짧은 판사 생활을 마치고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노트르담대 로스쿨과 베이커앤드맥켄지 등을 거치며 19년 동안 미국에서 활동했다. 귀국 뒤에는 국제거래와 기업자문, 공정거래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화백은 법원 출신 변호사들이 중심이었다. 노경래 변호사를 비롯해 판사 경험을 가진 변호사들이 송무에서 이름을 쌓았다. 우방이 계약과 거래를 다뤘다면 화백은 분쟁이 법정으로 넘어간 뒤의 대응에 강했다. 두 조직은 같은 기업 고객을 상대하면서도 맡는 일이 달랐다. 2000년대 초 국내 로펌 시장에서는 대형화 경쟁이 시작됐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과 M&A가 늘었고 해외 거래와 분쟁도 복잡해졌다. 기업은 계약서만 검토하거나 소송만 맡기는 로펌보다 자문과 송무를 함께 처리할 조직을 찾기 시작했다. 윤호일 우방 대표와 노경래 화백 대표도 서로의 빈 곳을 알고 있었다. 우방에는 송무가 필요했고 화백에는 국제거래와 기업자문이 필요했다. 오랜 기간 독자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온 두 로펌이었지만 규모와 업무 영역을 동시에 넓히기 위해 합병을 택했다. ◆ 사람을 내보내지 않은 1대1 합병 합병 과정에서 양측이 정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기존 인력을 줄이지 않는 것이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인수하는 방식도 피했다. 변호사 수에서는 화백이 더 컸지만 두 조직은 1대1 합병을 택했다. 규모보다 대등한 통합을 앞세운 결정이었다. 문제는 합친 뒤였다. 우방과 화백은 10년 넘게 각자 조직을 운영하면서 보수와 사건 배분, 인사 방식도 달라져 있었다. 합병 당시 윤호일 변호사도 서로 다른 기업문화와 업무 분야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난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래도 합병을 되돌리지는 않았다. 기업자문 변호사와 송무 변호사가 같은 고객을 함께 맡도록 업무를 연결했고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 조직을 모았다. 한쪽의 이름을 없애는 대신 두 이름의 첫 글자를 합쳐 새 간판을 달았다. 화우는 광장보다 2년 늦게 대형 합병을 했다. 광장이 기업자문 한미와 송무 광장을 합쳐 두 축을 결합했다면 화우는 여기서 한 번 더 움직였다. 출범 3년 뒤 또 다른 로펌을 받아들였다. ◆ 두 번째 합병으로 지식재산권을 보강했다 2006년 화우는 김·신·유 법률사무소와 합병했다. 김·신·유는 1967년 설립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는 로펌으로 지식재산권과 외국계 기업 업무에 강점을 갖고 있었다. 화우보다 역사가 훨씬 긴 조직이었다. 첫 합병으로 기업자문과 송무를 갖췄다면 두 번째 합병에서는 지식재산권 분야를 보강했다. 김·신·유 출신 변리사들도 대거 합류했고 같은 해 특허법인 화우가 출범했다. 기업의 거래와 분쟁에 특허와 상표 문제까지 한 조직에서 다룰 수 있는 틀이 만들어졌다. 2003년 우방과 화백, 2006년 김·신·유까지 세 조직의 경험이 차례로 한 법인 안에 들어왔다. 화우가 다른 빅6보다 늦게 출발하고도 빠른 시간 안에 종합로펌의 체계를 갖춘 배경이다. 기업자문과 송무에 지식재산권까지 더하면서 다룰 수 있는 사건의 폭도 넓어졌다. 이후에는 큰 로펌을 다시 합치지 않았다. 2010년 법무법인(유한)으로 조직을 바꿨고 2013년 관세법인, 2017년 세무법인을 세웠다. 해외에서는 2008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를 시작으로 호찌민과 하노이, 자카르타에 사무소를 냈다. ◆ 화우의 오래된 두 축, 금융과 송무 화우의 업무 가운데 오랫동안 이름을 알려온 분야는 금융과 송무다. 금융에서는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등 감독기관에서 근무한 전문가를 꾸준히 영입했다. 현재 경영을 맡고 있는 이명수 대표변호사도 금융감독원에서 10년간 법무팀장과 기업공시팀장 등을 지낸 금융규제 전문가다. 이 대표는 2010년 화우에 합류한 뒤 금융회사 검사·제재와 인허가, M&A, 불공정거래 등의 업무를 맡았다. 최근에도 금융감독원과 글로벌 회계법인 출신 전문가들을 추가로 영입했다. 금융회사 검사와 제재가 복잡해지고 회계감리와 불공정거래 조사까지 얽히면서 감독기관과 회계 실무를 경험한 인력이 필요해졌다. 송무에서는 기업 경영권 분쟁과 금융소송, 기업형사 사건을 다뤄왔다. 남양유업 경영권을 둘러싼 한앤컴퍼니의 주식양도청구 소송과 한미사이언스 신주발행금지가처분, DB하이텍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등에 참여했다. ELS 불완전판매 소송에서는 금융회사를 대리했고 바이오기업 메디톡스를 둘러싼 영업비밀·특허 분쟁에도 참여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의 2026년 평가에서 화우는 국내 송무와 기업·M&A, 공정거래에서 각각 Band 2에 올라 있다. 송무에서 출발한 화백과 기업자문을 맡았던 우방의 경험이 20년이 지난 현재의 업무 구성에도 남아 있다. ◆ 송무·금융에서 M&A로 최근 화우가 힘을 더 싣는 분야는 M&A다. 2025년에는 네이버와 두나무의 포괄적 주식교환 거래와 효성화학 네오켐 사업부 매각, 한화생명의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인수 등을 자문했다. 금융과 송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기업자문 분야에 사람을 집중적으로 넣기 시작했다. 2026년 들어 성과도 나타났다. 네이버의 스페인 중고거래 플랫폼 왈라팝 인수, 칼라일의 KFC코리아 인수, NXC 해외 계열사 지분 매각, 하림의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인수 등에 참여했다. 더벨의 2026년 상반기 M&A 법률자문 순위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이명수 대표는 올해도 기업·금융 전문가 영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025년 신입을 제외하고 80명이 넘는 외부 인재를 데려온 데 이어 M&A와 공정거래, 개인정보, 상법 관련 자문을 보강하고 있다. 방위산업과 수출통제, 에너지·인프라, AI·데이터·플랫폼 규제도 투자 분야로 잡았다. 화우가 기업자문을 키우는 방식은 처음 합병 때와 닮은 부분이 있다. 잘하는 금융과 송무를 그대로 두면서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분야에 외부 인력을 붙인다. 조직 전체를 다시 합치는 대신 사람과 팀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 2년 동안 35% 성장…1인당 매출은 선두권 최근 숫자는 화우의 변화를 보여준다. 화우의 법무법인 매출은 2023년 2082억원에서 2024년 2500억원, 2025년 2812억원으로 늘었다. 자매법인과 해외사무소를 합치면 지난해 처음으로 3000억원을 넘어섰다. 2년 동안 총매출이 약 35% 증가했다. 절대 매출로는 김앤장과 태평양, 세종, 광장, 율촌에 뒤진다. 대신 한국 변호사 1인당 매출은 2025년 7억6200만원으로 김앤장을 제외한 주요 대형 법무법인 가운데 가장 높았다. 율촌 7억6000만원, 태평양 7억3800만원, 세종 7억2400만원, 광장 7억1300만원보다 높았다. 인력을 늘리면서 매출 증가율이 더 높았다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 최근 5년 동안 화우의 변호사 수는 15% 넘게 늘었지만 매출은 약 40% 증가했다. 금융감독원 출신 등 비변호사 전문가를 사건에 투입하고 고부가가치 사건의 비중을 늘린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2~5위 로펌과의 외형 차이는 아직 크다. 2025년 태평양과 세종, 광장, 율촌이 모두 4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화우가 최근의 성장 속도를 유지하더라도 매출 3000억원대에서 4000억원대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 합병으로 큰 로펌, 이제는 생산성으로 승부 화우도 몸집만 키우는 방식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2003년에는 변호사 40명의 우방과 60명의 화백을 한꺼번에 합쳤고 2006년에는 김·신·유를 다시 받아들였다. 당시에는 규모를 키우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빠른 방법이었다. 지금은 수백명의 변호사를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문제가 중요해졌다. 2024년 경영 전면에 나선 이명수 대표 체제에서 화우는 금융과 송무라는 기존 기반에 M&A와 신산업 규제를 붙이고 있다. 2026년 9월에는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에 강북사무소도 열었다. 삼성동 본사에서만 고객을 기다리지 않고 기업과 금융회사, 정부기관이 몰린 도심으로 접점을 다시 넓힌 것이다. 과거에는 로펌을 합쳐 규모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고객과 가까운 곳에 거점을 두고 필요한 분야의 사람을 붙이는 방식으로 달라졌다. 화우는 빅6 가운데 가장 늦게 만들어졌다. 대신 출발부터 기존 조직 세 곳이 쌓은 경험을 한꺼번에 가져왔다. 우방에서 기업자문을, 화백에서 송무를, 김·신·유에서 지식재산권을 받아들였다. 23년이 지난 지금은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 또 다른 로펌을 합치는 대신 필요한 전문가를 데려오고 기존 강점과 연결한다. 두 번의 합병으로 만든 로펌이 이제는 사람 한 명, 팀 하나의 생산성을 따지는 단계로 넘어갔다.
2026-09-21 08: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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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유출의 값이 2만원인가
3954만개 계정이 털렸다. 실제 피해자 수와 같은 숫자는 아니다. 중복 계정이 포함돼 있다. 그래도 작다고 할 수 없는 규모다. 이름과 휴대전화번호, 이메일, 생년월일, 연계정보(CI) 등이 빠져나갔고 소스코드가 담긴 개발 프로젝트 361건도 유출됐다. 티빙은 7일부터 피해 고객 보상 신청을 받는다. 회사가 산정한 1인당 보상 패키지의 체감가치는 약 2만원이다. 문제는 액수가 크고 작으냐만이 아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날 때마다 기업이 사과하고 포인트와 쿠폰을 주고 보안 투자를 늘리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데 있다. 이번 사고는 고도의 해킹 기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 조사 결과 개발·운영환경 접속키가 소스코드에 그대로 노출되거나 평문으로 저장돼 있었다. 모든 개발자가 전체 개발 프로젝트에 접근할 수 있었고, 2024년 모의해킹에서 같은 취약점을 발견하고도 충분한 개선 조치를 하지 않았다. 사고 뒤에 보안을 강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짜 보안은 사고가 나기 전에 돈을 쓰는 일이다. 티빙은 앞으로 정보보호 투자를 늘리고 전문 인력도 확충하겠다고 했다.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이런 투자가 사고가 난 뒤에야 시작된다는 것이 문제다. 개인정보를 많이 가진 기업일수록 보안은 비용으로 보이기 쉽다. 매출을 직접 만들지 않고 눈에 띄는 성과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고가 없으면 투자 효과조차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다 문제가 터지면 그동안 아낀 비용보다 훨씬 큰 값을 치른다. 개인정보를 바라보는 기업의 시각부터 달라져야 한다. 고객 데이터는 기업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다. 이용자가 맡긴 정보다. 많이 모을수록 가치가 커지는 동시에 책임도 커진다. 한번 밖으로 나간 전화번호와 CI는 비밀번호처럼 간단히 바꿀 수도 없다. 그런데 사고의 책임은 여전히 보안 담당 부서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접근권한을 얼마나 줄일지, 보안 인력을 얼마나 둘지, 시스템 구축에 얼마를 쓸지는 실무자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 경영의 문제다. 대규모 플랫폼의 개인정보 보호를 최고정보보호책임자 한 사람의 업무로 남겨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도 과징금 액수만 높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최소권한 원칙이 실제 현장에서 지켜지는지, 접속키와 인증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모의해킹에서 발견된 취약점을 언제까지 고치도록 할 것인지 기준을 더 엄격하게 만들어야 한다. 중대한 취약점을 알고도 방치했다면 경영진의 관리 책임까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사고 공시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얼마나 많은 정보가 빠져나갔는지만 알릴 것이 아니라 왜 사고가 났는지, 과거 어떤 경고가 있었는지, 누가 개선 여부를 확인했는지까지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도 기업의 보안 수준을 판단할 수 있다. 티빙의 2만원 보상이 적절한지는 이용자마다 판단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가 남긴 질문은 금액보다 크다. 3954만개 계정이 유출된 뒤 2만원 상당의 혜택을 주는 것으로 신뢰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정보를 맡아놓고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책임에는 가격표를 붙이기 어렵다. 보안은 사고 뒤 고객에게 지급하는 보상비가 아니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업이 먼저 부담해야 할 비용이다.
2026-09-07 11: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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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정책실장 소임 마쳤다…정부 성과 뒤엔 최고의 인재들 있었다"
[경제일보]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이 이재명 정부 첫 정책실장으로서의 소임을 마쳤다며 정책실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김 실장은 별도의 공식 퇴임 인사 대신 자신과 가까이에서 일해온 정책실 구성원들에게 보낸 글을 페이스북에 공개하며 1년 3개월간의 소회를 밝혔다. 김 실장은 1일 페이스북에 “오늘 이재명 정부의 첫 정책실장으로서 맡은 소임을 마쳤다”며 “별도의 퇴임 인사 대신 저와 가장 가까이에서 일해온 정책실 동료들에게 보낸 작별 인사를 공유한다”고 적었다. 공개된 글에서 김 실장은 “여러분께 쓰는 작별 인사가 제일 어렵다”며 “몇 차례 썼다 지웠다”고 했다. 이어 “1년 3개월 동안 참 많은 일을 함께했다”며 “아침에 시작한 회의가 밤까지 이어진 날이 많았고, 하나를 겨우 넘기면 또 다른 현안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함께 고민한 날은 세지도 못하겠다”며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었다는 기억보다 그때 옆에 있던 여러분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 “제 능력보다 큰 책임, 동료들이 채웠다” 김 실장은 정책실장을 맡으면서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자신의 능력보다 컸다고 밝혔다. 그는 “정책실장을 맡으면서 제 능력보다 훨씬 큰 책임을 졌다고 생각했다”며 “그 빈 곳을 여러분이 채웠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놓친 것을 찾아주고, 생각이 짧을 때는 더 멀리 봐주고, 일이 터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기 일처럼 달려들었다”고 했다. 김 실장은 “저는 주문도 많이 했고 재촉도 많이 했다. 힘들게 한 일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끝까지 같이 뛰어주셨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김 실장은 정책실의 성과를 자신의 공으로 돌리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한 일을 여기서 다시 늘어놓지는 않겠다”며 “여러분이 저보다 잘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묻곤 했다. 그렇게 정책을 직접 챙기시는 대통령님을 모시고 그 휘몰아치는 일을 어떻게 다 해내느냐고”라며 당시 업무 강도를 언급했다. 그는 “저는 늘 같은 답을 했다. 우리 정책실에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있다고”라며 “인사치레로 한 말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책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설득과 조정이 필요한지, 저는 여러분 옆에서 똑똑히 봤다”고 했다. ◆ “정책실이 해낸 일은 여러분이 해낸 일” 김 실장은 정책실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도 드러냈다. 그는 “정책실이 해낸 일은 여러분이 해낸 일”이라며 “우리가 만든 결과가 자랑스럽고, 그보다 여러분이 더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퇴임 배경에 대해서는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지만, 이제는 제가 자리를 비우고 다음 사람들이 또 자기 몫을 해나갈 때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먼저 떠나 여러분에게 짐을 더 얹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있다”면서도 “그래도 걱정은 별로 없다. 여러분이 있으니까”라고 했다. 김 실장은 “제가 없어도 잘하실 것”이라며 “아니, 어쩌면 제가 없어서 더 잘하실지도 모르겠다”고 적었다. 그는 퇴임 이후에도 정책실의 성과를 알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실장은 “밖에 나가면 여러분이 얼마나 치열하게 일했는지, 이 정부의 성과 뒤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더 많이 이야기하겠다”며 “앞으로 여러분이 만들어갈 일들도 누구보다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 “커리어 마지막에 여러분 만난 건 큰 행운” 김 실장은 공직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정책실 동료들과 함께 일한 것을 큰 자산으로 꼽았다. 그는 “아시다시피 저는 정부를 떠났다가 한참 뒤 다시 돌아와 여러분과 일했다”며 “돌이켜보면 그 긴 시간을 돌아 제 커리어의 마지막에 여러분을 만난 것이 참 큰 행운이었다”고 했다. 이어 “좋은 사람들과 좋은 뜻을 가지고 마음껏 일해봤다”며 “그리고 여러분을 얻었다”고 적었다. 그는 이를 “지난 1년 3개월 동안 제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이라고 표현하며 동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 실장은 마지막으로 “함께해서 참 좋았다. 많이 고맙다”며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라”고 글을 맺었다. 김 실장의 퇴임 메시지는 정책 성과를 직접 열거하기보다 이재명 정부 초대 정책실장으로 일하며 함께한 참모진과 실무진에게 공을 돌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대통령의 정책 드라이브를 가까이에서 보좌해온 핵심 참모가 물러나면서 향후 정책실 개편과 후임 인선에도 관심이 모일 전망이다.
2026-09-01 20: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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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금융, 무리한 '슈퍼SOL' 키우기… 직원들 "앱팔이 내몰려" 불만
신한금융그룹의 통합 금융 플랫폼 ‘신한 슈퍼SOL’을 둘러싼 내부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은행·카드·증권·보험 등 계열사 금융서비스를 하나로 묶겠다는 전략 자체는 디지털 금융 경쟁에서 피할 수 없는 방향이다. 그러나 플랫폼 경쟁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단기 가입자 수 확대와 현장 영업 부담이 부각되면서 직원들의 반발이 표면화하고 있다. 신한금융 내부에서는 실적 목표와 핵심성과지표(KPI)를 앞세워 직원들을 영업 경쟁으로 내모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슈퍼SOL 가입 영업은 이런 불만이 수면 위로 드러난 계기가 됐다. 내부에서는 특정 앱 가입자 확대를 넘어 경영진이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만들기 위해 가장 손쉽게 숫자로 확인되는 영업실적에 조직 역량을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 계열사로 번진 ‘앱 가입’ 압박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그룹노동조합협의회는 지난달 공동성명을 내고 슈퍼SOL 가입 영업 중단을 촉구했다. 노조 측은 임직원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까지 동원해 가입자를 늘리도록 요구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는 신한은행뿐 아니라 신한카드, 신한투자증권 등 비은행 계열사까지 가입 확대에 참여하면서 그룹 전반으로 불만이 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조협의회는 슈퍼SOL 신규 가입 목표가 360만좌로 제시됐다며, 지주 산하 노동자 전체가 이른바 ‘앱팔이’로 내몰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직원들이 중고거래 플랫폼 등을 통해 사비를 지급하고 신규 앱 설치자를 섭외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신한은행 노조 관계자는 “노조는 과도한 목표와 지나친 비정도·불건전 영업 때문에 직원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현장 감찰과 목표 하향 요구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영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지인까지 동원되는 방식은 정상적인 영업활동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에게 슈퍼SOL은 그룹 디지털 경쟁력을 상징하는 주력 사업으로 꼽힌다. 취임 이후 강조해온 성과 중심 경영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이기도 하다. 문제는 플랫폼 경쟁력이 단순 가입자 수가 아니라 실제 이용률, 거래 활성화, 고객 편의성으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가입자 수 확대에만 매달리면 디지털 전략의 본질이 흔들릴 수 있고, 현장의 반발이 계속될 경우 성과 중심 리더십 자체에 대한 재점검 요구로 번질 소지도 있다. 신한금융이 슈퍼SOL과 쏠링크 가입 확대에 힘을 싣는 배경에는 은행 고객을 증권 서비스로 연결해 그룹 안에 묶어두려는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은행 부문에서는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증권과 보험 등 비은행 계열사에서는 KB금융에 비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최근 증시 호조에도 신한투자증권의 실적 개선 폭이 경쟁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점도 이번 캠페인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실제 슈퍼SOL 관련 그룹 차원의 마케팅 비용이 300억원 수준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본업보다 숫자 맞추기…내부 피로감 확산 영업 압박은 신한은행을 넘어 계열사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에서는 영업점뿐 아니라 IB(투자금융), 리서치, 채권 등 본사 부서와 관리직, 내부통제를 담당하는 컴플라이언스 조직까지 슈퍼SOL과 SOL LINK 가입자 확보 요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컴플라이언스는 무리한 영업이나 규정 위반을 점검하는 조직인 만큼, 이런 부서까지 동원됐다면 단순 캠페인을 넘어선 조직 운영 방식의 문제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애초 직원 1인당 50건 기준으로 부서별 목표를 제시했다가 이후 가입 건수를 점수로 환산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측은 개인별 공식 KPI가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부서 단위로 실적이 관리되면 직원 입장에서는 사실상 개인 부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한은행 “공식 할당·불이익 없다”…그래도 남는 질문 신한은행은 노조 주장에 선을 긋고 있다. 신한은행은 “슈퍼SOL과 관련해 직원 개인별 가입 목표를 공식적으로 부여하거나, 목표를 채우지 못했을 때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그룹 통합 플랫폼인 만큼 초기 이용 경험을 확대하기 위한 홍보와 마케팅은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을 높여 고객이 자발적으로 찾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 해명에도 이번 논란은 신한금융에 숙제를 남겼다는 평이다. 직원 가족과 지인, 외부 섭외로 늘린 가입자가 실제 거래 활성화와 고객 충성도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금융권 안팎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디지털 플랫폼 캠페인 자체는 자연스럽지만 단기간에 가입자 수를 늘리는 방식이 반복되면 직원들이 본업보다 숫자 맞추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플랫폼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금융서비스는 고객의 자산과 신용, 개인정보와 직결되는 만큼 영업 방식도 신뢰와 자발성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현장이 납득하지 못하는 방식의 외형 확대는 오래가기 어렵고 피로감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다”며 “이번 논란은 신한금융의 디지털 전환 전략이 안고 있는 구조적 과제를 드러낸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2026년 08월 18일자 15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8-18 09: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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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 수준 폭염, 개인의 인내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다
[경제일보] 사람이 더위에 쓰러지고 있다. 밭에서 일하던 노인이 숨지고 건설현장과 길 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응급실로 실려 간다.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잠을 이루기 어렵다. 올여름 폭염을 예년보다 조금 더 더운 여름쯤으로 여길 수 없는 이유다. 지난 12일 경북 포항과 경산에는 사상 첫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졌다. 2008년 폭염특보 제도가 도입된 뒤 18년 만에 신설된 최고 단계 경보다. 체감온도 35도 이상이 이틀 이상 이어진 지역에서 체감온도 38도 또는 최고기온 39도 이상이 예상될 때 발령된다. 정부가 국민에게 즉시 야외활동을 중단하고 냉방시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라고 요구하는 수준의 더위다. 인명 피해는 이미 현실이 됐다. 질병관리청 집계로 지난 5월 15일부터 7월 25일까지 온열질환자는 1301명, 사망자는 6명이다. 지난해에는 4460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환자의 79.2%는 실외에서 발생했다. 실외 작업장이 1431명으로 가장 많았고 논밭 542명, 길가 522명이 뒤를 이었다. 직업별로는 단순노무 종사자가 1160명으로 가장 많았다. 피해가 몰리는 장소를 보면 폭염의 성격이 드러난다. 냉방이 되는 사무실이나 집으로 몸을 피할 수 있는 사람보다 뙤약볕 아래 계속 일해야 하는 사람이 먼저 쓰러진다. 건설현장 노동자와 배달노동자는 일을 멈추면 소득이 줄어든다. 농민은 한낮 작업을 피하라는 안내를 받아도 수확과 생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부터 걱정해야 하는 가구도 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근거는 이미 법에 적혀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폭염을 태풍, 홍수, 호우, 한파와 함께 자연재난으로 규정한다. 같은 법 제2조는 재난을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해 일상으로 회복하도록 지원하는 일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로 두고 있다. 폭염은 법률상으로도 국민 각자가 알아서 버텨야 할 날씨가 아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국민에게 가장 자주 돌아오는 말은 여전히 비슷하다. 물을 자주 마시고 야외활동을 줄이고 충분히 쉬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없다. 그런 수칙만으로 재난 수준의 폭염을 넘길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누가 한낮의 폭염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르겠는가. 그래도 현장에 나가는 사람이 있다. 일을 멈추면 그날 임금이 사라지고 배달을 쉬면 수입이 끊긴다. 농사를 미루면 작물이 상한다. 폭염 대책은 이 사람들이 왜 위험을 알면서도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지를 다뤄야 한다. 산업현장에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체감온도 33도 이상에서 폭염작업을 하는 노동자에게 매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의 휴식을 주도록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과한다. 냉방·통풍 장치 설치와 작업시간 조정 등 폭염 노출을 줄이는 조치도 규정하고 있다. 규정을 만들어 놓는 것과 노동자가 실제로 일을 멈추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공사 기한에 쫓기는 하청업체의 일용직 노동자가 폭염을 이유로 먼저 작업중지를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건당 수입에 기대는 배달노동자에게 휴식은 곧 소득 감소다. 극단적인 고온에서 작업을 중단시킬 것이라면 그 시간의 임금과 소득 문제도 함께 다뤄야 한다. 노동자에게 생계와 안전 가운데 하나를 고르게 하는 제도는 안전대책이 될 수 없다. 고령 농민은 산업안전보건 규정의 보호조차 받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가 한낮 농작업을 자제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마을방송을 한다고 밭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농번기에는 작업을 미루기도 어렵고 혼자 농사를 짓는 고령층도 적지 않다. 극한 폭염 때 농작업을 중단할 수 있도록 인력을 지원하고 고령자의 안전을 직접 확인하는 체계가 따라붙어야 한다. 경보를 보내는 데서 행정의 일이 끝나서는 안 된다. 집 안이라고 모두 안전한 것도 아니다. 쪽방과 옥탑방은 밤이 돼도 열기가 쉽게 빠지지 않는다. 냉방비가 부담되는 가구에는 에어컨을 켜라는 말부터 현실과 거리가 있다. 열대야가 이어지면 무더위쉼터도 밤까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재난대피시설이 가장 필요한 시간에 문을 닫는다면 이름만 쉼터일 뿐이다. 태풍이 다가오는데 국민에게 우산을 잘 쓰라고만 하지는 않는다. 위험한 도로를 통제하고 주민을 대피시키며 필요한 경우 사람의 이동까지 제한한다. 폭염도 자연재난으로 규정했다면 대응 방식 역시 그에 맞아야 한다. 생명에 위험을 주는 온도까지 올라갔는데도 물을 마시고 알아서 쉬라는 안내에 의존할 수는 없다. 국가가 정해야 할 선도 있다. 어느 온도부터 옥외작업을 멈출지, 작업을 중단한 노동자의 소득을 어떻게 보전할지, 혼자 사는 고령자와 농민을 누가 찾아갈지, 냉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구를 어떻게 보호할지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폭염특보의 단계만 세분화한다고 국민의 생명이 저절로 보호되지는 않는다. 폭염은 냉방된 사무실과 건설현장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피해까지 똑같지는 않다. 38도가 넘는 철근 위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 한여름 밭에 나가야 하는 고령 농민, 전기료 때문에 에어컨을 마음껏 켜지 못하는 사람이 먼저 위험해진다. 지난해 온열질환자가 어디에서 쓰러졌는지가 이미 보여줬다. 폭염을 당장 멈출 수 없다고 해서 피해까지 개인의 몫으로 돌릴 수는 없다. 사람을 위험한 시간대에 일하지 않게 하고, 일을 멈춰도 생계가 무너지지 않게 하며, 스스로 피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피할 곳을 마련하는 일은 정책으로 할 수 있다. “더우면 쉬라”는 말로 끝낼 일이 아니다. 실제로 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재해 수준의 폭염에서 그 조건을 만드는 일은 개인의 인내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다.
2026-07-27 09: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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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물가는 잠잠한데 전기차 수출은 질주
[경제일보] 중국 소비자물가가 완만한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신에너지차 수출과 국제선 여객 회복이 중국 경제의 다른 축을 받치고 있다. 물가는 크게 뛰지 않았고, 자동차 산업은 전동화와 수출을 앞세워 성장세를 이어갔다. 항공 여객도 무비자 입국 확대와 국제선 운항 회복에 힘입어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 9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 올랐다. 올해 상반기 평균 상승률도 1.0%였다. 물가 상승 압력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소비와 서비스 가격이 완만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전월과 비교하면 6월 CPI는 0.3% 낮아졌다. 식품 가격 하락의 영향이 컸다. 식품 가격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6% 내렸고, 돼지고기 가격은 15.9% 떨어졌다. 돼지고기는 중국 식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품목인 만큼 가격 하락이 전체 물가를 끌어내리는 효과를 냈다. 반면 계란 가격은 16.0% 올랐다. 품목별 흐름은 엇갈렸지만 전체 물가는 안정된 범위에 머물렀다. 비식품 가격은 1.5% 상승했고, 서비스 가격은 0.8% 올랐다. 교통·통신과 의료보건 등 서비스 관련 품목은 상승세를 유지했다. ◆ 낮은 물가, 회복의 여지를 남겼다 중국의 물가 흐름은 다른 주요국과 차이가 있다. 미국과 유럽은 한동안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과 긴축을 이어갔다. 중국은 반대로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아 소비 회복의 강도를 따지는 상황이다. 물가가 낮다는 것은 가계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의미도 있지만, 수요가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돼지고기와 일부 식품 가격 하락은 소비자에게는 긍정적이지만, 생산자와 유통업체에는 수익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중국 당국이 보는 과제는 물가 억제가 아니라 수요 회복에 가깝다. 소비자가 지갑을 더 열고, 기업이 가격을 무리하게 낮추지 않아도 팔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물가 안정이 경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신에너지차, 내수 넘어 수출로 성장 자동차 시장에서는 신에너지차가 계속 비중을 키우고 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신에너지차 생산은 743만8000대, 판매는 744만6000대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생산은 6.7%, 판매는 7.3% 늘었다. 6월 한 달 신에너지차 판매는 164만3000대였다. 전체 신차 판매에서 신에너지차가 차지한 비중은 58.5%까지 높아졌다.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가 더 이상 일부 소비층의 선택지가 아니라 중국 자동차 시장의 주력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수출 증가세는 더 컸다. 올해 상반기 중국 자동차 수출은 509만6000대였다. 이 가운데 신에너지차 수출은 235만5000대였다. 6월 한 달 자동차 수출은 처음으로 100만대를 넘어섰고, 신에너지차 수출도 52만3000대를 기록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이 신에너지차를 앞세워 해외 시장을 넓히는 배경에는 가격 경쟁력과 배터리 공급망, 다양한 차종 출시가 있다. 비야디(BYD), 지리자동차(Geely), 체리자동차(Chery) 등 중국 업체들은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를 앞세워 아시아와 유럽, 중동, 중남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다만 수출 확대가 곧바로 안정적인 수익을 뜻하지는 않는다. 유럽과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통상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일부 국가는 현지 생산과 부품 조달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해외에서 오래 버티려면 판매량뿐 아니라 서비스망, 부품 공급, 브랜드 신뢰까지 갖춰야 한다. ◆ 다싱공항, 무비자 확대 타고 국제 여객 회복 국제 여객 이동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다싱국제공항의 올해 출입국 이용객은 300만명을 넘어섰다. 상반기 출입국 이용객은 약 288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 이용객 비중도 커졌다. 무비자 입국과 경유 무비자 정책이 확대되면서 중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과 비즈니스 방문객이 늘고 있다. 다싱공항을 이용한 외국인 가운데 무비자로 입국한 인원도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선 회복은 항공사 실적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광과 호텔, 면세, 외식, 전시·회의 산업까지 연결된다. 외국인의 중국 방문이 늘면 서비스 소비가 함께 증가하고, 기업 간 교류와 투자 상담도 늘어날 수 있다. 다만 국제 여객 회복 속도는 노선별로 차이가 있다. 항공권 가격, 비자 정책, 중국에 대한 여행 수요, 국제선 공급량이 함께 영향을 준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는지는 공항별·노선별로 따져봐야 한다. ◆ 물가 안정과 수출, 항공 회복의 온도차 최근 중국 경제 지표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소비자물가는 안정적이지만 수요가 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신에너지차는 내수와 수출에서 모두 비중을 키우고 있지만 가격 경쟁과 해외 규제가 부담이다. 국제 여객은 회복되고 있지만 항공과 관광 소비가 경제 전반을 끌어올릴 만큼 강한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그래도 세 지표가 보여주는 흐름은 있다. 중국은 낮은 물가 환경에서 소비 회복을 기다리고, 제조업에서는 신에너지차 수출을 통해 해외 시장을 넓히고 있다. 서비스 부문에서는 국제선 회복과 무비자 정책을 통해 사람의 이동을 늘리려 한다. 중국 경제가 힘을 받으려면 이 세 흐름이 서로 이어져야 한다. 물가 안정이 소비 여력으로 이어지고, 전기차 수출이 기업 이익과 고용을 늘리며, 국제 여객 회복이 관광과 비즈니스 교류를 키워야 한다. 지금 중국 경제는 그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단계에 있다.
2026-07-09 18: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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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막겠다는 법이 진실을 정할 수 있나
[경제일보] 거짓뉴스는 가볍게 퍼진다. 한 줄의 자극적인 문장, 짧은 영상, 출처 없는 캡처 하나면 충분하다. 피해는 늦게 온다. 누군가는 명예를 잃고 누군가는 사업을 잃고 사회는 불신을 얻는다. 허위조작정보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말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내일부터 개정 정보통신망법, 이른바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 시행된다. 악의적 허위정보 유포에 더 무거운 책임을 묻고, 플랫폼에도 신고 접수와 처리 체계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피해자가 뒤늦게 소송으로 다투는 동안 가해자는 조회수와 수익을 얻는 구조를 그냥 둘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여기까지는 크게 틀리지 않다. 남은 문제는 적용이다. 거짓을 막겠다는 법은 늘 어려운 질문을 부른다. 누가 허위와 조작을 판단할 것인가. 언제 판단할 것인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것인가. 그 판단이 틀렸을 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법의 취지가 선하다고 해서 집행의 위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의 취지는 분명하다. 온라인에서 고의로 조작된 정보가 확산되고 피해자가 뒤늦게 소송으로 다투는 동안 가해자는 이익을 얻는 구조를 막자는 것이다. 플랫폼에도 신고 접수와 조치 책임을 묻고 악의적 유포에는 더 무거운 배상 책임을 지우겠다는 내용이다. 피해자 보호만 놓고 보면 필요한 장치다. 문제는 기준이다. 허위와 조작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명백한 합성 사진이나 조작 영상은 구분이 쉽다. 그러나 권력 감시 보도, 기업 내부 제보, 선거 기간 의혹 제기는 다르다. 처음부터 모든 사실이 완성된 상태로 나오지 않는다. 취재는 의혹에서 시작해 반론과 추가 확인을 거치며 사실에 가까워진다. 이 과정의 일부 오류를 허위조작정보로 몰 수 있다면 언론과 시민의 입은 먼저 얼어붙는다. 가장 큰 위험은 권력자와 자본을 가진 쪽이 이 법을 방패로 쓸 가능성이다. 소송은 이기기 위해서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다. 오래 끌기 위해, 취재원을 압박하기 위해, 다음 보도를 망설이게 하기 위해 쓰일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악의적 조작을 막는 칼이 될 수 있지만 비판 보도를 위축시키는 칼집 없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플랫폼의 역할도 간단하지 않다. 신고가 들어오면 사업자는 삭제, 차단, 노출 제한 같은 조치를 고민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위험한 게시물을 남겨두기보다 먼저 내리는 쪽이 안전하다. 그 순간 판단은 법원이 아니라 플랫폼의 위험관리 부서로 넘어간다. 표현의 자유는 거창한 헌법 문구에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신고와 민원, 약관과 알고리즘 속에서 조용히 줄어든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법의 취지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경계선을 분명히 긋는 일이다. 명백한 조작과 공익적 의혹 제기를 구분해야 한다. 고의적 유포와 선의의 오류를 나눠야 한다. 권력자와 대기업이 비판 보도를 봉쇄하는 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 기준이 흐리면 법은 피해자 보호 장치가 아니라 말의 질서를 관리하는 장치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말하려면 사실 확인의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출처 없는 주장, 과장된 제목, 클릭을 노린 단정은 스스로 신뢰를 깎는다. 허위조작정보 규제가 힘을 얻는 이유 중 하나는 언론과 플랫폼이 그동안 정보의 품질을 충분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원칙은 흔들려선 안 된다. 민주주의는 거짓을 방치해서도 안 되지만 국가가 진실의 최종 판정자가 되는 길도 경계해야 한다. 거짓 정보와 싸우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싸움이 권력 비판과 공익 제보, 불편한 질문까지 움츠러들게 만든다면 민주주의가 치르는 비용은 더 커진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은 이제 시행대에 오른다. 성패는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적용의 절제에 달려 있다. 거짓을 막겠다는 좋은 명분이 표현의 자유를 좁히는 나쁜 선례가 되지 않게 하려면 기준과 절차, 이의제기와 책임을 더 촘촘히 세워야 한다. 필요한 것은 더 큰 규제가 아니다. 거짓을 막되 질문은 살려두는 설계다.
2026-07-06 10: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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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 상장, 인류의 꿈에도 가격표가 붙었다
[경제일보] 스페이스X가 마침내 증시에 올랐다. 미국 시간으로 12일, 한국 시간으로는 13일 새벽이다. 월가의 전광판에 우주기업의 이름이 뜬 순간 사람들은 주가를 봤다. 그러나 그 숫자 뒤에는 더 큰 장면이 있었다. 인류가 오랫동안 국가의 이름으로 꾸어온 우주의 꿈이 이제 민간 기업의 주식으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모 규모는 사상 최대였다. 개인투자자들의 청약 열기도 뜨거웠다. 일부 투자자는 배정받지 못했고 일부는 첫 거래에서 프리미엄을 감수하고 뛰어들었다. 시장은 스페이스X를 로켓 회사로만 보지 않았다. 스타링크를 품은 위성통신 회사, 국방과 안보를 움직이는 우주 인프라 기업,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나아가 화성 이주라는 서사를 가진 미래 복합 플랫폼으로 평가했다. 이것이 스페이스X 상장의 본질이다. 로켓이 아니라 서사가 상장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이 시대 자본주의가 낳은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다. 그는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궤도에 올렸고, 조롱을 받으면서도 시장을 설득했다. 전기차는 테슬라로, 민간 우주는 스페이스X로, 위성인터넷은 스타링크로, 인공지능은 xAI로 밀어붙였다. 과장과 돌출 발언, 정치적 논란과 경영 리스크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는 한 가지 능력만큼은 증명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미래를 투자 가능한 상품으로 바꾸는 능력이다. 스페이스X의 상장은 그래서 단순한 기업공개가 아니다. 국가가 독점하던 우주개발의 질서가 민간 플랫폼 중심으로 옮겨가는 신호다. 과거 우주는 국력의 상징이었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달을 향했다. 오늘의 우주는 다르다. 발사체는 재사용되고 위성은 통신망이 되며, 데이터는 안보와 금융, 전쟁과 재난 대응의 기반이 된다. 우주는 이제 낭만이 아니라 인프라다. 스페이스X는 그 인프라의 문지기 자리를 차지했다. 투자자들이 몰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페이스X가 당장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다. 아직 손실도 크고 미래 사업의 불확실성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시장은 현재의 손익계산서보다 미래의 지배력을 샀다. 스타링크가 지구 저궤도 통신망을 장악하고 로켓 재사용이 발사 비용을 더 낮추며 우주 기반 데이터센터와 국방 네트워크가 현실이 된다면 스페이스X는 항공우주 기업을 넘어 21세기 인프라 제국이 된다. 이번 공모주 열기는 그 가능성에 대한 집단적 베팅이다. 물론 시장의 열광은 늘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 큰 꿈이 곧 좋은 투자는 아니다. 거대한 비전은 때로 거대한 거품을 만든다. 우주 산업은 긴 시간과 막대한 자본, 규제와 기술 실패의 위험을 안고 있다. 발사 실패 한 번, 위성망 장애 한 번, 규제기관의 제동 한 번이 주가를 흔들 수 있다. 머스크 개인에게 집중된 의사결정 구조도 리스크다. 투자자가 산 것은 회사의 실적만이 아니라 머스크라는 인물의 신화다. 신화는 시장을 끌어올리지만 한순간에 시장을 냉각시키기도 한다. 그래도 이번 상장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래 산업의 경쟁은 더 이상 반도체 하나, 자동차 하나, 통신망 하나로 나뉘지 않는다. 로켓과 위성,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전기차와 로봇, 국방과 통신이 하나의 생태계로 묶이고 있다. 스페이스X는 이 융합의 한복판에 있다. 우주에서 인터넷을 깔고 지상에서는 데이터를 모으며 AI는 그 데이터를 해석하고 로봇과 자동차는 물리 세계를 움직인다. 이것이 머스크가 그리는 세계다. 우리가 이 상장을 남의 나라 증시 이벤트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조선, 방산, 통신망을 가진 나라다. 그러나 우주 플랫폼은 아직 약하다. 발사체와 위성, 위성통신과 우주 데이터 서비스, 군사용 저궤도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는 산업 설계가 부족하다. 정부 주도 프로젝트는 있었지만, 민간이 수익을 만들고 그 수익을 다시 기술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는 아직 얕다. 국내 증시에서 스페이스X 관련주가 들썩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위성 부품, 항공우주 소재, 발사체, 방산, 통신 장비, 지상국 관련 기업에 투자자 관심이 몰릴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해야 한다. 스페이스X가 오른다고 국내 모든 우주항공주가 실적을 얻는 것은 아니다. 테마는 빠르고 산업은 느리다. 주가는 하루 만에 움직이지만 공급망 진입은 수년이 걸린다. 투자자는 이름이 비슷한 기업보다 실제 기술과 매출, 글로벌 고객을 봐야 한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우주항공청 출범만으로 우주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주개발은 구호가 아니라 조달, 규제, 보험, 인력, 시험장, 발사장, 데이터 활용 시장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군과 민간, 대학과 기업,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산업 운영 능력이 필요하다. 스페이스X의 강점은 로켓 기술 하나에 있지 않다. 실패를 반복해도 다시 쏠 수 있는 제도와 자본, 정부 수요와 민간 시장을 연결하는 생태계에 있다. 한국은 늘 기술을 따라잡는 데 강했다. 그러나 플랫폼을 만드는 데는 약했다. 부품을 잘 만들고, 제조를 잘하고, 납기를 맞추는 데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시장의 규칙을 선점하고 생태계를 설계하는 능력은 부족했다. 우주산업에서도 같은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 남의 로켓에 부품을 넣는 나라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위성과 통신, 데이터와 안보 서비스를 묶어 스스로 플랫폼을 만드는 나라가 될 것인가. 스페이스X 상장은 이 질문을 한국 앞에 던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비전은 거칠다. 때로 위험하고 때로 무책임해 보인다. 그러나 그가 바꾼 것은 분명하다. 그는 미래를 기다리지 않고 끌고 왔다. 국가가 계획서에서 맴돌던 우주를 기업의 공장과 증시의 전광판으로 가져왔다. 이것이 그의 힘이다. 그리고 이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세계는 완벽한 합의와 정교한 보고서로만 전진하지 않는다. 때로는 무모한 기업가, 참을성 없는 자본, 실패를 감수하는 기술자들이 역사를 앞으로 밀어붙인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머스크를 찬양하는 일이 아니다. 머스크를 부러워만 하는 일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인물이 나와도 버틸 수 있는 제도, 그런 기업이 커질 수 있는 시장, 그런 실패를 견딜 수 있는 자본이다. 기술 관료가 모든 것을 허가하고 정치가 모든 위험을 피하려 하며 여론이 실패 한 번에 기업을 매장하는 구조에서는 스페이스X 같은 회사가 나오기 어렵다. 우주산업은 안전해야 하지만 완전히 무위험일 수는 없다. 위험을 통제하는 것과 위험을 아예 허용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스페이스X 상장은 자본시장의 사건이지만 본질은 문명의 사건이다. 인류의 꿈에도 가격표가 붙었다. 그 가격이 적정한지는 시간이 판단할 것이다. 주가는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 거품이 섞였을 수도 있고 아직 시장이 충분히 평가하지 못한 미래가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주가 다시 산업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스페이스X 주가를 보며 테마주를 사고파는 나라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우주와 통신, AI와 방산, 제조와 데이터를 묶어 한국형 우주 플랫폼을 설계할 것인가. 사상 최대 IPO의 불빛은 뉴욕 나스닥 전광판에 켜졌지만 그 질문은 서울과 사천, 대전과 판교, 그리고 한국의 산업 현장 전체를 향하고 있다. 꿈은 돈이 될 때 빠르게 현실이 된다. 그러나 돈만 좇는 꿈은 오래가지 못한다. 스페이스X가 보여준 것은 비전과 자본이 결합할 때 미래가 얼마나 빨리 당겨지는가다. 한국이 배워야 할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우주를 낭만으로만 말하지 말고 산업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산업으로만 보지 말고 국가의 미래로 다뤄야 한다. 스페이스X 상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제 한국의 우주 시간표를 다시 쓸 때다.
2026-06-13 13: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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