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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데스크 칼럼] 청년의 분노가 던진 경고, 미래세대는 정치권의 현금인출기가 아니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한석진 기자
2026-10-20 16:07:11

선거 앞두고 선심성 지출 경쟁하는 정치권…재정준칙 법제화하고 연금개혁 책임도 법으로 물어야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지난해 네팔에서는 청년들의 분노가 정권을 흔들었다. 부패와 특권, 청년 실업에 쌓인 불만이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모로코에서도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국제축구대회 개최를 위한 시설에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병원과 학교는 제대로 돌보지 않는 정부를 향한 항의였다. 두 나라의 사정은 달랐지만 청년들이 겨냥한 것은 자신들의 삶보다 권력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정치였다.


한국 정치도 이 경고를 가볍게 여길 처지가 아니다. 집값은 청년들의 소득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다.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청년이 늘어나는 동안 정치권은 현금 지원과 각종 보조금 확대를 경쟁적으로 약속한다. 당장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 그 비용을 누가 갚을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치권이 선거를 의식해 지출을 늘리면 그 혜택은 현재의 유권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재정 적자가 쌓여 국가채무가 증가하면 원리금을 갚아야 할 부담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 선거에서 표를 얻은 정치인은 몇 년 뒤 자리를 떠날 수 있지만 국가가 발행한 국채는 정권이 바뀐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권은 오늘의 표를 얻기 위해 돈을 쓰고, 그 빚은 내일의 납세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에서 이러한 재정 운용은 더욱 위험하다. 경제활동에 참여해 세금을 낼 인구는 줄어드는데 연금과 의료, 노인복지에 들어가는 돈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성장률까지 낮아지면 재정 수입은 줄고 지출 압박은 커진다. 지금의 지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거나 빚을 늘리는 선택을 반복할수록 미래세대의 부담은 무거워진다.


정부가 편성한 2027년도 예산안은 총지출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8% 증가했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확대에 힘입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0.1%로 줄고 국가채무비율도 48.3%로 낮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국가채무 총액은 올해 본예산 기준 1413조8000억원에서 1519조8000억원으로 증가한다. 채무비율은 낮아지더라도 빚의 절대 규모는 106조원 늘어나는 셈이다.


세수 증가에 힘입은 재정지표 개선을 장기적인 건전성 회복으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 반도체 산업의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고 경기 침체로 세수가 줄어들면 재정 여건은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 한 번 도입한 복지제도와 지원사업은 수혜자가 늘어날수록 축소하기 어려워진다. 지출을 확대하는 정치적 결정은 쉽지만 이를 줄이는 과정에서는 거센 반발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발표한 장기재정전망도 심각하다. 당시 법령과 제도가 유지될 경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5년 47.8%에서 2072년 173%까지 상승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후 정책 변화에 따라 실제 수치는 달라질 수 있지만 저출생과 고령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국가재정이 얼마나 큰 압박을 받게 되는지 보여준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새로운 지원책을 쏟아낸다. 여야 모두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다가도 자신들이 추진하는 사업에는 예외를 두려 한다. 집권하면 재정 확대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야당이 되면 국가채무 증가를 비판한다. 국가재정을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용하면서 그 부담은 다음 세대에 넘기는 행태다.


재정준칙을 법률로 강제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9월 29일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국가채무비율을 GDP 대비 60% 이내로 관리하고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원칙적으로 3% 이내로 제한하도록 했다.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으면 적자 한도를 2%로 낮추고 준칙을 지키지 못한 정부에는 재정건전화 대책과 이행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법률에 기준을 정해 놓는 것으로 재정 운용의 책임까지 확보할 수는 없다. 경기 침체나 대규모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할 때도 있다. 다만 예외를 적용한다면 그 사유와 재정 영향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정상화 시한과 계획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 독립적인 재정평가를 통해 정부의 세입 전망과 지출계획을 검증하고 시정조치의 이행 여부도 공개해야 한다. 예외와 유예를 반복하면서 준칙을 지켰다고 주장하는 편법부터 막아야 한다.


국회 역시 재정 운용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거를 앞두고 각종 지원책과 감세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면서 정작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현행 비용추계 제도를 보완해 재정 부담이 발생하는 법률에는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까지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지출에 상응하는 재원을 마련하거나 기존 지출을 조정하는 페이고(Pay-as-you-go) 원칙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에게 혜택을 약속할 권한을 가진 국회가 그 비용에 대한 책임까지 회피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은 정치권의 개혁 지연이 미래세대에 어떤 부담을 남기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개정된 국민연금법에 따라 보험료율은 기존 9%에서 올해 9.5%로 올랐고 2033년에는 13%에 도달한다. 명목소득대체율도 올해부터 43%로 높아졌다. 18년 만에 이뤄진 개혁으로 기금 소진 시점은 늦춰졌지만 장기적인 재정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이번 개혁을 반영한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은 2064년이다. 기금운용 수익률이 목표대로 높아지면 2071년까지 늦출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계는 인구구조와 경제성장률, 투자수익률에 따라 달라진다.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추는 데 성공했더라도 그 이후 연금급여를 어떻게 지급할 것인지, 필요한 재원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현행 제도에서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보험료를 납부할 청년들이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부담을 더 많이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개혁으로 보험료율을 올리면서 소득대체율도 높였지만 세대별로 부담과 혜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았다. 현재 연금을 받는 세대와 앞으로 가입할 청년의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보험료율과 급여 수준을 정할 때 세대별 영향을 함께 따져야 한다.


정치권이 연금개혁을 미룬 책임도 가볍지 않다. 2007년 개혁 이후 보험료율을 다시 조정하기까지 18년이 걸렸다. 그동안 출생아 수는 줄고 고령인구는 증가했다. 연금 재정의 장기적인 불안이 예고됐지만 국민에게 보험료 인상이나 급여 조정을 요구하는 결정은 번번이 뒤로 밀렸다. 개혁을 늦춘 정치권이 부담해야 할 정치적 비용은 작았지만 그 사이 후속 세대가 감당해야 할 재정적 부담은 커졌다.


국민연금법에도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도록 후속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현행법은 5년마다 재정계산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정 전망이 법률에 정한 관리 기준을 벗어나면 정부가 일정 기간 안에 조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도 심의 일정과 처리 경과를 공개하도록 해 연금개혁을 지연시킨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국민이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세대별 보험료 부담과 예상 연금급여를 비교해 공개하는 제도도 도입할 만하다. 청년과 중장년, 고령층이 각각 얼마나 부담하고 어떤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지 같은 기준으로 산출해야 한다. 보험료 인상의 부담이 저소득층과 고용이 불안정한 청년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국가의 연금 지급 보장은 이미 법률에 명시됐다. 이제는 그 약속을 이행할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을 차례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청년 지원이나 필요한 복지까지 무조건 줄여서는 곤란하다. 청년의 주거 안정과 일자리, 교육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경제의 성장 기반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복지 지출 역시 국가의 책무다. 반면 효과가 불분명한 사업이나 선거를 의식한 일회성 지원에는 엄격한 검증이 따라야 한다. 정부가 돈을 쓰기로 결정했다면 그 사업이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재원이 필요할 것인지부터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재정준칙과 연금개혁을 법으로 강제하자는 주장은 국회와 정부의 정당한 정책 결정권을 부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도 법률에 규정하자는 것이다.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한 정부는 시정계획을 제출하고, 연금 재정이 악화되면 개혁안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도 선거와 정파적 이해를 이유로 심의를 무작정 미룰 수 없도록 제도적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권은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공감대는 중요하다. 그러나 합의를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동안에도 국가채무의 이자는 쌓이고 연금 재정의 부담은 증가한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 개혁을 연기하는 정치가 반복된다면 그 피해는 정치권이 아닌 미래의 납세자와 연금 가입자에게 돌아간다.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온 청년들의 분노는 오늘의 정치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한국 정치도 당장의 지지율과 선거 승리를 위해 재정을 운용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채무와 연금 지급 의무는 정권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권이 회피한 책임을 미래세대가 세금과 보험료로 감당하는 일도 더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국민은 선거에서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다. 그렇다고 현재의 정치권이 그들의 몫까지 마음대로 쓸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니다. 미래세대에 남길 부담을 결정하는 정치라면 그 책임부터 법으로 지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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