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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軍 지휘권 타국 의존하는 나라 없어…전작권 조속 환수"
이재명 대통령은 1일 "세계 어디에도 자신들의 군사 지휘권을 타인이나 타국에 의존하는 나라는 없다"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조속히 완수해 진정한 자주 국가, 독립 국가,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의 지위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날 기념식 직후 오찬에서 "국가 주권의 핵심 중 하나인 군사 주권을 반드시 정상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우선 이 대통령은 "싸워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더 낫고,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인 평화를 만드는 게 가장 확실한 안보"라며 "평화를 구축하는 데에는 당연히 강한 억지력, 국방력이 필요하다. 평화가 흔들릴 때 무엇을 잃게 되는지 역사를 통해 체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땅의 평화와 번영은 누가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며 "이런 냉엄한 현실을 전 세계 상황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또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지켜내도록 자주국방 역량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이 대통령은 "세계가 주목하는 k 방산의 저력을 우리 군의 혁신과 연결해야 한다"며 "육군, 해군, 공군, 그리고 해병대가 하나의 목표 아래 그 어떤 위협에도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국방 개혁을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국군 장병들 덕에 국민이 하루하루 안심하고 지낼 수 있다. 정부는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이 절대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을 향해서도 "오늘 국군의날 행사를 통해 대체 불가 대한민국 국군의 늠름한 모습을 확인했다"며 "특히 올해 행사는 육군의 지상군 페스티벌, 계룡시 군 문화 축제를 함께 연계해서 진행했는데, 앞으로도 지역 축제와 묶어 진행하면 좋겠다. 이렇게 바꿔준 국방부 장관 애쓰셨다"고 격려했다. 강 장관은 "그동안 대한민국을 지켜오기 위해 오랫동안 헌신한 선배님들에 감사드리고, 자기의 임무를 다해 헌신하다 병상에 누워 있는 장병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우리가 생각한 것들은 대부분 이뤄졌고, 중요한 건 그것이 이뤄졌을 때 우리 군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점"이라며 "국민께 사랑받고 신뢰받는 국군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2026-10-01 13: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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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 넘칠 때가 재정의 진짜 시험대다
[경제일보]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기업의 장부를 넘어 나라 곳간까지 바꾸고 있다. 정부가 예상한 내년 국세수입은 584조4000억원. 올해 본예산보다 크게 늘어난다. 법인세와 소득세가 동시에 증가하는 배경에는 AI 반도체 호황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이 가운데 최근 10년의 내국세 추세를 웃도는 추가 세수 162조3000억원을 떼어 ‘미래대응기금’을 만들겠다고 했다. 숫자가 워낙 크다 보니 먼저 하나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162조3000억원 전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이 직접 낸 세금이라는 뜻은 아니다. 정부가 추세선을 웃도는 전체 내국세 증가분을 계산한 금액이고, 반도체 호황은 그 세수 급증을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반도체가 번 세금’이라는 표현이 던지는 질문은 유효하다. 호황기에 갑자기 늘어난 세수는 누구의 돈인가. 지금 살아 있는 국민이 당장 써도 되는 돈인가. 아니면 경기가 꺾인 뒤를 위해 남겨둬야 할 돈인가. 더 멀리 보면 아직 세금을 낼 나이조차 되지 않은 미래세대에게도 일정한 몫이 있는 돈인가.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3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에서 짚은 것도 같은 문제다. 그는 대외 불확실성과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려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동시에 국가채무와 의무지출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재정 여력을 떨어뜨리고 잠재성장률과 미래세대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두 말은 모순되지 않는다. 경기가 무너질 때 재정은 과감하게 써야 한다. 민간이 움츠러들고 기업이 투자를 미룰 때 정부까지 지갑을 닫으면 불황을 더 깊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세수가 예상보다 크게 늘어난 호황기에는 일부를 남겨야 한다. 불황에 쓸 수 있는 정부가 되려면 호황기에 다 쓰지 않는 정부여야 한다. 이것이 재정의 기본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대응기금이라는 발상 자체는 평가할 대목이 있다. 정부는 162조3000억원 가운데 45조4000억원을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분야에 쓰고, 12조5000억원으로 신규 국채 발행을 줄일 계획이다. 가장 큰 몫인 104조4000억원은 당장 쓰지 않고 여유자금으로 적립한다. 전체 기금의 64%가량이다. 세수가 더 들어왔다고 한 해에 모두 지출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더구나 반도체는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AI 붐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메모리 가격이 떨어지고 투자 사이클이 꺾이면 기업이익과 법인세는 빠르게 줄어든다. 세수는 내려가는데 한 번 시작한 복지와 보조금, 기관과 사업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재정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일시적인 돈으로 영구적인 지출을 만드는 일이다. 올해만 들어오는 10조원을 근거로 매년 10조원이 필요한 사업을 시작하면 호황이 끝나는 순간 그 차이는 빚이 된다. 세금을 올리거나 다른 지출을 줄이지 않는 한 결국 국채가 빈자리를 메운다. 때문에 미래대응기금의 성패도 ‘얼마를 담았느냐’보다 어떤 돈을 어디까지 쓸 수 있게 하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45조4000억원의 사업지출 가운데 AI와 전략기술, 인재 양성처럼 미래의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 오늘의 반도체 호황에서 나온 세금으로 다음 산업을 만드는 것은 세대 간 이전이라기보다 세대 간 투자에 가깝다. 반면 한번 시작하면 끊기 어려운 경상적 복지와 반복성 지원사업을 초과세수에 기대어 늘리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반도체 가격은 내려가도 법으로 정해진 의무지출은 내려가지 않는다. 반도체 사이클은 꺾여도 정부 사업에는 사이클이 없다. 바로 이 점에서 104조4000억원의 여유자금이 중요하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이 돈은 향후 세수 결손이나 예상하지 못한 재정 수요가 발생할 때 재정을 보강하는 일종의 ‘저수지’ 역할을 하게 된다. 방향은 합리적이지만 정부는 일정한 범위에서 추가경정예산을 거치지 않고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들고 있다. 신속성은 커지지만, 100조원이 넘는 자금에 행정부의 재량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을 쌓아두는 것만으로 미래세대의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 꺼낼 수 있는지, 무엇에 쓸 수 있는지, 누가 결정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세수 결손이 어느 정도일 때 사용할 것인지, 경기침체의 기준은 무엇인지, 미래투자라는 이름으로 어떤 사업까지 허용할 것인지 법과 제도로 선을 그어야 한다. 특히 기금의 여유자금이 그때그때 정부가 원하는 사업을 담는 별도 예산처럼 운용돼서는 안 된다. 노르웨이의 경험은 참고할 만하다. 노르웨이는 석유와 가스에서 들어오는 정부 순수입을 정부연기금 글로벌(GPFG)에 넣고 해외에 투자한다. 재정에는 기금의 원금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대신 장기적으로 예상 실질수익률에 해당하는 수준을 기준으로 활용한다. 현재 그 기준은 약 3%다. 핵심은 석유로 갑자기 부자가 된 한 세대가 자원을 모두 소비하지 않고 금융자산으로 바꿔 후대와 나누겠다는 데 있다. 물론 한국의 반도체 세수와 노르웨이의 석유 수입을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석유는 땅에서 한 번 꺼내 쓰면 사라지는 국민 자산이고, 반도체 기업의 이익과 세금은 혁신과 생산 활동에서 생긴다. 정부가 기업이 낸 세금을 영구적으로 묶어둘 이유도 없다. 하지만 배울 원칙은 있다. 일시적으로 크게 들어온 돈을 평상시의 소득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 노르웨이는 석유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한국 재정도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기’ 왕제편에는 ‘국무구년지축왈부족(國無九年之蓄曰不足)’이라는 구절이 있다. ‘나라에 아홉 해를 버틸 비축이 없으면 부족한 것’이라는 의미다. 이어 3년을 농사지으면 1년치 식량을 남기고, 9년이면 3년치를 비축해야 한다고 했다. 풍년에 남겨 흉년을 견딘다는 오래된 국가운영의 원칙이다. 2500년 전 곡식창고가 오늘의 재정기금으로 바뀌었을 뿐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2027년 예산안은 총지출이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8% 늘어난다. 동시에 정부는 미래대응기금과 국채 발행 축소를 통해 내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8.3%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적극적인 지출과 재정안정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구상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원칙이 필요하다. 우선 경기순환으로 생긴 초과세수와 경제의 기초체력에서 생긴 구조적 세수를 구분해야 한다. 일시적 초과세수는 상시 지출의 재원으로 잡아서는 안 된다. 또한 초과세수의 사용 순서를 정해야 한다. 미래 성장투자, 재정안정 적립, 국가채무 축소 사이의 기준을 사전에 만들어 정권과 경기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기금에서 돈을 꺼내는 조건도 엄격해야 한다. 불황이나 세수 급감 때는 과감하게 쓰되 단순히 예산을 더 쓰기 위한 우회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오늘의 호황을 내일의 고정비로 바꾸지 않는 것이다. 반도체 기업이 잘 벌어 세금이 많이 들어온 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 돈으로 AI와 첨단산업을 키우고 청년에게 기회를 만들며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나라 살림은 기업의 분기 실적과 달라야 한다. 기업은 좋은 해에 성과급을 더 줄 수 있다. 국가는 좋은 해의 세수를 보고 수십 년 동안 지급해야 할 약속을 쉽게 늘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연금과 의료, 돌봄 지출은 계속 커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 늘어난 돈을 모두 현재의 소비에 써버리면 다음 세대는 호황의 혜택은 누리지 못한 채 그때 만들어진 지출 의무만 넘겨받을 수 있다. 반도체가 벌어준 추가 세수는 현 정부의 돈도, 현 세대만의 돈도 아니다. 호황을 만든 기업과 노동자의 성과에서 나왔지만 국가의 세금이 된 순간 현재와 미래의 국민 모두를 위해 써야 할 자원이 된다. 재정이 돈이 들어올 때보다 그 돈이 사라진 뒤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언젠가 끝난다. 그때도 남아 있어야 할 것은 새로 만든 지출의 청구서가 아니라, 다음 위기를 견딜 재정 여력과 다음 산업을 만들어낼 자산이다. 돈이 많이 들어왔을 때 많이 쓰는 정부보다, 돈이 사라질 때를 준비하는 정부가 더 유능하다. 162조3000억원 미래대응기금의 진짜 이름값도 거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2026-09-14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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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외친 정부, 정작 서울 재건축은 묶어뒀다
[경제일보] 이재명 정부는 지난 13일 수도권에 23만호 이상을 추가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름도 ‘주택 신속공급 방안’이다. 공급이 부족하니 더 많이, 더 빨리 짓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실제 주택을 늘릴 수 있는 재건축·재개발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정반대다. 서울시는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을 3년간 한시적으로 풀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규제를 풀 경우 재건축 기대감이 커져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다. 집값을 잡겠다고 정비사업에 묶인 주택의 거래까지 계속 막겠다는 것이다.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은 투기과열지구에서 재건축은 조합설립인가 이후, 재개발은 관리처분인가 이후 새로 집을 산 사람이 원칙적으로 조합원 자격을 승계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만든 규제다. 문제는 투기만 막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거래와 사업의 자금 흐름까지 함께 묶는다는 데 있다. 지난해 10·15 대책 이후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을 받는 정비사업장은 42곳에서 159곳으로 늘었다. 강남 3구와 용산구를 겨냥하던 규제가 서울 전역으로 번진 것이다. 사업성과 가격 수준이 전혀 다른 지역까지 똑같은 잣대가 적용됐다. 그 부담은 투기세력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서울시가 새로 규제를 받게 된 117개 구역을 조사한 결과 분담금 부담과 주거 이전, 상속 문제 등으로 집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한다는 사례가 127건 확인됐다. 절반가량은 분담금 부담 때문이었다. 재건축 공사비가 뛰고 추가 분담금이 억 단위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끝까지 사업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조합원도 있다. 이들에게 집을 팔고 빠져나갈 길까지 막아 놓으면 사업이 빨라지는 것이 아니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조합원이 늘고 조합 내부 갈등이 커지면 사업은 그만큼 늦어진다. 투기를 막겠다며 공급사업의 자금 순환까지 막는 것은 정책의 목적과 수단이 뒤집힌 것이다. 정부 정책의 모순은 다른 대책과 비교하면 더 선명해진다. 정부는 이번 공급대책에서 재개발 조합설립 동의율을 75%에서 70%로 낮추고 시공사 선정 절차와 이주비 관련 규제도 손질하기로 했다. 정비사업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그 시간을 줄여야 공급이 빨라진다는 사실을 정부도 인정한 셈이다. 한쪽에서는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겠다며 규제를 풀고, 다른 한쪽에서는 집값이 오를 수 있다며 사업의 출구를 막아 놓는다. 정책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서울의 주택 공급 구조를 보면 더 그렇다. 서울에는 대규모 신도시를 만들 빈 땅이 거의 없다. 정부가 공공청사와 유휴부지, 그린벨트와 각종 공공부지까지 들여다보는 이유도 새로 집을 지을 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재건축·재개발은 다르다. 사업할 땅이 이미 있고 소유자도 있다. 도로와 지하철, 학교 같은 기반시설도 상당 부분 갖춰져 있다. 구역 지정과 조합 설립, 사업시행인가까지 수년간 진행해 온 사업장도 적지 않다. 서울에서 주택을 늘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다. 서울시는 2031년까지 정비사업을 통해 31만호를 착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가운데 3년 안에 착공할 수 있는 85개 구역 8만5000호를 따로 골라 사업 속도를 높이겠다고 했다. 없는 땅을 새로 찾는 것보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 사업의 시간을 줄이는 편이 훨씬 빠르다. 그런데 정부는 이 사업들의 거래 규제를 그대로 두고 또 다른 공급부지를 찾는다. 공급정책의 순서가 뒤집혔다. 재건축 규제 완화가 강남과 한강변 일부 인기 단지의 가격을 자극할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고 서울 25개 구의 정비사업을 한꺼번에 묶어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압구정과 강북의 사업성 낮은 정비구역을 같은 규제로 다루는 것은 정밀한 정책이 아니라 행정 편의다. 가격이 과열되는 지역은 대출과 세제, 토지거래허가제, 자금출처 조사로 관리하면 된다. 사업 단계와 보유 기간, 지역별 가격 수준에 따라 조합원 지위 양도 요건을 세분화하는 방법도 있다. 투기 대응 수단은 따로 있는데 공급사업의 출구까지 잠글 이유는 없다. 서울시가 요구한 것도 영구적인 전면 자유화가 아니다. 3년간 한시적으로 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전면 완화가 어렵다면 실거주 장기보유자나 과도한 분담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조합원부터 예외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선택지는 있는데 정부는 가장 손쉬운 현상 유지에 머물러 있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 공급을 서두른다고 한다. 수도권에 23만호 이상을 추가 공급하고 공공부지를 발굴하며 각종 절차를 앞당기겠다고 한다. 공급 부족이 집값과 전셋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먼저 움직여야 할 곳도 분명하다. 정부가 돈을 들여 새 사업을 만드는 것보다 민간이 자기 돈을 들여 짓겠다는 주택의 장애물을 걷어내는 것이 빠르다. 이미 수년간 행정 절차를 밟아 온 사업부터 착공시키는 것이 공급정책의 기본 순서다. 재건축·재개발은 오늘 규제를 푼다고 내년에 바로 입주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서울시는 정비사업 기간을 평균 18.5년에서 12년까지 줄이겠다고 한다. 아무리 서둘러도 10년 안팎이 걸린다. 지금 늦춘 1년은 몇 년 뒤 입주물량에서 그대로 빠진다. 과거 정부들이 부동산 정책에서 반복해 온 잘못도 비슷했다. 집값이 오르면 규제를 늘리고, 규제로 사업이 늦어져 공급이 부족해지면 다시 공급대책을 내놨다. 당장의 가격만 잡으려다 몇 년 뒤 공급 부족을 키우는 악순환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공급을 말하기 시작했다면 정책도 공급에 맞춰야 한다. 집값 과열이 두렵다고 서울의 정비사업을 묶어 놓고 다른 곳에서 23만호, 30만호를 외친다고 주택이 빨리 생기지는 않는다. 가격은 가격대로 관리하고 공급은 공급대로 움직여야 한다. 둘을 한꺼번에 묶어 놓으면 집값도 잡지 못하고 공급 시계만 늦어진다.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부가 먼저 풀어야 할 것은 새 택지가 아니다. 자신이 채워 놓은 규제의 자물쇠다.
2026-08-25 09: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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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을 아파트로 채울 것인가
[경제일보] 주택 문제만큼 우리 사회의 감정을 쉽게 자극하는 정책도 드물다. 집값이 오르면 공급 확대를 외치고, 공급 대책이 나오면 개발 논란이 뒤따른다. 청년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늘리자는 주장에도 반대가 있고, 도심의 빈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에도 환경과 역사 보존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그만큼 주택 문제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터전과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용산공원 부지 내 청년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둘러싼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정부·여당이 청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규제 완화, 도심 공급 방식 등을 놓고 마찰이 이어지고 있다. 여야의 정치적 공방까지 겹치면서 정작 중요한 질문은 뒤로 밀리는 모양새다. 그 질문은 간단하다. 청년들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면서도 용산공원이 가진 역사적·환경적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있다면 그것을 찾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용산공원은 평범한 국유지가 아니다. 오랜 기간 외국군이 주둔했던 공간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상징성이 큰 곳이다. 서울 한복판에 남은 대규모 녹지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도시의 허파이자 근현대사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으로서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다고 주택이 절실한 청년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다. 결혼과 출산, 취업과 독립, 삶의 계획을 결정하는 출발점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만으로 서울에서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사회 전체의 미래에 대한 신뢰도 흔들린다. 청년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용산공원을 둘러싼 논쟁을 ‘집이냐 공원이냐’라는 이분법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공원을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도 단순하고, 공원은 절대로 손대서는 안 된다는 주장 역시 현실과 동떨어질 수 있다. 도시에는 주거와 환경, 역사와 개발, 현재와 미래가 함께 존재한다. 정책은 이 가치들의 충돌을 조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더욱이 서울의 주택 문제는 특정 부지 하나를 개발한다고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서울의 집값과 전월세 불안에는 공급 부족뿐 아니라 교통망, 직주근접, 교육, 금융, 세제, 재건축·재개발 규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정부가 도심의 귀한 땅을 활용한다면 무엇보다 ‘얼마나 많이 지을 것인가’보다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위해 지을 것인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 특히 공공주택 정책에서 숫자 경쟁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몇 호를 공급하느냐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서울 한복판의 비싼 땅에 지은 상징적인 주택 몇 천 호가 아니라 합리적인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양질의 주택이다. 공급 지역과 교통, 생활 인프라, 임대료, 관리비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용산공원 주변을 포함한 도심 공급 전략도 보다 넓은 시야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 이전 부지, 유휴 국공유지, 철도·차량기지, 저이용 공공시설 부지, 역세권 복합개발 등 도심 곳곳에는 주택 공급과 도시 재생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기존 주거지의 재건축·재개발을 지나치게 어렵게 만드는 규제를 합리적으로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개발 가능한 곳을 찾았다고 무조건 아파트를 올리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도시의 녹지와 역사문화 자산은 한번 훼손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특히 용산공원처럼 상징성이 큰 공간이라면 개발 여부뿐 아니라 장기적인 도시계획과 세대 간 형평성까지 따져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정치의 절제다. 주택 공급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반대 의견을 ‘공급을 막는 발목잡기’로 몰아서는 안 된다. 공원 보존을 주장하는 쪽 역시 주거난을 호소하는 청년들을 개발 논리에 희생되는 대상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양쪽 모두 자기 주장만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합리적인 해법은 사라진다. 특히 국가의 중요한 공간을 놓고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앙정부는 국가 차원의 주택 공급 필요성을 설명하고, 서울시는 도시계획과 환경에 관한 전문적 판단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두 기관이 공개적인 검증과 협의를 통해 최선의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독립적인 전문가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용산공원의 역사·환경적 가치와 주택 공급의 필요성을 동시에 평가할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와 장기적인 도시계획을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한번 결정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것은 신중하게 결정하고, 필요하면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정책은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공원은 한번 훼손하면 복원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반면 청년 주거 문제는 용산공원 하나에 모든 해법을 걸지 않고도 여러 지역과 수단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욱 치밀한 비교와 검토가 필요하다. 동시에 정부는 용산공원 논란을 핑계로 청년 주택 공급을 미뤄서도 안 된다. 청년 주거 안정은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도심 곳곳의 유휴부지를 찾아 공급을 확대하고, 역세권 고밀 개발과 재건축·재개발을 합리적으로 활성화하며, 공공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공급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책에는 늘 비용이 따른다. 중요한 것은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그 편익을 누가 누리는지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용산공원을 지키는 것은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위한 투자다. 청년에게 안정적인 집을 제공하는 것 역시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다. 따라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갈등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다. 용산공원이 정쟁의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청년 주거 문제가 정치적 구호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숫자를 앞세운 밀어붙이기도, 보존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무조건적인 반대도 아니다. 청년에게는 집을, 시민에게는 공원을, 도시에는 미래를 남기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정치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할 때 한쪽을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타협점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이고 협치의 출발점이다. 용산공원을 둘러싼 논쟁이 또 하나의 소모적인 정치 싸움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서울의 주택 공급과 도시계획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집값을 잡겠다는 조급함 때문에 도시의 소중한 자산을 잃어서도 안 되고, 공원을 지킨다는 명분 때문에 청년들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과거를 지키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도시정책이고, 지금 우리 정치가 보여줘야 할 상식이다.
2026-08-23 1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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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주문한 '전략적 자율성', 한국식 답은 따로 있다
[경제일보] 왕이 외교부장이 서울을 떠나며 숙제 하나를 남겼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진정한 전략적 자율성’을 갖고 진영 대결이나 편 가르기에 나서지 않았으면 한다는 주문이다.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과의 관계를 서로 충돌하지 않게 발전시키라는 말도 덧붙였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외교 수장이 한국 땅에서 한국 외교의 좌표를 거론한 셈이다. 표면만 보면 틀렸다고 할 이유는 많지 않다. 강대국의 요구에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 국익을 판단하는 것은 주권국가 외교의 기본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격렬할수록 한국에는 오히려 더 많은 선택지와 더 정교한 계산이 필요하다. 문제는 중국이 말하는 ‘전략적 자율성’과 한국이 가져야 할 전략적 자율성이 반드시 같은 뜻은 아니라는 데 있다. 왕 부장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한국이 진영 대결과 ‘편들기’를 피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동시에 한반도 긴장을 푸는 근본적 방법으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중국의 기존 입장도 되풀이했다. 중국의 시각에서 전략적 자율성은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것과 맞닿아 있다. 한국이 받아들여야 할 자율성은 조금 달라야 한다. 미국의 요구가 국익에 맞지 않을 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듯, 중국의 요구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거리를 두는 것만 자율이고 중국의 전략적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자율일 수는 없다. 자율성의 주어는 미국도 중국도 아닌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출발점은 한미동맹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현실의 위협으로 존재하는 한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안보의 중심축이다. 이를 미·중 관계의 온도에 따라 조절할 거래 카드로 만들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동맹을 모든 정책에 대한 자동 동의서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최근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 이후 한미는 을지 자유의 방패 연합훈련 기간을 11일에서 5일로 줄이고 야외기동훈련도 축소했다. 한국 외교부 장관은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 관계자 상당수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국 역시 북미대화와 이란 문제, 한국의 대미 투자 등 자신의 전략적 이해를 계산하며 움직인다는 의미다. 동맹도 국익을 계산한다. 그렇다면 한국이라고 계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미동맹을 튼튼하게 유지하되 한국의 안보와 산업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결정에는 충분한 협의와 상호 존중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은 동맹을 약하게 만드는 태도가 아니라 오래가게 만드는 태도다. 중국과의 경제협력 역시 감정이 아니라 계산의 영역에 놓아야 한다. 왕 부장과 조현 외교부 장관은 한중 자유무역협정 서비스·투자 후속협상, 공급망 안정, 인적·문화 교류 확대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중국은 오는 11월 선전 APEC을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양국 인적 교류가 올해 10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관계의 정상화는 한국 경제에도 필요한 일이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주요 시장이고 반도체·배터리·화학·소비재 기업에는 거대한 생산·판매 거점이다. 희토류와 배터리 소재를 비롯한 공급망에서도 중국을 지워놓고 산업전략을 세우기 어렵다. 정치적 선명성을 얻겠다고 경제적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실용외교가 아니다. 다만 중국과 협력하는 것과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희토류와 흑연, 배터리 소재처럼 한 국가의 정책 변화가 한국 공장을 멈춰 세울 수 있는 품목이라면 거래는 지속하되 공급선은 넓혀야 한다. 중국에서 안정적으로 조달하면서 호주·캐나다·동남아·중남미의 대체 공급망을 확보하고, 국내 비축과 재활용도 함께 키워야 한다. 중국과 잘 지내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중국이 공급을 멈춰도 견딜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첨단기술은 더욱 세밀해야 한다. 범용 반도체와 소비재에는 시장의 논리를 최대한 존중하되 첨단 AI 반도체와 군사 전용 가능 기술에는 안보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중국과의 FTA 서비스·투자 협상에서도 한국 시장을 여는 만큼 중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받는 규제와 차별을 줄이라는 상호주의가 따라야 한다. ‘관계 개선’ 자체가 외교의 목표가 아니라 관계 개선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가 목표여야 한다. 북한 문제에서는 중국의 이번 메시지를 더 냉정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왕 부장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를 한반도 긴장 완화의 근본 해법으로 제시했다. 북미 사이의 불신과 군사적 긴장이 한반도 문제를 악화시킨 측면을 부인할 수는 없다. 대화가 끊긴 채 제재와 군사 대응만 반복한다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반도 긴장의 원인을 미국에만 돌리는 진단은 불완전하다. 왕 부장이 서울에 있던 20일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다. 북한의 핵무력 강화와 미사일 개발은 평양 스스로 내린 선택이다. 중국이 미국에는 정책 변화를 요구하면서 북한에는 같은 수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중재자로서의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역할은 필요하다. 조 장관이 북한을 대화로 돌려세우는 데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요청한 것도 그래서다. 왕 부장 역시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대화 재개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베이징이 원하는 ‘한반도 안정’과 서울이 추구해야 할 ‘비핵화된 평화’가 완전히 같은 목표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맹자’ 공손추 하에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는 말이 나온다. 국제정세가 아무리 유리해도 스스로의 전략과 내부 합의가 없으면 국익을 지키기 어렵다. 미·중 경쟁이라는 ‘천시’와 한반도라는 ‘지리’ 사이에서 한국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산은 어느 나라의 요구에도 흔들리지 않는 국익의 기준이다. 미국과 동맹이라고 모든 정책에서 같아질 필요는 없다. 중국과 협력한다고 중국이 원하는 외교적 좌표에 설 이유도 없다.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이해가 충돌하는 곳에서는 우리의 선을 긋는 것이 외교다. 왕 부장의 ‘전략적 자율성’ 주문을 굳이 배척할 필요는 없다. 대신 한국식으로 다시 정의하면 된다. 안보는 한미동맹을 중심에 두되 동맹 내부에서도 국익을 말한다. 중국과는 시장과 공급망, 북핵 문제에서 적극 협력하되 기술과 경제안보의 경계는 지킨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국 기업에 일방적인 비용을 요구하면 문제를 제기하고, 양쪽 모두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과감하게 얻는다. 오는 11월 선전 APEC과 한중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이 원칙의 첫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정상회담 사진보다 중국 시장의 문턱이 실제 낮아졌는지, 공급망이 더 안전해졌는지, 문화·인적 교류의 비정상적인 장벽이 사라지는지, 북한을 대화로 돌려세우는 데 중국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봐야 한다. 전략적 자율성은 미국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졌느냐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 얼마나 가까워졌느냐로 잴 일은 더욱 아니다. 미국에도 중국에도 필요한 협력은 하되, 지켜야 할 국익 앞에서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힘. 그것이 한국식 전략적 자율성이다. 중국이 주문한 답을 그대로 제출할 필요는 없다. 답안지는 대한민국이 스스로 쓰면 된다.
2026-08-21 11: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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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사는 한화, 공정 파는 HD현대…美 조선 재건 전략은
[경제일보] 미국 조선업 재건이라는 같은 시장을 두고 한화오션과 HD현대가 서로 다른 진입 전략을 펴고 있다. 한화오션을 중심으로 한 한화는 미국 조선소를 직접 확보한 뒤 국내 생산기술을 이식하는 방식이다. HD현대는 설계·자동화·공정관리 등 운영체계를 현지에 먼저 적용한 뒤 사업과 투자를 넓히고 있다. 한화가 ‘거점 확보 후 기술 이식’이라면 HD현대는 ‘기술 이식 후 사업 확대’에 가깝다. 양사가 미국으로 향하는 배경에는 현지 조선업의 생산능력 부족이 있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올해 4월 미 해군·해안경비대 함정 건조 사업에서 수십억달러의 비용 초과와 수년간의 납기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용접공·배관공 등 숙련인력 부족도 주요 병목으로 꼽힌다. GAO는 앞서 미 해군 전투함을 건조하는 7개 조선사 모두 해군의 인도 목표를 맞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한화, 美 스마트야드 심는다 현지 생산기반에서는 한화가 한발 앞서 있다.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은 2024년 12월 약 1억 달러에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이후 한화는 50억 달러를 투자해 도크와 안벽, 블록 조립시설 등을 확충하고 현재 연간 2척 미만인 생산량을 장기적으로 최대 20척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음 단계는 ‘한국식 조선소’ 이식이다. 한화오션은 거제사업장에서 검증한 자동화 설비와 스마트야드, 안전 시스템을 필리조선소에 적용해 생산성을 높일 계획이다. LNG운반선 건조를 시작으로 함정 블록·모듈 공급을 거쳐 향후 현지 함정 건조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필리조선소의 생산 역량과 시장 경험에 친환경 선박 기술과 생산 자동화 등 스마트 생산 역량을 결합해 효율성을 극대화할 계획”이라며 “자동화 설비와 스마트야드, 안전 시스템을 도입해 LNG운반선과 함정 블록·모듈을 만들고 더 나아가 함정 건조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한화의 거점 확대는 필라델피아를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한화디펜스USA는 호주 오스탈의 미국 사업부인 오스탈USA를 10억5000만~12억 달러에 인수하는 비구속 제안을 냈다. 미 해군·해안경비대 선박을 건조하는 오스탈USA까지 확보하면 미 방산 조선 공급망 진입에 속도를 낼 수 있다. HD현대, 조선소 ‘운영체계’ 수출 HD현대는 조선소 인수보다 국내에서 축적한 구축·운영 역량을 미국 현장에 먼저 심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달 프레이저 인더스트리와 조선소 현대화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조선소 진단과 야드·공장 레이아웃 설계, 로봇·자동화 설비, 비용·공정·품질 최적화, AI·데이터 솔루션까지 전 주기가 대상이다. 연내 ‘조선소 현대화 컨설팅 프로그램’ 공급계약을 맺어 프레이저조선소를 실증 모델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HII 잉걸스조선소에서는 지능형 기계화 용접 시스템을 시험하고 있다. 작업 대상과 조건을 자동 인식해 용접 위치를 실시간 보정하고, 한 작업자가 여러 로봇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 현장의 인력·생산성 병목을 줄이는 기술이다. 축적된 공정 데이터는 품질관리와 공정 개선에도 활용된다. HD현대 관계자는 “조선소 진단과 레이아웃 설계, 로봇·자동화 설비 도입부터 비용·공정·품질·생산성 최적화, AI·데이터 기반 솔루션까지 구축과 운영 전 주기를 아우르는 실행 역량이 핵심 경쟁력”이라며 “프레이저조선소를 미국 조선산업 재건의 실증 모델로 육성해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HD현대도 장기적으로 자본투자를 열어두고 있다. 미국 서버러스캐피털, 산업은행과 미국 조선소 인수·현대화 등을 대상으로 한 투자 프로그램 MOU를 맺었다. 기술과 운영체계를 먼저 입증한 뒤 현지 투자로 범위를 넓히는 구조다. 美 문턱 낮아졌다…승부처는 ‘생산성’ 미국의 정책 변화도 경쟁을 가속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미국에 신규 조선소를 건설하거나 기존 조선소의 소유권·과반 지분을 확보하고 인력 훈련과 기술 이전 등을 추진하는 외국 조선업체가 본국에서 미 해군 함정을 최대 2척 건조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안보각서에 서명했다. 현재 조건만 보면 필리조선소를 보유한 한화가 앞선다. 반면 HD현대는 프레이저·HII와의 기술협력을 실제 현지 투자로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느냐가 과제다. 장기 승부는 결국 생산성에서 갈릴 전망이다. 한화는 확보한 조선소에 거제의 자동화·스마트야드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안착시키느냐가 관건이다. HD현대는 한국식 운영체계가 미국에서도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입증해 추가 계약과 투자로 연결해야 한다. 한화가 생산거점을 먼저 확보한 뒤 ‘한국식 조선소’를 심고 있다면 HD현대는 ‘한국식 조선소 운영법’을 먼저 이식하고 있다. 진입 순서는 다르지만 최종 시험대는 같다. 누가 미국 땅에서 더 빨리 K-조선의 생산성을 구현하느냐가 미국 조선 재건 시장의 승부를 가를 전망이다.
2026-08-20 17: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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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에 20조 쓰자는 與…어디에 얼마 써 몇 채 짓나
[경제일보] 정부의 8·13 주택 공급 대책 이후 여당에서 추가 재정을 투입해 공공주택 공급을 더 늘리자는 제안이 나왔다. 추가 세수 가운데 10조~20조원을 주거 안정에 쓰고 용산공원 일부에는 청년 임대주택을 공급하자는 구상도 거론됐다. 정부 대책보다 한발 더 나간 공급 방안을 주문한 것이다. 서울처럼 새 택지를 찾기 어려운 지역에서 공공이 가진 땅과 재정을 적극 활용하자는 취지다. 다만 20조원을 어느 사업에 얼마씩 투입할지, 용산에 주택을 몇 채 지을지, 언제 입주가 가능한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가 13일 발표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에는 수도권에 23만호 이상을 추가 공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신규 공공주택지구와 공공택지, 도심 유휴부지, 비아파트 등을 활용한다. 국토교통부는 기존 공급 계획과 겹치지 않는 추가 물량이라고 설명했다. 여당에서는 여기에 재정 투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 지역 국회의원·시의원 간담회 뒤 추가 세수 가운데 10조~20조원을 주거 안정에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공공주택과 주거복지에 정부 재정을 더 넣자는 제안이다. ◆ 20조원 어디에 쓸지는 아직 안 정해져 20조원이라는 금액만으로 공급 효과를 계산하기는 어렵다. 돈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공주택을 직접 짓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토지를 확보하거나 사업비를 지원하는 데 넣을 수도 있다. 청년과 신혼부부의 월세나 전세대출 부담을 낮추는 주거복지에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각각 효과가 다르다. 공공주택 건설에 재정을 넣으면 주택 수를 늘릴 수 있지만 부지 확보와 인허가, 공사를 거쳐야 한다. 주거비 지원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체감할 수 있지만 시장에 새 주택을 추가하는 정책은 아니다. 현재 10조~20조원 투입안은 구체적인 예산 사업으로 확정된 단계가 아니다. 사업별 배분액이나 추가 공급 물량도 나오지 않았다. 얼마를 쓰느냐보다 어디에 써서 어떤 효과를 내겠다는 것인지가 먼저 정리돼야 한다. 공공주택에 돈을 넣더라도 예산 투입과 입주는 동시에 이뤄지지 않는다. 부지를 정하고 사업계획을 세운 뒤 인허가와 착공, 공사를 거쳐야 한다. 택지를 새로 조성하는 곳에서는 토지 보상과 기반시설 설치도 필요하다. ◆ 용산공원 카드도 넘어야 할 절차 많아 용산공원 활용 방안도 아직 구상 단계에 가깝다. 여권에서는 공원 대부분을 유지하면서 어린이정원과 미군 장교숙소 등 일부 공간에 청년·신혼부부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대 2만호 안팎을 공급할 수 있다는 추산도 나온다. 정부가 확정한 공급량은 아니다. 대상 부지의 면적과 용적률, 주택 크기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실제 물량은 달라진다. 법적 문제도 있다. 현행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은 미군기지 본체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도록 정하고 있다. 해당 부지에 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토양 오염 문제도 사업 일정과 비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용산 일대는 오랫동안 미군기지로 사용됐고 일부 반환 부지에서 토양 오염이 확인됐다. 주택을 짓기 전에 어느 범위까지 정화할지와 비용을 어떻게 부담할지도 따져야 한다. 서울시는 용산공원 개발에 부정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 도심의 대규모 녹지를 주택 공급 부지로 사용하는 데 반대하면서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추가로 풀어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여당과 서울시 모두 주택 공급 확대 필요성에는 같은 입장이지만 공급 수단에서는 차이가 있다. 정부·여당은 공공부지와 재정 투입을 강조하고 서울시는 민간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 예산보다 먼저 나와야 할 공급 일정 추가 재정을 투입하면 공공주택 사업의 자금 조달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서울 도심의 국공유지를 활용하면 민간 토지를 새로 사들이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반대로 재원이 확보됐다고 곧바로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주택을 지을 부지와 사업자가 정해져야 하고 인허가와 공사를 거쳐야 한다. 용산공원처럼 법 개정과 토양 정화,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까지 필요한 부지는 절차가 더 길어질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23만호 공급과 여당이 제안한 20조원 투입도 구분해야 한다. 20조원을 추가로 쓸 경우 기존 23만호 외에 몇 채가 더 공급되는지, 기존 사업을 앞당기는 데 쓰는지, 주거비 지원에 사용하는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공급 정책은 발표한 예산과 물량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예산을 확보한 시점, 착공한 시점, 준공한 시점, 입주가 시작된 시점은 모두 다르다. 실제 주택시장의 공급 부족을 완화하는 시점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이 나왔을 때다. 여당이 제안한 20조원 투입과 용산공원 활용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추가 공급 수단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큰 숫자를 하나 더 제시하는 일이 아니다. 20조원 가운데 얼마를 주택 건설에 쓸지, 어느 지역에 몇 채를 지을지, 착공과 입주를 언제 시작할지까지 나와야 공급 대책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2026-08-20 09: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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