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4건
-
-
의원일 때는 공소취소, 장관 후보 되니 '권한 없다'
[경제일보]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나 임명권자에게만 책임지는 자리는 아니다. 검찰과 교정, 출입국, 인권과 형사사법 행정을 총괄하고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까지 떠맡는 자리다. 그래서 법무부 장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과의 적절한 거리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3일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 논란에 선을 그었다. 김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공소취소를 할 직접적인 권한도 없고 검찰총장을 통해 지휘할 생각도 지금 없다”고 밝혔다. 개별 사건의 공소유지는 공판검사의 권한이며 이를 존중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문제는 과거 발언과의 간극이다. 김 후보자는 의원 시절 이 대통령 사건의 공소취소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 관련 의원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았고, 이 대통령 사건은 국가가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도 폈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정치인의 입장이 공직에 따라 달라지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국회의원과 법무부 장관은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의원은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자리지만 장관은 법과 절차를 집행하는 자리다. 오히려 장관 후보자로서 과거 정치적 주장과 거리를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말 한마디로 우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권한의 유무보다 신뢰의 문제다. 법무부 장관에게 직접 공소를 취소할 권한이 없다는 설명은 맞다. 현행 체계에서 개별 사건의 공소유지와 취소는 검사가 판단한다. 다만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하며,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한다. 이 때문에 장관의 과거 정치적 입장과 현재의 태도는 형사사법 시스템의 신뢰와 직결된다. 더욱이 대상이 현직 대통령의 형사사건이라면 기준은 한층 엄격해진다. 법무부 장관이 과거 대통령 사건의 공소취소를 주장했다면 국민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장관이 된 뒤에도 같은 판단을 유지하는가. 검찰이 다른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를 그대로 존중할 것인가. 대통령과 여권의 정치적 이해보다 형사사법 절차를 앞세울 수 있는가. 김 후보자가 답해야 할 대목도 여기에 있다. 공소취소가 법적으로 가능하냐는 논쟁만으로는 부족하다. 장관으로 취임한 뒤 대통령 사건과 관련해 어떤 원칙을 적용할지, 이해충돌 우려가 생길 경우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절제할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법치주의는 법 조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과정이 공정하다는 믿음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검찰이 대통령 사건의 공소를 유지하든 취소하든 국민이 그 결정을 정치적 압력의 결과로 받아들이면 형사사법의 신뢰는 흔들린다. 장관이 실제로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과거의 정치적 발언이 결정 과정 전체에 의심을 덧씌울 수 있다. 그래서 권력기관의 장에게는 법에 적힌 권한보다 더 넓은 자기 절제가 요구된다. 로마 공화정 시기 법과 권력의 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원칙 가운데 하나가 ‘법은 사람보다 오래가야 한다’는 사고다. 통치자의 이해에 따라 법이 흔들리는 순간 공화정의 토대도 함께 흔들린다고 봤다. 오늘날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원칙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과 정치권의 사정이 바뀌어도 형사사법의 기준은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 장관은 대통령의 참모이면서 동시에 법치의 관리자다. 두 역할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앞세우느냐가 중요하다.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 법무행정의 목표로 읽히는 순간 장관의 독립성은 약해진다. 반대로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이라도 법과 절차 앞에서는 거리를 둘 수 있다면 신뢰는 유지된다. 우리 정치에서 법무부 장관과 검찰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된 이유도 이 경계가 자주 흐려졌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 인사와 수사 방향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고, 여권은 검찰개혁을, 야권은 권력수사를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검찰과 법무부는 정치의 중심으로 끌려 들어갔다. 정치적 사건이 생길 때마다 장관의 말과 검찰의 판단이 정쟁의 소재로 소비되는 구조가 굳어진 셈이다. 이제는 이 악순환을 줄여야 한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과거 정치적 발언을 문제 삼는 데서 멈출 일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취임 이후 대통령 사건을 비롯한 정치적 사건에서 어떤 원칙을 적용하느냐다. 구체적 사건에 대한 불필요한 발언을 자제하고 검찰의 법적 판단을 존중하며, 지휘권 행사 기준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태도가 관건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같은 기준에서 접근하는 편이 낫다. “공소취소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단답형 공방보다 대통령 사건에서 장관의 이해충돌을 어떻게 관리할지, 수사지휘권 행사의 기준은 무엇인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보장할지를 묻는 편이 생산적이다. 김 후보자가 “지휘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것은 방향 자체로는 타당하다. 하지만 국민이 궁금한 것은 현재의 말보다 취임 이후의 행동이다. 의원 시절의 정치적 주장을 장관이 된 뒤에도 법과 원칙보다 앞세운다면 우려는 현실이 된다. 반대로 정치적 이해와 거리를 두고 형사사법 절차를 존중한다면 과거 발언과의 간극도 설명력을 얻는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이 아니다. 정권의 이해를 지키는 자리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형사사법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본래의 책무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봐야 할 것도 결국 그 점이다. 과거의 발언 자체보다 앞으로 어떤 기준을 지킬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대통령과의 정치적 거리를 스스로 확보하고, 법과 절차를 흔들지 않는 태도로 국민에게 답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신뢰는 강한 권한 행사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통령과 가까울수록 법 앞에서는 더 멀리 서는 절제에서 나온다.
2026-09-04 16:13:58
-
-
국회의원의 전화 한 통, 민원인가 압력인가
[경제일보] 국회의원에게 민원은 일상이다. 지역 주민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행정기관에 전달하고, 기업의 규제 애로를 정부에 설명하는 것도 의원의 역할이다. 문제는 어떤 사안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느냐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의원 시절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을 추진하던 업체와 관련해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보도된 문자에는 식약처 내 담당 부서가 언급됐고, “담당 실무자들이 좀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는 취지의 내용도 포함됐다. 김 후보자는 민원을 전달했을 뿐 부정한 로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김 후보자가 업체 측으로부터 직접 뇌물을 받은 것은 아니라며 2024년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법원 판결문에도 해당 행위를 곧바로 부정한 청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단이 담겼다. 현 단계에서 위법성을 단정할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법적 처벌 여부와 공직자로서 적절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핵심은 국회의원의 민원 전달이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느 지점부터 권력의 압력으로 작동하느냐다. 의약품 임상시험은 일반 민원과 다르다.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고 전문적인 과학 판단이 요구된다. 승인 여부와 자료 보완은 정치권이 아니라 규제기관과 전문가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결정할 사안이다. 국회의원이 식약처장에게 직접 ‘빨리 처리해달라’고 요청하면 무게가 달라진다. 의원은 정부를 국정감사하고 예산을 심사하며 법률을 만드는 권한을 가진다. 형식은 민원 전달이라 해도 행정기관에는 압박으로 읽힐 여지가 크다. ‘승인해달라’와 ‘빨리 검토해달라’는 표현도 다르지만 처리 속도 자체가 행정 판단의 일부다. 특정 사건을 먼저 챙기게 하는 순간 공정성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물론 신속한 행정은 필요하다. 규제 때문에 기술개발과 사업화가 지연되는 문제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특정 의원의 전화로 속도를 높일 것이 아니라 모든 기업에 동일한 기준과 처리 시한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 그것이 규제 혁신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관행이 기업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 점이다. 정상 절차와 기술력보다 정치권과의 연결이 문제 해결에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기업은 연구개발보다 인맥과 로비에 비용을 쓰게 된다. 정치권 주변에는 내가 의원과 장관을 안다는 브로커가 몰려든다. 대관과 로비 논란이 반복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기업은 정부기관에 직접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정치인이나 전직 관료를 찾는다. 이들이 고위공직자에게 연락하면 해당 민원을 다른 민원과 똑같이 취급하기 어려워진다. 정치와 행정 사이의 회색지대가 그렇게 생긴다. 현행 청탁금지법과 이해충돌방지법만으로 이 문제를 모두 가려내기도 어렵다. 금품이 오가지 않고 노골적으로 허가를 요구하지 않았다면 부정청탁 여부가 쉽게 갈리지 않는다. 그래서 접촉의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이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인허가·제재 관련 민원을 전달할 경우 접촉 사실과 주요 내용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의약품 허가, 금융 인허가, 공정거래 조사, 세무조사, 수사처럼 독립적 판단이 중요한 분야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국회의원에게도 선은 분명해야 한다. 민원을 전달한다면 ‘규정과 절차에 따라 검토해달라’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적절하다. 특정 기한이나 담당자를 찍어 속도를 요구하면 행정기관에는 다른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사건에서 정치후원금 제공 시도와 주변 인물들의 금전 관계를 둘러싼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확인된 사실과 정치권 주장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김 후보자가 업체로부터 직접 뇌물을 받았다고 단정할 근거는 현재 확인된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문에 이번 논란을 개인의 유무죄 공방으로만 끝내서는 곤란하다. 같은 구조가 남아 있으면 또 다른 의원과 기업, 정부기관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논어>에는 군자는 말에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가르침이 반복된다. 권력자의 말은 명령이 아니어도 주변의 행동을 바꾼다. 오늘날 국회의원의 문자 한 통, 기관장에게 건 전화 한 통도 다르지 않다. 공직자의 영향력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한번 봐달라’는 말이 실무자에게는 ‘반드시 챙겨라’는 지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무게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 정치인이 기업의 어려움을 듣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과 기업의 목소리를 행정부에 전달하는 것은 국회의 기능이다. 다만 그 과정이 특정인의 절차를 앞당기는 통로로 변질되는 순간 민원은 특혜 논란으로 바뀐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정치권과 행정기관 사이의 접촉을 더 투명하게 만들고 전문 규제기관이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전화 한 통은 가볍지 않다. 그 무게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평범한 국민의 민원은 뒤로 밀리고 행정의 공정성도 흔들린다. 권력에 가장 먼저 필요한 덕목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영향력을 절제하는 태도다.
2026-09-03 09: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